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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4일

평양시간


제 31 회


31


박정승은 이른아침부터 부하들과 종들을 들볶아댔다. 소원성취를 하는 오늘의 경사에 부정이 탈세라 하인들과 하녀들을 총동원하여 대사가 거행될 후원의 정각은 물론 집안팎 여기저기를 말끔히 쓸어내게 하였다. 부엌에서는 숱한 반빗아치들이 오늘 쓸 음식들을 만드느라 바삐 돌아쳤다. 박정승은 부하들이나 우두머리하인을 시켜도 될 일들이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모든 일을 자기가 직접 총찰하였다.

그는 어제 밤 잠을 거의나 자지 못하였다. 잠자리에 눕기는 하였으나 래일이면 룡상에 앉는다는 가슴설레는 흥분으로 하여 종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아침일찍 일어나 팔소매를 부르걷고 나섰다. 허나 피곤한줄 몰랐다. 어제와 같은 환희의 밤이라면 열밤, 백밤을 새워도 힘들것 같지 않다.

마당 한복판에 서서 자기의 령을 받고 바삐 돌아치는 종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후원별당에 민천산을 만나러갔던 안사인이 돌아왔다.

《그래 그 옷이 맞더냐?》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나이다.》

안사인의 얼굴에 활짝 핀 웃음이 그의 얼굴에 그대로 옮겨앉았다. 그는 안사인을 시켜 아버지 박첨량이 수의로 장만해놓고 있는 베도포를 몰래 훔쳐내여 민천산한테 입히게 하였다. 옷이 날개라고 진짜 도사노릇을 하자면 도사냄새가 나는 옷을 입혀야 하였다.

민천산에게 베도포까지 입혔으니 이제는 오늘의 대사준비가 나무랄데없이 되였다고 할수 있다. 미타한 점이 있다면 최정승과 문정승이 민천산을 진짜운봉도사로 믿겠는가 하는것이다. 그것때문에 어제 밤에도 안사인과 신중히 토의를 했다. 안사인은 두 정승이 의심을 하면 민천산이 성을 내며 입바람을 불게 하고 그때 몰래 숨어있던 사람이 바줄로 매놓은 나무가지를 흔들어 나무잎이 우수수 떨어지게 하자고 하였다. 기발한 수여서 어제 밤에는 쌍수를 들었으나 아침이면 현명한 생각이 떠오른다고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니 어딘가 모르게 어설핀감이 없지 않았다.

박정승은 안사인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였다. 안사인이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그의 입가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이들장난같은 그 방법 하나만으로는 최정승이나 문정승이 그놈을 진짜도사라고 잘 믿을것 같지 않은데 무슨 수를 더 생각해내야겠다.》

안사인이 히죽이 웃으며 이마우의 사마귀를 슬슬 문질렀다.

《소인도 이자 오면서 그 생각을 했소이다. 거짓말을 하려면 엄청난 거짓말을 해야 사람들이 믿는다고 눈속임을 쓸바에는 한번 기막히게 써보자는 생각이나이다.》

호기심이 동해 귀가 버룩해서 다우쳐물었다.

《그래 무슨 수를 생각해냈느냐?》

안사인은 그에게 정승부뒤문과 마주하고있는 뒤산을 가리켜보였다.

《미리 사람을 보내여 저 산꼭대기에 염초를 비롯해서 불이 잘 당기는 물건들을 한가득 쌓아놓았다가 도사령감이 기합을 쓰는 흉내를 내면 불을 확 지피자는것이나이다. 아무리 교활한 최정승이라 하여도 도술로 불을 일으키는 그 신통함에는 속아넘어가지 않고 못 견딜것이나이다.》

《하하하…》

박정승은 너무 신통해서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속이 후련하게 너털웃음을 쳤다. 확실히 안사인은 머리가 비상히 뛰여난 놈이다. 늘 머리자랑을 하는 최정승도 안사인한테는 상대가 안될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주 좋은 수다. 그런데 준비를 한곳에만 하지 말고 만약을 생각해서 여러곳에 만들어놓았다가 이쪽에서 신호를 하면 제꺽제꺽 불을 지피게 해라.》

《알겠소이다.》

안사인은 령을 받고 즉시 물러갔다.

얼마후 대문가에서 문지기들의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최대감님 행차요-》

《문대감님 행차요-》

박정승은 성수가 나서 중문까지 나가 두 정승을 마중하였다. 그런데 문정승은 관복차림이였으나 최정승은 때아닌 상복차림이였다. 최정승의 속심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우정 중떠보았다.

《최공은 어째서 상복을 입고 오셨수?》

최정승은 자못 서글픈 어조로 대답했다.

