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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4일

평양시간


제 28 회


28


조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점심을 끝낸 최정승은 안해의 방으로 향하였다. 안해가 하녀를 보내 앓고있다는 말을 전해왔는데 문병이라도 하지 않으면 또 어떤 불벼락이 내릴지 몰랐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안해를 싫어하였다. 아니, 무서워하였다. 안해는 체대가 거의 그의 곱이나 될뿐아니라 드살기가 그 커다란 몸집을 가득 채우고 남을 정도이다. 리조판서를 하던 장인의 눈에 들려고 부부간이 된 첫날부터 굽신거리며 안해의 비위를 맞추었는데 그것이 결국은 안해의 드세찬 성미를 더 부채질해주는 격으로 되였다.

그는 두팔을 한껏 벌려도 껴안지 못하는 우람찬 안해에게서 녀자의 살뜰한 맛을 느끼지 못해 신혼생활때부터 다른 계집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였다. 기생이면 기생, 하녀이면 하녀 그저 치마두른 밴밴한 계집만 보면 코를 벌름거렸다.

이러한 그의 계집난봉으로 안해의 성격은 더한층 이지러졌다. 안해는 그의 몸에서 계집냄새가 나는것만 같으면 고양이처럼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었고 그때마다 그는 겁질린 쥐처럼 쩔쩔매였다. 솔직한 말로 일찍 대머리가 된데는 걸핏하면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강짜를 부린 안해의 앙탈도 적지 않은 작용을 하였다.

그후 장인이 죽고 그가 정승벼슬에 오른 다음에는 안해의 성질도 퍼그나 누그러졌으나 이번에 해청도에서 금향이를 첩으로 데려온 후로는 본성이 다시 드러났다.

침방에 들어가니 안해는 끈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이불속에 누워있었다. 병색이 그닥 돌지는 않았으나 얼굴은 꺼칠하였다. 방안에 들어서는 그를 곱지 않은 눈길로 맞는걸 보면 또 속이 앙앙불락한 모양이다.

아니나다를가 안해는 말을 떼기 전에 눈물부터 쏟았다. 젊었을 때는 팔소매를 걷어붙이는것이 싸움을 알리는 시작이였다면 중년에 들어서서는 전술을 바꾸어 폭풍직전의 소나기로 눈물을 흘린다.

최정승은 안해의 머리맡에 엉거주춤 앉아 상냥스레 달래였다.

《부인, 왜 눈물까지 흘리는거요? 몹시 아프오?》

안해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하기라도 한것처럼 그냥 서럽게 운다. 이런 때는 자칫 잘못한 실언으로 안해의 부아를 더 돋굴수 있기때문에 침묵을 지키는것이 상책이다. 참을성있게 기다리고기다리느라니 쿨쩍거리던 안해가 드디여 싸움의 첫 포성을 울리였다.

《상공, 아무래도 첩은 인차 죽을것 같소이다.》

《허허, 그건 갑자기 무슨 실없는 소리요?》

부러 나오지 않는 웃음을 웃으며 안해를 눅잦히려고 애썼다.

《실없는 소리가 아니오이다. 누가 지금 계속 첩이 죽기를 귀신에게 간절히 빌고있나이다.》

안해가 무슨 말을 하자고 하는지 대뜸 짐작이 갔다. 또 억지로 금향이를 걸고들 심산이다.

《그게 누군지 모르겠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이 애매한 사람에게 루가 미치지 않도록 하오.》

그러자 안해는 이불속에서 손을 부시럭거리더니 작은 인형을 하나 꺼내여 그의 눈앞에 대고 내흔들었다.

《이래도 증거가 없소이까?》

인형을 받아보니 누구의것인지 알수 없는 글씨로 인형의 몸에 안해의 사주팔자가 적혀있다.

《몸이 까닭없이 아파나서 오늘 아침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점을 쳤는데 글쎄 첩의 침방마루밑에 이 요사한 물건이 묻혀있었나이다. 분명 어떤 년이 첩을 죽이고 정실부인자리를 차지하려고 이런 악독한 흉계를 꾸몄나이다.》

믿어지지 않았다. 자고로 녀자는 인물값을 한다 하였거늘 선녀처럼 고운 금향이 차마 이런짓을 하겠는가. 최정승은 속으로 도리머리질을 하였다. 성미 사나운 안해한테 죽도록 매를 맞은 하인이나 종년들이 한짓이 아니면 안해가 꾸며낸것일수 있었다.

