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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9월 16일

평양시간


제 21 회


제 3 장


21


깊은 밤 어둠속을 뚫고 한대의 유개화물차가 산굽이를 돌아 령길을 톺아오르고있었다. 운전사는 졸음을 이겨내려는지 이따금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대고 화주인 식료상점 책임자는 저으기 긴장한 눈길로 앞을 주시했다. 항구도시의 서북방향으로 길게 드러누운 덕산령은 고개가 유별나게 높아 헐떡고개 조심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적재함에 만짐을 실은탓에 화물차는 힘겹게 달렸다. 마주 불어오는 세찬 바람도 장애였다. 봄을 가까이한 산중에서는 락엽이 아우성을 지르며 밀려와 시창에 부딪치고는 사라져버린다. 전조등불빛이 비쳐주는 앞길로 산중의 놀란 작은 짐승 몇마리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갈팡질팡하며 뛰여다녔다.

《저건 분명 메토낀데 이상하군요.》

운전사가 코를 벌름대며 말하자 옆자리에 앉은 상점책임자인 젊은 녀인이 물었다.

《이상하다는건 뭔가요?》

《지금쯤이면 저것들도 취침시간이겠는데 비상소집이라도 했는가?…》

《호호호… 재미있어요. 군사복무를 어데서 했나요?》

《철령너머에서, 포차운전사였지요.》

《난 간호장이였어요. 사단군의소.》

《그랬구만요. 글쎄, 책임자아주머니가 담력이 있다 했더니, 어느사단 출신입니까?》

《근위 서울김책제4보병사단!》

《근위병이 다른데요. 지금처럼 집을 떠나 물자를 인수하러 다니면 시어머니와 남편이 좋아합니까?》

수수한 혼방직목수건을 두른 녀자는 그 물음에 한숨을 쉬였다. 집안일이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운전사는 공연한걸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말을 더하려 하지 않았다.

《시어머닌 전쟁때 전선원호에 앞장선분인데 그때 당한 부상으로 허리를 잘 쓰지 못해요. 그런데도 나가서 일을 잘하라고 노상 이르시고 집안일은 다 맡아하신답니다.》

《정말 쉽지 않은 어머니군요.》

《그래요. 말이 며느리지 자식된 도리를 못하는것이 안타깝거든요. 이런 밤이면 저녁밥을 다 지어놓고 집마당에 나와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시는걸요.》

《주인은 어느 직장에 다닙니까?》

《철제일용품공장 기사예요. 공장대학을 나온… 나와 함께 한부대에서 복무했어요.》

화물차는 마지막굽이를 돌아서고있었다. 산말기에 이르니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것이 차창을 통해 알렸다. 잎이 진 엉성궂은 나무들사이로 항구의 등대불이 이따금 나타났다가는 사라져버렸다.

《그러니 군대때 련애를 했는가요?》

《운전사동무, 무슨 냄새가 나지 않아요?》

《예?… 냄새라니…》

《차를 세워요!…》

차축을 비틀어대는 제동소리가 울리며 화물차가 멎자 녀인과 운전사는 전투장으로 향하는 병사시절처럼 뛰여내렸다. 마른 숲이 숨을 무섭게 몰아쉬면서 사나운 이발로 우직우직 수림을 씹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때아닌 계절에 열풍이 밀려드는 순간 두사람의 눈앞으로 시뻘건 화광이 치솟았다.

《불이 났어요!… 산불이…》

녀인의 부르짖음소리와 함께 운전사가 어느새 차에서 삽을 찾아들고 무작정 불길속을 향해 돌입하려고 했다.

《서요! 그렇겐 안돼요!…》

《불을 꺼야지요.…》

《빨리 차에 오르라요. 저 불길이 이 길을 넘어서면 큰일이예요. 동문 빨리 가서 알려요. 령밑에 산림경영소가 있어요. 거기서 전화를 걸어 주변마을에 알리세요. 들었어요?》

《혼자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을… 동원시켜야 해요. 우리 둘이서는 막지 못한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녀인은 운전사에게서 삽을 빼앗아들며 다급히 떠밀었다. 화광속에 비쳐드는 두사람의 모습은 결전장에 선 비장한 군상이였다. 자동차의 발동소리가 울리자 녀인은 삽을 움켜쥐더니 녹기 시작한 수림의 흙을 퍼서 불속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밀려드는 불길은 룡트림을 해댔다. 휘휘익- 뻘건 혀를 내민채 나무줄기와 가지들을 타고넘으며 사정없이 녀인에게로 육박해왔다.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있는 힘을 다하여 몸부림치며 삽질을 해대던 녀인이 어느덧 실성한 사람처럼 헤덤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길과 화염이 상대도 안되는 적수를 마침내 뒤덮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비상고동소리를 들으며 녀인은 마지막으로 힘을 모아 소리쳤다.

