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4 장


22


창덕사부지에 살던 사람들은 날강도를 처벌하며 자기들에게 당장 살길을 마련해내라는 요구서를 가지고 곧바로 청와대로 행진했다.

덕수궁 남쪽골목으로부터 세종로에 들어선 그들은 행인들로 붐비는 인도를 따라 북쪽으로 행진했다. 남녀로소 이백명 남짓했다. 령하 7℃를 오르내리는 한지에 부서진 판자쪼각들로 어설픈 막을 치고 기나긴 하루밤을 이를 갈며 새운 사람들이였다. 이제는 그 어떤 새로운 재난도 두렵지 않은 그들은 저희들을 직접 짓밟은 자본가 민규석이나 시청관리들을 찾기에 앞서 아무래도 그놈들을 비호하고 부추기는것으로 보이는 박정희나 하다못해 청와대것들이라도 붙잡고 마구 밸풀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미칠 지경에 이른것이다.

몽둥이나 돌멩이 하나도 들지 않은 그들은 행렬도 짓지 않은 침울하고 무질서한 군중이였다. 지팽이를 짚은 허리굽은 로인들이 있는가 하면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걷는 녀인들도 있었다. 새까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여위고 머리가 까스스한것이 똑 물에서 건져낸 새처럼 처량했다.

일반행인들은 설음과 울분이 어린 그들의 얼굴이며 어지러운 옷차림들을 보고서는 말없는 동정을 보내기도 하고 혹자는 코를 싸쥐고 멀찍이 피하기도 했다. 순경들은 숲속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은 사냥개같은 얼굴이였다. 조개턱에 얼굴이 얼금얼금한 순경이 몇사람에게 집적거리더니 그중에 섞여있는 김용기의 팔을 곤봉으로 툭툭 건드리며 또 물었다.

《왜 대답들이 없어? 이건 뭐 데몬가, 엉?》

용기는 킁 하고 코를 불뿐 대답이 없다. 그러자 앞에서 걸어가던 키큰 한무석이 구레나룻수염이 시꺼먼 사자상을 찡그리며 순경을 노려보았다.

《데모가 뭐요, 북악산에 진달래가 피였다기에… 꽃놀이를 가는 길이요.》

그리고는 눈이 올롱해서 쳐다보는 순경의 얼굴에 요란한 재채기를 퍼부었다.

난민들은 말없이 갔다. 오만한 부자들의 창문과 관청의 의심많은 시선앞을 지나 차창마다에 호화족들의 들뜬 얼굴이 얼른거리는 자동차들의 흐름을 거슬러 그들은 갔다. 매국노들이 저들을 민족의 옹호자로 가장하느라고 세운 옛 애국명장들의 동상앞으로 그들이 지나갈 때 치욕속에 서있는 그 동상들과 이들 난민들은 묘한 대조를 이루어 세계에 다시없을 정치적풍자화를 빚어냈다.

4.19나 6.3과 같은 항쟁때엔 걸음걸음 군경들과 피의 격전을 벌리면서 힘겹게 밀고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던 세종로의 북단까지 자그마한 구름그림자처럼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조용히 전진한 그들은 《중앙청》왼쪽으로 돌아 계속 올라갔다. 여기서 그들의 지휘자는 앞장에 힘개나 씀직한 청장년들을 내세우는 등으로 처량해보이던 군중의 모습을 전투적으로 일신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이제까지 그들에게서 아무러한 위험성도 느끼지 않고 적당히 감시하면서 따라오던 몇명의 경찰들이 대번에 불길한 징조를 느끼며 앞으로 뛰여나가 길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다급한 호각소리가 련달아 울리고 싱갱이가 벌어졌다. 그러자 효자동근방의 파출소와 그 아근에 있던 군경들이 자동차며 모터찌클을 타고 우르르 달려나왔다. 놈들은 차에서 뛰여내리자바람으로 곤봉과 총탁으로 맨손인 수난자들을 마구 때리며 짓몰아댔다. 수난자들은 비록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지칠대로 지친 허기진 몸들인데다 반은 로인과 아녀자들이여서 싸움이 될리 없었다. 군경들은 미친 말떼가 삼밭을 요정내듯 했다. 부인이건 아이들이건 가림없이 총탁으로 까고 구두발로 마구 짓밟았다. 그러나 이미 살길도 없고 죽는것도 무섭지 않은 수난자들은 주먹으로, 이발로 적을 치고 물어뜯었고 피투성이로 쓰러지면서도 웨쳐댔다.

