제 9 회


제1장 고인돌밑의 인생들


비천한 노예 우마


1


태자 장황은 성이 머리끝까지 치솟아올랐다.

소부루가 종적없이 사라져버린것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때 숯구이막에 갔을 때 어떻게 하나 소부루를 끌어올걸 그랬다는 때늦은 후회가 장황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장황은 소부루의 종적을 찾으려 여러곳에 심복을 파하고 은밀히 마불의 졸개까지 잡아다 족쳐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선불맞은 이리마냥 궁성안을 싸다니던 장황은 문득 더덩쇠의 놋부리터에 갔을 때 소부루를 지켜보던 왕협장군의 야심에 불타던 눈길이 떠올랐다.

(옳지, 벌개같은 왕협의 작간이로구나.)

장황은 노호하여 왕협을 불러들였다.

왕협도 소부루가 자취를 감추었다는것은 금시 초문이여서 두눈만 데룩거리며 어쩔줄 몰라했다.

닭쫓던 개신세가 된 장황은 왕협에게 당장 소부루를 찾아 대령시키라고 호령했다.

《알겠소이다.》

왕협은 장황앞에 엎드려 세번이나 거퍼 절을 하고는 태자의 방을 나섰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라고 없어진 소부루를 나보고 찾아내라니…

혼자 두덜거리며 별궁을 나서던 왕협은 자기도 모르게 환성을 지르며 무릎을 쳤다.

생각이 우마에게 가닿았던것이다.

우마놈이 숯구이막에 드나들었으니 틀림없이 소부루의 행처를 알고있을것이다. 즉시 우마를 잡아들였다.

그러나 잡아다가 이레동안을 달구었는데도 오직 모른다는 한가지 대답뿐이다.

허술히 얕잡아본 노예놈이 보통이 아니라는 야릇한 공포감까지 들었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불이 이는 속을 독한 술로 다스리고있던 왕협은 문소리에 얼굴을 들었다. 우마를 문초하던 감노였다.

감노는 주접이 들어 주춤주춤 왕협앞에 다가오더니 무너지듯 엎드렸다.

《넌 똥구뎅이에 빠진 개새끼처럼 왜 그 모양이냐?》

술에 흠뻑 취한 왕협은 자기의 부하를 노려보며 혀꼬부라진 목소리로 욕을 해댔다.

감노는 상전앞에 엎드린채 입을 열지 못했다.

《아가리에 바위돌을 처박았느냐. 더러운 개자식.…》

왕협은 감노의 멱살을 틀어쥐고 잡아일으켰다.

《말하지 못할테냐, 이놈!》

왕협의 우악스러운 손탁에 목덜미를 틀어쥐운 감노는 숨이 막혀 얼굴이 새까맣게 죽어갔다.

《흥, 좋아. 그럼 내가 심문할테다. 어디 네놈이 내 손탁에 불지 않나 두고보자.》

왕협은 둬번 껄껄 트림을 하더니 문쪽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죽은듯이 엎드려있던 감노가 일어나 왕협을 부축했다.

우마는 벌써 며칠째 밤이면 온갖 모기, 곤충들이 달려들어 피를 빨아먹는 숲속에 지어놓은 구류장에 갇혀있었다.

온 하루 무서운 매속에 심문을 받고 구류장에 들어오면 애기주먹같이 작은 밥덩이와 물 한사발이 그를 기다린다.

그것이 그의 육체를 보존케 하는 하루식량의 전부였다.

우마는 온몸을 쑤시는 모진 아픔에 신음하면서 차거운 흙바닥에 엎어진채 움직일념을 못했다.

방금까지 소부루의 출처를 대지 않는다고 감노에게서 매질을 당하다가 옥안에 던져진터였다.

살창가까이에 놓은 넙적한 돌우에 놓여진 밥 한덩이가 눈앞에 비껴왔으나 거기까지 손을 뻗칠 힘조차 없었다.

짐승의 가죽으로 겨우 사타구니를 가리운 우마의 가마밑둥처럼 새까맣게 탄 벌거벗은 몸의 가로세로 난 채찍자리에서 벌건 피가 내배이고 장작개비에 맞아 툭툭 살이 터져오른 상처에서는 피고름과 함께 진물이 흘러내렸다.

