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5장 《바로 이 집이요!》


5


박순정은 목이 잠겨 컥- 컥- 하고 기침을 하였다. 60년전에 휘뿌려진 기억의 파편쪼각들을 모아 자기의 피눈물나는 인생의 한 구간을 엮으며 여러 조사단성원들의 물음에 납득이 가는 답변도 주어야 했으므로 그럴수밖에 없었다.

중국측의 소자영교수가 탁앞에 놓인 고뿌를 박순정앞으로 끄당겨놓으면서 상냥하게 말하였다.

《할머니, 아주 중요한 사실들을 이야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 이젠 차를 좀 드십시오. 이건 중국에서 이름난 룡정차입니다.》

《아니, 아니. 난 랭수가 좋소. 물이나 좀…》

곁에서 박순정이 불편해할세라 왼심을 쓰던 김진희가 제꺽 물병을 고뿌에 기울이였다.

달아오른 속을 식히고난 박순정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현장을 돌아보며 그때의 형편을 고증해달라는 중국측 조사단성원들의 요청이 있었던것이다.

녀의사와 김진희의 부축을 받으며 휘청걸음으로 《킨수이로》의 계단을 톺는 박순정은 숨이 차서 헉헉하는 속에서도 력사의 증언을 하였다.

《그때 하루에도 이 계단을 몇번씩이나 오르내렸는지… 한계단한계단 오르고내릴적마다 발자국에 피눈물이 고였어. 피눈물이…》

박순정은 정말 의지가 강한 녀성이였다. 이를 악물고 그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종착점까지 기어이 가보고야말 강잉한 자세로 걸음걸음 뚜렷한 확인도장을 찍어갔다.

그러한 박순정이였지만 《2-19》라고 쓴 문패가 달린 방문을 열고 그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끝내 자기를 이겨내지 못하였다. 서글픈 눈길로 방안을 더듬던 그는 60년전의 악몽이 되살아올라 《어헉-》하고 풀썩 주저앉으면서 가슴을 쾅쾅 두드리였다.

《천… 천하에 못된놈들! 옘병이나 만나 콱 뒈질 개놈의 종자들아!- 아이고, 원통하구나.- 악귀를 찜쪄먹을 그 호색광왜놈쪽발이들이 날 이렇게 만들어놓았으니 이 원쑤를 뭘로 갚누!- 흐으윽-》

《할머니, 진정하세요.… 이러시다가 또 쓰러지시면… 할머니!-》

김진희가 박순정을 꽉 껴안고 진정시키려고 몸부림쳤다.

박순정의 뒤를 바싹 따르던 아사꼬는 그 광경이 너무도 처참하여 손수건을 꺼내들고 머리를 외로 돌렸다.

촬영기를 내두르던 전홍도 눈물이 나와 잠시잠시 촬영기에서 눈을 떼고 벌겋게 상기된 눈굽을 꾹꾹 찍었다.

황정식이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며 위로의 말을 해주어서야 박순정은 다소 진정될수 있었다.

그의 팔에 의지하여 다시 일어선 박순정은 한발자국한발자국 걸음을 옮겨 복도로 나서더니 손가락을 쭉 내뻗치며 소리치듯 말했다.

《저기, 바로 저기, 저기가 고문실이였소! 짐승같은 일본군대가 하자는대로 안하면 가두어넣고 때리고 발로 차고 별의별짓을 다하던 그 고문실이…》

박순정이 가리킨 방은 복도끝벽에 사다리를 기대여놓은 꼭대기에 있는 다락방이였다.

옛 모습 그대로인 고문실을 바라보던 박순정은 또다시 복도에 주저앉아 바닥을 쳤다.

《글쎄 저…저… 고문실에서 난…난… 처음으로… 아이고!- 그때 차라리 나에게 달려드는 왜놈의 낯짝을 물어뜯고 죽고말걸! 으흐흐흐-》

박순정은 이발까지 으드득 갈면서 오열을 터뜨렸다.

황정식과 김진희가 열심히 달랬어도 헛공사였다. 박순정은 그냥 복도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호곡하였다.

그 호곡은 짐승도 낯을 붉힐 그런 치떨리는 만행을 감행한 쪽발이호색광들을 만천하에 폭로단죄하고있었다.