《이 백정놈들아, 천벌이 내린다!》

《박정희를 불러내라! 담판하자! 우리를 살려내고 날강도를 처벌하라!》

《우리도 사람이다. 집을 내라!》

이마가 터진 한 녀인은 입안으로 흘러드는 피를 경찰의 낯판대기에 콱 뱉으며 통곡과 함께 절규했다.

《이 짐승들아, 빨리 죽여다오! 아이고! 나는 죽겠다아!…》

경찰은 곤봉으로 그 녀인을 쳐서 끝내 쓰러뜨리더니 팔을 쥐고 호송차로 질질 끌고 갔다.

사방에서 모여든 구경군들은 군경들의 끔찍한 만행에 치를 떨며 수난자들의 편에 가담하여 싸움에 뛰여들었다.

악전고투하던 오태익은 사람들의 희생을 막아보려고 해서인지 웃주머니에서 요구서를 꺼내여 흔들어대면서 누구에게라 없이 목청껏 소리쳤다.

《요구서를 내겠다! 〈대통령〉을 불러오너라!》

그는 군중에게 다시 소리쳤다.

《판자촌을 뒤엎은 놈들을 처단하라! 우리는 그놈들을 재판에 걸어…》

오태익은 말을 끝낼수 없었다. 열정에 달아올라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 서있었던 그의 입에서는 불같은 말이 쏟아질번 했으나 뒤켠에서 달려든 경찰의 곤봉에 머리를 맞고 비칠거리다가 푹 쓰러졌다. 그러나 경찰도 무사할수 없었다. 김용기가 달려들어 돌주먹으로 놈의 면상을 부서져라 후려갈겼다.

한켠에선 한무석이 여러명의 경찰들과 란투를 벌리고있었다. 한놈을 쳐서 쓰러뜨린 그는 구두발로 놈의 가슴을 쾅쾅 짓밟았다. 그러나 그 역시 동시에 두개의 총탁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호송차로 끌려갔다.

요구서를 내려고 나선 판자촌사람들의 조용한 행진의 결말은 바로 이러했다. 맨손에 요구서를 들고 파쑈도당에게 찾아간다는것은 사나운 맹수의 굴에 찾아가서 무엇을 설복하려는 행위처럼 어리석은것이였다. 전투적인 단결, 그것이 없이는 투쟁에서 실패가 그림자처럼 따르기마련이였다. 그러나 이 단순한 교훈을 찾기 위하여 판자촌사람들은 너무도 비싼 값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숱한 사람들이 체포되여 즉결재판에 회부되여 《대통령》을 《모욕》했다는 루명을 쓰고 모진 시달림을 당하는것과 함께 각각 5천원의 벌금형을 받게 되였고 그들의 몇배나 되는 사람들은 심한 부상을 입었던것이다.


수난자들이 청와대로 행진한 이 사건은 민규석을 불안속에 몰아넣었다.

사장실의 깊숙한 안락의자에 웅크리고 앉은 민규석은 여러종의 조간신문을 뒤적거리더니 현미경으로 아메바를 들여다보듯 정진수의 분노에 찬 신문기사의 매 글줄을 곰곰히 뜯어보고있었다. 기사의 내용은 비록 불로 지지는것처럼 자극적인것이였으나 자본이라는 위력한 요새를 가진 그는 이런 정도의 도전은 심심풀이도 안된다는듯 느물느물 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읽어내려갈수록 프랑스의 고급화장품으로 애써 닥달질한 번들거리는 이마며 뺨에선 밭고랑같은 주름살이 일어번졌고 술집계집들이 《사랑의 창문》이라고 찬미하던 눈은 개구리를 노리는 뱀의 눈으로 변해갔다.

