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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9월 16일

평양시간


제 39 회


제 4 장


39


온 공장이 《흥성-1》호제작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공격전을 벌리고있었다. 돌격대원들이 주타격방향에서 돌파구를 열어나간다면 현행생산을 맡은 직장과 작업반들에서는 익측에서 계획과제를 어김없이 수행하는것으로 보조를 맞추었고 후방부서들에서도 공격속도를 높여주기 위하여 온갖 성의를 담아 지원해주었다.

홍진실은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보람을 지금처럼 느껴본적은 없었다. 지난해 가을에 고구마와 밤을 많이 장만하기를 얼마나 잘했는가. 자기 손으로 구운 고구마를 밤을 새우며 일하는 돌격대원들이 훌훌 불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면 맏누이구실을 하는 기분에 사로잡히는것이다. 생활의 향기란 이런것이구나 하고 생각될 때 가슴이 뭉클해났다.

고구마를 다 구워낸 그는 제일 맛있어보이는것을 골라 두개의 종이봉투에 싸들고 상점을 나섰다. 동소옥에게 가는것이다. 입에 검댕이칠을 하면서도 맛있게 먹는 나이든 처녀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는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되여버린 그였다.

초저녁부터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날려버릴듯이 기승을 부리고 싸락눈이 휘뿌려지는 속으로 걸음을 다그친 홍진실은 설계실문을 두드리기 바쁘게 밀고 들어갔다. 작업대를 마주하고있던 동소옥이 그를 보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언니!》

《너 잠도 안 자면서 일한다는게 사실이니? 이 축간거 보지.》

솜저고리품속에서 종이에 싼 고구마를 내놓으며 홍진실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야, 군고구마…》

동소옥이 어린애처럼 손벽을 치고나서 얼른 한개를 집어들자 홍진실은 수척해난 얼굴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일밖에 모르는 처녀다. 생기기는 얼마나 말쑥한가. 마음씨가 비단같아서 칭찬을 하지만 누구도 시집은 보내주지 못한다.

《맛있어?》

《언니, 고마워요. 오늘도 나에게 제일먼저 가져다주나?》

《그렇지 않구.》

《정말 달구나.》

《허허, 꼭 철부지같다니까. 너 일에 미쳐 살다가 세월을 아예 놓쳐버려.》

동소옥은 너무도 들은 소린지라 눈을 곱게 감아보이며 대꾸했다.

《걱정말아요. 알게 뭐예요. 오늘이라도 누가 업어갈지. 아무렴 그렇게도 내가 못났을가.》

《에그, 그 인물이 아까워서 그런다. 살이 다 내리면 업어갈 사람이나 있겠다.》

홍진실이 부산을 피우고 가자 동소옥은 시계를 보았다. 벌써 8시가 되여온다. 서둘러야 했다. 합숙에서 공장대학을 같이 졸업한 동무와 만나자고 약속했던것이다. 대충 머리를 손질한 그는 솜옷을 입고나서 감색머리수건을 둘러쓰며 설계실을 나섰다. 몇걸음 옮기는데 누군가 찾는 소리가 들렸다.

《소옥동무 아니요?》

어둠속에 선 사람은 부기장이다. 구내등불빛을 등지고 바라본다.

《왜 그러세요? 제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무슨 일이게?》

부기장이 여느때없이 지꿎게 달라붙는통에 동소옥은 불쾌한감이 없지 않지만 대답했다.

《동무와 만나자고 약속했어요.… 그럼 미안해요.》

동소옥이 총총히 걸음을 옮기자 조영길은 몇걸음 따라서다 쭈빗이 멎어버렸다.

《동무와 만난다?…》

이렇게 중얼거리던 조영길은 고개를 기우뚱했다.

전차정류소에서 내린 동소옥은 독신자합숙을 향해 반달음을 놓았다. 부탁했던 귀중한 기술자료들을 가져온 동무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앞을 막아섰다.

《어마나…》

《놀라긴.》

동소옥은 너무도 반가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안슈타인!》

《허허, 기다리다가 정류소에 마중나오던 길이요.》

《미안해요, 정말. 어서 들어가자요. 어서요.》

동소옥은 허물없이 동무의 손을 잡고 합숙호실로 이끌었다. 손아래처녀 둘이 눈치빠르게 자리를 내주었다.

