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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회


제 2 장


11


병오년(1906년) 5월, 초목은 푸르건만 사람사는 세상은 이를데없이 황량하게만 보인다. 깊은 산속을 떠나 골을 지나고 재를 넘으며 초라한 괴나리보짐을 진 중이 대나무삿갓에 얼굴을 묻은채 걷는다. 왼팔에 념주를 걸고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불경을 외우는 소리도 아니다. 이따금 《나무아미타불.》 하는 신음소리 같은것만은 온전히 들렸다. 다리에 행전을 두르고 람루나 같은 두루마기자락을 날리며 어데론가 정처없이 가고있었다.

먹고살겠다고 씨앗을 뿌려 푸른빛이 얼룩진 논과 밭들이 맥없이 드러누운 곳에 초가들이 웅기중기 모여앉은것이 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라선 중이 삿갓을 들어올렸다.

《망국을 당했어도 백성은 죽지 않겠다고 기를 쓰는구나. 살아남아야 복국도 보지 않겠느뇨. 허-세월이 이다지도 어수선하단 말인가.》

괴이한 탄식을 쏟으며 휘청걸음을 내짚는다. 때국이 올라 볼품이 없는 작은 보퉁이가 등에 매달려 데룽거렸다. 동냥을 떠난 걸음도 아니다. 하도 먼길을 걸어 바닥이 난 나막신은 벗어내친지 오랬고 짚신바람으로 허둥지둥 걸어대는것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제기랄, 온통 걸리는것뿐이구나.… 수수리 사바하…》하고 몇걸음에 한번씩 건주정을 해대면서도 《고해를 찾아가는도다.》하는 뒤소리를 먹여댔다. 저 혼자 이런 념불을 하며 기운을 얻어 가는 모양이다.

작은 산등을 넘으니 오불고불한 길이 나지고 오가는 행인들도 만나게 되자 중은 삿갓기슭으로 살펴본다. 몽당치마를 입고 동이를 인 젊은 녀자 몇이 동냥을 달랄가봐 겁이 나는지 핼끔거리며 종종 걸음을 쳤다.

《시기나 했으면 떫지나 말거라. 아미타불…》

젊은 녀자들의 엉덩짝을 눈으로 찔 갈겨댄 중은 괴상한 념불을 하고나서 헤헤 웃기까지 한다. 불문의 법도를 감히 어기고 녀색을 탐내니 제편에서도 어처구니없는 모양이다. 하건만 욕망을 이기지 못해 여전히 녀자들만 찾아가며 눈요기를 하고나서 입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도천이라는 법명을 가졌던 이 승려는 하도 집안이 가난하고 살길이 없어 굶주림을 이겨보려 사찰에 몸을 맡기고 몇해동안 수도를 해봤는데 불문의 엄한 계률을 지키는것이 배고픔보다 더 참기 어려운 고통이라는것을 깨닫고 불문을 하직한것이다. 그렇게 고생을 무릅쓰고 사찰의 빈대와 싸우며 열반에 오르기보다는 인간세상의 고해를 헤치면서 평범한 삶을 누려보리라 마음먹었다.

이렇게 길을 떠나서 충청도와 경기도지경을 지나 평안도의 북부로 향하고있는것이다. 어데서 그가 먼길의 행장을 풀지는 알수없는 노릇이였다. 야산의 숲덩굴속에서 조무래기들이 웃고 떠들며 헤쳐나와 언덕아래로 달려가는것이 보이자 목이 마른 도천은 눈길을 휘둘러댔다. 구릉과 밭들이며 다락논배미들이 눈에 마쳐왔다. 멀지 않은 곳에 크지 않은 바위가 솟아있고 웅뎅이진 곳에 아이를 업은 한 녀인이 보였다. 그곳에 샘이라도 있는가. 마른 목부터 추겨야겠기에 삿갓을 내리쓴 중은 방랑길에서 수없이 외워댄 념불을 중얼대며 녀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작은 버들 한대가 외롭게 선 샘터에 이른 도천은 합장을 하고 중얼거렸다.

