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24


그렇게도 정답기만 하던 삼치강나루터가 오늘은 왜 이다지도 낯설어보이는지 알수 없었다. 달천에게는 삼치골의 산과 들도 난생처음 맞다든 타향의 풍경처럼 죄다 서먹서먹해보이였다. 가고오는 모든 사람들이 투전판에서 돌아오는 자기를 외면하는것 같았고 《음메―》하고 길게 뽑아대는 황소의 영각소리조차 자기의 죄를 문책하는것 같았다.

오만가지 걱정에 사로잡힌 그는 배가 언제 떠났고 언제 삼치골쪽 대안에 와닿았는지도 모르고 배에서 내린 동리사람들의 뒤를 따라 스적스적 행길에 들어섰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웅담이 20원으로 되고 20원이 몽땅 하늘로 날아났으니 내 무슨 낯으로 형과 형수를 만난단 말인가. 형네 로자로 쓸 돈을 투전판에서 다 잃었으니 이 달천은 도적놈이나 협잡군보다 더 나쁜 인간으로 만사람의 조소를 받게 되였다. 이런 난사가 또 어디 있는가. 이제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의 하내비도 나를 도울수 없게 되였다.

믿을것은 윤주사밖에 없다. 윤치홍만이 병달이가 따낸 20원을 나한테 돌려줄수 있다. 때마침 자전거를 탄 윤치홍이 짜르릉, 짜르릉 종소리를 울리며 옆으로 지나가고있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보위색닫긴옷에 승마바지를 입고 그 바지가랭이에 각반을 쳤다.

《저… 주사님!… 주사님!》

달천은 자전거뒤꽁무니를 붙잡고 혀꼬부라진 소리로 《님》을 개올렸다. 면에서 오른 술독이 아직 풀리지 않아 걸음걸이도 온전치 못했다.

《이 사람, 볼일이 있으면 집에 찾아올게지 길바닥에서 이게 무슨 추탠가.》

어깨너머로 윤치홍의 지청구가 날아왔지만 달천의 귀에는 그게 징징거리는 파리소리만큼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신경을 쓰는것은 윤주사의 지청구가 아니라 자전거를 멈춰세우는것이였다.

《주사님! 제… 제발… 한마디만 들어주십시오.》

달천은 헉헉거리며 뛰여가 잡았다놓쳐버린 자전거뒤꽁무니를 또 붙잡았다. 그야말로 사생결단이였다. 뒤뚝거리는 자전거가 한쪽옆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윤치홍은 오만상을 찡그리며 땅바닥에 내리였다.

《이거 정말 푼수없이 노는군.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는 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또 허달천이 무엇때문에 자기 꽁무니를 지꿎게 따라오는가를 횅하니 알고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뻑― 따고 물었다. 오가던 행인들이 두사람의 해괴한 상면을 흘끔흘끔 돌아보며 이따금씩 옆으로 지나갔다. 그것을 의식하고 취중에도 부끄러움을 느낀 달천은 윤치홍의 귀전에 술냄새가 물큰물큰 나는 입을 바싹 가져다붙이고 나직이 말했다.

《주사님, 마… 마름이 따… 따먹은 내 돈 20원을 돌려주도록 해주시우다.》

윤치홍은 턱을 건뜩 쳐들고 코웃음을 쳤다.

《허허, 세상에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다. 여보게, 투전으로 딴 돈을 돌려주는 법도 있나?》

《버… 법이야 없지요. 그… 그렇지만 이 삼치골에서 윤주사님 말이야 버…법이 아닙니까.》

《윤주사의 말이 법이라… 거 귀맛이 좋은걸, 하하하.》

윤주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달천은 그의 발바닥에 입이라도 맞추는 심정으로 안타깝게 통사정을 하였다.

《사실 그 돈은 우리 아주머니… 아, 아, 혀…형수가 로자로 쓸 돈인데 이 미…미련한 놈이 그만… 주사님, 제발 한번만 도와주시오다.》

《글쎄 자네 말을 들어보면 동정이 가는데… 아무리 수하의 마름이래도 병달이 그 사람 내 말을 고분고분 들어주겠는지 모르겠거던.》

윤치홍은 얼굴에 사뭇 침통한 표정을 그리였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달천이 지금과 같이 막다른 골목에 빠져든것은 모두 그의 술책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만사가 다 그의 의사와 각본대로 되여가고 있었다. 그는 달천이 면에 웅담 팔러 간다는 소문을 듣고 병달을 보내여 투전판에서 그 돈을 널름 해치우게 했던것이다. 놀랑패 여럿이 작당해서 한노릇을 달천과 같은 촌바우가 당해낼리 만무하였다.

네놈이 이제는 내 말을 안 들을수 없게 됐지.

윤치홍은 구정물이라도 마시라면 마실 준비가 되여있는듯 한 달천의 간절한 눈빛을 얼핏 일별하고나서 넌지시 말했다.

《정 바쁜 돈이라면 내가 변통은 해주겠네.》

윤주사의 그 말에 달천은 취기가 말짱 날아났다.

