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제 2 장


2. 옛 관헌의 일장춘몽


리경식이 아라기의 별장에서 헛물을 켜고 돌아온지 여러달 지난 이듬해 초봄이였다.

그날은 간또지방을 돌며 고물장사를 하던 경식이 보름만에 도꾜로 돌아온 날이였다. 물질문화보존협회를 내온 이후 사람들과의 접촉이 보다 잦아졌지만 리경식은 겨를이 생기면 그렇게 고물행상의 길에 나서군 하였다. 한것은 자금마련에도 목적이 있었지만 그 과정을 통하여 문화재와 관련한 이런저런 소식들도 얻어들을수 있었고 또 뜻하지 않게 유리한 기회들도 이따금 만나군 하였기때문이였다.

이번에도 경식은 자전거를 끌고 바다가를 따라 이바라기현쪽으로 올라가서는 다시 내륙쪽으로 꺾어들어 도찌기현과 군마현, 사이다마현을 거치며 간또일대를 한바퀴 돌고 오는 참이였다. 여기저기 들려 고물을 사들이며 길을 가다가 어느 정도 모으면 근처의 도매상에 가져다 팔고 그러고나서 다시 길을 떠나군 하느라니 수입도 일정하게 생기고 조선문화재들도 몇점 구입할수 있었지만 정작 그가 애타게 찾고있는 《조선향악보》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였다.

오후에야 도꾜에 이른 경식은 그간 혹 다른 소식이 없는가 해서 협회부터 들렸다. 그런데 조그마한 어느 시계점의 2층방을 세내여 쓰고있는 협회사무실에 들어서니 히사꼬가 반색을 하며 그를 맞는것이였다.

《아이, 선생님!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무슨 일이요?》

경식이 얼떠름해서 묻자 히사꼬는 새소리같이 맑은 특유의 고음으로 희색이 만면해서 대답했다.

《하또리선생님이 리사선생님을 만나시겠다구 몇번이나 찾아왔었습니다.》

《하또리선생님이?…》

《예, 조선에서 향악자료들을 가지고 건너온 사람을 찾았답니다.》

《엉, 향악자료들이라구?》

경식은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게 정말이요? 누구요? 대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다오?》

경식은 너무도 놀라운김에 희고 동글갸름한 처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줄도 모르고 히사꼬를 부여잡은채 숨가삐 다우쳐물었다.

《자세한 내용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전 다만 하또리선생님이 부탁하셔서 니시다 요시오라는분의 주소를 알아보았을뿐입니다.》

히사꼬의 대답이였다. 니시다 요시오? 경식이 어리둥절해서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처음 듣는 이름이였다.

얼마후 그들 두사람은 어느 한 차집에서 하또리 류따로를 만났다.

《조선에 가있던 음악관계자들을 수소문하다가 입수한 정보요. 제정때 니시다 요시오라는 학자가 리왕직아악부에서 향악관계자료들을 전문으로 조사하였다는구만. 패전후 그 학자는 일본으로 돌아왔는데 십중팔구 〈조선향악보〉를 그가 가져왔을거라는거요. 현재 그 학자가 구니다찌에서 살고있다더군. 주소는 히사꼬양이 알아보았소. 리선생, 이번에는 틀림없을것 같소.》

하또리가 구레나룻을 기세좋게 갈라제끼며 하는 말이였다.

《리왕직아악부》란 일제시기 리왕직에 소속되여있으면서 조선봉건왕조시기의 궁중음악과 관련된 일들을 전문적으로 맡아보던 기관이였다. 조선강점직후 일제는 몰락한 리씨왕실과 왕족들의 생활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동태를 계속 감시하고 장악관리할 목적으로 서울의 창덕궁안에 《리왕직》이라는 기구를 내왔었다. 리왕직을 조작한 일제는 옛 왕실의 일체 재산은 물론 제례의식까지도 철저히 관할통제하는 한편 조선사람들에 대한 회유책으로 수백여년간 전해져온 궁중음악을 장려한다는 광고아래 리왕직안에 아악부를 내오도록 《선심》을 베풀었던것이다. 그러한 리왕직아악부에서 향악자료들을 다루던 인물이라면 꽤 희망이 있어보일만도 한 일이 아닌가.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말 큰일을 하셨습니다.》

경식이 고마운 심정을 달리 표현할길 없어 하또리의 손을 붙잡고 놓을줄 모르는데 하또리가 정색해서 뒤말을 잇는것이였다.

