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주체108(2019)년 8월 24일

평양시간


제 29 회


29


저녁밥을 푸짐히 먹고난 민천산은 흐뭇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래일이면 드디여 기다리고기다리던 날이 된다. 《송도국의 룡상에 앉을 사람은 박정승이다!》 라는 한마디 말만 하면 그토록 바라던 원님벼슬이 차례진다. 말 한마디로 원님벼슬을 벌었다고 하면 누구도 믿지 않을것이다.

리진사를 비롯해서 그를 놀려대던 해청도의 선비들은 그가 원님으로 부임해오면 아마 눈이 휘딱 뒤집혀질것이다. 눈이 뒤집혀지다 못해 틀림없이 까무라칠것이다. 한생 착하게 살아오고 죽을 때까지 착하게 살자고 결심했지만 해청도의 선비놈들하고는 좀 계산을 해야겠다. 죽일 놈은 죽이고 주리를 틀 놈은 주리를 틀겠다.

그가 고을관청에 올방자를 틀고앉은 원님이 된 자기의 모습을 흐뭇하게 그려보고있는데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소리가 났다.

《누구요?》

그의 물음에 석쉼한 늙은이의 목소리가 대답한다.

《도사님을 만나러 왔수다.》

자리에서 일어나 눈길을 주니 오늘 아침에 월단이와 함께 자기를 찾아왔던 박정승의 아버지 박첨량이 비칠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서기에 서둘러 부축하여 자리에 앉혔다.

《이밤중에 무슨 일로 예까지 걸음을 하셨소이까?》

《아까는 손녀년이 있어서 도사님께 말씀을 못 드렸는데 청이 하나 있으니 수고스러운대로 좀 들어주사이다.》

《무슨 청인지 어서 말씀하시오이다. 로인장의 청은 내 기꺼이 들어올리겠소이다.》

민천산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쾌히 응했다.

《다른게 아니라 내 묘자리를 하나 골라놓았는데 신통한 자리가 되는지 한번 좀 봐주시오이다.》

무슨 말이 나올가하고 귀를 바싹 강구었던 그는 너무도 뜻밖의 말에 입을 하 벌렸다. 방정맞게 한밤중에 묘자리소리를 들으니 머리칼이 으시시 일어선다. 이 령감의 머리가 좀 잘못된게 아닌가? 박첨량의 눈동자며 얼굴표정을 자세히 뜯어보았으나 모든게 멀쩡하다.

《자제분이 일국의 정승이여서 로인장의 말년이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겠는데 왜 벌써부터 묘자리를 정하시오이까?》

그의 물음에 박첨량은 구들장이 꺼지게 긴 한숨을 내쉬였다.

《행복하다는게 다 뭐웨까. 그 후레자식때문에 죽어서도 조상들을 뵈올 면목이 없소이다.》

박첨량은 민천산에게 자기의 마음속 고충을 자초지종 이야기하였다. 박씨가문의 대가 끊어진다는 저주를 받고 대대로 무를 멀리해온 가문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며 아들이 무인의 길을 걷는통에 끝내 대가 끊어지게 된 이야기며 멀지 않아 아들이 숱한 사람을 죽이고 박씨가문을 송두리채 망쳐놓게 될것이라는 자기의 예감까지 다 터놓았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박첨량의 눈에는 눈물이 흥건히 고여올랐다.

《그 후레자식이 손톱 곪는건 알아도 염통 곪는건 모르지요. 내 그래서 집안이 망하는 꼴을 보기 전에 죽자는건데 목숨은 왜 이렇게 질기겠수. 내 나이 지금 여든이니 이젠 다 살고도 남았지요. 성쌓고 남은 돌이나 같지만 죽어서 묻힐 묘자리라도 잘 골라서 가문에 미치는 해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자는게 이 늙은것의 마지막 소원이나이다. 그러니 수고스러운대로 도사님이 내 묘자리를 좀 봐주시고 신통한 자리가 못되면 복록이 련면무궁할 자리를 하나 좀 골라주시오이다.》

《알겠소이다.》

민천산은 듣기 좋은 말로 박첨량을 위로해서 돌려보냈다.