《주사님, 제발 그렇게 해주시오다!》

《그런데 한가지 조건이 있네.》

《네, 네, 무슨 조건이든지 어서 말씀하십시오.》

《자네가 지금은 지푸래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일테지만 돈을 변통해준들 무슨 수로 갚겠나. 20원이 작은 돈인가. 자네를 생각해서 내 방책을 하나 내놓겠네.》

《무슨 방책인지 어서…》

《봉순이년을 우리 집에 몇달만 들여보내게. 그럼 변통해줄 돈도 면제해주지. 어떤가?》

윤치홍은 이 길바닥에서 아예 대답을 받아낼 잡도리였다. 여기서 어정쩡한 대답이라도 받아내면 강제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봉순이를 끌어오자는것이 그의 속심이였다. 달천은 얼굴이 컴컴해서 아무 대답도 못하였다.

《싫다면 싫다고 하던가 어서 대답을 해야지.》

《주사님 요구는 고맙지만… 그 애가 없이 나혼자 어떻게 살겠나요. 농사도 집살림도 다 그 애가 하는데…》

《자넨 좀더 망해봐야 철이 들겠구만. 이보라구, 집살림은 형수가 돌보면 되는거고 농사야 자네가 하면 될게 아닌가. 봉순이가 우리 집에 오면 자넨 입을 하나 더니까 덕을 보는거구 소작을 붙이는데서도 특전을 받을테니 좀 좋은가 말이야. 요새 나까무라소장이 독을 품고 삼치골야학방을 주시하고있는데 그놈의 야학방에서 무슨 건이 일어나도 봉순이는 내 보호를 받아 무사할게 아닌가. 봉순이가 주재소신세를 지지 않게 하고싶거든 그년을 당장 우리 집에 들여보내게. 어험!》

윤치홍은 달천이 미처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이렇게 엄포를 놓고나서 자전거를 타고 씽 하니 가버리였다. 달천은 그가 먼지를 말아올리며 사라지는 모양을 멀거니 지켜보았다.

달천이 발을 떼자 두루마기주머니에서 따라랑― 하는 소리가 났다.

약방을 나서는 길로 잡화점에 가서 산 딸랭이가 내는 소리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딸랭이를 꺼내들고 미친듯이 흔들어댔다. 딸랑딸랑하는 은방울 굴리는것 같은 맑은 딸랭이소리가 그의 착잡한 심중에 오히려 무거운 돌이 되여 떨어졌다.

돈 20원을 벌었다가 투전판에 다 밀어넣고 요 딸랭이 하나만 겨우 건졌구나.

달천의 눈에서는 눈물이 쿡 솟구쳤다. 그는 엉엉 소리를 내여 통곡하고싶었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내 신세가 하루사이에 이렇게 되다니.

울고싶어도 울수가 없고 죽고싶어도 죽을수 없는 가련한 이 신세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윤주사가 나를 얼마나 허술히 보았으면 20원의 돈값으로 봉순이를 달라고 하겠는가. 그래 우리 봉순이의 몸값이 웅담 한개값밖에 안된단 말인가. 내 신세가 이렇게 각박해지는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배를 타고 삼치강을 건너올 때 물에라도 빠져 이 더러운 목숨을 깨끗이 수장해버리는게 나을번 했다.

윤치홍은 지금 올가미를 들고 내가 그 올가미에 걸려들 때를 기다리고있다. 이 허달천이 그 올가미에 걸리면 봉순이가 윤주사의 아가리에 들어가 신세를 망치게 된다. 죽으면 죽었지 윤주사의 홀림낚시에 걸려들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에이, 그 망할놈의 투전판!

달천은 모든것을 체념해버리였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그는 형과 형수한테 오만가지 욕을 듣고 그 무엇으로써도 씻을길 없는 원한을 살것을 각오하고 밭머리에 다가섰다. 형과 형수가 반색을 하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봉순 애비, 이제야 오나.》

《예, 좀 늦었소이다.》

달천은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였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자네네 조밭가을을 다 끝내네.》

《정말 수고를 하셨구만요.》

《수고는 무슨 수고, 진짜 수고야 자네가 했지.》

《형님, 미안한데 내 이렇게 한잔 했수다.》

《아, 해야지. 5원이나 더 받아냈는데 그까짓 술 한잔이 대순가.》

달천을 바라보는 형의 눈에 정이 함뿍 어리였다.

화제가 20원이야기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자 달천은 주머니에서 딸랭이를 꺼내여 형수의 손에 쥐여주었다.

《적은이, 이건 웬 딸랭이예요?》

《봉녀가 아들이든 딸이든 봤을게 아니요. 내 그래서…》

조씨는 시아우의 그 지성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적은인 정말 속도 깊네.》

달천은 형수의 귀에 대고 귀속말로 간청하였다.

《아주머니, 한 사흘쯤 있다가 떠나지 않겠나요?》

《왜요? 한시가 급한데…》

《내 이틀동안 그 돈을 곱으로 불쿠어드리겠수다.》

《불쿠긴. 그 돈이면 돼요.》

《제발 그렇게 해주시우다. 명색이 삼촌인 나도 봉녀한테 뭘 좀 보내야 하지 않겠나요.》

동생이 조씨에게 귀속말을 할 때부터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낀 달수는 불안한 표정으로 달천에게 물었다.

