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6장 력사는 인멸되지 않는다 (1)


5


사방이 수림으로 꽉 둘러막힌 험한 산골길로 한대의 마차가 덜컹거리며 가고있었다.

리창조가 앞에서 말고삐를 잡았다. 이불과 몇가지 생활도구를 처실은 마차의 앞쪽에는 전투가방을 멘 일본군장교 한명이 걸터앉아 바깥쪽으로 드리운 두발을 건들거리고있었다. 그뒤에는 피기가 다 빠진 조선인성노예녀성들이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박순정과 신의주태생 허선애 그리고 황해도에서 끌려온 녀성과 강원도에서 끌려온 키가 자그마한 녀성 이렇게 4명이였다.

초췌한 꼴을 한 창조가 여위고 늙어빠진 수말의 잔등에 채찍을 먹이자 마차가 화들짝거리며 좌우로 심하게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성노예녀성들도 머리와 어깨, 몸통, 팔다리들을 제각기 흔들어대다가는 정신을 차린듯 몸을 옹송그리군 한다. 마차의 뒤에서는 총을 멘 2명의 일본군병졸이 군화짝을 철떡거리며 따라온다.

박순정을 포함한 4명의 조선인성노예들은 겐지대신 새로 온 병참장교의 지시에 따라 《잇가꾸로》에서 얼마쯤 떨어진 꽌히오라는 곳에 주둔한 113련대산하 어느 한 독립중대에 이동《봉사》를 나가는 길이다.

이들이 찾아가는 독립중대는 원래 일본 규슈에서 조직된 제56사단의 병마창 경비대에 소속되여 먄마의 만달라이에 주둔하고있다가 거기에서 분리되여나온 전투경험도 없는 중대였다. 그때 전장에 전투력량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먄마방면군사령부에서는 제56사단 병마창 경비대의 일부 병력을 뚝 떼내여 독립중대를 편성한 후 병마창에서 경비대장을 하던 기골이 장대한 니쇼꾸를 중대장으로 임명하여 꽌히오에 배치하였던것이다.

그 당시 일본군에서는 분산배치된 중대나 소대 같은데는 성노예들을 한달씩 돌려가며 내보내여 군인들을 상대하게 하는 제도를 세워놓고있었다.

총알은 없어도 싸울수 있지만 성노예가 없으면 전투를 할수 없다는것이 당시 일본군군인들의 일반심리였다. 군부에서도 이러한 군인들의 심리를 중시하여 전선이 넓어진 조건에 맞게 이동《봉사》제도까지 내오고 그대로 실행하고있었다. 그래서 그때 군인들속에서는 《위안부의 분배만큼 공평한것은 없다.》는 말까지 나돌았던것이다.

박순정이 속한 이동《봉사대》가 꽌히오의 수림이 무성한 계곡에 자리잡은 일본군 독립중대병영에 당도했을 때는 점심무렵이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차에서 내려보니 희한한 구경거리가 생겼다.

귀틀집으로 된 중대본부는 거멓게 불타 반나마 무너지고 좌우에 배치했던 병실들은 거의나 재가루로 되였다. 한바탕 격전을 겪고난 뒤였다. 아직도 퍼러우리한 내굴이 곳곳에서 푸실푸실 피여오르고있었다.

박순정은 이런데서 《봉사》를 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것을 직감하였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에 한숨이 다 나갔다.

머리가 깨여지고 팔이 부러진 부상병들을 제쳐놓고서라도 가슴과 복부를 찔리워 운신도 못한채 피자국이 내배인 붕대를 둘둘 감은 중상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병신짝들이 커다란 천막안에서 신음소리를 내지르면서 아비규환의 수라장을 펼치고있었다.

중대군의관과 몇몇 위생병들만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여다니고있었다.

알고보니 전날 새벽에 중대는 잠자리에서 기상도 못해본채 갑자기 달려든 먄마의 산간토착민들의 기습을 받아 그런 참상을 당했다는것이였다.

