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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0일

평양시간


제 39 회


39


백마국사신이 돌아가자 박정승은 부하들에게 싸움준비를 갖추라는 령을 내렸다. 정승부를 지키는 파수병들은 물론 문객들과 하인들까지도 창과 칼을 찾아들고 날을 벼리였다.

이제 절충장군이 군사를 거느리고 당도하면 즉시 최정승과 문정승을 들이치고 룡상에 앉을테다!

박정승은 밤을 꼬박 새우며 홍무관과 함께 구체적인 작전을 토의하였다. 홍무관은 군영장과 함께 동남당군영의 군사를 거느리고 문정승을 치며 자기 박정승은 문객들과 훈련원의 군사를 거느리고 최정승을 친다, 그들이 문정승과 최정승의 정승부에 불을 지르면 그것을 신호로 궁성밖에 대기하던 절충장군이 군사를 둘로 나누어 남문과 북문으로 짓쳐들어오면서 문정승과 최정승의 배후를 타격한다, 문정승과 최정승을 진압하는 즉시 자기는 대궐을 타고앉으며 홍무관은 궁성수비를 강화하면서 잔여세력들을 숙청하고 절충장군은 백마국군사와 합세하여 솔개국군사를 지경밖으로 내쫓는다.

날이 밝자 박정승은 아침을 먹고 홍무관을 보내여 최정승과 문정승의 동태를 알아보게 하였다.

그가 방안에 홀로 앉아 유주성의 파발이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안해 류화가 웃으며 들어왔다.

《대감, 문정승이 담동이한테 례장바릴 보내왔소이다.》

《그게 사실이요?》

박정승은 사납게 눈을 치떴다. 이제는 문정승의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린다. 이놈이 내가 제 꿍꿍이를 모르는줄 알고 아직도 장난을 치누나. 례장이요, 혼사요 하면서 시간을 얻으려고 하는 네놈의 속통머리를 내 모를줄 아느냐.

그의 속내를 알리 없는 안해가 바투 다가앉으며 계속 말했다.

《글쎄 잔치할 경황은 못되지만 최정승놈을 깔고앉기 위해서라도 빨리 잔치를 해서 문정승이라도 바싹 끌어당겨야 하지 않소이까. 그럼 대감한테도 유리하고 우리 월단이도 살리고…》

《그만 닥치지 못하겠소!》

박정승이 꽥하고 소리를 지르자 안해는 푸들쩍 놀라며 눈이 퀭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문정승놈하구는 죽어도 사돈을 맺지 않을테니 다시는 내앞에서 그놈 말을 꺼내지 마오.》

남편의 성미를 잘 아는 안해라 말대답은 못하고 혼자말을 중얼거리듯 하며 불편한 심사를 재잘거린다.

《나야 대감과 월단이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역증은 왜 내시우? 언제는 둘이 술상앞에 붙어앉아서 사돈이요 뭐요 하면서 살점을 떼줄것처럼 그러시더니 갑자기 왜…》

《아직도 그냥 입을 놀리겠어!》

박정승은 다시한번 꽥 고아댔다. 그제서야 안해는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눈에는 원망의 빛이 가득하다. 하긴 저것 한테야 잘못이 없지. 모든게 내탓이다. 그는 안해에게 모든 사연을 이야기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부인은 그 문정승놈이 왜 갑자기 혼사말을 꺼냈는지 몰라서 그러는데 내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놀라서 뒤로 나가넘어질거요.》

이어 그는 문정승이 자기를 전장으로 내보내기 위해 혼사말을 꺼낸 이야기며 솔개국에 안사인을 밀사로 파견한 이야기까지 자상히 해주었다.

안해는 너무 놀라와서 입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별일도 다 있소이다. 그러니 지금껏 문정승이 어리숙한체 했다는 말씀이시웨까?》

《그렇소. 그놈은 최정승보다 더 교활한 놈이요.》

박정승은 문정승이 눈앞에 있으면 당장 쳐죽일듯이 두주먹을 꽉 그러쥐였다.

《그런데 문정승의 아들놈이 저렇게 찾아왔는데 어쩌면 좋소이까? 웃는 얼굴에 침도 못 뱉겠지…》

《내가 처리하겠으니 부인은 상관마오.》

박정승은 일어나서 본채 마당으로 나갔다.

담동이 그를 보고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다가왔다. 전번에 만났을 때는 장차 한집안식구가 된다는 생각으로 담동이 무척 대견해보이며 정이 폭폭 들었지만 지금은 꼴보기조차 싫다. 담동의 얼굴에 지어낸 억지웃음이 막 역스럽다. 씨도적은 못한다더니 제 애비를 닮아 저놈도 여간 흉물스럽지 않군.

《장인님, 안녕하시오이까!》

담동이 꾸벅 절을 하였다.