《봉순 애비, 자네 그 돈을 혹시 딴데 쓴게 아닌가?》

《아이구!》

달천은 두손으로 이마를 감싸쥐고 밭머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형님, 이 일을 어쩌면 좋소? 차라리 날 죽여주시오!》

그는 방금전에 가을을 끝낸 밭고랑에 머리를 틀어박고 죽은듯이 엎드려있었다.

《그래, 어떻게 되였다는건가? 돈을 잃어버렸나? 불어먹었나?》

《사실은 형수님 로자도 보태주구 나두 늙은 소 한마리 얻어볼가 해서 투전목을 잡았댔는데 그만 쫄딱 녹았수다. 형님, 날 죽여주시우. 내 더 살아서 뭘 하겠소.》

머리도 들지 못하고 엮어대는 사설질이 자못 애처롭고 궁상스럽다.

그 사설질을 듣고 봉순이와 차돌이가 뛰여왔다.

《애고, 적은이도 어쩌면…》

조씨의 눈에서는 금시에 굵은 눈물방울들이 락수물처럼 뚤렁뚤렁 떨어졌다. 녀인은 혼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먼산을 넋없이 바라보다가 손으로 아무런 뜻도 없이 허공을 허이허이 긁어내리며 행길쪽으로 걸어갔다. 사태의 진상을 륙감으로 간파한 봉순이도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밭고랑을 따라 어디론가 달려갔다.

《너같은 놈을 믿구 보냈던 내가 어리석었지.》

입속으로 이런 말을 하던 달수는 갑자기 천둥벼락이라도 떨구듯이 어성을 버럭 높이였다.

《이놈아, 너도 인간이냐? 너같은게 더 살아서 무슨 사람값을 하겠니. 오늘은 내 손에 죽어봐라.》

달수가 입을 앙다물고 낫가락을 높이 쳐드는 순간 최진명이 얼른 그의 팔목을 틀어잡았다.

《아저씨, 이러지 마십시오!》

달수는 야학선생의 손에서 팔목을 뽑고 낫가락을 팽개친 다음 밭이랑에 털썩 주저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만 길게 내쉬였다. 그다음 원망과 련민이 뒤섞인 착잡한 눈길로 천천히 동생을 돌아보았다.

《동생은 너무해, 너무하단 말이야. 자네때문에 이제는 나도 얼굴을 쳐들고 다니지 못하겠네. 사람이 도박에 미치면 제 처자까지도 팔아먹게 된다고 내가 몇번이나 말했나. 봉순이가 불쌍하지 않아? 그 애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사람구실을 하라구.》

달수의 마지막말마디들은 갈려서 휘파람소리처럼 들리였다. 그는 동생의 뒤덜미에 동정도 아니고 모멸도 아닌 미묘한 눈길을 화살마냥 던졌다가 밭고랑에 나딩구는 낫가락을 집어들고 지척지척 마을쪽으로 걸어갔다.

달천은 주변이 조용해지자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쳐들고 밭고랑에서 일어났다. 그 정적은 형의 고함소리보다도 몇갑절 더 두렵고 무시무시했다. 그는 무인고도에 홀로 남은듯 한 적막감을 느끼며 세상이 온통 자기를 버리고 외면하고있으며 자기는 인간명단에서 영원히 제명된듯 한 비통한 소외감을 느끼였다. 달천은 사람이 사람값에 들지 못하고 막돌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는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이 순간처럼 뼈저리게 느껴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형님, 차라리 내 귀뺨이라도 쥐여박고 갈것이지 왜 그냥 가셨소.》

그는 눈물을 그냥 펑펑 흘리며 가슴을 파내리는 목소리로 넉두리를 하였다. 곁에서 달천의 동정을 지켜보고있던 최진명이 그를 진정시키였다.

《봉순 아버지, 그만하십시오. 아무리 통곡한들 투전판에서 날려보낸 돈이야 어떡하겠습니까. 그러나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형수가 간도로 가지 못하게 됐은즉 실망 안할수 있나요.》

《간도로 가지 않고서도 조카딸의 소식을 알아내면 될게 아닙니까.》

달천은 미심쩍은 눈으로 진명을 돌아보았다.

《그게 가능할가요? 그 넓은 간도천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넓어두 하늘아래 간도겠지요. 그쪽에 제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윤길이와 봉녀의 소식을 알아봐달라고 편지를 몇통 썼습니다.》

《편지를요? 고맙소이다.》

《회답이 올 때도 되였으니 너무 속을 태우지 마십시오. 이왕지사 말이 난 김에 하는 말이지만 봉순 아버지도 이제는 투전판에서 손을 떼고 봉순이처럼 야학에 다녀야 하겠습니다. 글공부란 아이들만 하는게 아닙니다. 어른들도 야학에 나와 글을 배우는게 이모저모 좋습니다. 우리 야학은 삼치골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고있습니다. 나는 야학방에서 봉순 아버지와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줄도 모르고 우린… 선생님, 정말 면목이 없수다.》

달천은 진명의 손을 잡으며 진심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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