《나무아미타불.》

무릎을 꿇고 바가지로 물을 퍼서 동이에 담던 녀인이 와뜰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삿갓쓴 중의 입에서 열기띤 탄성이 흘러나왔다.

과시 고해에 솟은 달님이로다! 볕에 탄 이마는 감실감실해도 의혹을 품고 치켜뜬 눈망울은 그늘속 진주마냥 은근한 빛을 내니 나를 맞자고 기다렸을 녀인이구나, 유순한 코마루아래 다물려 도드라진 고운 입술도 정이 그리워 보풀이 일었으리라, 치마자락에 내밀린 희고 동실한 무릎이 녀인의 손에 가리워지자 도천은 갈려난 소리로 청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바가지 시주하소이다.》

녀인이 정갈한 손으로 동이의 물을 퍼들더니 샘터의 개버들잎을 정히 훑어 띄우고나서 고개를 옆으로 세우며 살며시 내밀었다. 물바가지를 받아든 도천은 녀인이 하도 마음을 끌기에 한걸음 다가서며 공손히 말했다.

《업은 아이 머리가 미끄러졌소이다.》

길가던 중이 다심히 걱정하기에 아이를 추스른 녀인이 탄식조로 화답했다.

《생불님, 서천에 가시오면 부디 이 망부자의 선친을 돌려보내주사이다. 하오면 그 은혜 평생 시주로 갚으오리다.》

아하, 이것도 나에게 베푸는 천혜로구나. 내 불문을 떠난 몸이나 여기서 외롭게 홀로 지내는 녀인을 만났으니 부처님뜻대로 복락을 주리로다.

속으로 이렇게 뇌이며 도천은 버들 한잎을 불고 물 한모금씩 녀인의 정으로 여기며 마셨다.

샘터에 모로 비켜앉은 녀인이 도천을 쳐다도 못 보며 바가지 돌려주기만 기다렸다.

《마른 목 추겨주어 고맙소이다.》

도천은 인사말을 했지만 바가지는 주지 않아 고개를 돌린 녀인이 두팔을 내밀게 하였다. 파계승은 풀썩 무릎을 꿇으며 녀인의 손목을 잡았다.

《에그머니-》

덴겁한 녀인의 목소리를 누르며 도천은 진정을 뿜었다.

《시주님, 마른 목만이 아니라 이 마르고 타서 끓어번지는 가슴도 식혀주소이다. 고해를 찾아온 이 몸을 건져주시오.》

《이걸 놓으시오이다. 천도를 거역하면 지옥에 간다고 가르치는 생불님이 이 무슨짓이오이까?》

《인간세상을 떠났다 인간세상이 그리워 돌아오는 이 몸을 받아주소이다. 하늘이 맺어주는 인연인줄 압니다.》

팔목을 뽑지 못한 녀인은 온몸을 떨어대며 간절히 말했다.

《보면 모르겠소이까. 등에 업은 아이말고도 둘씩이나 더 있는 아낙네를 놓고 무슨 말씀입니까. 생불님이 실성한건 아닌지…》

《내 늦게야 성가하는데 자식이 많으면 좋으면 좋았지 나쁠건 없소이다. 다만 이 몸을 품어줄 그대의 가슴과 비가릴 지붕만 있으면 되옵니다. 내 아직은 남아있는 힘으로 인간세상의 고해를 헤칠테니 이 진정 물리치지 마시오. 시주님, 이 정상을 가엾게 여겨주소이다!》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하늘님, 이 천한 년의 죄를 용서해주사이다. 아…》

녀인의 처절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불문의 법도를 거역하고 환속한 사나이는 마침내 인간세상에서 생명의 씨앗을 뿌릴 땅을 찾았던것이다.


이해 여름은 가물과 무더위로 초목도 숨쉬기 힘들어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는데 왜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긴지도 서른해를 넘겼으니 백의동포의 민족수난은 끝이 없을상싶었다. 무참히 짓밟고 무참히 빼앗아가는것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방법이였다.

