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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5일

평양시간


제 36 회


제 4 장


36


전란속에서도 여름은 철기를 놓치지 않고 찾아들었다. 중복에 들어선지라 밤인데도 숨막히게 무더웠다. 밤하늘로는 탐조등의 화광이 이따금 불줄기를 긋고 동흥산과 덕산고개쪽에서는 고사포가 하늘에 대고 으르렁거린다. 적들의 폭격과 해상함포사격은 밤낮없이, 때없이 무차별적으로 감행되였다. 페허나 다름없이 되여가는 도시였다.

사람들은 이젠 폭격의 시달림을 너무 당해서 무서워도 안한다. 공습경보가 나면 방공호에 들어가는것도 하늘을 쳐다보며 슬렁슬렁 걸어대는것이다. 야간폭격이 위급하긴 해도 인민군대고사포탄에 맞아 떨어지는 미군비행기들을 보겠다고 녀인들과 아이들은 산등이나 허물어진 콩크리트구조물속에서 하늘구경을 하기도 한다.

화물역쪽으로 난 우불구불한 길로 손달구지를 끌며 한사람이 가고있었다. 남계수였다.

《형님, 함께 가자구요.》

뒤에서 따라온 장정이 헐썩이며 채를 같이 잡고나서 기분이 좋아 주절댄다.

《이렇게 더울 땐 보이지도 않는데 벌거벗고 다니면 좋겠수다, 젠장.》

《또 한잔 한게다.》

《아, 그걸 넘기지 못하면 내가 사내요. 제꺽 나온다는게 그만 그 물에 얼리워서… 그래두 이렇게 따라오지 않았수.》

《집에 들어가 쉴게지.》

《방공호속이야 어디 숨이 차서… 게다가 더 숨찬건 녀편네 성화외다. 어찌나 냄새를 잘 맡는지 문어구에 얼굴을 들여밀기만 하면 또 마셨소 하며 지청군데… 형님, 이거 마련을 봐야 하지 않을가요?》

비위살이 좋게 생주정을 하는 양호신의 말에 남계수는 건성 대답해치웠다.

《좋을대로 하라구.》

《정말이요?》

《꼴 좋겠다. 어느 녀자가 자네 술에 절은 속옷을 빨아주겠다고 올텐가. 평생 이새끼나 서말 자래우며 홀아비로 늙어갈 판이지.》

양호신이 흰목을 뽑았다.

《형님이 이 호신일 아예 미시리루 아는게 아니우. 내 눈알이 새까만 애녀석들때문에 여직 그것과 배꼽을 맞추며 삽네다. 형님도 보셨지요? 옥이박이, 못된건 다 골라 건사했수다. 고 꼬부라진 머리카락을 보셨소? 악발이외다. 밤이면 호주머니를 반반히 다 털어냅니다. 술만 마시지 말라는게 아니라 외도질도 한다구 생트집을 겁니다요.》

《그래서 돈을 목수공구통에 감추고 사나?》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시우?》

양호신이 놀란 소리를 내질렀다.

《저금했다 색시한테 내놓을테지?》

남계수가 정색하여 묻자 양호신은 이상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놈도 전쟁을 겪으며 철이 드는가봐요. 저금이 옳수다. 내 윤덕형의 말대로 대목이 아닌 소목이지만 벌 구멍수는 얼마든지 있거든요. 많이 저금해야 할텐데…》

동윤덕은 이따금 양호신이 목수일을 자랑하면 그 재간을 내려다보며 고작해서 대목이 못된 소목인 주제에 하고 코투레질하여 약을 올리군 한다.

남계수는 자기와 함께 일하지만 이무렵에 와서 부지런히 딴장을 보는 양호신의 뒤를 모르지 않았다. 시키는 일은 막히는데 없이 잘하니 탓할수도 없는노릇이여서 오늘 처음 입에 올려본것이다.

《화물역에는 왜 나가자는거요?》

《거기에 파고무가 있을상싶어서…》

《우리가 신발은 몰라도 병원에서 쓰는 기구 같은걸 만들어낼수 있을가요?》

《난 한번 마음먹으면 하고야마는 사람이네.》

인민군대의 재진격으로 항구도시가 해방되자 남계수는 조그마한 고무공장을 세우고 그해부터 생산을 시작했었다. 고무를 생산해야 신발을 만들수 있었고 아이들이 겨울에 신을것이 있어야 학교에 다닐수 있었다. 소비품중에서도 제일 절박한것이여서 남계수는 신발생산을 마음먹었다.

