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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1일

평양시간


제32회


제 3 장

탄탄대로는 없다


9


도당에서 조직한 회의는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회의후 도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다 보고나서야 한숙은 의대병원으로 향했다.

수술후 의식을 차리자마자 자기를 세멘트공장으로 떠밀던 남편의 모습을 그려볼수록 가슴이 쩌릿해졌다. 그날 남편이 강경하게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는 남편곁을 떠나지 못했을것이고 세멘트도 필경 해결할수 없었을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기를 떠밀어준것은 남편이였다.

입원실의 조용하고 정갈한 복도에 들어선 한숙은 이름할수 없는 심정에 젖어 걸음보다 마음이 앞섰다.

남편의 소중함과 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끝없는 사랑의 감정에 심장이 세차게 고동쳤다.

그는 남편에게 한순간이라도 더 빨리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싶었다.

통수구구조물과 개건에 필요한 세멘트전량이 벌써 군에 와있는것이다.

그리고 군대입대후 오래간만에 보내온 아들 광혁의 편지도 가지고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책임비서가 가져온 편지였다.

남편의 침대는 비여있었다. 네모반듯하게 개여놓은 모포우에 새깃을 씌운 베개가 놓여있고 침대의 백포는 눈같이 흰데 주름 하나 잡히지 않고 반듯하였다.

사물함우에 놓여있는 음료병들중에서 귤단물 하나는 반도 못되게 비여있었다.

《정원에 나가신게 아닙니까?》

뒤따라 들어온 덕성이 하는 소리였다.

한숙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술한지 겨우 3~4일 되나마나한 남편이 정원에 나가기는 아직 일렀던것이다. 침묵을 지키고있자 새로 입원한것 같은 젊은 환자가 알려주었다.

《갑자기 어제 저녁에 어디론가 옮겼습니다.》

그 말에 한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의사실로 갔다.

그를 본 과장이 먼저 급히 다가왔다.

《수술후 위급한 고비를 무사히 넘겨서 우리도 안심했습니다. 그랬는데 어제 오후부터 심장박동이 떠져 중태에 빠질 우려가 있기에 구급실로 옮겼습니다.》

대번에 한숙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는 자신을 가다듬으며 간신히 물었다.

《지금상태는 어떻습니까?》

《주사를 맞고 잠드셨습니다.》

《제가 봐도 될가요?》

과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하였다.

《보십시오. 절대안정이 필요하기때문에 가까이 가서는 안되겠습니다.》

구급실로 안내한 과장은 문가에서 한숙을 멈춰세웠다.

창문쪽벽가의 침대에 리명덕이 누워있었다.

머리우의 벽에 산소공급코크를 비롯하여 구급대책에 필요한 의료설비들이 한눈에 띄였다.

침대곁에 세운 점적대를 간호원이 지켜보며 앉아있었다.

한숙은 륙감적으로 남편이 무의식상태에 있다는것을 알았다.

《이젠 갑시다.》

과장은 무정하게 그를 더이상 있게 하지 않았다. 밀랍같은 남편의 얼굴에 못박힌 시선을 한숙은 좀처럼 돌릴수 없었다.

잠시후 복도로 나오던 과장은 접은 쪽지를 내밀었다.

《세대주가 위원장동무한테 전해달라고 부탁한겁니다.》

한숙은 과장이 주는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았을뿐 그의 말을 가려듣지 못했다.

《우리 주인한테 더 필요되는게 없어요?》

《안심하고 돌아가십시오. 의지가 강한 사람이니 다시 호전될것입니다.》

병원에서 《안심》하란 말은 제일 많이 쓰는 말이다. 한숙은 의사들이 환자나 혹은 그 가족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그런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그 말을 믿고싶었다.

《감사합니다.》

과장에게 인사말을 한 후 한숙은 한동안 서있다가 돌아섰다. 한걸음 옮기기가 천근처럼 무거웠다.

또 죄스러웠다. 과연 구급실에 의식없는 남편을 두고 가야 한단 말인가? 이제 가면 인차 다시 와보기 힘들것이다. 그보다는 명덕이자신이 한숙이 군사업을 뒤에 두고 남편의 병간호나 하는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리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했다.

한숙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호- 한숨을 내쉬였다.

남편이 의식을 차리고 자기가 다문 얼마간이라도 곁에서 간호하다 떠나는 길이라면 이다지는 괴롭지 않을것이였다.

입원실복도의 한켠에 유리문이 있었다.

번들거리는 그 유리문이 뿌옇게 보이면서 다시 저 문으로 들어설 날이 언제이며 그 기간 남편이 어떻게나 되지 않을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엄습했다.

저도 모르게 젖은 눈가로 올라가던 손이 멎었다. 무심히 쥐고있던 종이쪽지를 보게 된것이다.

그는 접은 종이를 폈다.

전신의 힘을 다해 글자획마다 박아쓴듯 한 한줄의 글이 나타났다.

《군단병원 정원에 서있던 은행나무처럼… 그것이 나의 기쁨…》

한숙은 채 맺지 못한 남편의 글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글자들이 살아움직이는듯 했다.

그는 종이쪽지를 접어서 품속에 정히 간수하였다. 쪽지의 글은 두줄도 못 채운것이였으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생을 가야 할 길로 자기를 떠미는 남편의 변함없는 손길과 같은것이였다.

한숙은 유리문밖으로 나섰다.

창백한 기색이였으나 눈물은 흔적도 없었다.

그는 모든것을 초월한 사람에게서만이 볼수 있는 침착하고 평온해보이는듯 한 눈길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검은구름장들이 그의 마음처럼 갈기갈기 찢긴듯이 드리워있었다.

현관앞에서 그는 장철영과 조군룡을 만났다. 그들은 발효탕크 열설비에 필요한 자재를 해결하고 병원에 오는 길이였다.

전에없이 조군룡의 이마살이 잔뜩 찌프러져있었다.

한숙은 자기의 괴로움을 내색치 않았다.

《반장동무 기색이 왜 그래요?》

조군룡이 입을 꾹 다물고있자 장철영이 그들부부간에 벌어진 사연을 알려주었다.

병원마당가에서 덕성이가 승용차 기관실뚜껑을 젖혀놓고 뭘 손질하고있었다.

장철영의 말이 끝나자 조군룡이 분을 삭이지 못해 한마디 덧붙였다.

《이번엔 아들녀석때문에 또 발작했지요.》

한숙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코 그렇게 단순히 볼 문제가 아니예요.》

꽈르릉- 꽝!-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가 울며 비를 쏟기 시작하였다.

《입원실에 들어가지 마세요.…》

한숙은 원망에 찬 눈으로 비내리는 음침한 하늘을 다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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