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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4일

평양시간


제11회


제 2 장

기 발


1


고요한 저녁이였다.

은희는 아들을 앉혀놓고 책을 읽었다.

룡일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가끔 여겨보다가 조용히 타이르기도 하고 교과서를 놓고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어머니와 아들이 철칙으로 지키는 하루일과였다.

룡일은 총명하여 한학년우의 교과서를 공부하지만 은희는 저녁일과를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았다. 만약 자기가 어딜 가게 되면 남편이 그를 대신하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부부가 다 공장에 나가게 되는 저녁이면 반드시 아들에게 과제를 주고 수행정형을 엄격히 검열하였다.

이처럼 아들의 학습에 정력을 기울이는데는 남다른 까닭이 있었다.

그는 책에서 눈길을 들어 어두운 창밖으로 돌리며 아들 몰래 가늘게 숨을 내쉬였다.

은희는 산골인 수동에서 자랐다. 지금도 그때 장공장에 다니던 아버지가 옛말처럼 들려주군 하던 말을 잊지 않고있다.

《우리 조상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장을 만들어 먹었단다. 콩을 삶아서 메주덩이를 빚어 장을 만들었지. 이처럼 수천년을 대대로 내려오면서 이어진 고유한 우리 장은 고기에 없는 유효성분들이 많아서 건강에 아주 좋은 장수식품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말이 단 집에 가지 말고 장이 단 집에 가라고 했고 장맛이 단 집에 복이 많다고 장을 늘 생활과 결부시켜 말했단다. 그것은 조선사람들이 장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가를 의미하는거란다. 》

수동이 산골이지만 아버지가 장반장을 하는 수동지구 장이 그때 도에까지 소문이 났었다.

아버지는 딸이 중학교를 졸업하자 경공업대학에 갈것을 권고했다. 어려서부터 장에 대한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은희는 자기를 여러 대학들중에서 굳이 경공업대학에 보내려는 아버지의 심중을 리해하고 그대로 따랐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에서 식료품공장에 들리시면 먼저 친히 인민들이 먹는 장맛부터 보시는 가슴뜨거운 장면을 대학시절에 텔레비죤을 통해 접하게 될적마다 은희의 결심은 굳어졌다. 지난날 우리 녀인들이 장을 맛있게 담그어 한 집안을 소문내고 복을 가져왔다면 자기는 세상에 소문내고 인민들이 복을 많이 받게 하는 녀성과학자가 되리라고 마음다졌다.

그가 한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같은 분야에서 택한것도 바로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들부부는 과학연구기관이 아니라 공장에 뿌리를 박았어도 그 포부만은 변함이 없었다.

생활이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그런 남다른 꿈이 있었기에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이 매일 공장에 출근하였다. 그 과정에 남편은 장작업반의 반장이 되였고 은희는 실험실의 실장이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벌써 오래전에 인민들에게 더 맛있는 장을 먹이시려고 장원료로는 꼭 콩을 쓰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런데 지배인은 계획수행에만 급급하면서 장의 질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실험기구들을 원만히 갖추지 못한 실험조건에서 생산품의 질을 높인다는것은 말이 안되였다. 돈을 절약하여 실험기구들을 하나하나 장만한다는것도 힘에 부쳐 끝내 포기하고말았다.

그런데 개건한 도기초식품공장의 기술을 일반화하기 위한 강습이 조직되였다. 새 기술을 받아들이자니 실험실뿐만아니라 생산설비도 불비하여 번번이 맛없는 장이 나올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지배인은 기술준비상태를 무시하며 그들부부한테 화를 내다못해 마지막에는 이렇게 내쏘았다.

《동무네 같은 기술자가 백이 있은들 뭘해? 당에서 대학공부까지 시켜주었으면 그 값이라도 할 생각을 해야지 량심이 없어, 량심이 없단 말이야! 대학공부가 아깝지…》

그 말은 한마디로 그들부부같은 기술자는 공장에 필요없다는 소리였다.

대학시절부터 남다른 꿈을 안고 그 실현을 위해 고충이 많던 은희는 지배인이 그렇게 나오자 몹시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앞선 기술을 도입해보려고 무진애를 썼으나 지배인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편을 발전소건설장에 내보내고나서 무조건 원래대로 하라고 했다. 실험실에서 실험하는것조차 엄금하였다. 생산만 절대시하는 지배인의 처사에 은희는 더이상 견딜수 없었다.