《추억깊은 방인걸.》

동무의 털모자를 받아서 건 동소옥이 재미있다고 웃어댔다.

《잊지 않았군요. 내가 우리 큰아버지한테 봉변을 당하던걸 말이예요.》

《그래서 안슈타인이지.》

《호호호, 동문 확실히 기억력이 비상해. 누구도 못 따를거예요.》

《동소옥식 춰주기가 시작되는군.》

찾아온 사람은 동소옥이 간단히 차려준 간식들을 마다하고 기술문헌을 번져가면서 자동조종장치의 동작원리를 설명했다. 최신과학과 기술이 도달한 경지에서의 대화는 많은 공식들과 정리들, 법칙과 그 분야의 전문용어들을 요구하지만 그들사이에서는 거침없이 진행되였다. 이렇게 두사람은 묻고 대답하며 시간을 보내고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래지 않아도 된다니까.》

《나도 공장에 나가야 해요. 일감이 잔뜩 밀렸어요.》

《동무네 공장이 대단해. 그리 크지 않은 시급공장에서 로보트를 제작하면 그건 진짜 기적을 창조하는것으로 될거요.》

《앞으로도 바쁠 때면 찾아가겠어요. 동무가 속한 과학원 분원은 마땅히 우리를 도울 의무가 있지 않나요.》

《안다니까. 그런데 지금 우린 가는 방향이 다르구만.》

《그렇군요. 고마와요.》

《가겠소. 잘 가오.》

동소옥은 전차정류소를 향해 걸음을 다그쳤다. 마지막차를 놓치면 공장까지 한시간은 잘 걸어야 했던것이다. 앞에서 가는 사람들도 그래서 덤벼치는것 같았다. 길이 미끄러워 넘어지는 소리도 났다. 내려다보니 현장에서 신고 일하는 작업신발이 보였다.

밤인데 뭐래, 차라리 잘됐다, 미끄럽지 않으니…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정류소에 이르니 먼저 와서 줄을 짓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발을 구르고있었다.

《저게 한대 나오는게 보이는구만.》

《젠장, 줄들을 바로서라구요.》

《남자들이 또 힘내기를 하자구 잡도리를 하네. 질서들을 자각적으로 지켜야죠.》

마지막전차일수 있다는 조바심에 사람들이 헤덤벼치는듯 했다.

《이게 막차다!…》

등뒤에서 누군가가 신경질적으로 웨치며 앞으로 내미는 바람에 비교적 안정되여있던 줄이 흐트러지며 동소옥은 자기뒤에 바투 붙어선 사람의 힘에 밀려 앞으로 움직였는데 왜서인지 발을 제대로 내짚을수 없었다. 그 순간 전차의 불빛이 눈앞을 흐려놓으며 자기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는것 같았다. 이상한 불안이 치밀고 누군가에게서 도움을 받고싶은 마음이 머리를 쳐들자 그는 저도 모르게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날 좀 도와주세…》

이때 그는 뒤줄에 선 부기장을 알아보았다. 저 사람이 어떻게?…

몸의 균형을 완전히 잃은 동소옥은 《아!…》 하는 비명을 지르며 전차의 동체방향으로 밀려나갔다.

《사람이 다쳤소!》 하는 다급한 웨침소리가 터져나오자 사람들은 그제야 사태의 의미를 깨닫고 일시에 굳어졌다.


상실된 의식속에서 망각을 되살려낸것은 한줄기의 바람결같은 동요가락이였다. 손벽을 쳐대며 캐드득거리고 자박자박 달려가 숨는 발자국소리와 쌔근거리는 소녀애의 숨소리에 맞춰 노래가 계속 들렸다.


꼭꼭 숨어라 범 놔주었다

하늘에 별 하나 꼬리 감췄다


되찾은 의식의 창문가에 안개가 자욱히 흐른다. 청각은 노래소리를 듣고있지만 눈으로는 그 무엇도 가려낼수 없었다. 안개속에서 파아란 아지랑이 같은것이 사물거리다가 자취를 감추자 이번에는 반디불이 줄지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금시 무거워진 머리가 아플만큼 짓누르는감을 받으며 내가 왜 이럴가 하는 의문을 품어보았다. 그러자 시야가 서서히 개여나면서 눈같이 흰 어떤 물체가 다가들었다.

