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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2일

평양시간


제3회


제 1 장

돌 아 오 다


3


《어머니―》

포도넝쿨밑에서 풀을 뽑고있던 혜옥이가 대문안에 들어서는 한숙을 보자 한달음에 달려와 목을 끌어안았다.

반년이나 어린 가슴에 쌓인 그리움과 상봉의 이름할수 없는 기쁨은 그의 량볼에서 굴러내리는 구슬알같은 눈물방울로 나타났다.

어머니의 얼굴에다 젖은 뺨을 마구 비벼대는 딸을 어루쓰다듬는 한숙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동안 앓지 않았니? 공부도 잘하고 할머니, 아버지말씀을 잘 들었겠지?》

덮어놓고 고개를 끄덕이는 혜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숙은 객지에서 때없이 떠오르던 딸의 얼굴을 가슴속에 새겨넣으려는듯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새 컸구나!》

《나 어머니 보고싶었어요.》

《나두 네가 보고싶었다.》

《그런데 왜 이제야 오나요?》

《그렇게 됐구나!》

눈물과 떨리는 목소리로 서로의 그리움이 오가는 그들의 모습에 려준하의 마음도 저릿해졌다.

《아낙네가 이게 어디 할일이요? 쯧쯧…》

곁에서 지켜보던 한숙의 어머니가 민망한듯 혀를 차며 치마자락을 주름진 눈가로 올려갔다.

로동자의 딸이 한개 군의 인민위원장이여서 남다른 자랑을 안고 년로한 몸에 집안의 마른일, 궂은일 가리지 않다가도 이런 눈물겨운 정상앞에서는 참지 못하고 원망의 소리를 하는것이였다.

《애애비는 네가 온다고 하자 점심을 같이 먹겠다고 그냥 기다리다 좀전에 나갔다.》

《제가 그만 늦었어요.》

《시계야 차구 댕기겠지―》

오래간만에 만나는 딸이 얼마나 반가우랴만 기다리기에 지쳐버린 늙은이는 노여움이 앞섰다.

《어머니가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어요.》

외지에 나가면 제일 걱정스러운것이 남들처럼 건강치 못한 남편이였으나 어머니앞에서 내색하지 않는 한숙이였다.

덕성이 차에서 짐들을 내리웠다.

《이놈들은 어쩌겠습니까?》

그는 새끼돼지가 든 마대자루를 헤쳐놓았다.

자루속에서 나온 새끼돼지들은 네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꿀꿀거렸다. 반지르르한 흰털들사이로 살찐 잔등이 불그스름하게 들여다보였다.

《야, 깜찍하다. 우리 돼진 점백인데 요것들은 백둥이구나!》

혜옥이 새끼돼지들의 잔등을 쓸어주며 너무 좋아 어쩔줄을 몰랐다.

《어머니― 돼지우리가 비였지요?》

한숙의 물음에 어머니는 어정쩡한 표정이다.

《키우던 돼지는 두달전에 원호물자로 보내구 새끼돼지 한마리를 새로 넣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어데 가져갈게냐?》

《집에서 키우자고 가져왔어요.》

한숙의 대답에 모두들 놀라며 서로 쳐다보았다.

이 집 형편으로 돼지 세마리를 자래운다는것은 당치 않은 일이였다.

《야, 좋다. 이거 우리거나요?》

《넌 가만있어, 뭘 안다구…》

할머니는 좋아하는 손녀를 밀막아버렸다.

《아니, 한마리두 힘에 부치는데 세마리를?… 어림도 없다. 내가 젊었을 때처럼 오륙이 성하다면 모르겠다.》

늙은이는 동의를 구하듯 려준하와 덕성을 번갈아 쳐다보며 반백이 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머닌 제가 위원장사업을 하려니까 이런다는걸 잘 알면서도 그러시네. 너무 걱정마세요. 이 돼지들은 과학적으로 키워야 하기때문에 제가 힘껏 돕겠어요.》

《내 손은 바라지도 말아.》

늙은이는 집안으로 들어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뜨물 먹고 사는 짐승한테 무슨 과학이란게 필요하누. 지금껏 그런 소린 못 들어봤다.》

한숙은 늙은이를 타내는 기색이 없이 웃으며 덕성에게 집의 돼지와 새로 가져온것들이 따로 있게 칸을 막아달라고 하였다.

