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제 4 장


35


강치명은 사흘만에 평양에서 돌아왔다. 그 짧은 기간에 필요되는 측정기구들을 전부 구입한것은 물론 대학들과 연구기관들을 찾아다니며 로보트제작에 참고가 될 귀중한 기술자료들도 가지고 왔던것이다. 설계와 함께 가공조립에서 정밀도보장, 유연성, 열견딤성 같은것을 높이는데 절실히 필요한 기술문헌들이였다.

《비서동무가 그렇게 질풍같은 성민줄은 몰랐소.》

남계수가 감탄하여 말하자 강치명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젠 통신병이 아니라 지휘관이거든요.》

그 말의 뜻은 남계수도 다른 사람들도 알지 못했으나 강치명의 행동은 모든 사람들을 공감시켰다.

《비록 단능로보트이기는 하지만 우리자체로 만든 제품을 이달중에 시운전해보자고 합니다. 당비서동무가 출장길에 피곤했겠는데 오늘은 좀 쉬는게 좋을것 같군요.》

《공격전이 한창 벌어질 때에는 휴식이란 없습니다.》

이렇게 출장배낭을 내려놓은 강치명은 그길로 동소옥이네 작업장을 찾았다. 그사이 일을 많이 하였다는것이 눈에 알렸다. 널직한 방안에 완성된 설계대상의 평면도, 립면도, 자름면도들이 붙어있는 설계대들이 빼곡이 들어차있었다.

《이번에 평양에 갔던 길에 과학자들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우리가 맡은 과제가 첨단기술이라는것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였소. 중요한것은 설계를 선행시키는거요. 동무네 단계에서 금속재료들이 옳게 확정되여야 하고 가공에서 지켜야 할 지표들이 확정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소. 누구도 헤쳐보지 못한 길이니 순탄하지는 않을거요.》

《각오하고있습니다.》

며칠밤을 새웠는지 동소옥의 눈은 충혈되여있었고 입술마저 초들초들 말라 보풀이 일었다. 강치명은 설계실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방안의 공기가 좋지 않구만. 환기대책을 세우고 일해야 하오. 조장동무는 함께 일하는 동무들의 건강을 먼저 생각해야지. 내 공무에 말해서 작은 배풍기 하나를 만들어줄테니 설치하오.》

《해봤는데 소음이 너무 세서… 오히려 불편했습니다.》

동소옥의 대답에 강치명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쯤한 부족점도 퇴치 못하다니. 그건 사상관점이 바로 서있지 않기때문이요. 우선 방안의 공기갈이대책을 세운 다음 일을 계속하도록 하오.》

인차 돌아서서 나갈것 같던 강치명이 나무걸상을 당겨다 앉기에 동소옥은 자리를 권하지 못한 미안감으로 얼굴을 붉혔다. 이 당일군을 잘 아는 녀성로동자들이 공장에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그들중의 일부 녀자들은 지금도 실없는 뒤소리를 한다.

워낙 녀자들의 입심이란 중구난방이여서 별로 들을 소리가 없다고 하지만 이 당비서는 녀성에 대한 견해가 독특한것도 사실인듯싶다. 뒤생활마당에서 울리는 녀자들의 소리에는 애초에 귀를 돌리지도 않는것이였다. 그것이 동소옥에게는 남자답다는 의미로 새겨지는것이다. 녀자가 울면 제절로 그칠 때까지 놔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소옥동무, 동문 려현석동무를 어떻게 보오?》

강치명의 입에서 뜻밖의 물음이 나오자 동소옥은 가슴이 출렁대는것을 느꼈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가. 려현석은 당비서앞이라 해서 할 말을 못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러나 아래우를 가리지 못하는듯한 그런 경우를 목격할 때면 우려감이 들기도 했다. 사람이 무난해서 나쁠것은 없다. 모난 돌이 여기저기 부딪치기마련이다.

《재능있는 기사입니다.》

강치명은 금속시편 한개를 들고 들여다보며 왕청같은 말을 하여 동소옥을 놀래웠다.

