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5장 《바로 이 집이요!》


10


황정식은 근심에 싸여 안절부절을 못했다.

이제 다시 박순정의 신상에서 그런 증세가 반복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수 있겠는가. 극도로 쇠약해진 그의 심장이 과연 이번 현지답사를 끝까지 감당해낼수 있을가? 쇠잔하고 년로한 그 몸에 무릎까지 심하게 상했으니… 아무래도 그 몸으로는 곤명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낼것 같지 못해. 아니, 아니. 그러면 송산전역에 대한 현지조사는?… 이러나저러나 빨리 실태를 조국에 알리고 집중적인 치료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황정식이 걱정하는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전날 오후 박순정은 《킨수이로》 앞마당에서 3개국조사단 성원들과 마주앉아 성노예생활에 대한 증언을 하였다.

그가 식사때 자기네들이 먹는것은 늘쌍 곯을대로 곯은 죽이나 삶은 통강냉이 같은것들이였는데 《위안소》가 일본군호색마귀들로 만원을 이룰 때면 그것도 제대로 먹을수 없었고 어떤 날에는 방에서 한쪽손에 이삭강냉이를 쥐고 《성봉사》를 했다는것, 성병검진때에는 군의관이 와서 매독균에 감염된 성노예들에게 《606호》주사를 놔주었는데 그것은 성노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네 군인들을 위해서였다고 말하고났을 때였다.

아사꼬가 물었다.

《〈위안부〉들이 번 돈은 어떻게 처리되군 했습니까?》

《번 돈이 어디 있소? 말로는 돈을 준다고 했지만 언제 한번 손에 쥐여본적이 없소. 우릴 노예로 끌어온 그놈들인데 무슨 돈같은 소리를 하는거요?》

면박을 당한 아사꼬는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그는 다른 조사단성원들을 바라보기가 창피스러웠지만 그런대로 또다시 물었다.

《아까 할머니가 여기 남경에 있다가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먄마의 전역에까지 끌려갔댔다고 얼핏 이야기했는데 그게 정확히 언제쯤 됩니까? 그리고 그 구체적인 경로도 좀…》

《그게 내가 남경에 끌려온지 3년째 되는 해니깐 태평양전쟁이 터진 이듬해가 옳구만. 초여름인데 갑자기 모두 짐을 싸라고 하더니 상해로 끌고 가선 큰 배를 대고 오르라고 하는게 아니겠소. 그래서 올라보니 우리말고도 어데서 붙잡혀들 왔는지 숱한 녀자들이 배에서 비비닥거리더구만.

그땐 나도 제정신이 아니였으니깐 언제 싱가포르에 당도했던지 기억이 잘 나지 않소. 하여튼 소낙비가 그냥그냥 퍼붓던 때 먄마에다 부리워놓더구만.》

박순정이 여기까지 말하자 곁에 앉았던 김진희가 그에 대해선 자기가 이미 구체적으로 조사확인한것이 있다고 하면서 자료철을 펼쳐들었다.

《할머니가 방금 태평양전쟁이 발발된 이듬해라고 하였는데 옳습니다. 1942년 초여름 박순정할머니를 포함한 〈킨수이로〉의 조선인성노예 22명은 상해항에서 배에 올랐습니다. 그 배에는 이미 수많은 조선인성노예들이 실려있었습니다. 그때 일본군은 수백명의 성노예들을 실은 여러척의 배들로 한개 선단을 뭇고 남방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발간된 〈신동아〉에는 이런 글이 씌여져있습니다.

〈남경의 위안소에 있던 위안부들은 1942년 5월에 남방파견군의 요청을 받고 그후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먄마의 소속부대에 분배되였다.〉

이 기사는 그때 남경에 있던 수십명의 조선인, 중국인성노예들과 이미 부산항에서 600여명에 달하는 20살전후의 조선처녀들을 실은 몇척의 선박이 싱가포르를 거쳐 먄마에 간것을 념두에 둔것입니다. 일본군은 이미 그해 2월 싱가포르를 함락시켰으니 싱가포르를 경유했다는 말도 정확한것으로 됩니다.

