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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1일

평양시간


제 21 회


제5장 《바로 이 집이요!》


4


악몽의 서막은 올랐다.

《금수루》라는 간판이 내걸린 벽돌집마당가에 들어선 순정이네들은 어리벙벙해졌다.

순정이네들을 호송한 땅딸보병참장교 겐지가 그들을 마당가에 정렬시키고 가방에 넣고 간 문서장들을 펼치고 일장 훈시를 하였다.

《에- 이제부터 너희들의 집은 여기고 일터도 여기다. 루주의 말을 공손히 따르며 전장에서 무훈을 떨치는 〈황군〉을 위해 멸사봉공하기를 바란다. 알겠는가?》

겁에 질린 처녀들이 목을 움츠리자 땅딸보가 칼자루를 절커덕거리며 꽥 소래기를 내질렀다.

《알겠는가?-》

그랬어도 순정이네들은 아무 응답없이 눈만 데룩거리며 비실비실 뒤걸음질을 쳤다. 여기가 집이고 일터도 여기라는 말뜻을 알수가 없었고 《황군》을 위해 멸사봉공하라는 말을 리해할수도 없었기때문이였다.

《빠가야로!- 좋다. 오늘은 첫날이니 이만하겠다. 앞으로는 〈하잇〉하고 대답을 해야 한다. 알겠는가?》

《?》

이런 속에서도 땅딸보병참장교의 쪼프라진 눈길은 앞가슴이 봉긋하고 처녀꼴이 확연한 한룡화에게서 떨어질줄 몰랐다.

땅딸보의 눈총에 맞은 한룡화는 머리를 외로 꼬았다.

헛기침을 몇번 하고난 땅딸보가 곁에 붙어선 루주에게 빨리 방배치부터 하라고 지시하였다.

길쑴한 얼굴이 꼭 거세한 수말같아보이는 루주가 《하잇!-》하고 몸을 빳빳이 세웠다.

순정이네들은 그들부부가 이끄는대로 집현관으로 들어가 란간이 있는 계단을 짚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여기가 네 방이야.》

바세도병을 앓았는지 눈알이 쑥 삐여져나오고 볼이 훌쭉한 주인녀편네가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순정에게로 쭉 내뻗쳤다.

계단옆 두번째 방의 《2-19》라는 패쪽이 달린 문앞에 선 순정은 관청에 온 촌닭처럼 멍청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안은 비좁은편인데 그리 넓지 않은 쇠침대가 하나 놓여있고 천정에는 알몸뚱이의 쬐꼬만 전구알이 데룽거리고있었다. 방안에 들어서니 헉헉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호실은 북쪽방이였는데 출입문 하나를 내놓고 사방이 벽돌로 꽉 둘러막히다보니 바람 한점 통하지 않는 한증탕이나 한가지였다. 원래 한여름의 남경은 무한과 중경과 더불어 중국의 《3대부뚜막》으로 불러오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도 창문이 없는 집들을 흔히 한증탕에 비유한다.

두꺼비눈깔처럼 안구가 툭 불거진 주인녀편네가 상냥한체 하며 수선을 떨었다.

《자, 이젠 목욕도 하고 옷이랑 갈아입어야지. 응? 어서 목욕부터 하라구. 저기에 기모노와 몸뻬도 꺼내놓겠으니 목욕을 한 다음 그 더러운것들은 다 벗어버리고 새옷을 갈아입어야 해. 알겠니?》

주인녀편네는 보기와 달리 조선말을 괜찮게 하였다. 억양까지 비슷하게 살리는것을 보니 조선땅에서 적지 않게 굴러먹은것 같았다. 그만큼 조선처녀들을 다루는 솜씨도 능했다.

순정이가 목욕을 하고 나오니 발밑에 일본녀자들이 입는 옷가지들이 던져져있었다.

그가 머리를 빗고있는데 복도에서 달그락달그락하는 게다짝끄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더니 주인녀편네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들어섰다.

그는 순정을 아래우로 뜯어보다가 수첩장을 벌컥벌컥 번지더니 《참, 넌 오늘부터 〈우따마루〉야. 어때, 듣기 좋지?》 하고 물었다.

순정은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야요. 난… 난 박순정이야요.》

순간에 《두꺼비눈깔》의 인상이 확 달라졌다.

