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제8장 증 인


3


흐린 하늘에서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렸다.

아사꼬는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청사로 가고있었다. 일이 있으니 급히 나와달라는 련락이 왔던것이다.

무슨 일일가? 이번 3개국 합동조사기간에 발굴한 자료에 근거하여 일본법률가협회에 제기할 기소문을 작성하는 동안은 련합사무실에 나가지 않기로 했는데… 아사꼬는 속으로 점을 쳐보며 백설이 덮인 도로를 따라 승용차를 몰아갔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번대머리 우익계공동대표가 아사꼬를 기다리고있었다.

《분망한 아사꼬상을 불러서 안됐습니다.》

《안되기야 뭐… 그런데 무슨 일로?》

번대머리가 나직이 말했다.

《오늘 우리 련합에서는 NHK텔레비죤방송국과 공동으로 급격히 여론화되고있는 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하여 전 일본군복무자와의 인터뷰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래야 우리 련합의 사회적명분도 설것이 아닙니까. 사실 이런 인터뷰야 이번에 3개국의 합동조사에 참여했던 아사꼬상이 주관해야 하는건데… 아사꼬상도 인터뷰에 참석해주기를 바랍니다. 진척시키고있는 〈위안부〉생존자의 기소자료를 묶는데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는 NHK텔레비죤방송국 면담실에서 한시간후에 있게 됩니다.》

아사꼬는 기자회견이 진행된다는 장소로 향했다.

크지 않은 면담실에는 적지 않은 청중들이 대기하고있었다. NHK텔레비죤방송국 촬영가들을 비롯하여 일본의 여러 신문사, 통신사 기자들도 취재준비를 다그치며 붐비고있었다.

잠시후 방송국의 편집을 담당한 사람과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의 번대머리공동대표가 면담실로 들어섰다. 그뒤로 여러명의 관계자들이 환자밀차에 앉은 전 일본군복무자를 데리고 따라섰다.

아사꼬는 깜짝 놀랐다. 다름아닌 히로미오빠였던것이다. 아마 며칠사이에 텔레비죤방송국과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에서 이 사업을 조직한것 같았다.

아사꼬는 관심을 가지고 회견과정을 주시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의 기대가 허물어지는것을 느꼈다.

히로미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처럼 일본군에 복무했던 사람들은 지난날 군부대에 와있던 〈정신대〉녀성들 특히 조선〈정신대〉녀성들에게 〈미안하다.〉고 머리를 숙이고싶은 심정을 금치 못할것입니다.… 그때 일을 더듬으며 나는 현재 우리 일본정부의 조치에 의해 전 일본군복무자들과 그 가족들이 참가하고있는 〈국민기금〉의 모금운동에 매진할 결심을 더욱 굳히고있습니다.…》

히로미는 분명 그 어떤 어용매문가가 써준 원고를 내려다보면서 그대로 읽고있는것 같았다. 문장투를 보면 기자회견을 주관하는 방송국의 편집을 담당한 사람과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의 흉측한 번대머리공동대표가 꿍꿍이를 하여 만든 원고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아사꼬의 뇌리를 쳤다.

히로미의 발언은 일본군의 성노예진상을 가리우고 현 일본정부가 내흔드는 《국민기금》에 대하여 극구 찬양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있었다.

아사꼬는 더이상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뭐? 정부가 조작해낸 그 너절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국민기금》사업에 적극 매진하겠다고? 그래, 개별적인 몇몇 민간인들에게서 거두어모은 《자선금》이나 《위로금》과 같은 몇푼의 돈에 《국민기금》이라는 딱지를 붙여 성노예피해자들의 손에 쥐여준다고 해서 일본정부가 일본군성노예범죄에 대한 국가적배상의 책임에서 벗어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쩌면 오빠가 저리도 어리석은 광대극의 주연까지 맡아나섰을가?… 에익, 더럽다!…

아사꼬는 기자회견도중에 조용히 퇴장하고말았다.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더 기승을 부리며 쏟아져내린다. 승용차에 오른 아사꼬는 발동을 걸면서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너절한 〈국민기금〉의 모금운동에 매진? 이건 너무하지 않는가!》

아사꼬의 승용차는 윙- 소리를 내지르며 눈판우로 미끄러져갔다. 끝없이 쏟아져내리는 물기를 머금은 주먹같은 눈송이는 머리 속의 생각처럼 꼬리를 물고 승용차 앞유리에 철떡철떡 들어붙는다. 유리닦개가 부지런히 가동을 해도 미처 처치하지 못할 지경이다.

