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2


남계수는 이번 출장길에 동해지구의 제철제강소들과 기계공장들을 돌아보았다. 그는 자기 기업소의 생산방향을 두고 생각이 많았다. 이 나이에 이르도록 쇠물을 녹이고 부으면서 살아온다고 해야 할 그였지만 보잘것없는 작은 기업을 차리고 벌린 아이들 놀음이나 같았다. 그렇다고 대규모기업소들을 따라갈수는 없었다.

흥성철제일용품공장은 사실상 그의 출자금으로 일어선 기업체로서 발족하여 5년을 넘겼다지만 생산설비들이 락후하고 만들어낸다는 제품이라야 고작해서 규격이 작은 주철관과 콩크리트시공에 쓰이는 철근, 질이 낮은 강철로 만드는 철판들이며 오늘까지도 가마와 절구, 지짐판 같은 투박하고 모양없는 살림도구들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라의 경제장성속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졌으며 천리마운동의 봉화는 온 나라에 타번지고있었다. 남계수의 공장도 해마다 국가계획을 넘쳐 수행하고있다. 공장의 원자재라고 해야 할 파철은 쓰고도 남을 정도로 보장되였다. 사회적으로 파철수집운동을 벌리고있는데다가 전쟁으로 생겨난 페허에서 쓸모있는것이란 파철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자재보장에서 애로가 없고 충분한 로동력이 있는 한 국가에서 주는 계획과제는 어렵지 않게 수행할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상태가 오래동안 지속될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경제의 복구기에 생산장성이 활성화되는것은 보편적원리이지만 개건기를 맞이해야 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것이다. 아무리 작은 기업체라 하여도 발전방향을 옳게 잡아야 한다. 방향을 바로 정해야 옳바른 경영전략을 세울수 있는것이다. 이 문제로 하여 남계수는 고심하고있었다. 현재의 생산을 놓고 만족한다면 장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결심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내미는 기질을 가진 그였지만 이전과는 달리 이것저것 재게 되였다.

새로운 환경이 자신을 지배한다는것을 깨닫기 시작한 남계수다. 개인기업을 할 때처럼 시키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생산자대중이 존재하고있었다.

당위원장이 임명되여온지 2년이 지났지만 남계수는 왜서인지 그와 마주앉으면 몸이 굳어지군 하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제대군인출신치고는 리성적인 측면이 강한 축인데 어찌나 꼬장꼬장한지 바늘로 찌를 자리도 없는 사람처럼 여겨졌고 지배인의 사업에 불만을 표시한 일은 없어도 그렇다고 만족해하지도 않는다는것이 알렸다.

남계수라는 인간에게 있어 자기의 주장을 굽히는것만큼 참기 어려운것은 없는데 그것은 개인기업가로 살아온데서 생겨난 성격이기도 하였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결심하면 돌려세울수 없는 길에 들어서는것이 남계수였다. 인간은 외부세계라는 거울속에 존재하기마련이다. 그러나 남계수는 주관이 너무도 강한 사람이였다. 그는 자기를 알았다. 하기에 남다른 고충을 안고 살기도 하는것이다.

기계공장에서 계획분 설비를 받기 위해 이 부서, 저 부서를 찾아다니던 남계수는 겨울해가 기울어진 뒤에야 일을 다 보고나서 그 공장 정문을 나섰다. 이제는 자기네 공장으로 가야 했다. 아직 시내의 뻐스로선들이 완비되지 못하여 20리길을 걸어야 할 판이다. 립춘이 지났다지만 날씨는 여전히 맵짜고 추웠다. 누비지 않은 곤청색솜저고리차림에 목깃을 되는대로 둘러감은 목도리속에 턱을 묻은 남계수는 녹으면서 얼어 얼음버캐투성이인 길을 따라 걸음을 다그쳤다.

풍을 씌운 승용차 한대가 거친 발동소리를 내며 지나치다가 서서히 멎어서더니 갈린듯 한 청높은 목소리가 울려왔다.