《시키는대로 고분고분해! 어자어자해주니깐 여기가 뭐 네 세상인줄 알아?… 이제부터 넌 일본처녀들을 대신하여 〈황군〉용사들을 상대하는 쵸센삐 〈우따마루〉야. 알겠는가?-》

《?》

앙칼진 소리에 와뜰 놀란 순정은 온몸에 소름이 내돋는것을 느꼈다.

동안이 지나자 《두꺼비눈깔》은 다시 《마음고운 마님》이 되였다.

《〈우따마루〉, 내 방금 큰소릴 좀 쳤는데 다 널 위해서 그러는거야. 알겠어?… 이제 사람을 보내줄테니 당장 단발을 해. 그래야 센삐냄새도 다 가셔져.》

《?》

당시 일본군군인들은 《위안소》를 가리켜 《삐야》라고 했다. 여기서 《삐》라는것은 중어로 녀성의 외음부를 의미하는 말이였는데 조선인성노예는 《쵸센삐》 또는 《센삐》, 중국인성노예는 끌어온 곳에 따라 《만주삐》, 무슨 《삐》 하는 식으로 불렀다.

순정을 비롯한 새로 온 5명의 처녀들은 이런것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생둥이들이였다.

주인녀편네는 방에서 나가면서 《〈우따마루〉, 이제 좀 있으면 사진사가 오겠는데 빨리 1층 접수실 옆방으로 내려오라구. 고운 모습을 사진찍어두어야지?》 하고 말하였다.

그년은 순정이만이 아니라 새로 온 처녀들의 매 방에 들어가 상냥스레 수다를 부리면서 그런 지시를 주었다.

새로 온 처녀들은 《킨수이로》에서 이제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사진은 왜 찍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주인녀편네가 시키는대로 단발을 한다, 옷을 갈아입는다 하면서 부산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한해전부터 《킨수이로》에 와있었다는 언니벌 되는 한 조선녀자가 가위를 들고 순정의 방으로 들어섰다.

서글픈 눈길로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는 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한숨을 내쉬며 눈길을 떨구었다.

고지식한 순정은 눈물이 글썽해가지고 주인마님이 하라는대로 그에게 머리를 내맡겼다.

《언니, 어서 잘라줘.》

《생각 잘했어. 여기선 말 안 들으면 혼쌀이 나…》

박순정이 그처럼 자랑하던 치렁치렁한 외태머리가 썩둑 잘리워 마루바닥에 떨어졌다.

거울을 들여다보던 순정은 깜짝 놀랐다. 좀전까지 거울안에 있던 외태머리 박순정은 온데간데 없고 짧고 마구 헝클어진 머리털을 가진 《우따마루》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것이 아닌가!

흑- 하며 얼굴을 싸쥔 순정은 《엄마-》 하고 울음을 터뜨리였다.

가위를 쥔 언니가 눈굽을 찍으며 순정의 방에서 나갔다.

잠시후 탁성이 섞인 악청을 내지르는 루주의 목소리가 2층복도를 울리였다.

《사진사가 도착하였으니 새로 온 센삐들은 빨리빨리 1층 접수실옆방으로 내려오라!-》

침대에 어푸러져 한동안 울고있던 순정은 부랴부랴 주인녀편네가 주고 간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처음 입어보는 일본옷이라 입는 방법을 잘 몰랐고 몸에 붙지도 않아 몇번이나 입었다벗었다 하였다. 그러다가 끝내는 보퉁이속에 넣고 간 치마저고리를 꺼내입었다.

순정이가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주인녀편네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니? 입으라는 새옷은 안 입고 왜 그따위 너절한걸 입었어? 당장 바꿔입어!-》

주인녀편네는 다짜고짜 순정에게 달려들어 치마저고리를 벗겨서는 북북 찢어버리고 일본옷을 억지로 입혀주었다. 발에도 고무신이 아니라 걸을 때마다 달그락거리는 게다짝을 끌게 하였다.

순정이가 1층 접수실 옆방에 들어서니 거기에는 벌써 단발을 하고 일본옷을 입은 김녀랑 한룡화랑 다 와있었다. 신의주역에서 끌려간 허선애와 키가 자그마한 14살짜리 소녀애도 그들의 옆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일본군병졸인 사진사가 잠간사이에 촬영준비를 끝냈다. 세 발을 뻗쳐세운 구식사진기꼭대기에서 펑긋- 펑긋- 화광이 발산될 때마다 새로 끌려온 5명의 처녀들의 창백한 얼굴이 사진필림에 그대로 옮겨졌다. 순정이네들은 그 사진이 바로 《킨수이로》 접수구꼭대기에 내걸릴 자기네들의 인물사진인줄 모르고있었다.