의식은 이건 내가 사용하는 설계대다 하고 판단하지만 설계용지에 그려진 형태를 전혀 리해할수 없었다. 로보트의 부분들은 얼마나 복잡한 점과 선으로 이루어졌는가. 그런데 이건 뭘가, 수직으로 세워진 설계대에는 이상하게 생긴 병이 꺼꾸로 매달려있다. 거기에 고무관 같은것이 드리워져있는 단순하기 이를데없는 도면을 지켜보던 자기의 눈이 스르르 감기며 입에서는 《그랬구나-》 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금시 온몸의 진통이 다시 시작되고 한층 맹렬해진 사유는 화살처럼 날아갔다.

전차정류소의 이상한 혼잡, 사람들속에서 떠밀려 도저히 가눌수 없었던 육체, 전차의 불빛, 금시 깔아뭉갤듯 달려오는 육중한 전차의 동체로 무엇인가에 의해 떠밀리우며 느꼈던 공포, 구원을 바라는 의식의 조명으로 비쳐진 부기장의 모습… 다음 한순간에 뇌리에서 섬광 같은것이 번쩍이더니 의식은 다시 암흑같은 심연속으로 잦아들어버렸다.

곁에 다가온 어떤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눈까풀을 뒤집어보는것이 느껴졌다. 이어 주사를 놓는지 왼팔의 웃부분이 뜨끔해났다. 이내 아픔이 사라지는것이 아마도 수면상태에 들어가는것 같았다.…

혼곤한 잠을 자고난 동소옥은 한결 가벼워진듯 한 머리로 하여 기분이 밝아지는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점적대앞에 앉은 사람의 형체가 가려볼수 있을만큼 선명해지자 몸을 일으켜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이렇게 맥이 없다니, 큰아버지가 와있는데…

미안한감이 솟구쳐 다시 몸을 뒤채이는데 남계수의 손이 어깨를 꼭 눌러주었다. 그 모습에 뒤따른 사람은 기사장이다. 시름이 덜리는듯 긴숨을 내쉰다. 눈길을 쳐들어올리니 이번에는 당비서의 근심어린 얼굴이 다가든다. 동소옥은 더는 그들을 쳐다볼수가 없어 맥없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소옥이, 정신을 차렸으니 됐소.》

기사장이 허리를 구부리며 말한다.

《어쩌면… 전… 이리도 애를 태울가요?…》

동소옥의 눈귀로 눈물이 맺히더니 스르르 굴러내렸다.

강치명이 신음소리 같은것을 내자 남계수와 정시홍은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뒤짐을 지고 서있는 당비서의 눈길이 상두대에 가있었다. 동소옥이 설계실에서 입는 솜을 얇게 둔 바지를 개여놓은것이 보인다. 그우에 전차와 충돌하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은 기술도서들을 싼 보자기가 눈뿌리를 달군다. 모두의 시선이 련이어 바닥에 놓인 한컬레의 작업신발에 옮겨졌다. 나이는 있다지만 아직은 처녀인 녀자가 신었을 신발을 보자 목구멍으로 무엇인가 치밀어오르는지 강치명이 목갈린 소리로 헛기침을 깇었다. 남계수와 정시홍도 눈굽에 손을 가져갔다.

상상도 못해본 사고와 그로부터 초래된 엄중한 후과로 하여 납덩어리처럼 무거운 마음을 안고있는 세사람이였다. 병원에서 걸어온 부기장의 전화를 받고 그들은 너무도 아연하여 아무 말도 못하며 허둥지둥 달려왔다.

사고현장에 있은 조영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얼마나 무서운 일이 빚어질번 했는가를 알수 있었다. 하도 연약하고 몸이 가벼운 처녀이니 타박상정도에서 그쳤지 전차의 바퀴밑으로 굴러들어갔다면 돌이킬수 없는 참사를 빚어낼번 하였던것이다.