《거 남계수 아닌가?》

길가에서 난데없는 사람이 아이찾듯 하기에 은근히 화가 난 남계수는 눈을 잔뜩 찌프리고 마뜩지 않게 바라보았다.

《아, 옳구만. 불맞은 황소걸음을 하는게 누군가 했더니…》

승용차문이 열리며 거방진 사나이가 내리더니 저벅거리며 다가와 대뜸 두손을 덥석 잡았다.

《이 사람이? 날세. 리건창이야. 하하하.》

《아니, 이게 누군가? 건창이… 옳구만. 그런데 여긴 어떻게…》

남계수는 상대를 알아보자 반가운 친구라 기쁨을 터치였다. 지난해 평양에서 만났던 리건창이다. 지금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고있었다.

《나말인가.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왔다 지금 올라가려던 참이네.》

《흠, 인사가 그럴듯하구만. 왔으면 내 집을 찾는게 옳지 않은가?》

《너무 바쁜 걸음인걸 어쩌겠나. 후날 꼭 들리지.》

《그냥은 안되네.》

남계수가 이쯤 접어들면 어쩌는수가 없다는걸 아는지라 리건창은 난색을 지었다.

《몇시차에 올라가려나?》

《아홉시 반이던가, 평양행이?》

《사람이 시간도 각박하게 맞추며 다니는구만. 어쩐다? 집은 머니 역앞에 있는 아무 식당에나 들려보는수밖에…》

《허허, 됐다는데두. 내 자네의 대접을 받은셈 치지.》

남계수는 그런 사정쯤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제 먼저 승용차에 올라앉았다. 하는수없이 리건창은 하자는대로 따라서고 말았다.

역사가까이에 이른 그들은 승용차를 돌려보내고 식당에 들어갔다. 출장온 리건창의 짐이란 가방 한개뿐이였다. 사실 남계수가 고집을 쓰기는 했지만 정작 식탁우에 오른 음식이란 동태국밥에 이 고장의 특산이라고 해야 할 가재미식혜가 전부였다.

《여긴 평양과 다르네. 고작해서 이게 달세. 어찌겠나. 집도 아니니. 우리 집사람이 알았으면 잘은 나무리겠다.》

흥흥거리며 투정질같은 소리를 하는 남계수를 건너다보며 리건창은 대틀스럽게 웃었다.

《동태국이 보기만 해도 구미가 동하게 하는구만. 식혜는 이 고장 녀자들의 독점지표라구 해야 할거네. 어서 들자구.》

진회색솜저고리를 벗어놓은 리건창이 숟가락을 들기 바쁘게 훌훌 불어대며 요란한 체격처럼 시원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마로는 땀이 흘렀다.

남계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앞에 앉은 리건창처럼 사내 같은 남자는 보지 못한지라 국밥을 뜨며 이따금 정가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몰골기법으로 그린 인물화같은 얼굴이다. 량미간에 꾹 찍어놓은듯 한 검은 눈섭이 누에벌레처럼 꿈틀거린다. 황황 타는 눈빛과 툭 튀여나온 관골사이에 우뚝 솟은 덩실한 코마루, 두툼한 입술이 우물거리는 모양조차 배짱이 센 사내라는게 알린다.

리건창이 남계수의 철공소에 찾아와 일자리를 잡은것은 해방직후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가 창설되고 민주건설의 새 열풍이 세차게 휘몰아치던 시기였다.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온 민족이 단합하여 건국사업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시고 새 조국건설의 방향타를 잡으신분은 민족의 전설적영웅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천출위인의 그 력사적인 개선연설에 한껏 매혹된 남계수는 자신의 넋과 심장을 송두리채 바칠것을 결심하고 떨쳐나섰다. 자기와 같은 개인기업가의 운명에도 서광이 비끼던 격동하는 시절이 아니였던가. 오늘도 자못 생각을 깊이하게 하는 나날이였다.


