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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4일

평양시간


제 37 회


제6장 력사는 인멸되지 않는다 (1)


10


중미련합군의 포병은 보산시의 서남쪽 노강기슭에 틀고앉아 건너편에 있는 일본군진지를 향해 불을 토하고있었다. 구불떡거리는 검푸른 수면우로 수십갈래의 불줄기가 쉭- 쉭- 소리를 내지르며 쏟아져날아오는 그 모양은 흡사 노강이라는 거대한 백룡이 분노하여 아가리를 쩍 벌린것만 같았다. 이발로 철판을 갉아내는듯 한 아츠러운 굉음을 울리며 날아오는 포탄에 《요꼬마따진지》는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포탄은 대개 진지의 정수리를 물어뜯으며 작렬하였다. 더러는 진지후면 수무천이 내려다보이는 산경사면으로 날아와 터졌다. 진지에서 도망치는 일본군패잔세력을 소멸할 목적으로 그렇게 쏘는것 같았다.

《요꼬마따진지》는 이미 저항능력을 다 잃은 상태였다. 쉼없이 포탄을 내쏘는 중미련합군은 권투장에서 쓰러진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주먹을 내두르는 무례한 권투선수를 련상시켰다.

이제는 련합군의 보병력량이 대렬합창을 하며 진지우로 올라가도 무방할것이다. 그러나 련합군은 계속 불질을 하였다. 아예 진지안팎을 깨끗이 《불소독》할 심산인것 같았다.

후두둑- 후두둑- 날이 선 돌멩이들과 파편쪼각들이 송림을 마구 도리깨질을 하는데 서너아름 되는 흙기둥과 옛말에서 나오는 귀신의 머리태같은 나무뿌리들이 공중제비를 하며 길길이 날아오른다.

그런 속을 뚫고 대여섯명의 성노예들이 죽기내기로 진지뒤쪽 산경사면을 따라 내리달리고있었다. 맨앞에는 순정이가 섰다. 순정의 입에서는 헉- 헉- 소리가 났다. 우에 걸친 군복상의는 어느새 걸레짝이 되였다. 팔소매 한쪽이 어디에서 떨어져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잔솔우듬지를 거머쥐고 가까스로 발을 내려짚던 그가 칡넝쿨에 걸채여 중심을 잃고 나동그라졌다.

《아이쿠!-》

《아니? 순정아!-》

뒤에서 숲덤불을 헤치며 급한 경사지로 미끄러져내려오던 화자가 순정에게로 달려왔다.

다행히도 순정은 잡관목이 들어찬 깊숙한 웅뎅이속에 굴러들어가 있었다. 전날 밤까지 내린 비로 웅뎅이속에는 물이 질척질척했다.

화자가 순정을 부축하여 웅뎅이를 빠져나오려는데 《쉿- 콰광!-》하며 눈먼 박격포탄이 몇발자국앞에서 터졌다. 둘은 폭풍에 날려 도로 웅뎅이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잔등과 머리우에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던 흙부스레기와 솔가지들이 덮씌워졌다.

그런데 다음 순간 눈앞에는 포탄이 터지는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졌다.

도깨비털같이 부시시한 머리칼속에 버무려진 흙과 검부레기를 털어내며 머리를 들던 순정은 혼비백산하여 벌렁 뒤로 나자빠졌다.

《아이구머니나!-》

코앞에 만신창이 된 일본군장교의 시체가 나딩굴고있었던것이다. 금방 직탄을 맞고 폭풍에 날려온것이 분명했다.

백화자도 눈을 휘뜩 뒤집고 《악!-》 소리를 내지르며 순정이와 한동아리가 되여 까투리새끼처럼 머리를 구겨박았다.

포탄이 튀는 저쪽산릉선에서 도망치는 일본군군인들의 모습이 얼핏얼핏 보인다.

