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2장 용단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포시교외의 농촌마을이다.

소뿔도 꼬부라뜨린다는 삼복더위가 확확 열기를 뿜어대는 날이였다. 푸르싱싱하던 뜨락의 살구나무들은 정오가 채 되기도 전인데 벌써 맥이 빠져 후줄근해진 잎사귀들을 축 늘어뜨린채 마당 한가운데다 세계지도같은 그림자를 던져놓고 멍청히 서있었다. 그 그늘아래 한쪽구석에서는 벌건 혀바닥을 쑥 빼문 북슬개 한마리가 벌렁 드러누워 헐떡거리고있었다. 좀 떨어진 울담옆 강냉이대밑에서도 더위먹은 금빛수닭이 북데기가 섞인 흙먼지를 잔뜩 들쓰고 움푹한 홈채기에 들어박혀 꾸국- 꾸국- 하고 엄살을 부리고있었다.

지독한 더위로 하여 땅우에 있는 생명체들은 죄다 기가 죽은것만 같다.

그러나 박순정할머니네 집 토방앞에 오구구 몰켜든 조무래기들은 더없이 팔팔했다. 반바지에 반소매샤쯔만 걸치고 땡볕에서 뒹굴다나니 팔다리는 물론 얼굴과 어깨와 목덜미까지 온통 벽돌색으로 구워졌다. 새별눈들을 반짝이는 아이들속에는 이갈이를 하느라고 입술사이에 구멍이 뻥 뚫린 애들도 몇이 있었다. 박순정이 제일 고와하는 동네 소학교 장난꾸러기들이다.

여름방학이여서 이 장난꾸러기들은 맨날 오전 한겻을 박순정할머니네 집마당에 와서 놀군 한다. 조무래기들은 방금전까지 제기차기를 하다가 제기깃이 떨어지자 그것을 고쳐달라고 박순정에게 성화를 먹이는중이다.

《할머니, 빨리요. 야- 이번에는 내가 찰 차례였는데…》

《아니야, 내가 찰 차례야.》

《힝!-》

《할머니, 제기깃을 빨간색으로 해달라요.》

《아니야, 파란색이 더 좋아. 할머니, 파란 깃을 달아달라요. 예?》

돋보기를 코에 걸고 반짇고리를 뒤적이던 박순정은 창턱에 달라붙어 재잘거리는 조무래기친구들을 쳐다보며 《오냐, 오냐.》 하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장난꾸러기들과 어울려 돌아가는 박순정의 그 모습은 이 세상 소원을 다 풀어준다는 옛말에 나오는 그런 신선할머니의 모습이였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 멋있게 만들어 줄게.》

박순정은 반짇고리에서 빨간 천과 파란 천을 찾아쥐였다. 그리고는 가위로 곱게 오려 공작새꼬리같은 알락달락한 제기깃을 만들었다.

《야! 멋있네.》

입이 귀밑까지 째진 조무래기들은 사기가 나서 어깨를 들썩거리였다.

이때였다.

마당가에 서있던 키가 꺽두룩한 아이가 창문너머 방안으로 머리를 쑥 들이밀고 《할머니, 할머니. 웬 사람들이 와요.》 하며 머루알같은 눈알을 디룩거리였다.

박순정은 바느실로 거의다 꿰맨 알락제기를 방바닥에 밀어놓고 끙 하며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마당가에서 《웡- 웡-》 하는 소리가 났다. 북슬개가 먼저 낯선 손님들이 집뜨락으로 들어섰다는것을 알리는 소리였다.

누구들일가? 올 사람은 없는데… 박순정은 꾸부정해서 토방으로 나섰다. 대문밖 담장너머에는 회색소형뻐스 1대가 서있었는데 3명의 남녀손님들이 곧장 마당가로 들어서고있었다.

북슬개는 성이 나서 짖어대며 으르렁거리였다.

《쉿, 지가이!》

박순정이 발로 토방널마루를 탕- 하고 구르자 개가 흠칫하더니 제꺽 순정의 발치에 와서 꼬리를 살살 저으며 돌아갔다. 참, 령리한 놈이였다.

맨 먼저 마당가로 들어선 남자는 50대쯤 되고 그뒤로는 30대, 40대의 중년녀인들이였다.

《할머니, 그사이 무고하셨습니까?》

하얀 남방샤쯔차림의 남자가 목덜미의 땀을 씻으며 허리를 굽석했다. 땀에 젖은 얼굴에서는 웃음이 철철 넘쳐났다. 어딘가 눈에 익은 모습이였다. 목소리도 귀에 익었다.

어디서 보았던가? 박순정이 머리를 기웃하며 돋보기너머로 손님들을 일별하는데 남자손님이 바투 다가서며 그의 두손을 덥석 잡았다.

《할머니, 절 모르시겠습니까? 제 평양에 있는 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 황정식입니다.》

《?》

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라는 말에 정신이 펀뜩 든 박순정은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럼 지난해 봄에 우리 집에 몇번이나 걸음을 했던 그…》

《예, 예. 옳습니다. 제가 그때 왔던 법률가 황정식입니다.》

박순정은 반색하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았다. 그런 속에서도 혹시… 하는 생각에 속이 덜컥하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박순정은 몇해전에 평양에 있는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에 찾아가 자기도 해방전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다닌 일이 있다는것을 신고했었다.

