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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9월 21일

평양시간


제 6 회


제 1 장


6


영흥군(당시) 봉흥리라는 생소한 고장을 찾았던 강치명은 오는 길에 기차마저 놓치고 로상에서 겨우 화물자동차의 적재함우에 몸을 실을수 있었다. 보퉁이를 안은 중년의 두 아낙네와 장정 한사람이 앞자리에 앉은지라 그는 싣고 가는 도람통들에 의지하여 여간만 불편하지 않았다. 게다가 해수병을 만난 늙은이같은 화물차는 컬렁거리다가는 십리도 못 가서 한번씩 멎어서군 했다. 그때마다 운전사라는 늘어진 사람이 내려서는 바퀴를 차보고 차체밑으로 기여들어가 뚝딱대다가 나와서는 담배를 붙여물고 빨아대는게 한번에 두석대는 태우는 질군이였다.

《에이구, 빨리 갑시다레. 함주까지 해지기 전엔 닿지두 못하겠수다.》

한 녀인이 목을 뽑고 푸념질을 하지만 운전사는 피우던 담배를 마지막모금까지 빨고서야 일어났다.

화물자동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시름시름 야산과 황량한 벌사이로 난 길을 따라 힘에 부친 걸음을 해대는것이다.

강치명은 동소옥의 행처를 몰라 속이 탔다. 처녀의 외가가 있다는 영흥군 봉흥리에는 그림자도 내비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칠순을 넘긴 로인인데 아직도 펄펄했고 괴벽한 성미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해방전 동소옥의 어머니는 곱게 생긴 얼굴에 노래를 잘 부르고 춤도 잘 추어 린근에 소문을 냈지만 농사짓는 일만은 못하겠다고 조석으로 외우며 살았다. 외할아버지란 사람은 땅을 뚜져먹는 사람 내놓고는 다 건달이고 협잡군들이라고 여길만큼 편벽했는데 농번기에 들어서면 걸음이나 떼는 손자들에게 모춤을 들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열아홉살나이면 과년한 처녀라고 하던 때 스무살을 넘기도록 부모들의 요구를 거절하던 녀자가 하루는 제절로 서방감을 마련해가지고 나타났는데 그 사람이 동윤덕이였다. 봉건도덕과 문벌관념에 엇선 행실이 통할리 없었다. 결국 동윤덕과 그의 안해는 큰상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가문에서 축출이라는 엄벌을 받았던것이다.

세월과 함께 사람도 변하기마련이였다. 딸을 내쫓은 부모들은 무정으로 가슴앓이를 해오며 행여나 딸자식이 머리를 수그리고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행방을 수소문하여 알아보던중 지난해 딸과 사위는 이미 죽고 그들이 남겨놓은 손녀가 항구도시에서 산다는것을 알고 찾아왔지만 어미를 닮았는지 맞아주는 태도가 차겁기 그지없었다. 어머니가 평생 찾지 않은 외가는 모른다는 대답을 듣고 로인내외는 돌아서고말았다.

강치명은 연약하게만 보아온 동소옥에게서 얼음장같이 차디찬 매정을 느끼였다. 아버지가 돈밖에 모르고 살았다면 그 딸은 다 자라 제힘으로 살수 있으니 혈육도 모른다는것인가. 이것이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도덕륜리라면 어떤 교양이 필요한가.

도람통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도 귀찮지만 그것들이 무섭게 들추어댈 때면 강치명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 불안은 자신의 심리이기도 했던것이다. 공장의 실태가 마음을 놓을수 없게 하고있는것이였다.

종업원들의 구성상특성으로 하여 남아있는 고질적인 개인주의가 집단의 단결력을 약화시키고있으며 기업관리에서도 간과할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하는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의 뇌리로는 공장에서 있었던 한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지배인 남계수는 눈으로 보고도 저탄장의 석탄이 몇톤이며 보이라에서 하루소비량을 얼마나 초과하는가를 알아내는 사람이였다. 그날은 자기가 직접 삽을 들고 열관리공을 닥달해댔다.

