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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4일

평양시간


제15회


제 2 장

기 발


5


서산으로 해가 기울어지고있었다. 언제가 앉을 지반을 앞에서 닦으며 나가던 돌격대원들이 한곳에 모여있었다.

흡수구를 물속에 틀어박은 양수기가 쉴새없이 돌아가며 가물막이우로 물줄기를 쏴넘겼다. 청석암반이 나타날 때까지 석회암층을 파제끼면서도 노래를 부르던 그들이였으나 웬일인지 손맥이 풀려있었다.

해군샤쯔허리에 두손을 짚고선 진철이가 공동안의 줄어드는 물을 쏘아보며 화가 독같이 올라있었다. 강바닥의 지질상태가 나빠 해를 넘기다가 착공한 공사였다. 그러다보니 강바닥에서 청석암반이 나올 때까지 언제를 앉힐 지반의 석회암을 모조리 까내면서 공사를 진척시켜야 했다.

그렇게 한치한치 먹어나가던 석회암층에 예상외로 큰 공동이 나타났다. 그전에 작은 공동들은 고강도세멘트를 쏴넣어 막아버리군 하였는데 이번에는 구멍이 너무 커서 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였다. 몇차례에 걸쳐 쏴넣었으나 그때마다 공동안에 밀어넣은 세멘트가 얼마 못 있어 토하듯이 왈칵 쏟아져나오군 하였다.

며칠동안 선행공정인 기초굴착이 걸려 멎어서자 중심강토작업이 추진되지 못했고 사석쌓기와 언제에 장석 입히는 돌격대원들도 사기가 저락되였다.

폭탄구뎅이같은 속에 층층 고였던 뿌연 세멘트물이 말끔히 잦아들면서 다시 포악한 짐승아가리같은 시커먼 공동이 나타났다.

이 순간을 기다리고있던 진철이 팔을 들었다 내리그으며 소리쳤다.

《시작!-》

만단의 대기상태에 있던 돌격대원들이 맞들이의 몰탈을 구멍에다 쏟아넣기 시작하였다. 굶주린 짐승의 아가리처럼 몰탈이 공동안으로 끝없이 쏟아져들어갔다. 기껏 처먹은 공동이 더이상 몰탈을 넘기지 못하자 돌격대원들은 시공참모와 나란히 서있는 진철의 기색을 살폈다.

《왜 중지했어? 계속 쏟아넣으라!》

다시 돌격대원들은 웅뎅이가 넘쳐날 때까지 계속 몰탈을 쏟아부었다.

《제깟놈이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몇톤을 토하지야 못하겠지, 넨장.》

진철은 시공참모와 함께 몰탈이 가득찬 구뎅이를 지켜보았다. 생각던 끝에 세멘트 몇톤의 무게로 내리눌러 막아버릴 결심을 했던것이다.

그들한테로 려준하가 다가왔다. 오후에 저수지공사장에 나타난 그는 공사장의 이곳저곳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보았으나 누구한테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며칠째 난관에 부딪쳐 애를 먹고있는 작업장에 와서도 묵묵히 구뎅이속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모두 려부위원장이 인사도 받는둥마는둥 하고 엄한 기색으로 서있자 더 긴장해져 공동구뎅이에서 눈들을 떼지 못했다.

키가 꺽두룩한 참모장이 시계를 보았다.

《종전보다 10분 더 지났소!》

그 소리에 돌격대원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이번에야 그놈이 목이 멘 모양인가?》

《제아무리 토하려고 애를 써도 몇톤의 중량이 내리누르는데 어쩔 재간이 있나.》

안도의 숨을 쉬며 저마끔 기쁨에 겨워 주고받는 말이다.

《나흘째나 애를 먹었는걸. 이젠 그만 작업을 시작합시다.》

작업복을 벗어제낀 어깨가 보짱같은 1중대장이 진철을 보며 재촉했다.

《좀 더 있어보자구.》

진철은 여전히 웅뎅이에 시선을 박은채 벋지르고 서있다. 그는 려준하의 눈치를 보며 왜 여기에 왔을가 하는 의혹을 풀수가 없었다. 여직껏 침묵을 지키고있던 려준하가 드디여 입을 열었다.