사실 수십년동안 황곡균 하나를 써오다가 새 세기에 들어와 새로운 두가지 식료균을 도입한것은 기초식품공업에서 일대 변혁이였으며 미생물연구에서 대단한 발전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식으로 하라는것은 과학성과를 외면하고 낡은 기술을 답습하라는것인데 은희의 량심은 그것을 허락치 않았다. 자기들부부의 자존심과 인격이 무시당하는것은 참을수 있었다. 하지만 지배인이 과학발전을 막아나서는데 대해서는 그냥 보고있을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배인과 맞서 실험실이나 생산설비를 구비해주면 새로운 공법대로 기초식품을 생산하겠다고 목청을 돋군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였다. 생각던 끝에 그는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수 있는 곳으로 떠나갈 결심을 하였다.

발전소건설장에서 남편이 돌아오자 은희는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듣기만 하던 조군룡은 그의 말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은희는 남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선뜻 동의하리라고 믿었던 남편이 자기들의 인생길이 결정되는 처지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앉아만 있으니 이것 또한 답답하기가 그지없었다. 물론 남편의 과묵한 성미를 알고있으나 할말이야 해야 할게 아닌가!

《왜 대답이 없어요?》

은희는 안타깝다못해 조군룡의 무릎을 쥐여흔들며 부르짖었다.

《이것저것 생각할게 없어요. 여길 떠나자요!》

조군룡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는 못해!》

그 대답에 은희는 바짝 약이 올랐다.

《왜 못한다는거예요?》

《글쎄-》

《아이참, 글쎄라니요?》 은희는 기가 막혔다.

《무슨 사내대장부의 대답이 그래요? 실험실뿐아니라 생산설비 하나 요구하는대로 해주지 않는 지배인이 잘못은 우리한테 다 밀고 당신까지 공사장에 내보내는데 밸도 안나요? 게다가 도기초식품처럼 해보려고 애쓰는 실험마저 중지시키는 판에 이 공장에서 도대체 우리가 할일이 뭔가 말이예요.》

은희는 한무릎 다가앉았다. 애가 타는 그의 얼굴이 희다못해 불빛에 파릿하게 보였다.

《당신도 좀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소에 가지 않고 이 공장에 온 목적이 뭐였어요? 당의 요구대로 현실속에서 우리의 꿈을 실현시켜 인민들에게 기쁨을 주자는것이였지요. 그래서 〈고난의 행군〉시기 때식을 건네면 건넸지 공장에 나가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처지가 어떻게 되였나 말이예요. 전 종전대로 뒤떨어진 기초식품을 만들라면 창피스러워 얼굴을 못 쳐들고 다닐것 같애요. 명색이 기술자라는 우리가 무슨 체면으로 사람들을 대하겠나 말예요. 그렇찮아요? 왜 대답이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거요?》 조군룡이 감때사나운 눈길을 치켜들었다.

《당신의 심정이 리해되오. 나도 마음이 편안한게 아니요. 하지만 명심해 듣소. 한번 심어놓은 나무는 그대로 두어야지 옮기면 죽소! 알겠소?》

《우리가 뭐 나무인가요?》

은희는 남편의 말을 톡 쏘았다.

《사람도 나무와 같단 말이요.》

《당신 결심이 정 그렇다면》자제력을 잃은 은희는 발딱 일어나 웃옷을 걸쳤다. 기대가 무너진 허무감과 원망이 맺힌 눈물이 량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 혼자라도 나가겠어요. 오라는데는 많으니까요. 과학을 무시하는 곳에서 산다는것은 죽은 목숨이나 같단 말이예요!》

《그건 당신의 자유요. 하지만 내앞에서 다시는 공장을 모독하지 마오.》

《그렇게 공장에 애착이 있고 나한테 자유를 주는 당신이 과학을 모독하는 지배인의 독단엔 어째서 순종하는지 리해가 잘 안되는군요.》

은희는 손에 걸린 팔소매가 겨우 벗어지자 웃옷 단추도 채우지 않은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는 발길이 가는대로 방향없이 걸었다. 처녀시절부터 간직했던 푸른꿈도 깨여지고 남편과의 애정마저 산산이 부서지는듯 하여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졌다. 마음같아서는 다 그만두고 역으로 나가 신의주행 렬차를 타고 어머니가 계시는 집으로 가고싶었다. 그러자니 아들 룡일의 모습이 발목을 잡았다. 이렇게도저렇게도 할수 없는 처지에 이른 은희는 이밤처럼 자신과 남편을 원망해본적이 없었다.

