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23


삼치골에서 면까지는 왕복 60리길이다. 왕복 60리란 평보로 걸어도 5시간이면 쉽사리 다녀올수 있는 거리다. 웅담흥정에 1시간을 잡는다쳐도 6시간만에는 삼치골에 돌아와야 정상이라고 할수 있다.

해가 서산너머로 돌아갈 차비를 하고있는 지금까지도 달천이 나타나지 않는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였다.

달수는 동생네 조가을을 해주면서도 나루터쪽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삼치골에서 면으로 왕래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나루터를 거치였다. 면에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을 태워다주느라고 오후만 해도 배가 세탕째나 뛰였는데 달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무슨 변고라도 생긴게 아닐가. 불길한 억측들이 련달아 떠올랐다. 술군들의 나들이란 말썽단지다.

한이랑을 베고 삼치강쪽을 또 바라보는데 누군가 나루배에서 내려 뭍으로 오르고있었다. 춘삼이였다. 지게를 진 그의 꺼꺼부정한 모습이 강기슭의 언덕배기로 불쑥 솟구쳐오르자 달수는 입에 두손을 오그려붙이고 그를 불렀다.

《이 사람 춘삼이, 잠간 들렸다 가게.》

나루터에서 잡초들이 뒤엉킨 공지를 지나고 곱단이네 수수밭을 지나 조금만 걸어오면 봉순이네 밭이다. 춘삼은 량어깨에 멨던 지게를 벗어 한쪽어깨에 걸치고 달수한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면에 갔다오는 길인가?》

《윤주사한테서 꾼 돈을 물어주려고 면에 가서 나무를 팔고 오는 길이웨다. 리자가 그냥 불어나는것 같아서…》

춘삼은 서글픈 눈길로 빈지게를 흘깃 돌아보았다. 달수는 《면》이라는 말에 반색을 하였다.

《면에 갔다온다구? 혹시 우리 동생을 못 봤나?》

《봤어요. 주막집에서 막걸리추렴을…》

춘삼은 안할 말을 했다고 생각했던지 입을 다물어버리였다. 그리고는 윤주사네 집쪽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막걸리추렴을 한단 말이지. 그러니 웅담을 팔긴 팔았구나. 탁배기 한사발에 5전이니 열사발을 마신다 해도 고작 50전밖에 안 썼을테지.

달수는 코노래로 《농부가》를 흥얼거리였다. 북간도로 갈 로자가 마련되였다는 생각에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는 나른하던 팔뚝에 힘을 싣고 기운차게 낫을 휘둘러댔다.

그가 일손을 놀리기 시작하자 곁에서 이랑을 타고나오던 봉순은 반대로 낫질을 멈추었다. 그는 이마우에 손채양을 올리고 시름겨운 눈길로 나루터쪽을 바라보았다. 큰아버지는 춘삼이의 말을 듣고 기분이 돌변하여 《농부가》를 흥얼거리였지만 봉순이는 오히려 막걸리추렴을 한다는 말에 불안이 더해지는 모양이였다. 아버지가 면에 갈 때마다 속이 새까매서 마음을 놓지 못하는 봉순이니 그럴만도 하였다.

자식때문에 속을 썩이는 부모들은 많아도 부모의 처신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자식들은 흔치 않다. 아버지가 술놀이와 투전에 발목이 잡혀 집안일을 멀리하고 푼푼치 못한 살림살이에 손을 댈 때마다 봉순이가 남모르는 눈물을 흘린다는것을 달수는 잘 안다. 지금도 조카딸은 아버지의 걸음이 늦어지는것때문에 불안한 심정으로 해가늠을 할것이다.

수수가을을 끝내고 돌아가던 곱단이가 밭머리에 다가와 봉순에게 말을 걸었다.

《봉순언니, 야학갈 때 같이 가자요.》

《응.》

《오늘 저녁엔 야학선생이 홍의장군얘기를 해준댔어요.》

《그래? 임진왜란때 왜놈들을 족쳤다는 의병장 말이지?》

《그래요.》

곱단이는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 참새처럼 포르릉 날아가버리였다.

삼치골아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야학이야기뿐이다. 《홍의장군》이니 《의병장》이니 하는것들은 다 귀에 설은 말마디들이였다. 아이들이 야학공부를 하더니 좀 개명해가는것 같았다. 마을에서 제일 총명하다는 평판을 받고있는 이 허달수도 모르는 사연을 저 애들은 보란듯이 찧고 까분다.