박첨량이 왔다간 후 그의 가슴속에서는 즐겁던 기분이 싹 깨지고 이름할수 없는 불안과 위구가 서서히 찾아들었다. 늙으면 반귀신이 된다고 박첨량의 예감이 맞아떨어지면 그에게도 좋을것이 없다. 하늘처럼 믿고있는 박정승이 망하면 그의 꿈도 물거품이 된다.

아니, 아니야. 그는 지꿎게 갈마드는 불안한 생각을 털어버리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더 생각지 말자. 래일이면 원님벼슬이 생길터인데 아무렴 하루밤사이에 박정승이 망하겠는가. 박정승이 후날 망하더라도 난 래일 원님벼슬만 받으면 된다. 래일이면 래일이면… 그는 래일이라는 말을 수십번 곱씹어 외우다가 저도 모르게 솔곳이 잠들었다.

꿈나라를 헤매던 민천산은 가슴을 지리누르는 답답함에 버둥거리며 잠에서 깨여나 눈을 버쩍 떴다. 아직도 한밤중이여서 방이 어두운데 시꺼먼 사람의 형체가 그의 가슴팍을 무릎으로 짓누르고있었다.

《쉿! 조용해!》

《누구…》

입을 벌려 소리치려고 하였으나 억센 손이 입을 틀어막더니 말을 못하게 커다란 헝겊이 입에 자갈처럼 물리워졌다. 자세히 보니 검은 형체는 하나가 아니라 셋이였다. 검은 형체들은 얼마나 동작이 빠른지 순간에 그의 몸을 바줄로 칭칭 결박하고 커다란 자루안에 통채로 잡아넣었다. 어찌나 든든하게 묶었는지 발버둥도 칠수가 없다.

이어 자기가 들어있는 자루를 들어 어깨에 메였는지 몸이 허궁에 데룽데룽 매달리고 온기가 있는 넓다란 사람의 잔등이 느껴진다. 자루속이 숨막힐것처럼 답답하였으나 밖으로 나왔는지 찬기운이 느껴지며 숨쉬기가 한결 편해진다. 그를 업은 사람들은 발자국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도 발을 부지런히 재게 놀렸다.

이놈들은 대체 누굴가? 도적일가? 아니, 도적은 아니다. 도적이면 정승부에 있는 숱한 재물을 놔두고 사람을 훔쳐가겠는가. 돈을 받고 사람을 훔쳐가는 도적도 있긴 하지만 사람도적의 대상은 처녀나 과부들이다. 나같은 늙은이는 누가 훔쳐갈 생각도 하지 않을것이다. 그럼 이놈들이 혹시 박정승의 딸 월단이를 훔쳐가려다가 나와 삭갈렸는가. 그런것 같지도 않다. 월단이같은 박색은 훔쳐갈리 만무하고 아무리 방안이 어둡다해도 도적들이 남자와 녀자를 분간못할수는 없다.

어쨌든 도적은 아니다. 좀도적들은 감히 사람도적질을 못하고 담이 큰 도적이라 하여도 대가집담장은 넘보지 못한다. 그런데 경비가 궁궐못지 않게 삼엄한 정승부에 감히 뛰여든걸 보면 보통놈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놈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날 어디로 데리고 갈가?

민천산은 불안한 가슴을 안고 운명에 자기를 맡길수밖에 없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3인1당 제41회 3인1당 제40회 3인1당 제39회 3인1당 제38회 3인1당 제37회 3인1당 제36회 3인1당 제35회 3인1당 제34회 3인1당 제33회 3인1당 제32회 3인1당 제31회 3인1당 제30회 3인1당 제29회 3인1당 제28회 3인1당 제27회 3인1당 제26회 3인1당 제25회 3인1당 제24회 3인1당 제23회 3인1당 제22회 3인1당 제21회 3인1당 제20회 3인1당 제19회 3인1당 제18회 3인1당 제17회 3인1당 제16회 3인1당 제15회 3인1당 제14회 3인1당 제13회 3인1당 제12회 3인1당 제11회 3인1당 제10회 3인1당 제9회 3인1당 제8회 3인1당 제7회 3인1당 제6회 3인1당 제5회 3인1당 제4회 3인1당 제3회 3인1당 제2회 3인1당 제1회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