세상일은 모른다는 말이 그르지도 않았다. 나라가 해방된 환희와 기쁨은 일진광풍에 사라지고 먹장같은 구름이 앞을 막아 한치앞도 바라볼수 없었다. 항구도시의 해안동에 자리를 잡았던 그의 철공소가 하루사이에 녹쓴 쇠붙이 한개까지 말끔히 다 털리우고 지붕만 남았던것이다.

일제가 패망하자 도시를 휩쓴 적산몰수바람이 일본인들과 예속자본가들은 물론 규모가 어지간한 개인기업가들의 자산까지도 가차없이 삼켜버린것이였다. 그속에서 남계수네 철공소마저 적산명부에 오르게 되였고 결국 그처럼 날고뛴다던 그도 홀지에 멍청이로 되여버렸다.

남계수는 울화가 터져오지만 어데다 하소도 할데가 없는지라 굴속같은 철공소의 녹이 쓴 금고를 타고앉아 가슴을 두드리다가는 머리를 쥐여뜯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남계수라는분을 만나자고 왔는데 어디 있는지 모릅니까?》

키낮은 천반때문인지 구부정하고 선 사람은 보위색갈의 옷을 입었다. 요즘은 별별 차림에 저마다 완장을 끼고 나서서 사회의 질서를 지킨다는 무리들만 늘어난다. 그들을 휘동해가지고 다니는 장발의 사나이들은 《쏘베트 만세!》를 곧잘 웨치군 했다.

《나요. 뭘 더 청산할게 있어서 찾아왔소? 아니면 나 같은것도 숙청대상의 명단에라도 올랐소?》

거칠기 이를데없는 대답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나간 사람뒤로 중절모자를 쓴 엄해보이는 얼굴이 나타났다.

《동무가 남계수요?》

억양이 강하고 빠른 말마디가 다그치듯 물었다.

《그렇수다.》

《허- 초면인사가 그럴듯한걸. 그러니 남순진녀사의 동생이 옳겠소?》

어조는 여전하지만 온기가 풍겼고 평양에서 사는 누이의 이름뒤에 녀사라는 부름까지 달아놓으니 어지간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녀학교를 졸업한 뒤 출가하여 지금까지 생사여부나 알며 살아가는 누이다. 헌데 이 사람은 누군가.

남계수가 불안을 지우지 못한채 고개를 궁싯대자 찾아온 사람은 제편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며 말했다.

《그러니 로정빈선생의 처남이 옳구만. 들은 소리엔 여간 밸통사나운 사내가 아니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구려. 허허, 이번 길에 여기에 내려가면 꼭 만나봐달라구 부탁해서 찾아왔는데 손님대접을 이렇게 하겠소?》

매부의 이름까지 부르는통에 남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상대편에서 어깨를 꾹 눌러앉히는데 손탁이 여간 세지 않다는것이 알렸다.

《제 꼴이 하도 민망스러워 그럽니다.》

《왜? 무슨 일이 있었소?》

남계수는 초면인 사람앞에서 어쩔수없이 통탄을 터뜨렸다. 자초지종을 들으며 마주앉은 사람은 이따금 혀를 차는가 하면 참지 못하겠다는듯 무릎을 내려치고는 《저런, 저런…》 하는 소리까지 냈다.

《그까짓 철공소라는건 아깝지 않지만 적산이라니 억울합니다. 일본놈들과 친일분자들의 재산과 같이 취급하면 나 같은 사람은 뭐가 되며 해방된 내 나라에서 어데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

《좋소! 나하구 갑시다.》

남계수가 손님과 철공소마당에 나서니 기다리고있던 젊은 사람 두명이 막아나서며 자기들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만류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대번에 엄한 소리가 울려나왔다.

《안되오! 당장 바로잡아야 할 사태란 말이요. 동무들은 뭘 하는 사람들이요? 적산몰수라는 미명하에 어떤 일들이 빚어지는지 이제야 알겠소. 과연 이것이 김일성장군님의 뜻과 심히 어긋나는 행위라는걸 동무들이 모른단 말이요?》

이렇게 되여 뜻밖에도 철공소를 되찾게 된 남계수는 그날 그 귀인에게서 소중한 말을 전해듣게 되였다.

