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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2일

평양시간


(제19회)


제 2 장


8


꼬끼요!… 꼬끼요!

울바자우에 넌떡 올라앉은 수닭이 기세좋게 목청자랑을 하고있을 때 집에서 조용히 빠져나온 홍일남은 밭가운데 있는 강냉이짚속으로 파고들어갔다.

비단필같은 안개를 앞세운 싸늘한 새벽공기가 성글성글한 짚사이로 스며들었지만 그는 추위를 느끼지 못한듯 동구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하고 귀를 강구었다.

한식경이 지나도록 개짖는 소리 한번 들려오지 않자 손에 잡고있던 보총을 내려놓고 품속에서 아직도 따끈따끈한 통강냉이를 꺼냈다.

만문하게 삶은 강냉이를 아귀아귀 뜯어먹던 그는 한숨을 꺼지게 내쉬였다.

인차 련대로 돌아간다던노릇이 앓는 어머니때문에 이틀째나 강냉이짚속에 숨어있게 될줄을 어찌 알았으랴.

일찌기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추운 겨울날 불도 때지 못한 방에서 제손으로 유복자의 태줄을 끊었다. 순산이였지만 마을에 기근이 들어 떼죽음이 나는 판인지라 어디 가서 쌀 한줌, 미역 한오리도 구해올수 없었다.

모진 산고끝에 찾아들었던 출산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눈앞이 캄캄하였다.

이렇게 가만히 누워있으면 비몽사몽간에 죽은 남편곁으로 가겠지 하고있는데 옆에서 뭔가 옴지락거렸다.

이 썰렁한 집안에 나말고 또 누가 있을가 하고 손을 뻗쳐보니 강보에 싸인 자그마한 피덩어리가 만져졌다.

손에 와닿는 뭉클한 감촉!

돌연 으앙- 하고 터져오른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잠자고있던 모성의 본능을 흔들어 깨웠다.

에구, 내 아가야!

허겁지겁 아기를 끌어안고 젖꼭지를 물렸는데 젖이 나오지 않았다. 안타까와서 자꾸만 젖몸을 주물렀는데도 마찬가지이다. 하기야 밥은 커녕 미역국 한모금도 먹지 못했는데 어디서 젖이 나온단 말인가.

빈젖꼭지를 빨던 아기는 자기를 속인 어머니를 원망하듯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그 정상을 보느라니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것 같았다.

내가 시퍼렇게 살아있으면서 아이를 굶겨죽이다니… 안된다!

벌렁벌렁 부엌으로 기여내려가 아궁에 불을 지피고 벽에 걸려있는 꽛꽛한 배추시래기를 내리워 가마에 끓였다.

제법 김을 씩씩 뿜어올리는 가마를 보느라니 스스로도 자신이 불쌍해나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에구, 이렇게 살아선 뭘 하누.

으앙-

아기의 울음소리에 우뜰 놀라 바가지로 펄펄 끓는 시래기국을 퍼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하였다.

젖이 나오자면 먹어야 해. 먹어야 하구말구.

된장도 소금도 두지 못해 슴슴한 시래기국을 정신없이 퍼먹고 방에 들어가니 갓난아기는 진땀을 빨빨 흘리며 울고있었다.

아가야. 조금만, 조금만 참아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가.

드디여 초들초들 말랐던 밤색젖꼭지가 습윤해지더니 뿌연 젖방울이 맺혔다.

에구, 젖이 나오누나!

젖꼭지를 작은 입술에 밀어넣자 아기는 울음을 딱 그치고 쫄쫄 빨아먹기 시작하였다.

그 작고 빨간 입술안으로 젖몸이 통채로 빨리워 들어가는듯 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떠는데 눈물이 나왔다. 그것은 남편이 남기고 간 피덩어리를 끝내 살려냈다는 모성의 희열이 떠올린 눈물이였다.

그때부터 끼니때가 오면 어머니는 부엌에 내려가 시래기국을 끓였고 꽁꽁 얼어붙은 개울가에 나가 빨래를 하였다. 자식을 살리겠다는 그 필사적인 몸부림은 현대의학의 손길이 전혀 가닿지 못한 시골녀인의 몸에 산후탈이라는 무서운 병을 가져다주었다. 하여 어머니는 삼복철에도 머리에 무명보자기를 쓰고 집안일을 하였고 겨울에는 바깥출입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무서운 가난과 어머니의 병은 코물건사도 제대로 못하는 홍일남의 자그마한 손에 부엌걸레를 쥐여주었다.