순안일대는 사금채취로 인하여 농토가 황페화되여갔으며 경향각지에서 밀려온 인부들로 보통강연안의 자그마하던 촌락이 도회를 무색케 하는 장관을 펼쳤다. 사금판가까이에는 차일을 친 음식점들이 줄을 잇고 밤이 오면 판자집에 등불을 내걸면서 고역에 시달린 사내들을 유혹하는 사창까지 생겨났다. 비참한 노예로동과 악착한 착취가 한데 엉키여 눈물과 향락의 대조를 이루는것이다.

고향을 떠난 남계수가 거처를 잡은 집에선 마흔살을 넘긴 과부가 아들과 함께 살고있었다. 늙은 축도 아닌 녀자궁상이 보통 드살차지 않다면 스무살전인 아들은 상건달인데 밤이면 도박판에서 날을 밝혔다. 모자간의 싸움질이 그치지 않는 집에 그냥 몸을 담그고있는것은 려인숙보다 값이 눅기때문이였다. 순안일대 금전판을 두루 돌아보느라 이 집에서 열흘 남짓이 보낸 남계수는 조석으로 보리밥에 랭국이나 들이키면서 밤이면 밤대로 빈대, 모기의 성화를 당하고도 적지 않은 돈을 숙식비로 내야 했다. 그만한 돈을 내놓는게 남계수에게는 생살 뜯기우는 맛이였다.

새벽닭이 청승맞게 울어대는 소리에 깨여난 남계수는 기지개를 켜며 사랑채를 나섰다. 마당 한구석에 맞춤한 길이로 잘라서 무져놓은 통나무더미가 보였다. 이 집 과부가 아들녀석을 욕질하며 도끼질을 하던게 생각났다. 나무결이 어찌나 바른지 녀자가 한번 내리쳐도 갈라지군 했다. 슬금슬금 걸어간 남계수는 쭈빗한채 패놓은 나무를 내려다보았다.

《나그넨 첫새벽에 거기서 왜 어슬렁거리우?》

부엌문 열리는 소리에 잇달아 청높은 아낙네의 입심질이 들려왔다.

《도적맞힐거라도 있나요?》

《에이구- 도적도 찾아드는 집이 있수다. 과부수절루 망해가는 꼴에 뭐가 있겠다구…》

《나무나 패줄가 해서요.》

《고맙긴 한데 밥값 줄일 생각일랑 말라요.》

남계수는 들은척도 안하며 도끼로 곧추세운 나무통을 내리쳤다.

원, 이렇게도 결이 바른 나무도 있다니. 가구재로 쓰면 돈을 벌련만 우둔한 과부의 수중에 들어 아궁속 재가 되는 판이다. 문득 그의 머리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여름철 금전판 인부들은 점심참이면 국수를 찾는다. 그걸 안 녀인들이 저마다 랭면을 만들어가지고 나타나는데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 원인은 저가락이 모자라서였다. 한사람이 먹고나면 저가락을 씻어서 내주자니 시간이 걸리는것이다.

가만있자, 이걸로 나무저가락을 만들어볼수 있지 않은가. 그닥 품먹을 일도 아니니 정성을 들일 필요도 없다. 먹는 사람 입에 가시나 들지 않을 정도면 되는것이다.

오전 한겻 장작낟가리를 가려주니 입심센 과부가 좋아하고 나무저가락은 수천개나 나왔다. 볼품없는것들은 불쏘시개로 쓰라니 과부의 입은 턱 떨어질만큼 벌어졌다.

이렇게 남계수는 시장과 수요에 대한 리해를 처음으로 하게 되였으며 자재값은 들이지 않고 국수파는 녀인들의 호감을 독차지하며 며칠동안 3원에 가까운 돈을 어렵지 않게 벌었다. 과부는 마당에 산만큼 높이 쌓인 장작더미에 흡족해서 제가 잃은것은 생각도 못했다.

순안을 떠나자고 금전판을 지나는데 국수팔던 녀인들이 알아보고 저마다 팔을 잡아끌었다.

《내 만든 랭면맛을 보시라요. 궁리도 신통하지. 어떻게 나무저가락생각을 다 했을가.》

《내가 관상을 봤는데 아저씬 큰돈 벌어요. 호호호.》

《받기질을 잘할 그 이마가 일을 칠것 같아. 눈길도 사납구, 코는 어느 무던한 며느리감한테 주면 좋아하겠다. 훗흐흐.》

합죽이나 다름없는 로친이 볼을 다시며 수다를 떨자 남계수는 어렵지 않게 맞대들이를 했다.