《기사장동무가 말하는데 동무네 두사람의 사이가 류다르다는거요.》

이건 완전히 색갈이 다른 말이다. 류다르다면 내가 류다르지 그사람은 알지도 못하는것이다. 그리고 류다른것은 기사장이였다. 언제나 이상한 눈으로 보기를 즐겨했고 알아주지도 않는 수석지휘자놀음을 하며 화음이 어떻소 하는 언어로 자기의 기대를 내비치군 하는데 한갖 주관에 불과한것이다. 그런 일방적인 생각을 어떻게 당일군에게 말할수 있는가.

《그건 억측입니다. 함께 일하는 때가 많다고 그렇게 본다면…》

숨결이 높아진 목소리로 부정하는 동소옥의 말을 들으며 강치명은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난 말이요. 전쟁시기 사단무전수였소. 흠흠, 동문 도쯔돈돈이라는게 뭔지 모르지? 난 송신도 잘했지만 수신에선 사단장아바이도 귀신같다고 했소. 송신자의 타전법을 전문 한통만 받으면 알아냈거던. 어느 정도였는가…》

강치명의 눈앞에는 어느덧 전선의 잊을수 없는 밤이 펼쳐지고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여있는 그 처녀정찰군관의 모습…

만약 그가 보낸 전파가 마지막송신이 아니였다면 그리고 만약 그 처녀가 적후에서 돌아오고 다시 만날수 있었다면 하는 공상은 이 나이를 먹도록 머리속에 남아있다. 아마도 이룰수 없는 리상만큼 유혹적인것은 없는듯싶다.

《어떻소? 이런걸 두고 랑만적인 공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소? 왜? 솔직히 말해서 난 그 녀성을… 그때 스무살이나 겨우 넘겼음직한 나이였지만 조국의 믿음앞에 선 병사의 행동은 어떤것이여야 하는가를 가르쳐준 그 처녀정찰군관을 아직도 잊을수 없소.…》

동소옥은 야릇한 눈길로 강치명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도 혹시 젊은 시절에는 이룰수 없는 사랑을 안고 살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자 짜릿한 아픔이 밀려들었다.

《이제 내가 소옥동무의 비밀타전법을 알아내지 않나보오.》

지금까지는 전혀 생소한 무선통신분야의 언어들을 무심히 들었는데 거기에 자기를 빗대고 비밀타전법이라고 하니 너무도 엄청난 표현이여서 동소옥은 얼버무리는 투로 말해버렸다.

《저한텐 타전법이란 있어본적도 없는데…》

강치명이 그제야 미소를 짓고 바라보더니 일어났다.

《그걸 내가 배워줄수도 있다는거요.》

《예?…》

《손으로가 아니라 심장으로 치는 법을 말이요.》

《비서동지도 롱담을 하실 때가 있습니까?》

《당비서이기 전에 인간이니까. 〈흥성-1〉호의 운명은 동무를 비롯한 우리모두의 어깨우에 실려있다는것을 잊지 마오. 여기에서 돌파구는 동무가 맡고있다는것도… 이것은 당조직이 동무에게 준 첫번째 분공이란걸 알아야겠소.》

강치명이 방에서 나가자 한자리에 굳어진듯 서있던 동소옥은 당비서가 한 말들을 음미해보았다.

심장으로 치는 타전법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의 지휘봉이나 휘둘러서는 해결할수 없다고 생각한 기사장이 당비서에게 지원을 요구한것이 틀림없다.…

두손으로 가슴을 꼭 누르고있는 동소옥의 입에서는 《어쩌면…》하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상한것은 마음속에 감추고 사는 비밀이 드러나는데도 놀랄 대신 자기가 오늘까지 마음속에 안고 사는 한 남자의 마음속으로 남의 부축을 받으면서라도 들어서고싶은 충동이 강렬해지는것을 어찌할수 없는것이였다. 그는 야릇한 웃음을 짓고 오래도록 서있었다.


흥성철제일용품공장에서 1단계목표로 내세우고 제작한 단능로보트의 시운전을 하겠다는 보고를 받은 리건창이 공장을 찾아왔다. 남계수와 강치명이 그를 맞이하였다.

