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4


녀성독신자합숙의 저녁이 오면 참으로 희한한 광경을 찾아본다. 10대부터 40대까지의 미혼자들이 모여서 사는 장소여선지 녀자란 누구들인가를 알게 하는 미의 화원이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남자세계에 도전하는 랑만적인 유모아들이 창조되였고 천리마시대 녀성들의 로력적위훈이 국가적인 수훈이 아니라 그들만이 마련할수 있는 이채로운 축하연으로 펼쳐졌으며 류행의 본보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녀성영웅서사시도 창작해낸다. 결혼에로 가기 위한 이 《중간역 대합실》에서는 사랑에서 실패한 이야기들을 교훈으로 삼아 남자들을 회유도 하고 지어는 위협까지 하여 쌍을 이루게 하는 처녀중매군들의 모험담도 들을수 있다.

여기서 사는 처녀들은 해연처럼 자유로운 존재들이였다. 로동의 보람을 한껏 향유하는것과 함께 언제부터인가 자기들의 생활을 보다 활기에 넘치게 하기 위해 저녁일과에 오락회라는 소박한 간판을 내걸고 호실별경쟁을 하였으며 한해의 마감날에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축배를 드는것을 관례화하기까지 하였다. 각이한 년령의 처녀시절을 가진 이 녀자들은 직업도 형형색색이다.

방직공, 선반공, 판매원, 료리사, 재봉공, 재단사, 회계원에 공장 직장장까지 있었다. 직종과 직무에는 차이가 있어도 저녁시간에 오락회에 참가하면 동등한 자격으로 지명을 받아 노래를 불러야 했고 호실끼리 준비한 여러가지 형태의 예술소품에 참가하는것이다.

206호실은 여섯명의 거주자들로 이루어졌는데 호실장은 동소옥이였다. 직장에 나가면 쇠를 녹이고 연마작업을 하는 로동자지만 합숙에서는 다섯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생활을 다양하게 조직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이끌어나갔다.

동소옥은 연약해보이면서도 맵짠 맛이 나는 처녀다. 갸름한 얼굴모양과 선명하면서도 가는 눈섭이 애틋하다면 당돌한 빛을 띤 눈동자와 날이 선 코마루는 도고한 기운을 풍겼다. 류달리 눈길을 끄는것은 조화롭고 날씬한 몸매였다. 률동감을 간직한 처녀의 몸에서는 자기를 지키려는 청춘의 힘이 약동했다. 총명한 머리와 사고에서의 단순성이 성격의 기초로 된 동소옥은 공장대학에서 높은 성적을 가지고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왕왕 실수를 하는데 그것은 무엇이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약점때문이였다.

동소옥은 호실 벽거울앞에서 화장을 하며 말했다.

《자, 시작해봐. 오늘 우리 차례야. 잘해야 할게 아니니, 련습이다. 시작!》

그 말이 떨어지자 손풍금과 기타의 전주가 울린다. 서정적이고 경쾌한 리듬을 타고 《봄노래》가 울려나왔다.

《박자를 지키면서, 좋아, 여기서 내가 나간다.》

동소옥이 오른손을 옆구리에 살짝 얹고 발끝걸음으로 나서면서 《리듬, 보통속도로!》 하고 노래부르듯 말하며 왼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맵시있으면서도 우아한 률동을 펼친다.

《장식음, 리루리루, 좋아요.》 하고는 춤가락을 이어나간다. 청춘의 희열을 안고 처녀들은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지휘자처럼 손을 내리그은 동소옥이 말했다.

