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5장 《바로 이 집이요!》


3


순정은 1921년 12월 중순 평안남도 강서군(당시)의 가난한 가정에서 맏딸로 태여났다.

나라라는건 이미 깨여진 둥지가 된 때라 성한 알이 없었다. 순정이네는 원래 가난한 동네에서도 째지게 가난하다고 소문난 집이라 식구들은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순정이는 젖꼭지를 물리기 바쁘게 나물죽으로 주린 창자를 달래며 자랐다. 걸음마도 어머니의 등에 업혀 나물캐러 가서 가시덤불을 밟으며 익혀야 했다.

이렇게 노랑꽃만 피는 가정에 귀신이 붙었는지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는 7살 나는 맏딸 순정이와 그아래 5살짜리 둘째딸 그리고 젖먹이 막내아들을 남겨놓은채 그만 덜컥 숨졌다.

어린 순정은 이때부터 젖달라고 울다가 기진해서 늘어진 동생을 손바닥만 한 등에 업고 이 마을 저 마을로 피눈물이 고인 발자국을 찍어갔다.

아근의 사람들은 젖동냥을 하는 그의 애달픈 목소리를 시계종소리처럼 들었다.

《젖 좀 주세요. 젖 좀 주세요. 우리 애기가 배고파 죽어가요. 아지미, 제…발 내 동생을 살려주세요. 네?…》

순정의 그 처량한 목소리덕에 동생은 살려냈으나 엎친데 덮친다고 집안에 또 불행이 겹쳐들었다.

탄광의 오소리굴같은 갱마구리에 들어가 석탄짐을 지면서 집안식구들의 입에 풀칠이나마 시키던 아버지가 붕락되는 돌에 깔려 다리병신이 되였던것이다.(그후 마음좋은 계모가 순정이네 집으로 들어왔다.)

보쌈에 송사리 엉기듯 하는 막심한 고생속에서도 순정은 커갔다.

고생이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한다고는 하지만 순정은 역시 동심에 사는 소녀였다.

마을에는 동갑또래의 탄광 십장네 딸과 몇몇 부자집애들이 있었다.

그애들은 행길에 나와 히히닥닥거리며 줄넘기를 할 때가 드문했다.

《시내물이 흐르네 졸졸졸 밤에도 낮에도 졸졸졸…》

누덕누덕 기운 몽당치마를 걸치고 여윌대로 여윈 뼈만 남은 동생을 업고 부자집애들이 즐겁게 노래까지 부르며 노는 모양을 울바자뒤에서 훔쳐보는 순정의 두눈에서는 시내물이 아닌 설음의 눈물이 졸졸 흘러내렸다. 그러다가는 몸을 홱 돌려 집 허청간으로 달려들어가 엉엉 울군 하였다.

그때부터 그의 어린 넋에는 빈한한 가정이 던져준 고독감과 서러움으로부터 생겨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단단히 둥지를 틀게 되였다.

어리광 한번 부려보지 못하고 자란 순정은 학교는커녕 14살 잡히던 해에 남포시 후포동에 있는 어느 한 양복점에 심부름군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진 빚을 덜기 위해 연약한 두어깨에 로동이라는 과중한 짐을 걸머진것이다.

순정이가 18살 나던 해인 1939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그날은 삼복의 폭양이 대지를 사정없이 지져대던 날이였다.

시커먼 제복차림으로 어깨에 별을 2개 달고 옆구리에 긴칼을 찬 일본순사 하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양복점에 들어섰다.

순사는 순정이를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대뜸 호통쳤다.

《오이, 이리 와. 상통이나 이쁘장하게 생겼는데 이런데서 낮은 임금이나 받으며 일하는가. … 돈벌이가 좋은 일자리가 생겼는데 가보지 않겠는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작정하고 온 일이라 순사는 다짜고짜 순정의 손목을 잡았다.

게걸스럽게 삐여져나온 순사의 입술우에서 씰룩거리는 코수염이나 허리에서 절그럭거리는 긴칼이 순정에게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순정은 순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버둥질쳤다.

《이걸 놔요. 난 안 갈래요.》

《칙쇼!- 안 가겠다고? 네년은 히로히또〈천황〉의 어지로 시행되는 국책집행을 감히 거부하는가? 나쁜 년!…》

처음에는 좋은 일자리를 구해주겠다고 구슬려대다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일본순사는 순정이뿐이 아니라 양복점의 몇몇 처녀들까지 마구 끌어냈는데 김녀라는 21살 나는 처녀도 걸려들어 화물차에 짐짝처럼 실리우게 되였다.