뭐, 장인이라구? 밉다면 깨꼬한다더니 네놈이 마음먹고 간살을 떠는구나. 대번에 열기가 찍 올라 왈칵 소리를 치려는데 월단이 쪼르르 달려와 그의 팔에 매달리며 기뻐서 어쩔줄 몰라한다.

《아버님, 도련님께서 례장을 가져왔소이다. 비단, 공단이 서른필에 자개박이농짝이 열두짝이나 되고 금비녀, 금귀고리, 금가락지랑 없는게 없사오이다.》

담동이 웃으며 그의 앞에 자그마한 함 한개를 받쳐올렸다.

《우리 아버님이 장인님께 드리라고 금대통을 보냈소이다.》

《문정승이 나한테 금대통을?》

《예, 우리 아버님께서는 최정승이 비록 왕으로 점지되긴 하였으나 하늘의 뜻이 어떻게 될줄 모른다고 하면서 사돈끼리 손을 잡고 힘을 합치자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나이다.》

흥! 하늘의 뜻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구? 문정승 이놈아, 네놈이 왕으로 되는게 하늘의 뜻이냐. 천만에, 그거야말로 미꾸라지 룡될 꿈이다.

담동이 히죽거리는 꼴을 지켜보자니 눈에서 불이 일어 더는 참지 못하고 천둥소리를 냈다.

《네놈도 네 애비도 꼴보기 싫으니 례장인지, 뭔지 하는 물건짝들을 도로 걷어싣고 냉큼 사라져라!》

천만뜻밖인지 담동은 얼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장인님,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러시나이까?》

《그걸 몰라서 내게 묻느냐?》

담동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여러가지 색갈로 변한다. 허나 인차 어색하게 웃으며 여전히 진드기처럼 달라붙으려 한다.

《장인님, 다른 처가집들에서는 사위가 찾아오면 닭모가지부터 비튼다는데…》

이놈이 정말 제 애비를 꼭 먹고 게웠구나. 낯가죽이 두터워도 정도가 있지 아직도 독틈의 용수를 바라느냐!

《닭모가지가 아니라 너의 문가네 모가지를 비틀테다!》

그제야 담동의 눈이 꼿꼿해진다.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이시오이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파혼이다, 파혼!》

담동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데 그보다 더 하얗게 질리는건 딸 월단이다.

《아버지, 파혼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오이까? 아니되오이다, 아니되오이다. 이제 파혼하면 난 못사나이다…》

월단이 울면서 그의 팔을 붙잡았으나 힘껏 뿌리쳤다. 망할년! 지금은 울고불고 할 때가 아니다.

한참이나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담동이 마침내 결심을 내렸는지 결패있게 행동한다.

《정 그렇다면 알겠소이다. 나도 이 집의 사위가 되겠다고 억지로 빌붙을 생각은 없소이다.》

담동이 단호하게 홱 돌아서는데 월단이 뛰여가 도포자락을 부여잡으며 안타깝게 발을 굴렀다.

《도련님, 제발 이러지 마시오이다. 이렇게 가시면 소녀는 어찌 하나이까. 우리 아버님이 무엇인가 노여워서 하신 말씀인데 도련님께서 소녀의 얼굴을 보고 참으시오이다.》

《흥! 박소저의 얼굴을 봐서도 못 참겠소.》

담동은 울며 하소하는 월단에게 비양조로 이죽거리고나서 손으로 도포자락을 와락 나꾸어챘다. 그 서슬에 월단이 저만치 나가 어푸러졌으나 담동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씨엉씨엉 걸어나갔다.

《도련님, 제발… 제발 가지 마시오이다!》

땅에 어푸러져서도 안타깝게 한손을 앞으로 내밀며 애타게 부르짖던 월단은 담동의 모습이 사라지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박정승은 딸의 정상을 차마 눈뜨고 볼수 없어 담동이 사라진쪽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문씨종자들아! 내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을테다!》

안해가 바삐 달려나와 월단을 부축하였다.

《얘 월단아! 월단아!》

아무리 잡아흔들어도 월단은 정신을 못 차렸다. 안해는 어쩔줄 몰라하며 서둘러 시녀를 불러대고 령감도 부른다.

《빨리 물을 떠오너라! 대감은 뭘 하구 서있으시우.》

시녀가 물을 떠오자 안해는 손에 물을 적셔 월단의 얼굴에 뿌렸다.

《월단아, 제발 정신차려라… 제발 정신차려라.》

《사발을 이리 내라구.》

박정승은 안해의 손에서 사발을 빼앗아 월단의 얼굴에 물을 통채로 쏟아부었다. 그제야 월단이 후- 하고 막혔던 숨을 길게 내쉬며 푸시시 눈을 떴다.