밤이 퍼그나 깊어서 집으로 되돌아온 은희는 남편이 있는 웃방으로 올라가지 않고 아들을 껴안고 아래방에서 잤다. 어쩔수 없어 다시 집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저수지공사장에 나가는 날까지 남편과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저수지로 올라가서도 울적한 마음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돌격대생활이 힘은 들어도 공허하고 허전한 심정을 어느 정도 메꿔주었다. 그런데 인민위원장의 지시라고 해서 할수없이 저수지에서 내려온 그날 은희는 실험실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실험대에 차려놓은 그전에 볼수 없었던 각종 실험기구들이 해빛에 반짝이며 주인을 기다리고있었던것이였다.

《이게 어찌된 일이예요?!》

장철영의 이야기를 듣는 은희의 눈길이 점점 숙어졌다. 그날 밤 그는 조군룡한테서 되게 책망을 들었다. 참으로 한숙위원장을 다시 볼 면목이 없었다.

위원장이 200여리길을 수차에 오가며 실험기구들을 구하느라 고생하는 때에 자기는 공장에서 나갈 생각을 하고있지 않았는가. 모질게 먹었던 그 마음을 한숙위원장이 다 알고있은듯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저수지에서 데려오라고 지배인한테까지 말했을리 만무였다.

《어떻게 했으면 좋담.》

이제 한숙위원장과 대면할 일이 제일 걱정이였다.

《계십니까?》

밖에서 찾는 소리에 은희는 소스라쳐 놀라며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음성으로 보아 분명 한숙위원장이였다. 범 제 소리하면 온다는 속담 그른데 없었다.

벌써 그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것이였다.

은희는 걷어올린 한쪽 팔소매를 서둘러 내리우며 못할짓을 하다 발각된 사람처럼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난 왜 이 집에 못 올 사람인가?》

《아니… 저…》

은희가 마치 자기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찾아온것만 같아 주춤거리는 사이에 한숙은 벌써 방으로 들어왔다.

공부하던 룡일이 일어나며 인사를 하는데 은희는 난색을 지으며 그앞에 방석을 내놓았다.

《집안을 거두지 않아서…》

급히 방바닥에 널려있는 룡일의 책들이며 가방을 주섬주섬 책상곁에 모아놓았다.

《집안이 아늑하고 정서적인게 역시 지식인가정이 다르구만.》

한숙은 벽에 걸려있는 풍경화며 꽃장식을 한 장식장 등 아기자기하게 꾸려진 방안을 한번 휘둘러보고나서 룡일을 책상앞에 앉힌 후 자기도 그옆에 다가앉았다.

《반장동문 아직 안 왔어요?》

《녜.》

은희는 이 저녁에 인민위원장이 꼭 자기를 질책하려고 찾아온것만 같았다.

그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앉아있는데 한숙은 룡일이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큰엄마가 지능문제를 하나 낼가?》하는것이였다.

룡일이가 긴장해지며 학습장을 펼치는 모양을 보던 은희는 아들에게 귀띔했다.

《구룡중학교 단위원장 혜옥이 어머니시다.》

학교는 다르지만 룡일이도 단위원장이여서 혜옥이를 잘아는 사이므로 한숙을 어려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야, 그렇습니까?》

주눅이 풀린 룡일의 얼굴에 밝은 생기가 피여났다.

《그럼 말할가? 잘 들어야 해.》

한숙은 눈에 웃음을 담으며 문제를 제시했다.

《캄캄한 밤에 비가 온다. 그걸 그려봐라.》

원주필 웃끝을 입에 대고 뗐다 붙였다 하며 생각을 굴리던 룡일이가 두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달도 없나요?》

《없다.》

《별은요?》

《비오는 밤에 달과 별이 있는걸 봤니?》

《정말…》

룡일은 실언을 한 자기를 깨달은듯 멋적게 씩 웃으며 튀여나온 뒤통수를 긁적이였다.

은희도 비오는 밤의 장면을 어떻게 그림으로 그려야 할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원주필을 쥔 아들의 손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두눈을 깜박이며 빈 학습장을 한동안 들여다보던 룡일이 드디여 자세를 바로잡았다.

은희는 은근히 가슴을 조이며 아들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 원주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자기가 아들에게 기울여온 심혈의 결과가 나타날것이다.