《이놈의 새끼를 그저!…》

그는 바닥에 깔린 주단무늬에 시선을 떨군채 몇번이나 이를 갈았다.

그럴 때 녀서기가 놀란 얼굴로 뛰여들어오며 알렸다.

《사장님, 큰일났어요. 한경세리사님이 그러시는데 그 창덕사사람들이 청와대밑에서 경찰들과 란투중이래요!》

민규석은 궁둥이밑에서 시한탄이라도 튄듯 후닥닥 튀여일어나 녀서기를 삼킬듯 노려보며 소리쳤다.

《아니 뭐가 으쩌구으째? 청와대밑이 어데라구 그놈들이 거기까지 갔단 말이냐?》

녀서기가 사라지자 민규석은 금시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 자그마한 불길이 회사의 로동자들이나 사회의 위험세력에게 옮겨붙는다면 사태는 어떻게 될것인가. 급작스레 4.19와 같은 폭풍우가 터질수도 있는것이다.

출입문이 열리더니 씨름군같은 체구에 얼굴이 시뻘건 한경세리사가 헤염치는듯 한 걸음으로 급히 들어오며 말했다.

《들었어요? 놈들이 제 죽을줄 모르고 괜히…》

《그만두시오. 다 알고있소.》

민규석은 짜증난듯 손을 내젓고는 라이터로 신문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게 문제요. 송건호의 그 사위란 놈이 어떤 망나닌지 한사코 폭동을 선동하는 판인데…》

장의자에 틀지게 앉은 한경세는 중역들속에서 책략과 정력으로 두드러진 존재인 송건호를 얄미운 적수로 노려오던터여서 이 기회에 그를 결정적으로 꺼꾸러뜨리려고 안달아하였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합데까. 송건호를 베여던져야 한다니까요. 사위놈을 시켜서는 회사를 갈겨대고 우리앞에 나타나서는 너스레를 떨며 요술을 피우거든요. 별것 없어요. 이렇게 된바엔 된서리를 내려야지.》

《당장 해임해버려야겠어.》

민규석도 뿔어나서 소리쳤다.

《중역회의를 열고 그놈의 망나니짓을 고발하는거야. 이제까지 그자가 저질러온 크고작은 실책들을 모조리 까밝히고 제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가난뱅이들을 추동하여 폭동까지 일으키는 놈이라고 막 매닥질해놓아야지.》

《그렇게만 해놓으면 제놈이 어데 가서 붙어먹겠어. 고아로 될수밖에…》

쓰겁게 웃는것으로 한경세의 협조정신을 평가해준 민규석은 침울히 방안을 오락가락했다.

이때 문이 열리더니 랑패감에 풀이 죽은 송건호가 방황하는 어두운 눈길로 두사람을 살펴보며 조용히 방안에 들어섰다. 사장과 한경세는 매섭게 한번 돌아보고는 경멸적으로 외면해버렸다. 이전에는 가지가지 계략과 활동성과를 가지고 아무 자리에나 턱 앉으면 어울리던 송건호는 랭혹한 분위기에 기가 질려 별치않은 가죽의자에 앉으면서도 렴치없는 행동을 하는것처럼 조심스러워하였다.

《참 면목이 없게 됐습니다. 사위가 원쑤라니까요. 그렇게 몇번이나 구슬리고 경고를 해놨는데도…》

송건호가 담배를 피워물고 사죄삼아 이렇게 중얼거리자 민규석이 창문을 향해 선채 랭랭하게 물었다.

《전번에 트럭부속을 ㅈ회사에 넘기는 일을 망친것도 고의로 한짓이 아니오?》

건호는 뜻밖이여서 눈이 둥그래졌다. 그는 얼마전에 민규석과 짜고 이마무라회사에서 들여온 화물자동차의 발동기를 비롯한 몇가지 부속품을 계통이 다른 ㅈ회사에 비싸게 팔아넘기는 일을 맡아 처리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거래에서 손실을 본 ㅈ회사가 민규석의 부정행위를 어느 신문에까지 고발하면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쪽에서는 다른 부정내막까지 련쇄적으로 들장이 날가봐 막대한 돈을 뿌리며 긴급대책을 세우는 소동을 피웠던것이다. 헌데 민규석은 제가 주관했던 그 일이 망쳐진 책임을 송건호에게 전가시키려고드는것이였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송건호가 허리를 펴고 억울해하였다.