이 사건의 도화선에는 며칠전 저녁부터 불이 달렸다고 한다. 호색한으로 소문난 중대의 몇몇 병졸들이 그날 저녁 중대병실에서 좀 떨어진 산간토착민들의 마을로 내려가 족장네 두 딸을 륜간하였다. 치욕을 당한 족장네 딸들은 목을 매고 자살하였다.

이에 격노한 산간토착민들은 참대창으로 무장한 《복수대》를 뭇고 불의에 일본군 독립중대병영을 들이쳤던것이다.…

《빠가야로, 이건 뭔가? 위생병들과 약품을 보내라는 통지는 못받았는가? 그런데 쵸센삐?…》

말성게가시같은 턱수염이 부르르한, 얼굴 한쪽에 붕대를 칭칭 동이고 침울한 기색을 짓고있던 중대장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알을 부라렸다.

순정이네를 호송해간 장교가 허리를 빳빳이 세웠다.

《중대장님, 우린 그런 통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루전 새벽에 일어난 일이라 소식이 미처 련대본부에 가닿지 못한것이 분명하였다.

산간토착민들이 쏜 화살에 맞아 외통눈이 된 중대장은 한쪽눈을 껌벅거리며 생각을 굴리다가 앞에 서있는 성노예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요시!- 센삐들, 너희들도 할 일이나 있다. 에- 이제부터 너희들은 군의관의 휘하에서 그가 지시하는대로 움직이라!》

이렇게 말하던 외눈깔중대장은 박순정의 곁에 서있는 허선애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쭉 내뻗쳤다.

《센삐, 넌 여기 중대지휘부에 떨어져 내가 시키는 일이나 해야 한다. 알겠는가?》

4명의 성노예녀성들중에서 자기의 그 외통눈에 드는 녀자가 허선애였던것이다.

그날 저녁부터 외눈깔중대장은 허선애를 침실로 끌고 들어가 성욕을 채우면서 천하에 추잡한짓이란 짓은 다하였다. 어떤 날에는 그를 부중대장을 비롯한 중대장교들이 든 방에도 보내여 중대본부의 호색광들이 수욕을 채우도록 하였다.

한편 중대군의관은 박순정과 다른 2명의 녀성들을 마소와 같이 부려먹으면서 별의별 잡다한 일까지 다 시켰다.

무드기 쌓이는 피고름에 절은 붕대와 병실바닥들에 뭉그러져있는 피묻은 군복이며 고약한 냄새가 푹 배인 모포 같은것을 세탁하는 일은 정말 고되면서도 역스러운 일이였다.

악귀같은 군의관은 그런 속에서도 박순정을 비롯한 성노예녀성들에게서 부상병들에게 수혈할 피를 여러차례씩이나 뽑아냈다.

놈은 그들의 연약한 팔에서 피를 뽑을 때마다 이렇게 씨벌이였다.

《〈무적황군〉을 위하여 피를 바치는 일보다 더 영예로운 일은 없을것이다.》

정말 참새 얼려 굴레를 씌울 그런 놈이였다.

한번은 박순정이가 빈혈이 와서 피를 뽑지 못하겠다고 뻗대자 군의관은 《빈혈이 온 상태에서 피를 뽑으면 나빠. 그럼 오늘은 그만두라.》하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왔던김에 빈혈증치료를 하자고 하면서 주사를 놓아주었다.

주사를 맞은 후 몇분만에 순정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흉측한 군의관은 입귀를 씰룩거리며 순정의 팔을 걷어올리고 많은량의 피를 뽑아냈다. 그놈이 놓은 주사는 강한 마취제였던것이다.

어떤 때에는 위생병들의 손이 딸린다는 구실밑에 박순정을 비롯한 성노예녀성들의 손에 강제로 핀세트를 쥐여주면서 부상자들의 상처에 고인 더러운 피고름을 닦아내는 일까지 시키였다.

