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6장 력사는 인멸되지 않는다 (1)


6


귀주성 안순을 떠난 두대의 승용차가 곤명을 향해 달리고있었다. 차창밖으로 《곤명 26㎞》라는 리정표가 언뜻 지나갔다.

앞차에는 황정식과 과진량 그리고 팔순에 가까운 한 로파가 타고있었다. 파마를 한 로파의 머리칼은 모시바구니같아 얼핏 보면 큰 스키모를 쓴듯싶다. 늙은이의 모색은 비록 얼굴에서 살이 다 빠져 몹시 쇠잔해보였지만 젊은 시절의 예쁘장한 모습을 상상할수 있게 해주었다. 처녀때는 보통 곱지 않았을것 같았다. 뒤차에는 그 로파의 아들과 며느리가 타고있었다.

이 로파가 바로 1939년 여름 남경에 있던 군인구락부마당에서 박순정이와 헤여졌다가 그후 송산전역에서 다시 만나 함께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했다는 백화자, 거의 60년전에 《요꼬마따진지》뒤쪽 골짜기로 흐르는 수무천기슭에서 박순정과 갈라진 호영란(중국식으로 바꾼 이름)이였다.

백화자가 살아있다는것을 완전히 확인한 사람은 합동조사단 성원들중에서 황정식과 과진량뿐이다. 박순정본인도 백화자가 수무천의 물귀신이 된것으로 알고있었다.

합동조사단 성원들이 며칠간에 걸쳐 곤명항일력사박물관 원탁회의실에서 박순정과 리창조의 피맺힌 과거사를 청취하고 곤명호텔에 돌아온 다음날에 있은 일이다.

이날 조사단은 제2차 세계대전종결직후까지 련합군이 포로수용소로 리용했던 곤명녀자중학교를 돌아보게 되여있었다.

아침에 과진량이 박순정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 백화자라는 녀성이 강릉출신이였다고 했는데 정확합니까?》

《아니,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렀대두 내가 그 백화자를 잊겠소. 화자의 고향은 분명 강릉이요. …화자는 17살때 강릉에서 쪽발이들의 군용차에 실리워 평양역까지 와서 나와 같이 기차를 타고 남경까지 끌려갔댔소. …그후 송산에서 다시 만난 후 싸움판에서 나랑 함께 도망치다가 수무천에…》

《아, 아.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건 그렇다치고 지금이라도 그 백화자녀성을 만나면 알아볼수 있을것 같습니까?》

《에이구, 선생두 무슨 롱을 그렇게… 일본놈들이 망할 때 수무천귀신이 된 화자가 어찌 살아있을라구…》

박순정이 손을 홰홰 내저었다.

그러나 과진량은 사람좋게 웃으며 박순정에게로 바싹 다가갔다.

《글쎄, 그가 혹시 살아있다면 말입니다.》

《아, 그러문야 내 제꺽 알아보지. 백화자의 이 왼쪽귀등에 팥알만큼 한 꺼먼 기미가 있었소. 그리구 여기 숨구멍이 있는덴 일본장교가 말을 안 듣는다고 끄뎅이를 잡아당길 때 머리칼이 뭉청 빠져 뻔뻔해진 도장자리 같은게 나있구.…》

과진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순정의 말을 들어보면 백화자가 그때 수무천을 건너가다가 물에 빠져죽은것으로 되여있다. 그렇다면 안순에서 사는 호영란은 박순정이 잘 아는 백화자가 아니란 말인가?… 그러나 호영란은 《와까하루》라고 부른 박순정을 기억하고있지 않는가. 그리고 박순정과 함께 있을 때는 자기를 백화자라고 불렀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하여튼 이 문제는 경증성교수와 조선측 황정식단장에게 로출시켜 협의해보자.…)

박순정의 입에서 나온 백화자란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자기가 장악하고있던 안순에 있는 일본군의 성노예생존자 호영란에게로 생각의 촉수를 뻗쳐나가던 과진량은 자기의 이런 견해를 경증성과 함께 황정식에게 가서 그대로 다 터놓았다.

과진량의 말을 들은 황정식은 흥분하였다.

《아니, 그 녀성이 성노예생활을 하며 끌려다닌 행적이 박할머니와 비슷하단 말입니까? 그리고 자기 이름을 그때 백화자라고 불렀고 〈와까하루〉라고 부른 박순정할머니의 이름도 기억하고있단 말이지요?… 그럼 당장 대면을 시켜야지요.》

황정식은 그 녀성을 당장 데려오자고 하였다.

하지만 과진량은 머밋거렸다.

