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제 2 장


8. 야꾸자의 소굴을 찾아


리경식이 정신을 차린것은 다음날 오전이였다. 눈을 떠보니 병원인듯싶은 어느 한 방에 자기가 누워있는것이 아닌가.

《인제야 정신이 드셨군요.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머리맡에 앉아 기쁨을 금치 못하며 제일먼저 반기는 사람은 오사까부본부의 조동수였다. 그의 말을 듣고서야 경식은 어제 밤 마음이 놓이지 않아 따라왔던 우달근이 골목길에 쓰러져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여기로 데려왔다는것이며 소식을 받고 달려온 총련조직의 일군들이 병원에서 그를 지켜 온밤을 지새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수고를 끼쳐드려서 면목이 없습니다.》

경식이 심중의 흥분을 묵새기며 이렇게 말하자 조동수가 그의 손을 부여잡고 머리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잘 돕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진겁니다.》

그럴 때 우달근이 방안에 들어왔다.

《깨나셨군요. …》

그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경식이 누워있는 곁에 와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웨까?》

경식은 생각을 더듬으며 간밤에 벌어졌던 일들을 자초지종 이야기해나갔다. 그가 골목길에서 괴한들의 습격을 받던 일을 말하자 달근이 대뜸 격한 어조로 다우쳐묻는것이였다.

《대체 그게 어떤 놈들이웨까?》

《혹시 시미즈라는자의 작간은 아닐가요?》

조심스럽게 자기 의견을 내비치는 조동수에게 우달근이 무겁게 머리를 흔들어보였다.

《그러지 않아두 한바탕 그자를 다불렀다세우구 오는 길이우다. 헌데 내 보기엔 시미즈가 한짓 같진 않수다. 그런짓까지 저지를만큼 담통이 큰 작자는 아닌걸요.》

금방 혼미상태가 가셔진 속에서도 시미즈소리가 나오자 경식은 궁금증이 치밀어올랐다.

《시미즈가 다른 소린 안했습니까?》

경식의 물음에 달근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 좀생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는게 들어보나마나 뻔하지요. 가시애비는 제 사위에게 밀어던지더니 사위녀석은 또 장인령감과 합의를 볼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나요. 분명 어제 저녁에두 일부러 리선생을 피한 눈치 같습데다. 허 참, 통 무슨 감투끈인지 모르겠다니까요. 나한테 들어붙질 못해 그렇게두 안달아하던자가 이 핑게 저 핑게 둘러대면서 살살 꼬리만 사리려드니 말이우다. 워낙 눈앞의 리익만 밝히는자여서 목돈을 쥘것 같으니까 인젠 빠찡꼬따윈 안중에도 없다는건지…》

리경식의 얼굴이 어두컴컴해졌다. 시미즈가 그리도 늑장을 부리는 까닭이 어데 있을가? 단지 상대의 조바심을 기껏 부추겨서 이 기회에 한몫 톡톡히 잡아보려는 욕심때문인가? 어제 밤에 습격해온자들이 시미즈와 무관한자들이라면 과연 그자들은 어떤자들인가?…

경식이 꼬리를 물고 갈마드는 의문부호들을 그러안고 씨름질을 하고있는데 생각에 잠겨 침중히 말하는 조동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폭행을 가해온 괴한들의 정체부터 밝혀내는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아무래도 수수께끼의 실마리는 그자들에게서 찾아야 할것 같았다. 경식은 자기가 본 놈팽이들의 인상특징을 생각나는대로 두사람에게 알려주었다. 그가 땅딸보의 인상을 설명할 때 우달근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달근은 부리부리한 눈망울이 튀여나올것처럼 두눈을 지릅뜨며 경식에게 따지고들었다.

《분명 가슴에 〈메 산〉자를 입묵한 놈이였겠수다?》

《예.》

경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달근은 주먹으로 무르팍을 떡메치듯 하며 부르짖는것이였다.

《야나가와꾸미의 야마따라는 놈이 틀림없는것 같수다!》

《야나가와꾸미?》

경식이 의아해하자 달근의 설명이 뒤따랐다.