《월단아, 정신이 좀 드느냐?》

그는 자애넘치는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딸은 그를 보는지 마는지 눈의 초점이 흐려있다.

《호호호… 도련님!》

비칠거리며 일어난 월단이 그의 손에 있는 사발을 빼앗아들더니 별안간 쑥스러운 태도를 취하며 그의 앞으로 한발자국 다가선다.

《도련님, 꿀물이와요. 어서 드시오이다.》

박정승은 너무 기가 막혀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정상이 아니였다.

《도련님! 우리 아버지가 원래 미욱한데 도련님이 리해하세요.》

《얘, 월단아!》

박정승은 다시금 딸의 이름을 불렀다. 허나 딸은 종시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가 뒤로 물러설 때마다 한발자국씩 따라온다.

《도련님! 왜 자꾸 피하시나이까. 소녀가 싫소이까?》

월단은 그를 담동으로 알고 다가서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다. 아니, 실성했다. 박정승은 안해에게 소리쳤다.

《뭘 멍청히 보고만 있어? 빨리 애를 안에 데려다 눕히라구!》

안해가 시녀와 함께 월단을 붙들어 강제로 끌고 들어갔다. 허나 월단은 끌려가면서도 계속 그가 있는쪽을 향해 소리쳤다.

《도련님, 왜 소녀를 피하시나이까?》

아이쿠! 박정승은 머리를 감싸쥐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미친 꼴을 차마 눈뜨고 볼수 없었다. 한생 피비린 전장에서 단련되여온 무쇠심장이건만 눈물이 흘러나왔다. 숱한 죽음앞에서도, 강물처럼 흐르는 피를 보면서도 나약해지지 않던 무쇠심장이건만 자식앞에서는 그 무쇠심장도 떡반죽처럼 물러진다.

모든게 혼사를 고소한 미끼로 내건 문정승의 낚시를 덮어놓고 넙적 받아문 내 어리석음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통탄하였다. 모진 분노가 회오리바람처럼 온몸을 휘감으며 세차게 솟구쳤다.

문정승 이놈! 남의 눈에 눈물을 내면 제 눈에는 피가 흐르는 법이다!

그가 칼자루를 움켜쥐고 피의 맹세를 다지고있을 때 유주성의 파발이 도착하였다.

《대감님께 아뢰오! 대감님의 령대로 절충장군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궁성밖에 진을 쳤나이다.》

두 정승의 동태를 감시하라고 파견했던 홍무관도 헐레벌떡 달려왔다.

《대감님, 최정승은 어제 밤에 북서당패와 군사를 거느리고 벌써 해청도로 떠나갔나이다. 해청도로 대궐을 옮긴다면서 가는 길에 운봉산에 들려 새로 만든 룡상을 가지고 간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지금 궁성안에 남아있는 문정승은 솔개국황제한테서 옥새와 왕관을 받았다고 하면서 서남당패와 군사를 출동시켜가지고 대궐로 향하고있나이다.》

눈에서 불이 일며 피줄이 툭툭 뛰였다. 재빨리 생각을 굴리였다.

어느쪽을 먼저 칠것인가? 궁성에 있는 문정승은 아무때나 칠수 있으니 먼저 최정승의 뒤를 쫓는게 급선무였다. 리성은 최정승을 먼저 치라고 하였으나 감성은 문정승쪽을 택했다. 딸의 일로 해서인지 이시각 최정승보다 문정승이 더 미웠다. 그렇다, 문정승을 먼저 치고 그다음 말을 때려몰아 운봉산에서 최정승을 붙잡자.

그는 즉시 전달병을 불러 룡대가리장식을 한 단도를 주었다.

《이 단도를 훈련원도감과 군영장에게 보이면서 즉시 군사를 대궐대문앞으로 출동시키라고 해라.》

《알겠소이다.》

이어 유주성파발에게도 령을 내렸다.

《절충장군에게 궁궐대문앞에서 함성이 일어나면 지체말고 궁궐후문으로 진격하여 문정승의 배후를 기습하라고 일러라.》

《알겠소이다.》

전달병과 파발이 령을 받고 물러가자 홍무관에게로 돌아섰다.

《정황이 달라졌으니 어제 밤에 세웠던 계획을 바꿔야겠다. 문정승을 쳐서 대궐과 궁성을 장악하고 그다음 최정승의 뒤를 쫓아야 한다. 그러니 우린 정승부의 인원을 총동원해가지고 곧장 대궐로 진격하자!》

《알겠소이다.》

잠시후 박정승은 홍무관이 끌고온 말에 올랐다. 정승부의 파수병들과 문객들, 하인들이 무장을 갖추고 령을 기다렸다. 그는 말고삐를 힘차게 틀어잡으며 허리에 찬 칼집에서 일광검을 쭉 뽑아들었다.

《대궐로 진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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