《혜옥이 아버지가 오시면 아무래도 우리를 고쳐야겠으니까 판자나 대강 대줘요.》

덕성이가 돼지우리에서 뚝딱거리는 사이에 한숙은 가져온 자루에서 가루 같은것을 꺼내 물에다 걸쭉하게 타가지고 새끼돼지들에게 주었다.

두놈이 이마빡을 마주대고 짭짭거리며 먹어대는 모양을 혜옥은 신기하게 들여다보았다.

려준하는 새끼돼지에 온 정신이 팔려있는 혜옥의 모습이 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잠시후 늙은이와 한숙의 권고에 못이겨 려준하는 위원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점심상을 차리는 동안 그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새끼돼지를 놓고 언제 의견상이가 있었던가싶게 부엌에서 모녀간에 다정히 주고받는 말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왔다.

《아유― 무슨 밥을 그렇게 많이…》

《그 체통에― 더 담아라.》

분명 자기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려준하는 혼자 웃으며 정돈된 방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방들은 여러칸이였으나 특별하게 눈에 띄우는것이 없었다. 위원장의 집치고 너무나 검소하였다.

늙은이가 찬이 변변치 못하다고 구구하게 변명한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려준하는 한숙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사업상 손님들도 오는 경우가 있겠는데 군위원장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집살림에 좀 관심을 돌려야 할것 같습니다.》

그는 좀처럼 흥분하지 않으나 생각되는것이 있으면 속에 묻어두지 못하는 성미였다. 수저를 들며 려준하는 제 심정을 터놓고말았다.

《이걸 들어보세요. 북쪽에 사는 동생네 집에 가 계시더니 어머니가 거기서 배워온거랍니다.》

한숙은 딴소리를 하였다.

《이거 갓김치가 아니요?》

려준하는 한숙의 말에 어느새 끌려들어가고말았다.

《그래요. 땅속에 묻었던걸 제가 온다고 헤쳤다는군요.》

《이런걸 지금 먹어보기 힘든데.》

려준하는 빨갛게 양념을 한,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갓김치에 저가락을 가져갔다.

《이거 별맛이군요.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겠는걸…》

식성이 좋은 그는 밥우에다 갓김치를 듬뿍 놓아가며 맛나게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한숙이 조용히 말을 뗐다.

《우리 집에 와본 동무들이 려동무와 같은 충고를 더러 하지요. 사실 내가 결심하면 집 하나 꾸리는거야 간단하지요. 하지만 난 평범하게 살고싶어요. 내가 제집이나 꾸리는데서 기쁨을 찾는다면 우리 군이 뭐가 되겠어요? 책임비서동지댁에 가봤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집이나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언제나 마당에 두엄더미만 가득하고. 군당청사뒤 퇴적장에도 부서별로 쌓아놓은 두엄무지가 산을 이루지요. 그런 책임비서를 볼 때면 나자신을 돌이켜보군 하지요.》

려준하는 눈을 내리떴다. 한숙이 례사롭게 하는 말이 무심히 스쳐버려서는 안될 그 무엇을 시사하는듯 하였다.

그는 주견이 강했지만 자기 주장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것을 느꼈다.

《어머님이 완강히 반대하시는 돼지를 집에서 기를 작정입니까?》

《어머닌 제가 고생할가봐 그러시는데 이제 리해할거예요.》

한숙은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하게 접은 종이를 꺼내주었다.

돼지 키로당 먹이분석표였다.

대충 스쳐보던 려준하의 큰눈에 의혹과 놀라움이 실리더니 한곳에 머물러 움직일줄을 몰랐다.

10키로 새끼돼지가 100키로까지 자라는 기간이 도제 석달 걸렸다. 그 기간에 먹는 먹이량은 극히 적은 반면에 증체률은 지금 키우는 돼지보다 훨씬 높았다.

먹이에 들어가는 《첨가제》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야말로 리상적이라고 할수 있는 사육방법인데 믿기가 어려웠다.

《먹이도 하루에 세번밖에 안 준다지, 가루를 그대로 물에 풀어먹인다니 여하튼 믿어지지 않는군요.》

《그래서 제가 직접 키워보자는거예요.》

한숙이 먼곳에서 돼지를 고생스레 가져온 의도가 리해되였으나 이 집에서 단번에 세마리씩이나 키운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그럼 이미 있는 돼지를 치우는게 어떻습니까?》

한숙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대비해가며 키워보겠어요. 원래놈은 종전대로 먹이를 주고 후놈들은 새 방법대로 키운다면 그 차이를 매일 볼수 있을거예요.》

세마리를 먹이자면 힘이 들겠는데 그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것이였다.