그때 순정이가 두어번 핀세트질을 해준 일본병졸이 바로 중대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오따니 히로미였던것이다. 히로미는 중대장의 련락병이였는데 산간토착민들의 족장네 두 딸을 륜간한 동료들의 《덕》에 그날 잠자리에서 애매하게 참대창세례를 받고 팔다리에 화상까지 입었다. 왜놈의 종자가 퍼지지 못하게 쟁기가 붙어있는 사타구니를 무자비하게 찔러죽이라는 족장의 명령을 받은 토착민《복수대》는 순간에 보초병들을 해치우고 꿈나라에 가있던 일본군의 머리면 머리, 가슴이면 가슴, 복부면 복부를 사정없이 찌르고 두들겨팬 다음 병실지붕에 불을 질렀던것이다.

중상당한 여러명의 사병들이 며칠을 못 넘기고 저승으로 갔지만 하늘이 준 덕인지 히로미는 얼마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지팽이를 짚고 걸을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굵다란 참대창에 사타구니부위를 찔리운 후과로 영원히 남자구실을 못하는 불구자가 되고말았다.

이런 속에서 거의 보름이라는 시일이 흘렀다.

그사이 리창조는 외눈깔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중대에 있는 여러필의 말들을 관리하면서 불에 타서 무너져내린 마구간과 병실을 수리하는 일에 내몰리웠다.

어느날 박순정을 비롯한 성노예녀성들이 빨래감을 한임씩 이고 병영옆으로 흐르는 개울가로 나갔는데 중대본부가 있는쪽에서 사색이 된 리창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순정누나, 저… 저… 선애누나가…》

이렇게 더듬거리던 창조는 순정이와 다른 녀성들까지 데리고 중대본부방향으로 줄달음을 놓았다.

창조의 손에 이끌려 중대본부뒤에 있는 바위벼랑밑에까지 달려간 순정의 가슴은 순간 철렁하였다. 벼랑아래 펑퍼짐한 곳에 세워놓은 십자형의 통나무에 묶이운 사람의 모습이 그의 눈을 쿡 찔렀던것이다.

삼검불처럼 헝클어진 머리칼을 보니 분명 녀성이였다.

(선…선애로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치자 순정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머리를 푹 떨군 상태에서 십자형의 통나무에 꽁꽁 비끄러매인 선애는 벌써 반주검이 된 상태였다. 호색광들의 발길에 얼마나 채우고 짓밟혔는지 이발이 다 부러져나가고 엉망이 된 입과 코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온몸을 비끄러맨 바줄까지 뻘겋게 물들여놓고있었다.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그런 광경앞에서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는 호색마귀들인 외눈깔중대장을 비롯한 몇명의 장교들과 하사관들은 뭐라고 수군덕거리고있었다.

중대장이 헐떡거리며 달려온 박순정을 비롯한 성노예녀성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쵸센삐들, 네년들도 똑똑히 보라. 저기에 묶이운 년은 〈황군〉을 위안하는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반항하면서 며칠전에는 개처럼 나의 이 어깨를 물어뜯더니 어제 밤에는 또 우리 부중대장의 팔목을 물고늘어져 소동을 일으켰다. 이런 년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씩씩거리던 중대장이 왼쪽팔에 붕대를 둘둘 감은 부중대장에게 지시했다.

《부중대장, 자네가 직접 처리하라! 저런 년에게는 총알도 아깝다. 칼탕쳐죽이라!》

부중대장이 십자형틀에 묶이운 불행한 허선애앞으로 다가가 오른손으로 거머쥔 군도를 사정없이 휘둘러댔다.

《아-악!- 아-악!-》 하는 애처로운 비명소리가 메아리를 일으키다가 멎어버렸다.

외눈깔중대장을 비롯한 야수들은 히히덕거리고 박순정을 비롯한 가련한 성노예녀성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날 밤 순정은 마구간옆에 있는, 림시로 정한 자기 방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였다.