《됐어, 내려가자.》

독신자합숙 1층 홀에는 벌써 관람자들이 좋은 자리를 찾아가지고 앉아 공연시작을 기다리고있었다. 견장없는 군용외투를 걸쳤는가 하면 털실로 뜬 큼직한 수건으로 어깨들을 감싸기도 했고 색갈이 각이한 솜저고리를 입은 처녀들이 촘촘히 몸을 붙이고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늘은 2층이지?》

《201호부터 10호까지야.》

《볼만 하겠다야. 소옥이네 호실도 록록치 않아.》

《갸가 누구라구. 얌전한 딱따구리야. 허투루 입 놀리다간 봉변 당해.》

드디여 독신자합숙의 저녁공연이 시작되였다. 첫 순서로 나선 처녀들은 하나같이 기타를 메고 《처녀로 꽃필 때》를 불렀다. 잘한 호실에는 재청이 차례졌고 재청회수가 많을수록 우승의 단상에 오르는것이다.

《최신형몸매》라는 별명을 가진 합숙사감이 요란한 가슴과 배를 자랑하며 펭긴새걸음으로 나타나 사진기의 샤타를 연방 눌러댄다.

《다음은 206호실, 출연종목은 독무 〈봄노래〉!》

아름다운 선률속을 헤치며 동소옥이 연분홍저고리에 람색치마의 허리를 잘룩하게 묶은 자태로 봄을 맞는 환희의 률동을 펼친다. 버들가지처럼 휘젓는 팔과 손, 속도가 빠른 발끝걸음과 맵시있게 허리를 굽혔다 가슴을 내미는 굴신, 물결치는 치마자락과 매력적인 돌기, 얼굴에 넘쳐흐르는 황홀한 미소…

눈뿌리를 빼앗긴 처녀들이 소근거린다.

《저애가 무용배우가 되려고 시험쳤다가 미끄러졌다면서?》

《모르겠어. 잘 춘다. 저렇게 고운 몸매도 있구나야.》

《손재간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친하면 속치마도 벗어줄 애야. 나한테 나리꽃빈침을 선물했어.》

동소옥의 독무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나오고 재청소리와 함께 어떤 말괄랭이는 환성까지 터뜨렸다. 206호실 처녀들은 준비한 노래들로 재청에 화답했다. 그들모두는 독점적인 인기로 하여 기분이 붕 떴다. 구경군들이 연방 동소옥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그가 여름철 달린옷을 입고 나타나 뽈까춤을 추었다. 박자와 률동이 빠른 춤동작인데 동소옥은 거침없이 유연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자기 소리까지 먹이며 재치있고 힘차게 발을 구르며 어깨를 떨어댔다.

《저앤 세계적이다야.》

《지내 뜬다.》

《심술은 그만 부려.》

동소옥의 뽈까춤이 끝나가려 하는데 갑자기 《최신형몸매》인 사감이 무대에 뛰여드는통에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뒤이어 사전에 꾸민것이 아니라 공연도중에 출연자와 관객사이에 자연발생적인 교감이 이루어진것임을 깨달은 관중속에서 폭소가 터졌다. 중요한것은 그것이 비웃음이 아니라 황홀과 경탄으로 이어진다는 그것이였다. 비록 뚱뚱한 몸이지만 사감이 얼마나 재빨리 움직이는지 처녀들은 박수를 쳐대고 너무 우스워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앉은걸음으로 육중한 몸을 움직이면서 두손을 건드러지게 쳐들고 흔들다가는 무릎을 통쾌하게 두드려댄다. 그럴 때마다 야앗 하는 소리가 울려나오는데 흥취롭다. 동소옥도 물러나지 않고 사감과 같이 추었다. 고빠크춤의 남자역은 그가 담당하기에 더욱 재미있었다. 사감은 애교를 띠고 동소옥과 교감했다. 높이 뛰고 돌아야 하는 무용동작이지만 서툴어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기식대로 맞춰하기에 저 춤은 그렇게 추는가부다 하고들 인식하고 보는것이다.

오락회의 마감이 오자 너나없이 끼여드는 군중무용이 펼쳐졌다. 남자들이 없는것은 유감이지만 짝을 뭇는데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 동소옥은 사감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다.