《설마…》

《설마가 아니라 사실이오이다.》

안해는 그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그년이 아니면 이 지붕아래서 누가 나를 원쑤처럼 미워하겠나이까. 정 믿어지지 않으면 이제 나가서 지게문 왼쪽길을 잘 살펴보시오이다. 거기에 독벌레들이 득실거리나이다. 무당의 말이 그게 〈방문좌도〉 라는 술법인데 그 장소에다 몰래 독벌레들을 공양하면 저주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지러워진다고 했소이다. 첩이 근래에 계속 정신이 흐리터분해지고 몸이 나른해지며 까닭없이 앓는게 다 그년의 원한을 사서였나이다.》

들을수록 험악한 소리라 안해의 말을 밀막았다.

《그렇다고 정승부의 안방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남부끄럽게 소문을 낼수야 없지 않소. 내 조용히 알아보겠으니 부인은 과도히 마음을 쓰지 말고 진정하오.》

《증거가 확실한데 뭘 더 알아보고말고 할게 있소이까. 좋소이다. 상공이 요녀에게 현혹되여 첩을 헌 짚신짝같이 여기시니 내 차라리 섬돌에 짓좋아 머리를 부시여 죽을지언정 절대로 그년에게 굴복하여 욕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리 아시오이다.》

안해는 진짜 죽기라도 할것처럼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최정승은 황황히 안해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부인, 진정하오. 현숙한 부인이 좀 진정하오. 내 정확히 알아보고 엄히 처리하리다.》

안해는 못이기는척 하며 이불속에 다시 누웠으나 계속 푸념이다.

《상공은 지체가 하늘처럼 높으시여서 량반가문의 규수들도 소실이 되기를 자청하온데 어이하여 존귀함을 버리시고 항간의 경솔한 사내처럼 부디부디 경박하고 의리를 모르는 천한 계집을 골라 소실로 두시오이까.…》

최정승은 안해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길디긴 그 푸념을 인내성있게 끝까지 다 들어주며 얼리고 또 얼리였다.

《부인의 말이 백번 지당하오. 내가 그만 한때의 흥분으로 실수를 한것 같소. 그렇다고 한번 엎지른 물을 다시 주어담을수야 없지 않소. 그리고 내 정은 부인에게만 가있으니 너무 마음을 쓰지 마오. 아무렴 수십년을 함께 살아온 당신에게 정이 더 있지 얻어온지 며칠밖에 안되는 금향이년한테 정이 더 있겠소. 내 이제 당장 가서 그년을 신칙하겠으니 진정하오.》

그는 다시한번 안해에게 다짐을 두고 침방을 나와 맞은켠채에 있는 금향의 처소로 향하였다. 정말 금향이 그런짓을 했을가? 믿어지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이번 기회에 단단히 오금을 박아서 이 처마아래서는 남부끄러운 시앗싸움이 일지 않도록 해야 하였다.

《안에 있느냐?》

금향의 방문앞에 이른 최정승은 부러 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지금쯤 안해가 문틈이나 창문을 통해 자기의 행동을 빤히 지켜보고있을게 분명해서였다. 안해가 보란듯이 문을 왈칵 잡아당기고 방안으로 들어서며 쾅소리가 나게 요란히 닫았다.

《대감님, 왜 그러시오이까?》

금향이 그의 거친 행동에 놀라서 고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처음에는 안해가 들을수 있게 얼마간 큰소리라도 칠 생각이였으나 굳게 다졌던 그 결심은 금향의 예쁘장한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물먹은 소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보면 볼수록 어여쁜 금향이다. 맑은 눈동자는 금시 떠오르는 밝은 달같고 웃는 태도는 늪가운데 반쯤 핀 련꽃같고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춤추는 버들가지같아 사람의 정신을 황홀케 한다.

