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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9월 16일

평양시간


제 31 회


제 3 장


31


《흥성-1》호제작을 위한 공장적인 토론도 마감단계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중앙에서 기술력량을 보충받으며 일련의 설비들과 자재를 국가계획에 물리자는 의견들이 나왔지만 로동자들속에서 반대하였다. 오랜 기능공들인 공장의 3총사라는 세명의 로동자들이 그 앞장에 섰다.

그렇게 만들어낸 기계를 두고 우리 공장의 제품이라고 할수 있는가, 기술로부터 시작해서 모든것을 우리자체로 해결했을 때에만 《흥성》이라는 자호를 떳떳이 달수 있다는것이였다.

《동무들, 이 지배인을 비판하시오. 바로 내가 우에 손을 내미는 방법을 택하려 했던것이요. 나는 동무들을 믿습니다. 〈흥성〉자호에는 언제나 우리의 깨끗한 량심만이 비끼게 합시다.》

남계수의 이 말은 자체비판이자 공장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것이였다.

정시홍과 기술준비실의 기사들은 밤잠을 잊고 일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바쁜 동소옥과 려현석은 구내식당에서 매끼 밥을 날라와야 할 지경이였다. 기술준비실에서 그렇게 한끼를 먹고는 다시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였다.

《난 말이요. 동무들의 서로 다른 두개의 선률이 보다 조화롭고 밀착된 화음을 이루길 바라오. 이건 지휘자인 나의 권고요.》

정시홍은 이따금 그들이 일하는 곳에 나타나 빙그레 웃으며 이런 싱거운 말을 하군 하였다. 그것이 일종의 기대라는것을 모를리 없지만 두사람은 너무 들은 소리라는 식으로 흘려넘겼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정시홍이 큼직한 보퉁이를 들고 와서 작업을 중지시켰다.

《바이올린 1번수동무, 동무의 저음악기보고 연주는 그만하고 식사나 하잔다고 알리오.》

《제가 무슨 1번숩니까. 현석기사가 있는데.》

《동무가 고음음역을 담당해야지 남자가 그걸 맡겠나.》

《기사장동진 년세가 많아지면서 말씀하실 때의 론조가 점점 이상하게 번져갑니다.》

《이상한게 아니라 교활해지는거야. 누구한테 배웠는지 아나?》

묻지도 않는데 귀에 대고 수군거리자 동소옥은 허리를 꺾고 《큰일날 소릴, 부기장동지 아시면… 호호호.》 하며 눈물이 나오게 웃어댔다. 그러자 려현석이 무슨 일이냐 하듯 바라보았다.

《우리 저 콘트라바스는 왜 멍청해있는거요. 어서 가자구. 내 한턱 내는거야.》

기사장이 손에 든 보퉁이를 쳐들어보이며 불러서야 려현석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들이 기술준비실에서 점심식사를 끝냈을 때 남계수가 나타났다. 지배인과 자리를 같이한 자리에서 부기장이 구내상점건설을 홍진실과 같이하는데 얼마나 손발이 잘 맞는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내 수도 그만하면 괜찮지 않소, 기사장동무?》

정시홍이 능청스레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묘수를 좀 쓰라는겁니다.》

남계수가 려현석을 넘보며 쓴입을 다셨다. 벌써 다 먹고 입을 닦고있는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일어서서 일에 붙을 판이다.

《이보라구, 려기사. 자네들을 위해 기사장이 성의를 보였으면 소옥이와 함께 인사를 하는게 옳지 않아? 엎음갚음이라구, 인정도 품앗이라는 말을 모르나. 한심하기란…》

려현석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소옥동무가 누구라구 그런 인사도 모르겠습니까.》

《어마나, 저한테 미나요?》

《나야 2번수가 아니요.》

《이런 때에야 1번수의 임무도 수행할수 있지 않아요.》

기회를 만난듯 정시홍이 장식음을 입혔다.

《화음이 좋다.》

《지휘자동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이 연주가는 먼저 일어납니다. 잘 먹었습니다.》

려현석이 제법 정중하게 인사까지 차리고 나가자 《저런 사람 봤나.》 하고 정시홍이 손을 쳐들고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남계수도 쩝쩝 입을 다시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 판에서도 웃기만 하는건 동소옥이다.

오늘은 허파에 바람이라도 찼는가. 남계수가 눈까지 흘겨댔다. 자리를 다 거두고난 동소옥이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두분의 수고는 고맙지만 저희들은 그만한 수를 알아차리지 못할 나이도 아니랍니다.》

동소옥이마저 자리를 뜨자 두사람은 닭쫓던 모양으로 한동안 마주보다 웃고말았다.

세상에 사람의 욕망만으로 안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속에 구렁이가 들어앉은것들을 놓고 무슨 놀음을 벌린 자기들이 가소로와 화제를 돌려버렸다.

