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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19일

평양시간


제 10 회


제 2 장


10


이튿날 저녁 진수는 신문사에서 나오는 길로 오래간만에 강동혁의 집을 찾아갔다. 간밤에 그와 헤여질 때 들은 집주소 하나만 알고 떠난 걸음이여서 락산기슭에 있는 소란한 거리의 골목에서 그의 집을 찾아내기까지에는 이 골목, 저 골목으로 꽤 헛걸음을 놓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겨우 찾아낸것이 예상외로 처마우에 《광명서점》이라는 자그마한 간판을 건 고서점이였다.

진수는 침침한 서점안으로 들어갔다. 각종 고서들이 사방 벽을 메운 방안에는 5~6명의 녀고등학교 학생들이 서가에서 책들을 고르고있고 한 대학생이 진렬장앞에서 안방으로 들어간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마침내 안으로 통하는 문으로 삼십을 갓 넘어보이는 가무잡잡한 녀주인이 사전류로 보이는 큰 책을 들고나왔다.

《아, 있구만요. 바로 이 책입니다!》

책을 받은 대학생은 환성을 질렀다. 그러나 책 뒤표지에 써붙인 가격을 보고는 얼굴이 흐려진다.

《왜, 그만두시겠어요?》

녀주인이 따뜻한 시선으로 고학생으로 보이는 고객의 초라한 옷차림과 궂은일에 거칠어진 커다란 손을 살펴보며 물었다.

《돈이 너무 적어서요.》

대학생은 안타까운듯 저으기 떨리는 손으로 책을 도로 내놓고 물러나며 부탁한다.

《내 꼭 더 마련해올테니 그때까지 팔지 말아주십쇼!》

눈을 쪼프리고 생각에 잠기는 녀주인의 얼굴엔 동정의 빛이 가득했다. 그 녀주인은 밖으로 나가는 대학생을 다시 부르더니 책을 내여맡겼다.

《가져가세요. 책은 꼭 필요한분이 보아야지요.》

젊은이는 아무런 공로도 없이 굉장한 상을 받은것처럼 당황해하며 가격의 반도 차지 않은 돈을 내놓았다. 녀주인은 돈을 받더니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 돈마저 도로 돌려주며 말했다.

《이 돈 내놓지 않은걸로 하고 학비에 보태여쓰세요. 동정한다고 모욕 느끼심 안돼요. 네? 그럼, 공부 많이 하세요!》

대학생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여 거듭 인사를 드리고나서 책과 돈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구석쪽에서 이 광경을 보고있던 진수가 녀주인에게 가벼운 목례와 함께 물었다.

《동혁씨의 부인이십니까? 전 정진수라고, 동혁씨의 오랜 친구인데…》

《어마나, 정선생님이시군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어제 밤엔 선생님을 만났다면서 저의 주인은 그냥 명절기분이였어요.》

동혁의 안해는 이렇게 반기면서도 무엇때문인지 자신과 자기의 살림살이에 대하여 매우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성정이 순하면서도 강심이 있어보이고 모색이 아련한편인 그 녀자의 얼굴에는 가난에 지친듯 한 피로와 함께 심한 영양실조와 병색이 짙어보였다.

《주인은 어데 나갔습니까?》

《네, 인제 곧 오실거예요. 뒤채로 돌아와 기다리세요.》

동혁의 안해는 진수가 그냥 돌아갈가봐 조바심을 하며 방을 치우려고 안으로 향했다. 이때 낡은 중절모에 회색두루마기차림을 한 성칼지게 생긴 중키의 로인이 자그마한 종이꾸레미를 들고 마른기침을 하며 서점안으로 들어섰다. 로인은 노기어린 날카로운 눈으로 서점안을 둘러보며 어깨를 푹 떨구고 한숨을 쉬더니 《얘야!》 하고 동혁의 안해를 불렀다. 그 소리에 안으로 들어가려다말고 뒤를 돌아다본 동혁의 안해는 펄쩍 놀라며 《아버님-》 하고 부르며 마주 달려나왔다.

《언제 올라오셨습니까? 소식도 없이 이렇게… 어머님이랑 다 편안하신가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동혁의 안해는 반가와서 어쩔줄 모르며 진수에게 소개했다.