《참모장.》

《옛.》

《저 가물막이를 당장 터쳐놓으라구!》

《아니?》

참모장이 아연하여 말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하자 려준하는 그제야 자기가 온 목적을 밝혔다.

《내가 오늘부터 이 저수지공사를 담당하였으니 빨리 지시대로 하시오.》

《안됩니다.》 참모장은 열이 올라 반박했다.

《가물막이를 터치면 중심강토를 쳐야 할 청암반이 물에 잠기겠는데 절대로 안됩니다. 그리구 여기는 돌격대의 명령체계가 있습니다.》

진철을 비롯한 돌격대원들도 놀란 시선을 그 두사람에게 돌렸다.

《뭐라구?! 이 사람이?》

려준하는 억이 막힌듯 노기가 눈에서 번쩍이였다.

《1중대장-》 고함치듯 하는 소리에 앞가슴이 떡판같은 청년이 《옛-》하고 나섰다.

《동무도 못하겠는가?》

1중대장은 대번에 황급히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1중대는 날따라 앞으롯!》

가물막이를 터치자 진철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가 어쩌자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그렇다고 돌격대원들앞에 나서서 려부위원장과 언쟁을 할수도 없는 처지였다.

려준하는 돌격대원들에게 무슨 지시를 주고있었다. 그런데 공동에서 움씰움씰하던 세멘트가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것처럼 솟구치며 사방으로 뿌려쳤다. 일순간에 구뎅이주위에 둘러서있던 대원들이 세멘트벼락에 경악을 하였고 여기저기서 일하던 돌격대원들이 달려왔다.

공동에서 숨넘어가는 짐승이 마지막모지름을 쓰듯 아직도 세멘트물이 줄금줄금 솟구치고있었다.

터진 가물막이로부터 물이 소리치며 내려왔다. 돌격대원들은 눈앞의 참상에 너나없이 어찌할바를 몰라 갈팡질팡하였다. 하지만 려준하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두손을 허리에 짚고서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리쳤다.

《타입준비를 다그치오!》

세멘트지대를 멘 돌격대원들이 뛰기 시작했다.

《저 양수기는 어쩌랍니까?》

1중대장이 묻는 말에 려준하는 단마디로 대답했다.

《필요없어!》

암반작업장에서 뿌연 세멘트물이 밀려나자 려준하는 다시 지시를 떨구었다.

《몰탈을 공동에 넣으라.》

모두들 허리치는 물속에 들어가 그가 시키는대로 하였다. 이상하게 물속의 공동안으로 세멘트몰탈이 순순히 가라앉았다. 공동속의 세멘트는 시간이 지나도 그전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가물막이에 막혀 공동으로 쏠리던 물의 압력이 수평을 이루니 해소될수밖에 없었다. 간단한 원리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며칠동안 애를 먹이던 공동을 순식간에 막아버린 려준하를 바라보는 눈길도 순간에 달라졌다.

모두들 존경과 감탄어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래일 아침부터 물을 다시 뽑고 지반작업을 계속하시오. 그리고 중대장이상 성원들은 모두 나를 따라오시오.》

려준하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을 남기고 앞서 지휘부천막쪽으로 걸어갔다. 잠시후 지휘부에 진철과 참모장을 비롯한 중대장들까지 다 모였다.

판자로 대충 만든 앞책상에서 려준하는 엄한 표정으로 한사람한사람의 얼굴을 살펴보고나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공사장을 돌아보았는데 지금같이 일해서는 돌격대가 아니요. 공사속도를 배이상 올려야 하겠소. 작업총화시간은 아침 6시와 11시 30분, 오후 7시 그리고 지휘부성원들의 협의회는 새벽 1시요. 총화와 협의회는 내가 직접 하겠소. 그날 과업을 집행 못하는 사람은 그가 돌격대장이든 중대장이든 가차없다는것을 명심하오, 참모장.》

려준하의 한마디한마디에 점점 더 긴장되는 분위기속에서 진철의 곁에 앉았던 참모장이 큰 키를 벌떡 솟구며 일어섰다.

차렷자세를 취한 참모장을 려준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쏘아보았다.