《화상정리를 잘해야 해. 한마디루 재를 잘 털어내야 한단 말이야. 보라구. 자네가 긁어낸 슬라크 말이야. 깨끗이 연소시켜야 석탄소비를 낮출수 있지 않나. 불판정리를 이렇게 하란 말이야. 송풍압력을 낮추고 서서히 화실온도를 높이면서 밑불이 될것을 긁어서 뒤로 가져간 다음 하얗게 탄 슬라크를 긁어내고 고르롭게 화실을 정리해야 해.》

지배인이 보이라의 불도 잘 때리라고는 생각 못한 보이라공은 입을 벌리고 희한해하였다. 확실히 자기가 하는 불판정리와는 달랐던것이다. 그때 밖에서는 석탄을 부리우고있었다.

남계수가 내다보니 적재함우에서는 녀성로동자 세명이 가래질로 하차작업을 하고있었다. 석탄무지우에 선 솜저고리를 입은 남자는 뒤짐을 지고 보기만 했다. 운수반 반장이라는 젊은 사람이였다. 상하차로력의 한사람이지만 반장이라는 명색으로 녀자들에게 가래줄을 쥐우고 시켜먹는 꼴이 남계수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보이라칸 문을 열고 나선 그가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을 이렇게 해?》

반장이라는 사람이 마스크를 낀 지배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킬킬 웃으며 시까슬렀다.

《이보라구, 아궁쟁이. 좋은 쌀 날라왔으니 밥이나 잘 지으라구. 불을 잘 봐야 아궁쟁이구실을 하지. 응?》

남계수는 성이 독같이 올라 마스크를 벗어던지였다. 그제야 반장은 눈이 뒤집혔다. 녀자들을 보이라휴계실에 들여보낸 남계수는 반장이 혼자서 한차의 탄을 다 부리우게 하였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아 발을 굴러댔다.

《반장은 무슨 놈의 반장. 당장 삽자루를 쥐라! 그것도 싫으면 공장에서 나가라!》

지배인은 선자리에서 반장을 떼버린것이다. 원래 상하차공들을 데리고 다니며 일을 시켜먹기만 하여 반장에 대한 의견들이 많았기에 강치명은 권고했다.

《협의를 하고 해임시켰더라면 좋았을겁니다.》

《눈이 시려서 못 보겠소. 그런 건달군도 떼버리지 못하면 무슨 지배인이요. 못해먹으면 말았지.》

이것이 남계수였다. 아무리 옳은 일에도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마음먹으면 무엇이나 할수 있는 사람의 행동은 독단으로 굴러떨어지기마련이다. 지배인의 성격은 이미전에 형성된것이라고 강치명은 생각했다. 운수반장문제는 봐가며 대책을 세우려고 생각해왔기에 더이상 론의하지 않았지만 남계수에게는 그와 같은 경계해야 할 결함들이 존재하고있다.

새로운 경제관리체계가 확립되여가고있는 시기에 남계수와 같은 일군들의 낡은 일본새와 독단주의적인 사업작풍은 반드시 극복되여야 했다.

강치명에게 있어서 제일 어려운것은 지배인과의 사업이였다. 원칙을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원만하게 사업을 하려고 하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던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최근에는 지배인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히 제기된다. 뒤에서는 근거가 불충분한 말들이 떠돌고 앞에서는 조영길 같은 일군들이 이렇게저렇게 반발해나서는것이다. 게다가 지배인의 개체생활에도 문제가 있다는 반영도 더러 듣고있는 강치명이다.

개인기업가였다는 경력을 가지고있지만 강치명은 남계수를 청렴한 사람으로 알고있었다. 철제일용품공장이 설 때 2천만원이라는 큰돈을 서슴없이 내고 자신을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한 사람이다. 돈을 많이 가져본 사람들이 랑비에 가까운 생활방식을 추구하는것은 별로 놀랄것이 아니다. 그속에 개인리기주의적인 사상잔재가 스며있다고도 할수 있는것이였다. 그러나 남계수는 술집을 찾아다니는 일이 거의나 없는 사람이며 집일도 돌보지 않고 공장에 붙어서 살다싶이 한다. 머리속에는 오직 기업관리라는 생각만이 자리잡고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런 인간의 사생활에 녀자문제가 숨어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는 강치명이다.

그는 문득 언젠가 찾아보았던 남계수의 집이 생각났다. 마당에 댓평 되는 터밭이 있는 크지 않은 기와집이였다. 생각보다는 너무도 갖춤새가 소박했다. 부인은 중학교의 교원인데 무척 리지적이였다. 남편과는 다른 지성미에서 류다른 향취가 풍겼다.