이렇게 오후시간을 보낸 순정이네들은 저녁때가 되자 1층 식당칸에서 식사를 하게 되였다.

길다란 앉은 밥상이 두줄로 놓여있는 방에는 이미 와있던 16명의 녀성들이 먼저 식사를 하고있었다.

순정이네들은 주인녀편네를 따라 식당칸으로 들어가 식탁을 마주했다. 그런데 식사질은 고사하고 우선 량이 너무나도 보잘것없었다. 밥은 두숟갈이면 바닥이 나고 뎅그런 접시에 쥐똥만큼 담아놓은 반찬도 두어저가락이면 자취도 없이 사라질것 같았다.

그랬지만 주인녀편네는 요사스러운 목소리로 말반찬만 가득 쏟아놓았다.

《자, 오늘은 첫날이니 간단히 요기나 하자. 이제 맡은 일들을 잘 해서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맛있는 료리도 해먹고 참, 오징어와 참치를 사다가 맛있는 스시(초밥)도 해먹자꾸나. 군교즈랑… 이제 너희들이 돈을 많이 벌 때 내 한턱 내서 갈비찜이랑 국수랑 찰떡이랑 다 해주지. 자, 그럼 많이들 들라구…》

《두꺼비눈깔》은 이렇게 수다를 부리고 나가버렸다.

건너편 밥상에서 수저를 놀리던 언니벌 되는 녀성들이 주인녀편네가 나간 문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입을 삐쭉거리였다.

순정이네들이 저녁밥을 먹고난 뒤였다.

《킨수이로》의 《제왕》인 땅딸보 겐지가 다께다라는 군의관을 데리고 나타났다. 순정이네들은 또다시 《킨수이로》마당가로 불리워나갔다.

일렬횡대로 선 순정이네들을 일별해보던 겐지가 위엄을 돋구며 한마디 했다.

《모두 그렇게 차려입으니 보기나 좋다. 그럼 이제부터 건강검진을 하겠다. 군의관 다께다상의 지시에 따라 한명씩 접수구 옆방으로 들어가 검진을 받으라.》

루주부부가 접수구 옆방의 침대를 정돈해놓고 책상과 의자도 가져다놓자 겐지는 다께다에게 검진을 시작하라고 눈짓하였다.

군의관 다께다는 하얀 위생복을 걸치고 접수구 옆방으로 들어갔다.

새로 온 처녀들에 대한 검진이 시작되였다. 기본은 성병이 있는가 없는가를 검열하는 일이였다.

검진이 끝난 후 겐지와 다께다가 붙어서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

다께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던 겐지의 눈가에 웃음기가 내비쳤다.…

박순정의 입에서 백화자라는 이름이 나올 때부터 특별히 신경을 곤두세우며 수첩에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적어나가던 중국측의 력사학자 과진량이 그에게로 다가서며 나직이 물었다.

《박할머니, 그때 남경에 있던 군인구락부마당에서 갈라진 백화자를 그후에는 다시 못 만났습니까?》

박순정이 과진량에게로 얼굴을 돌리였다.

《못 만나긴요. 하느님의 작간이였는지 그때 여기 남경에 오자마자 헤여졌던 백화자를 그후 1944년 봄이던가 여름이던가 총포탄이 윙- 윙- 날아다니는 전장인 송산에서 잠간 만났지요. 그런데 백화자는 그후 인차 수무천에 빠져죽었어요. 정말 그때 전쟁판으로 끌려다니던 우리 녀성들의 운명은 기구했지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엮어가던 박순정이 후- 하고 한숨을 내불었다.

과진량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

《킨수이로》에 새로 끌려온 처녀들이 검진을 마친 그날 저녁 순정이가 든 방의 출입문바깥쪽에 붙은 《2-19》라는 패쪽밑에 《우따마루》라는 이름표가 내걸리였다.

성노예들에게는 조선말을 하는것도 금지되였고 건물밖으로 나가는 외출도 금지되였다. 그들에게는 오직 낮에는 일본군병졸들을 상대하고 밤에는 장교들을 받아들이는 성노예의 《업무》를 집행할 의무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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