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5장 《바로 이 집이요!》


9


아사꼬와 전홍은 박순정의 증언내용들에 대한 반증자료들을 쥐기 위해 옛날에 《킨수이로》근방에서 살았다는 중국인로인들을 몇명 만나보았다.

그때까지도 아사꼬의 솔직한 심정은 《막부산》에서 있은 조선인성노예녀성에 대한 치떨리는 일본군의 집단적인 륜간행위와 국부에 장검을 박아 살해했다는 그 사건만은 요언비설이였으면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상봉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당시 리제항《위안소》근방에서 게다를 만들어 팔았다는 83살 난 진오라는 로인은 자기는 그때 장강에 밤고기사냥을 나갔다가 그 끔찍한 사실을 목격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들은 아마 그 시기 남경에서 일본군이 어떤 일까지 빚어냈는지 다는 모를거웨다. 일본군은 실지 전부 야만이고 색광증에 걸린 놈들이였다우.

일본에서 온 선생은 력사에 흥미를 가진 법률가라니 아마 우리 중국에서 발간된 〈침화일군폭행론〉이라는 책을 보았겠지요? 그 책에도 자세히 기록됐지만 난 그 시기를 직접 체험한 사람으로서 거기에 실린 사실보다 더 험악한것을 목격했수다.

일본군대 3명이 13살 난 소녀를 륜간하고 칼로 목을 치는것도 봤구, 부녀를 발가벗기고 륜간한 후 젖꼭지를 잘라버리는 끔찍한 일도 봤수다. 그 개보다도 못한것들은 녀자를 륜간하고 국부에 장작개비를 박아넣어 죽이는것을 제일가는 쾌락으로 여긴것 같소. 정말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였다우. 그러다가 저들끼리 개싸움까지 벌린적도 있었지요. 그럼 그 얘기를 다시한번 입에 올려봅시다.》

진오로인은 허연 눈섭을 꾸불럭거리더니 주름살이 많은 눈시울을 쪼프려붙였다.

…태평양전쟁이 발발된 다음다음해인 1943년이였다고 한다. 그때는 일본군이 《대동아행진곡》을 목터지게 부르며 태평양상의 과덜커낼섬을 비롯한 솔로몬제도까지 타고앉았을 때였다.

일본에서 발간되는 크고작은 신문들에서는 전쟁이 시작되기 바쁘게 거의 매일같이 1면 상단에 특호활자로 된 《홍콩함락》, 《싱가포르함락》, 《웨이크섬점령》, 《마닐라함락》, 《쟈와섬상륙》 등등의 기사들을 실었는데 그 신문들이 남경시내에까지 날아들었다.

사실 그것은 그때까지 《쾌승》에 편승하여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꿈이 실현되는 날까지 전 전선에 걸쳐 오직 돌격, 상륙, 학살, 만세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일본수상 도죠 히데끼의 어리석은 선전놀음에 불과한것이였다.

실지 일본군은 이미 숱한 사상자를 낸데다가 전선이 넓어지고 종심이 깊어지자 인적자원의 고갈로 골머리를 앓게 되였다.

더우기 미국과 영국, 자기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를 일본에 빼앗긴 네데를란드 그리고 오스트랄리아까지 합세한 련합군의 공격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

도죠는 생각끝에 중국 동북지방에 있는 관동군 20만을 뚝 떼내여 동남아전선으로 파견하도록 하였는데 그 시기 관동군의 일부 력량은 렬차로 남경까지 와서 며칠 묵다가 다시 상해에서 배를 타고 각기 분담된 전선지역으로 출동하군 하였다.

이렇게 되여 그 당시 남경에 와서 며칠간씩 풀어놓은 송아지가 된 관동군장병들은 기분이 떠서 시내를 돌아치군 하였다.

남경에 도착한 관동군장병들은 저마다 웨쳐댔다.