《그런데 문제는 박순정의 말과 달리 그는 강릉출신이 아니라 부산출신의 녀성이라는것입니다. 내가 지난 8월에 만났을 때에도 자기는 17살에 조선의 강릉이라는 곳에서 남경으로 끌려가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녀성은 이제는 기억력도 좋지 못합니다. 어제는 저렇게 말하고 오늘은 이렇게 말할 때가 드문합니다. 그리고 박순정이 말한것처럼 그의 귀등에 팥알만 한 기미가 있는지, 머리우에 도장자리 같은것이 있는지 확인해보지도 못했고…》

황정식은 웃으며 말했다.

《과선생, 뭘 그렇게 올리재구 내리재구 하십니까. 이제 당장 저와 함께 안순으로 가서 백화자라고 하는 그 할머니를 만나봅시다.》

《백화자를요? 황선생,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 녀성은 이름도 이미 해방후에 중국식으로 고쳤습니다. 호영란이라고 말입니다. 백화자라는 이름은 옛날 성노예로 끌려가기 전에 부르던 아명이였다고 합니다.》

황정식의 마음속에서는 벌써 결심이 내려졌다.

《아, 그거면 가능성이 50%를 넘어섰다고 볼수도 있지 않습니까. 중국땅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옛날 백화자라고 부르던 녀성이 있어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 재지 말고 빨리 우리 함께 그가 살고있다는 곳으로 가봅시다.》

이렇게 되여 그저께 아침 다른 조사단성원들이 곤명녀자중학교에 대한 현지편답을 진행할 때 황정식과 과진량은 통역원처녀를 한명 데리고 곤명을 떠나 호영란이 있는 귀주성 안순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로 갔던것이다.

가서 만나보니 황정식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백발이 덮인 호영란의 정수리에는 뜸자리 같은것이 나있었고 귀등에 팥알만 한 기미도 있었다. 그는 박순정이라는 조선인성노예를 《와까하루》로 불렀다는것도 기억하고있었다.

박순정의 말과 차이나는것은 백화자의 고향이 강릉이 아니라 부산이라는것이였다.

그러나 황정식과 과진량은 박순정이 백화자를 강릉출신의 녀성으로 믿을수밖에 없었다는것을 인차 납득하였다.

안순공안국에 있는 호영란의 개인문건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던것이다.

《…

호영란은 조선의 부산에서 태여났다.

일제침략자들이 조선을 강점하고있던 시기인 1922년에 출생한 그의 본명은 김정자였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부산고무공장에서 로동을 하였다.

정자가 7살 나던 해인 1929년에 그의 아버지가 일하는 부산고무공장에서는 부당하게 낮춘 임금을 그나마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일본인공장주들의 처사를 반대하는 로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다.

그때 정자의 아버지는 수백명의 로동자들과 함께 파업의 앞장에 나섰다가 일제경찰의 칼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남편을 잃은 정자의 어머니는 7살 나는 정자를 데리고 막심한 고생을 하다가 먼 친척이 살고있는 강릉이라는 곳으로 거처지를 옮기였다.

정자의 어머니는 그후 강릉에 있는 딸 하나를 가진 백 아무개라는 홀아비에게 재가를 하였다. 그때 이붓아버지가 정자의 이름을 백화자로 고치도록 하였다. 이붓아버지에게 달린 10살짜리 딸애의 이름이 백화순이였으므로 〈화〉자를 돌림하여 그렇게 고쳤다고 한다.

백화자가 13살때 그의 어머니는 병으로 사망하였다.

백화자는 17살 나던 해에 강릉에서 일본군헌병대의 마수에 걸려 강제적으로 중국 남경으로 끌려가게 되였다.

백화자는 남경의 자금산근방에 있던 일본군〈위안소〉에서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면서 〈하나꼬〉로 불리웠다.

그후 백화자는 송산전역에서 일본군성노예로 치욕을 당하다가 일제가 패망한 후 귀국을 포기하고 이름을 호영란으로 고쳤으며 중국국적을 가지고 마음착한 중국인양아들의 부양을 받으면서 안순에 거주하여 살고있다.…》

자료의 맨 마감장아래에는 호영란본인의 또렷한 지문까지 찍혀져있었다.

황정식과 과진량이 호영란의 집에 가서 옛날일들에 대하여 물었을 때 호영란은 자기가 백화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강릉에서 군용차에 실려 평양역으로 갔던 일이며 그곳에서 박순정을 처음 만났던 일도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호영란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난 황정식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 놀라지 마십시오. 할머니가 기억하고있는 〈와까하루〉로 불리우던 그 박순정할머니가 지금 곤명에 와있습니다. 어서 가서 만나보십시오. 어서 떠날 차비를 하십시오.》

호영란은 그 말에 펄쩍 놀랐다.