《빨리들 오세요!…》

깊은 밤에 난 산불을 끄기 위해 주변마을에서는 로농적위대(당시)비상소집을 하였다. 소방차들이 꼬리를 물었고 가까운 마을의 녀인들까지 물동이를 이고 달려왔다. 불길은 령길이라는 차단구간을 넘지 못하고 진화되였다. 그속에서 질식된 녀인을 찾아냈다.

희생적인 헌신으로 녀성은 자기의 한몸과 나라의 귀한 산림자원을 바꾸었다. 병원에 급히 실려간 녀성은 끝내 숨을 거두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동안 사람들속에서 전해졌다.

렬사증과 함께 세운 공로로 국가수훈을 받은 이 녀인이 남긴 사연은 사람들에게 눈물을 자아냈다. 물자접수를 하는 출장길에도 그는 앓는 시어머니의 병치료를 위해 약을 지어 가방안에 꽁꽁 싸두었던것이다. 그것은 며느리로서 바치는 마지막효도였다. 그 사연이 전해지면서부터 사람들속에서는 인간의 품성이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1968년 3월초에 있은 일이였다.…

그때로부터 몇해가 흐른 후 산불이 일어날번 했던 그 송림속에서 나온 농립모자를 쓴 나이지숙한 사람이 고개길아래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풀섶에 퍼더버리고 앉아 어딘가를 주시하고있었다.

묵직한 배낭을 등에 진 장정 하나가 헐떡거리며 기운차게 걸음을 다그쳐 고개길을 오르고있었다. 나이는 어지간한데 걸어대는품은 기력이 펄펄하다는게 알렸다. 흰빛이 듬성듬성 뒤섞인 총이 센 머리카락이 여름바람에 이리저리 날린다.

《이보시우, 길가는 나그네! 예서 좀 쉬구 가시구려.》

농립모자가 고개우에 올라선 사람쪽에 대고 놀려대기나 하듯 말을 붙인다.

이건 어디서 버릇없이 막 굴러먹은 놈이냐 하는 눈으로 마뜩지 않게 휘갈겨보던 눈길이 밝아지며 웃음을 띠웠다.

《산농사군, 거기 앉아서 뒤를 보는게 아닌가?》

《에끼, 도리깨아들놈 같으니, 말버릇 고쳐달라나?》

《야, 이것 봐라. 쇠주먹맛을 보여주마.》

장정이 무거운 짐을 벗어놓고 덮칠듯이 달려들자 농립모자를 쓴 사내는 《어이구- 이러지 마시우. 내 그 손탁에 걸려들어 진짜 뒤를 보면 눈을 감수다.》 하며 두손 쳐들고 엄살을 부려댔다.

《산림경영소 지배인이 일은 하지 않구 길가는 사람에게 야료나하고있으니 한심해.》

《남지배인이 기계공장에 갔다가 점심참에나 돌아설거라고 하길래 목치기를 한걸세.》

《날 만나자구?》

《음, 신세를 좀 질 일이 있어서 그러질 않나. 소형뜨락또르 변속기치차가 나가서 그러네. 차마 남계수가 나를 모른다구야 안할테지?》

배낭을 벗어놓은 남계수도 한숨 돌리고 갈 심산으로 앉았다. 그들은 눈아래로 펼쳐진 야산들을 굽어보며 한동안 말없이 깊은 상념에 잠겼다.