《제군들, 우리모두 〈대동아행진곡〉을 부르면서 해양으로 가자구! 제국의 남아들이여! 남방전선이 우리를 기다린다! 어서 가서 무훈을 세워 〈천황〉페하의 고지를 현실로 꽃피우세!-》

남방전선으로 진출하는 관동군장병들에게 《특혜》가 베풀어졌다. 중지나파견군사령부에서는 그들에게 남경시내의 어느 《위안소》에든 무료로 나들고 그 어떤 성노예든지 마음대로 골라잡고 무제한한 쾌락을 맛볼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때 사령부곁에는 일본군고위장교들만 리용하는 자그마한 《위안소》가 있었다. 거기에 있는 몇명 안되는 성노예들은 남경시내에서 끌어온 중국인녀성들로서 이른바 다른 《위안소》들의 성노예들보다 비교적 인물이 나아보인다는 축이였다.

동북에서 《무공》을 세워 왜왕의 표창까지 받았다는 한 대위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친구들, 남방전선으로 가기 전에 우리도 〈천황〉페하의 아들다운 대접을 받아보아야 하지 않겠나? 오늘은 우리 함께 중지나파견군사령부 고관들만 드나든다는 그 〈위안소〉로 갑세!》

《요시, 요시!》

동료장교들이 호응해나섰다.

이날 저녁 사령부곁에 있는 그 자그마한 《위안소》는 대만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얼마후에는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변해버리고말았다.

고급료정에서 거나하게 취해가지고 성노예녀성들이 든 방으로 비칠걸음을 하는 장교들의 혀꼬부라진 소리, 꼬리잡이를 하면서 밀고닥치는 소리로 번잡하던 《위안소》에서 처음에는 치고받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뒤이어 두방의 총성이 울렸다.

《위안소》의 어느 한 방에서 그 관동군 대위와 사령부의 한 장교가 한명의 성노예를 놓고 서로 먼저 차지하겠다고 개싸움을 벌렸던것이다. 술기운에 비칠거리면서 서로 치고받고 하던 도중에 사령부의 장교가 자기와 맞선 관동군 대위를 쳐다보며 씨벌거리였다.

《대위, 우…우리가 저…저따위 삐를 놓고 서로 힘내기를 할 필요가 뭔가?》

《그…글쎄, 나도 지금 그… 그 생각이요.》

관동군 대위가 이렇게 웅얼대자 그는 권총을 뽑아들었다.

화들짝 놀란 관동군 대위도 권총집에 손을 가져갔다. 그가 자기를 어쩌나 해서였다.

하지만 사령부에 있는 장교는 히물거리며 침대우에 어푸러져있는 《위안부》를 향해 권총을 발사하였다.

뒤이어 관동군 대위의 손에 들린 권총도 《위안부》를 향해 불을 토했다.

한명의 《위안부》를 놓고 서로 으르릉대던 호색마귀들은 권총을 집어넣으며 《흐흐흐… 하하하…》 하고 미친듯이 웃어댔다.

난데없는 총소리에 헌병들이 달려왔지만 전후사실을 알고는 곧 사라져버렸다.

그때 《위안소》앞에서 저녁늦게까지 게다수리를 하던 진오는 왜놈헌병들이 제 갈데로 가버리자 어른들 틈에 끼워 《위안소》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진오가 사람들과 함께 문이 활짝 열려진채 피비린내가 풍기는 어느 한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거기에는 한명의 성노예가 눈을 흡뜬채 선혈이 랑자한 침대우에 쓰러져있었다. 호색마귀들에 의해 짓밟히다 못해 생명까지 무참히 잃은 불행한 녀성이였다.

창문곁에 놓인, 커다란 나팔주둥이를 사선으로 뻗쳐세운 축음기만이 살아숨쉬고있었는데 어떤 일본녀가수가 부르는 《대동아의 봄》이라는 류행가가 추도곡처럼 구슬프게 울려나오고있었다.…

진오로인은 이야기를 마치면서 말했다.

《일본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그저 옛말로만 들어서는 절대로 안될것이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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