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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3일

평양시간


제 34 회


34


민천산은 별당에 갇힌 어제 오전부터 이 시각까지 밥은커녕 물 한모금조차 얻어먹지 못했다. 위가 쓰려나다못해 배가죽이 등에 가서 찰싹 달라붙은건 둘째치고 찌물쿠는 복골이라 목이 타는듯 한 갈증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가 살아있는지 궁금해서라도 별당안을 들여다보겠건만 기웃거리는 기척조차 없다. 끼때마다 진수성찬을 차려오던 하녀들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박정승이 아예 나를 굶겨죽일 잡도리를 하는구나. 아이쿠, 내가 머저리지, 머저리야.

그는 뼈저리게 후회하며 자신에게 온갖 욕을 다 퍼부었다.

박정승이 주겠다던 원님벼슬에 만족했으면 이 모양, 이 꼴이 안되였을것이다. 아마 지금쯤은 임명장을 받아쥐고 부임지로 떠났을는지도 모른다. 모든게 다 그 얄미운 최정승때문이다. 그놈이 판서벼슬을 준다고 유혹만 하지 않았어도 일이 이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것이다.

생각할수록 최정승의 족제비상판을 손톱으로 갈기갈기 할퀴고싶다. 그놈한테 턱없이 곤장을 맞은것만도 분한데 이번에는 아예 자기를 죽을 고비에 떠밀어넣었다. 그 심보사나운 놈의 말을 곧이 들은 내가 머저리지. 곤장을 안긴 놈한테서 벼슬을 바랐으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박복한 놈 무데기복이 태우면 복에 치여 죽는다더니 꼭 지금의 자기를 두고 한 말 같다. 비록 며칠동안이긴 하지만 그는 난생처음으로 호의호식을 해보았다. 베잠뱅이도 없어서 헐헐하던 몸에 비단옷을 걸치고 하루세끼 풀죽만 들어가던 배에 기름진 음식이 들어갔으며 일생을 바쳐서도 얻지 못한 벼슬이 말 한마디로 차례질번 하였다.

그렇다. 그것으로 만족했어야 하였다. 허나 말타면 견마잡히고싶다고 박복한 인생에 차례진 원님벼슬을 과남하게 생각지 않고 분수에 없는 판서벼슬을 넘보니 운명의 신이 벌컥 화를 내였다.

그는 자기 몸을 뱀처럼 칭칭 감은 오라를 서글픈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박정승은 그를 별당안에 가두고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오라를 지우고 소리를 치지 못하게 헝겊으로 자갈까지 물려놓았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꼭 묶이여 내처 말뚝처럼 있자니 온몸이 쑤셔난다. 그러나 그건 참을수 있다. 참기 어려운것은 자갈을 물려놓아서 숨이 막히는것이다. 막 미칠것만 같다.

말 한마디를 잘못 했다고 해서 나많은 사람을 이렇게 박대하다니. 례의도 모르고 인정도 없는 저런 놈이 정승노릇을 하니 나라꼴이 이 모양일수밖에 없다. 최정승도 그래, 박정승도 그래 정승이란 놈들은 하나같이 악착한 놈들이다. 그런 악한들한테 기대를 걸었던 내가 머저리다.

돌이켜볼수록 이번 궁성행은 하지 말았어야 할 걸음이였다. 량반유생들한테 당한 수모를 참지 못해 고향땅을 떠난것이 잘못이였다. 아니, 잘못은 그때부터 시작이 아니다. 무법천지인 이놈의 세상에서 알량한 벼슬을 바란것 자체부터가 잘못이였다.

그는 지금껏 30여년세월 부지런히 과거시험을 쳤지만 왜 벼슬 한자리 얻지 못했는지 이번에 똑똑히 알게 되였다. 룡상을 놓고 다투는 세 정승의 꼴이 보여주는것처럼 지금의 세월에서는 벼슬을 하자면 사기와 협잡, 처세술에 뛰여나야만 한다. 일국의 정승이라는자들이 이 모양이니 그밑의 관료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망한 놈의 세상이야!

그렇다. 망한 세상이다. 백마국이 지경안에 쳐들어왔는데 정승이라는자들이 외적을 물리칠 생각은 하지 않고 룡상에 눈이 벌개 당파싸움만 일삼으니 나라의 운명이 어찌 될것이라는건 불보듯 명백하였다. 틀림없이 얼마 못 가서 송도국이 송두리채 망할것이다.

백마국의 군사가 궁성에 들이닥쳐 죽이고 불사르고 빼앗는 광경을 그려보느라니 기가 막혔다. 그때면 내 일생의 꿈인 벼슬을 줄 나라도 없어질것이 아닌가. 아, 송도국도 불쌍하고 이 민천산이도 불쌍쿠나!