《이젠 오래전 일이지만 잊을수 없구만. 생각나겠지? 저 앞산이 불타던 일 말이네.》

산림경영소 지배인의 말에 남계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댔다. 사람들속에서는 오늘도 그밤의 산불을 두고 이야기들을 자주 한다. 큰재난을 가져올번 한 불을 한몸으로 막아나선 녀성의 남편이 려현석이다. 금슬이 좋아 원앙새부부라고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건만 두사람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슴아픈것은 먼저 간 안해를 잊지 못해 남자는 오늘까지 홀몸으로 살아가는것이다. 아직은 젊은 나이라 여기저기서 청혼도 해오고 중매군들도 나서지만 려현석에게서 거절을 당했다.

원체 말이 적은 사람인데 안해를 잃은 뒤로는 벙어리모양으로 일만 수걱수걱하여 곁에서 보기가 민망스럽기 그지없다. 하도 속이 타서 남계수도 종종 시간을 내여 그의 집을 찾아가군 한다.

산림경영소 지배인이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산불난 현장을 조사하기가 제일 어렵다더구만. 그럴수밖에, 깨끗이 타버렸으니 흔적이라는게 있을수 없지.… 하지만 지금도 생각해보면 수상쩍어. 그 밤중에 누가 밖에 나다니며 담배를 피우겠나. 난 생생히 기억한다네. 바람이 몹시 부는데다 날씨란 여간 춥지 않았지. 고의적이 아니구선 일어날 불이 아니라는걸세. 그뒤에도 이런저런 사고들이 얼마나 많았나. 그러니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는거지.》

남계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댔다. 려현석의 안해는 생기기도 시원스러운 얼굴에 성격 또한 활달한데다가 마음이 무척 선량했다. 식료상점 책임자로서 봉사활동을 잘하여 구역대의원으로 선거받은 녀인이다. 밖에 나가서 일을 잘하여 주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집안에서는 시어머니공대가 하도 극진하여 누구나 부러워하는 가정이였다.

하건만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려현석은 짝을 잃은 한마리의 원앙새가 되여 외롭게 사는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이따금 집을 찾아오는 남계수의 손을 잡고는 눈물을 훔치군 한다.

《그 마음고운 젊은걸 앞세운 생각을 하면 살고싶지 않소만 저 어린것을 어떻게 하오?… 하늘도 무심하지 않아 제 어멈만 한 녀자를 이 집에 보내주면 좋으련만. 어이구, 기가 차서…》

두벌장가는 꿈조차 꾸지 않는 려현석이여서 남계수는 출퇴근이라도 편하게 하려고 공장근처에 집을 하나 마련해주었으며 살림살이걱정을 덜어주려고 왼심을 무던히 써온다. 하지만 당사자가 그런 성의조차 받기를 거절할 때가 많아 화를 내군 한다.

《이건 동무한테 주는 특혜가 아니란 말이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렬사의 유가족에게 경의를 표시하는걸세. 다시한번 석탄을 실어오거나 다른걸 날라다줄 때 막아섰다간 가만두지 않겠네. 뭐 지배인이 제 낯내기로 하는 일인줄 아는가. 당위원회에서 토의한 문제란 말이야.》

그렇게 눌러놓군 하지만 본인이 너무도 미안해하여 마음놓고 도와주지도 못한다. 마음이 고운 사람도 부담스러운 때가 있는것이다.

《남지배인, 점심은 우리 산전막에서 먹고 가지 않으려나?》

남계수는 한손을 내젓기만 했다.

《고집부리지 말게. 우리도 비경지에 부업을 하여 살림살이가 괜찮아. 오늘은 시원한 메밀국수를 눌렀다네.》

《산농사군들이야 먹을 궁리밖에 더할라구.》

《모르는 소리. 배가 불러야 일을 잘한다네. 참, 자네네 공장에서도 축산부업을 해보게나. 내 우리가 일군 비경지중에서 좋은 땅으로 내줄수 있다니까.》

《허허, 언제 돼질 기를새가 있나. 할 일이 얼마나 많다구. 임자네들같이 묘목이나 키워서 옮긴다면 난 돼지가 아니라 소도 치겠네.》

《이 사람이 우리 일을 진짜 산농사로 아는게 아닌가. 허허, 그래도 목재는 필요한지 림지를 받자고 문건을 냈더구만.》

그 소리가 나오자 남계수는 지배인의 손목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올해 공장보수계획에 물린걸세. 350립방, 이깔과 홍송으로 말이네. 그래 림지를 언제 주려나?》