《소옥이, 해안미용원에 다닌다지?》

《이 머리도 거기서 한거예요.》

《어느 화보사에서 모델을 서달라고 주문까지 했다면서?》

《예, 하지만 거절했어요. 저 같은게 어떻게…》

《왜? 우리 소옥이만큼 매력있게 생기고 몸매고운 처녀가 어데 있다구…》

사감은 동소옥을 바투 끌어당기며 누가 엿들을가봐 저어하듯 재빨리 말했다.

《주의하라구. 그 미용원을 말이야. 유혹하는 곳이 미궁일수 있거던. 알겠어?》

동소옥은 별로 새겨듣지도 않으면서 머리만 끄덕거렸다.


바람결 맑고 별빛도 정다워

즐거운 이 저녁

다정한 동무들 모두다 유쾌히

춤추고 노래하자


젊음을 한껏 연소한 동소옥은 호실에 들어서자 침대우에 몸을 던지였다. 얼마나 들떴던가. 아무 생각도 없었다. 재청과 박수속에 도취되여 온몸을 흔들어댔더니 새큼한 땀냄새가 나기까지 했다.

《오늘은 정말 좋았어.》

식어가는 기분을 안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처녀는 자기감정의 길이를 잴줄을 몰랐으며 무슨 일로 실수를 했을 때는 입술만 물어뜯었다.

눈물은 지나갔어, 울어선 뭘 해, 누가 알아준대 하는것이 유일한 심리조절이였다. 그것은 생활환경이 가져다준것이라고 해야 옳을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9살때 폭격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혼신을 돈을 버는데 바치다나니 딸을 돌아볼새도 없었다. 가정이라는 보금자리는 있었어도 늘 외롭게 지낸 그였다. 그의 어머니가 워낙 신체가 허약한 탓에 계속 골병으로 자리에 누워있다보니 소옥은 철들기 전부터 부엌동자질을 해야 했다. 이렇게 동소옥은 부모들의 손이 많이 가는 나이에 자기를 자기가 돌보며 살아왔던것이다. 고독과 외로움은 그에게 있어서 제일 두려운것이였다. 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일부러 춤을 배웠고 췄다. 아버지는 언제 한번 춤추는 딸을 보고 칭찬은 고사하고 좋아한적도 없었다.

동소옥은 물끄러미 전등을 바라보았다. 눈앞이 금시 어두워나며 진한 보라빛별찌들이 날아다녔다. 무아경같은 속에서 어린시절 자기의 모습을 그려보는것이다.

《오늘은 206호실 날이구나. 소옥이가 판을 쳤으니까.》

《정말 멋있어. 너 어데서 유럽춤을 배웠니, 사감과 짝을 다 뭇구. 그 〈펭긴〉이 누군지 알아? 외교관이였대. 그쯤 알아둬.》

3층의 《참새》들이 재잘거리고 사라지자 방직공장 로력혁신자이며 직맹위원장인 녀자가 은근한 미소를 지은채 동소옥을 찾았다.

《소옥아, 네가 춤을 잘 춘다는 말은 들었어도 막상 보고나니 놀라게 되는구나. 네가 춘 외국춤도 보기 좋지만 나한테는 우리 무용이 더 흥취를 불러오더구나. 봄을 노래하는건 우리 청년들의 아름다운 리상이거던. 더구나 너의 〈봄노래〉춤에선 우리의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 생활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안겨오는것이 참말 좋았어.》

동소옥은 까닭없이 가슴이 두근거려나자 생각을 돌려세웠다. 이 처녀의 정서는 자기식의 만족에서 찾는 일종의 쾌감이기도 했다. 즐거웠으면 그만이지 다른것은 념두에 두고싶지조차 않았다. 그는 눈을 감은채 래일부터 시작되는 휴가기간을 어떻게 보낼가 하는 공상에 가까운 세계에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간막이유리창너머에서 갈색빛이 약간 떠도는 머리카락들이 물결처럼 흘러 어깨에 닿은 은행회계원이 박속같이 하얀 손으로 결제문건들을 보고있다. 옆모습에서 눈길을 끄는것은 약간 쳐들린 코마루와 발깃하게 연지를 바른 도두룩한 입술이다. 밖에서 들여다보는 눈길이 있다는것을 직업적으로 의식하면서도 상우에 놓인 작은 금고속에서 돈을 꺼내여 세는데 시계의 초침처럼 정확하면서도 가벼운 바람이 일 정도로 빠른 손동작이다.