박순정이 그곳 《킨수이로》에 끌려간 그날 저녁에 있은 일이라 한다.

그는 그때 너무도 세상을 몰랐다. 《킨수이로》에 도착한 날 목욕을 하고 나왔을 때 《두꺼비눈깔》이 그에게 이제부터 일본처녀를 대신하여 《황군》용사들을 상대하게 된다고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다. 그저 일본군군인들에게 술상이나 차려주는 그런 일인줄로만 알았다.

이런 순정에게 갑자기 허우대가 황소같은 일본군 하사관이 달려들어 수욕을 채우려 했으니 그가 얼마나 기절초풍을 했겠는가.

방안에 들어선 그놈은 옷을 와락와락 벗어던지고는 무작정 순정을 그러안으려고 덤벼쳤다.

《어마… 이건 뭐예요?》

순정은 깜짝 놀라 뒤걸음치며 몸을 옹송그리였다.

《새로 온 센삔가? 요시- 그렇게 사양이나 하니 더 예쁘다. 으흐하하-》

턱주가리가 침판지의것처럼 쑥 삐여져나온 하사관은 이렇게 씨벌이며 색욕에 벌겋게 충혈된 눈알을 데룩거리였다.

순정은 눈앞의 모든것이 마구 빙빙 돌아갔다.

(아, 이게 무슨 변인가. 내…내가 이런델 오다니…)

그때에야 순정은 자기가 구렁텅이에 빠져들었다는것을 완전히 의식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그는 이미 조롱안에 든 새였다.

하지만 순정의 마음은 닥쳐든 현실앞에 순순히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반항의 길로 나갔다.

《비키지 못해!- 어서 썩 나가!- 이걸 놔라. 누가 밖에 없어요?-》

《빠가야로! 자기 할바도 모르는 센삐!… 내가 오늘 네년에게 그걸 똑똑히 가르쳐주지.》

방안은 순간에 란장판이 되였다. 바지를 벗어던지고 씩씩대며 달려드는 호색광과 저항해나서는 순정이사이에 격투가 벌어졌다.

순정은 그 징글맞은 하사관을 향해 베개면 베개, 모포면 모포, 손에 잡히는것은 죄다 내던졌다. 그러나 18살의 연약한 순정은 황소같은 놈의 힘을 당해낼수가 없었다.

하사관이 순정을 등뒤로 그러안았다. 그리고는 쇠침대가 있는쪽으로 끌고가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메돼지이발 같은것을 드러내고 느물거리던 호색광이 기겁을 했다.

《아야야!- 칙쑈, 네년은 개나 한가지다!》

박순정의 허리를 놔버린 하사관은 팔목을 붙잡고 팽이처럼 돌아갔다. 박순정이 있는 힘을 다하여 그놈의 팔목을 콱 물어뜯었던것이다. 하사관놈의 팔목에 시퍼런 이발자국이 났다. 성이 독같이 오른 호색광은 방 한쪽구석에 들어박혀 부들부들 떨고있는 순정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하였다.

짐승처럼 날뛰던 그 하사관놈은 《위안소》주인에게로 가서 어데서 저런 개같은 센삐를 끌어왔는가고 을러멨다.

상판이 꺼멓게 되여 달려온 루주는 순정의 머리끄뎅이를 잡아쥐더니 다락방으로 끌고 올라가 철사로 두손을 꽁꽁 묶은 다음 때리고 차며 온갖 폭행을 다했다.

고문실에서 자지러지게 울리는 순정의 비명소리는 《킨수이로》안팎을 뒤흔들었지만 누구 하나 내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위안소》에서 그런 일은 일상사였기때문이였다.

한참 열을 올리던 끝에 상판이 말고기처럼 벌그죽죽해진 루주는 헐떡거리면서 목이 쉰 승냥이소리를 냈다.

《귀…귀신 몰래… 죽…죽고싶지 않겠거든 일…일본병이 하자는대로 하…하란 말이다! 알…알겠는가!-》

그날 일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루주는 순정을 반주검이 되도록 때린 다음 그를 좁고 길다란 낡은 책상우에 반듯이 눕혀놓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팔다리를 쇠줄로 묶었다. 입에는 걸레뭉치를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고문실아래 복도에서 순정의 이발에 물린 손목을 잡고 독이 올라 풀떡거리는 하사관을 불렀다.