순정이네가 화물차에 실려 평양역으로 갔을 때 거기에는 이미 20살안팎의 조선처녀들이 30명정도 모여있었다.

모두가 일본군부의 지시를 받은 순사들에게 강제로 끌려왔거나 면장 같은것들한테 속히운 세상물정에 까막눈인 순정이또래 처녀들이였다. 열서너살정도의 소녀들도 몇이 되였다.

순정이를 포함한 이들이 바로 얼마후부터 일본군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할 불쌍한 녀성들이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생각은 꿈밖이였다. 그저 (이제 우리를 어데로 끌고 갈가?) 하는 생각을 붙들고 자기들을 감시하며 버티고 선 순사들의 눈치만 살피면서 속이 한줌만해서 벌벌 떨고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재함에 풍을 친 군용화물차 1대가 또 들이닥치더니 20여명의 녀자들이 우르르 쏟아져내렸다.

그중에는 절룩거리면서 맨발로 걸음을 옮기는 처녀애도 있었다. 17살쯤 나보이는 얼굴이 해사하게 생긴 애숭이처녀였다. 아마 신발도 못 신은 상태에서 강제로 끌려온 모양이였다.

처녀들이 겁에 질린 눈을 데룩거리며 평양역구내의 어느 구석진 어지러운 창고안에 갇힌채 맨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나이가 스물댓살쯤 될상싶은 한 처녀가 곁에 있는 맨발바람의 애숭이처녀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나직이 물었다.

《너, 신발은 어떻게 했니?》

애숭이처녀는 머밋머밋하더니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3일전에 밭김을 매다가 붙들려오는통에 그만…》

나이가 든 처녀는 눈이 둥그래졌다.

《3일전에? 그럼 네가 끌려온 곳은 어데니?》

《저- 강릉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구지리라는 산골마을이예요.》

《강릉? 그러니 넌 신발도 못 신은 상태에서 강제로 붙들려 며칠동안이나 풍차안에서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구나.》

강릉에서 왔다는 처녀가 눈물이 글썽해가지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정말 기가 찬 일이로구나. 나도 일본놈들이 경영하는 사리원제사공장에서 고역을 치르다가 갑자기 깊은 한밤중에 강제로 차에 태우는 바람에 이렇게 잡혀왔어. 그런데 그런 맨발로야 어떻게?…》

그들의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있던 순정은 옆구리에 낀 보퉁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보퉁이는 순정이가 순사놈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잡히워 화물차에 처실리울 때 양복점에서 식모노릇을 하는 할머니가 얼른 꿍져서 그의 손에 쥐여준것이였다.

보퉁이속에는 순정이가 입던 치마저고리 한벌과 고무신 한컬레 그리고 손거울과 놋숟가락 같은 생활용품들이 들어있었다.

순정은 보퉁이속에 있는 고무신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어떻게 할가. 모르는체 하고 그냥 스쳐지날가? 그래선 안되지.…

마음이 비단결같은 순정은 보퉁이속에서 고무신을 꺼내들고 두 처녀들의 사이에 끼여들었다.

그리고는 맨발바람의 처녀의 손에 신발을 쥐여주었다.

《자, 어서 이 신발을 신어.》

《아니, 넌 누군데 이렇게… 정말 마음이 곱구나.》

나이든 처녀는 이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강릉에서 끌려왔다는 애숭이처녀는 신발을 받아들고 눈물이 그렁해서 《고…고마워.》 하고 머리를 숙이였다.

평양역에서 순정은 두명의 처녀들과 통성을 하고 가까운 사이가 되였다. 강릉에서 끌려왔다는 처녀의 이름은 백화자이고 사리원제사공장에서 잡혀온 나이든 처녀의 이름은 한룡화였다.

한룡화는 순정이나 화자보다 나이가 훨씬 우인데다가 사회물정에 밝고 배짱도 보통이 아니였다.

그때 한룡화는 이런 말을 했다.

《순정아, 화자야, 이제 쪽발이놈들이 우리를 어떤 곳으로 끌고 가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분명… 그러니 기회를 봐서 도망을 치는것이 상책이야.》

《그럴 틈이 있을가요?》

순정이와 화자가 언니벌 되는 한룡화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하여튼 좀더 두고보다가 우리 함께 도망을 치자.》

처녀들이 이런 말을 주고받는데 창고 한구석에 서서 그들을 감시하던 순사가 《거기 모여서 뭘 쑥덕거려?》 하고 악청을 올리면서 허리에 찬 칼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바로 이때 감때사납게 생긴 일본군 헌병대위가 나타났다.