검은색춘추외투를 입은 흥성철제일용품공장 부기장 조영길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저도 모르게 울대뼈를 실룩거렸다. 그의 눈은 돈이 아니라 녀자의 용모에 초점을 박고있지만 감정을 드러낼가봐 일부러 시리지도 않은 발을 엇바꾸어 초조하게 굴러댔다.

묶음띠를 두른 돈의 뒤등을 가볍게 치는 손가락소리에 이어 회계원의 눈길이 돌려졌다. 화장을 하여 또렷하면서도 깔끔한 눈이 알릴락말락 웃으며 반원형의 출납구로 돈을 내보냈다.

《추워보이누만. 방안의 온도가…》

《아니, 괜찮아요.》

《두꺼운 옷을 입고 일할게지.》

정찬 눈매로 야릇하게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말할것 같던 녀자가 등뒤에서 나는 문소리를 감촉하자 낯색을 바꾸며 말했다.

《친절하시군요, 부기장동지. 그럼 안녕히 가세요.》

일을 다 본 회계원이 출납구를 닫으며 먼저 작별인사를 하자 조영길은 아쉬운대로 가방에 돈뭉치들을 넣고 은행을 나왔다.

사계절중에서 봄만큼 사람들을 놀래우고 환희롭게 하는 계절은 없을상싶다. 길옆의 개나리가 황금덩굴을 이루었다. 삼동추위속에서 고대하던 봄이 온다는 소리도 없이 불쑥 대자연의 한 귀퉁이를 채색해서야 절기를 느끼는것이다.

도시에서 전쟁의 상처는 이미 가셔진지 오랬다. 곧게 뻗은 대통로의 량옆에 다층살림집들이 늘어서기 시작했고 완공된 주택구획들에는 새로 생긴 국영봉사업체들이 간판을 내걸고 활기띤 영업을 시작했다.

조영길은 일정한 실무능력도 갖췄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한 반면에 제노라 하는 거만이 그의 달변과 유모아속에 숨겨져있었다. 고중을 졸업한 후 재정간부양성소를 나와 재정일군이 된 그는 우로 솟구쳐보려고 어지간히 노력도 해보았지만 철제일용품공장의 부기장이라는 별로 시원치 않은 자리에 머물고있는것이다. 그는 자기와 같이 일하는 대상들을 이전의 개인상공업자들로 치부하였고 롱담과 익살같지만 자기는 개인주의자들을 개조하여야 할 사명을 지닌 일군이라고 자부하고있었다.

아직은 한창나이인 그는 포부를 안고 살지만 자기앞에 놓인 가장 큰 장애물은 남계수라고 여기고있다. 계산에 밝다고 하여 그를 무시했다가 된탕을 겪었던것이다. 말하자면 부기일군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결함을 다른 사람도 아닌 지배인한테 드러낸것이였다. 때없이 그 일이 떠오를 때면 자기의 잘못보다 남계수에 대한 불만을 누를길 없었고 해방전 개인기업가출신인 이 지배인의 약점을 찾아서 물러앉게 하던가 아니면 자기가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조영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남계수의 손탁에서 일하다가는 편한 날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그였기에 상금기준을 새로 세우라는 지시를 받자 여론을 조성하고 불만을 야기시키면서 여기저기 들고다니며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는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원칙적인 문제로 보면서도 지배인과 정면으로 맞서기는 두려워했다.