《오늘 도사님이 국왕을 점지해준다고 하니 별로 상감마마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서 아침일찍 상복을 입고 왕릉에 갔다오는 길이나이다.》

박정승은 겉으로 귀담아듣는척 하였지만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다. 생쥐같은 놈! 운봉도사가 진짜인가 해서 잘 보이려고 이런 오그랑수를 쓴다는걸 내 모르는줄 아느냐. 하지만 오늘은 네놈이 그어떤 지랄을 한다 해도 전혀 소용이 없을게다. 그는 짐짓 최정승을 올리추었다.

《확실히 최공은 충의가 남다른 사람이요. 문공, 그렇지 않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왁새처럼 목을 빼들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던 문정승은 자기를 껴드는 그의 말을 얼결에 듣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대답했다.

《옳소이다. 최대감의 충의에 대해서야 모르는 사람이 있소이까.》

최정승은 그의 말에 숨어있는 비양조를 느꼈는지 한쪽입귀를 실룩거리다가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박대감, 근래에 고뿔을 앓아 전장에도 출전을 못하시는데 지금은 몸이 어떠하시오?》

불의의 역습이라 박정승은 서둘러 얼굴색을 달리하였다.

《좀벌레가 퇴기둥을 쓰러뜨린다고 별치 않게 여긴 고뿔이 사람을 망치려드는구려. 아직 완전히 낫지는 못했지만 인차 나을거요.》

그러자 최정승이 기다렸다는듯 말했다.

《박대감의 칼부림으로도 그 고뿔을 못 뗀다니 리해가 안되오이다.》

《?!》

《박대감의 칼부림으로야 못하는 일이 있소이까. 미련한 송아지 백정을 몰라본다고 그 고뿔이 박대감을 무서워 안하는 모양이오이다.》

그제서야 최정승이 무슨 말을 하자는것인지 깨도가 되며 순간적으로 밸이 울컥하였지만 애써 태연하게 웃었다. 오늘같은 경사스러운 날에 그런 하찮은 일로 기분을 깨고싶지 않았다.

《최공은 별 롱담을 다 하는구려. 자, 그럼 다같이 도사님이 계시는 후원으로 갑시다.》

후원에 오니 도사역을 맡은 민천산이 못 한가운데 있는 정자안에 거룩하게 앉아있었다. 며칠동안 잘 먹여서인지 얼굴에 홍조가 어리고 베도포까지 척 걸치고있는 근엄한 모습은 여불없는 도사다.

정자에 이르자 박정승은 두 정승에게 도사를 소개하였다.

《돌아가신 상감마마의 유언대로 이 나라의 국운을 바로잡아주시려고 운봉산성지에서 내리신 도사님이시오.》

최정승과 문정승은 무릎을 꿇으며 정중히 절을 하였다.

《도사님께 문안드리나이다.》

민천산이 거룩하게 앉아 일어나라고 손짓을 하자 두 정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정승은 민천산이 처음부터 도사역을 원만하게 하는 바람에 마음이 흡족하였다. 그는 도사에게 두 정승을 소개하는척 하였다.

《여기 이 대감은 최대감이고 이 대감은 문대감…》

민천산이 손짓으로 그의 말을 막았다.

《운봉산에서 백년동안 도를 닦은 내가 아무렴 앞에 서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것도 모르겠느냐.》

《예, 예. 도사님의 말씀이 옳소이다.》

박정승은 부러 쩔쩔매는체 하며 허리를 굽석거렸다. 그런데 민천산이 불쑥 오른손을 높이 쳐들며 입바람을 후- 내불었다. 이것은 안사인과 약속한 나무잎을 떨굴 때 하기로 한 동작이였다.

박정승은 억이 막혀 입을 딱 벌렸다. 망할놈의 두상, 시킬 때 하라고 했는데 벌써부터 하면 어쩌자는거야? 약속된 동작이라 못가에 서있는 백양나무가 태풍이 지나가는것처럼 와슬렁거리고 나무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문정승이 깜짝 놀라며 백양나무쪽을 바라보았다.

《박대감, 바람 한점 없는데 저 나무가 왜 저러나이까?》

때이른감이 있지만 이미 시작한 춤이라 장단을 맞출수밖에 없었다. 박정승은 최정승을 슬쩍 곁눈질하며 겁질린 소리로 문정승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도사님께서 도술을 쓰시는것이나이다. 대감들이 오기 전에도 이런 도술을 한번 썼나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천산이 두팔을 머리높이 쳐들었다가 서서히 내리며 기합을 쓰는 동작을 하였다. 이것은 앞산에 불을 지피기로 한 동작이다. 이놈의 령감이 머리가 돌지 않았어? 단번에 다 써먹으면 어떻게 하자는거야.

이번에도 약속대로 뒤산에서 시뻘건 불길과 검은 연기가 확 솟구쳤다.

《엉? 저 불은…》

문정승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불길을 가리켜보였다. 하는수없이 박정승은 이번에도 민천산의 동작에 양념을 쳤다.