《구내상점은 다 꾸렸더군요.》

《부기장이 이번엔 한몫했소.》

기술준비실을 나선 남계수는 랭동창고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랭동창고와 잇달아 지은 건물의 처마에 상점간판이 척 내걸렸다. 지내보니 홍진실의 일욕심이 여간 아닌데다 수완이 얼마나 좋은지 시와 구역의 도매소들을 종횡무진한다. 매대에 진렬한 상품들을 보면서 종업원들은 언제면 문을 여는가고 하루가 멀게 독촉이다.

《마침 창고장이 있구만. 어떻소, 랭동기가 잘 돌지?》

랭동창고에 들어선 남계수가 이렇게 묻자 창고장이 대답했다.

《랭동설비의 능력이 커서 아무거나 넣으면 한시간도 되기 전에 업니다. 주변식당들에서 원자재들을 보관해달라고 꼬리를 물고 찾아와서 걱정인데요.》

《음, 괜찮아. 부업이라는것두 해보니 재미가 있구만.》

흐뭇해난 남계수가 걸음을 돌려 새로 꾸린 상점안에 들어갔다. 홍진실이 진렬대를 다시 손질하다 맞아주었다.

《홍동무의 수준이 이게 다요?》

《맘에 들지 않습니까? 하느라구 했는데…》

《제 집 꾸리듯 해야지. 윤기가 반들반들 나게 말이요.》

남계수가 롱담을 한다는걸 넘겨짚은 홍진실이 변죽을 울렸다.

《해떨어지면 눈감기고 눈뜨면 공장인데 언제 닦고 쓸어 반질거려냅니까. 생겨먹길 그렇게 생겨먹었는데…》

《그래두 우리 처녀들은 홍동무의 옷차림이 본보기래. 잘 생겼지, 멋부림이 아니라 자기의 기호에 맞게 지성미가 느껴지는 차림을 하고 다니니 하는 소리겠지.》

홍진실은 발까지 구르면서 아니라고 손을 내흔들며 말했다.

《어마나! 이럴 땐 어떻게 말해야 하니. 지배인동지, 저도 이젠 나이가 있는데 처녀애들처럼 띄우지 마십시오. 가뜩이나 왕하기 좋아하는 전데…》

《부기장하구 일해보니 어떻습데?》

화제의 목적이 이것이였구나 하고 알아맞힌 홍진실은 입을 딱 벌렸다. 두달가까이 조영길과 같이 일했는데 생각보다는 다른 인간의 모습을 보았던것이다. 간특한 사내로 여기고 어디 골탕을 먹어봐라하던 심사는 일하는 사이에 사라지고 조심스러우면서도 담이 약한 남자가 조영길이라는것을 알았다. 이전엔 부기장부를 낀 거만하고 야시꼬운 사내였는데 지내보니 어덴가 성실하고 솔직한데도 있었다. 물은 건너보고 사람은 지내봐야 한다는 말이 그른데 없다고 생각했다.

《지배인동지, 꽤나 수가 높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부기장동지가 이야기했습니다. 자기가 지난날 지배인동지를 어떻게 괴롭혔는가를 말입니다. 다는 모르지만 저도 당해본 일이기에 부기장하고는 기쓰고 해본겁니다.》

《난 동무하구 공수동맹을 맺은 일이 없는데…》

《갑자기 동맹은 뭡니까. 련속공격을 하자구 했는데 적수가 너무 허약해서…》

《아무렴, 홍동무와 맞설 사내가 어디 있을라구.》

《또 놀리시네.》

남계수는 머리를 저었다.

《예로부터 수그리는 머리는 베지 않는다구 했소. 그럼 부기장하군 그쯤하지, 홍동무?》

홍진실이 두손을 마주잡고 감동에 겨워 말했다.

《내가 왜 지배인동지와 상대할 나이에 태여나지 못했을가.》

남계수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척 했다.

《이젠 일칠 나이도 지났다.》

《호호호…》

홍진실은 랑랑한 소리로 웃어대고나서 물었다.

《상점은 언제 열게 됩니까?》

《당비서동무가 새로 부임되여온다는데 그때 하면 되겠지.》


산골짜기는 어둠속에서 끝간데 없을것만 같은 오솔길을 이어놓는다.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고요,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알 같은것이 다가들다가는 뒤걸음치며 사라지고 몸서리치게 하는 날짐승의 울음소리가 간단없이 들려온다. 숲속에 웅크린 바위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금시 무너져내릴듯이 움씰거려댔다.

음험한 심연속으로 두주먹을 움켜쥐고 그는 그 누군가가 불러서 걸어가고있었다.

어디에 있는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 저기다. 마침내 찾아본것은 사람이 아니라 굳어진 비석이였다. 비문에 새긴 글이 흑흑칠야건만 똑바로 보였다.