《저의 시아버님이예요.》

진수는 인사를 차렸다. 그러나 로인은 아무것도 반갑지 않은듯 엄한 눈길을 떨군채 며느리에게 웅얼거렸다.

《들어갈것 없다. 약재를 구하러 왔던김에 들렸다. 그래, 이놈의 책방은 언제까지 할 작정이냐? 동혁인 없냐?》

《잠간 밖에 다녀오겠다고 했어요.》

동혁의 안해는 로인의 노한 서슬에 주눅이 들어 겨우 혀아래소리를 했다.

로인은 그때까지 책구경을 하다가 나가는 녀고등학생들을 곁눈으로 살피더니 다시 며느리에게 물었다.

《그래 동혁인 어느 기관에도 취직을 안했느냐?》

《…》

며느리는 스승에게 꾸지람 듣는 어린 학생처럼 눈을 떨구고 발끝으로 세멘트바닥만 비비적거렸다.

《보시오, 이게 기가 찰 일이 아닌가 말여.》

로인은 진수에게 푸념했다.

《대학까지 나와 처자를 거느린 놈이 고작 한다는짓이 길가는 사람의 푼돈이나 옭아먹는 책장사를 해먹다니, 애비얼굴 봐서도 제발 이짓을 말라고 당부인들 얼마나 했는데…》

이때 마침 동혁이 들어서다가 뜻밖에 아버지를 보고 놀라더니 인사말을 올리려고 했는데 그를 돌아본 로인은 첫마디부터 죄인 다루듯 했다.

《네 아직도 이짓이냐? 소 팔고 땅 팔아 대학까지 마쳐주니 끝내 이렇게 버틸셈이냐? 그래, 빈주먹이 된 애비가 없는 의술에 침대 하나로 겨우 살아가는데도 지각이 없어? 대학때엔 그래도 세상 뒤집을듯 날뛰던 놈이 무슨 꼬락서닌가 말이다, 엉?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로인의 눈섭이 푸들푸들 뛰고 매같은 눈에선 불이 철철 흘렀다.

진수는 난처하여 서가로 갔고 동혁은 량미간을 꽉 찌프린채 어깨숨만 몰아쉬였다. 동혁의 안해는 시아버지의 팔소매를 잡으며 눈물이 글썽하여 빌었다.

《아버님, 그런게 아니예요. 그런게 아니예요. 너무 노엽게 생각마시고 제발 방으로 들어가주세요. 네, 아버님!》

로인은 며느리를 보더니 말했다.

《네가 고생이구나. 이녀석때문에 병도 못 고치고… 아가야, 그럴것없이 넌 병치료도 할겸 나와 같이 시골로 가자. 그래야 이녀석이 지각이 들게다.》

《아버지, 용서하십쇼!…》

동혁이 빌었다.

《아버님, 그런게 아니예요. 아버님!…》

동혁의 안해도 눈물을 닦으며 빌었다.

로인은 아들과 며느리를 번갈아 보더니 휭하니 밖으로 나갔다. 시골로 가는것이다. 아들과 며느리가 따라나갔으나 노엽고 서러운 로인은 뿌리치고 걸음을 재우쳤다.

문밖에 나선 진수에게로 동혁의 안해가 눈물을 훔치며 돌아오더니 남편을 기다려달라면서 그를 안채로 데리고 갔다.

안채란 서점의 뒤에 붙은 두칸 방으로서 추녀가 낮추 드리워서 해질무렵인데도 벌써 방안은 컴컴했다. 여위고 가무잡잡한 두 아이가 할아버지가 왔다간줄도 모르고 둥근 밥상에서 간장 하나를 놓고 죽을 먹고있었다.

녀주인의 안내로 방안에 들어가 앉은 진수는 친구의 가난에 아픔을 느끼며 아이들의 까스스한 머리를 쓸어주었다.

두 벽에 책이 가득한 방안에는 빨래한 낡은 옷가지들이 줄에 가득 걸려있었다.

동혁의 안해는 방안을 대충 거두고 불을 밝히더니 문가에 앉았다.

《그러니까 주인은 공직을 가진 일이 한번도 없었던가요?》

진수가 묻는 말에 그 녀자는 눈을 창문에 겨눈채 조용히 말했다.