《오사까에 그런 이름을 가진 야꾸자패가 있수다. 수년전에 경쟁세력을 완전히 풍지박산내구 지금은 오사까에서 제노라고 활개치는것들이지요. 그 패거리의 두목이 야나가와 지로라는자인데 야마따는 호위원격으로 야나가와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놈이우다.》

달근의 이야기는 경식의 머리를 더욱 착잡하게 만들었다.

(대관절 야꾸자패거리가 무엇때문에 여기에 끼여들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석연치 않아 답답한 숨만 몰아쉬는데 우달근이 치받쳐오르는 산같은 밸을 도저히 누르지 못하겠는지 벌떡 일어섰다.

《에익- 내 당장에 그놈들과 회계를 까야겠수다!》

그러는 그를 조동수가 덩둘해서 쳐다보았다.

《아니, 혼자서 말입니까? 그러다가 무슨 일을 당하시려고…》

하건만 달근은 검붉어진 두볼을 푸들푸들 떨며 물러설념을 안한다.

《그깟놈들 무서울거 없수다. 나두 한때 노가다판에서 어지간히 굴러봤는지라 그러루한 놈들은 능히 다뤄낼 자신이 있수다.》

그래도 조동수의 얼굴에 근심스러워하는 빛이 가셔지지 않자 우달근은 호기있게 한손으로 허공을 내그으며 괄괄스럽게 말했다.

《너무 걱정마시우다. 나두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거우다. 이 고장 야꾸자들의 속내를 좀 알기도 하거니와 야나가와꾸미의 행동대장이 다나까 고다로인데 실은 남창수라구 나처럼 제주도에 고향을 둔 〈민단〉계동포지요. 고향에 있을 때부터 그 사람 부친과 난 호형호제하며 지내온터라 창수도 날 삼촌이라 부르며 따랐수다. 그 녀석이 비록 야꾸자가 돼버리긴 했지만 어릴 때 일본에 건너와 부친을 잃구 고생개나 해선지 인정두 있구 량심적인 면두 좀 남아있다구 할지. 거기다가 어느 정도 능력두 있구 해서 요즘엔 두목의 오른팔노릇을 하면서 야나가와꾸미에서 무시할수 없는 실권을 차지하고있다더군요. 원체 야나가와꾸미에 그 사람 같은 〈민단〉동포들이 적지 않수다. 이전에도 몇번인가 나쁜 놈들의 사촉을 받구 총련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걸 되게 닦아세운적이 있더랬지요. 근래에 와선 좀 얌전해졌다 했더니 허 참, 이런 일이 생길줄이야… 좌우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 당장 가서 그놈들의 토설을 받아내구야말겠수다!》

듣고보니 우달근도 속궁리가 있어서 하는 말이였다. 경식은 마음속으로 그의 말을 수긍하였다. 달근의 말대로 자기를 습격한자들이 야나가와꾸미의 깡패들이 맞다면 화가 도리여 복이 된셈이다. 지금의 정황에서 가장 촉박한 과제는 향악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흑막속의 일들을 시급히 알아내는것이였다. 그것을 모른채 시미즈를 쫓아다니며 달구어봤댔자 개구리대가리에 찬물끼얹기가 아니겠는가. 야나가와꾸미것들은 저질러놓은 죄가 있는 놈들이라서 덜미를 단단히 틀어쥐고 족쳐댄다면 분명 승산이 있을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미즈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새로운 궁리가 나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경식의 얼굴에 긴장된 힘이 실려왔다. 그는 끙- 하고 상반신을 일으켜 앉으며 달근에게 말했다.

《나도 부회장아버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자 우달근도 조동수도 퍼들쩍 놀라며 만류했다.

《아니, 그 몸으루 어델 가신다는거요? 아예 그런 생각은 하지두 마소.》

《우리가 모든 대책을 취하겠으니 마음놓으시고 당분간은 안정을 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경식은 고집스럽게 도리머리만 흔들뿐이다.

《아닙니다. 내가 꼭 가야 합니다.》

좀처럼 자기 뜻을 굽히려 하지 않는 그에게 결국은 두사람 다 손을 들고야말았다.