《인사는 나보다도 엄선생에게 해야 될것 같소. 고마무라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뒤에 엄선생이 날 찾아와 절절히 부탁하더구만. 리선생의 일에 계속 협력해달라고 말이요. 비단 나만이 아니라 일본진보계의 여러 인사들이 그런 부탁을 받았다고 하오. 그러고보면 리선생은 나보다는 훨씬 행복한 사람이요. 자기 동포들이 뒤에서 억척같이 받쳐주고있지 않소.》

엄선생이란 엄길호를 이르는 말이였다. 리경식의 소개로 알게 된 여러해전부터 엄길호와 하또리는 재일조선인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와 일본의 민주화 등 서로의 공통된 지향을 실현하기 위해 사심없이 협력해오고있었던것이다. 향악보를 찾기 위해 자기 못지 않게 진심을 기울이고있는 엄길호의 숨은 노력을 알게 되자 경식은 피가 뜨거워났다. 하또리의 말이 백번 옳았다.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하다 해도 자기뒤에는 언제나 미더운 해외교포조직인 총련이 지켜서있지 않는가. 하거늘 두려울것이 무엇이고 주저할것이 무엇이랴.

더 지체할것이 없었다. 리경식은 그길로 히사꼬와 함께 니시다를 찾아 떠났다.

도꾜 중심부에서 전철을 타고 25분가량 가다가 다시 내려서 30분쯤 걸으니 구니다찌라는 곳이 나졌다.

(정말 여기서 향악보를 찾게 될가?)

수시로 떠오르는 이런 의문에 경식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조마조마해났다. 정말 하또리의 말대로라면 얼마나 좋으랴. 설사 향악보를 찾지 못하는 경우에라도 니시다가 해방전에 조선향악을 조사한 사람이라니 하다못해 행처는 알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뜬소문을 듣고 헛된 기대를 걸었던 경우가 어디 한두번이였던가.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곁에서 히사꼬가 대기를 가득 채운 봄내에 취한듯 시 한구절을 외운다.


처마끝으로 비쳐드는 해살 따사로운 봄날에

하염없는 내 마음 잡아흔들며 꽃잎은 흩날려

떨어지도다


겉멋이 섞이지 않은 꾸밈없는 랑송을 듣고 경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히사꼬는 시인이 돼야 할걸 그랬나보오.》

그러자 처녀는 고개를 젖히며 까르르 웃더니 무랍없이 경식의 손을 잡아끌었다.

《선생님, 서둘러요. 날이 저물기 전에 그 학자를 찾아야 할텐데…》

아닌게 아니라 서쪽하늘가에서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가고있었다. 리경식은 자기 일처럼 신이 나서 걸음을 재촉하는 처녀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순진한 마음속에서 솟아나는듯 입가에 늘 어려있는 맑은 웃음, 이쁘장한 깜장눈에서 쉬임없이 약동하는 발랄한 서정과 랑만, 연미색코트를 입은 가뜬한 봄차림새며 목에 차랑거리는 중발머리, 통통 튕겨나는듯 한 걸음걸이에서 풍겨오는 싱싱한 젊음… 자그마하고 따스한 처녀의 손에서 허물없는 친밀감이 느껴졌다.

