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3장 남경으로 가는 렬차에서


3


《뿡- 뿡-》 하는 렬차의 기적소리에 박순정은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건너편 침대에 걸터앉은 진희는 한쪽손으로 턱을 고인채 차창밖을 내다보며 까딱하지 않고있다.

차창밖에서 흘러드는 한줄기의 석양빛이 박순정의 눈을 가볍게 자극했다.

눈이 시려난 순정은 모로 돌아누웠다. 이제 얼마를 더 가야 하는가. 내가 과연 해방전에 이렇게 먼데까지 끌려왔댔단 말인가. 지금집에 있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들은 뭘 하고있을가. 인민군대에 나간 손자녀석들은… 그런데 내가 이제 그 《킨수이로》에 어떻게 나타난단 말인가! 아,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그곳에 어떻게…

처음에는 그러루하게 느껴지던 생각이 마음을 갑자기 괴롭히기 시작하더니 또다시 그를 악몽속으로 몰아갔다. 박순정은 눈을 꾹 감았다. 피같이 끈적끈적한것이 눈귀를 간지럽히며 볼아래로 흘러내렸다.

아, 정말 기가 막힌노릇이다. 내 무슨 망령이 들어 생귀신같은 이 모양을 해가지고 그 더러운델 같이 가겠다고 나섰담! 차라리 콱 죽어버렸으면 이런 고통도 안 받을건데… 어휴- 틈난 돌은 터지고 태먹은 독은 깨진다고 하던데 이 더러운 목숨은 왜 이다지도 질겨가지구 잘 죽어지지도 않누! 어이쿠-

지난 일을 생각해도, 앞일을 생각해도 순정은 정신이 아뜩해졌다.

그러나 뒤미처 가슴속에서 기어이 남경과 송산으로 가서 그 왜놈쪽발이들이 무고한 조선녀성들에게 가한 죄행을 만천하에 고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일어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


렬차안에서 저녁식사가 끝난 뒤였다.

황정식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박순정이 식사를 전혀 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늙은이들에게는 식사가 곧 지팽이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으니 야단이 아닌가. 아침식사는 괜찮게 했는데 왜 그럴가? 렬차에 오를 때보다 안색은 더 어둡고 어쩐지 양기도 다 잃은것 같다. 무엇때문일가? 의사는 박순정의 신상에 큰 변화는 없다고 했는데…

황정식은 박순정의 곁으로 가앉았다.

《할머니, 음식이 구미에 맞지 않으십니까?》

박순정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그런게 아니오. 다 맛있소.》

《아, 그런데 왜 식사를 제대로 하시지 않습니까?》

박순정은 웬일인지 진희와 녀의사가 앉아있는쪽을 흘끔흘끔 쳐다보더니 황정식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황정식의 귀가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황선생, 아무리 생각해봐두 난… 난 되돌아가야 할것 같네.》

그사이 박순정의 머리속에서 결투를 벌리던 기어이 가야 한다는 결심과 그 몸서리치는 《킨수이로》에 어떻게 들어설가 하는 두려움이 엎치락뒤치락거리다가 뜻밖에도 후자가 우세해지기 시작했던것이다.

황정식의 눈이 커졌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할머니, 혹시 몸이 불편해서 그러시는게 아닙니까?》

《아니, 아니야. 몸도 일없고 아직 기운도 있네. 내 기운을 내서 간다 하면 저 지구끝에라도 갈수 있소.》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보라구. 황선생, 내 기차에 올라 곰곰히 생각해보니 공연히 따라나선것 같네.… 난 촌로친네야. 말도 변변히 못해. 그보다 제일 걸리는건… 내가 이제 그 원쑤같은 〈킨수이로〉에 어떻게 들어설가 하는 근심이야. 생각만 해도 숨이 꺽꺽 막히는데 이제 그곳에 갔다간 내 심장이 터져나갈것 같네.… 황선생, 난 아무래도 안될것 같구만. 잠도 전혀 안 오고 입에 뭘 넣지도 못하겠소. 이제라도 날 돌아가게 해달라구.》

황정식은 속이 덜컥 했다. 남경과 송산에 대한 현지조사에 기어이 같이 가겠다고 주먹을 부르쥐던 박순정의 결심이 이렇게 로상에서 돌변했으니 이쯤되면 완고하기란 여간이 아닌 그가 어떻게 나오리라는것이 짐작되는것이였다.

몇해전에도 황정식은 그런 일을 당했었다.

그때 황정식은 한번 남포로 내려오면 지난 시기 일본쪽발이들에게서 당한 일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다 털어놓겠다고 하는 박순정의 말을 듣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아들과 며느리는 일을 나가고 박순정이 혼자서 터밭을 가꾸고있었다.(손자들은 다 인민군대에 나간 후였다.)

일행은 박순정과 인사를 나누고 찾아온 리유를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그런데 얼마전에는 자기네 집으로 오면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놓겠다고 하던 그가 얼굴이 해쓱해가지고 돌변하였다.

《그때 있은 일을 다 말하라구요?… 난…난 그것만은 못하오. 못해! 두번다시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마시오. 전번에는 그럴 마음이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안되겠소. 그리 알고 돌아들 가시오. 이 부실한 늙은이가 옛날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다녔댔다는것만 알면 되겠는데 왜 선생들은 남이 아픈데를 자꾸 건드리지 못해 그렇게 안달이요.… 자, 빨리 돌아가주오. 아들, 며느리나 대학에 간 맏손녀가 돌아오면 난 어떡하라오. 저길 보오. 마을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데… 사실 난 그럴 용기도 없소. 자, 빨리 돌아들 가주오.》

박순정은 끙- 하고 토방에서 일어서더니 호미를 집어들었다. 그 어떤 설복도 통하지 않았다. 황정식이 그럼 말이라도 몇마디 더 나누자고 했으나 그는 등을 돌려댄채 호미로 땅만 벅벅 긁었다. 결국 그날 황정식이네는 빈손으로 돌아갈수밖에 없었다.