또 하나의 신빙성있는 자료는 1944년 10월 1일에 미륙군 인디아 먄마전선군소속의 미전시정보국 심리작전반이 작성한 〈일본인포로심문보고 제4호〉입니다.》

김진희는 자료철에서 그 사본문을 쭉 뽑아 합동조사단 성원들에게 내보이였다. 그리고는 계속했다.

《이 심문보고서는 먄마와 중국의 운남성 등충현(당시) 송산의 접경지대에서 1944년 8월 10일에 포로한 조선인성노예들과 일본군〈위안소〉를 감독통제하던 병참장교 2명에 대해 약 20일간에 걸쳐 진행한 심문보고서입니다. 보고자는 일본계미국인 알렉쓰 요리찌라는 미전시정보국 레드본부 심리작전반에 소속되여있는 성원이였습니다. 그는 보고서에 〈위안부〉들은 1942년 5월초에 〈야전병원에 있는 부상병들을 위문하고 붕대를 감아주거나 장병들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병참장교의 거짓말에 속아 남경을 떠나 상해, 싱가포르를 거쳐 먄마의 양곤에 왔다고 기록하고 이렇게 썼습니다.

〈…군의 규칙과 루주에게 속박된 녀는 대체 800명, 이들은 1942년 8월 26일경 먄마에 상륙하였다. 그중 조선인녀성은 약 700명이였다. 한번에 수송된 인원수로서는 규모가 크고 계획적인 수송이였다고 말할수 있다.〉

심문보고서에 밝혀진 시기와 박순정할머니가 수많은 성노예들과 함께 먄마에 끌려갔다는 시기는 꼭같습니다. 이런데로부터 나는 박순정할머니가 1942년 5월초에 상해에서 배를 타고 싱가포르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그해 8월 먄마의 양곤에 도착했다고 봅니다.》

김진희가 발언을 마치자 이번에는 중국측의 소자영교수가 뒤를 물었다.

《정확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연구쎈터에서도 얼마전에 이런 두가지 자료를 쥐였습니다. 당시 각기 남방에 가서 〈위안소〉를 경영했다고 하는 미쯔이 히사하루와 이노우에 노부끼라고 하는 두 일본인들의 증언자료입니다.

히사하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942년 4월말 중지나파견군산하 련대에서 병참장교로 복무하던 나는 상급으로부터 남경의 킨수이로를 비롯한 5개의 위안소들에 있는 위안부들을 다 인계받으라는 지령을 받았다. 그래서 리제항18호구역으로 가서 상부의 명령을 집행하고 대기상태에 있었는데 며칠후에는 인계받은 위안부들을 데리고 남방전선으로 출발하라는 지시를 또 받았다.

나는 남경시내의 여러 위안소들을 감독통제하던 병참장교들을 비롯한 여러명의 일본군군인들과 함께 거의 100명에 가까운 위안부들을 데리고 상해항에서 아트라스마루를 타고 싱가포르로 갔다.

그때 보니 아트라스마루의 선창은 누에잠박처럼 칸막이가 되여있었고 위안소별로 자리가 할당돼있었다.…〉

다음은 이노우에의 증언자료입니다.

〈나는 1942년 5월초까지 다른 한 동료와 함께 상해에 있던 군위안소를 경영하고있었다. 하루는 부대의 병참장교가 와서 항주에 있는 어느 한 위안소로 가서 조선인위안부 12명을 인계받아가지고 오라는 지시를 주었다. 우리가 항주에 가서 조선인위안부들을 데리고 왔을 때 부대병참장교는 모두 남방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라고 말하였다. 병참장교는 위안부들을 데리고 남방에 가서 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이번 일은 남방파견군총사령부의 요청에 의해 중지나파견군사령부가 알선한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여 우리는 위안부들과 함께 아트라스마루를 타고 싱가포르로 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규슈마루를 갈아타고 8월경에 먄마에 들어섰다.〉

본것처럼 이 두 증언자료는 시기로 보나 정황으로 보나 앞서 제기한 조선측의 김진희선생의 자료를 뚜렷이 반증해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증언자들이 말한 〈아트라스마루〉라는 수송선의 소속을 아직 우리가 해명하지 못한것입니다. 실지 그런 수송선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것이 군속이였는가, 민간에서 리용하던것이였는가 하는것입니다.》

이번에는 아사꼬가 입을 열었다.