려준하는 자기 주견을 더이상 세울수 없어 도울 방도를 모색하다가 한마디 물었다.

《도대체 그 먹이는 어디서 구했습니까?》

《평양에서 오륙십리가량 떨어진 주변구역에 콩크리트침목공장이 있어요. 그 공장에서 돼지를 잘 키워 정상적으로 로동자들에게 공급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보았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150평 되나마나한 축사안에 우리를 2층으로 만들고 돼지를 100마리나마 키우더군요. 그 공장지배인이 얼마나 친절하던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가공한 먹이까지 한자루 주더군요.》

《아니, 그럼 그 공장지배인이 연구한거란 말입니까?》

《그런건 아니예요. 로동자들의 후방사업을 개선하려고 축산을 잘한다고 소문난 곳은 목장이건 축산반이건 지어 개인집까지 수십곳을 찾아다녔다는군요. 그러는 과정에 어느 군부대후방목장의 경험을 도입하여 축사는 자체실정에 맞게 건설했다는거예요. 지배인이 고생은 많이 했으나 그 덕을 지금 로동자들이 톡톡히 보고있더군요. 영양제식당에서 로동자들과 함께 한끼식사를 했는데 돼지고기국이 얼마나 푸짐하던지 잘 먹었어요. 거기서 제가 충격을 받은것이 기본은 우리 일군들이 어떻게 뛰는가에 모든것이 달려있다는거예요.》

이렇게 말하는 한숙의 눈에 동경의 빛이 짙게 어렸다.

어머니가 다반에 물그릇을 담아가지고 들어왔다.

《점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려준하가 물그릇을 상머리에 놓으며 하는 인사말에 늙은이는 어설핀 웃음을 지었다.

《위원장의 집이라는게 이렇수다.》

《별말씀을… 갓김치를 참 오래간만에 먹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늙은이의 속도 좀 내려가우다.》

어머니가 밥상을 치우자 한숙은 재털이를 내놓았다.

려준하는 담배를 꺼내 피워물었다.

《하루 담배를 몇대나 피우세요?》

《비싼 담배를 피우니 놀라운 모양이지요?》

《아니… 글쎄요.》

한숙은 애매하게 대답하였다. 최근 일부 남자들속에서 어떤 담배를 피우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 이상한 풍이 돌고있었다.

군인민위원회 일군들중에도 간혹 평시에는 일반담배를 피우다가 도에 올라가거나 아래단위에 내려갈 때면 반드시 고급담배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었다.

려준하는 다 피운 재털이를 옆으로 밀어놓았다.

《많이 피우지 않습니다. 담배가 떨어지면 차라리 그만두지 다른 담배는 안 피웁니다.》

한숙은 그 대답에서 려준하가 자기 인격을 얼마나 중시하며 또 자존심이 강한가를 느꼈다.

《오후에는 다른 공장들을 돌아봅시다.》

《그렇게 합시다.》

마루쪽 방문이 살그머니 열리였다. 먹음직스러운 청포도송이들이 담긴 접시를 든 혜옥이가 방글방글 웃으며 나타났다.

《이건 제가 우리 집에 첨 오신 부위원장아저씨한테 드리는거예요.》

포도송이에서 달콤한 향기가 풍기였다.

《허― 이거 대단한걸―》

혜옥이로 하여 기분이 즐거워진 그는 어린것을 끌어다 곁에 앉히였다.

《이제부터 혜옥이와 친한 동무가 되려는데 반대 없겠지?》

혜옥은 캐드득하고 웃기부터 했다. 어머니의 눈을 닮아 영채도는 눈부터 생글거리는 모양이 참으로 귀여웠다.

《어른하고 아이도 동무가 될수 있나요?》

《그럼―》

려준하는 짐짓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아저씨, 자요―》

혜옥은 방글거리며 주먹쥔 작은 손에서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을 펴 그앞에 내밀었다.

려준하는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굵직한 새끼손가락을 펴들었다. 그리고 변치 말기를 약속한다는 의미로 마주건 손가락을 흔들었다.

려준하는 어린애들과도 잘 어울릴줄 알았다.

한숙은 그들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두 일군은 얼마후 기분들이 개운해져서 일어났다.

승용차는 이미 대문밖에서 대기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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