그후 황정식이 여러차례나 그의 집으로 찾아와 그를 만났다.

그때마다 박순정은 황정식에게 자기가 일본군성노예로 끌려다니던 때의 일에 대하여 큰 선에서만 말하고 구체적인것을 밝히는것은 피했다. 자기 이름을 세상에 공개하는것도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러면서 이 사실이 집안식구들과 마을사람들속에 절대로 알려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몇번이나 당부했었다.

그래서 그때까지도 생존해있는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의 텔레비죤공개증언 같은데서도 박순정은 고려되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황정식이 또다시 불쑥 집에 찾아왔으니 늘 외나무다리우에 서있는듯 하던 그의 심장이 어찌 놀라지 않았겠는가.

박순정은 허둥거려지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면서 황정식의 손을 붙잡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알지, 알아. 황선생…》

박순정은 손님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 황선생. 그리구 녀자손님들도 어서 방으로… 바깥보다 방안이 더 서늘할거웨다. 어서요.》

황정식일행은 방안으로 들어섰다. 농촌집치고는 더없이 깨끗했다. 장판바닥이나 옷장, 이불장, 책장, 텔레비죤수상기 어느것을 보나 박순정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기가 났다. 한쪽벽면우에는 큼직한 가족사진을 걸어놓았는데 그밑으로는 8월달력이 걸려있었다. 달력속에서 오동통한 어린애가 어머니품에 안겨 발쭉발쭉 웃고있었다.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 박순정의 마음이 그대로 내비치고있었다.

박순정은 웃방에서 방석 3개를 안고 내려와 손님들에게 권했다.

그러다가 생각난듯 금방 다 만든 알락제기를 마당가에 몰켜서있는 조무래기친구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자, 너희들은 어서 저쪽에 나가 놀아라.》

《야!-》

아이들은 새떼모양으로 우르르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황정식은 머리를 끄덕거리였다.

《할머니네 친구들이 꽤 벌찬데요.》

《늘그막에 내 재미란게 그저 저 장난꾸러기들 하고 같이 지내는거라우. 그래야 머리가 거뜬해지지요. 요샌 여름방학이 돼나서 늘 애들속에 파묻혀있수다.… 참, 그런데 황선생이 어떻게 또 우리집엘…》

《예, 볼일도 좀 있고 해서…》

대답을 얼버무리던 황정식은 《할머니, 그런데 집식구들은 다 어델 갔습니까?》 하고 물었다.

《보다싶이 너렁청한 집에 남은건 이 늙은이 하나뿐이웨다. 아침에 밥술만 놓으면 죄다 둥지에서 날아나는 새 한가지지요. 아들과 며느리는 장창 농장벌에 나가있고 해군부대 군관노릇을 하는 맏손녀사위도 요샌 며칠째 부대에 나가있수다.》

《손녀들은요?》

《막내는 학교토끼사 당번이라든가, 그래서 아침에 학교엘 나가구 맏손년 임신 8개월이 돼나서 금방 리진료소에 산과검진을 받으러 갔다오. 그런데 누굴 꼭 만나야 하시우?》

《아니, 아니. 그래서가 아닙니다.》

황정식은 집식구들이 없는것이 오히려 잘됐다는듯이 머리를 끄덕거리며 뒤를 달았다.

《할머니, 이 젊은 녀성동문 김진희라고 나랑 함께 일하는 력사연구사이고 저쪽 녀동무는 적십자종합병원 의사선생입니다. 의학박사이지요. 할머니의 건강이 어떤가 하는것도 알아보려고 이렇게 함께 걸음을 했습니다.》

《내 건강때메? 에이구, 원참. 옛날부터 사람이 여든고개에 이르면 귀신이 붙들어간다구 했는데 난 좋은 세월을 만나 이렇게 오륙이 멀쩡해서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에다가… 거 뭐드라… 응, 그래그래, 해군부대 정치지도원인가 한다는 맏손녀사위까지 데리구 아무 근심걱정없이 살구있수다.

손주녀석들도 인민군대에 나가있고… 난 지금 아픈데도 별로 없소. 자, 몹시 더운데 선풍기도 틀어놓고 제 집처럼 웃동도 벗고 어서 땀을 좀 들이시우.》

박순정은 방안을 오락가락하면서 별스레 수선을 떨었다. 그럴 때 보면 팔순을 눈앞에 둔 로인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수다를 부리는것은 속에 짚이는데가 있어서였다.

무슨 일로 찾아왔을가?… 내 건강문제때문에?… 그럴수도 있겠지만…

박순정은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달래며 평양손님들과 마주앉았다.

부하게 생긴 녀의사가 박순정의 맥박과 혈압을 재여본 후 청진을 시작하였다.