한창 뛰여다녀야 할 나이에 부엌에서 맴도는 자식을 눈물겹게 바라보며 어머니는 《에구, 이 못난 어미때문에 네가 고생하누나!》 하고 념불처럼 외우군 하였다.

세월은 흘러 고생속에 성장한 아들이 《국군》에 징집되자 녀인의 병약한 심장은 리별의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어머니!》

기절하여 쓰러진 어머니를 붙안고 몸부림치는 아들의 엉치를 누런 군화발이 거칠게 걷어찼다.

《임마, 당장 군대가 되겠는데 질질 짜긴… 빨리 가자!》

《국군》에 끌려간 홍일남은 어머니가 걱정스러워 밤마다 집으로 도망쳤다.

그 대가로 뭇매질에 코피가 터지고 온몸이 데친 배추잎사귀마냥 늘어지군 하였으나 필사적으로 탈영하였다.

전쟁이 일어나고 인민군대가 파죽지세로 진격하자 홍일남은 인민군대가 《국군》사병의 어머니를 죽이지 않을가 하는 불안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그랬었는데 우연히 만난 동료가 뜻밖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글쎄 인민군대가 굶어서 죽어가던 어머니를 살려주었다는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동료의 손목을 잡고 이렇게 당부하였다고 한다.

《우리 일남이를 만나면 전해달라구. 진정으로 이 어미한테 효도하려면 인민군대어른들한테 총부리를 겨누지 말라구 말일세.》

끙끙 고민하던 홍일남은 전투가 벌어지자 용약 인민군대로 넘어왔다.

얼마전 련대가 고향마을을 지나게 된다는것을 알게 되자 그는 어머니를 만나고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때마다 제길, 난 이젠 당당한 인민군대전사인데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하면 안돼 하고 자신을 다잡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동안에 어머니가 혹시 잘못되지 않을가.

그러다가 련대가 고향마을과 가까운 산에서 숙영하자 마침내 결심을 내렸다.

원래는 분대장한테 보고하려고 하였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승낙할것 같지 않았다. 분대에 고향이 남쪽인 전사들이 여러명이나 있는데 나만 특별히 봐줄수 없지 않는가. 《여, 동문 아직도 옛 버릇을 못 고쳤구만.》 하고 욕할게 뻔한데 그럴바에는 조용히 빠져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면 다른 일이 없을것 같았다.

제꺽 달려가서 어머니를 만나보고 돌아서자!

순찰병의 눈을 피해 숙영지를 벗어난 홍일남은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정신없이 산을 내렸다.

눈앞에는 그저 불쌍한 어머니의 모습만이 얼른거렸다.

두주먹을 부르쥐고 단숨에 시오리길을 내달려 낯익은 고향집뜨락에 들어선 그는 노전바닥에 죽은듯이 누워있는 어머니를 보자 가슴이 와르르 내려앉았다.

《어머니!… 어머니!…》

어푸러지듯 꿇어앉아 의식이 없는 어머니를 잡아흔들었다.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시퍼렇게 멍이 든 얼굴, 더러운 군화자국이 군데군데 찍힌 치마자락…

그때 인기척이 나더니 죽사발을 손에 든 이웃집녀인이 주춤주춤 들어섰다.

《이게 누군가?… 어이구, 자네가 왔구만. 왔어.》

《영국이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죽사발을 방바닥에 내려놓은 녀인은 기가 막힌듯 혀를 차다가 알려주었다.

《며칠전에 〈국군〉이 달려들어 자네가 인민군대로 도망쳤다면서 죄없는 성님을 마구 두들겨패더니 나중엔 얼마 남지 않았던 쌀까지 몽땅 앗아갔다네.》

《뭐라구요?》

《그들이 하는 말이 공산군에미는 죽어 마땅하다고 하면서 누구든 쌀을 가져다주거나 불을 때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거네. 그렇지만 마을사람들은 인민군대가족인 성님을 위해 이래저래 왼심을 쓰고있다네.》

《고맙습니다. 영국이 어머니!》

그 녀인을 돌려보낸 홍일남은 다시금 어머니한테 달라붙었다.

《어머니, 정신차리세요. 예, 어머니!》

한동안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입술에서 으음- 하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머니!》

힘들게 눈을 뜬 어머니는 자기앞에 앉아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나예요. 일남이예요.》

일남이라는 말에 흐려졌던 어머니의 안청이 조금 밝아졌다.

