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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2일

평양시간


제 25 회


제5장 《바로 이 집이요!》


8


3개국합동조사단의 원탁회의는 두번이나 휴회를 하면서 4시간에 걸쳐 진행되였다. 회의에서는 박순정이 며칠동안 《킨수이로》를 비롯한 여러곳을 돌아보며 한 증언과 그 과정을 찍은 화면을 회의장앞에 설치한 대형전광판을 통하여 확증하면서 증언내용이 부정할수 없는 력사적사실이라는데 대한 견해일치를 보았다. 회의마감에 앞으로의 조사방향에 대한 문제들도 토의되고 합의되였다.

회의가 끝난 후였다.

경증성이 황정식에게 확인할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박순정을 불러달라고 하였다.

박순정이 녀의사의 부축을 받으며 회의장소에 들어섰다.

경증성은 그의 손을 잡으며 허리를 굽히였다.

《년로한 몸으로 그사이 우리와 함께 현지를 밟아보면서 귀중한 자료들을 고증할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에 정말 큰일을 하셨습니다.》

《원, 내가 무슨 큰일을 했겠소. 그저 그때 당하고 본것들을 그대로 다 말했을뿐인데…》

《그게 바로 일본쪽발이들의 성노예제도를 발가놓는데서 제일 큰 일을 하신것으로 됩니다.… 그런데 참, 박할머니! 그때 〈천장절〉이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습니까?》

박순정이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천장절〉? 그건 무슨 소린지…》

경증성이 느슨히 웃으며 박순정에게로 다가앉았다.

《쉽게 말하면 당시 왜왕 히로히또의 생일인데 일본사람들은 그날을 〈천장절〉이라고 부르면서 큰 명절로 쇠군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인이나 중국인들도 〈황국신민〉이라고 하면서 강제로 쇠게 했고…》

그때에야 박순정은 머리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래. 생각나오. 생각나… 그런데 선생은 일본사람들이 쇠던 그 〈천장절〉인지 〈백장절〉인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오? 원 참.》

박순정의 마지막말에 모두가 가볍게 웃었다.

경증성은 이제는 딱지를 뗐으니 됐다 하고 생각하면서 책상우에 놓인 트렁크에서 색날은 사진 한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박순정의 앞으로 그 사진을 가져갔다.

《그럼 이 사진을 좀 찬찬히 보아주십시오. 혹시 아는 사람이 있지 않는지…》

사진은 일본군고위장교들이 료정 같은데서 큰 연회상을 펼쳐놓고 빙 둘러앉아 흥청거리는 장면을 찍은것이였다. 장교들이 앉은 좌석 하나건너에 한명씩 얼럭덜럭한 일본옷을 입은 녀성들이 끼여있었다. 성노예녀성들 같았다.

박순정을 부축하며 곁에 앉은 김진희도 사진에 눈길을 주었다. 사진은 누렇게 퇴색되였지만 그속의 인물들은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안겨왔다. 사진 맨 아래단에는 《소화16년 천장절에》라는 글이 새겨져있었다. 1941년 4월 29일을 의미하는것이였다.

도수높은 안경을 코에 건 박순정은 사진을 집어들고 한동안 아무말도 없었다. 그러나 입술에서 가벼운 경련이 일고 사진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것은 점점 확연히 알리였다.

조사단성원들의 시선이 박순정에게로 모아졌다. 촬영기렌즈들과 마이크들이 숨을 죽이고 다음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큰소리가 터져나올것만 같던 박순정의 입에서는 혼자말처럼 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새여나왔다.

《이런 사진이 어떻게 지금까지…》

박순정은 경증성을 쳐다보았다.

경증성은 박순정곁으로 더 바투 다가앉았다.

《이 사진은 제가 두해전 일본으로 일보러 갔을적에 이곳 남경의 중지나파견군사령부 고급참모로 있던 도까베라는 사람의 아들한테서 수집한것입니다. 사진속의 일본옷을 입은 녀성들가운데 리제항〈위안소〉의 조선인성노예피해자들과 랑화〈위안소〉의 중국인성노예피해자들도 있다고 해서…》

사진을 손에 든 박순정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였다.

《선생의 말이 옳수다. 여기에는 나랑 함께 〈킨수이로〉에서 성노예노릇을 하던 조선녀자들도 있고 또 중국녀자들도 있소. … 이런 사진이 남아있을줄은 정말…》

대형전광판에 《소화16년 천장절에》라는 설명을 단 사진이 화상으로 재현되였다.

얼굴이 상기된 경증성이 전광판앞에 나서서 지시봉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하였다.

