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제 5 장


9


엊저녁부터 죽가마끓듯 하던 기숙사는 아침이 밝아올무렵에야 조용해졌다.

새해를 축하하는 다정한 말소리와 활기넘친 웃음소리, 기운찬 발자국소리가 사라지자 표무강은 고독감을 느꼈다.

마치도 무인도에 혼자 남은것 같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아까 강성무를 따라갔을걸.

표무강과 강성무는 남조선륙군사관학교 2기동창생이였다.

태여난 고향이 다르고 성미도 달랐지만 두사람은 고달픈 훈련의 나날에 우정이 두터워졌고 뜻을 같이하게 되였다. 그후 표무강은 《국군》 제8련대 1대대장, 강성무는 2대대장으로 있다가 1949년 5월초 제각기 대대를 이끌고 공화국으로 의거하였다.

인민군대에 편입한 표무강은 대대장으로, 강성무는 경비국군관으로 근무하였고 전쟁이 일어나자 각각 련대장들로 임명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의거자출신 두 장령은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신임으로 고급군사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고있었다.

좀전에 강성무는 사고무친인 친구를 혼자 두고 가는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자기네 집에 가자고 잡아끌었다.

《내 걱정말구 어서 가보게.》

《그러지 말구 가자니까.》

《난 오늘 계획한 일들이 많네.》

그를 억지로 떠나보낼 때는 몰랐는데 막상 혼자 남으니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 친구를 생각해서 기어코 남은것이 후회되였다.

에라, 책이나 실컷 읽자!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허리부위가 쑤셔났다.

어이쿠!

베개밑에 약봉지가 있었지만 꺼내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동통은 진통제를 먹으면 가라앉지만 고독감은 무엇으로 없앤단 말인가. 지금껏 언제 한번 홀로 있어본적 있었던가. 전쟁시기에는 늘 전사들과 같이 있었고 군사학교에 와서도 주위에는 오성국을 비롯한 항일투사출신 장령들이 있었다. 뿐만아니라 해마다 설날이 오면 이러저러하게 고독함을 메꿀수 있는 일거리들이 생기군 하여 별로 외로움을 느낄새가 없었다. 그런데 이해따라 기숙사에서 홀로 지내게 될줄이야.

일은 참 맹랑하게 되였다. 그렇다고 누구나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모여앉는 오늘의 분위기를 불청객처럼 뛰여들어 흐려놓고싶지도 않았다.

무의식중에 벽에 걸린 달력을 보느라니 남쪽에 계시는 어머니가 그리워났다.

어머니는 지금 뭘 하고계실가?

꿈결에도 보고싶은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제일먼저 눈앞에 떠오르는것은 추운 겨울날 수십리길을 걸어오셨던 강인한 모습이다.

해방후 그가 남조선에서 준군사단체인 경상북도 《국군준비대》참모로 활약하던 때의 일이다.

하루는 훈련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보초소에서 어머니가 찾아왔다는 련락이 왔다.

정신없이 뛰여가니 체소한 어머니가 함지를 머리우에 이고 서있었다.

백발처럼 서리가 하얗게 불린 머리, 추위에 퍼렇게 언 얼굴, 얼음버캐가 되여버린 고무신…

불시에 가슴이 찌르르해났다.

어머니, 다신 오지 말라고 말했는데 왜 또 오셨어요?

아들의 얼굴과 넙적한 가슴, 야구방망이처럼 든든한 다리를 찬찬히 살피고난 어머니는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듯 환하게 웃었다.

《널 보고싶은 생각에 추운줄도 모르고 왔구나. 배고프지? 우리 저기로 가자꾸나.》

구석진 곳으로 아들을 데리고 간 어머니는 그때까지 머리우에 이고있던 임을 내려놓으려고 하였다. 그랬으나 함지를 잡은 두손이 풀리지 않았다. 음식을 쏟지 않으려고 꽉 붙잡고 오다보니 손에 강직이 온것이다.

잘 펴지지 않는 꿋꿋한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면서 표무강은 목이 메여올랐다.

아, 어머니!