해방이 된 오늘 개인상공업자들과 수공업자들도 민주의 새 나라 건설에 떨쳐나서야 한다, 평양에 있는 누이는 녀성계몽사업에 한몸 바치고있으며 종교인인 매부까지도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건국사업에 매진하고있다, 말하자면 나라를 사랑하는 각계각층이 하나로 굳게 뭉칠 때라야 부강조국을 하루빨리 일떠세울수 있는것이다.…

헤여질 때 남계수가 용기를 내여 누군가고 물었더니 《나는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받드는 사람이요. 이름은 김책이라고 하니 만날 일이 있으면 어느때든 찾아오오.》 하고는 뜨겁게 손을 잡아주고 떠나갔다.

누군가가 귀속말로 알려주어서야 남계수는 그 귀인이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을 따라 손에 무장을 들고 백두산에서 왜놈들과 싸운 분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로부터 얼마쯤 지나서 철공소일이 자리가 잡히기 시작한 그해 11월초에 일자리를 찾아왔다며 남계수앞에 나타난 사람이 리건창이였다. 첫눈에 마음에 들어 무슨 일을 할줄 아는가고 물으니 대답대신 함마자루를 들고 단쇠를 두드리는데 그 솜씨가 여간 아니였다. 그가 나타난 뒤에 철공소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하도 일군이여서 하루는 집에 데리고 가 저녁을 같이했다. 사람이 생긴것처럼 대틀이였다. 술잔을 밀어놓고 사발들이를 하는데 마신 뒤가 있을것 같지 않았다. 개인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주인앞에 공손한 법인데 리건창은 말이나 행동속에 뼈대가 있어 마구 대할수가 없었다. 그들은 인차 진속을 터놓는 친구가 되여버렸다.

《이것 보오, 계수형. 수지타산만 하지 말구 인민들이 절실히 요구하는걸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요. 지금 백성들의 집집에는 부엌세간들이 온전한게 없단 말이요.》

《이 사람, 건창이. 자넨 내 보기에 좀 이상한 사람이야. 풍구질이나 하구 함마나 휘두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던.》

《그렇소? 내가 누군가 하면 공산당원이구 철공소에서 일하는건 계수형을 도우라는 당조직의 지시를 받았기때문이요.》

리건창이 툭 털어놓고 밝혀서 말해서야 남계수는 고개를 끄덕댔다. 철공소의 로동자들은 하나같이 이 사람을 따랐다. 사람이 사내다와서 그러는가 했지만 듣고보니 단순히 정만 통해서가 아니였던것이다. 공산당은 백성들을 위한 옳바른 정치를 펴고 백성들은 진심으로 그 정치를 받드는 엄연한 현실을 그자신도 실감하고있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로동자들이 철공소의 주인인 자기보다 리건창을 더 좋아하는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고 이상할만큼 허전했다.…

여기까지 생각을 이어가던 남계수는 리건창이 숟가락을 놓는 소리를 듣고나서 눈길을 들었다.

《어, 얼벌벌하게 잘 먹었다.》

리건창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말했다.

《평양에 올라가면 영낙없이 숭어탕이 차례진다.》

남계수가 응수하자 리건창은 《숭어탕이 어딘가. 반디국이면 큰거지. 나두 배워서 임자처럼 타산이 밝아졌단 말일세. 하하하.》 하고 접대원이 놀라도록 요란한 웃음을 터뜨리였다.

밤길에 나선 두사람은 역사쪽으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그 공장에서 일하던 동윤덕이 생각나누만. 잘 있나?》

남계수의 걸음이 멎었다. 느릿느릿 황소걸음을 하며 늘 제 생각에 빠져 산 동윤덕이다.