나라는 어려운 전쟁을 하지만 학교는 문을 닫지 않았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후대교육을 한시도 미루지 않는 국가의 전시시책을 두고 생각이 많은 그였다.

감옥문을 닫고 학교문을 여는 나라와 민족은 문명해지고 부흥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지난달 남계수는 리건창을 만난 후 큰 충격을 받았다. 전선에서는 한치의 땅을 지켜 목숨을 바쳐 싸우는데 오륙이 성성한 나는 무엇을 하고있는가고 자신에게 물었다. 나라를 지켜내야만 기업이라는것도 남아있을수 있다는 대답앞에서 그는 결심하였다. 전선에 필요한것부터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는 시인민위원회를 찾아가 싸우는 전선에 무엇이 절박하게 필요하며 자기가 어떤 원호물자를 만들수 있는가를 토론하였다. 자그마한 고무공장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할 일이 많았다. 신발, 위생용고무장갑, 담가용고무천을 만들수 있다는것을 알았으며 동윤덕을 발동하여 용해로를 만들어서 전상자치료에 절실히 필요한 의료기구들도 생산하리라 결심하였다.

오늘 밤 이렇게 나선것은 파고무도 파고무지만 화물역의 형편을 알아보면 전선형세를 가늠할수 있을것 같아 걸음을 뗐다.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또다시 노예살이를 당해야 하는 우리 민족이 아닌가. 그의 마음은 긴장해지는 전선형편으로 언제나 가시방석에 앉은것만 같았다. 무엇이든 전쟁의 승리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생각뿐이지 힘이 모자라 안타까왔다.

화물역은 전선으로 떠나는 기차에 군수물자를 싣느라고 들끓고있었다. 한쪽에서는 폭격에 파괴된 철길을 보수하는 전투가 벌어졌고 금방 화물을 실은 기관차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떠나는데 새로 편성된 렬차가 본선으로 꼬리를 물며 들어서고있었다.

화물역 역장은 남계수가 잘 아는 사람인지라 하던 일을 조역에게 맡기고 사령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 사람은 왜정때 왜놈기관사의 조수노릇을 하다가 해방이 되여서야 기관사가 되였는데 나라의 은덕이 고마워 화물수송에 앞장선 로력혁신자였다.

《어떻게 남동무가 여길 다 나타났소?》

역장이 권하는 자리에 양호신과 나란히 앉으며 남계수가 말했다.

《눈을 번쩍 떠보자구요.》

《전선에 보낼 화물은 많은데 기관차가 모자라서 야단이요.》

역장은 철도형편을 두루 알려주었다. 남계수가 자기의 결심을 이야기하자 역장은 몹시 반가운지 손을 덥석 잡아주기까지 했다.

《남동무, 그게 바로 전쟁승리에 이바지하는거요. 이걸 명심하오. 파고무 같은건 우리가 얼마든지 보장해줄수 있소. 화물창고가 폭격을 받았는데 파손된 차바퀴들이 많소. 우리가 모아놓을테니 얼마든지 실어가시오.》

역장과 헤여진 남계수는 양호신과 함께 역구내 북쪽에 자리잡은 허물어진 화물창고에 가서 파고무를 찾아 손달구지에 실었다.

《이 사람, 오늘 밤 나오기를 잘했지?》

《여부가 있나요. 방수포는 만들지 못할가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만들어야지. 할수 있는건 다 해야 하네. 우리도 이 전쟁의 승리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것 있어야 마음 편할게 아닌가.》

양호신은 달구지앞채를 끌며 남계수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목수통을 메고 술벌이나 하며 살아가던 그는 남계수를 만났기에 사람구실하는걸 배웠다. 되는대로 말하는 버릇이 붙어서 그렇지 남계수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안해의 지청구도 줄어갔다. 그런대로 로임의 절반을 집에 들여놓기때문이다. 어떤 날엔 밥상에 술병까지 올려놓아 놀라게 하군 했다. 사는 재미가 늘어나는 때 침략자들이 전쟁을 일으켰다. 잘살아보자면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제 나라 땅에서 왜놈의 수모를 밥먹듯 하며 산 망국의 수치를 잊어서는 안된다.

