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8 장


41


서울은 반항의 도시로 변하였다. 박정희도당의 《3선개헌》책동을 반대하는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투쟁은 놈들의 전쟁준비를 반대하고 매판과 각종 부패를 반대하는 투쟁에로 폭을 넓혀나갔다.

공포에 질린 미제와 박정희도당은 모든 탄압기구들을 발동하여 저항하였다. 거리에선 매일같이 군경들과 격노한 시위군중의 격전이 벌어졌다. 방독면을 쓴 중무장한 경찰들이 최루탄연기로 거리를 마비시키고 반항자들의 피를 밟으며 공세를 펴는가 하면 돌주먹과 붉은 얼굴의 노한 바다가 놈들을 짓몰아 삼켜버리기도 했다.

동혁에게는 이 모든 투쟁이 자기의 호흡이고 노래이고 생활이였다. 급한 일을 처리한 그는 지열사의 자기 방에 들려 함영초와 함께 잡지 다음호의 편집계획을 의논하였다.

영초는 책상우에 펴놓은, 편집중에 있는 잡지 목차우에 두세개의 원고를 소리나게 얹으며 말했다.

《넣읍시다. 박명찬선생의 이 〈정처없는 통치〉와 김성우의 서사시 〈김주렬의 부활〉은 호소력이 매우 강한 문제작들인데 이걸 빼다니? 더구나 이 론문에서 박선생은 자기의 반파쑈사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전개했는데 그분을 고무하는 의미에서도…》

실눈을 짓고 의욕적인 영초의 얼굴을 쳐다보던 동혁은 손바닥으로 원고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정세가 이렇게 격동적인 때엔 놈들이 모든 글줄을 현미경으로 뒤져본다는걸 알아야지. 글쎄 요행 무사히 넘어갈수도 있겠지. 그러나 단언하네만 얼마후엔 이걸 가지고 험하게 걸고들면서 정간이다, 페간이다 소래기를 지를건 뻔하거던. 나도 욕심 같아선 폭탄같은 글들만 싣고싶네. 그렇지만 요즘 다른 잡지들이 화를 당한것도 참고해야 할걸세. 멀리 내다보면서 큰걸 노려야 할것 아닌가. 이런 각도에서 한번 더 추고를 시키자는거니까.》

함영초는 수긍은 하면서도 마뜩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동혁은 벌써 다른 문제를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자네도 생각하고있데만 박명찬선생을 우리 소조에 빨리 받는게 어떤가? 진수도 그렇고…》

《생각하고있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소조란 민족자주사상을 비롯하여 진보적이며 선진적인 사상들을 연구보급하는 모임이였다.

함영초가 방에서 나간 후 동혁은 책상서랍에서 마른 빵을 꺼내놓고 맹물로 목을 추기면서 급하게 먹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시반이다. 이제야 먹는 점심이였다. 그는 볼이 미여지게 빵을 먹으면서 얄팍한 자료문건을 열심히 읽었다.

이러고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네에, 들어오시오.》

문서에서 눈을 떼지 않고 즐거운 목소리로 느리게 대답한 동혁은 문이 열리는 순간 긴장한 얼굴로 일변하며 엉거주춤이 일어섰다. 찾아온것은 첫눈에도 그 어떤 울분과 고민에 지친듯 한 진수였다. 그의 축 처진 어깨며 할쑥하게 여윈 얼굴, 피발이 선 풀어진 눈을 본 동혁은 먹던것을 치우고 급히 의자를 권하였다.

《용서하게. 장지에도 못 가보고… 처한테서 다 들었네만…》

진수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두르며 동혁의 말을 막았다.

《동생얘긴 제발 그만두게. 더구나 날 위안하려들지 말게. 난 전혀 다른 문제로 왔어.》

둘은 마주앉았다. 진수는 숯불같은 눈으로 싸움이나 걸것처럼 동혁을 이윽토록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틀어쥔 주먹으로 책상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하소연하듯 말했다.

《날 좀 도와주게! 이제 새롭게, 새롭게 사는 방도가 없을가? 죽을 지경이네. 가슴이 막 골풀이치고 피가 바작바작 마르네. 나는 내가 미워서 견딜수 없네. 이 심정을 알겠나?…》

동혁은 알릴듯말듯 머리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진수는 모로 돌아앉아 머리를 떨구었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반항해서야… 기껏 한다는게 군중투쟁을 뒤켠에서 응원이나 하고, 그나마도 또 탄압당할걸세. 그러면 또 개돼지들에게 란장을 맞고 실패의 교훈이나 찾고…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 그래, 자네에게도 아무런 방도가 없나? 없어, 엉?》

거듭되는 수난으로 무서운 고통을 겪어온 진수는 동생까지 파멸당하게 되자 더는 자신을 걷잡을길이 없었던것이다. 모든 권력자, 범죄자들을 단매에 쳐부시고싶건만 그 열망을 이룰 길 없는 자신의 무능에 참을길 없었다. 옳바른 전략이 없이 정의감 하나로만 싸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어쩔수없이 맞다드는 극한점이였다.

