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3


박정승이 몸을 싣자 사인교는 어둠속을 향해 출발하였다. 앞에서는 공골말을 탄 안사인이 길라잡이마냥 교군들을 인도하고 뒤에서는 바위같은 홍무관이 가라말을 타고 따르며 호위한다.

홍무관은 3년전 무과과거에 급제한 구척장신의 사내이다. 칼과 한생을 같이해온 박정승에게는 사실 호위무사가 따로 필요없었다. 그러나 민충이같은 문정승이 허씨 성을 가진 힘장사를 호위무사로 두고 거들먹거리는 꼴이 눈에 시여서 보란듯이 무과장원인 홍무관을 호위무사로 삼았다.

박정승은 교자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채 저 멀리 밤하늘에 떠있는 하얀 달을 바라보았다. 어둠속으로 전진하는 자기의 사인교처럼 달도 어두운 밤하늘을 헤가르며 떠가는것 같았다. 보름이 가까와서 달은 거의나 찬 둥근달이다. 왜서인지 어릴적의 일이 생각났다.

글공부를 시작한지 몇달 안되였을 때인데 하루는 날 일자와 달 월자를 잘 분간하지 못하여 아버지의 회초리에 종아리를 얻어맞았다. 그때 그는 마음속으로 글자를 만들어낸 사람을 원망하였다. 어린 그에게는 하늘의 해와 달이 하나로 생각되였다. 하나의 둥근 물체가 낮에는 해가 되고 밤에는 달이 되는데 왜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여 사람을 아리숭하게 하는지 리해가 안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어 절로 웃음이 나왔지만 왜서인지 오늘은 어릴적의 그 생각을 그대로 믿고싶었다. 밤하늘을 헤가르는 저 달은 지금의 나다. 이제 새벽이 되면 저 달이 해로 변하듯 나도 이 송도국의 왕이 될것이다. 믿고싶었다. 아니, 굳게 믿었다.

어린시절을 추억하느라니 자기가 택한 지금의 인생길이 백번 옳았다고 생각되였다. 그 선택이 없었더라면 오늘이 없었을것이다.

박씨가문은 대대로 아들이 귀하였다. 그의 5대조상인 현조가 왕조를 바꾸는 반정에서 큰공을 세워 공신이 되고 가문을 남부럽지 않은 명문거족으로 일떠세우기는 하였지만 그때 너무도 많은 사람을 죽여 박씨피줄이 끊길것이라는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그 저주가 들리였는지 고조때도 증조때도 그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대에도 딸들은 두셋씩 태여났지만 아들은 겨우 하나씩밖에 보지 못했다. 그래서 박씨가문에서는 간신히 이어지는 피줄이 아예 끊길것 같아 아들이 태여나면 절대로 손에 칼을 쥐지 못하게 하였다.

허나 머리가 그리 신통치 못한 집안이라 무과와 리별하고 문과로 나가면서부터는 크게 출세를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겨우 종5품의 벼슬에 머무르고 아버지 박첨량은 벼슬 한자리 얻어보지 못했다.

《대대로 무를 멀리하고 문에 뜻을 두어 글공부에 힘쓰면서 자손들을 주색으로 방탕하지 않게 하면 조상에게 욕이 미치지 않을것이요, 계절에 따라 조상의 제사를 잘 지내면서 부부끼리 화목하고 자식을 많이 낳으면 온 집안에 화기가 넘칠것이요, 집안이 화목하고 온갖 일이 뜻대로 펴이면 반드시 비범한 인물이 태여나 가문을 빛내일것이니라.》

이것이 박씨가문에서 세대에 세대를 이어 전해오고 지켜지는 신조였다. 그러나 그는 가문의 이 신조를 배신하였다. 그 배신이 그의 가슴속에 처음으로 찾아든것은 9살나던 때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온 궁성이 불안과 공포로 떨었다. 정오에 저자한복판에서 역적들의 목을 친다는 포고가 나붙었던것이다. 사람들에게 형벌을 구경시키라는 조정의 령에 따라 병졸들이 집집마다 돌아치며 궁성안의 남녀로소를 거리로 끌어냈다.