《평안도놈 대갈통이 첫번째 주먹인줄 모르시나요. 어디 가서 제몸 건사야 해야지 않겠수. 흐흐.》

《그 나무저가락값이 뚝 떨어졌어요. 뒤늦게야 너두나두 만들어가지고 나오니까요.》

공짜로 받쳐주지만 국수값을 문 남계수는 일어섰다. 재경쪽에 내려갈 결심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흠, 나무저가락을 궁리해냈으니 과부집에서 자고 먹은 값을 물고 가지 않는가. 나무저가락값이 막눅거리가 됐단 말이지. 무슨 일이나 첫판을 만들어야 한다. 뒤지면 품들인 값도 뽑아낼수 없다는 소리다. 땅 팔고 집 팔아 기업을 하자고 나선 걸음이니 이번에 이걸 알게 된것도 돈보다 귀한 밑천이나 한가지다.


한여름바람이 불어치니 백양나무의 푸른 가지들이 뒤척이고 그속에서 매미들은 때를 만난듯 소란을 피웠다. 그늘밑에 삿자리를 깐 길손들이라고 해야 할 사람들이 독상, 겸상을 마주하고 이 고장의 특산이나 같은 굴밥에 회친 해산물을 안주로 받쳐 막걸리를 마시고있었다. 음식점이나 같은 초가집에서 젊은 녀인 하나가 부지런히 청하는 음식을 날라오느라 땀에 젖어 녹초가 될 지경이다.

《꽤 흥성대는구만.》

점심상을 마주한 남계수가 한잔 마신 얼굴로 구일파에게 말을 걸었다.

《시골이야 시골이지. 그러니 자네한테 대접할것도 변변치 못할수밖에.》

《흠, 아직 서울냄새를 가시지 못했나. 정미업을 한다지?》

《그런대로 벌지. 여름 한철은 마시고 딩굴고, 흐흐. 하는 일이란 그런 놀음이네. 가을이 돼야 겨투성이가 된다구.》

더 묻지 않아도 구일파가 한다는 일이 어떤것인지 알수 있었다. 고향인 안주에서 떠나 순안, 평양, 남포를 거쳐 기업물계를 배우며 여기에 이른 남계수였다. 구일파와는 몇해전 서울에서 사귀였다. 본정뒤골목에서 망나니들한테 걸려들어 졸경을 치르는걸 건져주었다. 공부를 하려고 서울에 나갔다 만난 친구가 구일파였던것이다.

남계수가 범접 못할 억센 체격을 가졌다면 구일파는 미츨한 키와 훤하게 생긴 얼굴에 녀자들이나 좋아할 웃음이 노상 어려있다.

《날 좀 보소, 형수요!》

구일파가 구성진 소리로 손마디소리까지 내며 찾자 음식나르는 녀인이 기다리기나 한듯이 옆에 와서 노죽을 부렸다.

《그래도 불러주는건 시동생님이시다. 왜? 곁에 앉아 술 쳐달라우?》

구일파는 상우를 가리키고나서 《닭모가지를 비틀어서 가져다놓으시게나.》하고는 녀인의 엉덩이를 쓸어주고나서 밀어버렸다.

《일파가 한여름 어떻게 딩구는지 알겠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던데…》

《바보들이나 겪는 시앗싸움이지. 세상에 흔한게 계집 아닌가. 하필이면 시앗을 두고 먹이고 입힐 걱정, 딴살림 살리자니 집걱정할게 있나 말이야. 풍류의 노를 저어 재미를 보는거지.》

시시껄렁한 수작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남계수는 행길쪽에 눈길을 돌리다 뚝 멈추었다. 저도 모르게 두눈을 끔뻑거리기까지 했다.