조영길은 천성적으로 남의 뒤를 캐기 즐겨하는 기질을 가지고있었다. 남계수의 지나간 생활을 알기 위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보았다.

얼마전에는 전후에 남계수의 철공소에서 일하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쫓겨나 지금은 시계수리공을 하는 사람의 입에서 놀라운 소리를 얻어들었다. 한때 자그마한 음식점을 운영한 녀자와 맺어진 인연인데 보통 그런 일들은 치정사로 이어지기가 일쑤여서 조영길의 흥미를 여간 끌지 않았다. 아마도 웬간한 사내대장부라면 그쯤한 일은 스쳐지날지도 모르나 남계수와 련관된 일이라면 끝까지 파고들어 먼지라도 걷어쥐고싶은 조영길로서는 쉽사리 물러설수 없는노릇이였다. 끈질기게 남계수와 내연관계에 있다는 그 녀자를 찾으려고 아득바득 애를 썼다. 하지만 이름 석자만 알뿐 행방은 묘연했다. 남계수의 인격을 공격하기에는 충분한 자료지만 그것을 확인할수가 없는것이 분했다.

그가 보건대 인간의 생활과 운명이란 때때로 맹랑한것이기도 했다. 남계수라는 인간이 어떻게 사회주의기업을 책임질수 있는가, 있을수 없다고 생각하는것이 현실이기에 불만스럽고 불만스러울수록 밸통사나운 지배인밑에서는 일을 못해먹겠다는 마음만 먹게 되였다.

변변한 친척붙이가 없는 조영길은 족보까지 놓고 이름을 따져가며 찾다가 마침내 평양에서 사는 팔촌 되는 사람을 발견했다. 중앙기관의 대외사업부문에서 일한다니 듣기만 해도 귀맛이 돌아 편지도 하고 휴가를 받아 찾아가기도 했다. 좋기는 그 사람이 용을 써서 도와주면 살통이 날지도 모르겠는데 이가 잘 들지 않았다.

조영길은 체신소앞에서 멎어섰다. 장거리전화로 팔촌이라는 사람을 만나봐 하는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풋낯이나 아는 체신소의 교환수처녀가 반가와하며 평양을 신청한다니 군말없이 찾아주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전화를 들었는데 찾는 사람의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형님이요? 나 영길입니다.》

항렬에는 상관없이 형님이라고 개올리는 판이다.

《보구싶어서요. 외로운 내가 아니나요. 형수님과 조카들도 다 잘 있나요? 그럼 됐군요.》

감도가 그닥 낮지 않아서 목소리가 잘 들리였다.

그런데 상대방에게서 뜻밖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지금 동생이 다니는 공장지배인의 이름이 남계수가 옳소?》

이건 또 무슨 생뚱같은 소린가. 이름만 들어도 신물이 나는 사람을 하필 물을건 뭔가.

《옳다구? 내가 그 사람을 오래동안 찾았다네. 해외에 있는 동포기업가가 알아봐달라는 사람이 남계수지배인이네.》

《해외라니요? 갑자기 무슨 해외…》

흔하게 듣는 말이 아니여서 조영길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멍청히 반문했다. 상대방은 바쁜지 기회를 봐서 내려갈테니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하-》

조영길은 쓴입을 다셨다. 장거리전화돈을 쓰면서 남좋은 일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봄이 젊음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겨울 솜옷속에 묻혔던 처녀들의 자태가 드러나고 생활은 새로운 활기에 충만되여 굽이치며 흘렀다.

휴가를 받은 동소옥은 려행준비를 갖추느라 하루를 보냈다. 짐을 꾸려가지고는 밤차로 떠날 결심이다. 상점에서 나와 잠시 거리를 걷던 그는 즐거운 무도곡의 선률이 울려나오는 유원지쪽을 홀린듯 서서 바라보았다.