《아, 아니. 〈와까하루〉가 왔다구요? 정말 오래 살면 이렇게 귀신이 되여서도 만나게 되는가! 어허허-》

호영란은 물먹은 소리를 냈다.

황정식의 입가에서 오래간만에 웃음이 피여났다.

(정말 가리울수 없는것이 력사야. 하긴 그래. 력사는 인멸되지 않으니까. 더구나 이런 증인들이 살아있는데야…)

이렇게 되여 지금 황정식과 과진량은 호영란을 데리고 곤명으로 가고있었다.

승용차 뒤좌석에 황정식과 호영란, 통역원처녀 이렇게 셋이 나란히 앉았고 과진량은 운전사 옆좌석에 자리를 잡고있었다.

황정식은 차창밖으로 시선을 던진채 이제 곤명호텔에서 벌어질 극적인 광경을 그려보며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혹시 심장이 약한 순정할머니가 뜻밖의 상봉앞에서 졸도하지나 않을가? 아니, 그럴것 같지는 않다. 지금 상태로 보아서는 오히려 호영란할머니가 쓰러질수 있어.…)

황정식은 근 60년전에 헤여진 두 늙은이의 상봉끝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길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럭 겁이 났다. 호영란의 아들, 며느리도 자기네 어머니의 심장이 대단히 쇠약하다고 하면서 구급대책까지 세워가지고 함께 따라나섰던것이다.(호영란의 며느리는 의사였다.)

황정식은 곁에 앉은 호영란의 손을 잡고 《할머니,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하고 나직이 속삭이였다.

훌 불면 날아갈듯 졸아들대로 졸아든 몸에 볼이 훌쭉한 호영란은 통역원처녀에게 몸을 의지한채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과진량은 달리는 차안에서 손전화기를 꺼내들고 곤명에 있는 경증성과 통화를 하였다.

《과진량입니다.… 네, 네. 지금 곤명시내에 들어서고있습니다.… 네? 리창조로인이 방금 도착했다구요. 잘됐습니다.… 그야 그렇지요. 네. 호할머니의 몸상태는 현재까지 별다른것이 없고 기분상태도 량호한 편입니다. 몇분후엔 호텔로 들어섭니다. 알겠습니다.》

과진량이 전화기를 손에 쥔채 황정식에게 말했다.

《황선생, 방금전에 리창조로인도 호텔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지금까지의 일은 다 제대로 되였는데 이제 늙은이들의 상봉이 근심됩니다. 너무도 뜻밖이여서 혹시…》

《글쎄말입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과진량이 몸을 돌려 뒤좌석에 앉은 호영란의 손을 꼭 잡았다.

《호할머니, 마음을 푹 늦추고있다가 이제 박순정할머니와 리창조로인을 만나 포옹한 다음에는 마음내키는대로 실컷 우십시오. 땅을 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속에 맺혔던것도 다 저절로 풀립니다. 꼭 그렇게 하십시오.》

그가 우는 시늉까지 하자 통역원처녀가 소리내여 웃었다. 호영란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승용차안의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성격이 좋은 과진량은 사람들의 마음을 주무를줄도 아는 력사가였다.

황정식도 웃음을 금치 못했지만 속이 저려나는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이제 두 할머니들이 아픈 가슴을 얼마나 두드리고 눈물은 또 얼마나 쏟을것인가. 리로인은 또… 흔히 상봉이란 기쁘고 즐겁다고 하는데 이런 상봉을 두고서는 과연 뭐라고 해야 하는가. 아-)

아닌게 아니라 박순정과 호영란의 상봉은 눈물의 바다속에서 이루어졌다.

방에 들어선 호영란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돼가지고 자기를 향해 허청거리며 마주 오는 박순정을 멍청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무슨 일이 생길가봐 아들과 며느리가 제꺽 그를 부축하였다.

녀의사와 김진희의 팔에 의지하여 걸음을 떼던 박순정도 떡 굳어져버렸다.

그의 곁에 서서 호영란에게로 다가가던 리창조도 돌미륵이 되였다.

세 로인들의 상봉장면을 노리고 촬영기를 휘두르며 부산을 피우던 촬영가들은 물론 조사단성원들도 숨을 죽이고 호영란과 박순정, 리창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왜? 혹시?… 세월이 너무도 흘러 못 알아보는가?… 이런 생각들을 실은 시선들이 한순간 허공에서 맹렬하게 부딪쳤다.

김진희가 귀가에 대고 뭐라뭐라해서야 정신이 든 박순정의 눈이 커졌다.