바람결에 날리는 은초사저고리고름, 이따금 부풀어오르는 치마자락, 흑진주처럼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쯤 가렸다가는 드러내군 한다. 자기로서는 너무도 똑똑히 기억하는 얼굴이였다. 눈섭도 눈매도 코마루며 입술의 륜곽도 부드러운 선으로 이어졌고 잘 생기지는 못했어도 마음을 조용히 끌어당기던 모습이다. 10년을 가까이한 세월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기억속에 남아있는 녀자를 알아보며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책보를 낀 처녀애들을 데리고 걸어오는 녀자는 남계수를 소학교때 가르친 선생이였다. 고개를 소곳이 하고 걸어 얌전티를 내는 녀자들과는 달리 눈길을 들고 어느 한곳을 응시하며 데리고 오는 처녀애들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있다.

상우에 찜한 통닭이 자리를 잡자 구일파는 남계수의 어깨를 툭 쳤다.

《헛눈 팔지 말구 차려놓은거나 들라구.》

그 소리에 멋적어난 남계수는 구일파가 권하는 술을 마시면서도 눈건사를 바로 못했다.

저 녀자가 어떻게 이 고장에 왔는가. 나이도 어지간하니 시집을 왔을수도 있을테지만 안주땅은 여기서부터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것이였다. 이제부터 살아야 할 앞길을 보노라니 향수가 그들먹이 차오르는것이다. 언제면 청천강가의 어린시절 놀이터를 찾아가볼텐가.

술이 얼근해난 구일파는 손에 쥔 저가락으로 향방없이 가리키며 주절거렸다.

《계수, 사내눈이란 아무래도 마음에 차는 계집에게 가기마련이지.… 아무렴! 왜, 정을 통해보고싶나?》

《실없는 소리. 나야 이 고장이 생소한데 정은 무슨 정…》

《절대로 낯설지 않은게 바로… 그걸세. 부딪치면 불이 이는… 부시돌처럼 말이야. 흐흐. 헌데 설다쳤다간 코를… 이 사내의 코가 깨여져나갈수 있단 말이네. 자넨 초면에 눈이 가지만 나야 너무도 잘 알지. 알구말구… 내 그 녀자를 그려달라나?》

무슨 눈치를 챘는지 구일파는 물고늘어지며 그냥 넙적거렸다.

내가 제편에서 말하는 녀자의 제자라는것을 알면 덴겁을 하지 않을가. 사제관계를 놓고 난봉군이 제속에 있는 수작질만 하고있으니 말이다. 남계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들어둘 말이 있을가 하여 내쳐두었다.

《좋네, 절색은 아니라도 집안에 들여앉혀놓고 씨종자를 남기기엔 맞춤한 인물이야.… 이름이 뭐라드라.… 고향은 순천… 나이는 물이 지났네. 지나도 아주 많이… 스물하고도 일곱살이니 말이네. 물론 미혼이구. 의심할바 없이 숫… 숫처녀라는것만은 이 구일파가 명예를 걸고 담보하지.》

《어떤 명예? 난봉군의 명예말인가?》

《흐흐흐, 하하하.》

구일파는 한손으로 닭다리를 들고 고개를 번쩍 쳐든채 떠나갈듯이 웃어댔다. 호색남아의 기개가 넘쳐나는 모습이다.

《좋아, 좋아! 이놈의 세상살이에서 그 놀음에 짝지지 않는것도 대장부지. 감히 말하건대… 그 명예를 걸고 말하네. …속세에 흔치 않은 녀자가 분명할진대 그걸 증명하는게 바로 공부를 했다는거네. 어떤가?》

사람이란 어떤 인물에 대해 파고들어가며 알아내는것을 누구라 없이 즐기기마련이다. 그와 같은 횡설수설이 수많은 랑설들을 퍼뜨리고 때로는 눈물겨운 결과도 빚어내며 그속에서 시름을 겪고 수치를 맛보게 된다. 구일파가 말하는 녀자의 나이는 남계수가 알고있는것처럼 정확했다. 지금은 읍거리에서 하숙을 하며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다고 한다.