동윤덕은 개인수공업자로서 해방을 맞았다. 남에게 좀처럼 속을 주지 않는 사람인데다가 타산이 밝은 그는 개인기업을 차려보자던 소망을 이루지 못하여 늘 속앓이를 하였다. 그야말로 침묵속에서 대세를 따라 걸어온 사람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런 사람이 경리형태의 개조가 끝난 후 몸은 비록 조합에 들어왔지만 뼈속까지 인이 박힌 개인리기주의만은 좀처럼 버리지 못한탓에 길을 잘못 든것이다. 사고와 행동이 모순투성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동윤덕은 어쨌든 공화국의 시책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계속 동요했다.

그러다나니 불순한자들과 자주 술집에 모여앉아 술을 마시고 정신이 얼떨떨해진김에 《우린 세월을 잘못 만났네. 가진것을 다 내놓았으니 이젠 남은게 뭔가. 살길이 막힌셈이지.》 하는 잡소리에 귀박죽을 기울이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술집옆에 있던 자그마한 종이공장에 불이 났다. 조사결과 고의적인 방화로 판단되고 술집에 끼리끼리 모여들어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사람들이 의심스럽다는 사회적여론이 나돌면서 동윤덕도 법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게 되였다. 남계수는 동윤덕과 해방전부터 잘 아는 사이고 맺은 정도 있는지라 그의 기술이 아까와 건져보자고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다. 후날 방화범은 적발되여 법적인 처벌을 받았지만 그로 하여 자신을 자책하며 스스로 고향인 허천으로 내려간 동윤덕은 그후 오래전부터 앓던 지병으로 운명하고말았다.

《우린 교훈을 찾아야 하네. 경리형태를 개조했다고 하여 만족해서는 안되지. 동윤덕은 좀해서 남에게 속을 주지 않고 동요하기는 했지만 우리 제도에 등을 돌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되네. 문제는 사람들을 끝까지 바로 교양하지 못했기때문이지. 그래서 인간개조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거네. 그한테 딸이 하나 있었지?》

동윤덕이 죽은 후 남계수는 허천에 내려가 그의 딸을 데려다 지금은 공장에서 같이 일하고있다. 그애의 이름은 동소옥이라고 했다.

《그건 잘한 일이네. 아버지는 우리 제도를 다 리해하지 못하고 갔지만 딸은 새 생활을 찾도록 해야 해. 그게 우리의 본분이자 인간의 도리지.》

남계수는 리건창의 말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뒤에서는 자기 처사에 대해 별의별 소리를 다한다. 동소옥의 나이가 올해 21살이다. 아버지를 닮아서 눈썰미가 빠른데다 머리가 좋아서 가공직장에선 손꼽히는 기능공이다. 게다가 공장대학까지 다니는데 벌써 따라다니는 총각들이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생기기는 말쑥한데 얌전한 말썽꾸러기다. 요즘 어떤 젊은이들은 짬만 생기면 유원지에 모여들어 춤을 춰대는데 동소옥이도 그 놀음에 잘 끼우는것 같은 눈치여서 무슨 일을 칠지 몰라 마음을 놓지 못한다.

《그게 나한텐 애물단지네. 맞춤한 대상이 나서면 시집을 보내야지. 서방말뚝에 비끄러매놓으면 마음을 놓으련만… 허 참.》

《청년들을 잘 교양해야 하네.》

리건창은 국제공산주의운동에 대두한 기회주의가 사회주의건설과 사람들의 사상의식발전에 심각한 부정적후과를 끼치고있는 현실을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면서 그에 오염된 동유럽의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서 젊은 세대들이 안일과 향락만을 추구하는 극단한 개인주의사상과 부르죠아생활풍조인 날라리풍에 빠져 헤여나지 못하고있는데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그 날라리풍에 빠지면 귀중한 젊은이들을 못쓰게 만든다는걸 명심하게.》