《봉순아, 야학에서 리순신장군얘기도 해주니?》

달수는 일손을 멈추고 봉순에게 말을 걸었다.

《네, 계월향얘기도 해줘요.》

《누구라구?》

《계월향이라구 평양기생 있지 않아요.》

《뭐 기생이라구? 이년아, 기생얘기나 듣자구 그 잘난 야학에 다닌단 말이냐. 야학선생이 그렇게 추잡한 사람인줄 정말 몰랐구나. 철없는것들한테 글쎄 기생얘기가 뭐냐, 기생이야기가…》

《큰아버지두 참!》

봉순은 어이가 없다는듯이 눈을 흘기였다.

《계월향은 김응서장군과 함께 왜놈대장을 죽인 좋은 녀자래요.》

《모를 소리다. 춤이나 추고 가야금이나 뜯는 기생이 어떻게 그런 거사를 할수 있니. 진명이 그 사람 정말 한심한 사람이다.》

《진명선생이 한심한게 아니라 큰아버지가 한심해요.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칭찬하는 계월향이를 기생이라고 허물하면 되나요. 다들 기특한 녀자라고 칭찬하는데 큰아버진…》

《온 나라가 아니라 온 세상이 칭찬해도 기생은 기생이다. 내앞에서 다시는 계월향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말아라. 귀가 어지러워지겠다.》

달수는 파리라도 쫓듯이 손사래를 쳤다. 그가 눈에 갈구리를 걸고 기생들을 보기 시작한것은 명월관이라는데서 일하는 접대부들을 본 다음부터였다. 그는 그날 귀빈실 문앞까지 갔다가 거기서 눈을 뜨고서는 차마 볼수 없는 추잡스런 광경을 목격하였다.

얼굴에 개기름이 번들번들한 놈팽이 다섯놈이 잠옷바람으로 기생들을 한년씩 끼고앉아 술놀이를 하고있었다. 통풍을 하느라고 미닫이를 량옆으로 널직하게 터쳐놓아 방안의 전모가 다 드러났다. 앞가슴에 털이 부르르한 놈팽이의 구령에 따라 다섯명의 기생들은 입에 물었던 술을 제가끔 자기의 짝으로 선정된 사나이들의 입에 넣어주었고 사나이들은 또 그 술을 기생들의 입에 되넘겨주었다. 그다음은 쌍쌍이 서로 붙안고 꼬집고 간지럽히고 지랄이란 지랄을 다 부리였는데 달수와 같은 시골뜨기에게는 그런 해괴한 꼴을 목격하게 된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수 없었다. 어쨌든 그후부터 달수는 기생이라면 덮어놓고 도리를 흔들었다.

봉순은 억이 막히는지 한참동안 달수를 흘겨보다가 입을 삐쭉하며 단도직입으로 들이댔다.

《큰아버지, 이제라도 야학에 다니라요. 야학만 다니면 큰아버진 더 유식한 사람이 돼요.》

《듣기 싫다. 야학에 안 다녀도 이 큰아버지는 오십이 다 되도록 잘만 살아왔다.》

달수는 봉순이가 더 말을 붙이지 못하게 허리를 구부리고 다시금 열심히 낫질을 해댔다. 봉순이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달수의 정수리를 측은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다가 암팡진 일솜씨로 와락와락 조를 베나갔다.

계월향, 계월향이라고 했지. 쪼고만 계집애들까지 다 아는 그 기생을 나만은 왜 여태 모르고있었을가.

달수는 조가을을 하면서도 줄곧 이런 생각에 옴해있었다. 조카딸앞에서 떵떵거리기는 했지만 남들이 다 아는 계월향을 모르고있었다는 사실이 속에 걸려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다.

이때 을복이네 조밭에서 가을걷이를 도와주던 야학생들의 한떼가 최진명을 앞세우고 행길을 넘어 봉순이네 조밭으로 밀려온다. 밭머리에 이르자 최진명이 모자를 벗어들고 깍듯이 인사를 한다.

《달수아저씨, 안녕하십니까!》

《아, 진명선생인가. 야학선생이 오늘은 어떻게 벌에 다 나오셨소?》

달수는 진명의 손에 들린 낫을 보면서도 좀 이기죽거리는듯 한 어조로 물었다. 지금까지 진명선생때문에 피해를 본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만 보면 본능적으로 심사가 뒤틀려 말마디들에 거스름이 생긴다.

