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4 장


21


번화가로 통한 골목으로 들어서던 진수는 떠나온 취재현장으로 급히 되돌아섰다. 꼭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었다. 재난을 겪었을 김용기와 그의 어머니의 일이 매우 걱정스러웠던것이다.

겨우 찾아낸 용기네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형편이 말이 아니였다. 무너진 집속에서 으깨여지고 더럽혀진 살림도구들가운데서 그런대로나마 아직 쓸모가 있음직한것들을 건져낸 용기와 한씨는 설음과 걱정이 너무나 커서인지 푸실푸실 내리는 눈속에 망연자실해있었다.

그들의 절망한 모습이 너무도 가슴아파 진수는 얼른 가까이에 갈 생각을 못하고 한순간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것이 몹시도 미안하고 비도덕적인것처럼 괴로왔다. 굴뚝소제부처럼 초라한 행색인 용기는 부러진 각재를 세워짚고 얼굴을 꽉 찌프리고 서있었고 처량하게 늙은 체소한 한씨는 흙덩어리와 판자등속에 뒤덮인 온돌귀퉁이에 앉아 입을 하아 벌린채 밑빠진 솥에 손을 얹고 감돌아 내리는 눈송이를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용기야!…》

진수가 다가갔다.

《용기 어머니, 이거 뵈일 낯이 없습니다!》

첫눈에 진수를 알아본 용기는 매우 난처해하는 기색이였으나 그의 어머니는 진수의 아래우를 훑어보면서도 알아보지를 못했다.

《진숩니다. 어데 다친데는 없습니까?》

《진수라니, 에구, 우린 어떡하니. 벌써 죽었어야 할걸. 이젠 하늘땅에 붙을데 없구나!…》

용기 어머니는 진수의 팔에 매달려 설음이 북받쳐 흐느껴울었다. 용기는 화를 냈다.

《그 눈물 제발 좀 거두세요. 이건 정말 못 견디겠구만.》

용기는 전번에 이어 또다시 진수에게 자기의 비참상을 보이게 된것이 못마땅한데다가 어머니까지 그에게 울며 매달리니 극빈자로서의 신분적인 굴욕감을 참을수 없었던것이다. 진수도 그의 이런 기분을 짐작했으나 그럴수록 이 모자앞에 무거운 의리감을 느꼈다.

《어머니, 이러지 마시고 집마련이 될 때까지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지냅시다. 꼭 그래야 합니다.》

이러면서 용기에게 재촉했다.

《뭘 그러고있어. 빨리 짐을 꾸려라.》

용기 어머니는 아들을 쳐다보았으나 아들은 제 친지들의 신세를 질수 없다면서 사양했다. 그러나 진수는 그를 설복해서 짐을 꾸리게 만들었다.

털모자를 쓴 체소한 중년사나이가 손수레를 끌고 한씨에게 다가와서 부서진것들가운데서 각재와 판자등속을 팔라고 흥정을 걸었다. 땔나무로 다시 팔려는것이였다. 한씨는 얼른 응하지 못했다. 비록 볼품없이 부서진것이지만 그 쪼각쪼각들이 고난에 찬 잊을수 없는 지난 생활의 온기와 추억을 지니고있었던것이다.

용기는 어머니에게 주저할것이 없다고 몇번이나 일렀다. 그래도 한씨는 친근한 사람의 유해나 바라보는듯 한 눈물어린 애절한 눈길로 부서진 잔해들을 더듬다가 차마 못할짓을 하는것처럼 겨우 응낙했다. 값을 정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락착이 되자 중년사나이는 이쪽의 아픈 마음도 고려하지 않고 와락와락 걷어 손수레에 실었다.

그들이 모두 서두르고있을 때 용기의 큰아버지인 《벙어리》로인이 찾아왔다. 장기수로 감옥에 갇혀 앓고있는 아들을 면회하러 왔다가 들린 이 로인은 여전히 자그마한 손짐을 든 허줄한 차림에 소리없이 우는듯 한 얼굴이였다. 무서운 수라장을 둘러보면서도, 용기모자와 진수의 인사말을 듣고도 조용히 도리질할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않았다. 그러면서도 오랜 생애를 살아오면서 끔찍스러운 수많은 비극을 겪어온 이마며 귀언저리에 검버섯이 내돋은 주글주글한 그 얼굴에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이런 참변에 너무 절망해서는 못사느니라 하고 일러주는듯 초연한데가 있었다. 험한 날씨에 난바다에 나선 오랜 사공이 사나운 파도를 보는듯 한 눈이였다.