《형님, 용해로를 만드느라 윤덕형이 수고했수다. 참 안됐어요. 소옥이 엄마가 잘못됐으니…》

동윤덕의 처는 올봄에 미군비행기의 폭격에 사망했다. 그때 소옥이가 학교에 가있었기망정이지 하마트면 딸까지 잃을번 하였다. 동윤덕은 그 일을 당한 후 며칠동안 맥을 놓고 자리에 드러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우리가 소옥일 잘 돌봐주자구.》

《그애가 똑똑해요. 공부도 잘한다지만 어린것이 어찌나 눈썰미가 빠른지 벌써 쇠녹이는 순서를 뜬금으로 외운다니까요.》

남계수는 소옥이가 가엾어 안해에게 말해서 집에 데려다 키우다싶이 한다. 교편을 잡고있는 안해여서 소옥이가 학교에 갔다오면 집안에서 병아리처럼 끼고돌며 숙제도 시킨다.

남계수가 양호신과 공장에 돌아오니 소옥이가 먼저 또르르 굴러나와 맞아주었다.

《너 우리 집에 가있지 않구 왜 나왔니?》

남계수의 물음에 소옥이는 짜랑짜랑 대답했다.

《큰어머니가 철교복구장에 나가면서 여기 가있으라구 했어요.》

희미한 불빛을 등진 동윤덕이 그제야 느릿느릿 걸어나오더니 손달구지를 창고쪽에 끌고 가서는 혼자서 말없이 파고무를 부리웠다.

《그 일은 바쁘지 않네. 로를 돌려봤나?》

남계수의 물음에 동윤덕은 대답없이 하던 일을 다하고야 손을 털며 스적스적 걸어왔다. 언제 봐야 늘어진 황소걸음이다.

《쇠를 녹여봤나 말이네.》

동윤덕은 고개만 주억대며 용해로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말이 로이지 철공소에서 파철이나 녹이던 그런것이다. 연료로 쓰는 력청탄이 한옆에 무져있다. 녹여낸 쇠로 만들어본 제품이라고 해야 할 각이한 모양의 반제품이나 같은 집게들이 놓여있었다. 그것을 본 남계수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용해기술에선 역시 동윤덕을 당할 사람이 없을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에야 하자던대로 로를 갖추었는데 벌써 이렇게 물건 같은것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이제 뭐가 더 필요한지 말 좀 해보게.》

동윤덕은 씩하니 웃으며 느직느직 대답했다.

《주형을 만들어야겠는데 모래가 있어야 하네. 핀세트 같은걸 만들자면 강편을 밀어낼 로라도 있어야 하구…》

남계수는 그쯤은 알기에 동윤덕의 어깨를 철썩 후려갈겼다.

《윤덕형의 이 재간을 나한테 물려주구려.》

양호신은 동윤덕이 부어낸 철물제품을 집어들고 눈여겨 살펴보며 말했다.

《소목 재간을 가지구선 안되지.》

《하, 되겐 재치는구려. 에이, 배고프다. 저녁도 안 먹었더니…》

어수선한 작업장 한구석에 때오른 사과상자를 밥상대신 놓고 저녁이라는것을 차려놓은 소옥이가 자랑이나 하듯 찾았다.

《내가 밥을 지었어요. 맛있게.》

남계수보다 먼저 가서 자리를 잡은 양호신은 《밥상》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이거 우리 소옥이가 괜찮은걸. 당콩밥을 다하구. 하하, 오이나물을 다 메웠구나. 내 시집보내줄라?》

양호신의 물음에 소옥이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시집이라는건 뭐나요?》

《너 각시가 되고싶지 않니?》

아홉살 난 소옥이는 말귀를 다 알면서도 새물거려댔다.

《각시보다는 신랑이 좋아요. 녀잔 밥만 해야 하거든요.》

그 소리에 동윤덕이까지 벌씬 웃으며 제 딸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윤덕형, 한잔 주시우.》

양호신이 손을 내밀자 동윤덕은 어이없다는듯 웃으며 말했다.

