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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0일

평양시간


제 11 회


11


그날 밤 박정승은 누구도 모르게 조상궁이 거처하고있는 후궁으로 갔다.

《이밤중에 어인 일로 걸음을 하셨나이까?》

조상궁은 반가와하면서도 불안과 위구를 숨기지 않았다. 내시를 제외한 외간남자의 출입이 엄금되여있는 후궁이라 다른 눈에 띄우기만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릉지처참을 면치 못한다.

《네가 보고싶어서 왔다.》

그는 종발눈을 끔쩍이며 조상궁의 예쁜 볼을 슬쩍 꼬집었다.

《점잖지 못하시게…》

조상궁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는척 하며 허리를 꼬았다. 이제는 숫처녀가 아니라 남자맛을 아는 녀인이라 하나하나의 행동에 교태가 흐른다. 무르익은 과실처럼 성숙한 젊은 녀인의 육체에서 풍기는 살갗향기가 그를 걷잡을길없이 흥분시켰다. 바싹 다가가서 버들같은 허리를 덥석 그러안고 발가우리한 녀인의 볼에 털부숭이볼을 마구 비벼댔다.

《이러지 마시오이다. 그러다 누가 보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그를 밀어내지만 녀인의 나긋나긋한 팔은 그의 든든한 어깨를 바싹 끌어안았다.

《걱정말라구.》

그는 녀인을 안심시키며 눈짓으로 출입문쪽을 가리켜보였다. 문밖에서는 홍무관이 무사들을 거느리고 개미 한마리 얼씬 못하게 지키고있었다.

이성의 볼과 볼이 닿고 팔과 팔, 다리와 다리가 닿으니 며칠동안 호상을 서느라 녀자곁에 가지 못한 정욕이 불도가니처럼 끓으며 온몸을 확확 달게 하였다. 더 기다릴수 없어서 녀인을 닁큼 두팔에 들어안았다.

그의 팔에 몸을 푹 맡긴 조상궁은 웃음어린 입술로 커다란 그의 귀방울을 깨물며 속삭였다.

《약주는 안하시겠소이까?》

녀자와 잠자리를 같이할 때는 먼저 술을 몇잔 마셔 기분을 띄우는게 그의 굳어진 습관이다. 몇번 접촉을 못했지만 총명한 녀자라 그의 습관을 벌써 체득한 모양이다.

《상중인데 술을 마시면 되나. 얼굴이 붉어지면 남들이 흉을 봐.》

그는 녀인을 안고 침실로 향하였다. 그의 말이 우스운지 조상궁은 팔에 안긴 허공에서 입을 감싸쥐고 키득거렸다.

《상중에 녀자는 가까이 해도 일없소이까?》

시간이 바빠 언제 대답할 사이도 없었다. 당장 폭발할것 같은 정욕을 달랠 시간도 없었고 남들이 눈치를 못 채게 왔다가자니 시간이 없었다. …

그는 끓어오르던 정욕을 깡그리 쏟아버리고 녀인의 옆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나른하였다. 거칠게 오르내리는 그의 배를 비단처럼 부드럽고 매끈한 고운 손이 살살 문다지른다.

《소녀가 얼마나 보고싶어했는지 아시오이까?》

대답대신 숨을 톺는것처럼 길게 숨소리를 냈다. 대답을 하기가 싫었다.

《대감님께서 룡상에 오르실 날이 가까와지니 혹시 소녀를 버리지 않을가 하여 걱정스러웠나이다.》

녀인의 손이 이번에는 그의 귀볼을 어루만진다.

《소녀는 이 세상에서 오직 대감님 한분만을 사랑하나이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소녀를 버리지 말아주사이다…》

애교어린 목소리가 계속 간지럽게 들려왔지만 그의 눈앞으로는 오늘 오후에 있은 일이 다시금 흘러갔다.…

삼일후면 국왕의 장례날이라 세 정승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장례의식문제를 토의하였다. 국왕이 생존해있을 때 릉을 미리 건설하여서 크게 애로되는 문제가 없었다. 령구가 릉으로 나가는 수십리연도에 백성들이 무릎을 꿇고앉아 애도를 표시하게 하는 일도 빈틈없이 조직하였고 금은보석이며 왕이 애용하던 물건들을 비롯해서 릉에 국왕의 령구와 함께 묻을 치레거리들도 다 선별해서 준비해놓았다.

령구의 출발로부터 릉에 안장하는 의식까지 모든 준비가 원만하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파하려는데 최정승이 불쑥 예상치 못했던 문제를 들고나왔다.

《상감마마를 릉에 안장할 때 홀로 보내겠나이까? 상감마마가 저세상에 가서도 고독하시지 않도록 하는게 신하된자의 도리라고 생각하나이다.》

《그거야 더 이를나위없는 말씀이지요. 후날에 먼저 돌아가신 중전마마의 령구를 왕릉에 합장합시다.》

문정승이 제꺽 찬성을 표시하였으나 최정승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가 말하는건 그 소리가 아니오이다. 후날에 중전마마의 령구를 합장한다 해도 그때까지 상감마마를 누가 모시겠나이까.》

국왕이 죽으면 궁녀들을 순장하는게 예로부터 해오는 관례이라 박정승도 반대의향이 없었다. 그런데 최정승의 다음말이 아주 미묘했다.