그가 후회와 자책, 서글픔속에 통탄하고있는데 별안간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도사님이 어딜 갔노?》

목소리를 들으니 박정승의 아버지 박첨량이다. 반가와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으나 헝겊을 물린 입이라 짐승의 울음소리같은 괴이한 소리가 나간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난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었는가.…》

박첨량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는 귀가 어두운 박첨량이 들을수 있게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자기가 듣기에도 헝겊짬으로 새여나가는 소리가 처음보다 큰것 같았다. 몸부림을 치며 계속 애타게 소리를 질렀다.

저 령감이 내가 지르는 고함소리를 듣지 못하고 돌아가면 끝장이다. 령감님, 제발 귀를 좀 강구어주사이다.

그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박첨량이 마침내 그의 고함소리를 알아들었다.

《에쿠! 분명 안에 사람이 있군. 그런데 왜 문에다 빗장을 질렀노?》

빗장을 여는지 문쪽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 문이 삐거덕 열리더니 박첨량이 고개를 기웃하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너무 기쁘고 반가와 눈물이 콱 솟구쳤다.

《로인장, 나웨다. 좀 살려주사이다.》

그는 박첨량이 자기를 알아볼수 있게 하느라고 결박당한 몸을 벌레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꿈지럭대며 소리쳤다. 허나 이번에도 입에서 새여나가는 소리는 괴상한 신음소리뿐이다.

드디여 박첨량이 그를 알아보고 황황히 달려왔다.

《아니, 도사님, 이게 어찌된 일이시우?》

민천산은 자라처럼 목을 쭉 빼들고 머리를 흔들어대며 헝겊을 뽑아달라고 안타깝게 시늉했다. 박첨량이 그의 시늉을 알아차리고 입에 한가득 물었던 헝겊을 쑥 뽑아주었다. 순간 후- 하고 막혔던 숨길이 활짝 열리며 해청도 산골의 청신한 아침공기를 마실 때처럼 금시 가슴이 시원해진다.

《도사님, 대체 무슨 일이시우?》

박첨량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다시 물었다. 의아해하는 눈빛을 보니 이 령감은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하긴 박정승이 의가 나쁜 아비한테 자기 신상의 이야기를 일일이 알려줄리 만무하다.

민천산은 재빨리 생각을 굴리였다. 사람은 죽으라는 법이 없구나. 분명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여 이 령감을 구원의 바줄로 내려보내주시였다. 그러니 이 마지막바줄을 놓쳐선 안된다.

그는 걱정어린 눈길로 문어구를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사연은 천천히 말할테니 먼저 이걸 좀 풀어주시우다.》

《알겠수다.》

홍무관이 얼마나 꽁꽁 동여매놓았는지 결박을 푸느라 박첨량은 낑낑거리며 한참이나 신고하였다. 그동안 민천산은 박첨량에게 할말을 생각하였다.

바줄을 푼 박첨량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씻으며 물었다.

《헌데 대체 무슨 일이시우?》

민천산은 박첨량의 동정을 자아내려고 감정까지 잡아가며 자못 서글픈 어조로 대답했다.

《글쎄 세상에 이런 고약한짓이 어데 있겠소이까? 최정승이 도술을 배워달라고 하길래 속세의 사람들은 도술을 배우면 안된다고 했더니 부하놈들을 보내여 이런짓을 했소이다.》

박첨량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힌지 혀를 쯧쯧 찼다.

《그놈은 원체 그렇게 못된 놈이웨다. 글 한자를 배워줘도 일생 스승으로 모신다고 했는데 도술을 배우겠다는 놈이 도사님을 이렇게 대하다니. 내 우리 아들놈도 욕질은 하지만 그놈은 우리 아들놈 보다 더한 놈이우다.》

자기가 당한 일처럼 거품을 물고 최정승을 욕질하던 박첨량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문득 말을 멈추고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도사님, 이건 내 옷인데요?》

민천산은 그제서야 자기가 입고있는 옷에 눈길을 돌렸다. 도사노릇을 할 때 입으라고 박정승이 어제 아침에 안사인을 시켜 보내온 옷이다.

《이게 로인장의 옷이웨까. 난 박대감이 입으라고 해서 입었소이다.》

《후레자식같은 놈! 옷이 없어서 도사님한테 이런 옷을 입혔노. 도사님, 사실 이 옷은 내가 조상들을 만나러갈 때 입자고 장만해놓은 수의이나이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이들이 기여다니기라도 한것처럼 여기저기가 서물서물하다. 퉤! 그러니 이 옷에 죽을 귀신이 붙어있었구나.