《이 소목아, 이름을 아예 한잔주로 고치려무나.》

《하하하.》

남계수는 두사람이 하는 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그도 속은 출출했다. 저녁밥을 안 먹었던것이다. 소옥이가 차린 상이라도 받아야 하는가부다. 이것도 전란의 엄혹성을 말해주는것이리라.

느릿느릿 걸어가 공구함의 문을 연 동윤덕이 되병 한개를 꺼내들고 왔다.

《히야, 한턱내는구려. 갓마흔에 첫 버선이렷다.》

양호신이 너무 좋아서 술병을 받으며 말했다. 남계수는 소옥이를 옆에 끼고 자리에 앉았다. 밥바리뚜껑에 술을 부은 양호신이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짓고 남계수를 바라보았다.

《형님, 뭘 위해서 들가요?》

희떱게 놀아대는 양호신에게 남계수는 대답했다.

《용해로를 만든 소옥이 아버지를 위해서 들어야지.》

양호신이 제꺽 받아넘겼다.

《전선원호를 마시자! 옳지요?》

늘어진 동윤덕이 대꾸했다.

《그저 덤벼대며 삼킬 궁리라니. 잘하기 위해서가 빠졌네. 말도 할줄 알아야 해.》

양호신이 이마를 쳤다.

《소옥아, 네가 그 말을 튕겨줄게지.》

《해해해.》

소옥이가 하얀 이발을 드러내며 천진하게 웃자 세사람은 그 어떤 성공의 기쁨과 함께 삶의 희열을 맛보았다.


동윤덕이 주형모래는 반드시 서호기슭의것을 가져와야 한다기에 남계수는 소달구지로 30리가 넘는 길을 오늘 두탕이나 하였다. 여름해가 산마루에 기울었을무렵에야 돌아온 그를 양호신이 맞아주었다.

《형님, 수고했수다.》

《고무장갑을 만들어봤나?》

위생용고무장갑은 흰 파고무에 첨가제를 배합하여 탈류한것을 리용하기로 했다. 양호신은 녀성로동자들을 데리고 작업장으로 갔다. 사람의 손모양의 목형을 고무물에 담그었다 꺼내여 식힌 다음 다시 담그는 방법으로 만드는데 완성했다는것이 몇개는 잘되였다.

남계수의 눈으로 보기에도 그만하면 괜찮아보여 한개를 집어들고 늘구어보고나서 손에 끼였다. 손가락을 놀려보니 노근노근한 맛이났다.

《자네 보기엔 어떤가?》

양호신이 기웃한채 퉁명스럽게 젊은 녀인을 찾았다.

《영금이, 네가 대답해보렴.》

얼굴이 동그랗게 생긴데다 오목눈을 갖춘 영금이라고 불리우는 녀인은 당돌하기도 했다.

《호신아저씬 입이 없나. 좋다구 하구선…》

《대답질하는걸 보지. 내 녀편넬것 같으면 아예 주리를 틀겠다.》

《흥, 집에 들어가면 꼼짝도 못하면서 나와선 큰소리, 장갑은 만들었다지만 신통치는 않아요. 좀더 나근나근하면 좋겠는데… 나도 처녀때 병원에서 일해봐서 수술용장갑을 껴봤거든요.》

《그렇긴 해. 영금이처럼 나근나근해야 할텐데…》

양호신이 힝힝대자 녀자의 작은 주먹이 어느새 그의 잔등에 날아들었다. 남계수는 그 놀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물과 송탄유를 배합하여 분쇄한 파고무를 10시간정도 숙성한 다음에 탈류하는 방법으로 해보게. 질기면서도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네.》

《알겠수다.》

《하루에 스무개는 만들어야 하네. 오작품은 아예 내놓을 생각을 말라구.》

《영금이, 들었지?》 하고 양호신이 또 넙적댄다.

《그저 날 보구만 말시키네.》

두사람의 이야기를 등뒤에 남긴채 남계수는 동윤덕이 일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소귀신같은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서 자기가 녹여낸 쇠물을 들여다보며 뭐라고 혼자서 중얼거려대고있다. 이 재간둥이는 알루미니움과 파동을 섞음하여 합금소재를 만들어낸것이다. 어두운 은백색을 띤 쇠덩이가 그의 앞에 놓여있었다.