《좋수다. 그럼 나하구 같이 그놈들을 만나러 갑시다.》

우달근이 어쩔수 없다는듯 승낙을 해버리자 조동수가 신중한 낯빛으로 뒤를 달았다.

《상대가 폭력단인것만큼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대비책은 세워야 할것 같습니다. …조청원들로 호위도 조직하구요.》

조동수는 그 자리에서 몇가지 방비책을 내놓았다. 시원스럽고 상냥한 청년인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여간 치밀하고 차근차근한 일군이 아니였다.

그날 오후였다. 지난밤에 비가 쏟아져내렸건만 하늘은 여전히 찌뿌둥해있었다. 리경식은 우달근과 함께 야꾸자패거리들을 찾아 떠났다. 대추방망이처럼 단단해보이는 조청원 여럿이 멀찌감치에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심성의껏 자기를 도와나선 동포들의 모습에 경식은 마음이 든든해왔다.

큰길에 나선 달근의 행색은 여느때와는 류다른데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철인데도 회색양복에 넥타이를 미끈하게 받쳐매고 금고리를 박은 단장까지 짚고있는 그는 풍채만으로도 위엄을 느낄만큼 자못 도고해보였다. 야꾸자들을 위압하기 위해 일부러 차림새에 신경을 쓴것 같았다.

오사까의 기따구로 간 그들은 《야나가와예술》이라는 간판을 내건 흥행업소앞에 이르렀다. 그곳이 바로 야나가와꾸미의 소굴이였다. 우달근의 설명에 의하면 오사까에서 세력권을 확고히 다진 뒤 야나가와꾸미는 자금마련을 위해 가무와 영화, 류행음악 등 흥행분야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우달근이 묵직한 몸놀림으로 현관문을 넘어섰다. 그들이 현관안에 들어서니 경비원인듯싶은 두 녀석이 시시덕거리며 잡담을 하다가 이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달근은 그자들의 눈길을 턱으로 눌러버리며 거드름스럽게 분부했다.

《어이, 다나까 고다로를 불러라.》

그러자 새파란 녀석 하나가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건방을 떠는것이였다.

《당신 누군데?》

순간 우달근의 입에서 벼락같은 욕설이 터져나왔다.

《뭣이 어째? 이 알부랑자같은 놈아!》

달근은 당장에 그놈을 쳐죽일듯이 단장을 치켜들고 건물이 떠나가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놈! 야꾸자들은 례의와 의리를 목숨으로 안다더니 다 개나발이란 말이냐? 이놈! 이 불상놈같으니! 제 애비벌 되는 사람보구 뭐 당신? 이놈아, 너희네 두번째 두령을 이름으로만 부른것을 봐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안 가느냐? 이 후레자식같은 놈!》

우달근이 어찌나 기세를 부렸던지 두 녀석은 대번에 독수리앞의 메추라기꼴이 돼버렸다. 놈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자 달근은 눈을 끔뻑해보이며 경식에게 말했다.

《도깨비한텐 홍두깨가 제일이라구 그저 이따위것들은 처음부터 된매로 다스려야 하우다.》

그 말을 들으니 경식은 창황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사실 여기로 올 때는 마음 한구석에 근심도 없지 않았건만 시작부터 우달근이 깡패들을 되게 달구어대는걸 보니 은근히 배심이 든든해지는것이였다.

잠시후 검은색티샤쯔를 입은 사나이가 앞의 두 녀석을 거느리고 현관에 나타났다. 녀자같이 갸름한 얼굴에 입술이 얄팍하고 눈찌가 매서운 사나이였는데 구리로 부은듯 고르롭게 발달된 근육들이 혈기에 넘쳐 샤쯔안을 팽팽하게 채우고있었다.

사나이는 달근을 보자 황급히 달려와 절을 했다.

《아니 삼촌, 기별도 없이 웬 일이십니까?》

그가 다름아닌 남창수였다. 오줌을 싸듯 엉거주춤이 서있던 졸개녀석들은 자기네 부두령의 입에서 삼촌이라는 말이 나오자 기가 질려 뺑소니를 치고말았다. 우달근이 기다렸다는듯 단장으로 바닥을 두들기며 이번에는 조선말로 호통을 뽑았다.