처녀들을 강제로 끌고 역에 나왔던 순사들은 헌병대위에게 깍듯이 경례를 붙이였다. 그리고는 순정이네들을 인계해주며 가방을 부시럭거리더니 호적등본 비슷한 문서들을 꺼내여 넘겨주었다. 몇자씩 뻑뻑 써갈긴 그 문서장이 바로 《황군》에 끌려다니게 될 비참한 성노예들의 개인자료인 동시에 매매확인서였다. 문서장들에는 본인들의 사진도 붙어있었다.

《너희들은 앞으로 팔자를 고치게 됐다.… 뭐가 무서워서 그러는가. 자, 이젠 떠나자. 모두 기차에 올라라!》

헌병대위의 호령이 떨어지자 헌병들이 우르르 몰려와 순정이네들의 팔을 잡아끌어 군용렬차의 유개화차방통에 밀어넣었다.

사방 철판으로 둘러막힌 캄캄한 화차의 문가에는 총을 멘 2명의 헌병이 눈을 부라리고 서있었다.

《도망치려는 년은 개밥으로 만들어 밖으로 내동댕이치겠으니 그리 알라. 알았는가?》

순정이네들은 자기들의 신상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 닥쳐왔음을 감촉하였다. 그러나 안 가겠다고 뻗칠수도 없었고 도망칠수도 없었다. 매매도장은 이미 찍혀졌고 그들의 손발에는 벌써 보이지 않는 쇠고랑이 채워졌던것이다. 순정이네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숨쉬는 군용물자》가 되였다.

꽤액-

기차는 순정이네들의 기구한 운명을 예고라도 하는듯 새된 소리를 내지르고는 덜컹- 하고 둔중한 바퀴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창문도 없는 유개화차방통에 짐짝처럼 처실린 처녀들은 어스무레한 한쪽구석에 몰켜앉았다.

통풍도 되지 않는데다가 낮동안 폭양에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화차안은 말그대로 화독이였다. 처녀들이 입은 반소매베적삼과 몽당치마는 땀으로 화락하니 젖어 몸에 착 달라붙었다. 얼굴이며 실팍한 외태머리들이 데룽거리는 목덜미로는 비지땀이 좔좔 흘러내렸다.

문가에 버티고 앉아 처녀들의 봉긋이 두드러진 젖가슴을 걸탐스레 훔쳐보던 헌병은 욕구가 내배인 눈길로 느물느물 웃으며 《정 더우면 옷이나 홀랑 벗으라.》고 뇌까렸다.

그러면서도 처녀들이 소변을 보겠다고 해도 내려놔주지 않았다. 할수없이 그들은 화차안의 반대쪽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헌병들이 보지못하게 여럿이 빙 둘러선 속에서 그 역사질을 해야 하였다. 화차방통안은 악취로 진동했다.

신의주역에서 무려 120여명의 조선처녀들이 또 올랐다.

그 다음 남만주땅을 꿰지르던 기차는 심양역에서 반나절 머무르면서 거의 50명의 중국인처녀들을 더 실었다.

짐승우리 같은데 갇히운 순정이네들은 언제 밤이 가고 언제 새날이 밝는지조차 알수 없었다. 중간역들에서 가끔 들여보내주는 주먹만 한 꽁보리밥덩이와 소금에 절인 무우쪼각을 씹으며 시간이 가는것을 가늠했다.

며칠을 달린 군용렬차는 중국 동남부 장강기슭의 어느 한 역에 멎어섰다.

200여쌍의 겁에 질린 눈동자들이 화차에서 부리워졌다. 다른 방통에 실리였던 탄약상자를 비롯한 군수물자들도 역구내에 산더미처럼 내려쌓이였다.

순정이네들은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대안에 위치한 남경으로 건너갔다.

이렇게 남경은 200여명의 일본군성노예들을 또 맞아들이였다.

남경의 북쪽관문으로 불리우는 장강기슭의 나루터에서 여러대의 군용자동차에 나뉘여 실린 처녀들은 시내에 자리잡은 어느 한 일본군병영마당으로 들어섰다.