《한동안 대학연구원에 다니다가 무슨 일로 행정측과 큰 싸움을 벌린 끝에 자퇴하고말았어요. 그리고는 여러 군데 직업을 구해봤으나 자존심 가지고 일할데는 하나도 없다는거예요.》

《자존심이라니요?》

《그인 이 험한 시국에도 늘 량심과 자존심만 앞세우고 세상과 엇서는거예요. 그러면서 군중단체활동에 열의를 내고있지요 뭐. 굶고 헐벗어도 귀중한건 돈이나 직업이 아니라 참다운 벗이라면서… 그러니 보셨죠? 아버지마저 저렇게 노엽히고…》

진수는 동혁의 강직한 마음을 짐작했다. 이 가난한 재사는 구차하게 살지만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부유한것일가. 굶주리면서도, 아버지에게 지탄을 받으면서도 추악한 권력앞에는 아부하지 않는단 말이지. 폭풍우속에서도 항로는 바꿀수 없단 말이지. 그렇다면 부자집 사위인 나를, 여러해나 신문기자로 날뛰면서도 감옥신세를 지는 용기 한번 낼줄 모르는 나를 얼마나 속물이라 비난할것인가.…

밖으로부터 동혁이가 급히 들어오더니 안해에게 약봉지를 맡기며 말했다.

《령감이 어떻게나 고집인지, 끝내 가셨소. 그러면서도 당신에게는 이렇게 간장염약까지 주셨소.》

약봉지를 받은 동혁의 안해는 머리를 숙인채 아무 말도 못했다.

동혁은 진수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의 안해는 밥 한끼 대접 못하는것을 거듭 사죄하면서 거리에 나가는 두사람을 멀리까지 배웅했다.

두사람은 아무런 운치도 없는 소란한 거리와 골목으로, 혹은 숱한 사람들이 저마다 술지게미를 먼저 사겠다고 밀어닥치며 끓어대는 양조회사의 뒤마당이며 문마다에서 찬바람이 휘파람부는 판자촌 골목으로, 혹은 지게군들과 로점상들이 짙어가는 어둠속에 잠겨들어가는 어지러운 장마당 등을 거쳐 발가는대로 산보를 했다. 끝없이 걷는 그들에게는 대화도 즐거웠지만 침묵도 즐거웠다. 그들은 대학시절의 잊을수 없는 사변들에 대하여, 동창생들과 지식인들의 운명에 대하여, 혹은 자신의 신념에 대하여 압축된 금언같은 말로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자그마한 공원기슭에 나섰을 때 진수는 앙상한 가지들뿐인 네군도단풍나무들사이로 꺼져가는 황혼을 배경으로 어지럽게 푸들거리는 네온싸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난밤에 있은 교수들의 론쟁이 인상적인데… 어떤가. 박명찬교수의 지론은 매우 혁신적이야. 미국이 력사적으로 우리 나라를 침략해온것이 확실하다면 오늘의 미국도 침략자지 뭔가?》

동혁은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며 진수를 바라보고나서 그의 팔을 꽉 쥐였다놓으며 말했다.

《너도 사색을 중단하진 않았구나. 동감이다. 내 생각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건 이 땅이 미국의 처참한 식민지라는것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침략자들에게 가담하여 겨레를 배신하든가, 아니면 그들을 물리치는 투쟁의 전호에 뛰여들든가, 둘중의 하나를 택해야 하겠지.》

진수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말이여서 그는 마치도 급작스레 깊은 물속에 뛰여든 때처럼 생리적으로도 호흡이 가빠지는것을 느꼈다.

《네 말이 아마 옳은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중얼거린 진수는 열렬한 감정에 잡혀 동혁의 걸음을 막아서며 물었다.

《야, 너 솔직히 말해봐. 나를 아직 경멸하지? 친구라곤 생각지도 않겠지?》

동혁은 빨던 담배를 던지더니 두손을 옆구리에 짚고 맵짜게 말했다.