《창수 이놈아! 도대체 애새끼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내가 이런 대접을 받게 하느냐, 엉! 건방진 놈같으니… 저것들이 분수를 모르는걸 보니 네가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게 아니냐?》

분기가 충천해서 꾸짖는 우달근의 질책앞에 남창수는 어쩔바를 몰라 쩔쩔매기만 했다.

《삼촌, 고정하십시오. 아래것들이 잘못했나 봅니다. 제가 잘 다스려놓겠으니 마음을 푸십시오. 헌데 같이 오신분은?》

《내 친구되는분이다.》

《아, 그렇습니까. 다나까 고다로라고… 아니, 남창수라고 불러주십시오. 자, 어서 제 방으로 가십시다.》

달근은 그러는 조카를 거들떠보지도 않은채 성난 수닭처럼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앞장서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선 그들이 자리에 앉기 바쁘게 남창수가 성급히 물었다.

《그런데 졸지에 무슨 일이십니까?》

《집에선 다 무고하냐?》

우달근이 틀스럽게 안부부터 물어서야 창수는 뒤늦게 실책을 깨닫고 바빠했다.

《아이구, 이거 죄송합니다. 덤벼치다나니 그만 인사가 늦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너두 점점 그 알부랑자들을 닮아가는구나.》

삼촌이 지청구를 늦구지 않자 조카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소연을 한다.

《그 말씀은 너무하십니다. 제 마음이 어떻다는거야 삼촌이 잘 알지 않습니까. 저의 량심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비록 고향에 있는 친척들때문에 제가 〈민단〉에 남아있습니다마는 그렇다고 사람의 도리야 잊겠습니까. 총련사람들만 정의롭고 량심이 있는게 아닙니다. 〈민단〉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정을 터놓는 창수의 말에 우달근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조금 가라앉은 어조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다면 말 좀 하자. 난 그래두 너만은 이 험한 판에서두 정직하구 깨끗하게 살자구 애쓰는줄 알았다. 헌데 갑자기 무슨 도깨비바람이 불어서 감히 동족을 해치려구 드느냐?》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남창수가 뻥뻥해서 되묻는 소리였다. 그바람에 달근이 옆에 앉은 경식을 가리키며 다시금 어성을 올렸다.

《너 이놈! 어제 밤 이분이 요도가와구에서 너희네 야나가와꾸미것들한테 테로를 당했는데두 시치미를 뗄터냐? 이 날불한당같은 놈들!》

시뻘겋게 달아오른 우달근의 얼굴에서 쥐가 풀떡거렸다. 창수는 아연실색하여 사정하다싶이 말했다.

《삼촌, 정말이지 전 금시초문입니다.》

경식은 남창수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보아하니 정말로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있는것 같았다. 그러거나말거나 우달근의 노기충천한 기세는 좀체로 수그러들줄 몰랐다.

《이놈아! 내 형벌 되시는 너의 아버님이 왜놈들에게 매를 맞구 작고하신걸 생각하면 지금두 치가 떨리는데 아들이란 놈이 인젠 원쑤 왜놈행세를 하면서 제 동족의 피를 보지 못해 날뛰다니, 그래 내가 가만있게 됐느냐! 당장 바른대루 이르거라! 지난번처럼 또 나쁜 놈들한테서 총련사람들을 해치라구 부추김을 받았느냐? 대체 어떤 놈이 그렇게 하라구 시키더냐? 너 이놈! 나두 총련사람이다! 그러니 네놈이 이 삼촌까지 해치겠다는거냐? 이 고약한 놈 같으니라구.》

우달근은 황소숨을 내불며 거세게 씩씩거렸다. 내찌르기라도 하듯 일어선 꿋꿋한 그의 눈섭우에 손가락같은 피줄이 무섭게 뻗쳐올랐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고 개몰리듯 몰리던 창수가 볼멘 소리로 투덜거린다.