《일하기가 힘드실겁니다. 보통 세차지 않은 남자거든요. 저도 이따금 내가 어떻게 이 사람하구 지금껏 살수 있었나 하고 생각하는걸요. 하지만 외형적인것보다 속은 단순해요. 솔직하고 잘못한것은 꼭 어린아이처럼 인정하기도 해요.》

사람이 오십되는 나이까지 함께 살면서 보아온것이라면 부인의 말에 진실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는 강치명이다.

항구도시의 화물역쪽에 내린 강치명은 운전사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서 동소옥을 찾아낸단 말인가.… 가슴이 답답해왔다.

공장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자 한숨을 돌린 강치명은 힘을 내여 걷다가 앞에서 가는 사람의 뒤모습이 낯익어 찾았다.

《민청위원장동무 아니요?》

아닐세라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공장 민청위원장인 려현석이다. 름름한 체구에 이목구비가 사내다운 얼굴이다. 붙임붙임이 큼직큼직한데 서글서글한 눈에는 항시 고지식한 웃음이 비껴있다.

《먼길에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영흥에 간다는것을 알고있은 려현석인지라 인사말을 그렇게 했다. 대답대신 손을 내저은 강치명이 물었다.

《어델 갔다오는 길이요?》

행동이나 말이 언제나 시원시원한 려현석이라 쭈물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역엘 좀… 군대때 녀동무가 출장왔다 집으로 가기에 잠간 만나보려고…》

강치명은 이 젊은 사람과 마주서면 자기의 군사복무의 나날이 떠올랐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을 맛보며 무슨 말이든 가리지 않았다.

《애인인게로구만. 그건 좋구. 그런데 동무는 자기가 책임진 동맹원에 대한 걱정은 하고있소?》

동소옥이때문에 그런다는걸 아는 려현석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자세를 바로했다.

《알아보느라구 노력은 하지만…》

《천리밖에 있는 애인한텐 주먹쥐구 찾아가면서 코밑에 둔 제 녀동생은 안중에 없는 격이지. 동맹원들은 다 동무의 형제들이나 같단 말이요. 민청위원장은 그렇게 생각해야 하오.》

화물자동차적재함에서 시달림을 당해 볼품없이 된 강치명의 차림새로 하여 려현석은 자책감을 지우지 못하며 따라걸었다.

정문접수에 이른 강치명이 경비원에게 대뜸 물었다.

《지배인동무 지금 있소?》

《반시간전에 나갔습니다.》

대답을 들은 강치명은 먼지오른 신발을 소리나게 구르고나서 자기 방으로 향했다.


해안거리에 생겨난 해안미용원은 문을 열어 한달을 넘겨서부터 녀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개인이 운영하던것인데 국영봉사기관으로 모습을 바꾼 이 미용원에서 녀자들은 일신되였다고 할만큼 새로운 자태로 나타나는것이다. 시내에서 미용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자 처녀들은 물론 중년녀인들까지 찾아와 줄을 서기 시작했다.

원래의 주인녀자는 건물과 설비들을 사회에 기증하고 지금은 이 국영봉사기관의 책임자로 되였다. 하지만 미용원에서 제일 기술이 높은 사람은 다른 녀자였다.

30대의 매혹적인 용모를 가진 이 녀자는 미용원안에서 미용사들을 양성도 할뿐만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지성도 소유하고있어 찾아드는 녀성들과의 교제를 참으로 능란하게 하였다. 녀자들의 미용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봉사업이여서 기다리면서 볼수 있는 신문과 화보들이 언제나 원탁우에 놓여있었으며 이따금 이 미용사가 녀자들의 화제에 끼여들기도 했다. 머리에 크기가 각이한 감개들을 비끄러맨 녀자들이 앉아서 한담을 할 때는 볼만 했다. 그런 녀자들속에는 기자들과 가수들, 어느 기관의 녀성일군도 있는가 하면 의사, 교원도 섞이군 한다.

국영봉사업체로 간판을 내걸었지만 이 미용사는 독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미용원안에 방을 하나 내여 생활하고있었다. 그것은 마치도 성새속의 작은 요새나 같았다. 이따금 이 녀자에게는 고정되여있는 밤손님들이 찾아들군 하는데 모두 남자들이였다. 극히 제한된 그들이 찾아오는 구실은 대낮엔 시간이 없어서 야간에 리발을 한다는것인데 실은 안마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매혹적인 녀자의 봉사는 참으로 자극적이여서 찾아든 남자들은 중독증상을 가지지만 본인들은 전혀 알수 없었다. 환락의 도취란 그런것이기때문이였다.