재경에는 일본인정미업자 사사끼라는 사람이 여러개의 정미소들을 차려놓고 독판을 치다싶이 하고있었다. 가을철이 오면 크고작은 정미소의 주인들을 불러놓고 정미가격을 정하는 놀음까지 벌린다는것이다. 한마디로 조선인정미업자들은 사사끼의 통제밑에서 기업을 하는것이나 같았다.

남계수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것은 사사끼라는 놈이 했다는 수작이였다.

《나는 조선사람을 동정하고 사랑한다. 〈내선일체〉, 〈동조동근〉은 나와 당신들사이에 어떤 차이점도 없다는것을 말해주기때문이다. 나는 독신이므로 반드시 조선녀성을 안해로 삼을것이다.》

사사끼가 관심을 돌리는 녀자가 자기의 스승이라는것을 구일파를 통해 알았을 때 남계수는 형언할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짓밟힌데서 오는, 집게로 페부를 비틀어대듯 한 그런 진통이였다. 가장 소중한것을 빼앗기게 되였을 때 잃어서는 안될 그것을 위해 몸부림칠줄도 모른다면 그 심장은 사나이의것이 아닐것이다.

《사사끼상이 노리는것도 바로 그 녀자의 지성과 품성이네. 어떤가? 내가 왜 헛눈을 팔지 말라고 했는지 알겠나?》

구일파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강약부동은 수천년동안 존재한 인간세상의 본태이니 별수가 없다는것이다. 녀자란 약한 존재일수밖에 없다는 말을 주저없이 하였다.

《그만하게!》

남계수가 버럭 역증을 내며 술잔을 무섭게 움켜잡자 구일파는 취한 눈을 크게 떴다.


재경일대의 정미업이란 마구간보다 조금 큰 집 아닌 집에다 기계라는것을 들여놓고 찧어대는 방아질이나 다름없었다. 맥없이 축 처진 피대가 전동기의 힘을 랑비할대로 랑비하는 구식정미기로 하루에 출하하는 량도 보잘것없다. 그나마도 지주들이나 땅마지기를 갖춘 사람들이 찾다보니 한해농사로 농량이나 겨우 마련하는 농사군들은 정미값이 아름차서 여전히 절구질이나 발방아에 찧어서 살아갔다. 구일파는 어떻게 하나 남계수를 여기에 붙들어놓지 못해 안달아하였다. 구면지기인데다가 결패있는 친구가 곁에 있으면 살기도 벌어먹기도 한결 쉬울것은 뻔했던것이다. 계절로동이나 다름없는 정미업에 마음이 없어하는 남계수의 태도를 바꾸어보려고 그는 갖은 성의를 다하였다.

정미소가 일감이 없어 멎어있다싶이 하는 형편이여서 구일파는 저녁마다 남계수를 데리고 잘한다는 음식점은 다 찾았고 어떤 날에는 금사강에 나가 천렵을 마련하군 하였다.

오늘은 사사끼에게 남계수를 소개하였다. 일본인정미업자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내젓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말없이 따라섰다.

남계수와 마주선 사사끼는 왜인치고는 점잖아보이는 삼십전 남자였다. 이 계절에는 하오리를 걸치고 게다소리를 내며 다니는 족속들인데 차림새부터 달랐다. 연청색승마바지에 흰 샤쯔를 입은 사사끼는 얼굴에 친근한 웃음을 담고 맞아주었다.

《남상, 이렇게 만나니 우린 벌써 구면지기가 아닙니까.》

구일파로부터 남계수가 정미업에 흥미를 가지고 왔다는것을 아는 사사끼의 인사말은 무척 친절하였다.

남계수는 제나름의 눈으로 사사끼를 뜯어보았다. 보통키의 사나이지만 발달한 육체를 가진것이 알렸다. 야구나 격검선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움푹 패인 눈확속에서 예리하게 빛을 뿜는 눈동자가 사위스러웠다.

《여기 재경은 아주 살기 좋은 고장입니다. 조선사람들은 매우 근면하고 성실합니다. 난 그들을 존경하지요.》

시종 눈빛으로만 긍정하는 남계수의 안색과 거동을 유심히 살피며 사사끼는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하였다. 록록치 않은 조선청년을 본데서 온 일종의 경계심인지도 모른다.