진수의 마음속에 폭풍우가 휘몰아치고있는것을 감득한 동혁은 이제는 그를 새로운 단계의 투쟁에로 이끌어줄 때가 왔다는것을 알았다.

《승리의 방도가 없느냐구? 왜 없어. 투사들의 대오를 튼튼히 꾸리고 군중투쟁을 더 크게 벌려 파쑈통치를 뒤집어엎는 본격적인 변혁을 일으켜야 하네.》

《그래, 그 다음은 뭔가? 박정희일당을 쓸어낸다고 하자, 그 다음은 어쩌자는건가? 새로운 박정희나 장면따위가 또 나오지 않는다는 담보는 있나? 난 앞이 보이질 않네. 정말 미칠 지경일세.…》

동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천천히 오락가락하다가 서가에 한손을 짚고 진수를 돌아보았는데 그 눈에는 긴장된 사색과 판단을 거친 결심의 빛이 불처럼 내비쳤다. 그는 급히 자리로 돌아와 책상우에 놓인 벗의 떨리는 주먹을 그러쥐며 말했다.

《우리가 갈길은 하나일세. 이 땅을 강점하고있는 미제국주의를 축출하고 그 식민지통치체제를 뒤집은 다음 북의 형제들과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을 이루는걸세. 이것은 시대의 의지이고 요구일세!》

동혁을 바라보는 진수의 놀란 눈에 의혹의 그늘이 점점 짙게 서려들었다.

《그러니까 자넨?》

《그런건 묻지 말게. 다만 내가 말하고싶은건 이 길이야말로 겨레를 구원하고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릴수 있는 길이라는걸세.》

《?…》

동혁은 해빛이 비쳐드는 높은 창을 향해 돌아서고 진수는 두팔굽을 무릎에 세워짚고 방바닥에 머리를 떨군채 움직일줄을 몰랐다. 숨가쁜 침묵속에서 오분이 넘도록 그런 자세로 버티던 그들은 동혁의 제의로 밖에 나가기로 했다.

거리에 나가 택시를 탄 그들은 얼마후에는 도심지대와 멀리 떨어져있는 한강변에서 내려 료금을 치르고 차를 돌려보냈다. 거기서 남들의 주의를 끌지 않을 맞춤한 곳을 찾아 뚝섬쪽으로 강뚝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저녁해빛을 받아 눈부시게 번들거리는 한강의 용용한 흐름, 대안의 강뚝너머로 비쳐보이는 높고낮은 집들, 푸른 띠를 펼친듯 한 숲, 강기슭에 간혹 보이는 낚시질군들, 상쾌한 바람속에 서린 부드러운 고요… 어데를 보나 홀가분한 해방감을 자아내는 풍경이였으나 두사람의 긴장된 생각은 풀릴줄 몰랐다.

《자넨 어떤 사회가 리상사회라고 생각하나?》

먼바다쪽을 바라보면서 동혁이 부드럽게 묻고는 스스로 말했다.

《착취자, 압제자가 없는것은 물론 모든 사람이 힘든 로동과 낡은 사상에서 해방된 사회, 모두가 고도의 과학과 문화를 호흡하는 사회, 모두가 풍족을 누리고 로동이 노래처럼 즐겁고 모두의 마음이 꽃처럼 아름다운 사회일세!》

《아름다운 리상이지. 그거야 누가 반대하겠나.》

…동혁의 목소리는 잔잔하였다. 진수는 팔베개를 베고 풀밭에 누워 저녁해빛이 성글어진 하늘에 서녘으로 부채살처럼 쏠린 구름발들이 부드러운 감빛으로 물들어가는것을 실눈을 짓고 쳐다보고있었다.

동혁은 마치도 하늘중간에 가득히 일어서는 장엄한 새 세계를 바라보는것만 같았다.

그의 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해있던 진수도 벗의 열정과 환희에 휘말려 급히 일어나 앉았다. 동혁은 령감에 달아오른 시인처럼 말했다.

《여보게, 이북에는 착취하는 사람도, 착취당하는 사람도 없고 누구나 먹고 입고 일할 권리, 무료로 배우고 휴식하고 병을 치료받을 권리를 마음껏 누리고있다더군. 그리고 누구나 나라의 모든 재부를 제것처럼 사랑하고 즐기고 마음껏 창조할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받고 실제로 행사하고있다고 하네.》

《무엇으로 그걸 증명할수 있나, 무엇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던 진수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동혁은 빙그레 웃었다.

