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주체108(2019)년 8월 20일

평양시간


제 38 회


38


홍무관이 령을 받고 물러간 다음 박정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관복을 벗고 붉은 전복을 갈아입었다. 오래간만에 입어보는 전복이다. 몸이 나서 전복이 터질듯 팽팽하게 맞는다.

그동안 내가 편안하긴 편안했구나. 말안장을 내릴새없이 전장을 뛰여다닐 때는 허벅지가 소힘살처럼 탄탄하였으나 지금은 유들유들 군살이 졌고 칼자루를 놓을줄 몰라 장알이 박혔던 손바닥도 이제는 아녀자의 손처럼 부드럽고 매끈하다.

허나 전복을 입으니 옛시절의 용맹과 힘이 되살아나고 온몸에서 무인의 피가 왁왁 끓어올랐다.

그는 벽으로 다가가 칼집채로 걸려있는 일광검을 벗겨 허리에 찼다. 이어 칼자루를 쥐고 검을 쭉 뽑았다. 보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눈을 찌를듯 한 서슬푸른 흰빛을 뿌린다. 칼을 손에 쥐니 억척성벽에 몸을 기댄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는 칼날을 어루쓸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일광검아, 아무래도 네 신세를 좀 져야 할가부다.》

홍무관한테서 무관들이 모두 도착했다는 련락이 오자 그는 동남당의 집합장소로 쓰는 별당으로 갔다. 그가 별당안에 들어서자 무관들이 일제히 한쪽무릎을 꿇으며 군례를 올렸다.

《다들 일어서라!》

박정승은 믿음이 어린 눈길로 무관들을 둘러보았다. 모든 무관들이 전장에 출전하기라도 하는것처럼 한결같이 전복을 떨쳐입고 허리에 칼을 찼다.

《홍무관! 임명장을 가져오라.》

《예잇!》

홍무관이 임명장을 가져오자 그는 차례차례 이름을 부르며 무관들에게 고을원으로 임명하는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 시각부터 너희들은 내가 임명한 고을원들이다. 지체말고 각기 부임지로 떠나서 최정승의 북서당과 문정승의 서남당에 속한 고을원들을 모조리 잡아죽이고 세력을 넓히면서 다음령을 기다려라. 내가 원래부터 상벌이 명백하다는건 너희들도 잘 알고있을게다. 군령은 자비가 없다. 실수하는 놈은 목을 자르고 성공하는자에게는 후한 상을 내리겠다.》

《삼가 령을 받들겠소이다!》

무관들이 떠나가자 별당에는 홍무관과 훈련원도감, 동남당군영의 군영장만이 남았다. 박정승은 훈련원도감과 군영장을 가까이 불러놓고 허리춤에서 룡대가리장식을 한 단도를 꺼내보이였다.

《이 단도를 신호로 삼겠으니 머리속에 잘 새겨두거라. 내가 전달병을 시켜 이 단도를 보내면 너희들은 즉시 훈련원과 군영의 군사를 출동시켜 문정승과 최정승을 치도록 해라! 궁성안의 싸움은 내가 직접 지휘하겠다.》

《알겠소이다.》

훈련원도감과 군영장도 령을 받고 물러갔다.

홍무관이 근심스러운 목소리로 여쭈었다.

《대감님, 우리 군사만으로는 문정승과 최정승을 동시에 치기가 힘드오이다. 만약 두 정승이 합세하여 힘을 합치는 날에는…》

박정승은 손을 들어 홍무관의 말을 밀막아버렸다.

《내게 생각이 다 있다. 지금 백마국사신이 어데 있느냐?》

《대감님의 령대로 전번에 백마국군사가 무주성을 함락시켰을 때 인질로 잡아가두었소이다.》

《당장 가서 백마국사신을 데려오라.》

《설마…》

홍무관이 눈이 퀭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홍무관의 눈길에 쓰거운 웃음으로 대답했다.

《어떤 놈은 목숨까지 걸고 나라를 팔아먹는데 나라고 못하겠느냐. 문정승이 청한 솔개국의 원병을 막자고 해도 백마국의 힘을 빌려야 한다.》

홍무관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전번에 대감님이 백마국사신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시였고 또 인질로 가두게 한것도 대감님이시라는걸 사신이 다 아는데 일없겠소이까?》

《걱정말아라. 때에 따라서 벗이 원쑤가 되고 원쑤가 벗이 될수도 있는 법이니라.》

얼마후 박정승은 홍무관이 데리고온 백마국사신과 마주앉았다. 그동안 연금생활을 해서인지 사신의 물독같던 배가 퍼그나 훌쭉해지고 볼의 살이 축 꺼져 동그랗던 얼굴이 길씀해보인다.

《그동안 고생을 시켜서 미안하오.》

그가 주인답게 먼저 아량있는 태도를 보였으나 사신은 마뜩지 않은 눈길로 대답하였다.

《례의도 모르는 대감어른과는 마주서고싶지 않으니 빨리 나를 돌려보내시오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백마국군사가 당장 이 송도국의 궁성을 천군만마로 짓뭉갤것이나이다.》

사신은 연금생활을 하면서도 전장의 소식을 들었는지 배포유하게 나왔다.