《동문 어디서 그따위 본때를 배웠소?》

《전 부위원장동지의 의도를 알수 없었기때문에… 대장동무도 어떻게 하라는 지시도 없고해서…》

떡메같은 려준하의 주먹이 책상을 탕- 치는 바람에 말은 꺾이였다.

《이번은 처음이니 용서하지만 다시 반복되는 경우 철직이야! 알겠소? 여기 모인 여러 동무들도 같소. 의견이 있으면 말하오.》

숨소리마저 죽은 지휘부안은 랭기가 풍기는듯 하였다. 앞줄에 지휘부성원들과 함께 앉아있는 진철은 웬일인지 수심이 드리운 얼굴을 수그리고있었다.

좌중을 둘러보던 려준하의 시선이 진철에게서 멎었다.

《없다면…》하고 그는 일어났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대장동문 지휘부와 각 중대들에서 공사속도를 높이기 위한 대책을 세우시오!》

지휘부천막에서 나온 려준하는 공사장언덕길을 내려가다가 강가로 나갔다. 세멘트물이 잔뜩 게발린 바지가랭이와 팔소매를 손수건으로 대충 닦았다. 그대로는 인민위원회에 들어갈수가 없었던것이다. 얼마후 위원회청사앞 포장길을 따라 그는 큰 체격에 비해 빠른 걸음으로 급히 올라갔다.

저수지의 공동때문에 식료공장 굴뚝을 옮기기 위한 토론시간을 그만 잊은것이다.

작업이 위험을 동반할수 있는 조건에서 벌써 세번째로 미루는 협의회였다.

3층 위원장실의 대기실문을 성급히 열고 들어서던 그는 그 자리에 멈춰서고말았다. 새빨간 체육복차림인 혜옥이가 밥보자기를 안고 쏘파에 옹송그린채 잠든것이였다. 그냥 들어가려던 려준하는 어린것의 곁으로 다가갔다.

《혜옥아, 혜옥아.》

려준하는 뼈가 여린 어린것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회의가 끝났나요?》

쏘파의 팔걸이에서 얼굴을 들며 혜옥은 손등으로 눈부터 비볐다. 려준하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순간에 별처럼 반짝이였다.

《조용…》

려준하는 두번째손가락을 입가에 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그런데 내 친구가 멋있는 체육복을 입었구나! 어머니가 사주었니?》

려준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대신 혜옥의 입이 한쪽으로 삐뚤서해졌다. 그리고 얼굴에 어딘가 서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깡충이〉별명을 떼주려고 작은 할머니가 사준거예요.》

《깡충이?》

이때 잘 가려들리지 않으나 사무실안에서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토론이 심각해지는 모양이였다.

《밥보자기를 인내라.》

려준하는 더이상 혜옥이와 지체할수 없었다.

《내가 어머니한테 드릴거예요.》

《회의가 늦어 끝나. 어서 어둡기 전에 집으로 가거라.》

혜옥은 마지못해하며 밥보자기를 내밀었다. 그가 위원장실 문을 여니 자오록한 담배연기속으로 앞탁둘레에 한숙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이 놀라왔다.

위원장이 담배연기를 개의치 않을 정도라면 먼저번에 자기가 부결놓아 수정했을 도면에 또 부족점이 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이제야 왔구만요. 결정권을 가진 려부위원장이 어서 와보세요. 여기 모인 사람들의 견해는 일치되였어요.》

한숙의 말에 려준하는 모두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후 작업공정을 그린 도면을 보기 시작하였다.

종전과 별로 달라진것이 없는듯 한데 몇곳을 수정했다. 그가 도면을 세심히 보고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죽이고 그를 주시하였다.

공학에서 려준하가 박식하다고 하지만 특히 력학분야에서는 그를 따를만 한 기술자가 없었다. 굴뚝을 옮기는 작업도 철저히 력학적계산에 의거해서야 가능하였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경우에 만회할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수 있다. 그래서 2중, 3중 토론을 하고 검토를 하는것이였다.

드디여 려준하가 도면에서 눈을 뗐다. 그의 이마에 질펀히 땀기가 내뱄다. 그는 도면을 본것이라기보다 위험한 작업공정을 직접 수행하고난 사람 같았다.