로인은 그렇게 한동안 서있더니 뜻밖에도 굵은 목소리로 용기를 엄하게 꾸짖었다.

《왜 그렇게 멍청해있어? 세상이 이런줄 몰랐더냐? 숱한 혈육들이 놈들에게 죽은걸 생각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치받으며 견뎌야지 엉. 감옥에서 앓고있는 너의 사촌형을 잊어선 안된다. 얼마나 장한 사람이라고!… 얼마나!…》

로인은 다시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원한을 갚아야지. 주저앉으면 못쓰느니라!…》

《큰아버지, 우리가 어떻게 주저앉겠어요. 두고보세요. 기어이 해대고야마는걸!》

용기가 슬픔을 털며 결기를 보이자 로인은 머리를 몇번 끄덕거렸다.

용기의 어머니가 말했다.

《당장 갈데도 없구 해서 얼마간 진수네 신세를 질가 합니다.》

그 말에 로인은 진수의 어깨를 몇번 다둑거려주고는 겨우 들리는 석쉼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구나. 그래야 사람이지.…》

그리고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조용히 떠나갔다.

세사람은 진수네 집으로 향했다. 이사짐이란 옷가지와 얄팍한 헌이불이며 몇권의 책을 넣은 자그마한 궤짝 하나에 부서지고 남은 약간의 부엌세간을 싼 두개의 보퉁이가 전부였다. 한쪽다리를 씰룩씰룩 저는 용기의 어머니는 머리에 인 보짐이 힘겨우련만 진수가 든 짐마저 제가 들겠다고 몇번이나 재촉했다.

도중에 음식점에 들려 요기를 한 세사람은 얼마후 진수네 집에 당도했다. 그들이 막 쪽문앞에 이르렀을 때 깐깐하게 성장을 한 문희가 어데론가 급히 떠나는 걸음으로 나오다가 그들과 마주쳤다. 어찌할바를 모르고있는 용기와 그의 어머니의 초라한 행색을 본 문희는 보짐을 들고 다가서는 남편을 랭담하게 쳐다보았다.

《집을 잃은 고향사람이요. 당분간 같이 있어야겠소.》

이러면서 진수는 용기모자에게 문희를 소개했다.

《허물이 될게 없어요. 제 첩니다. 용기, 왜 그러고있어? 빨리 들어가.》

용기는 문희에게 다만 사람됨됨을 가늠해보는 시선을 던졌으나 그의 어머니는 보퉁이를 내리우고 허리를 숙여 각근히 인사를 했다.

맞인사를 한 문희는 담담한 얼굴로 다만 목소리에만 친절을 표시했다.

《안됐군요. 어서 들어가세요.》

그럴수록 진수는 안해의 소극적인 태도를 상쇄하려는듯 활기있게 서둘러 용기모자를 뜨락으로 이끌어들이고 현관문을 시원스럽게 열어제꼈다. 그런데 재난의 고통이 울부짖는듯 한 참극의 주인공들이 자기 집으로 들이닥친것이 놀랍기만 한 문희에게는 남편의 활달한 태도가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와는 랭전상태에 있는 남편이 의논도 안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턱 집에 끌어들인것도 자기를 경시하고 약올려주기 위한 처사처럼 여겨졌다.

(너는 부자집 딸이니 네 아버지를 지키려고 하지만 봐라, 나는 이 가난뱅이들과 한편이다. 너보다는 이 사람들이 내게 소중하단 말이다!)

그 녀자는 남편이 이렇게 선언하는것만 같았다.

진수가 그때까지 대문밖에 있던 문희에게로 급히 나와 등뒤로 쪽문을 닫으며 딱해하는 얼굴로 목소리를 죽여 사정했다.

《여보! 저 사람들이 저들을 랭대하는줄로 오해하면 어떻게 하자고그래? 얼마나 괴롭겠어! 환대해줘야지. 제발 이러지 마! 난 그래도 당신을 믿고…》

《몰라요. 어쩜 상론도 안하고…》

문희는 말로는 엇서는듯 했으나 그래도 진수의 충고에 정신이 들었는지 얼른 뜨락으로 뛰여들어가 손님들의 짐을 맞들어 집안으로 날라주며 친절하게 굴었다. 그리고는 식탁에 빵까지 차려주었다.