《야, 소옥동무가 여기서 기다릴줄은 몰랐구나.》

바란적 없는 소리가 곁에서 들려오기에 동소옥은 고개를 돌렸다. 께름직한 청년이 벌씬 웃어보였다. 능청맞은 저런 웃음을 경계하라는 두뇌의 본능적인 신호를 받자 불쾌한 낯색을 지었다.

바로 저 유원지에서 우연히 만나 짝을 이루고 춤을 춘적이 있는데 비위가 좋은데다 검질긴 상대였다.

그날 청년은 무도회가 끝나자 꼬리를 잡고 따라서며 말했다.

《소옥동무, 내가 집까지 동무해주지.》

《난 집이 없어요.》

《세상에 집없는 사람도 있소?》

《있어요. 그렇다고 방랑자는 아니구요. 독신자합숙이 내 집이예요. 이젠 알겠어요.》

《아, 그게 좋구만. 부모들의 구속도 안 받는게.》

《헛된 욕망은 버려요. 난 사나와요.》

《내가 그런 성격을 좋아하지 않소. 듣던바 그대로구만.》

《독신자합숙 녀자들은 못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없어요. 공연히 망신을 당하고싶어요?》

《난 원래 매집이 좋은편이요. 공식적으로 찾아갈테니 맞아주겠소?》

《공식방문이라면 거절 안하겠어요.》

귀찮아서 한 그 대답으로 그후에 얼마나 시달림을 받았던가. 그만큼 경솔한 동소옥이였다.

그후 어느날 그는 이렇게 선언했었다.

《다시는 이런 공식방문을 접수할수 없어요.》

《뭘 그러오. 우리야 이젠 구면인데.》

《나보구 뭐라는지 알아요?》

《물찬 제비라고 부르겠지.》

《흥, 랭혈이라고 해요.》

《그게 좋구만. 난 온혈이요. 음이온과 양이온, 서로 주고받을수 있는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요. 흐흐흐-》

《굉장한 물리학자군요. 큐리와 같은 상대를 찾아보세요. 다신 나타나지도 말아요!》

매몰찬 거절에 청년은 넥타이핀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만한 부탁쯤은 별치않게 여기고 빨간 유리로 복숭아모양의 장식을 한 넥타이핀을 만들어줬더니 험담을 퍼뜨릴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사랑이란 이런것이 돼야 한단 말이지. 빨갛게 타번지는 이 심장을 보란 말이야. 처녀의 소중한 고백이거던. 소옥동무의 언어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나 하날거요.》

참으로 파렴치한 모독이였다. 그런 인간이 자기가 한짓은 가뭇이 잊고 마치 약속이라도 하고 만난듯이 지금은 눈앞에서 천연스럽게 웃고있었다.

《동문 자기가 한 말을 책임질줄 아는가요?》

《사람이 일생 얼마나 많은 말을 한다고 그걸 다 책임진단 말이요. 사실상 책임이란 한갖 구속에 불과하오.》

《그럴테지요. 한번 만나려댔는데 마침이예요.》

처녀의 입에서 분기를 누른 말이 울려나오지만 청년은 정반대의 뜬 기분으로 대꾸했다.

《난 은근히 이 가슴을 조이며 기다렸소.》

동소옥은 차거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한손을 내밀고 요구했다.

《그걸 돌려줘요.》

《뭘 말이요?》

《넥타이핀!》

《기념으로 주고도 되찾는 법이 있소?》

《동무 같은 인간에게서만!》

《보다싶이 난 넥타이를 매지 않고 나왔는데 만날 장소를 대오.》

음흉한 속심은 음흉한 궁리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동소옥은 성격그대로 자기의 행동을 결심하였다.

《좋아요. 룡천강기슭, 정각이 있는 앞에서 오늘 저녁 7시에 만나자요.》

아직은 해가 짧아서 그 시간은 날이 어두워지는 때이고 인적이 드문 곳이였다.