《뭐, 뭐? 백화자? 어데… 어데?》

박순정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겨 호영란에게로 한발자국 다가섰다.

호영란도 눈을 흡뜨더니 《아, 아! 순…정이! 〈와…까하루!〉-》 하며 두팔을 벌렸다.

두 로인은 무릎을 꿇고앉아 서로 부둥켜안았다.

박순정은 오열을 터뜨리는 속에서도 잊지 않고 《어…디 보자. 네…가… 백…화자가 정말 옳긴 옳으냐?》 하며 호영란의 왼쪽귀바퀴를 뒤집어본 후 그의 머리를 잡고 정수리의 머리칼을 헤집어보았다.

《옳구나! 백화자!- 네가… 네가 살아있었구나!》

호영란을 와락 그러안았던 박순정은 눈물이 줄줄 흐르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마주보다가 방바닥을 내리쳤다.

《어휴, 세월도 무정하지, 이렇게 살아있은것도 모르고 난…난…》

호영란도 엉엉 울음소리를 내면서 박순정의 얼굴을 손으로 자꾸 쓰다듬었다.

과진량이 호영란의 귀가에 대고 《호할머니, 저기 누가 또 왔는가를 찬찬히 보십시오.》 하고 말해서야 호영란은 자기옆에 서있는 리창조를 마주보았다.

호영란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새여나왔다.

《이…이게 또 누군가? 리…리창조가?-》

리로인이 호영란에게로 다가섰다.

《백화자!- 그렇지, 〈하나꼬〉!-》

이번에는 세명의 로인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돌아갔다.

곤명호텔의 크지 않은 방에는 한동안 말그대로 울음바다가 펼쳐졌다.

조사단성원들은 물론 기구한 인생길을 헤쳐온 로인들의 상봉을 보러 모여온 호텔 의례원들도 눈굽을 찍으며 울었다.

아사꼬는 너무도 눈물이 나와 사진기의 샤타를 몇번 눌러보지 못했다.


×


다음날 오전이였다.

곤명호텔의 어느 한 방에서 박순정과 리창조, 호영란이 마주앉아 기억을 더듬으면서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송산전역에서 겪은 사실들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주위에 둘러앉은 합동조사단 성원들은 세 로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력사적인 사실자료들을 록음기에 담기도 하고 펼쳐든 수첩에 또박또박 적어넣기도 하였다. 머리우에서는 사진기들도 연방 펑긋거리였다.

그런 속에서 박순정이 호영란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생각나오? 우리가 송산의 일본놈들의 진지 아래쪽에 있던 소나무가지로 지붕을 씌운 그 〈위안소〉마당에서 다시 만나던 때의 일이…》

호영란은 거의 60년전에 있었던 그때 일이 너무도 삭막해서인지 눈만 껌벅거리였다. 아마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였다.

리창조가 끼여들며 호영란의 생각을 튕겨주었다.

《당신이 왼쪽다리를 절룩거리며 머리에 붕대를 동인 상태에서 저 박순정을 부둥켜안고 울며불며 하던 때 일이 그래 생각나지 않소?》

그제서야 호영란은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한번 끄덕이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그때 난… 그…그 악귀같은 겐…겐지란 놈의 손에 걸려…》 하고는 어-헉 하며 앞탁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호영란의 피에 절은 흐느낌소리는 합동조사단 성원들의 가슴가슴에 비수처럼 박혀들었다.

박순정과 리창조도 손수건으로 눈굽을 꾹꾹 찍으며 어깨를 떠는 호영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호영란이 쓰러지는통에 세 로인들의 입을 통하여 격식없이 진행되던 조사단성원들의 자료확인사업은 중지되였다.

모임장소에 있던 의사들과 호영란의 며느리가 달라붙어 구급대책을 취하면서 한동안 안정을 시켜서야 호영란이 다시 머리를 들었다.

동안이 지나 박순정과 호영란, 리창조의 주위에 또다시 조사단성원들이 둘러앉았다.

이날부터 3일간에 걸쳐 세 로인들의 구술을 통하여 진행된 자료확인사업은 남경의 자금산근방에 있던 일본군《위안소》에서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던 백화자(호영란)가 1943년 가을에 송산으로 끌려가 겪은 피눈물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였다.

이때 확인고증된 력사적인 사실자료들은 일본군의 성노예행위는 철저히 정부의 관여하에 군부가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감행한 특대형범죄행위이며 일본쪽발이들이야말로 극악한 야수이고 호색마귀임을 만천하에 고발하는 또 하나의 두툼한 문건으로 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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