《오이, 하사관. 어서 올라가 옹친 마음이나 풀라구.…》

방금전까지 우거지상을 하고있던 호색광의 얼굴에 희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놈은 사다리를 타고 고문실로 올라갔다.…

박순정은 이렇게 쪽발이호색광들에게 정조뿐아니라 모든것을 다 빼앗겼다.

《킨수이로》지붕밑의 다락방은 성노예들에게 있어서 공포의 방이였다.

그러나 성노예들이 당하는 고문은 꼭 그 다락방에서만 감행된것은 아니였다.

이와 관련한 자료를 다음날 황정식이 합동조사단 성원들앞에서 공개하였다.

《박순정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그때 이곳 〈킨수이로〉에 아침부터 초저녁까지는 병졸들이, 초저녁부터 밤 9시까지는 하사관들이, 그 이후에는 장교들이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병졸들인 경우에는 매주 륜번제로 오게끔 계획을 짰다고 합니다. 이런 계획을 부대의 〈위안〉계를 감독통제하는 병참장교들이 작성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다 확증되였습니다.

〈위안소〉에 온 일본군군인들은 1층계단 왼쪽에 있는 접수구우에 주런이 내다걸어놓은 성노예들의 사진을 보고 대상을 골라잡았다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이 되면 〈위안소〉로 일본군호색광들이 무리로 쓸어들군 했는데 그런 날에는 성노예들의 방은 짐승도 낯을 붉힐 잔인한 고문장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자, 여러분! 박순정할머니의 목에 난 이 칼자리를 좀 보십시오.》

황정식은 박순정의 목에 가로건너간 5센치메터정도의 허물자리를 가리켰다.

그 허물자리에도 기막힌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그날은 박순정이 《킨수이로》에 끌려와 한달정도 지난 어느 토요일이였다.

자정이 넘도록 순정은 잠들수가 없었다. 다음날인 일요일은 당장 전장으로 출동할 숱한 일본군이 《킨수이로》접수구에서 꼬리잡이를 하는 날이였다. 여느때도 그랬지만 특히 이런 날에는 방에 들어오는 놈마다 광기가 올라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성노예들에게 폭행을 가하군 했던것이다.

순정은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더는 못 참겠구나.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바엔 여기서 도망을 치자!… 죽어야 한번 죽지 두번 죽을가!)

잠자리에서 뒤척이던 순정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순종》밖에 모르던 그의 머리속에서는 악몽의 소굴을 뛰쳐나갈 생각이 굴뚝처럼 일어섰다.

하지만 《킨수이로》를 뛰쳐나가는 일은 생사를 건 탈옥만큼이나 어려웠다. 복도를 통해 접수구앞으로 빠지는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였다. 접수구앞에는 물론 마당가 대문밖에도 총을 멘 일본군병졸들이 서있었던것이다. 복도에 있는 창문으로 빠지는것도 불가능했다. 2층건물인데다가 복도창문은 《킨수이로》마당으로 나있었고 창밖으로는 손가락만큼 굵은 철근으로 살창을 해놓아 머리도 내밀지 못하게 되여있었다.

통로는 오직 하나, 고문실로 리용되는 다락방의 작은 통풍구를 거쳐 지붕에 올랐다가 《킨수이로》뒤쪽 담장을 타고 골목길로 빠지는 길밖에 없었다. 며칠전에 또 고문실로 끌려갔던 순정은 그것을 눈여겨보아두었던것이다. 통풍구에도 철사로 그물망을 쳐놓았지만 그건 발로 차면 떨어져나갈것 같았다.

순정은 이를 사려물었다. 자그마한 보퉁이를 꼭 껴안고 방문을 나섰다. 발끝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사다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저벅- 저벅- 최대로 조심하여 발을 저겨딛는데도 별로 발자국소리는 요란했다. 가슴이 후두두- 떨려났다.

입술을 감쳐물고 사다리에 매달린 순정은 한단 또 한단 다락방으로 기여올랐다.

그는 다락방에 올라가 잠시 숨을 모두어쉰 다음 통풍구의 쇠그물에 오른쪽발바닥을 가져다대고 내밀면서 안깐힘을 썼다.

