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4장 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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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은 중화민족의 유구하고 다난다사한 력사가 루적되여있어 고색이 창연하기로 소문난 대도시이다. 중국에서 2천여년간 존재하던 봉건제도의 마지막기둥을 찍어버린 손중산의 발자취까지 깊숙이 새겨져있어 더더욱 유명해진 고장이다.

그런데 이날따라 고도 남경은 무엇이 부끄러운지 자기 모습을 애써 감추려고 하는것만 같았다. 봄날의 숲속에서 마디를 쭉쭉 뽑는 싱아싹들마냥 들쑹날쑹 키를 솟군, 저마끔 하얗고 파랗고 불그스레한 빛갈을 내뿜는 현대적건물들만 자태를 드러내고 그 사이사이에 뿌리를 박은 옛 건물들은 희밋한 안개속에 웅크리고있었다.

장강너머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해도 우울한 표정으로 남경시가지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이무렵 남경시 중산로근방의 어느 한 호텔옥상우에서 일본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의 공동대표인 도모이 아사꼬가 안개속에 묻힌 남경시내를 부감하고있었다. 체소한 몸매에 중년들이 즐겨 입는 연한 감색덧옷을 걸치고 간편한 중발머리에 테가 큰 색안경을 낀 외모는 젊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녀인의 심중을 내비치고있었다.

아사꼬는 이번에 일본군의 성노예범죄를 파헤치는 조, 중, 일 3개국합동조사단에 망라되여 남경에 왔다.

일본군성노예생존자인 박순정과 동행한 여러명으로 구성된 조선측 조사단은 이날 오전 남경역에서 중국측, 일본측 조사단과 상봉을 하였다.

일행이 호텔에 당도했을 때 조선측 조사단 단장 황정식이 이런 제기를 하였다.

《년로한 박순정할머니의 로독도 풀겸 조사사업은 래일 오후부터 시작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바깥출입도 제대로 못하던 80을 눈앞에 둔 로인이 사생결단하고 수천리 로정을 달려온데 대해 머리를 숙인 중국측 성원들이나 일본측의 아사꼬 그리고 재일중국인자유촬영가 전홍도 쾌히 동의하였다.

그래서 아사꼬는 좀전까지 호텔방에서 지난 시기에 수집한 박순정의 구술자료들과 이번 현지조사를 위하여 뼈심을 들여 준비한 력사자료들을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식히고 남경시도 눈에 익힐겸 호텔옥상에 올랐던것이다.

남경시의 전경을 바라보는 아사꼬의 심중은 착잡했다.

여기가 과연 우리 일본군이 점령한 후 불과 한달 남짓한 사이에 일본군인들에 의한 강간사건이 무려 2만여건이나 유발되여 물의가 일어났고 그후 《위안소》도 부지기수로 설립되였다는 곳이란 말인가.…

아사꼬는 눈을 꼭 감고말았다.

그러나 인차 자기를 수습하고 도리머리를 했다. 일본이라는 내 나라가 아파하는데를 긁어서는 안되지.… 이런 《국민적감정》이 상념을 압도했던것이다.

아사꼬는 워낙 《국민의식》이 남다른 녀성이다.

녀성법률가로서의 아사꼬의 사회활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원자탄이라는 《악마의 무기》로 히로시마와 나가사끼를 순간에 세계최대의 공동묘지로 만들어버리고 야마도민족의 《존엄》을 짐승이하의것으로 비하시킨 미국인들에 대한 타매의식과 일본의 《국민옹호정신》으로 일관되여있었다.

아사꼬는 또한 자기 정부에 대한 《신뢰감》도 남달랐다.

어려서부터 뛰여나게 총명했던 그는 도꾜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 최우수생으로 선발되여 도꾜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였다.

그때 내각 문부성에서 나온 고위관리는 아사꼬에게 이렇게 훈시하였다.

《녀자들을 하대하고 천시하던 시대는 영원히 사라졌다. 이제는 일본정부도 아사꼬와 같이 뛰여난 녀성수재들을 장래 일본의 기둥감으로 여기며 앞날을 촉망하고있다. 그러니 학업에 전심분투하여 국가의 기대와 믿음에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다.》

아사꼬는 그 훈시를 눈물겹게 받아들이였으며 그후부터는 자기네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다 옳은것으로 여겼다.