미용사가 오늘 밤에 맞아들인 손님은 평양에서 내려온 검열성의 부처장 류계환이다. 그들의 상봉인사는 매우 익숙된 포옹과 애무였으며 자리를 나란히 하고 나누는 대화에는 아무런 구속도 없었다.

《난 아주 잊은것이나 아닌가 했어요.》

수심같은 안개를 밀어내며 녀자의 눈빛이 고혹적으로 반짝였다.

《먼곳에 있어도 마음속에 늘 그대를 안고 산다는것만은 알아주오.》

류계환은 일일천추로 고대한 일종의 만족을 바라며 살집좋은 얼굴에 능청스러운 웃음을 짓고 보드라운 살결을 가진 녀자의 손을 잡아 무릎우에 올려놓았다. 미용사는 약간 놀란듯 한 얼굴을 젖히며 조용히 나무랐다.

《물도 급히 마시면 얹힌답니다.》

《느리면 우리 일을 못하오. 뿌리를 찾았으면 볼새없이 뽑아던져야 하거던. 시원스럽게.》

《그러니 검열을 오셨군요. 또 피가 흐르겠어요.》

《무슨 섬찍한 소릴. 아래를 도와주자는거요.》

어느새 손을 뽑아간 녀자가 가는 허리를 꼬며 우습다고 고개를 살래살래 저어댔다.

《칼자루를 쥔 사람들은 늘 그렇게 외워도 간 뒤에는 울음소리가 따라요. 거기서도 그걸 들으시지요?》

《어찌겠나. 우리 일이 워낙 그런걸. 울어봤자 하늘에 주먹질이지.》

《권력이란 그런거지요. 오래 계시겠어요?》

류계환이 녀자의 손을 다시 잡으려고 하자 그편에서 물러나 앉으며 말했다.

《저녁부터 드셔야지요.》

욕망은 부채질을 하지만 체면없이 굴수 없었던지 류계환은 짐짓 점잖게 고개를 끄덕댔다.

녀자들의 머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재간만 가진게 아니라 미용사는 훌륭한 료리솜씨도 갖추고있었다. 자개박이상우에는 성의를 다한 음식들이 조화로운 갖춤새를 가지고 차려졌다.

《가만, 내가 가져온 위스키가 있소. 스코틀랜드산.》

《그건 뢰물이겠지요?》

《례물이니 마셔도 되오.》

《여기에 오시면 제가 드리는것만 잡수세요. 간부들은 청렴해야 하지 않아요.》

《권세가 높을수록 더 좋은걸 먹고싶은건 본능이 아닐가.》

류계환은 자기 가방에서 외국술을 꺼내여 녀자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래서 누가 간부되지 말랬어 하는 말이 류행되는거예요. 그렇죠?》

《권력세계에선 뭐라는지 아오?》

《재미있어요. 말해줘요.》

《누가 높아지지 말래.》

《권력때문에 미치겠네. 호호.》

미용사는 고운 손으로 술을 부으며 씹어서 말하지만 이미 중독증상을 일으키고있는 류계환인지라 싱거울사한 웃음으로 맞장구를 쳤다.

《파마나 해주는 녀자지만 들을 소리는 있을거예요. 검열사업에서도 자료는 귀중하겠지요?》

《아무렴.》

두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해후감을 안고 잔을 찧고나서 마셨다. 미용사는 대중의 여론이라며 항구도시의 크고작은 공장과 기업소들의 실태를 미주알고주알 외워대기 시작했다. 어느 공장의 아무개아무개는 탐오의 왕초다, 지배인 누구는 공장의 자재들을 집안자식들의 일로 망탕 쓰고있어 소문을 내고있다며 끝없이 입김을 불어넣었으나 그것은 대부분 과장되고 류언비어에 불과한것들이였다.

하지만 류계환은 그 기업소들이 검열대상인것으로 하여 귀가 나팔통같이 되여 고스란히 들었다.