《네가… 정말 인민군대가… 옳구나!》

어머니는 처음 보는 아들의 군복을 어루만지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난 인민군대예요!》

자랑스럽게 대답한 홍일남은 죽사발을 손에 들고 초들초들 마른 어머니의 입안에 떠넣어주기 시작하였다.

한숟가락… 세숟가락…

허기진듯 정신없이 죽을 삼키고난 어머니는 숨을 크게 내쉬더니 언제인가처럼 《네가 이 못난 어미때문에 고생하누나!》라고 뇌이였다.

다음순간 마흔살도 안되였는데 벌써 반백이 되여버린 머리칼을 알아본 홍일남은 그만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어린 자식을 살리자고 동지섣달 개울가에 나가 얼음을 까고 빨래하던 어머니, 그때문에 산후탈을 만나 한여름에도 솜옷을 벗지 못하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자칫하면 구원하지 못할번 하였다는, 때마침 달려오지 않았다면 무서운 일이 벌어졌을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후드득 떨렸다.

문득 그는 더이상 지체하면 안된다는것을 알았다.

그래, 이젠 떠나자!

그런데 생각과 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내가 떠나가면 누가 어머니한테 죽이라도 떠넣어주겠는가? 아무도 없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잘못되면…

끔찍한 광경을 그려보며 몸을 부르르 떨고있는 그의 심중에서 인차 련대로 돌아가자던 결심이 눈석이마냥 녹아내리고있었다. …

이른아침이여서 부지런한 아낙네들이 동자질하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올뿐 마을은 고요하였다.

반쯤 남은 삶은 강냉이를 먹어치우고 지루한 하루를 어떻게 보낼것인가 하고 생각하는데 련대생각이 났다.

지금쯤 련대에선 내가 없어졌다고 소동이 일어났을거야. 아마 탈영했다고 욕을 하겠지.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거친 말소리가 들려왔다.

《야, 강냉이짚들을 몽땅 뒤져라!》

놀라서 짚사이를 내다보니 한무리의 《국군》이 몰려오고있었다.

적들한테 붙잡히면… 아니, 절대로 붙잡히면 안돼!

다행히도 적들은 저쪽에 무져있는 강냉이짚단쪽으로 와르르 몰려갔다.

이때다! 하고 생각한 그는 강냉이짚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뒤에서 악청이 쫓아왔다.

《서라. 서라!》

《안 서면 쏜다!》

홍일남은 발이 땅에 닿는지 허공에 뜨는지도 모르고 죽기내기로 내달렸다.

날 잡겠다구? 어림도 없다!

두주먹을 부르쥐고 뛰여가던 그는 무엇을 잊은듯 급작스레 멈춰섰다.

집에 홀로 남겨두고 온 어머니가 생각난것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느새 집에 뛰여든 적들이 어머니를 끌고 나왔던것이다.

적들은 앓고있는 어머니가 제대로 걷지 못하자 군화로 걷어차고 총탁으로 마구 내리쳤다.

그 모습을 보고 눈에 달이 뜬 홍일남은 격발기를 절컥 잡아당겼다.

더러운 놈들, 어디 죽어봐라!

교활한 적들은 어머니를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몸을 숨기였다.

《여, 에미가 불쌍하지 않아?》

《곱게 내려오면 너도 에미도 살려주겠다. 빨리 내려와!》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좋다. 너 죽고 나 죽고 어디 해보자!

와락와락 풀숲을 헤치고 산을 내려가는데 어머니가 두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얘야, 절대로 내려와선 안된다!》

그바람에 멈춰선 홍일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하였다.

그러는데 어머니의 갈린 웨침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일남아, 내 걱정말구… 돌아가거라!》

악에 받친 적들은 이리떼마냥 달려들어 어머니를 미친듯이 두들겨팼다.

《어머니!-》

홍일남은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들이쳤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그제서야 그는 어머니를 만나고 인차 돌아서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자신과 사랑하는 어머니를 참을수 없는 고통에 몰아넣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 경솔한 결심때문에 효도하려던 어머니에게 오히려 죄를 지었고 전우들앞에 씻을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되였던것이다.

아, 이제 와서 아무리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일남아, 어서… 가거라!》

눈물을 좔좔 쏟고있던 홍일남은 적들한테 매를 맞으면서도 아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그냥 소리치고있는 어머니를 향하여 깊숙이 절을 하였다.

어머니, 용서하십시오. 내 다시는 어머니앞에 불효자식으로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내가 승리하고 돌아올 때까지 꼭 기다려주십시오!

군복소매로 얼굴을 훔친 그는 강잉히 걸음을 내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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