《뿌드득- 뿌드득-》

쇠그물이 좀 밀리는듯 하더니 조금 느즈러지고는 그냥 떡떡 맞섰다. 이발까지 으득- 으득- 갈면서 두손으로 쇠그물을 잡아흔들었으나 떨꺽, 떨꺽하는 소리만 울렸다. 통로는 열리지 않았다. 이제는 이발로 막 물어뜯고싶어졌다. 그러나 순정의 이발이 쇠줄을 자르는 뻰찌는 아니였다.

순정의 이마에서는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입술사이에는 피가 내배이였다.

아, 이거… 어서 콱 부서져라! 어서!-

쇠그물을 거머쥔 손가락짬에서도 끈적끈적한것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쇠그물은 보기에는 가늘었지만 일본쪽발이들의 심보처럼 검질기기란 보통이 아니였다.

순정은 한참 씨름질을 해서야 겨우 2개의 쇠줄을 뽑아냈다. 거기로 무작정 머리를 들이밀던 순정은 밖을 내다보았다. 우물안에서 올려다보는듯 뎅그렇고 검푸른 밤하늘에서는 몇개의 별들이 껌벅대고있었다. 몸이 빠지자면 적어도 2개의 쇠줄은 더 뽑아야 했다.

순정에게는 피끗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옳지! 주인이 고문할 때 휘두르던 몽둥이가 여기 어디에 있겠는데… 순정은 손더듬으로 다락방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몽둥이는 어디로 갔는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마 주인이 다락방에 올라올 때마다 차고 올라온 모양이였다.

안절부절을 못하던 순정은 안고 올라온 보퉁이를 풀어헤쳤다. 거기에서 놋숟가락을 꺼내들었다.

순정은 그 놋숟가락을 세토막으로 부러뜨리고서야 쇠줄 2개를 더 뽑아냈다.

이제 통풍구를 빠져 지붕을 타고 뒤쪽담벽이 있는데로 가서 뛰여내리기만 하면 그는 성노예생활에서 풀려날수가 있었다.

순정의 가슴에서는 희망의 새가 날개를 퍼득이였다.

어서 나가자! 어서… 아, 하늘에 정말로 하느님이 계신다면 하느님이시여, 이 불쌍한 소녀를 제발 구원해주시옵소서.

그는 한줌만해진 속에 콩당거리는 심장을 싸안고 통풍구를 빠져 《킨수이로》지붕우에 올랐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까스로 옮겨짚을적마다 기와장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푸릿한 밤공기를 조용조용 흔들었다.

서켠하늘에서는 얼빠진 달이 해쓱해서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때까지도 움직이는것은 순정이 하나뿐인것 같았다. 《킨수이로》정문이 있는 앞쪽에서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멀리 남경교외의 어느 한 산기슭의 농가들에서 개들이 컹컹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뿐이였다.

이제 순정은 몇발자국만 더 옮겨 뒤쪽담장을 타고 땅에 내려서기만 하면 성공이다.

그러나 무정한 하느님은 끝내 순정의 편이 돼주지 않았다. 뒤쪽골목길에서 뚜걱뚜걱하는 말발굽소리가 나더니 지붕우에서 앉은걸음을 하는 순정의 온몸에 전지불이 확 비쳐졌다.

《누구야?-》

야간순찰을 하던 일본헌병들의 눈에 순정이가 걸려든것이다. 피끗 아래를 내려다보니 두필의 말과 그우에 올라앉은 헌병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차, 걸렸구나!)

순정은 황황히 걸음을 되돌려 지붕우에 삐죽이 솟아오른 굴뚝뒤에 제꺽 몸을 숨겼다.

《호르륵-》

헌병들은 호각을 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킨수이로〉- 주인상! 뭘 하는가? 삐가 도망이나 친다!-》

순간에 주변이 발칵 뒤집혔다. 잠옷바람의 루주가 술냄새를 풍기며 헐레벌떡 달려나왔다.

《기따무라상, 그렇게 술이나 처먹고 계집이나 끼고있으니 우리 〈황군〉을 위안할 삐가 도망치는것도 모르고있지 않는가? 저기를 좀 보란 말이다!- 저기를…》

헌병들은 전지불로 순정이가 숨어있는 굴뚝을 가리켰다.