《남계수라는 사람을 안다구 하셨지요?》

《좀 알지. 해방전부터…》

《그 쬐꼬만 공장지배인이 무서운 관료주의자인데다 방탕한 인간이예요.》

미용사는 남계수에 대한 자료를 넘겨주지 못하는것이 속에 걸려 내려가지 않지만 품안에 기여드는 사내를 리용하여 기어이 그의 숨통을 끊어놓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루한 관료주의자들에겐 흥미가 없어.》

류계환은 지금의 자리에서 그런 말을 듣는것이 거북해서 슬며시 녀자의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이어 능청을 떨며 바보스럽게 물었다.

《난 뭐요?》

못 견디겠다는 정찬 눈매로 바라보며 녀자는 탐스러운 가슴과 어깨를 사내쪽으로 기울였다. 그리고는 달래듯 말했다.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에게 충실한 남자지요. 그렇지 않아요?》

《정말 좋구만. 이 가슴에 얼굴을 묻을 때 한껏 취하는 기분이란…》

《남계수의 공장을 이번에 검열해요.》

《너무 작아, 흐흐흐.》

《메추리는 작아도 그 맛은 좋아요. 경력이 얼떨떨한 사람들이 무슨 꿈을 꾸는지 알아내란 말이예요. 전 다만 당신의 사업에서의 성과를 바래서 하는 말이예요.》

《분부만 하십시오. 흐흐. 정말 오늘은 새삼스럽구려. 그새 내가 그리웠지?》

《이럴 때면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세요?》

《구름우에서 나는 기분일테지.》

《당신 같은 남자들을 어데로 데려갈가 하는 걱정을 하지요. 호호호, 알겠어요? 나리, 내 말 들어요. 내가 저지르고있는 이 모든 죄악은 하느님이 용서할거예요. 설사 내 몸은 용서를 받지 못해도 넋만은 보살펴주실거예요.…》

《?》


전후복구건설의 기본단계라고 할수 있는 3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의 나날에 청년개발자들이 천동지구에 새 광산을 일떠세웠다. 그때로부터 여러해가 지난 오늘 광산은 나라의 광업발전에서 큰 몫을 담당한 굴지의 자태를 드러냈다.

합숙에서 함께 생활해오는 과정에 동소옥이 언니처럼 따르는 녀자가 개발자인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와서 살고있다. 그가 몇번씩이나 편지로 보고싶다면서 한번 오라고 청하기에 모처럼 휴가를 받고 온 동소옥이다.

그는 높은 산발들과 천고의 수림이 뒤덮은 광산지구를 겁에 질린 눈으로 둘러보았다. 발파소리가 울리고 선광장의 기계동음이 멈춤을 모르지만 날이 저물면 맹수들이 마을근처에까지 내려온다고 한다.

광산에 뿌리내린 부부가 일터로 나가면 동소옥은 온종일 빈집에 있어야 했다. 하도 고적하여 며칠만에 그는 언니의 일터를 찾았는데 분석실의 기사로 있었다.

《왜? 혼자 있기가 적적한 모양이구나. 그럼 오늘부터 여기서 내일을 도와주렴.》

언니의 말이 반가왔고 분석실이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시료분석을 거들어주며 동소옥은 어린시절을 그려보았다.

집안에서 철판을 두드리는가 하면 작은 로에서 쇠물도 녹이고 유리구슬알까지 곱게 만들어내던 아버지였다. 철없던 시절에 아버지의 재간은 신비의 세계였다. 그는 아버지의 심부름도 곧잘했다. 돌을 구워서 절구로 찧는 아버지의 곁에 앉아서 이건 무슨 돌인가고 물으면 석영이라고 하던 대답이 아직도 기억되여있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제손으로 만든 빈침을 머리에 끼워주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자기가 만든 물건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던 아버지였던것이다. 그나마 어린 딸을 시켜먹을뿐 보수는 주려고 하지 않던 아버지의 선물이니 말해서 뭣하랴. 썩 후에야 동소옥은 자기가 받은 머리빈침이 아버지가 내다 파는것보다 곱지 못하다는것을 알았다. 그것은 색구슬알의 형태가 찌그러진것이 많았기때문이였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동소옥은 오작품을 가려볼수 있었던것이다. 그 오작품은 아버지의 인생이나 같은것이였다. 하지만 오늘의 동소옥은 그걸 리해하기도 했다.