그러니 아버지가 여기에 묻혔단 말인가, 나를 기다린것은 아버지의 령혼이였구나.…

금시 가슴은 미여지는것 같은데 그의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자기의 목소리는 너무도 청청했다. 아버지의 령혼을 찾아왔지만 아버지가 아닌 누구와 류별난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것이다.

당신은 나를 기억하시지요? 내가 누군가요? 봉선화꽃물을 곱게 올린 이 손으로 목마른 당신의 가슴을 식혀준것이야 잊을수 없겠지요. 걸음은 잦지 않아도 내 집은 반가이 맞아들이지 않았던가요. 우리 부친이 바라기에 술도 부어준 나를 기억하지요? 모르겠단 말이군요. 뻔뻔스러운 인간의 대답은 달리될수 없어요. 그렇다면 1958년 신년야회를 돌아보세요. 이젠 내가 누군지 알겠지요? 그때 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약속했어요. 기어이 훌륭한 선물을 안겨주겠다고…

《이건 누구의 무덤이요?》

바람소리를 내며 곁에 와선 어떤 사나이가 묻는다.

《당신거예요.》

《나야 이렇게 살아있지 않소.》

《살아있다고 다 사는건 아니지요. 죽을거예요.》

《죽지 않는 사람은 없소. 그런데 왜 나를 그리도 죽이고싶어하오?》

《그걸 모르기에 죽어야 하는거지요.》

《반대로 내가 당신을 묻게 된다면?… 몽매한 아가씨, 력사를 바로 인식해야 하오.》

《력사는 우리 손으로만 쓰는거예요.》

《가난했던, 무권리했던 사람들이 서술하고있는것을 지금도 보고 있지 않소?》

《피묻은 손으로 쓰는건 력사가 아니야! 너희들이 우리를 어떻게 멸망시켰느냐?》

《그게 바로 력사의 필연이다. 누구의 손에 피가 묻어있는가를 알려달라는가? 사방 수십리에 달하는 옥토우에 지주의 성곽을 짓고 대를 이어가며 가난한 농사군들의 고혈을 짜낸 너희 족속들로 하여 굶주림에 시달리고 살길이 막혀 류리도산한 사람들이 얼마인지 네가 모른단 말이냐? 네 입으로 곧잘 외우는 그 하느님은 땅을 나누어준 일이 한번도 없었다. 최초의 땅의 주인은 농사짓는 사람들이였는데 너희들이 빼앗지 않았는가. 그렇게 수백수천년을 빼앗은 땅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아왔으면 공손히 내놓을줄도 알았어야지. 배고파 죽게된 백성은 임금도 몰라보는데 궁성의 뒤간만 한 집을 고대광실로 여기는 너희들이라고 무서워할것 같은가. 력사를 알려면 이쯤이야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아?》

《듣기 싫다. 더러운 놈, 옛 처지도 다 잊은 배신자! 네놈을 기어코 무덤속에 들여눕히고야말테다!…》

잠결에 무엇이라고 소리치며 일어나 앉은 채련은 어둠속을 멍청히 지켜보았다. 꿈에서는 보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남계수였다. 묵묵한 표정속에 자부가 어린 웃음이 고여있었다. 마치도 가소로운 상대를 주시하는것 같다.

채련은 담요깃을 꽉 틀어쥐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언제까지 비린 웃음을 짓는가를 보자!…

참으로 기막히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사실 그는 남계수쯤은 자기의 사냥대상에 넣으려 하지도 않았다. 류계환이 같은자의 손을 빌어 죽게 하려 했는데 일을 그르친것이다. 그런 놈이 오늘까지 살아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있지 않는가.

보잘것없던 흥성철제일용품공장이 무섭게 번성하고있다. 이제는 시와 구역안의 어디에 가도 그 공장소리를 들을수 있다. 공장이름의 뒤에는 의례히 남계수지배인의 소리가 잇달았다. 일을 잘하여 소문을 내고있는 그를 보느라니 큰 사냥물을 놓치고있다는 자책이 집요하게 매달렸다.

최근에는 남계수의 공장에서 래년도 9월 9일까지 큰일을 계획하고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전에 공장을 날려버리던가 아니면 남계수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을 없애치워야 한다. 채련의 사색은 거의나 무모하고 광신적인데로 흐르고있었다. 공장형편을 알아본데 의하면 동소옥이라는 나이먹은 처녀기사가 핵심이 되여 중요한 새 기술제품개발에 앞장선다고 한다. 그러니 첫번째 과녁을 찾은셈이였다. 하긴 언제부터 꺾어버리자고 마음먹은 꽃이 아닌가. 남계수를 제끼자면 공장의 기술집단을 허물어버리는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남계수다. 류계환이처럼 다스릴수 없는 조건에서 방책을 연구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통쾌하게 넘어뜨리겠는가.

어둠속에 도사리고 앉은 채련은 복수심으로 끓어번지는 가슴에 대고 쉼없이 부채질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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