겨우 함지를 내려놓은 어머니는 먼지가 들어갈가봐 무명천으로 덮었던것을 들추었다.

그러자 설기떡과 강낭빵, 록두지짐이 나타났다.

《빨리 오느라고 했는데 그새 떡이랑 좀 굳어졌구나.》

걱정스럽게 뇌이던 어머니는 설기떡을 무명천에 둘둘 싸더니 품속에 집어넣는것이였다.

《어쩌자고 그러세요. 예?》

어머니는 빙그레 웃기만 하였다.

사실 그렇게나 한다고 언 음식이 더워질리 만무하지만 아들에게 더운 음식을 먹이려고 애쓰는 어머니의 그 웅심깊은 마음씨에 표무강은 목이 메여올랐다.

《어머니!》

《어서 먹으렴. 여기 네가 좋아하는 콩나물무침도 있다. 넌 어릴적부터 이걸 무척 좋아했지.》

어머니는 기분이 좋아서 보시기에 듬뿍 담은 콩나물무침을 앞으로 밀어주었다.

향긋하면서도 새큼한 콩나물무침!

《어머니, 힘드신데 이젠 오지 마세요.》

어머니는 남정네들처럼 마디가 꽛꽛한 손으로 아들의 두볼을 어루만지였다.

《난 그저 네 얼굴만 보고 가면 힘든줄도 모르겠구나.》

어른으로 성장한 아들이지만 아직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생도 달게 여기는 어머니의 모습에 표무강은 끝내 눈시울을 적시고말았다. …

이 아침도 어머니는 콩나물시루에서 정히 뽑은 콩나물을 맛있게 무쳐놓고 내가 돌아오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계실것이다. 이제 어머니를 만나면 못다한 효성을 다하리라.

마음을 다잡은 표무강은 앉은뱅이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참고서를 벌컥벌컥 번졌다.

열심히 공부하자. 그래서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고 어머니를 만나뵙자!

얼마간 시간이 지났는데 쥐죽은듯이 조용한 복도끝에서 스적스적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혹시 날 찾아오는게 아닐가?

다음순간 입귀로 쓸쓸한 웃음이 새여나왔다.

흠, 오늘 같은 날 누가 나 같은 외토리를 찾아온단 말인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발자국소리는 호실앞에서 뚝 멎었다.

표무강은 숨을 멈추었다.

뚝뚝뚝-

책상에서 물러난 표무강은 응답할념도 못하고 멍하니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누가 있나?》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늙수그레한 사람이 들어섰다.

첫눈에도 한뉘 농사일을 하였다는것이 알리는 그 사람은 이쪽을 보다가 말꼭지를 뗐다.

《난 표무강이라는 사람을 찾아왔네.》

생면부지의 사람한테서 자기 이름이 흘러나오자 표무강은 뜨아해났다.

《제가 표무강인데… 누구십니까?》

대답대신 그 사람은 신을 벗고 방에 들어서더니 어리둥절해서 서있는 표무강의 손을 잡아끌었다.

《인사는 후에 하고 우리 좀 앉자구.》

표무강은 그가 권하는대로 방바닥에 앉았다.

밭고랑처럼 주름진 얼굴에 푸근한 웃음을 담은 그 사람은 련민의 정이 어린 어조로 말을 꺼냈다.

《그래, 오늘 같은 날은 혈육생각이 간절할테지?》

인정미가 푹푹 느껴지는 그 말에 표무강은 코허리가 시큰해났다.

문득 자기와 마주앉은 사람이 결코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바이는 도대체 누구일가?

그 사람은 가지고 온 망태기를 헤치고 주근주근 음식그릇들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김이 문문 오르는 찰떡, 노릿노릿하게 구운 록두지짐, 군침이 절로 나는 시뻘건 김치…

나중에는 큼직한 독구리병까지 나왔다.

《설날엔 떡국이 기본인데 길이 미끄러워서 그만 깨뜨리고말았네. 어찌두 아쉽던지.》

그 말이 어찌나 감명깊게 들렸던지 표무강은 떡국을 배불리 먹은것 같은 기분이였다.