《지난해 우리 남경대학살연구쎈터 성원들이 이 사진속에 있는 두명의 중국인성노예생존자들을 찾아냈습니다. 한명은 지금도 광주에 살고있는 왕가련이라고 여기 보이는 이 녀성이고 다른 한명은 무한에서 살다가 올해초 세상을 떠난 진화라는분인데 왼쪽 세번째 자리에 앉아있는 일본군장교의 옆에 있는 바로 이 녀성입니다. 이 두 녀성들은 그때 남경의 랑화〈위안소〉에서 일본군성노예생활을 강요당했습니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중지나파견군사령부에서는 〈천장절〉 같은 날이면 요란한 연회를 조직하군 했는데 그때마다 고위급장교들이 남경의 각 〈위안소〉들에서 성노예들을 뽑아 이 사진에서 보는것처럼 옆에 끼고 앉아 온갖 음탕한짓을 다 하다가 연회가 끝나면 성폭행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왕할머닌 이 사진속에 있는 리제항〈위안소〉의 조선인성노예들의 얼굴도 똑똑히 기억하고있습니다.…

그러면 일본군에서는 언제부터 〈천장절〉과 같은 날이면 여기 사진에서 보는것과 같이 연회장에 성노예들을 끌어다놓는 놀음을 했는가. 저의 견해를 말하겠습니다.

세상에 다 알려졌지만 일제는 1932년 4월 29일 히로히또의 생일을 맞으며 상해 홍구공원에서 군관민합동축하대회라는것을 열었습니다. 그때 윤봉길이라는 조선청년이 행사장에 폭탄을 던지는통에 일본륙군 제9사단장 우에다와 제3함대사령관 노무라, 재중일본공사 시게미쯔를 비롯한 여러명의 군부 및 정계우두머리들이 나가너부러지는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후부터 일본군에서는 또 그런 벼락을 맞을가봐 〈천장절〉이면 공개행사를 극력 피하고 부대별로 혹은 지역별로 연회 같은것을 크게 벌려놓았는데 그런 장소들에 많은 성노예들을 끌어다놓고 온갖 못된짓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일본군에서 각종 《명절》을 계기로 감행한 조선인성노예들과 중국인성노예들에 대한 야만행위에 대하여 력사자료를 안받침하면서 낱낱이 까밝혔다.

전광판의 사진을 한동안 들여다보던 박순정이 입을 열었다. 또다시 장내의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되였다.

《난 저런 사진이 아직까지 세상에 남아있을줄은 꿈에도 몰랐소. 저 사진에도 참으로 기막힌 사연이 담겨있소. …그날은 〈킨수이로〉마당가에 있던 사꾸라나무에서 꽃들이 전부 떨어져 이리저리 바람에 날려다니던 날이였소. 오후에 루주녀편네가 나와 김녀와 신의주에서 끌려온 허선애를 찍더니 여느때 보지 못하던 호랑나비날개같은 일본옷을 꺼내주며 빨리 목욕을 하고 갈아입으라고 일렀소. 저녁때쯤 우리를 데리러 풍차가 〈킨수이로〉마당가에 들어섰소. 그래서 가자고 하는데까지 가보니 그곳은 일본군사령부옆에 외따로 있는 큰 료정이였소. 거기에는 벌써 여러 〈위안소〉들에서 끌려온 숱한 녀자들이 와있더구만. 장교들이 나와서 제 마음에 드는 상대를 짝패로 골라잡았는데 난 팔자수염을 기른 한 일본장교놈의 눈에 걸려들었소. 그놈은 아주 못된놈이였소. 그놈은 연회도중 자꾸 나에게 지부렁거리더구만. 그래서 내가 뿌리치자 뭣했던지 그럼 흥이 나게 〈기미가요〉를 부르라는게 아니겠소. 하도 강박하기에 난 〈기미가요〉는 잘 모른다고 하면서 그때 많이 류행되던 〈시로니지 아가꾸…〉하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수다. 장교들은 좋아라고 박수를 쳤소. 그런데 난 노래하던 도중에 〈아 아름다워요 일본기발은〉 하는 가사를 〈킨수이로〉에서 우리들끼리 고쳐부르던대로 〈아 보기 싫어요 일본기발은〉하고 불렀소. 그때는 말도 일본말로 하고 노래도 일본말로 했으니까 그저 일본노래를 부르는가부다 했지 내가 틀리게 부른다는것은 전혀 감촉할수가 없었지요. 그통에 나는 팔자수염한테 끄뎅이를 잡혀 다른 방에 끌려가 숱한 매를 맞았다오. 그래서 난 이 사진에서 얼굴이 빠졌소.》

여기까지 말한 순정은 잠시 숨을 돌리더니 아사꼬의 손으로 넘어간 사진을 좀 가져오라고 손짓하였다.