《그래서 총관내시가 가져온 궁녀명부를 보았는데 박대감만 이의가 없다면 제 생각에는 조상궁을 보냈으면 하나이다.》

박정승은 저도 모르게 눈까풀이 파르르 떨렸다. 조상궁을 자기와 결부시키는걸 보면 최정승이 분명 무슨 눈치를 챈것 같았다. 며칠전 국왕이 죽은 날 밤에 꾸었던 꿈이 되살아났다. 최정승과 단둘이 있는 자리라면 어물쩍해 넘기겠지만 문정승까지 함께 있는 좌석이라 그럴수도 없다. 일단 걸어온 도발이니 미욱한체 하고 받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궁녀들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소. 그런데 그 숱한 궁녀들중에서 왜 하필이면 조상궁이요?》

최정승은 미리 대답을 생각해두었댔는지 제꺽 응수했다.

《총관내시에게 알아보니 상감마마께서 생전에 조상궁을 제일 사랑했다고 하나이다.》

뭐, 국왕이 조상궁을 제일 사랑했다구? 《허튼소리 말아라. 조상궁은 국왕을 한번도 시침해보지 못한 숫처녀다.》 하는 말이 입밖으로 나가는걸 간신히 억제했다. 박정승은 생각을 굴리다가 적당한 구실을 찾아내였다.

《난 최대감과 다르게 생각하오. 조상궁이 상감마마의 총애를 제일 많이 받았는지는 알수 없지만 상감마마를 따라보내는 궁녀는 왕궁에 제일 오래 있은 궁녀를 택해야 하오. 예로부터 옷은 새옷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지 않소, 문대감?》

그는 부러 문정승을 끌어들였다. 그의 예상대로 주대가 없는 문정승은 그의 말을 즉석에서 긍정하였다.

《왕궁에 제일 오래 있은 궁녀를 따라보내자는 박대감의 말씀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나이다. 최대감은 요즘 젊은 소실을 두어서 재미가 좋으신 모양인데 젊은 녀인이 아무리 곱다 해도 한생을 같이해온 본처만 못하지요.》

조롱기가 섞인 문정승의 말에 최정승은 얼굴이 시뻘개지며 더 우기지 못하였다.…

박정승은 최정승의 그때의 모습을 다시 그려보느라니 통쾌하였다. 지금껏 최정승이 왕궁에 박아넣은 심복을 알지 못해 속을 앓았는데 오늘의 일을 통해 그 여마리군이 총관내시임을 알게 된것도 기뻤다.

박정승은 그때도 그러했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귀여운 조상궁을 내놓고싶은 생각이 쥐뿔만큼도 없다. 지금껏 수많은 계집들을 대상해왔지만 이년처럼 마음에 흠뻑 들었던 계집은 없었다.

《소녀의 말은 듣지 않고 무슨 생각을 하시오이까?》

조상궁이 반쯤 일어나앉으며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듣지 않긴 왜 안 듣겠느냐. 다 듣는다.》

그도 눈길을 들어 조상궁의 얼굴을 보았다. 깨물어먹고싶을만큼 예쁜 얼굴이다. 보면 볼수록 애간장이 슬슬 녹아내리는 계집이다.

박정승은 깜찍한 최정승이 왜 조상궁을 선택했댔는지 그 속심을 모르지 않았다. 순장대상으로 선정하면 조상궁이 울며불며 자기와의 관계를 루설할것이라고 타산했을것이다. 이 생쥐놈아, 어림도 없다. 아무렴 이 박대감이 자기 녀자 하나 제대로 못 지킬줄 알았느냐.

《그럼 소녀에게 한 약속이 기억나시오이까?》

녀인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너를 빈으로 삼겠다고 한 약속말이냐?》

조상궁은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그의 가슴에 꼭 안겨든다. 박정승은 솥뚜껑같은 큼직한 손으로 녀인의 등을 어루쓸었다.

《난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다. 너를 빈이 아니라 귀비로 삼는다는 문서를 이미 작성해놓았다.》

그의 말은 사실이였다. 오늘 그는 조상궁을 리용하려던 최정승의 수를 형체도 없이 파탄시켰을뿐아니라 오히려 자기한테 유리하게 써먹었다. 왕궁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궁녀를 순장하기로 결정되자 그 궁녀를 귀비로 승격시키자고 제기하면서 국왕이 제일 총애한 조상궁도 함께 귀비로 승격시키자고 우기였다. 궁녀를 정1품의 빈이나 귀비로 승격시키는것은 국왕의 어지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지만 그가 우겨서 관례를 깨뜨리는 조치가 취해졌다. 자기가 사랑하는 녀자에게 무엇이라도 한가지 더 해주고픈 사내싼 감정이 작용해서랄가.

《그게 사실이오이까?》

조상궁의 고운 눈에 기대와 희망, 행복감이 엇갈렸다.

《난 거짓말을 안한다. 아마 래일쯤엔 발표될게다.》

그렇다, 거짓말이 아니다. 래일이면 순장을 당하는 궁녀와 함께 조상궁이 귀비로 승격된다는 조정대신들의 령이 발표될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껴입으며 말했다.

《귀비가 된걸 축하해서 한잔 해야지. 상을 차리느라 그러지 말고 술과 잔만 가져오너라.》

조상궁은 기쁨에 넘친 얼굴로 술과 술잔을 가져왔다. 술잔에 정히 술을 따라 그에게 섬겼다. 그리고는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으며 큰절을 하였다.

《대감님의 은공을 죽어도 잊지 않겠소이다.》

그는 술을 쭉 들이키고 빈잔에 다시 술을 따랐다.

《너를 축하하는 술이니 너도 마시거라.》

《알아모셨사이다.》

조상궁은 무한한 행복감에 휩싸인 얼굴로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옥으로 다듬은것 같은 고운 목젖이 몇번 오르내리며 술이 넘어갔다. 내 이제 룡상의 주인이 되면 너를 더 사랑해주마.

잠시후 박정승은 후궁에서 나와 깊이를 알수 없는 밤어둠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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