순정과 화자는 한참 씨름질을 해서야 웅뎅이속에서 기여나와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함께 방공호를 뛰쳐나왔던 다른 녀자들은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각기 살구멍을 찾아 골짜기아래로 정신없이 들고뛴것 같았다.

순정이와 화자가 간난신고를 다하며 수무천기슭에 당도했을 때에는 총포소리도 뜸해진 어슬녘이였다.

골짜기에는 괴괴한 정적이 깃들었다. 골바닥을 핥는 바람결에 실려오는 피비린내와 초연내가 코를 찌른다. 지독한 냄새에 속이 메슥메슥해났다.

간밤에 내린 비로 범람하는 수무천만이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와- 와- 하고 함성을 지른다. 가녁의 무성한 숲속에서 전쟁에는 무관심한 풀벌레들이 울어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더는 갈길이 없단 말인가. 그럼 여기서 끝장을 보아야 하는가? 그런데 함께 뛰쳐나온 사람들은 다 어데로 갔을가? 죽었는가?… 엄습해오는 공포와 발뒤축을 무는 죽음앞에 선 순정과 화자는 허둥거리기 시작하였다.

누런 탕수를 왈칵왈칵 토하며 동이만 한 바위까지 와당탕 퉁탕하고 굴리는 수무천은 순정이와 화자를 한입에 삼켜버릴듯 기회만 노리고있었다. 뒤에서는 쇠도깨비가 이발을 갈며 쫓아오고 앞에서는 물도깨비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있었다. 불쌍하고 가련한 녀자들의 눈에서는 눈물만 펑펑 쏟아져내렸다.

가슴속에서 조이고조이던 마음의 탕개가 툭 끊어져나간듯 화자는 시누런 감탕이 질척질척한 개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아 넉두리를 시작하였다.

《순정아, 난 더 못 가겠어. 가다가 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여기서 죽자꾸나. 이렇게 살아야 죽는것보다 못한데 무엇때문에 이런짓을 한단 말이냐. … 아이고- 난… 난… 여기서 죽을래!-》

반나마 실성해버린듯 화자는 두손으로 감탕을 철떡철떡 내려쳤다.

그 모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순정은 입술을 옥물었다.

《화자야, 우리가 이러자고 죽을힘을 다하여 여기까지 왔니? 그럴바엔 진지에서 죽어버리는게 더 편했을텐데… 저 왜놈부상병들과 함께 말이다.》

그 말에 화자는 제정신이 들었다.

《뭐? 왜놈부상병들과 함께?》

이렇게 말꼭지를 떼놓은 그는 《하하하… 으하하하…》 하고 미친듯이 웃어댔다.

순정은 마치 누구를 심판하는 법관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화자,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 해. 만약 우리가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운신도 못하는 그 쪽발이부상병들과 함께 이미 저승으로 갔을게다. 너도 똑똑히 보았지? 장교들과 성한 놈들은 다 도망치는걸, 〈전진훈〉을 그렇게 목터지게 웨쳐대던 놈들이 중상을 당한 저희들의 병신짝들을 방공호속에 가두어넣고 수류탄벼락을 들씌우던것을 말이야. 그런 놈들이 우리 같은 조선사람들을 그냥 살려놔둘것 같니? 그래도 너나 내가 왜놈들이 바라는대로 여기서 죽음의 길을 택해야 하겠는가 말이다!》

화자는 순정의 말에 눈만 데룩거릴뿐 아무 응대도 못했다. 길길이 자란 수무천기슭의 풀대만이 그 말에 호응하듯 바람을 안고 와슬랑거린다.

순정의 가슴속에서는 저들만 살겠다고 꼬리를 사리던 일본군장교들에 대한 증오심과 함께 반항심이 굴뚝처럼 치솟아올랐다. 극도에 달하는 증오심이 불러내는 반항심은 무서운것이다. 그런 반항심은 때때로 이젠 영낙없이 죽었구나 하는 사람의 마음을 휘딱 뒤집어놓기도 한다.