점심을 자기의 집에서 먹고 가라는 사사끼의 성의를 사양하고 두사람은 금사강 방축길을 따라걸었다.

《사사끼가 인상이 어떤가?》

《일본사람이지.》

《바둑을 잘 두더구만.》

《…》

《지내 보면 괜찮네. 우리야 지금 생활에 적응돼야 하거던.》

《…》

《나하구 여기서 정미업을 해보자구. 마침 팔겠다는 정미소가 하나 나졌네. 값은 흥정할수 있지.》

《강 하나는 맑구만.》

남계수는 미간을 찌프린채 굽어보며 동문서답했다.

《백악산을 감돌아흐르는 록수일세. 류두날에는 볼만 한 풍경도 펼쳐진다네.》

《이 강줄기도 바다로 가겠지?》

느닷없는 물음에 구일파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남계수는 자기가 묻고는 어떻게 되여 꺼낸 말인지 알수 없었다. 마음속 어디선가 돌돌 흐르는 물소리만은 듣고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남계수를 데리고 구일파는 뱀장어구이를 잘한다는 음식집에 들어갔다. 마당에서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장정 하나가 판자에 뱀장어의 대가리와 꼬리를 작은 못으로 고정시킨채 벼짚을 가지고 껍질의 점액층을 벗겨내고있었다.

《뱀장어손질은 저렇게 물을 치지 않고 해야 제맛이 난다누만.》

구일파가 하는 말을 흘려들으며 남계수는 먼저 들어가 앉았다. 얼마 안 걸려 안주인이 적쇠를 올려놓은 질화로를 가지고 들어오며 인사말을 했다. 파란 숯불이 고개를 쳐들었다. 양념에 재워두었던 뱀장어토막은 올려놓기 바쁘게 자글자글 끓어댔다.

《이게 참 별미네. 술안주로는 아마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거야.》

구일파가 빈 접시에 구워진 고기토막을 올려놓는데 노랗게 익어서 먹음직했다.

《정미업이라는게 눈에 차지 않을수는 있지만 손해는 보지 않는 일이네. 우선 찧을 량곡이 언제나 있거던. 기업에서 이걸 원료라고 해야 할거네. 그 다음 비교적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기에 손해가 적은거야. 또 그 다음은 여기는 도회지와 달라서 사람들이 대부분 어수룩하지. 그저 그런가부다 하고 사는데 습관되여있단 말이네. 사실 기업이란 참혹한 경쟁인데 큰 도시에 나가서 벌려놔봤자 유지하기가 힘들다는게 내 타산이거던. 맨손 털구 나앉는 사람들을 많이도 봤지.》

남계수는 그 말을 유심히 들었다. 앞선 사람의 권고이기도 했다. 자기 수중에 있다는 돈이란 보잘것없다는것을 잘 안다. 자작농으로 살아온 집안의 통재산이니 알만 한것이다. 부친이 있을 땐 땅마지기도 좀 있었다. 그가 다섯살 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자 어머니와 형님들이 농사를 지었다. 각성받이인 집안에 성이 다른 세명의 형과 아버지의 피줄을 가진 누이 둘에 자기가 막냉이로 살았다. 그런 형제들중에서 손우 세 형과 누이 하나는 줄줄이 전염병을 만나 죽고 어머니마저 두해전에 세상을 떠났다. 부모들이 물려준 땅이란 진이 다 빠져 달아난 다산모의 젖가슴 같은것이였다. 시골에 박혀 농사를 지어먹을 성미가 못되는지라 이렇게 기업을 해보겠다고 나선 걸음이다.

구일파의 말대로 뱀장어구이는 좋은 술안주였다. 아직은 맛도 모르는 남계수라 이따금 메스꺼움질이 나서 몰래 토해버리는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어지간히 마셨지만 속이 편안했다.

그만하자는데 구일파가 자꾸 술을 부어대는통에 마셨더니 머리가 핑 돌아가는게 어지럼증이 났다.

마지막잔이 일을 친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는걸, 속으로 이런 소리를 하며 남계수가 일어나자 별수없이 구일파도 따라섰다.