《내 책상우에 청구문건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아나? 다 순서가 있는거지. 내 이자 뜨락또르 변속기치차소리를 했지? 들은척도 안하더니…》

《그까짓 치차가 문제가 아니지. 자네 우리가 불수강으로 만든 그릇시제품을 못 봤지? 산농사군네가 녀자부대라는건 모르는 사람이 없겠다, 이 남계수 신세를 좀 져왔나?》

《이것 보지. 신세를 져? 남계수가 누구라구. 허허. 망두석이 돌아앉을 소릴 하누만.》

산림경영소 지배인은 때를 만났다고 목을 뽑으며 코를 세웠다.

《사람은 앞을 내다보면서 살라고 했네. 산농사를 잘 짓자면 자네도 기계화에 관심을 돌리게. 묘목관수에 대한 비결이 나한테 있네.》

남계수가 공장보수용목재를 해결해야 한다는 타산을 앞세우고 상대의 마음이 동할 주패장을 재빨리 생각해내여 내놓자 아닐세라 지배인이 제꺽 받아물었다.

《이보게, 남계수! 우리야 언제적 친군가. 내가 제일 골을 앓는게 묘목관술세. 그것만 알려주면 내가 할수 있는건 다해주겠네.》

《좋네, 우선 림지를 이달중으로 배정해주게.》

《아, 그러지. 여부가 있나.》

《그때 가서 내 기술도 넘겨주지. 마음이 동하면 관수기 한대를 만들어줄수도 있다는걸 잊지 말게.》

《약속했네.》

못박아대는 산림경영소 지배인의 손을 잡아주고나서 남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길을 내려서던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가 온 길을 돌아보았다. 항구도시의 이 작은 령길이 자기의 운명과 이어져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전쟁시기에는 이 령길에서 반동놈들에게 붙들려 죽을번 하다가 살아났다. 그때 구원해준 사람이 지금 구역안전부(당시) 부장으로 사업하고있어 이따금 만난다.

지난 전쟁시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자 시안의 많은 핵심들이 지하에 들어갔다. 그때 남계수가 덕산고개에서 반동놈들에게 체포되였다는 소식을 접한 당시 지하당조직을 책임지고있던 시당의 책임일군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를 구원해야 한다는 지시를 주었던것이다. 이 사실을 그는 후에 구역안전부장을 통하여 상세히 알게 된것이였다.


공장탁아소 귀염둥이들이 손벽을 치며 보육원의 풍금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남계수는 틈만 생기면 이렇게 탁아소울타리밖에 서서 어린것들의 재롱을 보는것이 하나의 생활로 되였다.

그는 이따금 자기의 나이가 60대에 들어섰다는것을 잊고 사는 때가 많았다. 속도전의 불바람으로 70년대의 조선속도를 창조하는 장엄한 투쟁은 일군들이 돌격전의 앞장에서 대오를 이끌것을 요구한다. 로쇠와 침체란 있을수 없다. 청춘의 열정과 투지를 가지고 자신만만하게 전진, 전진 또 전진할것을 시대는 바란다.

남계수는 자기를 향해 손을 나풀거리며 흔드는 귀염둥이들을 바라보며 턱을 쓸어만졌다.

《지배인동무, 사람의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군요.》

곁에 온 사람이 누구인가를 모르지 않는 남계수는 여전히 눈길을 한곳에 보낸채 대답했다.

《무슨 일이요?》

《우리 소옥기사가 볼베아링을 만들수 있는 합금재료를 얻어냈습니다.》

정시홍은 만족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공장은 7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생산면모를 일신하였다. 공장이 창설되던 초기부터 주요업종으로 되여온 주철관과 건설용철근을 생산하던 설비와 로력은 다른 기업소에 이관하고 지금은 각종 철제일용품들을 만들면서 소형전동기개발에 힘을 넣고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매우 작으면서도 정밀한 베아링을 자체로 해결하는것이였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장은 먼길을 만난을 이겨내며 걸어왔다. 공장에서 생산된 각종 분쇄기며 국수기계, 교반기들이 지금 시안의 상업봉사망들에서 널리 리용되고있으며 거의 모든 철제일용품들이 비교적 문화성을 갖춘 상품으로 호평도 받고있었다. 그는 이따금 《흥성》이라는 자기 공장의 제품상표를 보며 깊은 감회에 잠기군한다. 쇠가마와 절구를 만들던 시절부터 바라고바라던 리상이 현실로 되여가기때문이였다.