병영은 빈 통졸임통들을 달아맨 가시철조망으로 둘러막혀있었다. 그곳이 바로 일제의 중지나파견군사령부였다.

《이젠 다 왔다. 빨랑빨랑 내리란 말이다!》

헌병의 앙칼진 목소리가 떨어졌다.

거지나 다름없는 형형색색의 처녀들이 우르르- 차에서 쏟아져내렸다. 그리고는 겁에 질린 눈들을 허둥거리였다.

마당가에서 대기하고있던 몇명의 헌병들이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 조선처녀들과 중국처녀들을 따로따로 갈라 정렬시켰다.

잠시후 헌병들은 조선처녀들을 중지나파견군사령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건물앞으로 끌고 가 너렁청한 방으로 들이밀었다. 당시 남경에서 《군인구락부》로 불리우던 건물이였다. 방안에 놓여있던 길다란 나무의자들은 다 건물의 뒤쪽으로 밀어놓고 처녀들을 전부 콩크리트바닥에 앉도록 하였다. 커다란 짝문을 활 열어놓은 문가에는 총을 쥔 왜놈병졸들이 눈깔을 부라리며 서있었다.

170여명이나 되는 조선처녀들이 든 방은 큼직한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하였다. 방은 넓었지만 너무도 많은 인원이 들어가 발을 옮겨디딜 자리조차 없었다.

방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처녀들은 너나없이 지독한 더위때문에 땀으로 미역을 감고있었다.

이때 쥐상통에 코수염이 유표한 왜놈고위장교가 여라문명의 병참장교들을 이끌고 군인구락부마당으로 들어서고있었다. 그자가 바로 남경시안에 있는 40여개의 군《위안소》들의 경영과 성노예배치 등을 책임진 중지나파견군사령부의 병참장교였다. 그뒤를 따르는 놈들은 각 《위안소》들을 담당한 산하부대 병참장교들이였다.

쥐상통의 코수염쟁이가 순정이네가 들어있는 방에 들어서자 문앞에 서있던 일본병졸들은 차렷자세를 취하며 군화뒤축으로 딱- 소리를 냈다.

허리에 찬 장검을 절커덕거리며 불쑥 나타난 장교들의 무리앞에서 순정이네들은 목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나 앉았다.

검은 부분보다 흰 부분이 더 많은 두눈을 데룩거리는 처녀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던 코수염쟁이는 무슨 속구구를 했는지 머리를 끄덕이더니 이런 소리를 내뱉았다.

《쵸센삐들, 여기 남경에 와있는 〈황군〉장병들이 너희들을 얼마나 기다렸는줄 아는가. 이제부터 너희들은 군부에서 지정해주는 곳으로 가서 〈황국신민〉답게 자기가 할바를 다하면서 〈천황〉페하께 충의를 다하여야 한다. 알겠는가?》

《?》

순정을 비롯한 처녀들의 눈이 퀭해졌다. 남경에 있는 일본군대가 우리를 기다렸다구? 무엇때문에… 군부에서 지정해주는 곳으로 가라? 어디로 간단 말인가?…

어리벙벙해서 올려다보는 처녀들을 다시한번 훑어보던 코수염쟁이가 점잔을 빼며 몇마디 더했다.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라는 자긍심도 없이 무엇때문에 벌벌 떨기만 하는가. 무서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제는 마음들을 푹 가라앉히고 여기에 온 각 부대 병참장교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명심할것은 〈무적황군〉을 위해 멸사봉공하겠다는 정신만은 똑똑히 가져야 된다는거다. 모두들 출발준비를 하라!》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던 처녀들이 장교무리들이 방에서 사라지자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건물밖으로 나간 코수염쟁이는 거느리고 온 부하들에게 뭐라뭐라 지시를 했다.

잠시후 풍을 친 여러대의 군용차들이 줄지어 군인구락부마당으로 들이닥쳤다.

병참장교들이 제각기 이름을 부르는데 따라 매 자동차적재함에 네댓명으로부터 열명정도의 처녀들이 올랐다.

첫판에 걸려든 대상들은 대체로 신의주역에서 기차에 올랐던 처녀들이였다.

자동차들에 실리워 각이한 곳으로 끌려가는 처녀들을 바라보는 순정의 가슴속에서는 무섬증이 고패치기 시작하였다.

