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6


역시 박정승의 짐작은 빗나가지 않았다. 최정승은 날이 밝은지 얼마 안되여 궁성에 당도하였다.

《아! 상감마마, 이게 꿈이오이까 생시오이까. 믿어지지 않소이다. 망극하오이다.》

최정승은 외전에 들어서자마자 말뚝같은 작은 몸통을 통채로 어푸러뜨리며 애통한 목소리로 곡을 하였다. 작은 뱁새눈에 무슨 물이 그리도 많은지 좔좔 흘러내리는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허, 저놈이 아첨을 배우더니 우는데도 미립이 텄는걸. 박정승은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꼴이 역겨워 보다 못해 한마디 던졌다.

《최대감, 그만 진정하오.》

허나 최정승은 계속 바닥을 두드리며 통곡했다.

《날 말리지 마시오이다. 그래도 두 대감은 상감마마의 림종을 지켜드렸지만 나야 멀리 남쪽변경에 가있다나니 상감마마께서 운명하시는걸 보지 못하지 않았소이까. 실컷 울기라도 하게 해주시오이다.》

《우리도 상감마마께서 운명하시는걸 보지 못했소이다.》

문정승의 말이다.

그러자 최정승은 지금껏 슬피 통곡하던 사람같지 않게 난딱 일어서며 앙바틈한 목에 피대를 돋구었다.

《그게 사실이요? 머리큰 정승이 둘씩이나 곁에 있으면서 상감마마의 림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니 그게 어디 신하된자의 도리요? 대감들이 늘 부르짖던 충의는 빈말이였구려. 아, 이 최정승이 궁성에 있었어야 하는건데… 날 막내자식처럼 여기시며 늘 최정승, 최정승하시던 상감마마이시였으니 내가 곁에 있었으면 마음놓고 눈을 감으셨겠는데…》

최정승은 원통하다는듯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문정승은 할말을 찾지 못해 얼굴을 붉히며 어쩔바를 몰라했으나 박정승은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테지. 네놈이 대궐안의 형편을 속속들이 다 알고 떠났구나. 그런데도 예까지 오면서 생각해냈다는 수가 그게 고작이냐? 박정승은 느물느물 웃으며 최정승에게 면박을 주었다.

《최대감, 대감이 있었다 해두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을거요. 나는 물론이고 평소에 친족정승이라고 부르던 이 문대감도 부르지 않으셨는데 최대감이 있었다 한들 상감마마께서 찾으셨을것 같소?》

부러 올리추며 껴들자 문정승도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암, 그렇구말구요.》

최정승은 기색이 약간 달라지더니 말머리를 돌렸다.

《여봐라, 내가 가져온 왕새우를 상감마마의 제상에라도 놓아드리게 수라간에 가져가거라. 생전에 그토록 좋아하시던 왕새우여서 그걸 잡수시면 병이 나으실것 같아 불원천리하고 달려왔는데 야속하게도 한발 늦었구나.》

《알겠소이다.》

최정승의 사타구니를 긁어주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심복 유검상이 즉시 밖으로 나갔다.

유검상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박정승은 오른손으로 량쪽 메주볼을 번갈아 쓰다듬으며 최정승에게 눈길을 주었다.

《최대감, 대감은 전하의 령을 받고 남쪽변경에 가있었는데 동해의 특산인 왕새우는 어디서 구하셨수?》

슬쩍 날린 화살은 정통을 찔렀다. 막힐줄 모르던 최정승의 입이 빗장을 걸기라도 한것처럼 열리지 못하고 눈확에서 눈알만 뱅뱅 돌아갔다. 허나 그것도 순간일뿐 역시 팽이머리는 팽이머리였다.

《해청도에서 가져왔소이다. 백마국놈들이 변경에 많은 군사를 집결시켜놓는걸 보니 꼭 전쟁이 일어날것 같아 상감마마의 피난처를 정해드리려고 해청도에 갔댔지요.》

해청도에 갔다는걸 속이면 어명을 어긴 죄를 따지려 하였으나 국왕을 위해 갔댔다니 더 트집을 잡을수가 없었다.

이때 안사인이 그에게 다가와 귀속말로 알려주었다.