《어떻습니까?》

장철영이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곧 려준하에게 집중되였다.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한두군데 보충하면 되겠습니다.》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첫째로, 벋침줄을 두메터정도 우로 더 올려야겠습니다. 작업도중에 예상치 않은 정황이 조성되여 굴뚝이 넘어간다고 가상해봅시다. 그때 지금처럼 벋침줄을 설치해서는 기울어지는 굴뚝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려준하는 작업도면에서 손가락으로 두곳을 더 가리켰다.

《굴뚝의 중량에 비해 안전비률이 너무 작습니다.》

《그럼 좀 높이면 되겠어요?》

한숙이 초조해서 다그쳐물었다.

《예, 그것만 수정하면 승인하겠습니다.》

그제야 려준하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래일 저녁에 수정한 도면을 가져오겠습니다.》

장철영이 자신만만해서 펼쳐진 도면을 말아쥐였다.

한숙이 한시름을 놓은듯 밝은 표정으로 제자리에 가앉자 다른 사람들도 좌석을 정돈해앉았다.

좌중을 둘러보던 위원장의 시선이 듬직한 상체를 등받이의자에 기댄 영예군인일용품공장 지배인한테서 멎었다.

《식료공장에서 개건의 첫시작을 굴뚝 옮기는 일부터 한다면 영예군인공장에서는 무엇부터 할 계획인가요?》

《우린 빈 탄창들에다 장탄부터 하겠습니다.》

《영예군인지배인이라 군사술어를 쓰니 풀어 설명해야겠군요. 그러니 형타들부터 장만하겠다는 말이지요?》

《옳습니다. 그래야 사출기들에서 각종 수지제품들이 쏟아져나올게 아닙니까. 주변 군들까지도 다 우리 공장의 원료기지인셈이니 걱정할게 없습니다.》

《남의 군까지 침범한다고 신소받지 않겠어요? 우린 영예군인공장에 기대가 큰데요.》

한숙이 책상우에 겹쌓인 문건들을 옮겨놓으며 롱말처럼 하였으나 그 말은 진심이였다.

전쟁시기 6명의 영예군인들로 발족된 공장이 지금은 네개 주변군의 학생들에게까지 삼각자로부터 학생용 가방에 이르는 각종 학용품들을 공급해주는 공장으로 확장된것이다.

지배인이 장탄이라고 표현한 사출기의 각종 형타들이 마련되면 각양각색의 가정용 비닐제품들이 만들어질것이다.

저수지가 완공되면 음료수와 관개용수에 필요한 수도관과 관개용 관들도 다 거기서 뽑아야 한다.

《념려마십시오. 위원장동지가 걱정하고있는것들은 모두 해결됩니다. 그런데…》

지배인은 주머니에서 가스라이타를 꺼내여 흔들며 골살을 찌프렸다.

《우리 공장에서 먹지 못하는 파수지가 딱 이놈이 하나인데 머리털 빠지게 만든단 말입니다. 버리는 이런것을 다 모아 제품을 만들면 단단하고 색갈도 곱겠다 그야말로 리상적이지만 죽어라고 안된단 말입니다. 어쨌든 식료에서 개건의 신호탄을 쏘십시오. 우리 영예군인공장은 자력갱생의 정신을 발휘하여 이런것들도 척척 먹어치우는 자동만능사출기를 꼭 만들어서 기술개건의 승리를 장식하는 축포를 쏘겠습니다.》

영예군인일용품공장 지배인의 말에 모두들 기분이 떴다.

《그 축포를 꼭 우리가 보길 바래요.》

한숙이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우리 영예군인들의 결사관철정신을 위원장동지두 잘 아시면서… 참 유감스럽습니다.》

지배인은 짐짓 기분이 상한듯 육중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가도 되겠지요.》

그는 두말없이 사무실에서 나갔다. 그바람에 남은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떴다.

위원장실에 한숙과 려준하만 남았다. 려준하는 저수지공사장 실태를 간단히 보고하고나서 밥보자기를 앞탁에 놓았다.

《혜옥이가 이걸 안은채 대기실에서 자고있더군요. 더 기다리겠다는걸…》

그때 반쯤 열려진 사무실문을 갸웃이 들여다보는 혜옥의 생글거리는 얼굴이 나타났다.