《그거야 중역회의에서도 밝혀진것처럼 시작부터 잘못된 일이 아닙니까.》

《모를 소리요. 당신의 그 기질에 무슨 작간을 피웠는지 알게 뭐요.》

창문을 향해 섰던 민규석이 홱 돌아서며 이렇게 소리치자 이번에는 한경세가 걸고들었다.

《창덕사사건도 그렇지. 그 일이야 극비밀리에 빈틈없이 꾸며진건데 어떻게 되여 당신의 사위한테 하나하나 그렇게까지 드러날수 있었겠소.》

그는 두팔을 쩍 벌리며 씨벌였다.

《자, 이러니 누가 당신을 믿겠소?》

송건호는 너무도 화가 나서 주먹으로 제 무릎을 치며 항의했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이 일이야 직접 맡은 당신이 우둔하게 처리해서 소동이 난게 아니오? 나를 뭘로 보고…》

오만상을 찌프리고 언쟁하는 두사람을 돌아보던 민규석이 버럭 노성을 질렀다.

《듣기 싫소! 다 헛된 요술이요. 송건호씨, 나에게는 더는 당신이 필요치 않소. 제 사위 하나 틀어쥐지 못하는 당신을 어떻게 믿고 일하겠소? 더 말하고싶지도 않소. 당신은 그사이 저축도 적지 않을테니까 다른 방도를 찾아보는게 좋겠소. 다음번 모임에서 어디 봅시다.》

송건호는 낯빛이 캄캄해졌다. 그는 결정적으로 항의해야겠다고 느끼면서도 분노와 절망에 지쳐서 다만 불빛이 이글거리는듯 한 눈길로 자기의 운명을 틀어쥐고있는 민규석을 덤덤히 노려볼뿐이였다.

한편 민규석과 송건호의 분노를 산 진수는 신문사 편집국장실에서 열린 편집위원회에 불려들어가서 벌써 한시간이나 모욕적인 추궁을 받고있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신문사는 진수가 발표한 두편의 글때문에 전례없는 난국에 빠지고만것이다. 출근하자바람으로 공보부 장관에게 불리워간 위달종편집국장은 족제비굴에 끌려온 닭처럼 짓몰렸다. 장관은 특히 진수의 론평기사인 《창덕사사건을 통해 본 상층의 범죄생리》에 대해서는 《계급투쟁을 선동한 엄중한 정치적도발》이라고 하면서 대단히 화를 냈다.

모멸적으로 쪼프린 실눈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그는 《고명》한 편집국장을 국민학교 학생으로 아는지 기사에 줄을 친 부분을 소리내여 읽으라고 하고는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새라새로운 모진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처량해보일 지경으로 체소한 위달종의 만화적인 모습을 깐깐히 뜯어보더니 그의 얼굴에 담배연기를 뿜으며 조롱하였다.

《당신은 작아서 고추알인줄 알았더니 커다란 철부지군그래.》

위달종은 수치심과 분노로 몸이 졸아드는듯 한 순간을 체험했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성큼한 키에 얼굴이 희멀건 장관은 손수 부은 차잔을 위씨앞에 밀어놓더니 신문사 사장에게는 이미 알렸다면서 청와대비서실과 정보부의 지시로 당분간 신문을 정간한다는 놀라운 지령을 조용히 떨궜다. 차잔을 든 달종의 손이 덜덜 떨렸다.

풀이 죽어 신문사로 돌아온 위달종은 신문사의 경영주측과 사태를 의논하려고 사장실에 들렸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방안에는 늙은 사장을 비롯하여 신문사의 리사들이 모두 모여있었는데 이미 정간처분에 대한 지령을 받은 그들은 상가에 모인 조객들처럼 침울했다. 수습책을 마련해보려는것이였으나 아무 궁리도 나지 않아 줄담배들만 태우고있었다.