《부원군님이 오십니다. 지금은 그한테 잘 보이는게 상책이나이다.》

옳다. 룡상이 왔다갔다하는 운명적인 시각에 체면이나 체통을 생각하면 안된다. 지랄이 필요하면 지랄을 부리고 아양이 필요하면 아양을 떨어야 한다. 하되 저 생쥐놈보다 더 잘해야 한다.

박정승은 부원군이 걸어오고있는 회랑까지 들릴수 있도록 큰소리로 쩌렁쩌렁 울리게 말했다.

《대감들, 자고로 충신은 임금이 승하하면 뒤따라 순사하여 저세상에까지 가서 모셨다하거늘 우리도 그렇게 하여 지금껏 받아온 상감마마의 은총에 보답하고 만천하에 충신의 넋을 보여드리기요.》

《?!》

예측했던대로 두 얼굴과 눈들이 즉시 꼿꼿해진다. 별안간 청을 높인 목소리에 놀라고 순사하자는 말에 기겁한 모양이다.

《왜들 놀라시우? 목숨이 그렇게도 아깝소? 상감마마를 위해 살던 우리 목숨인데 상감마마가 없는 지금 우리의 목숨이 어디에 필요하오. 자 문대감, 문대감이야 상감마마의 피줄인데 뭘 망설이는거요?》

그는 만만한 문정승을 다그어대며 손을 내밀었다. 문정승은 엉겁결에 그가 내민 손을 덥석 쥐였다.

《목… 목숨을 끊… 끊읍시다.》

이번에는 비장한 표정으로 최정승에게 눈길을 주었다.

《최공은 우리와 뜻이 다르오?》

그의 부름에 최정승도 서서히 손을 든다. 그런데 그들의 손을 잡는것이 아니라 두손을 얼굴앞에 모아잡았다.

《정말 대감들의 충의에 감복을 금할수 없나이다. 대감들같은 충신들이 있어 이 나라가 지금껏 존재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줄로 아오이다. 허나 나까지 가면 상감마마의 장례는 누가 주관하겠나이까? 내 상감마마의 장례를 잘 치르는것으로 신하된 본분을 마지막까지 다하고 뒤따라 가겠으니 두분께서는 마음놓고 가시오이다.》

기막힌 팽이머리, 막힘없이 림기응변하는 언변에 입이 딱 벌어졌다. 정말 쥐창에도 걸리지 않을 기름쥐다.

문정승이 쥐고있던 그의 손을 슬며시 놓는다.

《박대감, 난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의 혼처를 정한 다음 인차 대감의 뒤를 따라가겠으니…》

문정승은 얼굴을 붉히며 어색해서 말도 변변히 못한다.

《그 집 아들이야 상감마마의 주선으로 우리 딸과 혼약을 맺지 않았소?》

《박대감네 딸이야 우리 아들보다 나이도 훨씬 우이고 또 궁합도 맞지 않는다는데…》

박정승은 쓰겁게 입을 다셨다.

《그렇게도 목숨들이 아깝소? 그리구도 충신인가 말이요. 좋소. 다들 싫다니 나 혼자라도 저승에 가서 상감마마를 모시겠소. 여봐라! 이 혈서를 부원군님에게 전해드리거라.》

그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품안에서 미리 준비해가지고온 혈서를 꺼내 안사인에게 주었다. 혈서를 받아든 안사인도 자못 비통한 표정을 꾸몄다.

박정승은 마지막결심을 내린듯이 하늘을 우러러 두팔을 한껏 벌리며 외전이 드릉드릉 울릴 정도로 소리쳤다.

《상감마마, 송도국의 충신 박정승 상감마마의 뒤를 따르겠나이다.》

이어 당장 칼을 뽑아 자결할것처럼 오른손을 왼쪽옆구리로 척 가져가던 그는 아뿔싸하며 자기의 이마를 쳤다.

《대궐에 칼을 차고들어오면 안된다는 왕궁의 법도만 생각하다나니 그만 칼을 못 가져왔구나. 아, 원통하구나! 칼이 없어서 상감마마의 뒤를 따르지 못하다니…》

《?!》

긴장해서 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최정승과 문정승은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렸다. 잠시후 최정승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박정승에게 한발 다가섰다.