《나 여기 있어요.》

혜옥은 달려와 한숙의 품에 안겨들었다.

《아니? 너 아직 안 가고있었니?!》

려준하가 큰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다우쳐물었다.

《밖에서 기다렸어요.》

한숙은 딸의 두손을 잡은채 체육복을 아래우로 훑어보았다.

《이 옷은 어디서 난거냐?》

《작은 할머니가 사주었어요.》

혜옥은 외삼촌댁을 그렇게 불렀다. 그의 대답이 어딘가 시쁘게 들렸다.

《참, 곱구나! 작은 할머니가 공부랑 잘하라고 사줬겠는데 학교가서 잘해야 한다, 알겠니?》

한숙은 자기를 나무리면서도 변함이 없는 외삼촌내외의 진정이 고마왔다.

《공부 잘하라고 사준게 아니예요.》

《그럼?》

그가 지켜보았으나 혜옥은 대답할 기색이 아니였다.

려준하는 불쑥 아까 혜옥이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 〈깡충이〉가 어쨌다구?》

그 말에 혜옥은 어머니 몰래 입가에 손가락을 곧추 세워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능청스럽게 《〈깡충이〉가 깡충깡충 뛰여갔지요 뭐.》하고 려준하의 말을 받았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한숙이 점점 이상한 소리를 하는 딸을 다시 쳐다보자 려준하는 호탕한 웃음으로 넘겨버렸다.

얼핏 시계를 보고난 한숙은 딸에게 체육복은 체육시간에 입어야 한다는것, 오늘 밤은 어머니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니 할머니와 함께 자라고 이른 후 려준하한테로 얼굴을 돌렸다.

《오늘 군당에서 회의가 있었어요. 우리가 제기한 군기술개건을 결정한 후 책임비서동지가 군수산기지도 추켜세워야 한다면서 저랑 같이 현지에 나가보자고 하셨어요.》

《아니? 이밤에 말이요?》

《책임비서동지야 저보다 더 바쁘지요. 부위원장동문 벌써 저수지공사장을 료해하고 걸린 문제를 풀었는데 저도 뛰여야지요. 어서 집에 가 쉬세요. 그럼 혜옥이, 아저씨하고 같이 집에 가거라.》

언제나 시간을 쪼개가는 한숙은 어머니를 오래 기다린 어린 딸하고도 즐길 여가가 없었다. 그 심정을 혜옥은 아직 리해할수 없었다.

어머니에게서 등을 밀리운 혜옥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려준하를 따라 타박타박 걸었다. 그와 같이 가면서 려준하는 그에게 체육복보다 더 좋은것을 주겠다는 담보를 하고도 모자라 절대비밀로 하겠다는 《친구간의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깡충이》내막을 알게 되였다.

정작 입이 열리자 혜옥은 진짜 어머니가 맞는가를 알아보려고 원정립할아버지를 찾아갔던 사연까지 다 말해버렸다.

혜옥을 집에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는 려준하는 자연히 생각이 깊어졌다. 그는 수삼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찬 길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비록 어린것의 말이지만 충격이 컸던것이다. 려준하가 왜 그런 말을 어머니한테 하지 않는가고 했더니 혜옥이 울먹이며 하던 말이 다시 들려오는듯 하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울어요. 오빠가 군대나간 후에 고기가 좀 생겨도 오빠생각을 해요. 오빠는 돼지고기를 무척 좋아했는데 집에 있을 때 한번도 실컷 먹이지 못했거던요.》

간절한 어린것의 목소리가 그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듯 하였다.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괴롭히지 않으려는 어린것의 기특한 마음이며 또 자기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어머니로서 자식에게 줘야 할 사랑마저 사업에 깡그리 바쳐가는 한숙의 세계를 다 리해하기 어려운 려준하였다.

이밤도 한숙은 떨어지기 싫어하는 딸을 두고 군 한끝에 있는 수산기지로 가고있을것이다.

혜옥이에게 무엇인가 주고싶던 그는 생각끝에 다음날 저녁에 아들들이 애용하던 장 두개를 실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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