《삼촌, 삼촌한텐 내가 그런 놈으로 보이십니까? 속시원히 말씀 좀 해주십시오. 우리 야나가와꾸미에서 어떤 놈이 그따위짓을 했다는겁니까?》

잠자코 있던 경식이 조용히 물었다.

《여기 야마따라는자가 있소?》

《야마따요? 그는 오야붕의 사람인데요.》

남창수가 얼떠름해하자 우달근이 눈을 부릅뜨고 뚱겨주었다.

《간밤에 이분을 해하려던자가 바루 그놈이다!》

그 말에 창수의 얄팍한 입술이 돌처럼 굳어져버렸다.

《그럼 오야붕이?》

입안으로 이런 소리를 뭉개던 그는 믿어지지 않는지 도리질을 쳤다.

《아니, 오야붕이 나와 한마디 상론도 없이 그런짓을 할리 없습니다. 분명 무슨 오해일겁니다.》

《뭐라구?》

그만에야 우달근의 부아통이 또다시 터졌다. 달근은 곁에 세워두었던 단장을 거머쥐며 벌컥 역정을 냈다.

《화를 당한 당사자가 제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두 오해라구? 창수 이놈! 가슴에 〈메 산〉자를 새기구 다니는 깡패가 오사까에 야마따말구 또 있단 말이냐? 정신을 차려라, 이놈!》

창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말았다. 멍하니 삼촌의 얼굴만 바라보는 그의 두볼에 검푸른 피가 서서히 솟구쳐 퍼져가고있었다. 한동안 머리를 싸쥐고 모지름을 쓰던 그는 마침내 얼굴이 해쓱해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에잇, 갑시다. 당장 오야붕한테 가서 빠개고맙시다!》

남창수는 그길로 두사람을 데리고 오야붕의 방에 갔다. 사무실앞에 이른 그는 주먹으로 문짝을 때려열고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갔을 때 오야붕인 야나가와 지로는 가죽을 씌운 커다란 쏘파에 앉아 류행잡지를 뒤적거리고있는 참이였다.

짤막하게 두사람을 소개하고난 창수가 야나가와앞에 뻗지르고 서서 따지듯 물었다.

《어제 밤 요도가와구에 야마따를 보냈댔소?》

《…》

《총련계사람을 해치라고 당신이 시켰는가 말이요? 미리 말해두는데 날 얼려넘길 생각은 마오.》

남창수의 두눈이 매섭게 번뜩이며 웃었다. 허리가 꼿꼿해질 정도로 들이대는 비수같은 질문에 야나가와는 얼어붙은듯 떠듬적거리기만 했다.

《어, 사실은 그게…》

더 묻지 않아도 그자의 얼굴에 모든것이 씌여져있었다. 리경식이며 우달근이 일시에 그자에게 눈초리를 도사리는데 별안간 남창수가 앞에 놓여있던 응접탁을 냅다 발길로 떠박지르는것이 아닌가.

그 서슬에 탁이 뒤집어지고 재털이며 차잔들이 어지럽게 방바닥에 나딩굴었다. 야나가와가 허둥대며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다… 다나까상!》

남창수는 분노에 찢어질듯 한 눈찌로 야나가와를 노려보며 야멸차게 들이댔다.

《당신 우리한테 뭐라고 훈시했소? 우리 야나가와꾸미는 도의와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제아무리 강하고 단단하게 보이는 조직이라 할지라도 그런것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고 하지 않았나?! 한데 아무런 죄도 없는 조선사람을 건드렸다는게 대체 뭐요? 당신이 말한 도의와 정의라는게 조선사람과는 상관없다는건가? 난 그래도 당신을 믿고 당신을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는데 인제와선 야마따 같은 자식이나 끼고돌면서 날 따돌리는구려. 흥, 그러니 나도 센징이라는거지.》

《다나까상, 그런게 아니라…》

야나가와가 급해맞아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이미 단솥에 물 붓기였다. 창수는 힘줄이 불거진 얼굴을 푸들대며 목통이 찢어지도록 고함을 쳤다.