대학을 나온 뒤 얼마간 잡지사에서 일하던 히사꼬는 한해전부터 협회에 들어와 고서목록수집을 맡아보고있었다. 그의 계획은 가까운 앞날에 조선의 전통도자기에 대한 연구론문을 완성하는것이였다. 원래 대학에서 일본도자기의 발전사를 전공하던 그는 차츰 조선의 옛 도자기가 일본도자기의 원류이며 따라서 조선도자기사에 대한 연구가 없이는 일본도자기사연구가 불가능하다는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히사꼬가 그런 인식을 가지기까지에는 력사학자인 아버지의 영향도 적지 않았던것 같았다. 일본문화의 많은 부분이 조선에서 넘어왔다고 확신하는 처녀의 아버지는 평소에도 일본이 감행한 식민지통치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조선에서 략탈해온 모든 문화재들을 조선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안목에 반해서인지 혹은 사람됨에 끌려서인지 협회에 들어온 후 히사꼬는 인츰 경식을 스승처럼 존경하고 맏오빠처럼 따르기 시작하였다. 리경식도 그런 처녀에 대해 따뜻한 믿음을 느끼고있었다. 의롭고 선량한것을 동경하는 처녀, 로학자들의 손때가 묻은 낡은 책장을 번지며 탐구에 전념하다가도 여가가 생기면 즐겨 시를 써보군 한다는 다정다감한 처녀였다. 자기도 조국을 사랑하지만 거짓으로 엮어진 《황국사관》에는 혐오를 느낀다던 처녀의 스스럼없는 고백에서, 불의와 허위가 살판치는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깃 하나 흐트리지 않은 학처럼 의연하게 살아온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오연한 그 태도에서 경식은 고루한 국수주의의 구습과 황금만능의 사회악에 반발하는 일본청년들의 새로운 지향을 찾아볼수가 있었다. 그런것으로 하여 경식은 처녀와 이야기하는것이 즐거웠고 처녀가 연구론문을 원만히 완성하도록 여러가지로 왼심을 써왔던것이다.

히사꼬가 알아낸 주소를 찾아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던 그들은 드디여 《니시다 요시오》라는 문패가 달린 집을 발견할수가 있었다. 검정색판자벽을 둘러친 허름한 목조단층집이였다. 밑둥이 썩어가는 판자울타리며 물러앉은 지붕의 한쪽추녀 그리고 창가림을 대신하듯 유리창에 낀 뿌연 먼지를 보니 주인의 손길이 덜 미친 집이라는것을 한눈에 알수 있었다. 집안이 비여있는지 문에는 낡아빠진 자물쇠 하나가 데룽 매달려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동네로인이 있어 집주인의 행방을 물었더니 얼마쯤 떨어진 곳에 보이는 점포를 가리키며 거기에 있을거라고 대주는것이였다.

리경식은 히사꼬와 함께 총총히 그리로 찾아갔다. 쇠잔한 락조가 비껴드는 자그마한 간이점포안에서 늙수그레한 사람 하나가 한구석에 홀로 앉아 외로이 소주병을 기울이고있었다. 히사꼬가 점포주인을 통해 그가 바로 니시다라는것을 확인하였다.

미간으로 모아든 경식의 두눈섭이 소리없이 꿈틀거렸다. 그는 긴장되는 마음을 지그시 다잡으며 니시다에게 다가가 자기소개를 하였다.

《실례합니다. 물질문화보존협회 리사 오구라 분지라고 합니다. 니시다 요시오씨지요?》

반나마 희여버린 니시다의 머리가 천천히 쳐들려지더니 속을 꿰뚫어볼수 없는 공허한 눈길이 멍청하니 경식을 더듬었다. 창백한 얼굴에 겨릅같이 바싹 마른 체소한 사람이였다. 천식증이 있는지 그 사람은 이따금 헐헐 느끼며 어깨숨을 몰아쉬군 하였는데 푹 꺼진 한쪽볼편에는 자다가 나온듯 베개에 눌리운 뻘건 자리가 흠집처럼 남아있었다.

별다른 대꾸없이 망연히 쳐다보기만 하는 니시다에게 히사꼬가 조바심이 났던지 좀더 큰소리로 되물었다.

《이전에 리왕직아악부에서 근무하셨다는 니시다선생이 옳으신지요?》

그래도 니시다의 얼굴은 여전히 탈바가지인양 변화가 없었다. 그 사람은 감각이 마비된 사람마냥 다시 머리를 푹 떨구더니 얼마 남지 않은 소주를 잔에 말끔히 부어넣었다. 마치 술을 내놓고는 세상만사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 같았다. 상우에는 절임무우 몇쪼각과 말린물고기 반토막만이 댕글하니 놓여있을뿐이였다.

경식은 점포주인에게 일러 술과 안주를 더 내오고나서 니시다의 앞에 마주앉았다. 점포안의 흐리터분한 공기에 질려 잠시 주저하던 히사꼬도 호기심을 누를수 없었는지 조심스럽게 경식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경식은 여러 말 않고 니시다에게 술부터 권했다.

《니시다씨, 오늘은 내가 낼테니 량껏 마십시다.》

그러는 경식을 멀끄러미 바라보던 니시다는 한동안이 지나서야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받아들었다. 한잔, 두잔… 그렇게 연거퍼 몇잔이 들어가자 파김치처럼 늘어졌던 니시다의 몸에 일시나마 생기가 도는것 같았다. 마침내 니시다가 입을 열었다.