음식그릇들을 앞으로 밀어놓은 그 사람은 비로소 자기소개를 하였다.

《난 만경대에서 왔네.》

표무강은 저으기 놀랐다.

만경대라고 하면 수령님의 생가가 있는 곳이 아닌가.

《저, 그럼 수령님의 생가를 아시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만경대에 살면서 그걸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고 하듯 선뜻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 알기엔 생가에 조부모님들과 삼촌분이 계신다고 하셨는데…》

《그렇네. 농사를 짓고있다네.》

그의 범상한 대답에 표무강은 다시금 놀랐다.

《아니, 농사를 짓는단 말입니까?》

그런데 그 사람의 대답이 좀 이상하였다.

《년세가 많다고 나라밥을 공짜로 축내겠나?》

표무강은 속으로 긴장해졌다.

이 아바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가? 어떻게 수령님일가에 대해 무엄하게 말할수 있단 말인가.

자세를 바로한 표무강은 정색해서 물었다.

《아바이는 누굽니까?》

길쑴한 얼굴에 미소를 띠운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소개가 늦어 안됐네. 실은 내 김일성장군 삼촌일세.》

《예?》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난 표무강은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미안합니다. 제가 미처 알아뵙지 못하고…》

김형록삼촌은 헤덤벼치는 그의 손을 잡아내렸다.

《어서 앉게. 나도 근본이야 농사를 짓는 사람일세.》

방바닥에 도로 앉았지만 표무강은 속으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수령님의 삼촌되시는분이 어떻게 되여 설날에 날 찾아왔을가?

그러는데 김형록삼촌이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 장군의 말이 임자는 한개 대대를 이끌고 의거한 진짜 사내대장부라더군. 헌데 어머니를 남쪽에 두고 왔으니 오늘 같은 날 혼자 있을거라고 하면서 자기대신 꼭 가봐달라고 당부했네.》

꿈만 같은 그 이야기에 표무강은 화석처럼 굳어졌다.

《예, 수령님께서 말입니까?》

《암, 그렇네.》

무명보자기에 놋술잔을 슬슬 문대긴 김형록삼촌은 손수 술을 부었다.

《자, 우선 한잔 받게.》

바빠난 표무강은 벌떡 일어났다.

《이러시면 안됩니다.》

김형록삼촌은 일부러 엄한 기색을 지었다.

《허어, 이건 우리 장군이 보낸 술인데 임자가 안 마시면 후날 뭐라고 대답하겠나? 어려워말구 어서 받게.》

표무강은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받쳐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목이 꽉 메여올랐다.

아, 수령님. 아직 새해인사도 올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은정을 베풀어주시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찰랑거리는 술잔에 뜨거운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가 술잔을 비우자 김형록삼촌은 손바닥만 한 찰떡을 저가락에 꾹 꿰여주었다.

《식기 전에 들라구.》

팥보숭이를 착실하게 입힌 그 찰떡은 졸깃졸깃한게 정말 맛이 좋았다.

찰떡을 뭉청뭉청 베여먹는 그를 만족스럽게 보고있던 김형록삼촌이 불쑥 물었다.

《참, 임자 여적 총각이라는데 이젠 가정을 이루어야지.》

표무강은 입에 넣었던 찰떡을 꿀꺽 소리나게 삼켜버렸다.

《어디 봐둔 처녀는 있나?》

친아버지와도 같은 김형록삼촌앞에서 표무강은 어려움도 잊고 신애이야기를 자초지종 들려주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구만. 허지만 혼자 살순 없지 않나. 안해가 없는 남자는 물고기없는 못이나 같다는데…》

그때 문소리가 나더니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님, 새해 건강하십시오!》

문가에서 허리를 구붓하고 절을 하는 사람은 오성국이였다.

그의 뒤를 따라 여러명의 항일투사들이 싱글벙글하며 들어섰다.

《임자네들인가? 어서들 오게.》

《우리가 한발 늦었군요.》

푸접좋게 김형록삼촌옆에 틀고앉은 오성국은 짐짓 아쉬워하였다.