순정은 후둑후둑하는 가슴을 부여안고 저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이 쪽발이들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시키자고 이러는가? 아마 전장에 내보내여 일본군부상병들을 처치하는 간호부로 쓰려는가봐.… 그렇게 되면 김녀네 이모처럼 되고말게야.…)

순정은 머리칼이 곤두서는것을 느꼈다. 그는 일본군간호부로 징발되여갔다가 1년만에 페인이 되여 돌아온 김녀네 막내이모가 피를 토하면서 숨지던 그 광경을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1937년인가 함경북도 라남에 주둔한 일본군사단 위생반 간호부로 징집되여갔던 김녀네 이모는 여름 어느날 여러명의 조선인간호부들과 함께 만주땅 간삼봉이라는 전투현장에까지 끌려갔댔다고 한다. 《공산비적》을 《토벌》하는 일본군부대에서 생겨나게 될 부상병들을 처치해주라는 임무가 떨어졌던것이다.

그런데 《토벌》은 고사하고 도리여 항일빨찌산에 의해 여지없이 녹아난 일본군은 숱한 사상자들을 냈다.

그때 일본군부상자들에게 넣어줄 혈액이 모자라게 되자 일본군의관은 위생반의 조선인간호부들의 몸에서 피를 수차에 걸쳐 강다짐으로 뽑게 하였다. 그통에 김녀의 이모를 비롯한 적지 않은 간호부들이 페인이 되였던것이다.

《너희들은 절대로 일본군대 간호부로 가지 말아라. 거기 가면 나처럼 된다. 절대로 가지 말아라.》

눈을 감으며 마지막으로 부르짖던 김녀네 이모의 가냘픈 목소리가 순정의 귀전에서 메아리쳤다.…

잠시후 또다시 4대의 군용차들이 빵- 빵- 소리를 울리며 건물앞에 와 멎어섰다.

맨 앞차의 운전칸에서 키다리병참장교가 내리더니 손에 든 문서장을 들여다보며 처녀들이 앉아있는쪽을 향해 《백화자!-》 하고 소리쳤다.

속이 한줌만해가지고 순정의 곁에 쪼그리고있던 백화자가 화들짝놀라 자라목이 되였다.

《강릉에서 온 백화자가 없는가?》

키다리병참장교가 다시 소리쳐서야 백화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순정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이 그렁해서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순정아, 내 어디에 가든 고마운 너를 잊지 않으마. 그리고 저…》

《화자야, 아무쪼록 몸건사를 잘해라. 꼭… 흐윽-》

순정은 화자를 껴안고 물먹은 소리를 냈다.

한룡화도 눈물을 머금고 백화자의 등을 어루쓰다듬었다.

이렇게 되여 순정은 남경에 도착한 첫날 백화자와 갈라지게 되였다. 결국 기차칸에서 서로 손을 꼭 잡고 기회를 보아 함께 도망치자고 했던 그 약속도 허사로 되였다.

키다리병참장교는 순정이와 룡화를 그러안고 어깨를 떠는 백화자에게 손가락을 쭉 내뻗치며 소래기를 질렀다.

《뭘 그렇게 꾸물거리는가? 빨리 화물차에 오르지 못할가?》

곁에 서있던 왜놈병졸의 손에 덜미를 잡힌 백화자는 함경도지방에서 끌려간 4명의 처녀들과 함께 맨앞에 서있는 화물차에 처실리였다.

그 다음 차에는 순정이와 김녀, 사리원에서 끌려간 한룡화 그리고 신의주역에서 오른 2명의 처녀들이 올랐다.

순정이네를 끌고 가는 병참장교는 우악스럽게 생긴 땅딸보병참장교 겐지였다.

적재함에 처실은 처녀들의 수를 다시한번 확인해본 땅딸보가 운전사에게 소리쳤다.

《자, 이젠 출발하자!-》

순정이네가 탄 차는 중산로 남쪽에 있는 주민지대와 좀 떨어진 어느 한 벽돌집마당가로 들어섰다.

거기가 바로 중지나파견군사령부로부터 불과 수백메터 떨어진 곳에 설치된 순수 조선녀성들만 수용된 리제항《위안소》였다.(후에 조사한데 의하면 그때 순정이네와 함께 끌려간 조선처녀들과 중국처녀들은 모두 남경시내 40여개 《위안소》들에 분배되였다고 한다.)

세상물정에는 소경이였던 순정이네들은 자기들이 왜 그 집으로 끌려갔으며 앞으로 어떤 치욕의 자욱을 남기며 어떤 악몽속을 헤매게 되겠는가 하는것을 아직은 알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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