부엌 건너편 방에 용기모자의 거처를 정해준 진수는 다시 집을 나섰다. 창덕사사건을 마무리짓기 위한 보충취재를 해야 했고 신랄한 기사를 써서 래일신문에 발표해야 하는것이다.

몇곳을 급히 들리고나서 신문사에 간 그는 현관에서 김성우를 만났다.

우울해보이는 성우는 싸움하는 수닭의 털처럼 부시시 일어선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자넨 왜 그 영광의 자리에서 뺑소니쳐왔나? 출세하기 싫은 모양이지?》

《영광의 자리라니, 무슨 소린가?》

진수는 신문사가 여느때없이 조용한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반문했다. 성우는 곰의 열을 삼킨듯 한 얼굴로 씨벌였다.

《이 친구 깜깜이구만. 미공보원에서 말이야. 제 나라에서 어떤 유명한 바보가 난 날이라고 해서 이번에는 우리 신문사와 여러 신문사 기자들을 연회에 초대했어. 염통들을 미국알콜로 절구고 저희들의 하사관제복을 입히자는 수작이거던.》

진수는 접수구에 앉은 수위를 경계하며 복도구석으로 시인을 끌고 갔다.

《자넨 왜 초대명단에 없었나?》

《가다가 돌아섰지. 아첨하고 감탄들 할 꼬락서니… 그것도 단체로 한다니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 그게 다 제복이야. 하나같이 복종하고 미국을 숭배하고 반공을 하라니 그따위 제복을 입을바엔 죄수복이 낫지.》

《역시 시인이란 개성이야. 우리 래일 밤에 그 염병할 제복을 반대해서 한잔 하세.》

《왜 래일 밤인가? 당장 가자. 가만, 그러지 말고 강동혁이도 불러오자. 그 친구의 칼날같은 론리 아주 흥미있어. 나를 어리숙한 계집주무르듯 하면서 정신을 휘휘 저어놓거던. 며칠전에도 만났는데 모더니즘을 원숭이들의 장난이라고 내리조기면서 예술을 위해서는 리얼리즘이 있을뿐이라고 숨가쁘게 몰아대더란 말이야. 자아, 가자니까.》

성우는 진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진수는 급히 기사를 써야할 사정을 내대면서 자기 부서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도 고집스러운 시인은 그를 설복해보려고 그냥 따라왔다.

진수는 부서의 문을 열려고 했으나 쇠가 잠겨있었다. 그런데 비여있어야 할 방에서 무슨 쇠붙이 같은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열쇠구멍으로 안을 살피던 성우의 눈이 둥그래졌다. 이번에는 진수가 열쇠구멍에 눈을 댔는데 그는 뜻밖에도 안한수가 부서의 라지오에서 무슨 부속품을 뜯어내다가 인기척에 놀라 허둥거리고있는것을 보았다. 두눈섭이 이마복판에 여덟팔자를 이룬 창백한 얼굴로 출입문을 힐끗힐끗 돌아다보는것이 꼭 미친 사람 같았다.

두사람은 일시에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물건을 급히 옮겨놓는 소리가 났다. 성우는 한수의 이름까지 부르면서 문을 빨리 열라고 소리를 쳤다. 마침내 열리는 문을 박차고 성우와 진수가 방안으로 들어갔는데 한수는 당황했는지 려과담배를 꺼꾸로 피워물고 허둥거렸다.

성우는 책상우에 놓인 라지오의 뒤판을 열어보았다. 부속들의 핵심인 출력관이 두개나 뽑혀있었다.

《빈방에서 무슨짓인가? 이 출력관을 어떻게 하자는거야? 참 안됐네만 우린 우연히 열쇠구멍으로 다 봤어.》

성우가 예상외로 따지고드는 바람에 돌려댈 말을 미처 찾지 못한 한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장난이야. 지… 집에서 쓰는 추… 출력관이 낡아서 갈아채웠다. 망할것, 이건 정말 장난이야.》

《더러운 자식!》

성우는 한마디를 뱉았다. 진수는 애당초 한수를 보지 않았다. 전쟁때에 부상당한 사병을 쏴죽이고 그 사병의 어머니에게 들려 귀빈대접을 받았노라고 자랑삼아 말하던 한수. 이젠 또 좀도적질까지? 이런자가 어떻게 기자인가.