봄은 왔다지만 저녁이 되자 강기슭은 지는해의 마지막잔광과 땅거미에 묻혀있었고 바람까지 불어 무척 쌀쌀했다. 기회를 얻었다고 여긴 청년은 약속한 시간보다 먼저 와서 휘파람을 불어댔다.

동소옥이라는 처녀로 하여 녀자독신자합숙에 눈과 귀를 두고 사는 그였다. 엊저녁에 벌렸다는 오락회에서 외국춤을 추었다는 사실도 이 청년을 마음먹은대로 조종하는 한 미모의 녀자에게 알려졌다. 별치않은 일이지만 남계수라는 사람과 련관된 일이라면 자그마한것도 놓치지 말고 다 알려야 한다는 그 녀자의 모종의 요구에 따른것이였다. 그때 청년에게서 《누님》이라고 불리우는 그 녀자는 몹시 흥미를 가지고 주의깊게 들었으며 좋은 기회로 여기고 잘 리용하라고 일렀다. 사람마다 현상을 보는 시각이 같지 않은만큼 분석하는 결과도 다르다고 하면서 말했다.

《소옥이처럼 잘 생긴 녀자들은 시기의 대상이 되기마련이야. 고분고분하지 않는다는데 울려놓고 얼리는것도 수거던. 무슨 말인지 알겠어?》

독신자합숙의 말많은 녀자들을 골라 찾아서 이리이리하라고 쑤셔댔더니 귀가 번쩍 틔여 치마바람을 일으킬 잡도리다. 녀자들이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신소질을 하면 동소옥의 처지가 어떻게 되겠는가. 《누님》의 말대로 눈물을 짤게고 그때 어루만지면 제가 아무리 코대가 높다 해도 고맙다고 여기고 마음의 문을 열것이다.

달콤한 생각에 잠겨 흔들거리며 서있는 그의 곁으로 세명의 청년이 다가왔다. 체격들이 그쯘한 청년들은 그의 즐거운 기분을 홀지에 날려보냈다.

《그 련애편지를 내놔!》

《이건 무슨 생트집이요?》

《네가 들고다니며 광고하는 넥타이핀 말이야!》

그제야 청년은 자기가 속임수에 빠졌다는것을 깨닫고 상대들을 가늠하는데 수적으로 안되는데다 발달된 체격들에 위압되여 낮추 붙으면서도 이죽거렸다.

《그쯤이야 리해해줘야지. 련애하는 방법은 많다구. 편지는 무슨 편지. 난 편지라는걸 쓰지 않고 련애한다.》

《흰소리치지 말구 내놓기나 해!》

《소옥이를 새롭게 알겠는걸. 그러니 당신들은 그 처녀를 공주님으로 섬기는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셋중에서 우람해보이는 한 청년이 그의 멱살을 잡아 건뜻 들어올렸다.

《때리지 말아요!》

동소옥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공연한 걱정이였다. 잠시 캑캑거리던 바람둥이가 목조임이 좀 풀리자 입을 다시 나풀대기 시작했다.

《밥통들, 속치마 호위병들같으니. 내 너희네 공주년을 그냥 두지 않을테다.…》

동소옥이 나직이 말했다.

《난 내 심장을 찾아야겠어요.》

힘장사청년이 내팽개치듯 내려던지는 바람에 어푸러질번 했다가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바람둥이는 하는수없이 양복주머니에서 넥타이를 내주고말았다. 그것을 받아든 동소옥은 핀을 뽑은 넥타이를 도로 던져주며 경고하듯 말했다.

《한가지만 말해둬요. 더는 처녀들을 욕되게 하지 말아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알기를 바래요. 오늘 이렇게까지 되게 하려고는 생각 안했어요. 미안해요.》

동소옥이 제 동무들과 돌아서자 퍼더버리고 주저앉은 바람둥이의 입에서는 탄성 비슷한것이 새여나왔다.

《소옥인 정말 매력있어. 내 어떻게 잊으리, 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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