《〈아트라스마루〉라는 낡은 수송선을 지금 일본의 오사까상선회사에서 가지고있는데 그 배가 틀림없을것입니다. 그 배가 당시 군속이였는가 하는 문제는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

뜻밖이였다.

결국 의문으로 제기되였던 박순정이 남경으로부터 먄마까지 이송된 경로와 시기가 명백히 밝혀졌다.

그런데 이때 촬영기를 휘둘러대던 전홍이 박순정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박할머니, 한가지 더 물어볼것이 있습니다. 당시 〈위안부〉들이 하루에 일본군인들을 몇명씩이나 상대했는지…》

순간 박순정의 눈에서 흰자위가 번뜩이였다.

망할놈의 자식! 또 그따위걸 물어?…

박순정은 풀떡거리며 내쏘았다.

《그거야 다 알지 않나? 그래 그런거나 자꾸 물어서 얻자는게 도대체 뭔가?… 정 말해달라면 내 대주지. 똑똑히 들어라. 20~30명씩 달라붙은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많이 치르었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였어!》

갑자기 박순정의 광택을 잃은 희누런 얼굴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켰다.

신경이 예민해지자 그의 눈앞에는 온통 벌거벗고 히히닥거리며 달려드는 왜놈들의 상통이 환각으로 안겨왔던것이였다.

《나가라!- 나가라, 이놈들! 또 어째보자구?》

《킨수이로》가 들썩하게 고함을 내지르던 그는 《으윽-》 하고 가슴을 그러안았다. 강한 정신적타격과 과격한 흥분으로 과거의 성노예생활때 얻은 심장판막증이 재발되였던것이다.…

박순정의 쇠진한 심장은 잠시도 안정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강심제주사를 맞고 호텔 침실에 누웠던 그는 한밤중에 또다시 환각의 바다에 빠져 《나가라, 나가! 이놈들…》 하며 허우적거리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무릎까지 심하게 다쳤다.…

박순정에 대한 근심걱정으로 가슴에 연추를 드리우고있는 황정식이 움쭉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전에 박순정의 방에 가보아서 별다른 일은 없겠건만 순간도 마음의 탕개를 늦출수 없는 그였다.

그가 방에 들어서니 녀의사가 침대에 누워있는 박순정의 혈압을 재고있는중이였다.

방 한쪽구석에는 아사꼬와 어깨가 축 처진 전홍이가 앉아있었다.

동안이 지나자 박순정의 정신은 한결 맑아진듯 했다. 심장부담도 덜해져서 침대머리맡에 베개를 고이고 비스듬히 기대여앉을수 있게 되였다.

녀의사는 다행히 뼈는 상하지 않았기때문에 며칠 안정하면서 치료를 하면 별다른 일이 없을것이라고 했다.

김진희가 젖은 수건으로 박순정의 피기가 다 빠진 이마와 목부위를 꼼꼼히 닦아주면서 나직이 속삭이였다.

《할머니.》

《왜?》

《오늘 밤에도 또 어제 밤처럼 쓰러지지 않을가요?》

《허허허, 마음놓으라구. 이젠 몸상태가 한결 나아졌어. 이래뵈두 지금 이 늙은이의 머리속에서 송산까지 기어이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굴뚝처럼 일어섰어.》

박순정이 진희의 손을 꼭 잡고 머리를 끄덕이며 눈을 끔벅이였다.

진희의 입가에 고운 웃음이 피여올랐다.

황정식도 느슨히 웃으며 박순정과 김진희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진희는 죄의식에 빠져있는 전홍과 아사꼬에게 나직한 소리로 박순정이 한 말을 통역해주었다. 그늘졌던 그들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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