《에잇, 난 절대로 가만있을수가 없어! 발길로 네 배때기에 구멍을 내겠단 말이야. 그래 이 야나가와꾸미가 너의 마음대로 움직여줄것 같은가?!》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사나이의 억센 골격에서는 단순한 위협이 아닌 야성적인 박력이 뿜어나오고있었다. 야나가와는 낯이 온통 흙빛이 되여 남창수를 달래려고 안깐힘을 다했다.

《다나까상, 제발 좀 참으라구. 내가 잘못했네. 실수했어. 옛친구의 부탁을 뿌리칠수가 없어서 그만…》

《옛친구의 부탁이라니?》

야나가와의 말을 무지르며 우달근이 성급히 묻는 소리였다. 야나가와는 손수건을 꺼내 목덜미에 내밴 땀을 문지르더니 맥빠진 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나까상의 삼촌이시라니 믿고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나니와구에 있는 강무관을 아시는지요?》

《유술구락부말인가?》

우달근이 반문하자 야나가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옳습니다. 실은 강무관의 권회장이 오래전부터 나와 교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제 그가 나를 찾아왔더군요. 그의 말이 이찌가와라는 자기 친구가 일본땅을 샅샅이 뒤지면서 탐문하고있는 물건이 있는데 그걸 거의 찾게 된 지금에 와서 난데없이 조총련계사람 하나가 나타나 훼방을 논다는게 아니겠습니까. 결국 그 사람이 다시는 그럴념을 못하게 따끔히 훈계해달라는 부탁이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민단〉계인 권회장에게서 그런 청탁을 받으니 왠지 께름직하더군요. 자기네가 직접 나서기 곤난하니까 우리 손을 빌리자는게 아닙니까. 하지만 이전에 권회장에게서 신세를 진 일도 있고 해서 종당에 난 그의 부탁을 수락하고말았습니다. 처음엔 다나까상과 상론할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 친구가 받아들이지 않을건 뻔한 일이여서 하는수없이 야마따를 조용히 불러 일을 맡겼던겁니다. 진작 다나까상의 삼촌분과 관계되는 일이라는걸 알았더라면 애당초 손을 대지 않는건데… 정말 후회가 큽니다.》

야나가와가 다시금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데 우달근이 울컥해서 기염을 뿜어댔다.

《나와 관계되든 안되든 야나가와꾸미가 주대도 없이 나쁜 놈들의 말에 놀아난단 말인가? 이역땅에 와서까지 제 동족을 물어메치려구 날뛰는 그런 얼간이들에게 면박은 주지 못할망정 되려 손발노릇을 하다니, 그래가지구서야 야나가와꾸미의 체면이 뭐가 되겠나! 여기 같이 온분이 바루 어제 밤에 화를 당한분이네. 리선생두 말씀하실게 있으면 하시우다.》

경식을 돌아보던 달근의 눈길이 의아해졌다. 리경식이 고개를 짓수굿한채 무슨 생각엔가 골몰해있었던것이다.

《아니 리선생, 왜 그러시우?》

우달근이 이렇게 물어서야 경식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경식은 대충 얼버무리고나서 야나가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권회장의 친구라는 사람의 이름이 분명 이찌가와라고 했는가요?》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야나가와가 떠름해서 하는 대답이다.

경식은 심장의 다급한 박동소리를 듣고있었다. 이찌가와라면 가루베에게 자기에 대해서 자상히 말해주었다던 그 사람이 아닌가. 좀전에 야나가와의 입에서 그 이름을 처음 듣는 순간 경식은 돌연히 시퍼런 칼날이 등골을 내리긋는 선뜩함을 느꼈다. 이찌가와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따라왔는가? 그럼 가루베도 시미즈에 대해 알고있다는건가? 홀연 이마전에 식은땀이 내돋는데 경식의 그런 내심을 알리 없는 야나가와가 목을 꺾으며 깍듯이 사죄를 하는것이였다.

《아무튼 야나가와꾸미의 명분을 흐려놓은데 대해 부하들과 여러분앞에서 통렬한 책임을 느낍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믿어주십시오. 야나가와꾸미는 앞으로 조선사람들을 해치는 일이 절대 없을겁니다. 사나이로서 일구이언 안한다는것을 약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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