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4 장


41


강치명을 맞이한 구역안전부장은 바쁜걸음을 시킨데 대해 량해를 구하면서 자리를 권하고는 에돌지 않고 물었다.

《당비서동문 주숙진이라는 이름이 생소하지 않을테지요?》

강치명에게는 오래전부터 수수께끼같은 인물이 주숙진이였다. 얼마나 그의 행처를 알려고 노력했던가. 그조차도 세월의 망각속에 묻혀가고있는 때에 문득 그것도 안전기관에서 다시 상기시켜주니 놀랄수밖에 없었다.

그 심정에 리해가 간다는듯 고개를 끄덕인 안전부장은 오늘도 적대분자들과의 투쟁은 계속되고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전기관에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적대분자들의 준동이 우심했던 동진항일대에서 적발된 사건들과 미결건들에 대한 재검토를 많은 품을 들여가며 충분히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 최근에는 오래동안 잠복해있던 놈들의 정체를 밝혀낼수 있었다. 예심과정에 진술한 이자들의 자료를 통하여 주숙진이 어떤 녀성이였는가 하는것이 확인되였던것이다.

동진항일대에서 파괴암해책동을 벌린 반동결사는 가장 악질적인 놈들로 무어진 단체였는데 1952년에 들어서면서 엄중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였다. 여러차례 시도했던 군수공장에 대한 암해책동이 매번 실패한데다가 내무기관(당시)의 드센 추적에 시달리다나니 나중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만연되여 붕괴전야에 놓인것이였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저들 내부에 내무기관의 촉수가 뻗어있다고 의심하면서 그 색출을 위해 혈안이 되여 날뛰였다. 이때 놈들의 시야에 걸려든것이 바로 주숙진이였다. 그 리유는 이 녀자의 음식점에서 벌어진 숱한 모의들을 거의나 내무기관에서 사전에 알고있었다는것이였다. 이 음식점 녀주인이 남계수와 가깝다는 사실과 후퇴시기 덕산고개에서 붙잡았던 그를 놓쳐버린 사건이 하나로 련결되면서 주숙진에 대한 놈들의 의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예심기록에는 피심자의 진술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있었다.

《나는 주숙진을 쥐도 새도 모르게 랍치해올데 대한 지령을 부하들에게 주었습니다. 이 녀자의 입을 열면 당시 우리 망이 위기에 몰린 원인을 알수 있다고 판단했기때문입니다.…》

주숙진은 깊은 밤 동진항 남쪽 바위산동굴로 끌려갔다. 놈들은 악착한 고문을 들이댄 후 저들이 의심해온 사람과 마주세워놓고 대질심문을 하였으나 아무런 단서도 잡을수 없었다.

자기 음식점에 찾아오는 남자들이 많은데다 하나같이 무심히 대하였기때문에 가려볼수 없다고 하면서 이 사람도 술마시려고 왔던것을 본 기억은 나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는것이 주숙진이 한 대답의 전부였다.

화가 치밀어오른 두목은 마침내 칼을 뽑아들고 우리가 놓쳐버린 남계수를 네년이 숨겨주었다는것을 알고있다, 네앞에 서있는 이놈이 바로 남계수를 도망치게 하였다, 너희 년놈들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아는가, 네년이 《빨갱이》들을 뼈빠지게 섬겼지만 어떻게 죽었는가는 귀신도 모를것이라고 하면서 마지막회유를 하였다.

무시무시한 동굴속에서 악귀들의 고문을 받았지만 주숙진의 모습은 그지없이 평온하고 침착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되였어도 고개를 쳐들고 놈들을 노려보며 나직하나 또렷하게 말했다.

《이제 곧 멸망하게 될 너희들이 감히 나를 동정해? 나는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봤으니 그 세상과 맺은 인연을 지키고 가는거다. 나에게 더이상 묻지 말아. 내 입이 더러워진다.》

악에 받친 놈들은 연약한 녀성을 무참히 죽인 후 시체를 바다에 처넣었다. 그리고는 저들이 의심해온 사람에게 달려들어 모진 악행을 가하다가 그마저 학살하고말았다.…

《그때 놈들이 살해한 그 사람은 우리의 동지였소. 주숙진녀성이 어떻게 우리 사람과 련결되였는지는 지금 조사중에 있지만 놈들의 음모를 파탄시키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것만은 확인되였소. 오늘 이렇게 당비서동무를 만난것은 남계수지배인과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는것으로 알려져있는 그 녀성이 가장 준엄했던 시기에 조국과 운명을 같이한 참된 인간이였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소.》

강치명은 깊은 감동을 안고 안전부장의 방을 나섰다. 행방불명자나 다름없던 녀성의 확인된 신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계수와 같은 사람들을 우리 당의 품에서 떼여내려는 적들의 모략책동이 얼마나 악랄한가를 보여주고있는것이였다. 놈들은 저희들의 손으로 잔인하게 학살한것도 모자라 산 사람으로 만들어 루명을 씌워놓고는 심히 중상모독하는 류언비어까지 퍼뜨렸던것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인간들과 한없이 비렬하고 추악한 무리와의 대결은 끝난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있는것이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 길을 걷던 강치명은 해안거리에서 신유정을 만났다. 공장에 온 이후로 일에 몰려있다나니 한번 찾아가 인사를 나눈다는게 결국 이렇게 길가에서 마주서게 된것이였다.