그는 가져온 사진을 탁우에 놓더니 정면으로 제일 잘 보이는 녀성과 머리를 약간 왼쪽으로 돌린 녀성을 짚었다.

《이게 남포에서 나랑 같이 붙들려간 김녀요. 그리고 그옆에 있는 이 녀자도 〈킨수이로〉에 있던 허선애이고…》

조사단성원들의 시선이 사진우에 모아졌다.

경증성이 사진을 꺼내놓았을 때부터 특별히 사진에 관심하던 황정식이 큼직한 확대경을 손에 들었다. 뒤이어 그의 눈가에서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아무말없이 확대경으로 사진을 들여다보던 황정식은 《음-》 하고 신음소리 비슷한것을 냈다. 그리고는 김진희를 데리고 회의장 한쪽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황정식의 목소리는 여느때없이 부드러웠다.

《진희동무, 내 말을 잘 듣소. 절대 놀라지도 말고…》

진희의 눈이 올롱해졌다.

황정식은 서류가방을 뒤져 여러장의 사진을 꺼내더니 그중에서 손바닥보다 좀 작은것을 골라들었다. 여가리가 보풀이 일고 꺾인 자리도 많은 누렇게 탈색된 사진이였다.

《진희동무, 이 사진을 본 기억이 나지?》

진희는 황정식이 내미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건 일제때 우리 할머니가 남포피복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다는 우리 큰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아닙니까.》

《옳소. 진희동무네 할머니가 생전에 우리 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에 이 사진을 제공하면서 자기 언니도 일본군성노예로 끌려갔을수 있다고 말한적이 있소.》

그때에야 진희는 펀뜩 정신이 들었다.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전광판에 재현되여있는 사진을 쳐다보았다. 눈이 왕사발만큼 커졌다. 방금전까지 박순정의 곁에 앉아 들여다보던 그 사진속에 자기네 큰할머니가 있다는 천만뜻밖의 사실을 의식했기때문이였다.

《어마? 아니, 정말 이럴수도 있습니까. 그러면 경증성교수가 내놓은 사진속에 있는 김녀라는 그 녀성이? 아!-》

김진희가 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손가락짬으로 새여나온 비명에 가까운 진희의 목소리가 회의장안을 울리였다. 그바람에 조사단성원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황정식은 입을 싸쥔 진희의 어깨를 쓸어주고나서 박순정과 여러 조사단성원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갔다.

《할머니! 자, 이 사진도 좀 봐주십시오. 이게 누군지 알만 합니까?》

황정식이 내미는 사진을 마주한 박순정의 눈이 커졌다.

《아니, 이것두 김녀구만. 나랑 같이 잡혀갔던 김녀요. 이건 또 어데서 난거요?》

녀의사와 황정식이 펄쩍 놀라는 박순정을 진정시키였다.

그때까지 겨우겨우 자기를 다잡고 박순정의 말에 귀를 강구던 김진희가 더는 참지 못하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진희동무!》

황정식이 소리쳤으나 진희는 보이지 않았다. 몇몇 우리측 조사단성원들이 따라나갔다.

아사꼬와 전홍 그리고 중국측과 일본측의 조사단성원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 마주보기만 했다.

잠시후 대형전광판에 두장의 사진이 나란히 재현되였다. 경증성이 내놓은 사진과 황정식이 내놓은 사진이였다. 서로 다른 사진속에 꼭같은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박순정이 김녀라고 한 녀성이였다.

황정식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리자 모두가 그에 귀를 기울이였다.

《…여러분, 금방 박순정할머니가 짚은, 〈킨수이로〉에서 크레졸을 마시고 숨졌다는 그 김녀라는 녀성이 다름아닌 김진희연구사의 큰할머니입니다.》

회의장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때까지 경증성과 박순정, 황정식과 김진희의 거동을 심상치 않게 여기고있던 아사꼬는 두장의 사진을 다시한번 대비해보았다. 사진속의 두 인물은 꼭같았다. 아사꼬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박순정이 황정식의 손을 붙들고 더듬거리였다.

《아니, 그…럼 그 김녀가 진희네 큰할미? 그렇다면 진희네 할미나 큰할미나 죄다 성노예? 어이쿠- 세상도 무심하지-》

황정식이 마감에 내놓은 사진은 진희네 할머니 김옥녀가 15살때 남포피복공장에 있는 언니 금녀를 찾아갔을 때 함께 찍었다는 바로 그 사진이였던것이다. 진희도 그 사진을 집에서 자기 할머니가 가끔 하염없이 들여다보는것을 목격하였다.