진수는 번열감을 느끼며 무심히 책상모퉁이에 놓은 빛다른 자그마한 물건을 주어들었다. 순간 한수가 깜짝 놀라며 다가들었다. 진수가 든것은 도청기였다.

《이건 도청기가 아닌가?》

얼굴이 까맣게 질린 한수는 덤벼치느라고 미처 감추지 못했던 그 흉기를 덮쳐 빼앗아 주머니에 넣으며 변명을 했다.

《돈암동쪽에 취재갔다가… 거시기 길에서 주었다니까. 경찰서에 바쳐야지.…》

《너 혹시 남산끄나불이 아니냐?》

성우가 입침을 놓자 한수는 그 말이 형언 못할 모욕이기나 한듯 시인에게 왈칵 화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성우는 온 얼굴이 입이 되여 요란한 폭소를 터뜨렸다.

진수가 한수에게 말했다.

《우린 네 말을 믿는다. 너도 사람이지 정보원일수는 없어.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라지오에 손댄것 말이야. 그건 너의 실수야. 하느님도 이따금 실수하거던.》

얼떨해진 한수는 감개무량한 얼굴로 진수를 돌아보았다. 진수는 그가 악수라도 청하면 어쩌나 하여 성우에게 말꼬리를 돌렸다.

《난 급한 기사를 써야겠는데 어떤가? 이 친굴 끌고 가서 한잔 하게나. 멋없이 우울해할수 있으니까.》

성우는 또다시 껄껄 웃어대며 꽁해있는 한수의 팔소매를 끌고 문밖으로 나갔다.

진수는 복도의 저켠으로 멀어져가는 성우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한수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했다. 속이 흐리터분해보이는 인간, 그가 물건을 훔쳤다면 역시 남의 정신이나 목숨도 훔칠수 있지 않겠는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사진반에 들려 이날 찍은 필림을 넘긴 그는 급히 제자리로 돌아와서 책상에 원고지를 내놓고 그우에 엎드렸다. 복잡한 생각에 지쳤을 때나 야심작을 쓸 때마다 취하는 버릇이였다. 그는 영민한 두뇌에 박힌 기억을 흔들며 체험한 인상들을 불렀다. 그것은 곧 파도처럼 밀려오며 가슴을 때렸다.

담배를 피워문 진수는 떠오르는 형상을 응시하며 아픔에 질린것처럼 눈을 꽉 찌프렸다. 거센 회오리바람이 먼지기둥을 일으키듯 수난자들의 군상은 한사람의 무서운 녀인으로 변하여 솟아오른다.

그 녀인은 흉기를 휘두르며 덮쳐드는 야만들앞에 울어대는 갓난 아기를 쳐들고 구원을 애원하다말고 검은 하늘에 절규한다.

《벼락을 내리라! 하늘땅이 맞붙어 매돌을 갈아라!》

수난의 화신이 부르짖는 그 피타는 소리는 또다시 진수의 넋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구레나룻수염의 거인이 로인과 소녀의 시체를 량어깨에 갈라메고 다가오며 위압한다.

《죽은 사람에게 쥐여주는 빵같은 글 쓰지 말고 산 사람에게 무기로 될 글을 달라!》

진수는 그가 내대던, 굳은살이 터갈라진 커다란 손을 똑똑히 본다. 민중의 그 손에 무엇인가 쥐여주리라 진수는 결심했다. 그는 두개의 기사를 계획하고 급히 써내려갔다. 처음것은 《〈이 어린것을 어찌라오, 사람 살리오!〉, 관권과 결탁한 〈한일〉재벌 창덕사 판자촌을 완전파괴》라는 제목으로 창덕사부지의 판자촌 강제철거를 다룬 현지보도기사였다.