돼먹지 않은 놈! 내가 물보가지같은 네놈한테 머리를 숙이고싶어서 숙이는줄 아느냐. 룡상만 아니면 너희 백마국놈들이 통채로 쳐들어온다 해도 눈섭 한오리 까딱 안할 이 박정승이다. 속에서 밸이 울컥했으나 큰일을 생각하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허나 입에서 나가는 말은 뜻대로 곱게 되지 않았다.

《사신은 뭔가 잘못 생각하는것 같소. 비록 백마국군사가 무주성을 함락시키고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긴 하였지만 지금 유주성에서 우리 송도국의 절충장군한테 단단히 혼쌀나고있소. 며칠전에도 백마국의 수만군사가 말가죽신세를 졌다는걸 모르는것 같구려.》

유목민족인 백마국은 송도국의 풍습과 달리 전장에서 죽은 병졸들의 시체를 말가죽에 싸서 묻는다. 그가 방금전에 한 말은 백마국의 이 풍습을 념두에 두고 한 말이였다. 사신의 얼굴색이 즉시 달라졌다.

《그게 사실이오이까?》

박정승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사신도 알다싶이 난 한번 한다고 하면 하는 성미요. 내가 있는한 송도국땅에 발을 들여놓은 백마국군사는 모조리 말가죽신세를 면치 못할거요.》

사신이 한결 풀이 죽은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왜 나를 만나자고 했소이까?》

그러면 그럴테지. 나한테는 그렇게 나와야 해! 박정승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흥정의 첫시작을 뗐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우리 송도국은 집안형편이 어수선해서 밖의 일까지 신경을 쓸 형편이 못되오. 그래서 백마국과 타협을 하자는거요. 사신도 백마국황제한테서 우리 송도국과 평화협상을 달성하라는 임무를 받고 왔는데 협상을 이루지 못하고 두 나라가 계속 싸우게 되면 돌아가서도 그 목을 보존치 못할게요.》

그가 론리있게 사리를 따지자 사신의 얼굴이 밝아졌다.

《대감님의 의향은 무엇이나이까?》

《지금 문정승이 룡상을 탐내며 솔개국에 원병을 청했소. 백마국이 처음 내걸었던 조건대로 군사를 돌려 솔개국의 원병을 막아주길 바라오.》

사신은 즉석에서 쾌히 대답했다.

《그건 념려하지 마시오이다. 우리 백마국황제께서는 처음부터 솔개국의 침략으로부터 송도국을 보호해주시겠다고 했나이다.》

《다른 조건도 또 있소. 지금 솔개국은 문정승의 서남당을 송도국의 주인으로 인정해주고있는데 백마국이 송도국의 왕권을 우리 동남당이 쥐도록 도와주고 정식으로 인정해달라는거요.》

두번째 조건을 듣는 사신의 두눈에 교활한 미소가 어리였다.

《물론 그 두번째 조건도 우리 백마국한테는 힘든 조건부가 아니오이다. 그런데 두가지 조건을 들어주면 우리 백마국한테도 차례지는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박정승은 즉석에서 대답했다.

《난 결코 의리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요. 내가 왕위에 오르기만하면 백마국황제에게 해마다 조공을 바치겠소.》

사신은 너무 좋아 입이 귀밑까지 쭉 찢어졌다.

《그렇다면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오이다. 박대감님의 의향을 즉시 황제페하에게 전하여드리겠나이다. 황제페하께서도 틀림없이 기뻐하실것이나이다. 그런데 우리 군사가 솔개국의 원병을 치자면 유주성을 지나야겠는데…》

사신이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박정승은 그 자리에서 즉시 홍무관에게 령을 내렸다.

《당장 절충장군에게 파발을 띄워라. 백마국군사가 통과하도록 유주성을 내주고 절충장군은 신속히 군사를 궁성으로 회군시키라는 령을 내려라.》

《알겠소이다.》

홍무관이 령을 받고 물러가자 사신은 백마국의 례법대로 오른손을 왼쪽가슴에 얹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였다.

《과시 대감어른은 결패가 있는 장수이시나이다.》

《난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요. 그럼 후날 궁궐에서 다시 만나게 되길 바라오.》

박정승은 위엄있게 가슴을 쭉 내밀며 백마국사신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3인1당 제41회 3인1당 제40회 3인1당 제39회 3인1당 제38회 3인1당 제37회 3인1당 제36회 3인1당 제35회 3인1당 제34회 3인1당 제33회 3인1당 제32회 3인1당 제31회 3인1당 제30회 3인1당 제29회 3인1당 제28회 3인1당 제27회 3인1당 제26회 3인1당 제25회 3인1당 제24회 3인1당 제23회 3인1당 제22회 3인1당 제21회 3인1당 제20회 3인1당 제19회 3인1당 제18회 3인1당 제17회 3인1당 제16회 3인1당 제15회 3인1당 제14회 3인1당 제13회 3인1당 제12회 3인1당 제11회 3인1당 제10회 3인1당 제9회 3인1당 제8회 3인1당 제7회 3인1당 제6회 3인1당 제5회 3인1당 제4회 3인1당 제3회 3인1당 제2회 3인1당 제1회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