해가 어지간히 기울어 폭염은 아니지만 바람이 없으니 숨이 막히도록 무더웠다. 두사람은 서너걸음에 한번씩 장단맞추어 비칠거리며 걸어댔다. 구일파는 남계수가 이곳에 남아서 기업을 같이하기를 바라며 지금같이 한잔 마신 다음에는 제나름의 인생관을 불어넣어댔다.

사람이 한생살이를 한다는게 도대체 뭔가, 남같이 먹고 누리는것이다. 기업을 하려는 목적도 거기에 있는것이나 다름없다. 그런즉 돈에 주눅이 들지 말아야 하고 차례지는 향락은 피해가지 않는것이 지금 세월에 사내걸음이라는것이다.

남계수는 손을 내저었다. 타산이 밝지 못하면 기업이라는 길에 들어서지 말아야 하고 남의 등을 쳐먹어도 안되지만 속아서 털리우지도 말아야 하는데 사사끼 같은 일본사람의 수모까지 받으며 정미업을 한다는건 수치나 같다고 대답했다.

《별수가 없거던. 우리야 달리야 살수 없는 식민지백성이 아닌가!…》

《저건…》

남계수는 앞쪽을 바라보다 휘청거리며 멎어섰다.

《왜 그러나?》

두사람은 어깨를 마주 대고 목을 뽑은채 바라봤다.

《아하- 이 사람, 계수. 그 녀자구만. 흐흐, 내 인사를 시켜주지. 아무렴, 어떻게 첫수를 쓰는가 하는건데…》

《멎어섰구만.》

《돌아서지는 않을거네.》

남계수는 이렇게 만나리라고는 생각 못한 녀자를 향해 술기운이 부추기는 힘으로 걸어나갔다.

《어이구- 선생이요. 흐흐흐, 혹시 우릴 마중나오신건 아니우? 이게 바로 내 친구 남계수외다. 대장부다운 사내지요.》

녀자앞에 이른 남계수는 급기야 몰라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지만 구일파가 너불거리며 이름을 먼저 내대자 난처했다. 자기가 무슨 생각으로 고개방아를 찧어댔는지 알수 없었다.

이것도 인사라고 해야 할가. 잔뜩 마셔댄 못난 꼴을 해가지고 누구앞에 나서는것인가.

《우리가 한잔 마신건 대장부 계수형이 여기 재경에서 정미업을 하게 된것을 축하해서지요. 예, …사람이란 이렇게 길에서 사귄답니다. 그게 인간세상의 길이라고도 하는데 묘한 놀음이거든요. 그 길이 마음에 이어지면…》

술마신 두 남자앞에 선 녀자지만 두려움을 모르고 조용한 눈매로 바라보기만 했다. 어서 길을 내요 하는 말없는 요구가 들려오는듯 했다. 비켜서 가지는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했다.

남계수는 버젓한 자세로 선 녀자의 그 고집센 태도가 왜선지 마음에 들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여기에 오셨는지요?》

묻고나니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엊그제 온 놈이 할 말인가. 그리고 례의란 조금도 갖추지 못한 수작질을 한것으로 혀바닥을 깨물었다.

《계수학생, 길을 바로 찾고 걷는 버릇을 붙이세요.》

높지는 않아도 정확한 발음으로 타이르는 통쾌한 말에 구일파가 두손을 쳐들고 미친듯이 웃어댔다. 그가 길옆으로 비칠거리며 비켜서자 녀자는 오던 걸음을 이어 곧추 걸어갔다.

《하하하, 어허허허- 계수학생아, 철 좀 들려마. 하하하…》

구일파는 너무도 재미있어 발까지 굴러댔다.

《기가 막혀. 정말 희한해. 이보라구, 계수. 내 말했지? 코 깨진다구. 공연히 명함드렸다 무슨 꼴이 됐나. 흐흐흐…》

남계수는 술기운이 싹 날아난 머리로 서있었다.

《청개구리》소동을 일으킨게 언제인가. 오늘까지 그때나 다름없는 타이름을 받고있으니 과시 남계수가 분명해, 역시 산골물이란 말이지 하는 통탄 같은것이 가슴속에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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