《기술준비실에서 전망계획을 세우고 추진시켜나가고있습니다.》

정시홍은 자부를 가지고 말하였다. 온전한 기술자가 없어서 애를 먹던 어제날의 공장이 아니다.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과학적인 안목을 가지고 래일을 내다보며 사색하는 젊은 세대의 기술력량이 마련되였다는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였다. 동소옥과 려현석은 공장의 보배나 같은 든든한 기사들이다.

《새로운 합금철과 새 제품개발, 우리 공장의 당면목표를 여기에 두어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소?》

《옳습니다. 소옥동무가 진동식교반기설계를 끝냈는데 사용에서 간편하며 효률성이 높을것으로 예견됩니다.》

《기술심의를 하고 생산에 들어갑시다.》

남계수는 후련하게 대답하고는 행정청사쪽을 바라보았다.

《기사장동무, 저길 좀 보오.》

남계수의 말에 정시홍이 고개를 돌렸다.

저건 또 무슨 장관인가. 행정청사앞에 부기장이 한 녀인과 마주섰는데 꼭 암닭부리에 걸려든 지렁이같다. 비실비실 쫓기우는 조영길을 녀인은 그냥 따라서며 뭐라고 따지고드는것 같이 보인다. 부기장과는 한사코 해보는 녀자다.

《홍동무구만.》

《예, 또 붙었구만요. 허허. 부기장이 무슨 까닭인지 저 동무한테는 설설 깁니다.》

《모를 일이군.》

《그래서 사람은 천태만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홍동무가 공장에 다시 돌아온건 부기장과 계산할게 있어서 그런다는 말이 돕니다. 회관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는데 확실히 두사람은 어떤 수수께끼를 안고 삽니다.》

환한 얼굴에 노상 웃음을 지어가지고있는 홍진실이 쫓겨가듯 하는 부기장뒤에 대고 뭐라고 소리를 치고나서 고개를 돌리다 남계수네쪽을 보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가공직장을 향해 반달음쳐 내뺐다.

《흠, 재미있는 동무요.》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지배인동무가 들어보고 인간방정식을 한번 풀어보십시오.》

그날은 새로 나온 예술영화를 보려고 종업원들이 회관앞에 일찍 모여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이런 자리는 녀자들이 먼저 오기마련이여서 군데군데 모여선채 웃고 떠들어댔다.

《우리 부기장님이 오신다야.》

《역시 틀이 잡혔지?》

《말해 뭘 하니, 일찌기 일을 치기 시작한 머리가 아예 뒤로 훌렁 벗겨지니 간부체모 다 갖췄지 뭐야.》

《어디, 누가 온다구?》

녀자무리속에서 홍진실이 고개를 내밀더니 손벽을 소리가 나게 갈기면서 어찌나 반가와하는지 곁에 선 처녀들의 눈이 올롱해날 정도였다.

《부기장동지!…》

홍진실이 두손을 맞잡고 정이 찰찰 흐르는 소리로 찾는데 조영길은 거미줄을 쓴 인상을 한채 바라보기만 한다.

《부기장동지, 나 좀 보자요.》

홍진실은 여전히 지어먹은 애교를 부렸다. 사람들의 눈이 있는지라 피하지 못하며 조영길은 어물어물 다가왔다.

《무슨 일이요?》

《야, 한가지 물어볼게 있어서 그럽니다. 부기장동지.》

호기심이 동한 녀자들의 눈길이 부기장을 덮칠듯 모여들었다. 확실히 이 사람은 모든 녀성들의 류다른 호감을 자아내는듯싶었다.

《말하오, 어서. 싱검둥이같이 놀지 말구.》

홍진실은 여전히 두손을 맞잡은채 진정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집에 자식이 없다는 소릴 들어서, 정말 안됐군요.》

너무도 왕청같은 소리여서 녀자들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키득거리고 조영길은 약이 오른 눈으로 홍진실을 노려보며 대번에 맞받아치듯 대답했다.