《그 말은 천백번 옳은데 그게 어디 쉽소. 그 동윤덕이네 딸애두 어떤 때 가보면 굴레벗은 망아지 한가지우다. 기가 차서…》

남계수는 머리를 흔들어댔다. 제 자식들의 학부형회의는 한번도 가본 일이 없지만 동소옥이 생활하는 녀자독신자합숙은 드물게나마 틈을 내여 찾아보는 그였다.…


남계수는 일요일만은 동소옥이 자기 집에 와서 하루를 보내도록 엄격한 질서를 세워놓았다. 그것은 손우의 오라비벌 되는 아들들도 있고 아직까지 교단에 서있는 안해가 있으니 좋은 통제를 받게 되리라고 생각해서였다. 방임하면 어디로 나돌아칠지 모르는것이였다. 처음엔 곰상곰상 말을 듣는것 같더니 이런 구실, 저런 피탈질로 빠져달아나는게 꼭 칠성고기같아 애를 먹었다.

그날도 일요일이여서 점심참에 집에 들려보니 동소옥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공장대학에서 받은 과제가 있어서 도서관에 가있겠다며 나갔다는 안해의 말에 남계수는 버럭 화를 냈다.

《그 소릴 곧이듣는것도 한심하기 짝이 없소. 도서관에나 앉아있을 앤가 말이요!》

시내에는 아직 도서관이 하나밖에 없었다. 아닐세라 찾아가보니 동소옥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성이 독같이 난 남계수는 기어코 붙들어서 혼쌀을 내리라 마음을 먹고 독신자합숙으로 갔다. 여러번 찾아가 낯을 익힌 합숙의 녀사감이 뚱기적거리며 나타나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지배인동무. 누굴 찾아오셨습니까?》

품위있는 옷차림과 정중한 태도가 남계수로서는 귀찮았지만 대답하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 앨 만나자구요.》

《아, 소옥이! 나의 귀여운 새는 조롱에서 잠들었을겁니다.》

건방져보이는 녀자의 말을 듣지도 않으며 눈길을 쳐드니 2층층계로 내려오던 잠자리같은 처녀 하나가 뭣에 놀랐는지 날개치며 사라지는것이 보였다.

내가 온걸 알려주자고 그럴테지.

남계수가 덮칠듯 한 걸음으로 층계를 오르는데 어데서 나타났는지 팔을 낀 두 처녀가 고개를 쳐들고 앞을 막아서는것이였다.

《여긴 아무나 들어오면 안되는뎁니다.》

《왜냐하면 녀자들의 왕국이거든요, 홀로 사는 녀자들의… 그러니 특별출입증을 보여야만 해요, 결혼합의서가 첨부된… 호호호.》

남계수는 기가 막힌데다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오르는 분기를 겨우 참았다.

《내 너희들이 어디서 일하는지 안다. 너희네 공장 지배인을 만나서 너희들이 대낮에도 합숙안에서 벌거벗고 다닌다고 말해줄테다.》

방정을 떨던 두 처녀가 금시 비명을 지르며 야단을 쳐댔다.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다야. 우리가 지금 입고 선게 보이지 않아요? 무슨 말을 막 하는거예요?》

《몸뚱아리가 아니라 입이 벗었다는 소리다. 버릇이 없는 입방아는 그만 찧고 저리들 비켜라!》

입심이 보통이 아닌 그의 기상에 가위눌린 처녀들이 비실비실 옆으로 게걸음치자 남계수는 곧장 동소옥의 호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눈앞에서 멋들어진 광경이 맞아주었다. 창문쪽에 놓인 원탁을 마주한 두 젊은것들이 머리를 마주 대고 사람이 들어서는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속삭이고있었던것이다.