《∘∘일, 권력당국과 공모한 〈한일〉회사 민규석재벌은 구청과 경찰력을 힘입어 ∘∘구 ∘∘동에 있는 창덕사부지의 판자촌을 완전파괴하고 강제철거, 사회의 면전에서 〈법률〉, 〈도덕〉, 〈국가3권분립제도〉 등을 완전히 짓밟고 또 하나의 수라장을 빚어냈다.》라는 대담한 전제로부터 시작한 이 기사는 간결하고도 힘찬 필치로 비극적인 사태를 사실적으로 소개한 글이였다. 거기에는 령세민들의 가난한 생활을 무한궤도로 깔아치우는 자본과 권력의 횡포성에 대한 분노에 찬 고발이 있었고 무너져가는 생활의 마지막 한쪼각까지 필사적으로 지켜싸우다가 패전한 남녀로소의 무서운 참상이 선명하게 그려져있었다. 진수는 진지한 검사처럼 엄격히 선택된 자극적인 말로 사건과 범죄의 진실을 밝혀내면서 거기에 무너진 창덕사현장에서 목격한 송덕삼과 그의 어린 딸의 죽음과 같은 몇개의 참혹한 토막이야기들을 재치있게 배합하여 기사를 범죄자들에 대한 하나의 독특한 기소장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한동안 담배를 태우면서 다음에 쓸 글을 이리저리 생각한 그는 《창덕사사건을 통해 본 상층의 범죄생리》라는 제목을 크게 썼다. 그것은 기사라기보다는 짤막한 론평이였는데 묵은 취재노트들이며 참고서까지 차려놓고 꽤 오랜 시간 줄담배를 태우며 애쓰는것으로 보면 이 론평이야말로 이번에 그가 노리는 글인것이 확실했다.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돼있었다.

《권력과 자본이 아무러한 제재도 받지 않고 창덕사 판자촌을 유린한 사건은 법의 무기력과 통제적기능의 마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개탄할만 한 반증으로 된다. 법률은 거미줄과 같아서 작은 곤충은 걸리지만 큰 놈은 뚫고나갈수 있다는것이 확실하다.

흔히 범죄라 하면 부랑배나 이상인격자들에 의해 빚어지는 살인, 절도, 강간 등을 생각하나 그것이 아무리 무서운 현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사회집단을 유린하고 략탈하는 상층의 하층에 대한 범죄에 비하면 새발의 피정도다. 세상사람들을 아연케 한 지리산도벌사건, 철도청부정사건, 삼분폭리사건, 4대의혹사건 등에 이어 이번에 또다시 빚어진 창덕사사건은 온 사회로 하여금 상층사회의 범죄생리에 최대의 주목을 돌릴것을 요구하고있다.…》

《…이제 철거당한 령세민들은 어데로 가라는가. 인간은 새가 아니다. 보금자리를 잃은 새는 다른 숲으로 옮겨갈수 있어도 쓰디쓴 땅에 사는 인간은 갈데가 없다. 설자리를 잃은 어머니는 아기에게 걸음마를 배워줄 자리가 없고 아이는 헝겊으로 만든 제 인형에게 사금파리 〈밥상〉을 차려줄 곳이 없다. 그리하여 몇몇 개인이 팽창되는 자본을 안고 새로운 향락의 계단에 오를 때 무권리한 수백명의 인간들은 다만 살아있는것때문에 용서받을수 없는 죄인으로 되여 삶을 온통 차압당하고만것이다.》

《도시미화를 위해 판자촌을 철거한다는 시청당국의 명령은 그것대로 문제거리다. 하기는 판자촌을 아름답다고 볼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무리 더러운 판자촌도 농업경리를 파괴하고 도시의 서민층을 빈궁에 몰아넣어 판자촌을 만들어낸자들과 그 판자촌마저 들어삼키는 두발가진 맘모스들보다는 추악하지 않다. 그러니 도시미화를 위한 첫 청소작업은 응당 두발가진 맘모스들을 들어내치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세론에는 부정할수 없는 진실이 있다 하겠다.》

《…민중의 커다란 불만은 현행법이 상층의 범죄행위를 모든 형법의 간섭으로부터 배제하고있는 점이다. 그 범죄자들이 립법, 사법, 행정의 요직에 있는 관료, 의원이거나 그 출신들인때문인가. 또는 부와 결합된 사회적지위는 곧 자동적인 범죄행위를 의미하기때문인가. 혹은 상층범죄란 폭력과 악마적인 지능이 배합돼있어서 법이 오히려 고양이앞의 쥐처럼 떨고있기때문인가. 아니면 매국적인 외자도입과 특혜융자, 부정불하, 대중에 대한 인권유린 등의 배후에는 정치자금의 확보와 기업확대를 둘러싼 정치권력과 재벌간의 추악한 흥정이 붙어있기때문인가.…》

《배추통만 한 나무단을 장마당에서 파는 가난한 농촌녀인에 대해서는 몽둥이질, 발길질을 하면서도 지리산수풀을 란도벌한 큰 도적들과는 술상머리에서 입을 맞추고 가벼운 부정을 범한 쌀장수는 교도소에 처넣으면서도 판자촌을 쑥밭으로 만든 자본가는 〈국회〉에 내세워 〈근대화의 기수〉로 찬양하는 여기에 무슨 법치의 흔적이라도 있단 말인가?