《나한테 용건이라도 있는지요?》

잠자코 그의 잔에 술을 부어주기만 하던 경식은 이윽고 넌지시 화제를 꺼냈다.

《실은 니시다씨가 리왕직아악부에서 조선봉건왕조시대의 궁중음악조사에 관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런데요?》

니시다의 반응은 덤덤하였다. 경식은 관자노리가 팽팽해지는것을 느끼며 한걸음 더 다가갔다.

《주로 향악관계자료들을 많이 다루었다면서요?》

니시다는 대답대신 느른히 고개만 끄덕거린다. 경식은 들먹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직방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조선향악보〉의 행처에 대해서도 잘 알겠군요?》

그러자 부석부석 부어오른 니시다의 눈거죽속에서 흐리멍텅해있던 두눈이 야릇하게 반짝거렸다. 니시다는 뭔가 잘 리해되지 않는지 고개를 찌붓한채 경식을 눈여겨보다가 누구에게라 없이 투덜거리는것이였다.

《모를 일인데요. 근래에 들어와 벌써 세번째로 받는 질문이니 말입니다.》

《?》

경식은 그만 머리가 뗑해지고말았다. 세번째라니? 그렇다면 자기처럼 향악보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주위에 또 있단 말인가? 리경식도 히사꼬도 한방망이 얻어맞은것처럼 어리벙벙해서 서로 얼굴만 마주보는데 니시다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한달전엔가 이찌가와인지 하는 사람이 찾아와 그런걸 물었더랬지요. 그뒤로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학강사를 한다는 사람이 여기에 왔다갔구요. 소개들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내 보건대 다들 골동장사군들 같더군요. 당신들도 마찬가질테지요. 흐흐… 그야 아무렇든 아직도 이 일본땅에 그런 문화재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남아있다는게 나로선 놀랍기만 한걸요.》

니시다는 흐물흐물 쓰거운 웃음을 지으며 또다시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경식의 심정은 여간 착잡하지 않았다. 이찌가와란 누굴가? 향악보의 행방을 탐문하는 나날에 그런 사람과 마주쳤던 일은 없었다. 그럼 대학강사는 또 어떤 사람이고?… 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불안이 먹물처럼 피여올랐다.

날이 저물자 한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들어왔다. 그바람에 점포안은 꽤 소란스러워졌다. 하건만 니시다는 수염터가 꺼칠한 턱으로 술이 번져 흐르는것도 모른채 어딘가를 멍히 바라보고있었다. 꿈길을 헤매는양 하염없이 건둥거리는 그 눈길을 붙잡으려고 경식이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니시다는 얼마후에야 스르시 두눈을 감더니 고백이라도 하듯 조용히 중얼거리는것이였다.

《조선… 리왕직아악부… 허, 참말로 그 시절이 일장춘몽처럼 여겨지는군요. 지금도 이렇게 눈을 감고있느라면 내가 살던 서울의 본정거리가 못견디게 떠오르군 합니다. 거긴 일본인들이 모여살던 번화한 거리였지요. 큰길을 따라 늘어서있던 번듯한 집들도 모두 일본인들의 집이였고 오가는 행인들도 거의가 일본사람들이였습니다. 거리에 나서면 귀익은 일본말들과 게다끄는 소리들이 그칠새없이 들려오는가 하면 선민의식에 도취된 일본녀자들이 화사하게 차려입고 거니는 광경은 얼마나 유유자적하던지 꼭 도꾜의 어느 거리에 와있는것 같았다고 할가. 참, 꿈같은 시절이였지요.》

니시다가 심호흡으로 가슴을 부풀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경식은 쓰거운것을 삼키느라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잠시후 니시다는 간간이 가쁜숨을 톺으며 지나온 생의 누래진 페지들을 다시금 주섬주섬 번져나갔다.

