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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0일

평양시간


제 23 회


23


박정승은 궁중으로 보낸 안사인이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놈이 왜 이렇게 늦어?)

안사인을 궁중으로 보낸것은 조회를 끝내고 정승부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던 때였다. 어디서 듣고왔는지 홍무관이 헐레벌떡 달려와 옥새가 없어져서 지금 왕궁안이 쑤셔놓은 벌집처럼 복작소동이다고 하였다.

박정승의 머리속으로는 첫순간에 최정승의 엉큼한 뱁새눈이 떠올랐다. 틀림없이 그놈의 작간이였다. 문정승은 대궐에 비밀히 가지고있는 줄이 없고 자기는 청렴결백하니 옥새를 도적질할 놈은 그 생쥐밖에 없었다. 하긴 도적질은 생쥐의 업이다.

급살을 맞아 뒈질 놈, 쪼꼬만 놈이 게염을 부려도 정도가 있지 감히 옥새까지 훔쳐내! 좋은 기회로 생각되여 손에 들고있던 수저를 내던지고 욱해서 일어서는데 안사인이 만류했다.

《대감님, 좋은 기회라 해도 용의주도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도리여 역습을 당할수 있나이다. 최정승의 작간이라고 짐작만 할뿐 확실한 물증이 없지 않소이까.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다고 이런 때일수록 상대가 꼼짝달싹 못하게 그물을 쳐야 하나이다. 소인이 몰래 궁중에 들어가서 사연을 알아보겠나이다. 대감님의 말씀대로 절호의 기회이니 설사 물중이 없다 해도 최대감쪽으로 혐의가 씌워지게 하겠나이다.》

그래서 안사인을 궁중으로 보냈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

안사인이 돌아온것은 시간이 퍼그나 흘러서였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옥새때문인지 오늘따라 대궐경비가 특별히 삼엄해서 겨우 들어갔다가 나왔소이다.》

안사인이 히죽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반질반질한 얼굴에 웃음기가 도는걸 보니 일이 잘된 모양이다.

《그래 어떻게 되였느냐?》

《대궐에 들어가서 우리가 삶아놓은 놈들을 모두 만나보았는데 똑똑히 아는 놈이 하나도 없었소이다. 그래서 왕실무당을 만나서…》

안사인은 그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조용히 이야기하였다. 박정승은 안사인의 말을 다 듣고 흡족해서 배를 쓸었다.

《좋다. 당장 최정승과 문정승의 부에 사람을 보내 빨리 입궐하란다고 이르도록 해라.》

잠시후 박정승은 집에 들어와서 벗어놓았던 의관을 다시 차리고 교자에 올라 대궐로 향하였다.

그가 입궐한지 얼마 안되여 최정승과 문정승도 당도하였다.

《무슨 일이 생겼기에 갑작스레 입궐하라 했소이까? 혹시 백마국놈들이 유주성을 넘어선게 아니오이까?》

문정승이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그런게 아니요. 대감들을 부른건 그보다 더 큰 변이 났기때문이요. 》

그는 잠시 말을 끊고 두 정승의 표정을 슬쩍 살핀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대궐에 있던 상감마마의 옥새가 없어졌소.》

《뭐라구요? 옥새가… 옥새가 없어지다니…》

문정승은 듣다 처음인듯 입을 딱 벌리며 말도 제대로 못했다. 반면에 최정승은 모든걸 알고있은듯이 태연하다. 내 짐작이 틀림없지. 네놈이 아니면야 누가 옥새를 훔치겠느냐. 박정승은 최정승에게 눈길을 주었다.

《최대감은 옥새가 없어진걸 알고계셨소?》

왜서인지 최정승의 뱁새눈에 비웃음이 흘렀다.

《알고있었소이다. 감히 왕실의 옥새를 훔쳐낸걸 보면 어벌뚝지가 여간만 큰 놈의 소행이 아니오이다.》

발칙한 놈! 네놈이 아무리 시치미를 뗀다 해도 이번에는 내 손에서 빠지지 못한다, 그런 어림없는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이 박정승의 아귀가 그렇게 무른줄 아느냐. 박정승은 어성을 높여 말했다.

《왕실의 옥새를 훔쳐낸것은 신하된자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수 없는 대역부도죄요. 그러니 아무리 상감마마가 안계신다고 해도 그 도적놈을 꼭 잡아내야 하오!》

《응당 잡아내야지요.》

최정승이 빈정대는투로 말했다.

《그런데 누구인줄 모르고 어떻게 잡아내나이까?》

문정승이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박정승은 인차 대답을 안하고 잠자코 있었다. 미리 생각해두었던것처럼 처음부터 어떻게 하자는 식으로 말을 꺼내면 계획적인 행동이라는것이 드러날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을 짜내는듯이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침묵을 깨며 문정승이 먼저 자기 생각을 꺼냈다.

《이제라도 대궐안을 샅샅이 뒤지는게 어떻소이까? 옥새를 훔쳐냈다 해도 아직 빼돌리지 못했으면 대궐안에 있을게 아니오이까.》

최정승이 그 말을 듣고 단번에 면박을 준다.