룡일은 자신있게 학습장우에 사선으로 두 선을 쭉쭉 그은 후 그사이에 점들을 내리찍어놓았다. 그리고나서 한숙에게 설명을 했다.

《이 두 선은 승용차의 전조등빛이고 이 점들은 떨어지는 비발입니다. 》

신통했다.

은희가 먼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숙도 대견한듯 룡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용쿠나! 넌 이담에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겠다!》

그 말에 아들보다 은희가 더 감격을 금치 못해하였다.

《위원장동지, 고맙습니다. 저한테는 실험기구들을 구해다 주시구… 면목이 없습니다.》

은희는 눈물이 글썽해서 가슴에 두손을 모아쥔채 송구해하였다.

위원장이 비록 아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자기를 믿어주고 힘을 주는 고무로 들렸기때문이였다.

인기척소리와 함께 조군룡이 들어왔다. 그뒤에 장철영이 따라섰다. 둘다 다부진 체격에 키도 엇비슷했다. 장철영이 사색적이면서도 쾌활한 성격이라면 조군룡은 듬직하고 말이 적었다.

개성은 서로 판이했으나 탐구심이 강하고 사업의욕이 높은 공통성으로 해서인지 그들은 서로 잘 어울리였다.

《아! 위원장동지가 저희들의 심정을 알아주시는구만요.》

장철영이 한숙을 보자 반가와하며 두미없는 말을 했다.

《그건 무슨 소리예요?》

《공장개건문제를 좀 의논하자고 오는 길인데 위원장동지까지 와계시니 손발이 맞는단 말입니다.》

《나역시 그 문제때문에 왔는데 장동무까지 오니 그야말로 쟁북이 맞는군요!》

한숙 역시 기분이 좋아 맞장구를 쳤다.

위원장이 자기때문에 오지 않았나 하여 불안하던 은희는 안도의 미소를 입가에 띠였다.

조군룡은 대화에 끼우지 않고 시무룩이 웃을뿐이였다.

그들은 룡일의 학습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한쪽벽에 걸려있는 전국과학기술전시회에서 받은 메달들이 첫눈에 띄였다. 한숙은 메달들을 잠간 보다가 말없이 앉았다.

조군룡이 담배를 피우지 않으나 손님용인 두툼하고 각이 진 유리재털이를 장철영의 앞에 놓아주었다.

《공장개건에 대한 동무들의 생각을 먼저 들어보자요.》

원정립이 대신 지배인사업을 인계받은지 얼마 안된 장철영은 요즘 공장개건을 놓고 밤잠을 다 잊다싶이 했다.

《우리 둘이서 의논해봤는데 한가지 문제는 합의점에 도달했습니다.》

장철영은 피우려던 담배를 도로 재털이우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

《굴뚝을 옮기는것과 함께 널려있는 발효탕크, 증유가마, 랭각탕크들을 한작업장에 집결시키고 퇴수로 버리던 랭각탕크의 더운물로 공장의 난방과 목욕탕을 운영하자는것입니다. 그렇게 설비배치를 하고 굴뚝제진장치에서 나오는 재탄까지 태우면 석탄이 절반이상은 절약될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페열과 랭각탕크의 퇴수를 합리적으로 리용하면 대단한 예비를 얻을수 있겠군요. 참으로 훌륭한 착상이예요. 설비개조에서도 손로동을 없애고 콤퓨터를 도입할수 있게 구상해보세요.》

《도자동화연구소와 련계를 가지고》 조군룡이 그제서야 한숙의 말을 받았다.

《가열설비들에 수감장치를 설치하면 콤퓨터가 자동적으로 조종할수 있게 될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공장건물이 2층밖에 안되니 수직회전하는 증자로(분쇄된 콩을 찌는 가마)설치가 제일 난문제입니다.》

증자로의 능력에 따라 제품생산량이 결정되는것만큼 생산을 높이려면 증자로를 불가피하게 개조해야 한다. 결국은 생산건물을 3~4층으로 높여야 한다는 소린데 현조건에서 건물을 털고 새로 짓는다는것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질문제는》 조군룡이 아래방을 눈짓하며 말하였다.

《저 사람이 돌격대에 나가 정신이 좀 들었는지 무슨 실마리를 찾은것 같습니다.》

그가 웃으며 하는 소리에 한숙은 아래방에 있는 은희를 올라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은희는 오히려 난색을 지었다.