석달사이에 두차례나 병원입원생활을 한 그의 얼굴은 병색이 짙었다. 전쟁때 부상을 당해 대수술을 받은 후유증과 몸안에 남아있는 두개의 파편이 애를 먹이고있는것이였다.

남계수는 옛 지기의 건강이 저으기 우려되지만 묻게 되지 않았다. 다만 단능기계에 불과하지만 로보트의 시험가동을 할 준비가 되였다고 말했다.

《수고가 정말 많았소. 자주 와봐야 하는건데 미안하오.》

리건창은 두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가공직장에 들어섰다. 새로 설치한 공작기계들의 옆에 이번에 제작한 로보트가 서있었다. 동소옥과 려현석이 조작에 앞서 기계의 기술상태를 검사하고있었다.

정시홍이 로보트가 비록 기능은 단순하지만 이 제작과정이 다기능화된 로보트들의 모든 동작원리를 파악하고 그 제작으로 이전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되였다고 설명하였다.

로보트의 손이 수직과 수평이동, 회전시 움직이는 자리길과 소재의 이동방향, 소재를 인식하고 지령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 과정을 리건창은 주의깊게 들었다.

《우리에게 가져온 견본로보트는 지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기계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참고하면서 발전적견지에서 조종장치를 우리 식으로 제작하였으며 유압을 리용하는 조건에 맞게 구동기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현재 로보트는 10센치메터의 허용범위안에서 자유자재로 동작할수 있도록 설계되여있는데 실험과정에는 비교적 원만히 동작하였습니다. 오늘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는지…》

조종을 맡은 처녀운전공이 준비를 하고있었다. 사람들의 눈길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창조물에 못박혀 움직일줄 몰랐다. 이전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을 불과 석달사이에 해낸것이였다.

착오와 실패, 그에 따르는 반복수정작업은 그 얼마였던지 이루 헤아릴수 없지만 그때마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 다시 달라붙군 하여 드디여 오늘에 이른것이다.

려현석이 손짓을 하자 처녀운전공이 로보트의 시동단추를 눌렀다. 고개를 숙인채 서있던 로보트의 팔이 움쭉 쳐들리더니 앞으로 쭉 내뽑는다. 그것을 보며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작업대우에 놓여있는 소재를 의식한 로보트가 팔목을 구부리며 천천히 작업대상에 접근했다. 소재는 10미리정도의 볼트인데 조임작업을 해야 하는것이다. 로보트의 손가락이 벌려지면서 소재의 각을 이룬 면들을 포착하고 꽉 집자 《성공이다!》 하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하지만 동소옥은 불안한 시선으로 로보트의 작업과정을 지켜보고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로보트는 소재를 집은채 움직일줄 몰랐다. 손가락과 손목이 그 이상 동작을 하지 않는것이다. 운전공처녀가 안타까와 조종단추를 눌러 다시 작업지시를 주었지만 로보트의 손은 더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시운전은 실패였다. 가공설비들을 새로 들여놓은 때로부터 백여일 가까이 벌린 주야전투의 성과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듯싶은 순간이였다. 운전공처녀는 마치도 자기의 조작 부주의로 일어난 일로 여기는듯 자리에 폴싹 주저앉으며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입에서는 한숨소리가 터져나왔다.

첫술에 배부르랴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남계수도 막상 눈앞의 현실로 당하고보니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실패의 원인을 빨리 찾아내지 못한다면 종당에는 엄중한 결과를 빚어낼지도 모른다는 순간적인 동요가 가슴을 뒤흔들며 목줄기로 얼음물이 흘러내리는것을 느꼈다.

《기사장동무의 생각을 말해보오.》

리건창이 묻자 정시홍은 창백해진 얼굴로 한숨을 내뿜었다.

《조종함과 구동장치에 결함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로선 실험단계에서 확신했는데… 원인을 찾아보겠습니다.》

《내 보기엔 첫걸음치고는 크게 뗐다고 보오. 어쨌든 로보트가 움직이지 않았는가 말이요. 기양의 뜨락또르도 처음엔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가지 않았소. 동무네 로보트는 작업소재를 정확히 가려내여 물기까지는 했단 말이요.》

리건창의 말이 실망하지 말라고 고무를 주려는것으로 여겨져 남계수는 말했다.