민천산은 서둘러 베도포를 벗어던지고 방에 벗어놓았던 자기의 옷을 찾아입었다.

박첨량이 그가 옷을 다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도사님, 내가 오늘 이렇게 찾아온건 전번에 한 약속대로 내 묘자리를 좀 봐달라고 해서우다.》

민천산은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빠져나가겠는가 하고 골머리를 앓던차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로인장과 한 그 약속을 잊지 않고있었나이다. 그럼 내 이제 당장 가보겠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어서 같이 가시오이다.》

박첨량은 그의 속내도 모르고 제 먼저 앞장선다.

이거 난사인걸. 비칠거리며 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이 령감을 달고가면 담밖을 나서보지도 못하고 다시 붙들리고말텐데. 그는 서둘러 박첨량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나 혼자 갔다오겠으니 로인장은 여기서 날 기다리시우다.》

그의 말에 박첨량은 눈이 퀭해서 바라보았다.

《내가 고른 장소를 도사님은 모르시겠는데…》

《백년동안 도를 닦은 내가 로인장이 어디에 묘자리를 골랐는가 하는걸 모르겠소이까. 내 제꺽 가서 보고 그 자리가 합당치 않으면 더 좋은 자리를 고르겠으니 그다음에 함께 가서 보시오이다.》

《도사님, 이거 정말 고맙소이다. 나때문에 괜한 수고를 하시니…》

《별말씀을 하시오이다. 도술을 쓰는 나한테는 산발을 타는게 식은죽 먹기니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오이다. 그럼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길 떠나지 말고 편히 앉아서 꼭 기다리시오이다.》

민천산은 박첨량에게 별당을 떠나지 말라고 재삼 당부한 다음 밖으로 나와 문에 조심히 빗장을 질렀다. 령감님, 미안하우다. 하지만 내가 그집 아들한테서 받은 대접에 비하면 신선놀음이니 날 원망하지 마시우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발자국소리까지 죽여가며 도적고양이걸음으로 후원을 지나 뒤담장에 이르렀다. 앞문에도 뒤문에도 파수군들이 있으니 도망치자면 담을 넘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정작 담을 마주하니 두길이나 되는 높이여서 그의 재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이쿠! 이거 야단났구나. 속이 상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선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데 저만치에서 부스럭소리가 났다.

날 잡으러 오는 놈들이구나. 이젠 꼼짝 못하고 영낙없이 죽었구나. 등골에 식은땀이 쭉 내돋았다.

허나 소리나는쪽으로 눈길을 주던 그는 너무 기뻐 막 환성을 지를번 하였다. 커다란 누렁개 한마리가 두귀를 쫑깃거리며 긴장해서 그를 지켜보고 그옆 담장밑에 도랑과 이어진 개구멍이 휑하니 뚫러져있다. 방금전에 난 소리는 누렁개가 개구멍을 지나며 낸 소리였다.

개를 쫓아버리고 서둘러 개구멍앞으로 다가갔다. 개처럼 네발걸음을 하면 얼마든지 몸이 빠져나갈것 같았다. 그는 옷이 더러워지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엉금엉금 배밀이로 개구멍을 지났다.

살았구나, 살았어!

그는 개구멍을 빠져나오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싶었다. 산천도망은 해도 팔자도망은 못한다더니 옛말 그른데 없다. 어떻게 해서든 벼슬자리를 따보려고 했으나 팔자에 없는 벼슬이라 팔자도망을 못했다. 허나 쉽게 죽을 팔자는 아니여서 지금 이렇게 산천도망은 한다.

살았다고 생각하니 몇끼씩이나 굶은 몸이라 배가 고팠다. 박정승네 집에서 먹던 진수성찬이 눈에 삼삼하였으나 인차 고개를 저었다.

민천산 이놈! 네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무당의 서방처럼 공것만 바라다가 염라대왕한테 머리를 잘라 바칠번 했는데도 또 공것을 생각하느냐! 그렇다. 공짜란 금시는 입에 달지만 후날에는 몸을 망치게 하는 독약이다. 돈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는걸 누가 원하지 않으련만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는것이 아니여서 애초에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어펑녀가 토장을 넣고 끓여주던 시래기국이 생각났다. 김이 문문 나는 국사발을 그려보느라니 코가 벌름거리고 막 구수한 냄새가 안겨드는것만 같다.

그래, 남의것만 못해도 그저 제것이 제일이다. 어펑녀야, 네가 끓여주는 시래기국이 천하제일미다. 내 그 시래기국을 먹으러 인춤가마.

민천산은 자기가 침을 뱉고 떠났던 정다운 고향 해청도를 향해 힘있게 발을 내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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