《주형모래는 다 실어왔네.》

《부서지거던, 젠장.》

《잘 안되는 모양이구만.》

《가볍기는 한데, 뭘 더 섞어봐야 하겠다.》

여전히 혼자소리로 주절거리는 동윤덕의 모습을 내려다보던 남계수는 제김에 웃고말았다. 그야말로 제 생각에 사는 사람이 동윤덕이다. 오죽하면 양호신이 《윤덕형의 속심은 하늘이나 알거웨다.》라고 하겠는가.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성미가 너무도 늘어져 사귈 멋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이지만 기술 하나를 바라보고 이날까지 곁에 두고 일하는 남계수다.

《사람이 곁에 왔는데 돌아보는척이라도 하게나.》

그제서야 동윤덕의 앉음새가 약간 달라졌다.

《무슨 일판을 자꾸 벌려놓는지, 원.》

늘어진 불평이다.

《언제까지 만들라는걸 내놓겠나?》

동윤덕이 수술칼, 가위, 집게 등을 만들 합금철을 주무르기 시작한지도 열흘은 실히 걸렸다.

《물도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구요.》

《젠장, 누가 그따위 소리나 듣겠다나.》

남계수가 역증을 내는데도 꿈쩍 안했다.

《다시 굽어봐야지. 늄이 많이 들어갔거던.》

동윤덕은 부시럭거리며 녹여놓았던 쇠덩이를 모아서 한옆에 밀어놓았다. 이제는 한대 말아피울 잡도린지 주섬주섬 담배쌈지를 꺼낸다. 지레대질로도 일으켜세우지 못할 사람을 굽어보며 남계수는 웃고말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지만 이날까지 속에 뭐가 들어찼는지 가늠할수 없는게 동윤덕이다.

해방전에 있은 일인데 구일파가 갑자기 항구도시에 찾아와서 세사람이 남계수의 집에서 저녁을 같이한적이 있었다. 그때 동윤덕의 거동을 보고난 구일파가 한 말이 그럴듯했다.

《저 사람은 말이네. 자기 하느님을 따로 가지고 사네.》

《그게 뭔가?》

《제 타산이지.》

그랬는가 하면 그후 동윤덕은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했다.

《구일파란 량반은 바람타고 살 팔자지, 흠흠.》

그때를 생각하며 남계수는 벙긋 웃었다.

동윤덕은 제 손가락보다 굵게 만 담배를 다 피우고나서야 말했다.

《벌이나 되는 일을 하는지 원, 무슨 판에 끼워들어가지구. 쯧쯧.》

역시 불만이 가득찬 소리인데 뭔가 내키지 않는 일을 한다는 심보가 비껴있었다.

이럴 땐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것을 아는지라 남계수는 쓴입만 다시였다. 뒤틀리면 당장이라도 난 가겠수다 할 사람이 동윤덕이다. 재간을 믿고 밸통을 부릴 땐 막아나설 방도가 없다. 무정한 이 사람은 제 녀편네가 폭격에 숨이 졌을 때 황소울음을 운게 평생에 흘린 눈물의 전부라고 말하군 한다.

《이 사람아, 전선원호라는걸 명심하구 빨리 다그쳐야 하네.》

《천리길도 첫걸음을 잘 떼야 가는걸세.》

《거야 옳지.》

《호신이넨 물건 같은걸 만들어내던가?》

《고무장갑을 그만하면 괜찮게 내놓았네.》

《흥, 소목이 별루 열성이야. 셈판을 모르니…》

《소옥인 우리 집에 보냈겠지?》

동윤덕은 고개만 끄덕댔다. 제 자식을 그렇게도 돌봐주는데 언제한번 고맙소 하는 인사를 차릴줄도 모른다. 만사를 제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는데 습관된 사람이니 별수 없는것이다.

《우리 집사람이 말하는데 소옥이가 머리는 좋다는구만.》

《좋아야 이젠 홀아비의 딸이지.》

《궁상맞은 소린 그만하게. 잘 키워야 할게 아닌가?》

《흠, 애비팔자를 닮았으면야 키운다구 달라질가.》

남계수는 동윤덕의 심사가 한층 울적해나자 말을 더하고싶지 않아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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