정오가 되자 요란한 북소리를 앞세우고 어마어마하게 창검을 비껴든 금위군의 병졸대오가 줄지어 나타났다. 그뒤로 죄수들을 실은 함거들이 삐거덕거리며 굴러왔다. 함거가 하나둘 앞을 지날 때마다 구경군들이 죄수들을 가리키며 아는체를 하였다.

《맨앞의 사람이 부마야.》

《그뒤는 누군가?》

《잘 모르겠어.》

《모두 높은 벼슬을 했다는데 뭐가 모자라서 역적짓을 했을고.》

《사람의 욕심이라는게 끝이 있수.》

어린 그는 맨앞의 함거에 실려가는 부마한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그도 아버지랑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동냥해서 이번 역모의 내막을 대충 알고있었다. 지난해에 국왕이 병으로 죽고 어린 세자가 즉위하였는데 왕이 어려서 직접 정사를 보지 못하니 누군가 섭정을 하여야 하였다. 이 섭정권을 놓고 왕의 삼촌과 전 왕의 부마사이에 암투가 벌어지다가 나중에는 피비린내 풍기는 싸움까지 벌어졌는데 그 싸움에서 부마가 패했다. 권력싸움의 패자는 역적이 되는 법이라 부마도 역적으로 단두대에 나서게 되였던것이다.

드디여 참형이 시작되였다.

《목을 쳐라!》

한 장수가 칼을 뽑아 높이 쳐들며 령을 내렸다. 형을 집행하는 관료가 부마의 이름이 적힌 패쪽에 먹을 묻힌 붓으로 금을 쭉 그어 형장을 향해 내던졌다.

병졸들이 부마를 끌어내여 꼼짝달싹 못하도록 형틀에 단단히 결박하였다. 힘꼴이나 쓰게 생긴 회자수가 옆에서 받쳐주는 술 한사발을 단숨에 쭉 들이키고나서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커다란 도끼를 공중에서 휙휙 소리가 나게 휘둘러댔다. 시퍼런 도끼날이 해빛을 정면으로 받을 때마다 발산하는 차디찬 흰빛이 아녀자들의 겁질린 비명소리를 자아냈다.

《야-앗!》

회자수가 힘을 모으며 도끼를 내리치는 순간 어린 그는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두눈을 딱 감았다. 잠시후 다시 눈을 뜨니 부마의 머리가 몸뚱이에서 떨어져 저만치에서 뒹굴고 그 주변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 끔찍한 광경을 더이상 볼수 없어 다시금 눈을 감았다.

이어 다른 죄수들이 차례로 끌려나와 목을 잘리웠으나 그는 계속 눈을 감고있었다. 회자수들이 지르는 고함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쳐 흠칫흠칫 놀랐다.

눈을 뜨나감으나 그 살풍경이 되살아나 며칠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회자수의 얼굴과 커다란 도끼가 계속 눈앞에 얼른거리고 회자수가 지르던 《야-앗!》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귀전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 모든 피비린 형벌의 시작을 알리던 칼이 눈앞에 언뜻거렸다. 참형의 시작을 알리며 한 장수가 뽑아들었던 칼, 그 칼이 부마를 목없는 귀신으로 만들었다.

그는 형장에서 부마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이전에는 부마를 볼래야 볼수가 없었다. 그만큼 부마는 딴 세상 사람이였다. 길가에서 부마의 행차를 만나면 서둘러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몰래 훔쳐봐도 안되였다. 그런데 그처럼 지체높은 부마도 그 칼앞에서는 공손히 목을 늘여야만 하였다.

칼, 그의 어린 가슴에는 그 칼이 거대한 권력의 상징으로 새겨졌다. 이때부터 그는 칼을 동경하였다. 정확히는 권력을 동경하였다. 베여주십사하고 늘이는 목이 아니라 베버리는 칼이 되여야 한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손에 칼을 쥐였다. 온 가문이 반대하였지만 악심을 먹고 무예를 닦아 무과에 급제하였다.

당시는 주변나라들과의 령토분쟁이 잦은 때라 무인들이 출세할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더우기 국왕이 《무예왕》이라고 부를 정도로 무를 좋아해서 무예만 뛰여나면 벼락출세를 할수 있었다. 그도 그렇게 출세하였다.