《면목이 없습니다. 모든것을 정확히 타산하느라 했지만 역시 능력이 딸리는것 같습니다.》

《헌데 조급증에 사로잡혀 너무 욕심을 앞세운건 아니요?》

동소옥과 려현석이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거야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남계수의 대답에 리건창은 웃음을 지었다.

《누가 모르오. 첫 시운전에서 단번에 목표를 달성하겠다는건 지나친 욕심같아 하는 말이요. 군사용어에는 당면임무와 차후임무가 있는데 동무들은 당면임무는 수행한것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오. 어떻소? 당비서동무!》

《신심을 주어 고맙습니다.》

리건창이 껄껄 웃었다.

《동무도 지배인동무를 닮아 욕심만 늘어가는게 아니요. 이쯤한 실패에서 주눅이 들가봐 그러오. 물론 시간은 없소.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것도 잘 아오. 그러나 동무들은 반드시 해낼거요.》

리건창의 말에서 남계수는 충격을 받았다.

시운전의 실패로 당황했던 돌격대원들의 얼굴마다에 생기가 살아나자 리건창은 강치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서동무, 저 기사동무들 말이요.》 하며 리건창은 동소옥과 려현석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들 두사람은 아직도 실패의 원인을 놓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있었다.

《손풍금 같은 악기를 다룰줄 아오?》

강치명은 리건창의 속마음은 모르지만 이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소옥동문 지금도 무대에 내세우면 웬간한 무용수들은 두손 들겁니다. 손풍금이면 손풍금, 기타면 기타. 참, 우리 려현석동문 손풍금명수랍니다.》

《모르겠소. 과장된 칭찬이 아닌지…》

《그건 이 자리에서도 보여드릴수 있습니다.》

《난 말이요. 전시가요 〈결전의 길로〉가 방송으로 울려나올 땐 함께 싸운 전우들을 생각하오. 당비서동무도 나나 같겠지?》

《그러문요. 노래가 아니라 공격에로 부른 포성이였지요.》

의심쩍어하면서도 강치명은 리건창의 이야기에 끌려들었다. 리건창은 옆에 좀 떨어져 앉아 정시홍과 무엇을 토론하는 남계수의 모습을 돌아보고나서 싱긋이 웃으며 물었다.

《당비서동무도 노래를 잘 부르지?》

《예?》

난데없는 노래소리에 강치명은 자기가 잘못 걸려드는것 같아 손을 저었다.

《완전무결한 음칩니다. 군대때 쯔쯔돈돈은 잘 불렀지만…》

리건창은 그러거나말거나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비서동무, 우리 화선선동을 해보기요. 제목은 〈결전의 길로〉, 어떻소?》

《선동연설을 준비해야 할텐데요.》

《화선식인데 준비라는건 뭐요. 우선 저 두 기사를 부르오. 그리구 이자 그 노래를 악기로 탈수 있는가를 물어보오.》

강치명이 리건창의 독촉에 별수없이 동소옥과 려현석을 불러 물으니 그들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곁에서 듣고있던 리건창이 무릎까지 쳐댔다.

《좋아, 동무들은 가서 손풍금과 기타를 가져오우. 그새 수고들을 했는데 작업장에서 노래소리가 들썩하게 하자구. 좋지? 소옥이.》

동소옥은 영문을 모르지만 다른 대답을 할수도 없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쩌자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강치명이 불안해하는데 리건창은 전혀 개의치 않고 남계수를 찾았다.

《지배인동무, 거기선 머리를 마주대고 뭘 그리 심중한 론의를 하는거요?》

남계수는 리건창의쪽에 건성 눈길을 돌릴뿐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정시홍에게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둘사이에 어떤 론쟁이 벌어지고있는듯싶었다.

《비서동무, 화선선동의 주역은 지배인동무에게 맡깁시다. 전시에 전선원호물자를 만들던 이야기를 젊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힘이 될거요.》

강치명은 그제야 리건창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지금의 환경에서 자기가 생각해냈어야 할 일을 상급이 찾아주는것이였다. 실패에 동요없는 지휘관의 모습을 보여주는것과 함께 가렬했던 전화의 그 나날처럼 살며 일할것을 호소한다면 화선식선동은 실효를 나타낼수 있었다.