첫눈에 방안분위기가 심한 저기압인것을 느낀 편집국장은 모두의 노기어린 싸늘한 눈총을 맞으며 사장한테로 다가가서 공보부에서 당한 일을 간단히나마 알리려고 했으나 번대머리인 늙은 사장은 거울같이 알른거리는 커다란 책상앞에 앉아 탄력없이 주글주글한 자기의 뺨을 습관적으로 쥐여비틀던 손을 맥없이 내저으며 무겁게 두덜거렸다.

《다 알고있소. 가보시오. 당신을 믿은 내가 바보였소. …》

이런 일을 겪고 자기의 방에 돌아와서 급히 편집위원회를 소집한 위달종은 평소의 편협한 사고방식과 고집벽에 신경질까지 가미되여서 사상범을 다루는 재판장처럼 행동했다. 상좌에 틀고앉은 그는 좌우쏘파에 주런이 앉은 론설위원들이며 부장들, 편집원들을 둘러보더니 출입문쪽 끝자리에 앉아있는 진수에게 피로한 시선을 멈추고 푸념을 계속했다.

《문제는 왜 신문이 망쳐질 때까지 정진수의 엄중한 사고방식이 묵과되여왔는가 하는거요. 다른 신문들을 보시오. 다 짤막한 객관보도로 균형을 맞췄는데 유독 우리 신문만은 창덕사사건을 지레대로 삼아 무얼 뒤집어엎어버리려고 덤벼대다가 되려 제가 뒤집혀졌으니 이게 무슨 꼬락서닌가 말이요. 어디 진수씨, 다시 좀 말해봐요. 그 배짱이 어디서 나왔소?》

우울하고 불쾌하기만 한 진수는 노트의 여백에 꽃이며 새, 녀자의 얼굴 같은것을 그리다가 얼굴을 들었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자기의 기사는 비록 쓰거운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의 진실한 반영이며 사회생활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원하는 자기는 량심의 충동으로 그 진실을 강조했을뿐이라고 몇번이나 자신을 변호한 진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국장과 몇몇 사람은 《계급투쟁을 선동》한것도 량심인가고 다우쳐 따지고들었다. 이 운명적인 추궁앞에 진수는 대답을 할수 없었다. 국장은 바로 이 대답을 다시 강요하고있는것이다.

엉거주춤이 일어선 진수는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량심을 부정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 시각에도 숱한 수난자들이 집도 없이 얼어붙은 한지에서 울부짖고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사람인 이상 그들의 비극에 박수를 보낼수야 없지 않습니까.》

국장의 충복으로서 부서에서 진수를 깎아내리는데 열의를 내군 하는 윤만부장이 벌컥 화를 냈다.

《무슨 소릴 하오? 그 사람들이 청와대옆에까지 몰려가서 란동을 부리다가 즉결재판정에 끌려갔단 말이요.》

국장이 다시 받았다.

《끝끝내 반성 안하겠소? 당신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섰다는것도 모르겠소?》

진수는 맵짜게 반문했다.

《국장선생은 내가 반성하도록 도와줄 용의는 있습니까? 그렇다면 문제의 그 〈계급투쟁〉이란 무엇인지, 그것이 왜 나쁜것인지 하는걸 잠간 설명해줄수는 없겠습니까?》

달아오른 위달종은 앉은자리에서 오똘오똘하며 고함을 질렀다.

《무엇이 어쩌구어째?》

그때까지 영문잡지를 뒤적거리면서 이따금 쌍방을 누그러뜨리는체 하면서도 상대의 론리를 몇마디씩의 경구로 돋궈주면서 붙는 불에 슬슬 키질을 하던 량성도가 안경너머로 국장을 살피더니 껄껄 웃으면서 빈정거렸다.

《또 저런다니. 고혈압이 터지겠어.》

그리고는 진수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돌린채 텅 빈 웃음을 그냥 끌었다.

부국장 최재명이 피우던 담배를 끄며 끼여들었다.