벼슬은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을 느끼는 소금물과 같아서 한계단 출세하면 그다음 계단을 바라보게 되고 그 계단에 올라서면 또 다음 계단을 바라보게 된다. 벼슬이 높아질수록 그의 욕망도 끝없이 부풀었다. 인생의 목표였던 칼에 대한 견해도 바뀌여갔다. 칼날이 되는가, 칼자루가 되는가? 칼날은 칼자루가 시키는대로 고생만 하는 존재였다. 무지렁이 백성들은 칼날을 무서워하지만 칼날은 칼자루의 꼭두각시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기를 쓰고 칼자루가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길에는 말할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있었고 지칠줄 모르는 왕성한 노력과 필사의 의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마침내 한사람에게만 복종하고 만사람에게 호령하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정승벼슬까지 톺아올랐다.

정승벼슬을 하사받던 날 그는 임금의 은총에 눈물을 흘리며 백배사례하였다. 신하로서는 더 바랄것이 없는 최상최고의 영광이고 행운이라 왕은에 감격하여 진심의 눈물을 흘리였다. 시대의 총아로 내세워준 국왕을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충신의 결의도 다졌다.

이때부터 그는 칼자루가 되여 칼날을 마음대로 부리였다. 자기의 말 한마디면 사시나무 떨듯 하는 부하들을 볼 때마다 권력의 쾌감으로 하여 마음이 흥그러워졌고 자기의 눈치를 보며 설설기는 고관대작들을 볼 때면 이 세상에 자기혼자만이 있는 기분이였다.

만족은 더 큰 만족을 바라는 법이다. 여북하면 넓은 바다는 메워 뭍으로 만들어도 사람의 욕심은 메우지 못한다고 했겠는가? 정승벼슬보다 더 높이 오르고싶었다. 그러나 그 우로는 벼슬이 없었다. 있다면 칼자루를 쥐는 손인 룡상뿐이였다. 룡상은 하늘이 점지해주는것이여서 신하로서는 감히 넘볼수도 없고 넘봐서도 안되는 신성불가침의 지위였다. 문무를 겸비한 국왕의 뛰여난 천품을 봐서도 룡상은 평범한 인간이 엉치를 들이밀 자리가 아니였다. 그래서 그는 국왕을 경모했다. 아니, 두려워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국왕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 두려움이 점차 사그라져갔다. 두려움이 사그라지기 시작하자 꿈에 왕관과 룡상이 얼른거리기 시작하였다.

정승이 아무리 만조백관의 령수라고 해도 어전앞에서는 이마가 땅에 닿도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 신하에 불과하였다. 어지를 받을 때도 무릎을 꿇어야 했고 어가앞에서도 무릎을 꿇어야 했다. 임금을 가리키는 《어》자가 들어간 모든것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꿈속에서 보이던 왕관과 룡상이 점점 정으로 돌에 쪼아박듯이 가슴에 새겨지기 시작하였다. 하늘이 국왕을 점지해준다면 임금은 하늘처럼 죽지 않는 영원한 존재가 되여야 할것이다. 그러나 임금도 세월의 흐름속에 나이를 먹을뿐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늙어 죽는다. 그러니 임금도 역시 사람이라는 소리다. 임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이것은 손만 뻗치면 《어》자가 내것으로도 될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때부터 그는 《어》자에 손을 뻗치기 시작하였다. 임금의 로환과 병환이 깊어질수록 그 손에 힘을 더 가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병약해도 임금은 역시 임금이라 자연 두려움이 앞섰다. 그런데 이제는 그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졌다. 산 임금은 두려워도 죽은 임금은 두려울것이 전혀 없었다. 지금껏 뻗쳐오던 손으로 이제는 《어》자를 그러쥐기만 하면 되였다.

《왕궁에 당도했나이다.》

안사인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서야 그는 상념에서 깨여났다. 눈앞에 왕궁의 대문이 시꺼멓게 앞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아니, 어서 들어오라고 그를 부르며 열어주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다시금 밤하늘을 우러러 달을 바라보았다. 둥근달은 여전히 어둠을 헤가르며 새벽을 향해 가고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새벽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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