《대감님, 소첩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이까?》

금향이 애수에 찬 눈길로 물었다. 그 눈길에 애간장이 슬슬 녹아 엄하게 지었던 얼굴표정을 삽시에 풀며 어색하게 히죽이 웃었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면 왜 방금전에 그렇게 성을 내셨소이까?》

《성을 낸게 아니다. 너와 한번 놀아보려고 우정 그래본거다.》

허나 금향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앞으로 다가와 심중한 기색으로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대감님, 소첩을 속이지 말고 사실대로 말씀해주시오이다.》

아, 이런 매혹적인 눈길앞에서야 어찌 거짓말을 하랴. 그는 방금전에 침방에서 안해와 나눈 말을 토 한자 빼뜨리지 않고 그대로 이실직고하였다.

그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이번에는 금향이 아미를 숙이고 콜짝거리며 하소연을 하였다.

《대감님, 소첩은 대부인의 등쌀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소이다. 정말이지 소첩을 끔찍이 위해주시는 대감님만 아니면 살고픈 생각이 없나이다. 아무래도 대감님을 위해서 소첩이 이 집을 나가야 할것 같나이다.》

최정승은 바빠맞아서 금향이를 꼭 껴안았다.

《제발 울지 말거라. 네가 울면 내 가슴이 찢어지는것처럼 아프니라. 그리고 아무리 속이 상한다 해도 다시는 날 버리고 가겠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거라. 네가 가면 난 죽고만다. 나에겐 이 세상에 오직 너 하나뿐이다.… 내가 있는 한 그년이 너를 감히 어쩌지는 못한다.》

그는 금향이를 꼭 껴안고 눈물을 닦아준다,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하며 달콤한 속삭임과 애무로 달래였다. 그제서야 금향이 울음을 멈추고 얼굴에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둘이 꼭 붙어앉아 최정승은 금향이를 무릎방아 태우고 금향이는 그의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한창 장난을 치는데 문밖에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감님, 박정승댁에서 사람이 찾아왔소이다.》

《알겠다. 》

금향의 방에서 나와 본채로 나가니 뜻밖에도 박정승의 심복 안사인이 와있다. 안사인이 공경스레 절을 하고나서 아뢰였다.

《대감님, 운봉도사님이 왔소이다.》

최정승은 순간적으로 눈이 뚝 굳어졌다. 눈뿐아니라 온 얼굴과 온몸이 굳어졌다. 허나 인차 자신을 다잡고 천연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게 사실이냐? 언제 오셨느냐?》

《오늘 아침에 오셨나이다. 부원군님께서 돌아가신걸 알고 찾아오셨는데 지금 우리 정승부에서…》

안사인이 뭐라고 계속 설명했으나 그 말이 귀에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속으로 유검상한테 개욕만 퍼부었다. 망할 놈! 그만큼 신칙했는데 눈을 편히 뜨고 운봉도사를 놓치다니.

《도사님께서는 래일 세 정승님을 모두 만나시겠다고 했나이다.》

《알겠다.》

안사인이 돌아가기 바쁘게 그는 유검상을 불렀다.

《너 이놈! 어떤 일이 있어도 운봉도사를 데려오라고 했는데 도사가 박정승의 집으로 가게 해? 이놈아, 네놈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그는 열이 올라 암내난 수토끼 뒤발을 구르듯 발을 쾅쾅 구르며 기염을 토했다. 죽을 죄를 졌는지라 찍소리도 못하고 쏟아지는 욕을 먹기만 하던 유검상이 두손을 머리앞에 모아잡으며 간절히 청을 드렸다.

《대감님, 소인이 일을 그르쳤으니 소인이 바로잡겠소이다. 오늘 밤만 시간을 주사이다. 그 다음에도 일을 수습하지 못하면 랑치검으로 소인이 직접 소인의 목을 베겠나이다.》

《도대체 어쩌겠다는거냐?》

《박대감의 집에 있는 운봉도사를 대감님앞에 데려오든가 아니면 아예 죽여버리고말겠소이다.》

《네 하찮은 재간으로 도술을 쓰는 도사를 당해낼것 같으냐?》

《아무리 도술을 쓰는 도사라 해도 살을 가진 생명체이면 소인의 랑치검에는 못 견디나이다.》

유검상의 고석배기얼굴이 살기로 사납게 이그러졌다.

《그럼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다.》

최정승은 찬성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때늦은감이 없지 않았으나 지금은 유검상의 살기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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