《문대감도 참 고지식하오. 옥새가 아직도 대궐에 그냥 남아있을게 뭐요. 훔친 놈이 대궐안에 감춰두자고 훔쳤겠소. 아마 지금쯤은 대궐밖에 있을거요. 옥새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확신있게 단언할수 없으나 틀림없이 궁성안에 있을거요.》

《옥새가 아직 궁성안에 있을가요?》

문정승이 묻는다.

이때라고 생각한 박정승은 드디여 나섰다.

《최대감의 말이 옳소. 옥새는 틀림없이 궁성안에 있소. 궁성밖에 있으면 찾기 어려워도 궁성안에 있으면 찾기 쉽지.》

최정승이 이번에는 그의 말에 퉁을 먹이는데 말에 가시가 돋혀있다.

《궁성안에 있으면 어떻게 찾기 쉽다는거요? 도적놈이 스스로 내놓는다면 몰라도…》

박정승도 서리찬 목소리로 최정승을 향해 응대했다.

《도적놈이 스스로 안 내놓아도 찾을 방도가 있소. 대궐안에 령험있는 왕실무당이 있지 않소. 무당에게 옥새가 어디 있는지 점을 쳐달라고 합시다.》

그의 제안에 최정승도 문정승도 얼굴색이 순간적으로 달라졌다. 그 꼴을 보고 더 승이 나서 냅다 우기였다.

《왜들 이렇게 놀라는거요? 자기만 청렴하면 뭐가 무서울게 있소.》

그 말에 최정승이 발딱 목대를 세운다.

《누가 무서워한다는거요. 지금껏 그 무당이 령험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오늘 한번 얼마나 령험한지 봅시다.》

최정승과 달리 문정승은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깐 무당이 뭘 령험하겠다고…》

일이 뜻대로 번져지자 박정승은 속으로 쾌재를 올리며 문정승을 나무라는척 하였다.

《문대감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 무당은 정말 령험이 있소. 오죽하면 상감마마께서 모든 국사를 그 무당에게 문의하시군 하셨겠소. 자,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합시다. 여봐라, 어서 가서 왕실무당을 대전앞으로 모셔오거라.》

모두가 대전 앞마당으로 나와 기다리는데 잠시후 울긋불긋한 옷을 떨쳐입고 온갖 잡동사니치레거리들로 요란하게 장식을 한 녀무당이 총관내시의 안내를 받으며 멀리서 걸어왔다. 굿을 할 때마다 항상 그러한것처럼 무엇을 줴발랐는지 얼굴을 숯처럼 까맣게 색칠해서 입을 벌리고 눈알을 굴릴 때마다 흰 이발과 흰 눈동자가 검은색과 대조되며 사람의 가슴을 섬찍섬찍하게 한다.

국왕은 자기의 피를 이은 세자와 공주들이 죽고 피를 나는 가까운 혈육들마저 차례차례 죽어나자 하늘의 벌이 내렸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송도국적으로 령험이 있다고 소문난 이 녀무당을 대궐안에 불러들이고 액땜과 굿을 하군 하였다. 말년에는 한발자국을 걸어도 무당에게 길흉을 물어보고서야 움직였고 나중에는 군국대사까지도 무당의 의견을 받아 어지를 내렸다.

그 덕에 녀무당은 팔자를 고쳤다. 비빈들에게 차례지는 후궁에서 살며 금의옥식속에 호강하였다. 그래서 녀무당이 제일 두려워하는것은 대궐에서 쫓겨나 이전처럼 떠돌이생활을 하는것이였다.

박정승은 이 약점을 리용하여 녀무당을 쟁취해야 한다는 안사인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왕이 죽은 후에도 영원히 왕궁에서 살게 해준다는 조건부로 오래전에 녀무당을 자기의 수족으로 만들었다.

무당이 대전 앞마당에 이르자 박정승은 모두를 대변해서 앞으로 나섰다.

《그대를 부른건 대궐안에서 까닭없이 옥새가 없어지는 변이 났기때문이요. 그러니 옥새가 어디에 있는지 가리켜주어서 송도국과 왕실을 구원하도록 힘써주길 바라오.》

《알겠소이다.》

녀무당은 공손히 령을 받고 인차 굿을 시작했다.

《오, 신령님이시여!》

녀무당은 연방 신령님을 불러대며 대전 앞마당이 좁다하게 이리 올리뛰고 저리 올리뛰였다. 한참이나 푸닥거리로 복새통을 피우던 무당이 별안간 급살을 맞기라도 한것처럼 뚝 굳어지더니 거품을 물고 한옆으로 픽 쓰러졌다.

《무당에게 신령이 내렸소.》

녀무당의 굿을 몇차례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수군거렸다.

죽은것처럼 쓰러져있던 무당이 잠시후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나 정승들앞에 무릎을 꿇으며 아뢰였다.

《신령님께서 강림하시여 옥새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셨나이다.》

《옥새가 어디 있느냐?》

최정승과 문정승은 동시에 물으며 긴장해서 무당의 입을 지켜보았으나 박정승만은 그들의 뒤쪽에서 먼산만 바라보며 뜬뜬해있었다.