《아무렴, 날 앞서겠나? 자, 나앉으라구.》

오성국이 부어준 술을 기분좋게 마신 김형록삼촌은 미더운 눈길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임자들이 왔으니 난 이만 가보겠네.》

다들 왜 벌써 가는가고 만류하였지만 김형록삼촌의 고집도 이만저만 아니였다. 하긴 왜놈순사들한테 매를 맞으면서도 끝내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분이니 그럴만도 하였다.

출입문쪽으로 스적스적 걸어가던 김형록삼촌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항일투사들에게 오금을 박았다.

《내가 가져온건 모두 저 사람 몫이니 그리 알게.》

오성국의 옆에 앉아있던 전문우가 심술궂게 물었다.

《그럼 우리 몫은 없다는겁니까?》

《임자들이야 빨찌산시절부터 우리 장군의 사랑을 오죽 받았나.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이야 양보할줄도 알아야지. 어험!》

호실문이 닫기자 호실안의 분위기는 돌변하였다.

김형록삼촌이 가져온 설음식은 항일투사들이 통채로 차지하고 표무강은 한옆으로 밀려났던것이다.

속이 후끈 달아오른 표무강은 떼를 썼다.

《주십시오. 그건 내겁니다.》

어느새 입에 찰떡을 물고 우물거리던 전문우가 두눈을 부라렸다.

《상급한테 무슨 태도야? 도무지 셈판을 모르누만.》

이때다 하고 다른 항일투사들도 맞장구쳤다.

《여, 같이 공부한다고 동갑인줄 알아?》

《동무 아직 소장이지?! 그런데 중장도 몰라보는가?》

여기저기서 퉁을 맞은 표무강은 분해서 황소숨을 씩씩 내뿜기만 하였다.

그래도 량심이 좀 남아있는 사람은 오성국이였는데 그가 하는 말이 참으로 가관이였다.

《표동무, 미안해하지 말구 어서 끼우라구.》

표무강은 억이 막혀버렸다.

이거야 수령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설음식인데 누가 할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가만, 꿔온 보리자루처럼 그냥 앉아있다가는 귀한 설음식을 몽땅 떼우겠다. 안되겠다. 이런 판에 무슨 체면을 차린단 말인가.

욱하고 항일투사들 짬을 마구 비집고 들어갔다.

록두지짐을 볼이 미여지도록 먹고있던 전문우가 뻔뻔스럽게 말하였다.

《벌써 그랬어야지. 자, 제 집처럼 생각하고 많이 들라구.》

기가 막힌 표무강은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그 모양이 재미있다고 항일투사들은 껄껄 웃었다.

나중에 표무강마저 그들을 따라 웃음을 터쳤다.

한바탕 웃고난 항일투사들은 한마디씩 하였다.

《표동무, 섭섭해하지 말라구. 공짜로 먹진 않을테니까.》

《아무렴, 독신자식탁을 비워놓고 가면 안되지.》

《그러길래 빨리 장가를 들란 말이야. 그럼 이런 수모도 안 받지.》

표무강은 진정으로 자기를 위해주는 그들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이들이 아니라면 누가 설날에 찾아와 혈육의 정을 듬뿍 안겨줄수 있단 말인가.

표무강을 둘러싸고 하루를 즐겁게 보낸 항일투사들은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날 때 그들은 집에서 성의껏 마련해온 음식들을 무드기 쌓아놓았다.

《이건 우리 집사람이 표동무한테 주려고 만든거요.》

《동무가 콩나물찬을 좋아한다구 우리 처가 보냈소.》

마지막으로 호실을 나서던 오성국은 이렇게 물었다.

《내가 준 명령은 어떻게 됐소?》

표무강은 뒤머리를 슬슬 긁었다.

《아직…》

《어쨌든 제 날자에 명령을 집행하지 못하면 가만두지 않겠소. 어험!》

든든히 오금을 박은 오성국은 의기양양해서 호실을 나섰다.

복도는 다시금 조용해지고 호실에는 호젓한 기운이 깃들었다.

그랬으나 표무강은 전혀 고독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수령님의 사랑을 안고온 김형록삼촌과 마음씨 후한 항일투사들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을 그득히 채웠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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