《일손이 딸리는 집들이 있다기에 도우려고 나왔습니다. 자, 그럼 모두 달라붙어 봉순이네 조밭가을을 단숨에 끝냅시다.》

열대여섯명의 야학생들이 밭이랑을 하나씩 타고서서 와락와락 낫질을 하기 시작했다. 마주서서 힘차게 가을을 해대는 아이들의 기세에 달수는 이상야릇한 위압감을 느끼였다. 전에는 삼치골에서 이런 풍경을 한번도 볼수 없었다. 그것은 최진명이 이 고장에 온 후부터 생긴 변화였다.

아이들이 야학선생과 함께 손포가 딸리는 집들에 가서 나무도 해다주고 마당질도 해주고 가을걷이도 해주는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런데도 최진명과 야학에 좀처럼 호감이 가지 않는것은 참으로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윤길이와 봉녀가 남기고간 불행한 과거와 현재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달수라는 이 인간이 본래부터 심성이 고약하고 괴퍅해서 그럴가.

동구밖에서부터 안해가 이쪽으로 뛰여오는 모양이 보이였다.

《여보, 령감!》

숨이 차서 어깨를 들먹거리는 조씨의 얼굴이 함박같은 웃음꽃으로 덮이였다. 사람얼굴이 이렇게 환해질 때도 있었던가. 달수는 심드렁한 기색으로 안해를 쳐다보았다.

《왜 신수가 환해서 그러오?》

《면에 장보러 갔던 이쁜이 어머니가 그러는데 적은이가 웅담값을 5원이나 더 받았대요.》

《뭐 5원이나? 그럼 20원을 받았단 말이요?》

달수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아 되물었다.

《예.》

《글쎄 그러면 그럴테지. 이 허달수의 생각이 빗나갈수가 없지. 당신은 그런데두 뭐 범아가리에 고기덩이를 맡기는것 같다구?》

달수는 기쁜김에 안해를 나무랐다.

《정말 의심이 병이지요. 내가 잘못 생각했어요.》

환하던 안해의 얼굴 한쪽구석에 구름장같은것이 언뜻 내려앉았다가 사라졌다.

《여보, 이쁜이 어머니가 그러는데 적은이가 돈을 받아가지고 한약방을 나설 때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투전군들이 달려들어 팔을 끌더라지 않아요.》

달수는 볼편이 경직이라도 온것처럼 팽팽해졌다.

《그래서?》

《뿌리치더래요. 내 아무리 투전에 환장했다 한들 제 형수의 로자에 손을 대겠는가고 하면서 매달리는 놈팽이들을 밀쳐버리더라는거예요. 그 광경을 보니 막 눈물이 나더라지 않겠나요.》

《달천이 이 사람, 장하이!》

흥분한 달수는 밭머리에 퍼더버리고 앉아 엽초를 말아물었다. 동생이 처신을 잘한덕에 안해앞에서도 마음이 홀가분하고 떳떳했다. 안해가 시동생때문에 속을 썩여온것은 달수만이 알고있는 사실이다. 남편이 동생을 지나치게 꾸짖을 때면 조씨가 달천을 두둔하였고 남편이 부당하게 동생의 편역을 들 때면 조씨가 달천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조씨는 달천을 위해서 1인2역을 해야 하는 어려운 인생수업을 해왔는데 달수는 마음속으로 그것을 고맙게 여기였다. 조씨는 또한 봉순이를 위해 친어머니가 해주어야 할 일도 다 감당하였다. 두 집안의 대소사를 다 걷어안고 돌봐야 할 운명을 지닌 조씨의 정신육체적부담은 너무나도 컸다.

《적은이가 정말 큰일을 했어요. 올가을엔 어떻게 하든 적은이한테 맞춤한 과부라도 하나 골라 짝을 무어줍시다.》

속에 불만 달리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선심을 쓰는 조씨다.

《그러자구.》

《웅담을 판 돈에서 이불감이라도 한감 끊어 봉녀한테 갖다줄가 해요.》

《그러기요. 잔치때두 못해주었는데 눈을 꾹 감구 해줍시다.》

《색동옷도 한벌 해갑시다.》

《아이도 없는것들한테 색동옷이라니?》

《령감두 참, 그 애가 떠날 때 넉달이나 되질 않았수.》

달수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셈을 하였다.

《그렇지 그래. 지금쯤은 해산을 했겠구만. 그러니까 당신도 이제는 할머니란 말을 듣게 됐구려!》

《령감은 할아버지가 되구요.》

달수의 눈앞에는 멀리 북간도땅에 가있는 딸과 사위의 모습이 지척에서 보는것처럼 가깝게 다가왔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