《한가지 밝혀둡시다. 모두들 평가하고있는것처럼 진수씨의 기사는 진실을 솔직하게, 여실히 밝혀낸 힘있는 좋은 글이요. 이 진실의 목소리가 신문정간의 확실한 원인이라면 이 땅의 언론은 진실을 외면해서만 살수 있다는 슬픈 결론을 지을수밖에 없단 말입니다.》

최재명은 손수건을 꺼내여 손바닥을 깐깐히 닦으며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진수씨에게만 자꾸 따질거야 뭐가 있겠소. 당국에서 화를 낸다고 우리까지 크게 놀라서 본분인 진실옹호라는 진지까지 송두리채 포기할 생각만 해가지고야 되겠어요?》

위달종은 사내에서 으뜸가는 지성인으로 언제나 국장인 자기를 우둔한 군인 대하듯 하는 최재명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마디마디 씹어뱉듯 말했다.

《거참 대단한 견핸데요. 여보시오, 당신도 문제거리란 말요.》

그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여 벌떡 일어나 책상을 마구 두드리며 떠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요? 밤에 모두 연회에 간 틈에 이따위 신문이 나왔는데, 엉? 이건 쿠데타란 말이요, 쿠데타!…》

이렇게 되자 언쟁은 순식간에 격론으로 바뀌였다. 선우민이라는 담당편집원이 일어나서 창덕사분쟁이 사실인 이상 이런 기사를 편집한것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국장을 반박했고 국장은 더욱 뿔어나서 중상적인 독설을 뿌렸다.

그런데 이 순간에 위달종에게서 생리적인 쿠데타라고 할가, 괴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급작스레 목갈린 가느다란 비명과 함께 눈알이 번져지고 입이 헤벌어지더니 마치도 세상사가 무섭고 넌더리나서 숨기라도 하는듯 책상밑으로 미끄러져내려 맥없이 나동그라졌던것이다.

모두들 경악하여 모여들었다. 량성도와 최재명이 의식을 잃은 그를 책상밑에서 끌어냈다. 량성도는 그의 맥박을 짚어보더니 경험많은 의사이기나 한듯 엄숙히 단정했다.

《살아있군, 끓던 쟁개비가 넘어났어. 망할 놈의 고혈압이 도를 넘어 뇌출혈인거야.》

최재명부국장은 급히 전화로 의사를 불렀다. 신문정간에 국장의 불상사까지 곁들어 모두들 우울한 얼굴로 술렁거리고있을 때 신문출판물을 담당지도하는 공보부의 과장이 불쑥 들어섰다. 창백한 얼굴에 붓초리같은 눈섭이 인상적인 과장은 벌어진 광경에 놀라기보다는 불쾌해하는 기색이였다. 최재명으로부터 간단한 경과보고를 받은 그는 무슨 신문사가 이 모양인가고 한마디 투덜거렸을뿐 한동안 침묵으로 방안의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러더니 진수를 불러 데리고 나갔다.

과장은 빈 옆방으로 진수를 데리고 들어가서는 붓초리같은 눈섭을 잔뜩 찌프리고 기사건으로 딱딱하게 이것저것 묻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의 론조와 이북 공산당의 선동은 어떤 차이가 있소? 〈상층에 대한 민중의 조직적인 반타격〉, 이게 빨갱이소리가 아니고 뭔가말이요?》

진수는 도전적인 눈길로 과장을 마주보았다. 그는 대부분의 관리들에게서 느끼군 한, 계몽이전의 전근대적인 답답한 사고방식과 권세에 집착하여 남을 적대시하는 랭혈적인 체취를 이 과장에게서도 느꼈다. 이놈의 세상에선 출세한다는것이 정신적인 추상성에 대한 표창인가. 진수는 주먹으로 한대 먹이고싶은 충동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참 이상하군요. 표현이야 어찌됐든 요는 재난당한 민중을 옹호하는것이 공산당의 선동이라는 말씀이겠는데… 그런 론리라면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우리 사회는 공산당사회란 말씀인가요? 내가 오히려 선생을 용공분자로 기소할수 있다는걸 아시오!…》

과장은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을 쳤다. 복도에서 편집국장을 병원으로 날라가느라고 법석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마디 더 찔러보던 과장은 손을 내두르며 말했다.