《당신들의 말이 옳습니다. 난 그때 리왕직아악부에서 조선향악들을 전문으로 조사하였습니다. 그러는 나날에 조선의 음악과 류다른 인연을 맺었다고 할지… 원래 무단통치시대에 일본의 조선인지배론리는 그야말로 단면적이고 무자비했었지요. 조선인은 당파나 씨족, 계층간의 갈등때문에 절대로 단결할수 없다, 따라서 총칼만으로도 능히 그들의 질서를 바로잡을수 있다는게 당시 데라우찌나 하세가와를 비롯한 일본정치가들의 통념이였다고 말할수 있지요. 허나 1919년의 3.1만세운동을 계기로 일본인들이 단정하고있던 분렬의 조선인상은 산산이 깨여지고말았습니다. 결국 무단통치의 한계를 절감한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를 새롭게 표방하면서 본토의 학자들을 대거 불러들여 조선에 대한 보다 집요한 조사연구에 달라붙었습니다. 내가 총독부 촉탁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리왕직아악부에 들어가 조선의 향악유산들을 조사하게 된것도 그런 연유에서였지요.

그런데 기나긴 전통을 가지고있는 조선향악을 조사해가는 과정에 난 가히 향토예술의 주옥이라고 할만 한 그 내용과 표현력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조선민족의 전통음악을 가리켜 향락적이요, 염세적이요, 도피적이요 하는 일부 일본학자들의 주장은 편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갖은 핍박과 고난을 견디여내며 끈질기게 저항해온 민족의 소박하고 강의한 정서가 담겨져있다고 할가요. 음악형태를 보아도 조선의 전통음악은 고유한 자기 얼굴을 가지고있습니다. 서양음악의 표현형태가 론리적이고 계산적이라면 일본음악은 약간 가벼운듯 하면서도 골만 파는 효과를 좋아하지요. 그런가 하면 중국의 경우는 구성과 꾸밈음이 현란스럽다고 할가요. 하지만 조선사람들은 산과 골이 적당하게 어울려 은근한 편안함을 주는 음악형태를 즐겨하더군요. 난 조선인들의 음악에서 유구한 문화국의 저력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식민지민족의 음악까지도 영악하게 점령하려는 문화통치의 정교함에 내심 혀를 차기도 했구요. …》

니시다의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있었다. 저들의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조선의 전래음악을 샅샅이 조사하게 한 일제의 진의도는 력사에 기록된 그 리면사를 들여다보면 너무도 뻔드름히 드러난다. 강점초기부터 조선사람들의 골수에 슴배여있는 우리의 가락과 장단을 거세해버리려고 각방으로 책동하던 일제는 침략전쟁이 본격화되자 조선사람들에게 조선말로 된 노래는 일체 엄금하고 일본노래만 부르도록 강요해나섰다. 지어 총알을 만든다고 하면서 각 마을마다 하나정도는 보관하고있던 징이요 꽹과리 같은 풍물까지도 닥치는대로 빼앗아가지 않았던가. 한편 반만년의 문화를 순식간에는 매몰할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던 일제는 조선음악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키면서도 한군데서만은 그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는바 그것이 바로 권번(기생학교)이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머리속에 서양음악만이 진짜음악이고 가야금을 타거나 장고를 두드리는것은 기생들이나 하는 천한 음악이라는 외곡된 인식을 부식하려고 하였으니 실로 일제의 조선문화말살정책은 이렇듯 교활하고 악랄하였던것이다.

니시다가 가르릉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쨌든 나에게는 그때가 황금시절이였습니다. 선배들은 날더러 리왕직아악부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가지고 중세동양음악에 대한 학위론문을 쓰라고 권고했지요. 그런가 하면 총독부 학무국에서는 조사사업이 완료되는 차제로 자기네한테 들어오라고 여러번 청탁이 왔었구요. 물론 그만큼 타인들의 질시도 많이 받아야 했던 시절이였답니다. 허허…

그런데 그 모든 환락이 소낙비처럼 가뭇없이 지나가버릴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궁성요배〉니, 〈황국신민서사〉니 하는 갖은 요란법석도, 가미가제특공대의 단말마적인 육탄돌격도 종당에는 기울어져가는 시운을 바로잡을수가 없었지요. 〈천황〉의 항복연설을 듣 고났을 때 난 모든것이 큰 파도에 씻긴 뒤와도 같은 공허감에 빠져버리고말았습니다. 세상이 뒤집혔다는게 그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더군요. 한쪽에서는 창씨개명을 강요당했던 조선인들이 저저마다 일본이름의 문패를 아궁에 처넣으며 열광하는데 다른쪽에서는 전날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일본인들이 서리맞은 메뚜기마냥 이리 쫓기우고 저리 몰리웠지요. 하기야 그 시각 조선인들의 가슴마다에 끓어넘치던 민족재생의 감격을 나라고 리해하지 못할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환희에 달아오른 그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왜 그리도 쓰라렸던지…