황정식은 금녀와 김녀가 한사람의 이름이라는데 대하여서도 설명하였다.

《진희연구사동무의 큰할머니이름에서 〈금〉자는 〈쇠 금〉자로 발음되기도 하고 성으로 쓰이는 〈김〉자로도 발음됩니다. 3년전에 별세한 김옥녀로인의 말에 의하면 그의 언니의 이름은 어릴적에 〈금녀〉라고도 불렀고 〈김녀〉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모든것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모든 조사단성원들이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듯 고개들을 끄덕이였다.


×


어스름이 깃든 호텔정원에서 스적스적 걸음을 옮기는 김진희의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다. 벌써 정원을 세바퀴째나 돌고있는중이다.

그 김녀라는 녀성이 나의 큰할머니일줄이야… 세상은 정말 얼마나 넓고도 좁은가.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사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통탄해하실가. 아버지, 어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 또 얼마나… 에잇, 죽탕을 쳐죽여도 씨원치 않을 악귀같은 쪽발이들을 그저…

아까 오후에 있은 원탁회의뒤끝에 받은 뜻밖의 충격으로 저녁밥을 먹는둥마는둥하고 발길이 가는대로 호텔정원으로 나선 김진희의 심중에는 오직 분노의 감정만이 굽이치고있었다. 가슴속을 꽉 채우고도 남는 그것은 이미 자제의 뚝을 넘어선지 오랬다.

불쑥 그의 귀전으로 자기 할머니의 목소리가 메아리쳐왔다.

《…일본군성노예문제가 어찌 나 하나에만 한한 일이겠냐. 우리 나라에서만도 얼마나 많은 녀성들이 끌려갔더냐.…》

(하긴 그때는 왜놈들이 우리 민족을 아예 없애버리려고 날뛰던 세월이였으니 달리될수 없는 운명들이였지.…)

진희가 이런 생각을 붙들고 한숨을 내긋는데 뒤쪽에서 발자국소리가 났다.

불빛을 등진 사람의 형체가 눈에 띄웠다. 자기를 향해 오고있었다. 녀자였다.

(의사선생이 날 데리러 오는구나.)

진희가 호텔정원으로 나설 때 녀의사는 그의 손목을 잡고 이젠 그만 마음을 진정하고 기분을 전환하라고 몇번이나 당부했던것이다.

진희는 자기가 너무 고집스럽게 행동하는것 같은감이 들어 다가오는 그림자를 맞받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녀의사가 아니라 뜻밖에도 아사꼬였다.

《김상, 지금 황상이랑 걱정이 큰데 이젠 그만 방으로…》

아사꼬도 김진희의 속마음을 잘 아는터이라 주저주저했다.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진희는 일본말로 《잘 만났어요. 그러지않아도 꼭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했댔는데…》라고 말하고는 정원의자가 놓여있는쪽으로 먼저 걸음을 뗐다.

아사꼬는 말없이 따라섰다.

여느때없이 도담해진 진희가 입을 열었다.

《아사꼬선생, 오늘은 같은 녀성이라는 점만 중시하면서 말을 좀 해보자요. 만약 내가 낳은 불량한 아들들이 당신이 낳은 딸들을 죄다 못쓰게 만들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것 같아요?》

진희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아사꼬는 정신이 아뜩해지는것을 느꼈다. 아들, 딸… 표현은 간결했지만 그것이 반성이라는 호수에 빠진 아사꼬를 눌러놓기에는 충분했던것이다.

잠시 머밋거리던 아사꼬가 나직한 소리로 응대했다.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사…죄할것을 요구해야지요.》

《그런데 사죄할 궁리를 안한다면?…》

《그래선 안되지요. 륜리적으로 보나 법률적으로 보나 가해자측은 피해자측에…》

피동에 서서 대화를 나누던 아사꼬는 애써 웃으며 진희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리고는 기여드는 소리로 말하였다.

《그런 이야기는 이젠 그만하자요.…》

진희는 그의 손을 탁 뿌리쳤다.