《하잇! 정말 죄송합니다.》

루주 기따무라는 그달음으로 《킨수이로》지붕으로 기여올라갔다.

순정은 올데갈데가 없었다.

아, 이제는 끝장이로구나. 그럴바엔 여기서 죽어버리고말자!…

이런 결심이 머리를 쳐들자 순정은 굴뚝뒤에서 몸을 불쑥 솟구었다. 그리고는 지붕아래로 몸을 내던지려고 앞으로 마구 내달았다.

와지끈, 뚝! 뚝!…

발밑에서 기와장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이제 여라문발자국만 내달아 몸을 날리면 모든것이 끝장나는 판이다. 헌데 다리가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서너발자국 내짚다가 앞으로 꼬꾸라진 순정은 지붕우에서 데굴데굴 굴기 시작하였다. 그대로 몸을 내맡기고 몇고패만 더 굴면 자기의 결심을 실행하는것이다.

그러나 순정은 끝내 지붕추녀가 있는 곳까지 채 가지 못하고 루주 기따무라의 집게같은 우악스러운 손에 덜미를 잡히고말았다.

루주의 손에 든 전지에서 화광이 뿜어져나왔다.

《〈우따마루〉, 네년이? 지독한 년.》

《이걸 놔라! 난 죽고말테다!-》

순정이 아무리 기를 써도 말승냥이같은 루주의 손탁에서 빠져나갈수가 없었다.

《킨수이로》마당가로 끌려내려온 순정은 온통 피자박이 되여 쓰러지고말았다.

《어서 날 죽여라!-》

순정은 악을 쓰며 발버둥질쳤다.

뒤미처 벌어진 소동을 알고 안에서 성노예를 끼고 드러누웠던 병참장교 겐지가 달려나왔다.

땅딸보는 군도를 쭉 뽑아들었다.

《칙쑈, 지독한 센삐!-》

시퍼런 군도가 부르르 떨며 마당가에 쓰러진 순정의 턱밑으로 다가들었다.

그러나 순정은 무섭지 않았다. 모든것을 다 포기한 그로서는 꿈만했다. 정말 칼로 당장 목을 친대도 두렵지 않았다.

순정은 벌떡 일어나 앉으며 턱밑에서 독기를 풍기는 군도를 두손으로 덥석 잡았다. 두눈에서는 퍼런 불줄기가 황황 쏟아져나왔다.

《아니? 〈우따마루〉!- 어쩌자고 그러는가? 빨리 장교님에게 잘못을 빌라!- 그렇지 않으면 끝장이야!》

곁에 서있던 잠옷바람의 루주가 등이 달아 소래기를 내질렀다. 수틀리면 뭣이든 마구 깨버리고 짓밟아버리는 겐지의 기질을 너무도 잘 아는 루주였던것이다.

만약 그 자리에서 순정의 목을 치는 날에는 그만큼 자기의 《밑천》이 녹아난다는것을 알고있는 루주는 겐지의 팔에 매달렸다.

《장교님, 저… 저 이번이 처음인데 너그럽게 한번만…》

뒤따라 마당가로 달려나온 《두꺼비눈깔》도 땅딸보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졌다.

《〈황군〉을 위안 안하겠다는 센삐는 죽어 마땅하다!》

겐지는 순정의 목밑으로 내뻗쳤던 군도를 홱 나꾸챘다. 그 겨를에 칼날이 선뜩- 하고 순정의 목을 벴다. 순간 목에서 선혈이 뿜어나오고 두손바닥에서도 피가 좔좔 흘러나왔다. 다행히도 그가 손으로 군도를 잡고있었기에 식도가 있는데까지는 칼날이 들어가지 못했다. 피투성이가 된 순정은 정신을 잃고 마당가에 쓰러졌다.

김녀가 순정에게로 달려가 입은 옷을 북북 찢어 목을 싸맸다. 그러나 끊어진 혈관으로 피는 계속 뿜어나왔다.

그런데도 루주부부는 《킨수이로》에 망조가 들었다는 넉두리만 늘어놓을뿐이였다.