의료집단은 구급처치를 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진단해보고 뇌타박의 후유증만 가시면 원상회복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천만다행이다싶어 세사람은 환자의 의식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병원에서 밤을 꼬박 밝혔다.

나이지숙한 담당의사가 들어와서 말했다.

《환자는 우리한테 맡기고 가서 일들을 보십시오.》

정시홍이 참다못해 심정을 토로했다.

《이 동문 우리 공장에서 한시도 없어서는 안되는 기술잡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였으니… 가능한껏 최대한 빠른 시일안에 회복시켜주면 고맙겠습니다.》

《우리로서는 최대로 노력하고있지만 결과는 두고보아야 합니다.》

동소옥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강치명이 말했다.

《우리 소옥동문 의지가 강합니다. 환자의 정신상태가 중요하지요. 이 동문 이렇게 쓰러져서는 안될 동무입니다.》

동소옥은 강치명의 말을 듣고있었다. 그 말속에 얼마나 큰 기대와 믿음이 깃들어있는가를 잘 알고있었다.

남계수가 동소옥에게로 얼굴을 가져가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 큰어머니가 올텐데 뭐든 먹구싶은게 있으면 다 말해주거라. 그리고 다른 생각은 말구 의사들의 요구에 전적으로 복종하면서 건강을 빨리 회복해야 해.》

《큰아버지의 속을 너무 태우는…》

《그만해라.…》

《저… 저걸…》

동소옥이 가리키는것은 기술도서였다.

《현석동지에게 전해주세요.…》

이렇게 말한 동소옥은 강치명을 찾아 눈길을 돌렸다.

《비서동지, 제 꼭 맡은 임무를…》하고는 목이 메여 말꼬리를 흐리였다.

강치명이 웃음을 띠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야지. 허허, 내 동무하고 약속한 그거 있지? 비밀타전법말이요. 나한테서 배우자면 지배인동무 말대로 꼭 해야 하오. 알겠지?》

동소옥의 눈가에 생기가 돌았다. 귀전에서는 의식을 소생시켜준 랑랑한 노래소리가 금시 들려왔다.


꼭꼭 숨어라 범 놔주었다


생의 희열을 안겨주는 소녀애의 노래소리와 함께 붉은 화광속에 서있는 녀인의 모습이 눈앞으로 다가들었다. 미소를 머금고 생시인듯 속삭여준다.

《소옥이, 이 언닌 너를 믿는다. 맥을 놓으면 안돼.》


조영길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두손을 마주잡고 허리까지 구부정한채 바닥만 내려다보고있었다. 사람이 급한 대목에 이르면 말재간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현장의 상태를 설명한다지만 동에 닿지 않은 말만 나왔던것이다.

《부기장동문 그 장소에 어떻게 가게 됐습니까?》

묻는 사람은 공장에 자주 나와보군 하는 안전원이였다. 조영길은 고개를 숙인채 대답했다.

《갔지요. 그저… 어떤 륙감이랄가…》

《사고를 미리 예상했다는건가요?》

《아니, 아니!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 소옥기사가 현장을 뜨길래…》

《소옥동무를 만났댔다는 말은 안하지 않았던가요?》

《내가요? 그랬구만요. 무슨 정신인지… 만났지요. 어떤 동무를 급히 만나야 할 일이 있다고 하기에… 늦은밤에 처녀가 혼자 다니는건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겁니다.》

《그런 생각을 한지는 오랜가요?》

《예?… 무슨 말인지요?》

《소옥동무에게 어떤 좋지 못한 일이 있을수 있다는걸 느꼈거나 다른 그 무엇이 있었는가 하는겁니다.》

조영길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자기라는 사람이 동소옥에게 남다른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는것이였다. 한공장에서 일한다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적도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런 자기가 오늘은 무슨 색다른 마음을 먹고 뒤나 쫓는 사람처럼 독신자합숙에 갔으며 전차정류소까지 따라간셈이니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부기장동문 말하기 힘들어하는것이 있는것 같군요.》

《예?…》

《어떤 불안을 가지고있다는걸 난 이미전에 느꼈는데요.》

《내가 말인가요? 불안이라면 어떤…》

부기장부에 올리는 수자처럼 정확한 말조차 계산하면서 해온 조영길이지만 이 순간에는 자기의 정신이 흐려지는것을 느꼈다.