《저야 뭘, 공장에 손해만 주었는데-》

《별소릴, 새것을 도입하거나 창조하자면 실패도 있는 법이지. 성공은 실패의 토양속에서 굳세게 자란다는 말이 있지 않아요.》

은희는 한숙이 너그럽게 대하자 할수없이 그들한테로 올라오며 조군룡을 깔끔한 눈매로 할끔 쳐다보는것이였다.

《다른게 아니고 룡일이 아버진》하고 그는 장철영의 곁에 가앉았다.

《제가 어제 발효단계에서 효모균과 젖산균을 그대로 넣지 말고 종전에 쓰던 황곡균처럼 곡자를 만들어넣지 못할가 하고 한마디 비쳐본걸 가지고 그럽니다.》

《그래서?!》 한숙은 그 착상에 흥미가 있어 다음말을 재촉하였다.

은희는 뭐가 주저되는지 인츰 말할 차비가 아니였다. 이윽해서 은희가 입을 열었다.

《제 보기엔 우리 공장설비가 도기초식품의 새 기술을 받아물기 어려울것 같습니다. 그래서 황곡균처럼 새로 도입하는 젖산균과 효모균도 다 같이 곡자를 만들어 발효탕크에 넣으면 작업도 쉽고 발효기일도 단축할것 같아서 해본 소리입니다.》

《내 보긴 말로 끝낼 문제가 아닌것 같군요. 더 심화시켜보는게 좋겠어요. 그리구 장이 맛이 있어야 간장맛도 좋아지겠지요?》

《그렇습니다.》

은희 대신 조군룡이 대답했다.

《장을 우려낸 물이 곧 간장이니까요.》

《그러니 결정적으로 장의 질을 높여야겠어요.》

한숙은 잠시 생각하다가 장철영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조동무와 은희동무를 전국의 장공장들과 기초식품공장들을 돌아보게 하자요. 그러면 설비개조나 제품의 질문제에서 도움을 받을것이 있을거예요.》

《그게 좋겠습니다. 백번 듣는것이 한번 보는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장철영이 벌써부터 마음이 둥 떠 사기가 나하자 은희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식료공장에서 올려보낸 개건안에 불합격딱지를 붙여서 내려보냈는데 그새 많이 생각했어요.》

한숙은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듯 하여 군적인 개건에 필요한 설비, 자재, 자금원천문제도 론의에 올려보았다.

그들이 자기네 공장창고에 사장되여있는 설비, 자재가 적지 않다는 말에서 한숙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만약 군내의 모든 공장, 기업소들의 창고를 들춰낸다면 수다한 유휴자재나 설비들이 나올수 있지 않겠는가!

얼마후 은희의 집을 나선 한숙은 그길로 영예군인공장 책임기사의 집을 찾았다.

책임기사는 각종 수지유휴자재로 새 제품을 만들수 있는 만능사출기에 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그도 개건에 필요한 설비, 자재, 자금확보를 위해 군내 공장, 기업소들의 실태료해를 적극 지지하였다.

소리없이 밤은 깊어갔고 쌀쌀한 밤대기가 온몸에 스며들었으나 웬일인지 가슴속은 후더워났다.

한숙의 머리속에서 래일 전개할 사업들이 무르익어가고있었다.

다음날 인민위원회 부장들을 중심으로 하여 일군들과 기술자들이 망라된 실태료해조가 군내의 각 공장, 기업소들에 내려갔다.

저녁무렵에 위원장의 사무탁에 벌써 실태료해자료묶음이 놓여있었다.

한숙은 마주앉은 려준하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저도 보았는데 이 자료들을 한번 보세요.》

무심히 받아들고 한장한장 번지던 려준하의 기색이 점차 놀라움으로 변했다.

《이렇게 많은 설비와 자재, 예비들이 사장되여있었단 말입니까?!》

보면서도 잘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인민위원회 일군들이 나가서 장악한거예요. 설비와 자재가 이 정도 확보되였으니 개건에 필요한 자금은 우선 지금 가지고있는것으로 내밀어보자요. 정 필요한것은 다른 곳에서 구해올수도 있지 않아요. 인차 개건과 관련한 협의회를 가지는게 어때요?》

《그렇게 합시다.》

려준하는 쾌히 대답을 하고나서 무슨 생각에서인지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실태조사는 위원장동무가 발기한겁니까?》

《아니예요. 기술자들이 제기한거예요.》

한숙은 널린 서류들을 모아 한곳에 겹쳐놓았다. 그리고 시계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그만하고 퇴근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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