인과응보라고 우리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앞에 치르어야 할 대가는 자못 크다고 말해야 옳겠지요. 허나 난 리왕직아악부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모은 향악자료들만은 조선인들의 손에 넘겨주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선뜻 내놓기에는 반도에서 보낸 나의 청춘시절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십여일간의 고생끝에 요행 배편을 만나게 된 나는 조선에서 얻었던 수많은 귀중한것들을 죄다 포기한채 간신히 일본으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조선향악보〉하나만 호신부인양 부둥켜안고 말입니다.》

히사꼬가 앗- 하고 신음소리를 내였다. 리경식이 저도 모르게 곁에 앉아있는 그의 손을 꽉 그러잡았던것이다. 드디여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향악보의 행처를 알게 되자 경식의 온몸은 살을 메운 활처럼 금시 팽팽해졌다. 하건만 그런것을 알리 없는 니시다는 오그라든 볼편을 푸들거리며 여전히 사설을 늘어놓고있었다.

《보나마나 당신들은 내가 뭉치돈을 바라고 그랬다고 생각할테지요. 허지만 난 한번도 향악보를 돈벌이수단으로 생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조선에 건너왔던 한 일본인이 금강산의 어느 불상을 보고 너무도 감동된 나머지 그앞에 꿇어앉아 하루밤을 지새웠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조선의 옛 향악곡들 역시 나에게 있어서 그런 존재였지요.》

경식은 마치 상형문자라도 연구하듯 니시다의 얼굴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엇때문에 니시다는 우리의 문화재에 그리도 지꿎은 애욕을 품어왔던가. 정말로 니시다가 조선을 동정이라도 해서였단 말인가.

경식은 마음속으로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그것은 다만 일본제국주의의 관료정신의 표현일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식민지의 재산관리를 맡은 총독부관헌으로서 자기 직분에 마지막까지 충실하려는 검질긴 책임감에 불과한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총칼보다도 더 지독한 식민지통치의 힘이 아니였던가.

《그러니 현재 〈조선향악보〉를 니시다선생께서 소장하고계시겠군요? 》

다짐이라도 받으려는지 히사꼬가 바투 들이대는 물음이였다. 그런데 웬 일인가. 니시다의 눈길이 향방을 잃고 허둥거리는것이 아닌가. 갑자기 얼어붙어버린 그의 입술에 무엇인가 처량스럽고 우울한 빛이 떠돌았다. 얼마후 니시다는 머리를 떨구더니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유감스럽지만 나에겐 향악보가 없습니다.》

순간 경식의 눈섭이 의문부호처럼 찌부러졌다. 이건 대체 무슨 소린가? 니시다가 잔꾀를 부리는건가? 그게 아니라면 앞서 왔었다는 사나이들에게 향악보를 벌써 넘겨주었다는 소린가? 가슴이 서늘하게 식어들었다. 따지고들듯 크게 뜬 리경식의 우묵한 두눈에서 이마빼기를 꿰지르는것 같은 거센 빛이 튀여나왔다.

니시다는 정신없이 연신 술만 들이키고있었다. 괴로운듯 이그러진 그의 이마는 앓는 사람마냥 파리해보였고 술에 젖은 입귀는 투덜거릴 때처럼 아래로 축 처져있었다. 한참만에야 니시다는 기울거리는 몸체를 가까스로 유지하며 음울히 사연을 털어놓는것이였다.

《당신들도 체험했겠지만 패전후 일본인들의 처지가 얼마나 참담했습니까. 간난신고를 겪으며 일본으로 돌아온 나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지요. 도꾜역근처에 있던 본래의 집은 미군공습에 가산 하나 건지지 못한채 깡그리 불타버렸는데 처와 딸자식은 용케 살아남아 남의 집 곁방살이를 하며 배를 곯고있더군요. 요행 친척의 주선으로 여기 구니다찌에서 허름한 세집 한채는 빌릴수 있었지만… 허, 그때까지 음악 하나밖에 모르고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이 전후의 혼란속에서 졸지에 무슨 수로 처자들을 먹여살릴수 있었겠습니까. 배급만으로는 도저히 연명할수가 없어서 어떤 땐 말린 풀로 가루를 봏아 빵을 만들어 먹기까지 하였지요. 난 입고있던 옷가지를 싸들고 농촌에 나가보기도 했고 자존심도 다 줴버린채 알만 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손을 내밀어보기도 했지만 형편은 점점 어려워만졌습니다. 정말로 살아갈 길이 캄캄하더군요.