정말 내가 어떤 불안을 느꼈을가? 그렇다. 그것은 정확하게 불안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하다면 그 불안이란 어떤것인가. 혹시 남의 언행을 쓸데없이 걸고들면서 제나름으로 평가하기 좋아하던 그 나쁜 버릇을 아직 못 버린것은 아닌가.

《말하지요. 이건 사실 내가 잘못 보고 말할수도 있다는 점을 류의해주기를 바라면서… 예, 난 오래전부터 동소옥기사를 아니, 그가… 공장대학을 다니던 때부터 쫓아다니는 젊은 녀석을 곱지 않게 봐왔습니다.》

안전원이 이내 공감하듯 말했다.

《나도 기억하고있습니다. 그 불량청년을 말입니다. 동소옥동무가 만들어준 넥타이핀을 가지고 허튼 소문을 내기때문에 만난 일이 있지요.》

조영길은 흠칠 놀라기까지 하면서 바라보았다.

《그런가요? 그녀석이 지금도 녀자독신자합숙에 슬금슬금 나타나는데 내 눈에도 몇번 걸려들었습니다. 좀 이상하게 여겼지요.》

《이상했단 말이지요? 그건 경각성이기도 합니다.》

조영길은 고개를 끄덕대며 두손을 맞잡고 힘을 주어 비틀어댔다. 보기만 해도 역겨운 그 녀석이 누님이라고 부르는 녀자가 이 도시에서 오래동안 종적을 감춘듯 했는데 다시 나타났다. 해안미용원의 미용사였던 그 녀자가 남계수지배인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의 불미스러운 뒤생활을 귀띔해주지 않았는가. 이상하게도 그 녀자와 망종같은 청년이 남계수와 동소옥의 주위를 맴도는듯 한 느낌을 받은지도 오랬다. 무엇이라고 꼭 짚어서 말할수는 없지만 뇌리에 의혹으로 남아있는것이였다.

《혹시 사고가 난 날 밤에 그 젊은이를 본건 아닌가요?》

조영길은 머리를 저었다. 동소옥이 합숙에서 남동무와 나오기에 천천히 뒤를 따랐다. 그 청년은 자기도 이전부터 아는 사람이였다. 동소옥이 동무와 헤여지는것을 보고 별일없으리라는 생각으로 그만 집으로 가려다가 정류소에서 전차를 타는것만 확인하면 마음을 놓을것 같아 따라섰던것이다.

조영길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던 안전원이 물었다.

《부기장동문 미용사라는 녀인을 그 청년이 누님이라고 부른다고 했지요?》

《예. 그건 정확히 두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들은겁니다.》

《그 녀인도 어딘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하는데 그렇습니다. 딱히 근거는 말할수 없지만…》

《우리가 좀 알아본데 의하면 그들은 혈연관계가 아닙니다. 사고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진술은 각이합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이면 질서가 없는 현상이 이따금 나타난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수상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전차가 정류소에 다가오는 순간에 누군가가 막차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일부러 전차쪽으로 사람들을 밀어붙였다는겁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건 확증된 사실입니다.》

《저도 목격했는걸요. 소옥기사가 위태롭게 밀리는것을 보면서 앞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도 붐비는 바람에 다가갈수가 없었습니다. 제 잘못이 큽니다.…》

《바로 그겁니다.》

안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날카롭게 말하자 조영길은 시름겨운 표정을 지었다.

《부기장동문 자기가 이미전부터 느끼고있던 마음속의 불안을 우리에게 알렸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결국 부기장동문 어떤 예감을 가지고 움직였지만 사태는 막지 못했습니다.》

《옳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제 실책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사고… 아직은 사고라고 합시다. 그 현장에 부기장동무가 있었기에 후과의 엄중성이 일부 해소된것이나 같습니다. 소옥기사를 제때에 병원으로 데려간건 부기장동무니까요. 우리 일을 도와주어 고맙습니다.》

안전원이 고무해주듯 말하자 조영길은 놀라운 눈길로 마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을 타매하는듯 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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