《안되겠어, 골통이 부서져야 정신이 들겠나? 시간랑비야, 가보시오. 집으로 가보시오.》

슬프고 분한 진수는 설명할 길 없는 뼈저린 랑패감을 안고 자기의 부서로 돌아갔다. 방안에는 김성우, 주한숙이 우울한 얼굴로 앉아있다가 그에게 우정어린 고무의 시선을 보냈다. 창가에는 허름한 옷차림을 한 로인이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있었다. 주한숙이 로인에게 진수를 소개했다.

《로인님, 이분이 정진수씨예요.》

로인은 흠칫 놀라 일어섰다. 주름살많은 컴컴한 얼굴에 머리가 하얗게 바랜 로인은 진수가 지치고 울적한 얼굴인데도 오랜 세월 찾아오던 은인이라도 만난듯 무척 감동하며 중얼거렸다.

《이분이, 이 어른이 정진수선생님이라!…》

로인은 뼈마디가 밤알같은 엄청나게 크고 꽛꽛한 두손으로 진수의 손을 싸쥐고 허리굽혀 인사를 하면서 또 찬탄이다.

《고맙소이다! 젊으신분이 어쩌문 그렇게도 마음이 깊을수 있소이까!…》

《알수 없는데요. 무슨 말씀이신지?》

진수는 흥미를 가지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로인에게 의자를 권했다. 자리에 앉은 로인은 염색한 검은 물감이 뿌옇게 바랜 낡은 옷의 속주머니에서 오려낸 신문쪼박을 꺼내여 탁자우에 펴놓으며 물었다.

《이게 선생님의 글이 분명한가요?》

진수는 긍정했다. 창덕사사건을 다룬 그의 두 기사였다. 로인은 방바닥에 시선을 떨구고 말했다.

《고철수매원노릇을 하는 내 아들녀석이 어데서 이 신문을 구해가지고 와서 제 동무들과 같이 읽으며 풀이를 하는데 들어본즉 기가 차고 가슴이 왈랑거리질 않겠소. 모르겠소만 술엔 도수가 있어야 하고 참글엔 악한 놈들을 치는 불이 타야 한다지 않소. 이 글이 바로 그렇소이다.》

진수는 가슴이 뜨끔했다. 로인과 동료들앞에 부끄럽기만 한 그는 몸둘바를 몰랐다.

《이러지 마십시오. 제 글은 아직 제대로 되자면 멀었습니다.》

그러나 로인은 생각에 잠긴 얼굴을 떨군채 말을 이었다.

《난 한뉘 글 한자 못 써본 천대받이올시다. 스무해나 숨줄을 걸어두었던 구멍탄공장에서까지 페인이라고 쫓겨났습죠. 판자집이란건 쥐굴과 다름없고 그러니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누구나 다 애비어미없는 홀자식이지. 모래불에 버려진 쑥대가 아니겠소. 정말이지 안정이 그리워서 피가 마르고 삼복더위에도 등이 시린걸.

이 험한 세월에 누가 가난뱅이들을 쓰다듬어주겠소. 그래도 선생님은 세상망친 놈들을 글로나마 쳐갈겨주고… 피눈물이 엉켜 응어리진 사람들을 부축을 해주고 안아주었은즉 이 고마움을 무슨 말로 하겠소. …내가 인사를 한다는게 말할줄을 알아야지. …》

얼굴을 든 로인의 눈은 젖어있었다.

누구나 로인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진수는 벌을 받는 사람처럼 얼굴을 푹 숙인채 아무 말도 못했다. 그는 소동을 일으킨 자기의 서투른 글이 민중의 마음의 금선을 두드린것을 알았다. 그는 민중의 무수한 얼굴을 마주보는듯 했다. 그늘짙은 낮은 추녀아래에서, 감옥같은 공장의 창문에서, 밤처럼 검은 수렁창속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수난의 얼굴들… 진수는 그들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자기를 본다.

나의 량심의 언어는 이 사람들의것이다. 내가 만약 신앙을 가져야 한다면 이 사람들이 나의 신이 아닐가.