자기 법률사무소로 향해 가던 아사꼬는 백설이 강산같이 내려쌓인 어느 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외투깃을 추켜올리고 눈발속에 우두커니 서있던 아사꼬는 분을 삭이지 못해 훅- 훅- 하며 입김을 내불었다.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 히로미오빠! 그래 백주에 랍치당하고 강제련행되여 끌려간 그 녀성들, 일본군의 성적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성도구》로 취급당하다 못해 무참히 살해까지 당한 그 불행한 녀성들이 아직도 《정신대》원들이라고? 그래서 머리가 숙어진다? 철면피한 소리!… 그 호색마귀와 같은 자기 중대장의 변태적인 성행위를 직접 목격하고서도 감히 그런 말을 내뱉다니…

아사꼬는 히로미오빠가 기자회견에서 하던 말을 다시금 되새겨보다가 퉤- 하고 침을 내뱉았다.

가슴속에서는 그를 타매하는 감정이 무섭게 용솟음치고있었다.

아, 그렇게 놓고보면 히로미오빠도 전 일본군복무자로서 죄의식을 똑바로 느끼지 못하는 얼간이들의 축에 속하지 않는가!…

뒤미처 아사꼬의 생각은 아직도 일본군성노예범죄의 책임을 민간업자들에게 밀어붙이려고 별의별 오그랑수를 다 쓰는 일본정부를 향해 날개를 펼쳤다.

법률적으로 해부해보아도 일본군은 정부의 관여와 적극적인 뒤받침속에서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녀성들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집단적으로 강간 및 륜간행위를 저지른 특대형범죄자들의 무리이다!

이에 대해서는 응당 일본정부가 공식적인 사죄를 하고 진상을 규명해야 하며 책임있는 주범들에게 형벌을 가하는 동시에 국가적인 배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그 모든것을 회피하고 어물쩍 굼때면서 세론을 눅잦혀보려는 의도에서 《국민기금》안이라는것을 들고나왔다. 그런데 누구보다 먼저 그 가소로운 《국민기금》안을 타매하여야 할 히로미오빠가 거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모금운동에 매진을 하겠다는 어리석은 말까지 하였다. 이건 불행한 성노예녀성들에 대한 우롱이고 모독이며 구경에는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는것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아사꼬는 집마당가로 들어섰다. 2층의 맏손녀가 있는 방에서 유정한 시내물소리와 같은 아름답고 정서적인 선률이 울려나왔다. 귀에 익을대로 익은 피아노곡 《처녀의 기도》였다. 아사꼬가 제일 사랑하는 곡이였지만 이 순간에는 그것도 귀찮았다.

집에 들어서니 맏손녀가 아사꼬에게 매달렸다.

《할머닌 또 얼굴에 구름이 꼈네. 잉-》

아사꼬가 중국에 갔다온 다음부터 심각해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된 손녀는 때때로 이렇게 응석을 부리는척 하며 할머니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려고 무척 왼심을 쓰군 한다. 방금 《처녀의 기도》를 연주한것도 바로 그때문이였다.

《으응?… 일없다, 일없어. 요 귀여운것아.…》

아사꼬는 어떻게 하나 자기를 기쁘게 해주려고 마음쓰는 손녀의 기특한 모습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저녁상을 물린 아사꼬는 손녀에게 나직이 말했다.

《얘야, 할머닌 피곤해서 자리에 먼저 눕겠다. 너도 피아노공부를 마저 하고 잠자리에 들거라.》

《네. 할머니, 편히 쉬세요.》

맏손녀는 자기 방으로 가서 피아노앞에 마주앉았다.