사회의 복지는 각자 개인이 타인을 짓밟고 리기적인 자유경쟁을 벌릴 때 달성된다는 동물적인 사상, 향락과 권위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틀어쥐려고 날뛰는 무법천지는 또 하나의 참혹한 창덕사의 비극을 빚어냈다. 사회의 가슴에 뚫린 이 새로운 상채기에서는 불같은 피가 흘러 대지를 적신다. 쏟아지는 그 피는 울분한 민중의 눈앞으로 흘러가며 보복을 부른다. 적개심과 힘을 단합시켜 상층의 범죄자들에게 무자비한 반타격을 가할 때는 왔다.…》

진수는 원고를 다시 읽어보면서 어느 정도의 만족을 느낄수 있었다. 도수가 지나치지 않을가 하는 약간의 걱정도 있었다. 그래서 몇군데 표현을 다듬어가지고 편집실로 향했다.

대부분이 연회에 몰려간터이여서 신문사는 빈집처럼 고요했으나 어느 한방에서는 문짬으로 불빛이 실오리처럼 비쳐나오고있었다. 부국장 최재명의 방이였다. 원고를 최재명에게 먼저 보이고싶은 진수는 그 방으로 들어갔다.

우람한 체구에 말쑥한 미남으로 생긴 부국장 최재명은 전축이 달린 커다란 라지오로 음악을 들으며 무슨 생각에 골똘히 잠겨있다가 진수를 맞이하였다. 최재명은 의자에 앉은 진수의 지친 얼굴을 따뜻이 돌아보며 라지오소리를 두고 물었다.

《끌가?》

《글쎄요, 둬두지요.》

무척 서정적인 녀성중창이 고요히 울리고있었다. 행복한 가수들은 저들의 아름다운 농촌을 노래하고있는중이였다. 그속에서는 새집들이 한 마을의 향기그윽한 과원을 지나가는 처녀들의 어여쁜 모습이 떠오르고 기계로 농사짓는 전야의 해빛과 싱그러운 푸른 바람이 취하도록 풍겨왔다. 부드러운 노래에 매혹된 진수는 불행과 죄악이 뒤엉킨 조잡한 환경에서 상처입고 더럽혀진 자기의 정신을 맑은 강물에 씻는듯 한 느낌이였다. 이 노래들은 평양에서 방송으로 내보내는것이였다.

노래가 깊은 여운을 남기며 끝났을 때 두사람은 생각에 젖은 미소로 자기들의 공감을 표시하였다. 위달종편집국장과는 대조적으로 유능하고 때에 따라서는 반《정부》적인 정의파로서 용감하기까지 한 최재명은 라지오를 끄며 곧 사무적인 태도를 보이였다.

진수가 두편의 원고를 내놓자 그는 말없이 받아 읽었다. 이따금 입바람을 후욱후욱 불며 두편의 원고를 다 읽은 그는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궁금해하는 진수의 팔을 꽉 틀어쥐며 말했다.

《두편 다 아주 훌륭하오! 자네의 커다란 자존심은 정말 보배야. 특히 상층범죄를 때린 이 글은 힘이 막 솟는군그래.》

《뭘요. 한데 좀 말썽이 생기잖을가요?》

《그게 대순가. 말썽 같은거야 진짜글에 의례 따르기마련 아닌가. 하긴 국장이 봤으면 시퍼래질거야. 마침 없길 다행이지.》

재명에게서 두터운 믿음을 느끼며 그의 방을 나선 진수는 급작스레 심한 피로를 느끼면서 고요한 복도를 비칠비칠 걸어갔다. 질주하는 경찰백차의 날카로운 경적소리가 그의 신경을 아프게 긁어댔다.

편집실에 들리니 두명의 당번편집원이 쓸쓸히 앉아 교정지를 뒤적거리고있었다. 그들에게 원고를 넘긴 진수는 최재명을 만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자기의 기사를 두드러지게 잘 편집해줄것을 당부하고 그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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