몸뚱이가 못견딜 정도로 쓰리고 온몸이 쑤시지 않는곳이 없었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쇠사슬에 칭칭 감기운 우마는 살창 한쪽에 등을 기댄채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눈앞이 아지랑이에 싸인듯 아물거리고 피뜩피뜩 정신이 흐려지군했다.

그래도 눈앞에서는 울고있는 소부루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소부루, 그대는 과연 어디로 갔단말이냐, 단 한번이라도 그 모습을 볼수 있다면 이다지 괴롭지 않으련만…)

우마는 안타까이 마음속으로 물었으나 소부루는 대답이 없었다.

우마는 소부루가 자기가 없는새에 그 어떤 악한들에게 잡혀갔으리라고 추측하고있었다. 틀림없이 악한들에게 욕을 당하고 벌써 이 세상사람이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갈마들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듯이 저려오고 눈앞의 모든 빛발이 사라져버리는것만 같았다.

우마는 차거운 땅바닥에 누워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우마, 일어나!》

머리우에서 벼락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겨우 눈을 뜬 우마의 눈에 험상궂은 시위두목의 얼굴이 비쳐왔다.

《왕협장군께서 너를 부르신다. 어서 일어나지 못해!》

시위두목이 참대몽둥이로 우마의 등을 사정없이 짓조겼다.

우마는 일어나보려고 애를 썼으나 몸이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았다.

《허우대 큰 놈이 무슨 엄살이야. 어서 일어나, 이 노예놈아.》

시위두목이 이번에는 창끝으로 우마의 가슴을 건드리며 호령했다.

아무리 그래야 몸을 일으키지 못하자 시위두목은 할수없이 제놈이 그를 일으켜세워 부축했다.

시위두목은 우마를 왕협장군앞으로 끌어왔다.

마교차우에 반정신이 나간듯 얼근해 앉아있던 왕협이 게슴츠레한 눈을 맥없이 올리떴다.

《네―네놈이 우―우마란― 놈이야?》

왕협은 혀가 돌지 않아 겨우 떠듬거렸다.

《그렇소이다.》

우마가 겨우 몸을 가누며 왕협의 마교차앞에 주저앉았다.

《음, 네놈이 감히 소부루를 빼돌렸단말이지.》

왕협이 비틀거리며 마교차에서 내려섰다.

《그런 일은 전혀 없소이다.》

우마가 당황하여 중얼거렸다.

《바로 대지 못할테냐! 네놈이 숯구이막으로 다닌걸 내가 다 알고있다.》

왕협의 게슴츠레한 눈에 서리발같은 독기가 어렸다.

그 서리발이 몸에 닿으면 그대로 얼어버릴듯 했다.

《숯구이막에 갔던건 사실이오나 소부루가 어디 갔는지는 전혀 모르오이다.》

우마가 땅에 머리를 대고 대답했다.

《이 비천한 노예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고나. 야, 내 채찍을 가져오너라.》

왕협이 시종에게 호령했다.

시종이 소힘줄채찍을 가져다주자 왕협은 정신없이 우마를 조겨댔다.

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툭툭 터져나가며 피와 살점이 튀였다.

《이래도 모르쇠할테냐. 미련하고 비천한 노예놈아.…》

왕협은 악을 쓰며 더욱 미쳐 날뛰였다.

몸을 꿈틀거리던 우마가 겨우 머리를 들고 악귀같이 날뛰는 왕협놈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땅바닥에는 진한 피가 곬을 지으며 흘러내렸다.

《이 미련한 노예놈아, 아직도 버틸 심산이냐. 이놈, 이놈, 어디 견디여봐라.》

정신없이 채찍질하던 왕협이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지 채찍을 놓고 우마에게 다가갔다.

살벌한 채찍밑에 마지막기력마저 깡그리 빼앗긴 우마는 땅바닥에 피를 깔고 쓰러진채 한마디의 신음도 지르지 않았다. 왕협은 우마의 귀를 비틀어쥐고 얼굴을 돌렸다.

창백한 얼굴에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뭣들 하는고. 이 더러운 송장을 썩 가져다버리지 못할가.》

왕협이 피묻은 채찍을 집어던지고 옷자락에 손을 썩썩 문질렀다.

시종들이 나와 우마의 팔을 하나씩 쥐고 쳐들었다.

죽은줄 알았던 우마의 코끝에 숨결이 느껴졌다.

《아직 죽지 않았소이다.》

시종들이 주저했다.