한동안 부드럽게 《처녀의 기도》를 연주하던 그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침대에 누운 아사꼬에게는 베토벤이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형상하였다는 시작동기의 음조가 마치 그 무엇을 예고하는 경종처럼 느껴졌다.

아사꼬는 눈을 감았다. 극적인 폭발로 격동적인 화폭을 펼치며 격렬하게 치솟아올랐다가는 잦아들고 잦아들었다가는 다시 절정을 향해 도도히 굽이치는 피아노소리를 듣노라니 낮에 있었던 일이 또다시 마음을 괴롭혔다.

히로미… 히로미, 그는 아직까지도 일본군《위안부》제도를 대하는데서 별로 죄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있다. 말로는 죄스럽다고 하지만… 유감스럽다.… 하다면 무엇때문에?…

옳다, 그것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원래 공창과 사창의 력사적뿌리가 깊은 섬나라에서 태여나 성장하다보니 의식수준에서 녀성학대사상이 낳은 비인륜적행위 같은것에 대한 반성의식이 지나치게 둔해졌다.

그런데다가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 그 저렬아적인 일본인들의 의식은 그 행위가 어떤것인가를 따져보는것보다 상부의 명령에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것이 더 높은 가치관을 가지는것으로 화석화되였다.

이로부터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행위가 낳은 그 모든 죄과와 책임을 《상부의 명령이였다.》고 곱씹는 자아의식이 가리키는대로 우로 전가시키였다. 하지만 최고위치에 있는 《천황》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였으니 그 모든 죄의식에서 면제되였다.…

바로 이때문에 전후 반세기가 넘도록 우리 야마도민족은 《반성도 배상도 모르는 족속들》이라는 부끄러운 말만 듣고있지 않는가!

일본군《위안부》제도문제 하나만 놓고보아도 그렇다. 그때 군장병들이 가졌던 의식도 《위안부》제도는 자기들을 위해, 나아가서는 《대동아성전》의 승리를 위해 군부우두머리들이 고안하여 《천황》의 어지하에 수립된, 그 누구도 거부할수 없는 제도였다는 절대적인 의식이였다.

바로 그렇다! 침략을 《성전》으로 미화하고 《위안부》를 《천황》의 하사품으로 받아들이며 감격해서 수용한 일본군의 철면피한 절대의식, 총끝에 총창을 꽂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기에 앞서 거기에 피임고무주머니를 씌우고 《위안부》들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것을 전쟁승리의 담보로 본 일본군의 광적인 절대의식, 오늘의 세계에서는 도저히 통하지도 않고 용납되지도 않는 바로 그 치졸하고 용렬한 절대의식이 아직도 일본사회에서 뻐젓이 배회하고있다. 아, 부끄럽구나, 우리 야마도민족의 야만성과 저렬성이…

교향곡 《운명》을 연주하는 손녀의 피아노소리는 절망적인 무서운 폭발을 형상하면서 질풍같이 노도친다.

아사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다가서니 랭랭한 표정을 지은 창백한 정원에서 노호한 겨울바람이 삼단같은 눈갈기를 말아올리면서 기승을 부린다. 귀전을 두드리는 피아노소리, 눈앞에 펼쳐진 눈보라… 아사꼬의 심리는 더욱 날카로워지기만 했다.…


×


《오빠, 어쩌면 그렇게 말할수 있나요. 네?》

《뭘 말이냐?》

히로미는 느슨한 웃음을 지으며 부드러운 눈길로 아사꼬를 쳐다보았다.

8살 난 아사꼬를 거지무리속에서 건져다 기르던 때로부터 이날이때까지 아사꼬가 어떤 심술을 부려도 히로미의 표정은 늘 그렇게 부드러웠다.

했으나 아사꼬는 여전히 성격을 살려 맵짜게 내쏘았다.

《박순정과 같이 일본군에 강제로 붙잡혀갔거나 랍치, 유괴되여 전장에까지 끌려다니며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한 조선의 불행한 녀성들을 어떻게 〈정신대〉원들이였다고 말할수 있나요. 그들이야 엄연하게 일본군성노예였지. …》

히로미는 도수높은 안경너머로 아사꼬를 건너다보았다.