《교장선생님, 인사가 너무 늦어서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 말씀마세요. 공장에 그처럼 큰일을 벌려놓았는데 얼마나 바쁘시겠어요. 오죽했으면 우리 집에 한번도 오시지 못할가 하고 생각했는걸요.》 하며 신유정이 은발머리를 숙였다.

세월이란 참으로 못하는 일이 없다. 그렇듯 지성이 넘치고 정갈하던 녀성을 로인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하지만 저 백발을 이고도 후대들을 가르치고있으니 어이 늙었다고 하랴.

《어딜 가시는 길입니까?》

강치명과 나란히 걸으며 신유정은 젊은 시절의 목소리를 고이 간직한 밝으면서도 유순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시교육부에 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우리 소옥동무때문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원, 별말씀을 하십니다. 그앤 나의 친딸이나 같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엔 만나보지 못했는데 후유증은 없는지 걱정됩니다.》

《그새 밀린 일을 봉창하느라고 밤낮을 모르기에 지배인동무가 설계실에 틀고앉았습니다. 이를테면 부관노릇을 하는셈이지요.》

신유정은 마음이 놓이는지 미소를 지으면서도 말은 다르게 하였다.

《시중을 바로 들분이 못돼요. 오히려 붙는 불에 키질이나 하지않겠는지…》

강치명이 근심하는것도 바로 그것이였다. 일욕심이 굴뚝같은 지배인이 설계대앞에 동소옥과 나란히 앉아서 끝없이 토론하는것은 로보트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한 문제다. 이따금 찾아가면 그런 모습이기에 억지로 휴식을 시키군 한다.

퇴원하는 날 동소옥이 자기의 담당의사와 함께 공장에 나타났을 때 의사가 자기는 사람의 생명을 인계하러 왔다고 하여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완치되지 않은 환자나 다름이 없는데 무리하게 혹사를 하다가 차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였다. 그런데 엄격하기 이를데없는 의사는 동소옥의 어깨를 살뜰하게 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난 이 나이를 먹도록 병력서만을 써온 사람인데 소옥기사의 경력도 쓸수 있게 되였습니다. 솔직성이 인간의 품성으로 된 사람은 믿어야 하고 그런 사람은 변하지 않지요. 난 의사로서만이 아니라 전쟁을 화선에서 보낸 사람으로서 이 처녀기사가 반드시 맡은 임무를 수행하리라고 믿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평정이였던가. 성실한 인간은 자기 집단이 아닌 곳에서도 사랑과 믿음을 받는것이다. 동소옥은 어디에 내놓아도 허물이 없는 인간으로 성장하였다.

강치명의 이야기를 듣고난 신유정은 깊은 감회에 잠겨 말했다.

《소옥이가 안고 사는 소중한 인생의 진리를 우리는 쉰고개를 넘기고서야 깨달았는걸요.》

지나온 생활을 뜻깊게 돌아보는 한 교육자의 모습에서 강치명은 의미심장한 감동을 받았다. 이 녀성도 다난한 인생의 고개들을 그 얼마나 힘겹게 넘겼는가.

《교장선생님, 년세도 있는데 힘이 들지요?》

《그래요. 나이가 있지 않나요. 하지만 보람은 있어요.》

두사람의 앞으로 양산을 받쳐든 녀인이 마주 오다가 이상하게도 걸음을 빨리 하며 지나쳐버렸다. 연한 밤색의 색안경까지 낀 녀자가 스쳐가며 풍기는 진한 향수냄새로 하여 신유정은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되돌아보았다.

어디서 본 얼굴일가.

《아는 사람입니까?》

《알면야 인사를 했겠는데… 저는 직업이 직업이여서 학부모들이 많거든요. 어디서 만났던 녀성 같은데 생각나지 않는군요.》

강치명은 신유정이네 중학교앞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었다.

《다 왔군요.》

《교장선생님, 건강에 류의하면서 일을 보십시오.》

《고마워요. 당비서동지도 건강을 돌보기 바랍니다.》

신유정과 헤여진 강치명은 공장쪽으로 걸음을 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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