《경멸보다도 나는 너를 죽은것으로 봤다. 장면시기부터 비틀거리던 네가 5.16이 닥치자 주저앉았을 때 너는 죽었던거야. 네가 부자집 딸과 결혼하고 한때엔 깡패〈정권〉의 공보부 출입기자로까지 뽑혀다녔을 때 불같은 말로 4.19선언문을 쓰고 상처가 아물새없이 싸우던 너는 권력자들의 품속에서 출세를 꿈꾸는 속물로 떨어졌다. 하긴 천성적으로 예리한 두뇌를 가진 너는 군사깡패들과는 결코 의좋게 지낼수는 없었겠지. 그러나 너의 싸움은 기껏해야 스탕달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고독한자의 사치스런 영웅심리로 채색된 개인적인 반항을 넘지는 못했을거다.》

진수에게는 모욕에 가까운 가혹한 비판으로 들렸으나 언제나 자신이 불만스러웠던데다가 동혁과의 우정이 그리운 그는 꾹 참고 성큼성큼 앞서 걸으면서 말했다.

《부정하지 않겠다. 속물이였다. 그러나 비판하는 너에게는 어떤 자부심과 신념이 있는지 알고싶다.》

동혁은 한동안 침묵을 끌더니 깊은 한숨을 쉬였다.

《나도 괴로운 고민을 체험했다. 아무러한 새로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강도배들을 노려보기만 하면서 두손을 무릎우에 얹은채 증오에 지친다는건 죽음이상으로 고통이였어.

그 나날에 네가 없는것이 분했다. 만약에 세월도, 소낙비도 우리가 지난날에 흘린 피와 눈물을 씻어갈수 없는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서로 남일수 없고 투쟁을 중단할수 없어. 세상 돼가는 꼬락서닐봐라. 우린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계속 싸워야 한다!》

《동감이다. 몇해간의 직업생활은 나를 매질하는 채찍이였다. 그러나 무슨 투쟁을 할수 있단 말인가? 어둡고 피곤한 내 머리로는 무엇 하나 알수도, 할수도 없어. 도와달라. 그래도 너와 함께라면 뭘좀 할것 같은데…》

엷은 안개속에서 불그레한 빛을 뿜는 나지막한 가로등아래까지 온 진수는 혼자소리로 무엇을 기원하듯이 이렇게 말하며 불빛속에 선명히 드러나는 동혁의 조각적인 수척한 얼굴을 돌아보았다.

둘은 한순간 열띤 사색에 잠겨 흐려진 눈으로 서로 바라보며 부모로부터 잘못을 용서받은 장난꾸러기들처럼 빙그레 웃더니 거의 동시에 주먹으로 상대의 가슴을 때리며 소리내여 껄껄 웃었다.

우정이 회복되는데서 오는 말할수 없는 기쁨에서였다. 오래동안 상대를 모르고 지내온터에 단번에 상대를 너무 순진하게 믿을수 없다는 한줄기 경계심만이 서로 붙안고 씨름이라도 하면서 딩굴고싶은 발작적인 충동을 누를수 있게 하였다.

다시 어두운 둔덕길에 올라선 그들은 즐거운 기분을 유지하면서 말없이 걸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 관계는 이를테면 사상과 신념의 일치를 서로 확인한 기초우에서 이루어진 동맹관계라기보다는 전후 문제의 해결로써의 강화조약 같은것이여서 별치않은 의견충돌에 의해서도 다시 랭전이 벌어질수도 있다는 위구심이 피차 남아있었다. 그래서 동혁이나 마찬가지로 진수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신념이나 의혹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기를 주저하였다.

진수는 례컨대 비참한 민중을 구원할수 있는 사회세력은 어느 계층으로 보아야 할것인가 하는 문제를 묻고싶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그러한 세력은 있는것 같지 않았다. 지성인들과 소시민들도, 로동자들과 농민들의 움직임도 눈에 차지 않았다. 동정하고 사랑하면서도 제가끔의 숙명적인 수난자들로만 보일뿐 믿음은 가질 않았다. 바로 이 점으로 하여, 죄많은자들을 증오하면서도 그들을 쓸어던질 믿음직한 세력을 발견하지 못한탓으로 하여 그는 늘 우울했고 행동도 위축돼있는것이다. 다만 4.19나 6.3투쟁에서 위력을 떨친바 있는 학생운동에 대해서만은 한가닥 어설픈 희망을 품고있을뿐이였다. 동혁의 컴컴한 얼굴을 넘겨보던 진수는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솟은 아빠트로 벗을 끌었다. 동혁도 먼 낯으로 알고있는 시인 김성우가 그곳에 살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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