《저 불도 도사님이 도술로 지핀 불이요.》

문정승은 즉시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도사님의 신비한 도술을 보니 황공무지로소이다.》

뒤따라 최정승도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황공무지로소이다!》

우직한 민천산이 일을 망치는줄 알았는데 최정승까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자 박정승은 만족해서 입을 헤벌리며 자기도 무릎을 꿇는척 하였다.

《도사님, 황공무지로소이다!》

이어 박정승은 최정승과 문정승이 다 들을수 있게 큰소리로 청을 드렸다.

《도사님, 자고로 새 임금을 정할 땐 춤판이랑 크게 벌리는것이 하나의 례식이라 소신이 미리 가무와 주연상을 준비했으니 모두가 함께 즐길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 바라나이다.》

민천산이 틀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하도록 해라!》

박정승은 즉시 하인들을 불러 정자안에 주연상을 차리게 하고 정자에서 한눈에 바라보이는 맞은편 못가에서 기생들이 가무를 하게 하였다.

세 정승이 도사를 웃자리에 모시고 앉아 술잔을 들자 기생들이 칼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첫 술잔을 비우고난 민천산이 불쑥 최정승에게 말을 붙였다.

《아까부터 물으려고 했는데 최정승은 옷주제가 왜 그런고?》

최정승이 제법 처량한 목소리를 쥐여짜며 대답했다.

《충과 효는 인륜의 근본이라 했거늘 기쁜 일이 있을 때면 돌아가신 상감마마가 생각나서 상복을 입고 왕릉을 찾아가 인사를 올리군 하나이다.》

그 말을 듣고 민천산이 수염을 내리쓸었다.

《최정승은 듣던바 그대로 충신이로다.》

박정승은 뚱딴지같은 화제를 꺼내는 민천산을 불만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문정승이 머리를 숙이며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박공, 저 생쥐같은 놈이 도사한테서 점수를 단단히 딴것 같나이다.》

박정승은 문정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척 하였으나 속으로는 여전히 코방귀를 뀌였다.

그들의 속삭임에 신경이 씌여지는지 최정승이 넌지시 말을 던졌다.

《대감들은 가무를 구경하지 않으시고 무슨 말씀들을 하시오. 그런데 박대감은 춤도 칼춤을 좋아하시오이까?》

박정승은 입귀를 실룩거렸다. 이놈아, 도사에게 내가 칼부림밖에 모르는 무인이라는걸 강조시키자고 그러느냐. 어디 그러겠으면 실컷 그래라. 아마 도사가 가짜라는걸 알면 네놈이 기절초풍할게다. 그는 자기의 이러한 속생각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나야 천성적인 무인이니 어쩌겠소.》

잠시후 이번에는 최정승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이였다.

《박대감, 이제 도사님께서 새 임금을 점지해주시면 절대로 다른 잡소리를 해선 안되겠지요?》

허, 이놈 봐라. 도사가 한번 칭찬을 해주니 오히려 제편에서 다짐을 둔다. 좋다, 네놈이 다른 잡소리를 못하게 내가 단단히 다짐을 두겠다.

《응당 그래야지요. 하늘의 뜻인데 절대로 잡소리를 하면 안되오이다.》

취흥이 오르기 시작하자 박정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사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이였다.

《도사님, 이젠 시간도 퍼그나 흘렀으니 하늘의 뜻에 따라 이 송도국의 새 임금을 점지해주시오이다.》

최정승과 문정승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의 말을 받았다.

《점지해주시오이다.》

민천산이 비칠거리며 취한 몸을 가까스로 일으키더니 옆에 세워두었던 청려장을 찾아쥐고 거기에 몸을 의지해 바로섰다.

《이 세상을 둘러보면 미물인 벌도 왕벌이 있고 기러기떼도 맨앞에 길잡이가 있거늘 한 나라에 왕이 없어서는 안되느니라. 나라의 왕은 병법에도 능하고 가문도 좋아야 할뿐만아니라 학문에서도 만민의 스승이여야 하거늘 하늘의 뜻도 그렇고 또 내 뜻도 그렇고… 세 정승중에서 새 룡상에 앉을 인재가 누군고 하니…》

이때 바싹 긴장이 되여서인지 최정승이 《에헴.》하고 잔기침을 깇었다. 박정승은 그러는 최정승에게 불만어린 눈길을 흘겼다. 망할 놈! 중대한 시각에 빙충맞게 기침은 무슨 기침이노.

민천산이 최정승쪽으로 피끗 눈길을 주었다가 말을 계속했다.

《…송도국의 룡상에 앉을 사람은 최정승이로다!》

박정승은 생각지도 않았던 최정승의 이름이 불쑥 튀여나오는 바람에 벼락소리를 듣기라도 한것처럼 와뜰 놀랐다. 내가 잘못 들었는가? 믿어지지 않아 눈을 슴벅이며 민천산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최정승이 너무 기뻐 춤추듯 날뛰는 꼴을 보니 잘못 들은것 같지 않았다.

박정승은 눈도 굳어지고 혀도 굳어지고 심장도 뚝 멎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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