아, 이제는 5년전에 남포에서 같이 끌려왔던 김녀도 죽고 평양역에서 만났던 한룡화도 죽고… 오늘은 허선애까지 죽었으니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이 간 곳으로 나도… 아!-

이런 생각을 붙들고 처참하게 숨진 허선애의 모습을 그려보며 검은구름이 뒤덮인 먼 하늘가를 응시하던 순정의 입가에서는 나직한 노래소리가 새여나왔다. 고향생각이 간절할 때마다, 모진 괴로움과 슬픔에 잠길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을 머금고 조용히 부르군 하던 노래 《아리랑》이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노래는 내심의 발현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순정은 통곡을 하고있었다. 그랬다. 이역만리에까지 끌려와 죽음의 문앞에 이른 자기의 처지를 통탄하며 가슴속에 쌓인 원한을 비탄에 젖은 《아리랑》곡조에 담아 애절하게 통곡하고있었던것이다.

그때 마구간 한쪽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창조는 순정이가 눈물속에 부르는 노래소리에서 그의 피에 절은 통곡소리를 들으며 눈굽을 찍었다.


×


1944년부터 동남아전선의 형편이 달라지는데 따라 그해 2월경 박순정을 비롯한 10여명의 일본군성노예들은 중국 등충으로 끌려갔다가 두달만에 다시 송산일대로 옮겨갔다. 리창조도 순정이네들과 함께 이동하였다. 소속이 같았기때문이였다.

유개도 없는 군용자동차에 처실리여 송산진지라고 부르는 산골에 도착해서야 순정은 그곳이 포탄이 날아다니는 최전방지대라는것을 알았다.

그곳은 정말 무시무시한 곳이였다. 남경이나 등충 같은데는 도시였으므로 《위안소》가 시내의 군대병영구역안에 있었지만 송산일대는 전혀 달랐다.

날카로운 바위뿔이 비쭉비쭉 내돋은 험한 산중에 굴설된 진지곁에 소나무를 뚝뚝 잘라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어 대강 지어놓은 칸막이가 된 길다란 《위안소》건물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순정이네들을 맞이하였다. 길이는 대략 50메터는 실히 되였는데 방들의 규격으로 보아 성노예들이 40명정도는 되는것 같았다. 진지구역의 주변엔 가시철조망을 2중3중으로 겹겹이 쳐놓고있었다. 성노예들은 함부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사방에 보초를 세워놓고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순정은 히로미를 다시 보게 되였다.

순정이네가 등충으로 끌려갔을 때 먄마의 라시오와 꽌히오에 있던 일본군 제113련대 잔여부대들이 전부 그리로 이동해왔는데 그곳에 온 히로미네 독립중대는 송산수비대에 배속되여 중미련합군과의 결전을 준비하면서 《우라야마진지》구축작업을 하고있었다. 그곳 진지의 상공으로는 무시로 미군비행기들이 날아들어 줄폭탄을 퍼붓군 하는, 폭음이 잦을새 없는 전장이였다.

리창조는 여전히 병참장교의 지시를 받는 소년잡부로서 마구간을 쳐내는 일, 군용물자를 싣고부리는 일 같은것을 하였다.

송산으로 끌려온 박순정은 다음날 아침 뜻밖에도 머리에 붕대를 빙빙 두른 백화자를 만나게 되였다.…

합동조사단 성원들은 박순정의 그후의 행적과 아직까지 력사의 음달속에 묻혀있는 일제의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들에 대하여서는 송산전역을 구체적으로 편답하면서 조사를 더 심화시킨 다음 완전히 고증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나서 두 로인을 부축하면서 모임이 진행된 곤명항일력사박물관 원탁회의실을 나섰다.

그러나 박순정이 송산에 와서 백화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중국측 력사학자 과진량은 자리에서 일어설념을 하지 않고 앞탁우에 놓인 수첩을 한장한장 번지면서 거기에 시선을 박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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