두번째로 박순정의 집을 찾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느라니 거의 넉달이나 공탕을 쳤다.

세번째로 찾아갔을 때 황정식은 박순정의 손을 붙들고 가슴속 진정을 다 쏟아놓았다.

《할머닌 지금의 평온한 생활이 파괴당할가보아 근심하면서 입을 다물고있는데 절대 그런 근심은 마십시오. 조국이 있고 또 마음착한 아들, 며느리가 있고 할머니를 위해주는 동네사람들이 있는데 뭐가 근심됩니까.》

박순정이 눈을 흡떴다.

《아니, 그럼 아들과 며느리랑 마을사람들이랑 다 알게 하자는거요?》

《아, 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할머니, 좀 생각해보십시오. 할머닌 자기가 당한 그런 수난의 력사가 두번다시 되풀이되는게 좋습니까? 할머니가 입을 다물수록 좋아하는건 일본쪽발이들밖에 없습니다.》

황정식의 마지막말에 가슴이 찔린 박순정은 《으응? 왜놈들이 좋아한다구?》 하면서 굳어졌다.

《할머니가 그렇게 입을 다물고있을수록 말입니다.》

황정식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한번 강조하였다.

그제서야 순정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방바닥을 쾅쾅 내려치며 속에 응어리져있는것을 풀어헤쳤다.

《어이구- 가슴이야. 날벼락을 맞아뒈질 그 일본놈들을 그저!…》

박순정은 한참 울고나서 입을 열었다.

《사실 옛날 일본놈들에게서 당한 그 수치스러운 일들을 영원히 묻어두고싶은게 이 옹졸한 늙은이의 내심이였수다. 그런 치욕스러운 지난 일들을 되새기는것조차가 죽기보다 싫었으니깐. 그런데 옛날 일본군대에 성노예라는게 없었다고 뻗대며 발뺌질을 하는 일본쪽발이들의 꼴을 보고있자니 속에서 불이 나고 거기에다 일이 바쁜 선생들이 서너달째나 공걸음을 하지… 그래서…》

박순정은 그날 황정식에게 중국의 남경과 송산전역 그리고 먄마에서 일본군성노예로 치욕을 당하던 때의 일들을 생각나는대로 다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되여 이번 3개국 합동조사에 요긴하게 리용될 두툼한 《박순정의 증언자료》가 작성될수 있었던것이다.

박순정은 눈굽을 찍으며 말했다.

《내가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한것도 다 나라를 빼앗긴탓이였지요. 망국노들이였기때문에 일본쪽발이들은 제 마음대로 우리 같은 조선녀성들을 전쟁마당에까지 끌고다니면서 그런짓도 서슴지 않았던거요.… 아, 이 치욕을 무엇으로 씻는단 말이요. 어휴-

고향에 돌아와서도 긴긴 세월 남들이 웃고 춤추며 노래할 때 나는 큰죄를 지은 사람모양으로 늘 불안속에서 가슴을 쥐여뜯으며 죽지 못해 살았고 몇백번이나 일본군에게 목을 눌리우는 꿈을 꾸다가 질겁해서 눈을 뜨군 했다오. 그때 죽었으면 이런 고통을 덜수도 있었겠는데 내가 왜 그때 죽지 못했던가, 왜 살아서 이런 욕을 보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내 인생이 한스럽고 원통하기만 하오.》

그때 박순정이 그 정도로 돌아서기까지 넉달 열흘이 걸렸다.…

황정식은 그때의 일을 더듬어보며 담배만 뻑뻑 빨았다.

얼마나 치욕스럽고 얼마나 몸서리치는 과거가 가슴에 응어리졌으면 가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현지조사를 하는데 같이 가겠다고, 얼마 남지 않은 생에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은 일본쪽발이들의 죄행을 까밝히는것이라고 하면서 발벗고 나섰던 할머니가 이렇게 하루이틀사이에 마음을 돌려먹었겠는가. 이런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은 남경으로 가는 로상에서 우리측 조사단성원들만 있는데서 이렇게 나왔으니망정이지 3개국합동조사단 성원들이 다 있는데서 한창 조사를 진행하다가 이렇게 나가눕는 일이 벌어졌더라면… 혹시 저 할머니가 말한대로 《킨수이로》에 들어섰다가 정말 그의 심장이 터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가?

황정식은 박순정의 두손을 꼭 잡고 젖어드는 목소리로 《할머니의 심정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우선 마음을 안정하시고 식사부터 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밤 푹 쉬시면서 잘 생각해보시고 래일 저와 다시 만나 잘 의논해봅시다.》라고 말했다.

박순정은 머리를 끄덕이며 황정식의 손을 꼭 붙들고 눈물을 줄줄 흘리였다. 그것은 보통 눈물이 아니였다. 피눈물이였다. 총칼을 든 일본호색마귀들에게 정조를 다 빼앗기고 청춘을 다 빼앗기고 육체를 다 파괴당하고 녀성으로서 응당 차례지는 결혼의 권리마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권리마저 다 상실당한 비참한 녀인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인간의 진액이였다.

곁에 앉아있던 김진희와 녀의사 그리고 다른 조사단성원들도 손수건으로 눈굽을 꾹꾹 찍었다.…

렬차는 남경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고 황정식을 비롯한 조사단성원들의 생각은 일제의 추악한 과거사가 웅크리고있는 지점을 향해 력사를 거슬러오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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