생각다 못해 장사라도 해보려고 외켠으로 사촌벌이 되는 나까야마 모리오를 찾아갔더랬지요. 전쟁때 만주에서 운송업자노릇을 하던 나까야마는 그 당시 자기 처를 미군장교들에게 섬겨바치는 대가로 적산물자를 빼내서 팔아먹던 한심한 작자였지요. 하긴 몇푼 안되는 돈이나 휴대용야전음식을 얻으려고 혀짧은 영어로 아부하며 점령군에게 몸을 팔던 일본녀인들이 패전직후 어디 한둘이였던가요.

가늘고 약해보이지만 의외로 강인해서 〈나데시꼬(패랭이꽃)〉로 상징되던 일본녀인들의 자존심이 그야말로 땅바닥에 떨어졌던 시절이였지요. 허지만 사흘 굶어 담 넘지 않을 놈 없다고 그땐 그런걸 가릴 경황이 없었습니다. 내가 돈을 좀 빌려달라고 사정하니 나까야마는 단마디로 거절하더군요. 아무리 친척지간이라도 나 같은 백면서생에게 무슨 담보로 돈을 꾸어주겠느냐는것이였습니다. 별수없이 난 수중에 있던 유일한 재산인 〈조선향악보〉를 나까야마에게 저당물로 맡길수밖에 없었습니다. 워낙 돈밖에 모르는 그 무식쟁이에겐 돼지앞에 보석이나 다를바없었지만 말입니다. 향악보의 가치에 대해 내가 입이 닳도록 곱씹어 설명해줘서야 나까야마는 뭔가 돈이 될만 한 물건이라고 짐작했던지 마지못해 5천엔을 꾸어주는것이였습니다. 그 5천엔으로 잎담배장사라는걸 시작했지요. 허나 웬걸요. … 얼마 못 가서 난 본전도 못 건지고 빈털털이가 돼버리고말았습니다. 기가 막히더군요.

난 어떻게 하나 향악보만은 되찾고싶어 있는 힘을 다해보았습니다. 나까야마에게 허리를 굽히고 찾아가 수없이 애원도 해보았구요. 하건만 그 수전노에게 그런게 통할리 있었겠습니까. 이듬해 나까야마는 식구들도 내버린채 집안의 돈을 다 걷어가지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버리고말았습니다. 물론 향악보도 빼놓지 않고 말입니다. 결국 난 조선에서 수십여년세월을 바쳐 얻은 천금같은 문화재보를 단돈 5천엔에 팔아먹는 멍청이짓을 한셈이지요. 흐하하…》

니시다의 목구멍에서 쓰거운 웃음소리가 발작적으로 튀여나왔다. 수치와 모멸감에 못이겨 자기를 학대하는 그 웃음소리는 리경식에게 피할 길 없는 진실을 일깨워주고있었다. 경식은 허탈에 빠진듯 한 니시다의 낯빛을 침울한 눈길로 응시하다가 잠시후 화를 꿀꺽 삼키며 한마디 캐여물었다.

《나까야마의 그후 행방은 아는게 없는가요?》

니시다가 맥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모릅니다. 언젠가 오사까에서 산다는 소문을 들은적이 있긴 합니다만… 앞서 왔던 사람들도 이런 말을 듣더니만 다들 난감해하는 눈치더군요.》

경식의 온몸은 바람이 새여버린 공처럼 후줄근해지고말았다. 설사 소문대로 나까야마가 오사까에서 살고있다 하더라도 수백만의 인총이 붐비는 그 복잡한 도시에서 어떻게 그자를 찾아낸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막연하기 그지없어 저도 모르게 한숨만 나갔다. 히사꼬도 경식의 시꺼매진 모습을 보며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있는데 거나하게 취해버린 니시다가 소주병을 움켜잡으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호기를 부리는것이였다.