이날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던 박순정은 김녀와 한룡화를 비롯한 동료들의 간호를 받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수가 있었다.…

황정식의 이야기가 끝나자 곁에 앉아 분격을 참지 못하던 박순정이 《어디 그뿐인줄 아오?》 하고는 저고리앞섶을 와락와락 풀어헤쳤다.

그가 내보이는 복부 배꼽아래와 젖가슴사이에는 대추씨만 한 흉터가 여러개 나있었다. 야수와 같은 일본군인들이 성욕을 채운 후 자기들이 하라는대로 안한다고 담배불로 지져놓은 자리라고 박순정은 말하였다.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면서 록음을 하던 아사꼬는 저도 모르게 《짐승보다 더한것들!》 하고 혀아래소리로 웅얼거리였다. 그러면서도 한편 일본인이라는데서 오는 타성으로부터 과연 그런 엄청난 일들이 있었겠는가. 덧붙이고 보태여져 그렇게 엄청난것으로 되였겠지하는 미련만은 쉽게 털어버릴수가 없었다.

생각끝에 아사꼬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 박상은 정말로 그런 일을 당하셨다는 말씀이지요?》

박순정이 아사꼬를 똑바로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이보게, 일본에서 온 선생, 난 거짓말을 할줄 모르오. 그래서 그때 왜놈들한테 누구보다 더 속히운거구 매도 더 많이 맞은거요. … 이자 황선생이 말한거나 내가 말한것들은 죄다 만신창이 된 이 육신에 와닿았던 일이고 이 두눈으로 똑똑히 본것들이요. 거짓말을 애들 떡먹듯 하는건 인정머리가 꼬물만치도 없는 그 배라먹을 일본쪽발이들이요. 지금 여기 〈킨수이로〉에서도 그것이 다 증명되고있는데 아직도 옛날 일본군대에 성노예제도가 없었다고 계속 우기니까… 콩밭에 소 풀어놓구두 할 말이 있다더니 뭐가 어쨌소저쨌소 하면서 사죄 한마디 없는 시러베같은 놈들…》

아사꼬는 공연히 혀바닥을 놀렸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와는 상관없이 박순정의 욕은 그칠줄 몰랐다.

《세월이 많이 가서 우리처럼 일본군의 성노예노릇을 했던 사람들이 병들어 죽고 늙어서 자빠지니까 그저 우기면 되는가부다 하는것같은데 그래선 못써. 죄는 지은데로 가기마련이요.… 옛날 나쁜 짓거리한건 죄다 감추구 뭐, 조선녀자들이 돈벌이를 하자고 자발적으로 몸팔러 다닌거라구? 그건 왜놈호색광들이 변명을 하면서 줴치던 허튼수작질이야. 이제 보라구. 일본군대에 끌려다니며 성노예로 고역을 치르다가 억울하게 죽은 우리 조선녀성들의 혼백이 당장 무덤을 차고 나와 그런 놈팽이들의 멱살을 물고늘어지지 않나.… 그래서 나도 수십여년동안이나 가슴만 쥐여뜯으며 입을 꾹 다물고있다가 이번에 용기를 내여 그런것들과 해보자고 삐걱거리는 수족을 끌고 길을 떠난거야.… 선생, 똑똑히 알아두라구. 가슴아픈 력사일수록 지워버려선 안돼!…》

한두마디면 끝날줄 알았는데 순정은 속에 있는 생각을 다 내뱉으며 이렇게 한동안 계속 꾸중을 했다.

박순정의 말은 합동조사단 성원들의 가슴을 세차게 휘저어놓았다.

아사꼬는 입술을 깨문채 머리를 수그리였다.

(과연 저 박상의 말이 사실일가? 짐승도 낯을 붉힐 그런 잔학한 행위를 바로 우리 전세대의 일본군군인들이 저질렀단 말인가?… 너무했구나. 정말 너무했어.… 아무리 전장터이고 또 설사 식민지로 타고앉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같은 인간인 녀성들에게 어쩌면 그런 야만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할수 있단 말인가? 이 엄청난 반인륜적인 성노예범죄를 어떻게 변명할수 있단 말인가. 아!-)

아사꼬는 끝없는 허무감과 상실감에 심신을 내맡긴채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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