《아니, 난 더해야 하겠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 가슴이 당장 터져나갈것만 같아요. 우리 할머니나 큰할머니 그리고 박순정할머니와 같이 일본군성노예로 끌려다니며 온갖 치욕을 다 당한 녀성들이 우리 나라에서만도 부지기수가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일본정부는 어떤 둔갑술을 쓰고있어요. 그런 일이 없다? 민간인들이 한짓이다? 그리고 뭐 〈국민기금〉으로 성노예생존자들을 위로한다구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요. 〈국민기금〉이라는건 민간인들에게서 거두어모은 얼마간의 돈에 〈자선금〉, 〈위로금〉이라는 외피를 씌워 일본군성노예범죄에 대한 국가적배상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정부의 너절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거예요. 그래, 이게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쓴 왜인들의 륜리이고 법률이나요?》

진희의 입에서는 기관총탄같은 규탄이 쏟아져나왔다.

풀이 죽은 아사꼬는 후- 하고 한숨을 내불면서 모아잡은 두손을 가슴부위에 가져다 붙였다.

《김상, 나… 나도… 당신의 속마음을 나도 다 알아요.》

《아니, 다는 몰라요. 그랬기때문에 당신은 애초에 여기로 올 때부터 딴마음을 먹고있었어요. 분명 그것으로 하여 중국측 경증성교수의 말을 가로막아나서기도 했고 고령의 병약한 몸으로 머나먼 중국땅에까지 와서 피눈물을 흘리며 증언을 하는 박순정할머니에게 따지고드는것과 같은 무례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고…》

진희에게서 정통을 찔리운 아사꼬는 흠칠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한발자국 물러섰다.

《아… 아니, 김상, 이젠 그… 그만…》

분노의 감정이 극점에 달한 진희는 가슴에 옹친것을 죄다 쏟아놓을 심산인것 같았다.

《가만, 아직은 듣기만 하세요. 내가 없는 말을 꾸며대지는 않을테니까요. 아사꼬선생, 좀 생각해보세요. 그래 일본의 존엄이 그런 방법으로 신성시될가요? 그런 방법으로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고 오판이예요. 두 가정사이에 벌어진 비정상적인 일도 가해자측이 피해자측에 허심히 반성사죄하고 필요하면 배상도 해야 될진대 40여년간이나 남의 나라를 통채로 깔고앉아 별의별 범죄를 다 저지른 일본이 오늘에 와서도 눈감고 아웅하니 그게 어디 될법이나 한 일인가요?》

《…》

《이런 말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과거에 일본인들한테서 막심한 피해를 당한 조선민족의 후손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할거예요. 력사적으로 남의 나라에 화살 한번 날려본 일이 없는 우리 조선민족이 어째서 거의 반세기가 넘도록 피맺힌 한을 품고 살아야만 하나요.… 이건 다 일본이라는 그 저주로운 나라때문이예요. 일본이 감행한 조선에 대한 경제적략탈과 문화재략탈은 제쳐놓고서라도 인적인 략탈이 그 얼마에 달했나요.

중일전쟁발발이후에만도 840만여명의 조선의 청장년들을 〈징병〉, 〈징용〉이라는 명목으로 전쟁판과 공사장으로 끌고다니며 부려먹었어요. 그 과정에 100여만명이나 무참히 살해되였어요. 또 수많은 성노예녀성들가운데서 일본군에 의해 배를 갈리우고 사지를 찢기우고 생매장당한 녀인들은 과연 얼마인가요?… 그 령혼들이 지금 한을 풀어달라고 소리치다 못해 무덤을 박차고 뛰쳐나오려고 한단 말이예요. 아사꼬선생, 제가 무근거하게 말했다면 반박하세요.》

진희의 비수같은 말마디들이 아사꼬의 가슴에 사정없이 박혀들었다. 그러나 그 어떤 변명할 말도 찾아낼수가 없었다.

진희의 가슴속에서 증오의 감정이 굴뚝처럼 솟구칠수록 아사꼬의 마음속에서는 반성의식이 연기처럼 피여올랐다.

숨소리만 높이던 진희가 다시 입을 뗐다.

《내가 알기엔 아사꼬선생도 일본의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에 몸을 잠그고 제 나라 녀성들의 인격과 인권을 옹호하는 유익한 일들을 적지 않게 하였다고 하던데 다른 나라 녀성들에게 저지른 자기 선대들의 야만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왜 침묵을 지키고있는지 리해가 되지 않는군요.》

《…》

그 어떤 대꾸도 할수 없는 처지에 빠진 아사꼬는 자기가 이번 3개국합동조사단에 망라될 때부터 얼마나 어리석은 꿈을 꾸었는가를 통렬히 느끼였다.

아사꼬는 머리를 푹 떨구며 후- 하고 한숨을 내그었다.

입술을 옥문 진희의 두눈이 달빛에 번뜩이였다.

그 시각 호텔의 3층로대에서 황정식이 정원의자곁에 나란히 서있는 진희와 아사꼬를 생각깊은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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