《옥새는 지금 궁성의 북서쪽에 있나이다.》

이번에는 박정승이 부러 꼬집어물었다.

《정확히 북서쪽 어드메냐?》

《북서쪽에 있는 제일 큰집이나이다.》

무당의 대답에 최정승의 얼굴색이 삽시에 하얗게 질렸으나 박정승은 못 본척 하며 문정승과 이야기를 하는것처럼 하였다.

《북서쪽의 제일 큰집이라. 북서쪽에 있는 제일 큰집이라면 최대감네 정승부인데 설마하니…》

슬쩍 눈길을 주는데 최정승이 독이 올라 자그마한 몸을 공중으로 길길이 솟구쳐 뛰였다.

《도적질은 누가 하고 감히 나한테 루명을 씌우는거요?》

박정승도 지지 않고 사나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그건 대체 무슨 말씀이요?》

《그걸 몰라서 묻소? 자기한테서 구린내가 나면 남한테서도 구린내가 난다고 생각한다는거요.》

최정승은 열이 올라 고래고래 소래기를 질렀지만 박정승은 살기띤 눈초리로 이죽거렸다.

《누구한테서 구린내가 나는가 하는건 이제 알게 될거요. 여봐라, 포도대장을 불러 당장 최대감의 정승부를 뒤지게 해라!》

《뭐라구? 박대감이 뭐길래 감히 내 집을 뒤지라는 령을 내리는거요!》

《내 령이 아니라 도적을 잡으라는 신령님의 령이요.》

《그럼 내가 도적이라는거요?》

최정승이 대들다싶이하자 문정승이 가운데 끼여들며 말렸다.

《아, 최대감! 진정하시우다. 숱한 궁녀들과 아래놈들이 지켜보는데 머리 큰 대감님들이 이러시면 비웃음을 사나이다. 이러지 마시고 속시원히 뒤져보게 하시면 청렴결백함이 자연히 밝혀질게 아니오이까.》

허나 최정승은 자기의 팔소매를 붙잡은 문정승의 손을 뿌리쳤다.

《왜 우리 집만 뒤지겠다는거요? 저 박대감의 집도 뒤져야 하오!》

박정승은 태연하게 팔짱을 끼고 최정승을 시까슬렀다.

《최대감, 미안하지만 우리 집은 북서쪽이 아니라 동남쪽이요.》

《동남쪽이라도 뒤져야 하오. 대감네 집을 뒤지지 않으면 우리 집도 절대로 뒤지지 못하오.》

《정 그렇다면 힘을 사용할수밖에 없구려.》

《박대감만 힘이 있고 누군 뭐 힘이 없는줄 아시우.》

《어랍쇼, 나와 맞서시겠단 말이지. 여봐라, 왕실의 옥새를 훔친 저 최대감에게 당장 오라를 지워라!》

《예잇!》

그의 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홍무관과 무사들이 최정승쪽으로 다가가는데 유검상이 재빨리 그들앞을 막아섰다.

《한발자국만 더 움직이는 놈은 이 랑치검으로 육장을 낼테다.》

유검상이 살기를 띠며 허리춤에서 랑치검을 뽑아들자 최정승의 무사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들었다. 홍무관과 박정승의 무사들도 칼을 뽑아들었다.

아차하면 당장 비릿한 피로 대궐뜰을 적시며 죽일내기를 할판인데 총관내시의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부원군님께서 나오시나이다!》

방금전까지 여기에 있던 총관내시가 어느새 뛰여갔댔는지 비칠거리며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부원군을 부축하여 대전 앞마당으로 왔다.

《이게 무슨 짓들이요?》

부원군은 석쉼한 목소리로 누구라없이 모두를 힐책했다.

《상감마마께서 승하하신지 얼마나 된다고 왕궁뜰을 칼부림장으로 만드는거요. 당장 칼들을 거두시오.》

상대방을 노려보며 씩씩거리던 무사들이 각기 제 주인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다가 하나둘 칼을 내리워 칼집에 꽂았다.

박정승은 서둘러 부원군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숙였다.

《부원군님, 왕실의 옥새가 없어졌소이다.》

《나도 알고있소. 하늘이 우리 송도국을 망하게 하려는가 보오. 빨리 운봉도사가 와야겠는데…》

부원군은 운봉도사가 오는쪽을 바라보기라도 하는듯 흐리멍텅한 눈길로 먼산을 바라보았다. 박정승은 부원군의 기색을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부원군님, 온 궁성을 발칵 뒤져서라도 옥새를 찾아야 하오이다.》

부원군은 가당치 않다는듯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운봉도사가 오면 옥새도 자연히 나질터이니 괜히 소동을 부리지 말고 다들 물러가오.》

부원군은 잔기침을 쿨럭거리며 총관내시의 부축을 받아 온 길을 비칠비칠 되돌아갔다.

망할놈의 두상! 검질기게 살면서 남의 일을 훼방만 노는군. 산송장같은 저 두상만 아니면 최정승을 아예 없애버리는건데…

박정승은 부원군의 등을 뚫어지게 쏘아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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