《대감, 칼이 없다고 그 장한 뜻을 쉬이 버려서야 되겠소이까? 칼이 없으면 저기 대돌에 이마를 쪼아서라도 상감마마를 따라가시오이다.》

순간 박정승은 최정승을 향해 종발눈을 치떴다.

《여보 최대감, 그렇게 볼품없이 죽어서야 저승에 가서 그 흉한 얼굴로 어떻게 상감마마를 모시겠소?》

그의 말에 문정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박대감의 말씀이 옳소이다. 그렇게 볼품없이 죽어서야 안되지요.》

그런데 문정승의 다음말이 기막히다.

《여봐라, 밖에 시위무사 없느냐?》

호령소리를 듣고 문밖에서 외전을 지키고있던 한명의 시위무사가 들어왔다. 문정승은 무슨 령인가 하여 긴장해서 서있는 시위무사에게 박정승을 가리켜보였다.

《박대감께서 상감마마의 뒤를 따라 순사하시겠다고 하니 네 칼을 대감님께 드리거라.》

시위무사는 눈이 휘둥그래서 세 정승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그러는 시위무사에게 최정승이 발까지 탕 구르며 재촉했다.

《어서 빨리 드리지 못할고!》

시위무사는 흠칫 놀라며 서둘러 허리에 찼던 칼을 뽑아들었다. 최정승은 그 칼을 받아 박정승에게 내밀었다.

《박대감, 여기 칼이 있으니 어서 볼품있게 순사하시오이다.》

박정승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이겨내느라 얼굴의 오관이 모두 이지러졌다. 허나 일단 입으로 뱉아놓은 말이고 또 시위무사까지 지켜보는 판이라 그 칼을 받아들지 않을수 없었다. 이제는 다른 구실이 더 없으니 어떻게든 부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러 젖은 목소리를 지어내며 두 정승에게 말했다.

《그럼 내 죽은 다음에 묘나 잘 써주오.》

《그런 걱정은 조금도 말고 어서 편안히 가시오.》

최정승의 이 말에 문정승도 한마디 보태였다.

《이렇게 먼저 가는 박대감을 보니 감동을 금할수 없소이다.》

박정승은 서서히 칼을 목에 가져갔다.

《아, 상감마마! 송도국의 유일한 충신 박정승 상감마마를 모시고저 따라가나이다.》

얏! 하며 힘을 주는 소리가 나자 모두가 손에 땀을 쥐였다. 허나 다음순간 박정승은 피 한방을 묻지 않은 칼을 목에서 내리웠다.

《아니로다! 내 생각이 짧았도다!》

《?!》

《백마국놈들이 쳐들어오고있는데 상감마마께서 부원군에게 어떤 유언을 남기셨는지도 모르고 나까지 죽으면 공들이 누구한테 의거해서 나라를 지켜내겠소?》

최정승과 문정승의 입에서 동시에 허- 하고 허거픈 웃음이 흘러나왔다.

《힘들게 구실을 찾아내셨소이다.》

《수고하셨는데 어서 그 땀이나 씻으시오이다.》

그 찰나 도승지와 부원군이 외전에 들어섰다. 부원군이 조용히 오른손을 쳐들자 뒤를 따라오던 총관내시가 대전안의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상감마마의 유언이요!》

외전안이 순간에 물뿌린듯 조용해지고 너나없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엎드렸다. 박정승도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학수고대하던 유언이라 가슴이 쿵쿵 방망이질을 해댔다.

체소하고 로약한 부원군의 가냘픈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들려왔다.

《상감마마께옵서는 운명직전에 꿈을 꾸셨사온데 그 꿈에서 운봉도사님을 만나뵈우셨다고 하시였노라. 그러시면서 불원간 운봉산에서 수십년 도를 닦은 운봉도사가 나타나 새 룡상에 앉을 임금을 정해줄터이니 그 도사의 뜻을 하늘의 뜻으로 알고 그대로 따르라고 하시였노라.》

《상감마마의 유언을 삼가 받들겠나이다.》

모두가 국왕의 령전이 있는 침전쪽을 향해 세번 큰절을 하였다. 박정승은 누구도 모르게 혀를 깨물며 남들을 따라 절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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