《자, 또 마십시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난건 먹었던탓이지 결코 마셨던탓은 아니지요. 흐흐흐…》

후들거리는 손으로 두사람의 잔에 술을 붓고난 니시다는 병에 남은 소주를 되는대로 입안에 털어넣더니 힘겹게 숨을 톺으며 또다시 하소연을 늘어놓는것이였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난 생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말았습니다. 모든것이 자신없고 귀찮기만 했지요. 난 짚불처럼 스러진 운명을 한탄하며 술만 찾았습니다. 잠시나마 소주의 기운을 빌어 현실에서 도피하는것외엔 내 생활에 아무런 욕망이나 즐거움도 끼여들 여지가 없었단 말입니다. … 그러다나니 집세는 다달이 쌓여만 가고 식구들의 입에 거미줄이 쓸 지경이 됐지요. 주정뱅이남편과 딸자식을 안해가 먹여살리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 사람이 고생개나 했지요. 헌데 어느날 고주망태가 돼서 돌아와보니 안해는 딸애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더군요. 미안하다는 글쪽지 하나만 남기고 말입니다.》

떨리며 흐려져가던 니시다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어지고말았다. 그제서야 경식은 니시다의 짓숙인 얼굴에 어지러이 번져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알아보았다. 일본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여 쓰라린 비애와 고독속에 인생의 황혼길을 걸어가는 한 인간의 비참한 모습을 보느라니 한편으로는 측은한 감정도 없지 않았다. 경식이 위안삼아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니시다가 지친 동작으로 한손을 내저었다. 그것은 자포자기의 나락속에 빠져 희망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자살자의 몸짓과도 흡사하였다.

분간키 어려운 목소리가 간간이 끊기는 흐느낌속에 들려왔다.

《하기야 그들이 날 버린게 아니지요. 내가… 내가 그들을 버린거나 마찬가지지요. 난 안해를 탓하지 않습니다. 난… 난 그 녀자를… 탓하지 않습니다. 흑흑…》

니시다는 새여나오는 통곡소리를 억제하려고 주먹을 입에다 눌러댄채 울고있었다. 어망결에 경식의 손을 더듬어 붙잡는 히사꼬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자욱한 담배연기속에서 싸우듯이 소리치며 이야기하는 취객들로 하여 점포안은 퍽 어수선했다. 리경식은 더 앉아있기가 괴로워 히사꼬와 함께 일어나고말았다.

밖에 나온 경식은 답답한 가슴을 식히고싶어 한껏 숨을 들이그었지만 정작 페부에 와닿는것은 매연에 찌든 미적지근한 밤공기뿐이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아도 구름이 끼였는지 별 하나 보이는것이 없었다. 울울한 심사를 달랠길 없어 발밑을 내려다보며 우두커니 서있는데 곁에서 히사꼬의 나직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처녀는 코트깃을 올리며 몸을 옹송그렸다.

《춥소?》

경식이 묻자 히사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으슬으슬하군요. 꼭 늦가을밤 같은게…》

저으기 피로한듯 한 처녀의 목소리에서는 인생의 방황과 고민이 느껴졌다. 아마 니시다의 이야기가 감수성이 예민한 처녀의 마음속에 심각한 파문을 일으킨것 같았다. 신음소리를 내며 황막한 암흑속을 방랑하는 한 인간의 외로운 넋이 경식의 뇌리에서도 쉬이 떠나지 않았다. 경식은 서글프게 처져있는 처녀의 동그스름한 어깨를 위로하듯 쓰다듬었다. 히사꼬가 어린애마냥 경식의 팔에 매여달리며 몸을 기대왔다. 말없는 침묵속에 그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경식이 처녀에게 후회하는 빛을 내비쳤다.

《미안하게 됐소. 이럴줄 알았더라면 나 혼자 오는건데…》

그러자 처녀의 살눈섭이 의문을 머금고 쳐들려졌다. 히사꼬는 서운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하는것이였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건가요. 전 선생님에 대해 고맙게 생각할뿐인데…》

경식은 헌거롭게 웃어보였다. 그렇지만 마음은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다. 향악보를 가졌다는 나까야마는 어데로 사라졌을가? 니시다에게 찾아왔던 두 사나이들도 이 시각 나까야마의 행방을 추적하고있는것만 같이 느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리경식은 두 사나이에 대해 줄곧 생각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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