자기를 낳은 다음부터 한뉘 병자로 살아온 어머니를 대신하여 집안의 살림살이를 도맡아한 아버지였던것이다. 어느 누가 제 딸의 머리에 제손으로 만든 고운 빈침을 꽂아주고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처자를 먹여살려야만 하는 아버지였다.…

《분석실에서 일해보니 재미있지? 오늘이 우리 광산 생일이다. 호호. 비록 조업한지는 몇해밖에 안되지만 우리 광산은 억척장수처럼 년간 수천톤이라는 광물생산계획을 어깨에 걸머지고 힘든줄 모르며 앞으로만 나간단다.》

《언닌 시인이 된게 아니예요?》

《자연을 정복하는 인간의 로동이 시지 시가 별거니?》

《정말 멋있어요. 언니를 다시 보게 돼요.》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시를 읊어달라니? 좋아. 참되도다! 너를 어찌 내가에 휘청이는 개버들따위에 비기랴, 산우에서 머리높이 하늘을 찌르더니 산밑에서 산을 이고 굽힘이 없도다!…》

동소옥은 두손을 꼭 맞잡고 광산녀인이 된 언니를 바라봤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여기로 오기 전까지는 고민과 동요가 많았던 녀자다. 도시에서만 살아온 생활로 하여 두렵다고 한두번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는 나라에서 청춘들을 부르는 이곳으로 왔으며 심장을 송두리채 바치며 참되게 사는것이다.

세상에 동요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가. 동소옥은 자기야말로 동요의 련속속에서 산다고 여기였다. 젊음을 지녔지만 인생의 목표는 가지고있지 못했다. 이따금 공상에 잠겨보지만 그것은 자기 같은 처지의 인간으로서는 이룰수 없는것이였다. 바란다고 다 성취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마음이 울적해날 때면 춤을 췄다. 어느덧 그것은 진정제나 같았다. 그리고 다시 마음의 고요가 찾아들면 이런 생각에 잠기군 했다.

난 아버지같이 살아서는 안되지만 아버지를 떠나서 그 무엇도 얻을수는 없어. 이건 차례진 운명일거야.

정녕 도저히 피할 길 없는 속박을 이겨내지 못하며 사는 동소옥이였다. 그의 눈앞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언니였기에 그가 받아안은 감동은 컸다.

나에게도 저 언니와 같은 생활의 목표와 열정, 랑만이 필요하다. 자기를 바치지 않고 바라는것은 옳지 않다. 여기 와서 나도 무엇인가를 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참으로 귀중한것이다.

동소옥은 무서움도 잊고 산발을 오르내렸고 마침내 석영을 찾아냈다. 투명하면서도 윤기가 도는 돌덩이가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졌는지 모른다. 공장에서 쓰일 연마재를 만들어볼 생각을 한것이다. 그 말을 들은 언니는 무척 대견해하였다.

동소옥은 실험실에 붙어살면서 석영이라는 광물과 쉬임없이 도전했다. 연마재로서 적중한 대상이라면 끝장을 보리라 마음먹었다. 굽고 마스고 가루를 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얻어진것으로 실험해보았는데 성공이였다. 문제는 석영의 원천지를 찾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소옥아, 넌 이번에 와서 보물을 찾았구나.》

《보물은 무슨 보물?》

《석영중에서 6각기둥결정체가 있는데 그걸 수정이라고 한다. 수정이 보석이 아니란 말이니, 애두 참.》

《아니예요. 수정보다 더 맑고 깨끗한 마음을 언니가 나한테 안겨줬어요. 정말 고마와요.》

《소옥아, 점심시간도 돼오니 이젠 집으로 가자.》

동소옥은 언니와 함께 분석실을 나섰다. 집까지는 버럭산을 넘어 이십분정도 걸어야 했다.

《소옥아, 혹시 너 친해둔 남자가 있니?》

《언니두 참, 나 같은걸 누가…》

《아니야. 네곁에도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많니, 성실하고 소박한 그들에게서 많이 도움을 받고 또 도와주는 과정에 사랑도 맺게 되고 결혼도 하게 되는거지. 결코 인물이나 삐여지게 잘나고 류행이나 추세에 밝다고 해서 좋은 사람인건 아니야. 난 이미전부터 너에게 이 말을 해주자고 했었어.》

언니의 의미심장한 말이 동소옥에게는 이상야릇하게 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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