《뭐, 많은 증거를 댈것도 없지. 떠오르는대로 두세가지 물어볼가?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왜 한사코 북에 갔겠나 생각해보게. 고향이 이남인 사람들도 거기로 갔어. 일본에서 조상의 뼈까지 파가지고 갔단 말일세. 라지오에서 못 들었나. 귀국동포들과 이북사람들이 청진부두에서 부둥켜안고 웨치던 그 만세소리, 환호의 절정에서 터치던 그 울음소리를…

또 다른 실례를 들가? 자네나 나나 다 흥분해서 밤잠도 못 잤던 〈푸에블로〉호사건때는 또 어떠했나. 그 이북사람들이 〈대아메리카〉를 후려갈겨 물리친 위력이 어디에 있겠는가? 매 개인의 리상이 국가제도와 일치하는데서 온 근본적인 단결에 있는것이 아니겠나!

이북의 예술단이 어찌하여 인류문화의 중심이라 뽐내던 저 로마나 빠리, 런던공연에서 그 사회를 온통 환희와 열광속에 몰아넣을수 있었겠나. 온 세계가 〈예술의 극락세계〉, 〈인류문화의 꽃〉이라고 찬양하는 평양의 그 예술이 이북사람들이 도달한 고도의 정신생활을 반영하는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 예술이 과연 그 사회의 거울이 아니고 사람마다 누리는 자유와 개성의 산물이 아니란 말인가?…》

동혁은 진수가 자기의 말에 취하여 열렬한 말로 동감을 표시할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풀밭에 엎드려있는 진수는 적수의 강타에 쓰러진 권투선수처럼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이따금 끙끙 신음하였다. 그러더니 몸을 추켜 급히 일어나 앉아 피발이 선 눈으로 동혁을 지켜보았다.

《훌륭하다! 그런데 그게 모두 사실이란 말인가?…》

진수는 이렇게 반문했으나 동혁의 말이 모두 진실일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믿음으로 그의 가슴은 설레였다. 웃으면서 목숨을 바칠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부르고있다는 환희로 하여 뛰쳐일어나 목청껏 만세라도 부르고싶었다. 그러나 그 환희가 격렬할수록 그의 마음에서는 그 진실의 한쪼각이라도 제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갈망이 정비례하여 타올랐다. 그것은 오랜 세월 무수한 인간들이 입으로, 출판물로 끝없이 뿜어댄 반공사상에 오염되고 침식당한데서 온 관습적인 의문에서 생긴것이였다.

그들은 뚝길로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던중에 동혁은 문득 진수의 앞을 막아서더니 사랑을 고백하려는 련인처럼 뜨거운 눈길로 벗을 뜯어보며 다가들었다.

《야, 너 알겠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온갖 외세를 배격하고 자기자신과 민족의 운명의 주인이 되여 자주와 민주를 실현하고 북녘겨레들과 힘을 합쳐 5천만의 숙원인 통일을 이룩해가는 길이야! 우리가 가치있게 크게 사는 길은 이 길뿐이다! 영원히 살기 위해선 이 길에서 죽어야 한다! 자신있어?》

동혁은 무섭게 다가들었다. 진수는 그를 포옹하고싶은 갈망을 가까스로 누르며 입술을 떨며 뒤걸음쳤다.

이 더러운 세상을 짓부시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치겠다. 나를 이끌어달라!

이 생각은 심장을 턱밑으로 치받아올리고 혀끝은 불로 지지는듯 했으나 그는 여전히 입술만 떨며 뒤걸음쳤다. 동혁의 주장이 너무도 놀랍고 급작스럽고 위압적이여서 미처 결심을 내릴수가 없었던것이다.

진수는 당황한 가운데서도 동혁의 주장이 옳을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로서는 생각을 정돈해보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실제로 검증해보지 못한채 동혁이 주장하는 일에 뛰여든다는것이 너무도 모험일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 말을 믿는다! 그렇지만 생각해봐라, 너에겐 그렇게도 명백하지만 나에겐 아직 생소하다는걸.

나에게 그 진리의 한 부분이라도 확인해볼수 있는 그 어떤 기회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나?…》

진수가 젖어오른 눈을 슴벅거리며 이렇게 대답하자 동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빛나는 미소와 함께 소리쳤다.

《좋다, 그렇다면 빠른 길이 있다! 지난 전쟁때에 고향에 도망쳐갔다가 거기서 인민군대를 만난 일 생각나나?》

《그거야 물론. 그렇지만 그때야 너무 어려서 세상물정을 알았나?》

《그러니 하는 말이야. 고향에 내려가서 로인들을 만나보게! 그때 이북에서 나온 사람들이 그 어려운 전쟁속에서도 어떤 정치를 폈나하는걸 직접 들어보게나!》

동혁이 이렇게 말하자 진수는 그 어떤 커다란것을 발견한것처럼 손을 들어 호기있게 공기를 베며 소리쳤다.

《됐어! 신문사에 들려 적당히 둘러대고 오늘 밤차로 당장 떠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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