《중요한건 우리 동무들의 정신력을 총발동시키는거요. 포화를 헤치며 생사를 판가리한 결전장에는 락오자가 없었소. 그거야 전쟁참가자인 비서동무가 더 잘 아는거구. 오늘도 우리는 그 정신으로 일해야 하는거요.》

《돌격대원들만이 아니라 공장종업원모두를 모이게 하겠습니다.》

《좋소, 허허. 주인공은 내가 준비시키겠소. 이거 내가 연출가가 되는게 아니오?》

《그런것 같습니다.》

강치명은 곧 자리를 떴다. 어데선가 손풍금소리가 울려온다. 정시홍과 이야기를 끝낸 남계수가 《여, 때두 모르구 풍작대는게 누구야? 그치라구 하라!》 하고 소리쳐대고는 귀구멍을 쑤셔댄다.

《내가 시켰소. 지배인동무! 얼른 여기로 오기나 하오.》

리건창이 말하자 남계수는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다가왔다.

《당비서동무와 토론이 있었소.》

그새 무슨 일을 조직했다는것을 감촉한 남계수는 작업장을 둘러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판인가. 시운전에서 실패했는데 울어도 시원치 않을 녀석들이 무슨 구경거리를 만났다고 꾸역꾸역 모여드는가. 이게 다 리건창이 당비서와 협의하고 조직한 일이면 헤쳐가라고 소리를 지를수도 없다. 모여드는 사람수가 늘어나는데다 희한한 구경거리라도 만난듯 방석까지 차비해가지고 온 공장의 3총사로 불리우는 명물들을 보자 더 화가 동했다. 나이는 많아도 돌격대원이 되였다고 요즘은 어깨를 잔뜩 춰올리는 사람들이다.

《지배인동무도 전쟁시기에 자주 부르던 〈결전의 길로〉라는 노래가 생각나겠지?》

《예?…》

《노래를 부르라는건 아니구… 그때 전선원호를 위해 뛰여다니던 이야길 사람들앞에서 하라는거요.》

남계수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싸우는 전선에 보냈던 수천컬레의 신발과 방수포, 각종 의료기구들… 하지만 그것은 수많은 꽃나이청춘들이 결전장에서 조국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생명까지 서슴없이 바친것에 비하면 너무도 보잘것없는것이 아닌가! 군기기금헌납금을 바친것도 이 땅에 태를 묻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하는 공민적자각에서 출발한것일뿐이다. 사실 민족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준엄한 싸움마당에서는 누구나 자기라는 존재를 잊어버리고 살지 않았던가. 그러니 오늘 내 나이의 절반도 못살고 간 그 애국의 령혼들앞에 부끄러운 내가 그들을 대신해서 감히 무슨 말을 한다는건 있을수도 없는 일이다.

《에이, 그것만은 안되겠수다.》

《누가 제 소리를 하라오. 나한테도 자주 이야기한 그 사람 있지 않소? 로앞에서 풍구질을 하면서도 도깨비장물을 마셨다는…》

《아, 양호신!…》

남계수가 어떤 감동을 받으며 격해난 소리를 지르자 가까이 앉아있던 3총사가 사연은 알지도 못하면서 제일먼저 폭소를 터쳤다. 그쪽에 대고 눈총을 쏘아댄 남계수가 리건창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리건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격대원동무들! 앞으로 동무들이 헤쳐나가야 할 앞길에는 시련과 난관이 수없이 겹쳐들것입니다. 그러나 전화의 나날 동무들의 부모들이 발휘한 불굴의 돌격정신으로 싸운다면 반드시 동무들의 손으로 우리 당이 바라는 〈흥성-1〉호를 만들어내리라고 굳게 확신합니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오르는 속에 동소옥과 려현석이 손풍금으로 《결전의 길로》의 전주를 울렸다. 모인 사람들의 얼굴들에는 숭엄한 감정이 흘렀다.

남계수는 준엄한 포연속에 새겨진 평범한 인간들의 생을 돌이키며 추억의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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