마음속에 다시 탕개줄을 건 순정의 눈앞에서는 아까 방공호의 제일 안쪽구석에서 벌어진 무서운 광경이 펼쳐졌다.

…《골짜기악당》을 비롯한 장교들이 전부 진지에서 도망가버린 뒤였다.

땅딸보 겐지가 십자표가 달린 약가방을 멘 군의관 한명과 목대가 새모가지같은 위생병 한명을 데리고 방공호의 제일 안쪽으로 급히 들어갔다. 위생병의 목과 어깨에는 군용물통이 수두룩이 걸려있었다.

겐지가 생색을 내며 소리쳤다.

《제군들!- 물을 길어왔으니 어서 물이나 마시라!》

위생병이 메고 온 물통이 전부 부상병들에게 안겨졌다.

겐지가 군의관에게 지시했다.

《빨리 약을 공급하라.》

《하잇!》

군의관은 웬일인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약가방을 풀어헤쳤다.

부상병들에게 불그스레한 알약이 공급되였다. 의무적이였다. 1인당 2알씩 차례졌다. 부상병들은 약을 입에 넣기 바쁘게 꿀꺽꿀꺽 물을 들이켰다. 승강내기를 하는것 같았다.

방공호입구를 나서는 겐지의 입가에서 독기가 서린 웃음이 새여나왔다.

《안됐네. 제군들, 부디 고이 잠들라.》

겐지가 뇌까리는 소리에 방공호입구옆에 앉아있던 순정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부상병들이 누워있는쪽을 바라보았다.

부상병들은 가슴을 쥐여뜯다가 몸을 비틀며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어떤자들은 그대로 잠들어버린다. 죽어가는 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며 찾는자들도 더러 있었다.

겐지가 부상병들에게 공급하도록 지시한 약은 염화수은으로 만든 승홍정이라는 일본군의 자결용알약이였다. 당시 일본군은 왜왕을 위해 《옥쇄》하는 마지막수단으로 승홍정을 리용하였다.

순정은 라시오의 《잇가꾸로》에 있을 때 한 성노예녀성이 일본군위생병에게서 몰래 훔친 승홍정을 먹고 숨지는것을 목격한 일이 있어 겐지의 잔악무도한 행위를 단번에 알아챘다.

바로 이런것을 목격했기에 그때 부들부들 떨고있던 화자에게 방공호에서 탈출하자고 하면서 먼저 뛰쳐일어났던것이다.

순정의 가슴속에서는 겐지만이 아니라 《골짜기악당》, 외눈깔중대장 등 천하의 야수들이며 호색광들인 왜놈쪽발이들에 대한 증오심이 부걱부걱 괴여올랐다.

그의 가슴속에 서리고서린 증오심은 강한 반항심을 불러일으켰다.

무엇으로써도 달랠수 없는 그 반항심은 순정이로 하여금 이발을 사려물게 하였다.

《그래, 그래. 죽지 말아야 해! 기어코 살아서 원쑤를!-》

순정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수무천기슭으로 허청허청 걸어나갔다. 사품치는 수무천을 건느자는 심산이였다.

그는 물속에 한발을 내짚었다. 급류하는 물살에 기슭이 패일대로 패인 골개강은 들어서자마자 한길이였다. 물살에 말려든 순정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기우뚱하였다.

아차하면 끝장이 나는 그 찰나 화자가 재빨리 순정의 팔을 잡아 홱 나꾸챘다.

순정은 간신히 끌려나와 강기슭에 쓰러졌다. 화자도 함께 주저앉았다. 그가 기염을 토했다.

《이 우둔한것아, 너 죽자고 그러니?》

《그러면 어떡한단 말이냐! 우린 어떻게 하나 수무천을 건너가야 해. 그래야 살수 있어. 우리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 하던 왜놈쪽발이들의 눈깔이 휘뜩 뒤집히게 말이야!…》

순정은 화자를 그러안고 목터지게 부르짖었다.

머리우에서는 언제 날아왔는지 까마귀들이 날개를 너풀거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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