누가 알랴, 세계에서 가장 처절한 이 땅의 수난자들이 이 로인을 보내여 나를 자기들과 하나의 운명으로 련결된 벗으로, 친구로 받아들인다는것을 통고해온것인지!…

어쩌면 관료들과 부자들로부터는 규탄과 모욕만을 벌어들이고 신문까지 정간에 빠뜨린 나의 글이 가난한 사람들로부터는 이렇게도 칭찬을 받을수 있단 말인가.

진수는 이상하게도 무지한 형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형틀에 매운채 불시에 나타난 어머니의 슬픈 애무를 받는듯 한 말 못할 기분이였다.

그런데 로인은 창턱에서 헌 보자기에 싼 자그마한 꾸레미를 가져다가 탁자우에 조심스럽게 놓으며 말했다.

《선생님, 약소하지만 받아주십쇼. 손에 쥔것이 없고보니, 큰마음 쓴다는게 겨우 계란 몇개를… 욕하지 마십쇼!》

진수는 서둘러 사양했다.

《이러지 마십쇼,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하아, 섭섭하외다. 가난뱅이는 인사도 못합니까!…》

로인은 터슬터슬한 뺨이 푸들거리더니 멍하니 쳐다보는 눈에 금시 눈물이 좌락하게 고여올랐다. 성우가 감동하여 간참했다.

《진수, 받아야 하네. 그게 어떤건가!》

한숙이 눈을 슴벅거리며 다가오더니 보자기를 풀며 말했다.

《받아야 하구말구요. 로인님도 어쩌문…》

열댓알 돼보이는, 하나하나 깨끗이 닦은 계란이였다. 그것을 굽어보는 진수는 불시에 눈시울이 뜨거워나는것을 느꼈다. 황금에도 비길수 없는 선물, 난생처음 받아보는 뜻깊은 사랑이였다.

《아닙니다, 로인님. 저 같은건 아직 이렇게 귀중한걸 받을 자격이 없어요!》

진수가 다시 사양하자 로인은 열띤 미소와 함께 진수의 팔을 꽉 쥐며 무슨 말인지 하려고 했으나 급작스레 기침이 터져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심한 천식증 같았다. 숨돌릴 틈없이 련발하는 모진 기침이였다. 내장을 토할듯 숨이 가빠 몸부림치면서도 로인은 떨리는 손으로 계란을 자꾸 진수앞으로 밀어놓는다.

무슨 마음이 이리도 지극하랴! 대굴거리는 계란을 만져보다말고 로인을 부축해주던 진수는 그만 충격을 참지 못해 탁자우에 엎드려 흐느껴울었다.

얼마나 사는 일이 막막하고 사랑이 그리우면 나의 말라빠진 량심의 서투른 글을 이렇게도 통으로 삼킨단 말인가. 용서하라 로인이여, 나같이 비겁하고 덜퉁한 놈에게 선물은 무슨 선물. 차라리 그 갈구리같은 손으로 나의 뺨이나 때려줘야 할것을!…

진수는 이발을 앙다물었으나 눈물은 그냥 쏟아지고 치밀어오르는 흐느낌에 몸을 덜덜 떨었다. 로인을 부축해주며 물을 권하는 한숙과 성우도 울고있었다.

얼마후 기침이 진정된 로인은 옷소매로 코물을 씻더니 돌아앉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진수에게 허리굽혀 작별인사를 하며 말했다.

《이거 내가 못된짓을 했나보외다.》

진수와 한숙은 로인을 현관까지 바래워주었다. 한숙은 로인의 주소와 이름을 알려고 로인을 따라나갔다.

진수가 방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성우가 창을 향해 선채 말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가? 로인이 하던 그 말, 그 소박한 선물, 민중의 흐려질줄 모르는 후더운 그 의지, 압제와 불의에 항거하여 영원히 파도치는 그들의 그 생활이 아닐가?…》

《좋은 생각이다. 나나 자네나 속죄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왔던 로인은 자네가 찾아야 할 뮤즈가 아닌가!…》

그들이 담배를 피워물고 생각에 잠겼을 때 주한숙이 급히 들어서며 말했다.

《경찰들이 벌써 현관을 지켜섰어요. 당장 모든 업무를 중지하라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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