《죽었던 안죽었던 마찬가지야. 어서 가져다 이리들한데 주지 못할가!》

왕협은 어쩔줄 몰라하는 시종들에게 악청을 돋구어 꽥 소리를 질렀다.

《알았소이다.》

시종들은 머리를 조아려 대답하고는 우마를 숲속으로 끌고갔다.

이때 요란한 자류마의 투레질소리가 들리더니 구류장앞으로 화려한 마교차 한채가 요란한 방울소리를 울리며 달려오고있었다.

나라 대신급이 타는 화려한 마교차였다.

세마리의 기름진 자류마가 하늘이 떠나가게 투레질하며 동시에 두굽을 번쩍 쳐들더니 뽀얗게 먼지를 피워올리며 멎어섰다.

마교차의 휘장이 들리자 참이 으리으리한 대신복을 떨쳐입고 마차에서 내렸다.

깜짝 놀란 왕협이 황황히 달려나가 니계상의 발밑에 머리를 틀어박으며 엎드렸다.

참은 본척도 않고 자기앞에 부복한 왕협의 시종에게 물었다.

《우마는 어디에 있느뇨?》

시종이 우들우들 떨며 겨우 손을 들어 가리켰다.

참은 노호한 눈길을 들어 시종이 가리킨 숲을 바라보더니 불호령을 내렸다.

《당장 내앞으로 우마를 끌어오지 못할가.》

그 소리에 놀란것은 왕협이였다.

우마가 참이 노예들중에서 가장 아끼는 대노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그 노예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참이 가만히 있을리 만무하다.

왕협은 등골로 진땀이 흐르며 가슴이 선뜩했다.

가슴이 조막만하게 졸아든 왕협은 참의 눈치만 슬금슬금 훔쳐보았다.

참은 왕협의 시종들이 끌어다놓은 우마를 바라보았다.

처음 참의 묵직하게 다물린 입술이 씰룩이더니 다음 관자노리가 풀떡거렸다.

벌기우리하게 피발이 선 참의 두눈은 분격을 느낀 야수의 눈빛처럼 번뜩이였다.

허나 참은 용케도 분격을 누르고 입을 다물고있었다.

자기의 노예대노가 이렇게까지 만신창이 되였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모양이였다.

바빠맞은 왕협장군이 참에게 련속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용서하시오이다. 제 아이들이 워낙 조폭하고 무지한놈들이여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나보오이다. 그 죄 죽어 마땅한줄 아오이다.》

참은 분노에 끓는 눈을 들어 왕협을 힐끔 치떠보고는 자기의 심복들에게 왈칵 화를 냈다.

《너희들은 뭣들 하고있는거냐. 어서 우마를 마차에 싣지 못할가.》

참은 분풀이를 해대듯이 손에 든 채찍으로 딱― 소리가 나게 허공을 후려치고는 자기 마차에 올랐다.

참의 심복들이 달려와 왕협의 시종들을 밀어내고 우마를 들어 마차로 날라갔다.

《어험, 가자!》

참은 아직까지 마교차밑에 엎드려있는 왕협과 그의 시종들을 마깝잖게 치떠보고는 출발령을 내렸다.

덜렁거리는 마교차에 앉은 참은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우마가 꼭 잘못될것만 같아 불안했다.

힘꼴이나 쓰는 노예대노인 우마를 잃으면 여라문명의 여느 노예를 잃는것보다 더 큰 손해라고 생각하는 참이였다.

그래서 참은 가문의 귀중한 재산처럼 우마를 취급했다.

그런 우마가 조폭한 왕협장군에게 끌려가 매를 맞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달려왔으나 일은 벌써 저질러진 뒤였다.

참은 좀처럼 분격이 잦아들지 않았다.

왕협을 자기의 사위로 지목하고있지만 않다면 참은 자기의 남다른 그 야수의 기질을 마음껏 발휘했을것이다.

터놓지 못한 그 분격이 가슴에 가득 차오른 참은 애매한 마종에게 벌컥 역증을 냈다.

《말이 왜 이렇게 굼뜨냐?》

《예, 알겠소이다. 쩌어―》

급해맞은 마종이 채찍을 휘둘렀다.

살진 자류마는 대가리를 들며 투레질을 하더니 네굽을 놓아 내달리기 시작했다.

왕협은 얼이 나간듯 멀어져가는 참의 마차를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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