《오, 내가 〈정신대〉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실언을 했구나.… 당시엔 〈천황〉도 그렇게 불렀고 군대내에서도 다 〈정신대〉라는 말로 통했으니깐.… 그리고 인터뷰를 주관한 텔레비죤방송국과 너희네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의 번대머리대표도 그렇게 말할걸 요구하더라니 그렇게 됐구나. 아사꼬야, 내 잘못했다. 그건 접수한다. 그리고 또 뭐냐?… 네가 이마살을 잔뜩 찌프리니 이 오빠의 마음이 좋지 않다.…》

아사꼬는 그때에야 그 번대머리공동대표가 왜 자기에게 기자회견시청을 권고했으며 왜 그날 그리도 의기양양했는가를 짐작할수 있었다.

아사꼬는 오빠앞에서 그사이 마음을 옹쳐맸다 풀었다 하던것을 죄다 쏟아놓았다. 히로미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아사꼬는 너무도 격해져 말을 떠듬거리기도 하고 잠시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머리속에 채우다 못해 가슴속에까지 꽉 채운 생각을 말로 다 쏟아놓기에는 목구멍이 너무도 좁았다.

《일본군은 정말, 정말 너…무했어요. 지독한 야만행위를 했…어요. 어떻게 그렇듯 남의 나라 녀성들을 몇십만명이나 성노예로 부려먹다가 죽이고 버리고 했을수가 있었는가 말이예요? 그런데도 오빠는 그… 그 철면피한 사람들이 고안해낸 〈국민기금〉의 모금운동에 매진하겠다고 인터뷰에서 공공연히 말했으니 이게 무슨…》

히로미는 눈확이 붉어졌다.

《네…네가 한 말이 옳…다, 옳아. 그른데가 없…어, 없구말구.… 나뿐이 아니라 당시엔 누구나 그저 〈천황〉의 말이면 그게 곧 법인줄로만 알았고 군부의 지시면 거기에는 무조건 집행할수밖에 없는줄로만 알았지. …그런데 오늘 네 말을 새겨들으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물론 그 시대를 횡단한 당시 일본남아들은 죄다 멍텅구리였어. 그저 그것밖에 모르는 호색광들이였어! 그러구보니 정말로 〈천황〉과 도죠는 세계최대의 유곽을 운영한 주인들이였구나.… 어휴- 우리 세대가 찍어온 행적이 불미스럽구나! 〈국민기금〉문제에 대해서도 내가 오인했고… 정부가 〈국민기금〉단체를 창설하여 개별적인 사람들이 모금한 일부를 가지고 〈위안부〉피해자들을 위로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했을 때 나는 박수까지 쳤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느냐.… 철저한 진상규명도 없이 그것도 정부의 재원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낸 몇푼 안되는 돈에 국민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피해자들을 위한 위로금을 조성한다는건 동에도 닿지 않는 아주 후안무치한 행위야. 내가 실언을 많이 했구나.… 용서해라.》

히로미의 진심에 찬 반성에 성이 꼭두까지 치밀어올랐던 아사꼬의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아사꼬는 동안을 두었다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오빠, 아까도 말했지만 실지 우리 선배들 특히 일본군군인들은 너무했어요. 너무도 잔혹했고 너무도 색에 밭았고 너무도 야만같은 짓을 많이 했어요.》

히로미는 후-유 하고 한숨을 내불었다.

《정말 우리 세대의 행적은 돌아볼수록 부끄럽구나.》

아사꼬는 실성한듯 머리를 푹 떨구고있는 히로미의 손을 꼭 잡았다.

《오빠, 이젠 나이도 많고 건강도 편치 않은데 내가 너무 지나쳤다면 용서하세요.》

《오냐. 난 괜찮다. 그런 사실을 다 알고도 오늘까지 살아왔는데… 그저 지금도 생각하면 자꾸 가슴이 저려나서 그러는거다. 난 오히려 〈위안부〉문제를 그러안고 돌아가는 네가 더 근심된다. 심장도 그리 든든치 못한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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