아사꼬가 이번 3개국합동조사단에 망라된것도 실은 일본이라는 자기 나라의 존엄을 지키려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한것이다.

일본의 존엄이 있고서야 일본녀성의 존엄도 있다. 아사꼬의 주장은 언제나 이러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머리를 쳐든 그러한 주장때문에 아사꼬는 자가당착이라고 할가, 자승자박이라고 할가, 어쨌든 그 비슷한 고통을 한두번만 겪지 않았다.

몇해전 일본의 한 교수에 의해 일본군성노예범죄가 철저히 국가권력에 의한 《노예사냥》이며 관헌에 의한민족적, 집단적강간행위였다는것을 더는 부정할수 없게 하는 고문서가 발굴되였다는 소문이 났을 때였다.

아사꼬는 그때에도 《그것은 야마도민족의 존엄에 도끼질하려는 바보의 위조놀음일것이다.》 하고 갈구리를 걸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하여 아사꼬가 된통을 겪을줄이야…

1938년 3월에 작성하달한 일본군의 고문서를 발굴한 사람은 동년배쯤 되는 쥬오대학의 이름있는 력사학자였다.

그 학자가 어느날 아사꼬의 법률사무소를 방문하였다.

《저명한 아사꼬상, 어찌 법률가의 목소리만 정의로 되고 력사가의 말은 부정의로 되겠습니까. 력사가의 말은 곧 력사의 메아리이며 력사는 위조할수도, 지워버릴수도 없다는걸 법률가선생께서 명심해주길 바랍니다.》

력사학자는 아사꼬의 사무탁우에 누렇게 뜨고 삭아서 여가리가 너덜너덜해진 당시 륙군대신의 위임에 따라 륙군성 병무국에서 작성했다는 《군위안소 종업원(〈위안부〉를 말함.) 등 모집에 관한 건》이라는 문서원본을 내놓았다.

한동안 고문서와 교감하던 아사꼬는 자기의 정신적기둥이 졸지에 무너져내리는것을 의식했다.

문서결재란에 찍혀진 병무과장과 륙군성 차관의 결재인장자리가 《아사꼬, 이래도 일본군〈위안부〉제도에 정부의 관여가 없었는가!》 하고 따지고드는것만 같았다.

아사꼬는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였다. 이 일로 하여 그는 며칠째 자기의 법률사무소를 닫아매고 자리에 드러눕기까지 했다.

그때 아사꼬는 사랑하는 외삼촌 니쇼꾸를 그려보면서 가슴을 쳤다.

그러니 일본국민을 위해 《대동아성전》에서 《옥쇄》한 나의 외삼촌도 성노예범죄자?… 아니다. 아니다! 절대로 그럴수 없다. 절대로 그렇게 되여서는 안된다. 안된다!…


×


저녁해가 지평에 녹아붙을 때까지도 아사꼬는 호텔옥상에서 내릴념을 못하였다. 그때까지 그는 자기의 기구했던 어린시절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억울하게 숨진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외삼촌 니쇼꾸를 마음속으로 위로하였다.

아사꼬의 망막에 비껴있는 외삼촌 니쇼꾸의 모습은 우람한 체격에 매력있는 코수염을 자주 다스리던 호남아, 성격은 우락부락해도 자기를 더없이 고와했고 어머니를 잘 도와준 용감무쌍한 일본의 남아였다.

아사꼬는 이번 현지편답과정에 자기가 목적했던바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특히는 전쟁마당에서 《순국》한 외삼촌의 영령에 자그마한 그늘이라도 비끼지 말기를 빌고 또 빌었다.

아사꼬가 이렇게 생각의 바다에 빠져있는데 《아사꼬상!》 하는 귀에 익은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희색이 만면한 《부덕쥐》가 그에게 다가오고있었다.

《아사꼬상, 여기에서 소풍하시는것도 모르고 난 온델 다 찾아다녔습니다.》

일본사람흉내를 곧잘 내는 《부덕쥐》는 두손을 모아잡고 갑삭거리면서 지금 일본에서 히로미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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