《정말 그럴듯해요. 어쩌면 그리도 머리가 좋을가, 안슈타인동무. 호호호.》

《우리 조카애를 누이가 윤슈타인이라구 자랑해. 세살인데 부르는 글은 다 쓰거던. 그래서 내가 한번 설날저녁에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드립니다.〉 하고 불러주니 받아쓰겠지. 〈할아버지에게 3배를 드립니다.〉 어때? 우리 조카의 언어대응능력이, 춰줘도 바로 춰줘야 한다는거야.》

《호호- 동문 유모아감각이 뛰여나군요. 나도 동무네 공장에서 일하면 좋겠어.》

《자기것을 사랑해야지.》

《제법 타이르네. 피-》

남계수는 동소옥에게서 어떤 배반당한듯 한 아픔을 맛보며 버럭 큰소리를 냈다.

《소옥아!》

눈이 커진 청년이 영문을 몰라 바라보는데 동소옥은 너무도 놀라 얼굴색이 파랗게 얼어들기까지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했어도 불면 날아날듯 간신히 서있었다.

《너 오늘 어데 있어야 하지?》

남계수의 물음이 엄하게 다시 울리자 청년은 자기가 더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것을 알아차리고 꾸벅 인사를 하고나서 사라졌다.

《밖에다 보초까지 세우고 잘은 논다.》

《큰아버지, 사실은 기계공장에서 일하는 공장대학 동무인데 그한테서 배우느라구…》

《배우는거야 좋지, 집에 너를 배워줄 오빠들도 있고 큰어머니도 있지 않느냐. 어서 가자.》

남계수는 그날 동소옥에게 제 자식들한테도 하지 않은 욕을 무섭게 안겼다.…

다 자란 처녀의 속마음 같은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꾸짖기만 한것이 지금은 속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았다.

《사랑도 엄격해야 할 때가 있는거지. 들어보니 그애가 똑똑한것 같은데 잘 키우게. 그러면 동윤덕이도 고맙게 생각할거네.》

《왜 그런지 힘에 부치구만.》

《하- 남계수답지 않은 한숨소리가 나온다?》

《나자신이 개조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그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걸세. 자신을 수양하는것이 개조하는 과정이지. 사람은 고정불변한 존재가 아니거던. 참, 당위원장이 누구라구?》

리건창의 물음에 남계수는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강치명이라구… 제대군인이네. 전후에 당학교를 졸업한…》

《키가 크구 날파람이 있어보이는 사람 아닌가?》

《어떻게 아나?》

《하- 내가 전후에 56년까지는 여기 시당에서 일하지 않았나.》

《참, 그랬지.》

남계수가 강치명에 대해 더 말하려 하지 않자 리건창은 생각을 더듬었다.

복구건설은 이 도시에서도 힘차게 벌어졌다. 놈들의 함포사격세례를 다른 곳보다 심하게 받은지라 불발탄들이 많아 애를 먹었다. 시당위원회는 인명피해를 내지 않기 위해 각급 당조직들에 지시문을 하달하고 그 집행을 엄격히 보고받았다.

그러던 때 시내복판에서 반톤짜리 불발된 폭탄이 발견되여 리건창은 정신없이 그리로 달려갔다. 하마트면 큰 사고를 저지를번 하였기에 건설기업소의 당위원장을 찾았다.

아직도 병사군복을 벗지 못한 젊은 사람인데 군인다운 절도는 있었다. 왜 시당에서 내려보낸 지시문대로 일하지 않는가고 추궁을 하니 자기는 그대로 전달도 했으며 로동안전원들에게 해설사업도 했다는것이였다.

《동문 어느 병종에서 복무했소?》

《옛, 45사 무전수로…》

《당일군은 통신병이 아니란 말이요. 전달자가 아니라 책임져야 하는 일군이라는것을 명심하오!》

그날 리건창에게서 호된 지적을 받은 사람이 바로 강치명이였다.…

《여보게, 계수. 이젠 헤여지자구. 집까지 가자면 갈길이 먼데…》

《그러지. 아무래도 헤여져야 할테니까. 허허.》

두사람은 손을 맞잡으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남계수는 이 순간 리건창같은 사람이 곁에 있어주면 얼마나 의지가 될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복중의 복이 사람복이라는 말을 새겨보며 그는 리건창이 사라진 역사를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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