《누굴 뭘로 아는거요. 자그만치 다섯이요.》

《어마나! 그럴수 없는데요. 확실한 정보에 의하면 부기장동진 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구 했는데.》

때를 만난듯 녀자들의 폭소가 터져나왔다. 뭐가 그리도 기쁜지 발까지 굴러대며 여지없이 좋아들 해댄다. 이런 기회가 그들에게 다시 있을상싶지 않았다. 조영길은 화가 날대로 났다. 하지만 그는 정황처리의 능수였다. 반응을 맵시있게 해야 곤경에서 헤여날수 있다는것을 알았던것이다.

《그럼 이 번대수리의 〈공격〉을 홍동무가 한번 받아보겠소?》

그 소리에 녀자들은 일시에 《성별》을 초월하며 부기장의 편에서 박수를 쳐댔다. 그러나 홍진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바로 그 〈공격대상〉에게서 받은 정보랍니다.》

《뭐, 어떤 대상말이요?》

《은행…》

홍진실은 속삭이듯 말하지만 조영길은 우뢰에 놀란 황소같이 덴겁했다.

《놀라긴요. 나두 부기장동지한테서 배운 수를 써보는거예요.》

《내가 뭘 배워줬다구…》

조영길은 완전히 피동에 빠졌다. 언어의 련금술사같은 재간은 어디에 갔는지 할 말조차 찾지 못했다.

《걱정말아요. 비밀은 담보하지요.》

조영길은 한손을 내저으며 영화보러 왔다는것마저 잊고 되돌아서서 허둥거리며 가버렸다.…

《어떻습니까, 지배인동무?》

《모를 일이군.》

남계수는 조영길의 모양이 방불하게 떠올라 고개를 내둘렀다. 똑똑한 순서에 올려 두번째손가락에 꼽으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인데 아낙네입심에 걸려들어 시라소니질을 했다니 믿을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조영길이 이전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한풀 죽은 기상이다. 이전에는 그렇게도 잘 돌아다니고 걸음도 빨랐는데 이제는 사무실에 꾹 박혀서 부기장부하고만 씨름질한다. 나이도 쉰고개에 들어섰으니 진중해진것으로만 여겼는데 확실히 어딘가 맥이 빠진것 같다. 만나기만 하면 미안한 빛을 지우지 못하며 용무만 이야기하고는 가버린다. 그전처럼 말째다거나 까다로운 소리를 하는 때는 거의나 없고 맡은 일은 오히려 더 잘한다. 여기저기 둘러맞추던 버릇도 고쳐서 지적할 결함이 없기에 그렇겠거니 하고 무심히 여기며 지나오는데 이 사람도 어떤 고충을 안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공장의 관리일군들중의 한사람인데 자기가 너무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며 남계수는 말했다.

《부기장이 여러번 공장을 뜨겠다고 제기하길래 내가 잘라버렸소.》

《어디 가면 그만한 재정일군이 없을라구요.》

기사장의 씁쓸해하는 소리에 남계수는 턱을 쓸어만졌다.

《사람을 귀중히 여기라는 말을 새겨야 하거던.》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는 남계수를 옆눈으로 보며 정시홍은 못마땅한지 말머리를 돌렸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야겠습디다.》

《그건 왜?》

《교장선생님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왔수다.》

《기사장이 실없는 소리도 할줄 알댔나?》

정시홍이 제편에서 비틀어대는 소리를 했다.

《늙어가면 속이 좁아지우?》

남계수는 아연해났다.

《여보, 뭘 말하자는거요? 갑자기…》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날은 무슨 날? 가만, 우리 집사람이 전화를 했다? 허- 아이쿠, 알겠소, 알겠소. 하하하.》

남계수가 손까지 저어대며 웃자 정시홍은 말했다.

《좀 일찌기 들어오랍디다. 난 청하지 않으시려우? 당비서(당시)동문 구역에서 회의가 끝나면 곧장 가겠다고 했수다.》

기사장에게서 몰이를 당한 남계수는 《귀빠진 날은 왜 있어가지고 없는 집안살림 털리우게 하는지…》 하고 말하고나서는 《기사장, 우리 당비서가 젊었어도 사람이 로숙하거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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