《할머니, 어데가 제일 편안치 않으십니까? 어이구, 할머닌 무척 놀라셨군요. 그러지 마시고 긴장을 좀 푸십시오. 마음이 진정되게… 자, 숨을 크게 들이쉬였다가 내쉬면서…》

박순정은 귀신같이 자기 속내를 알아맞추는 녀의사가 하도 신통해서 어줍게 웃으며 떠듬거리였다.

《으응, 숨을 크게 쉬라구? 그…그렇게 하지. 헌데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선생들이 닥쳐드니 제풀에 가슴이 활랑거려지는구만. 하긴 나야 아이적부터 토끼심장을 가졌다고 했으니까. 흐흐흐…》

박순정의 마음은 한결 풀린듯 했다.

그러자 곁에 앉았던 황정식이 웃으며 끼여들었다.

《할머니, 마음을 푹 가라앉히십시오. 그리구 어깨를 쭉 펴고 사십시오. 자꾸 옛날일을 속에 꿍져넣지 마시고 〈이 천하에 짐승보다 못한 쪽발이들아, 똑똑히 봐라! 네놈들의 죄행을 낱낱이 발가놓을 박순정이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다.〉하고 큰소리를 치면서 말입니다.》

황정식이 손세까지 써가며 부러 엄한 시늉을 내자 웃음소리가 터지고 집안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의사선생이 가방에서 약을 꺼냈다.

김진희가 어느새 부엌으로 내려가 물을 떠올려왔다. 진희는 평양에서 준비해가지고 온 간식꾸레미도 펼쳐놓았다.

손님들은 박순정이 웃방에서 안고 나온 두툼한 가족사진첩을 번지며 한동안 웃음꽃을 피웠다.

《이게 우리 맏손녀사위라오.》

박순정은 집식구들속에 끼워있는 해군군관복을 입은 기골이 장대한 청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어, 이런? 구척장신에 나무랄데 없는 미남이로구만요. 할머니, 손녀사위를 참 잘 두셨습니다. 한번 만나봤으면…》

황정식이 칭찬을 아끼지 않자 박순정은 《사위는 아마 래주 토요일쯤에나 부대에서 들어올거웨다. 거 뭐드라… 오, 그렇지. 오중흡7련대가 될만 한가 하는걸 판정하는 시험 같은걸 친다고 하던데… 그 사람도 얼마나 사근사근한지 몰라요. 실은 맏손녀보다 얼싸하지요. 이 할미의 마음에 꼭 듭네다. 사람이 좋은데다가 거 뭐 해군부대에서 손꼽히는 롱구선수라고 하던지…》 하고 은근히 손녀사위자랑까지 했다.

즐거운 분위기가 흘러가는 속에서 황정식이 박순정의 두손을 꼭잡고 말했다.

《할머니, 의사선생이 진찰한데 의하면 아직도 심장판막증증세가 없어지지 않았고 부정맥도 심하다고 하는데 이제부터 한 40일가량 양덕에 있는 온천이 나오는 료양소에 가서 병치료도 하면서 료양생활을 해보는것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료양소엘? 에이구, 난 몸이 일없수다. 지난해보다 머리아픈것도 덜하고 바깥출입도 그리 힘들지 않소. 그저 이렇게 집에 앉아 자식들의 뒤바라지나 하면서 그럭저럭 몇해 살다 죽으면 되지, 료양은 무슨 료양…》

《아니, 할머니. 이 좋은 세월에 왜 자꾸 죽을 소리만 하십니까. 건강한 몸으로 아흔살, 백살까지 살면서 복을 다 누리고 또 왜나라쪽발이들한테서 배상을 받아내는 날을 보아야 할게 아닙니까.》

《백살? 내 원참, 흐흐…》

박순정은 백살이라는 소리에 어이가 없는듯 소리내여 웃었다.

《왜, 백살을 못사실것 같습니까? 텔레비죤에도 다 나오지만 백살장수자로인들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시는 생일상을 받아안는걸 못 보셨습니까. 할머니라고 백살을 못산다는 법이야 없지요. 그러니까 병치료를 잘해서 건강한 몸으로 증손자, 고손자까지 안아보면서 아직도 성노예제도가 없었다고 뻔뻔스럽게 줴치는 쪽발이들의 음흉한 거짓말을 발가놓는데서도 앞장에 서야 할게 아닙니까.》

《하긴 나도 일본쪽발이들한테서 배상을 받아내는 날을 못 보고서는 눈을 감을것 같지 못해.》

황정식이 박순정에게로 바투 다가앉으며 슬쩍 양념을 쳤다.

《그것 보십시오. 그런데도 료양소엘 안 가시겠습니까?》

그러나 먹어들지 않았다. 박순정은 여전히 손을 홰홰 내저었다. 녀의사와 진희가 애원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들의 마음은 더없이 고맙지만 내 생각에는 그게 괜한짓 같네. 아, 내 몸상태야 내가 더 잘 알지. 난 그저 지금처럼 애들의 뒤나 거들어주면서 쉬염쉬염 터밭이나 가꾸고 돼지도 길러 인민군대들한테 보내주면서 손발을 놀리는게 좋소. 그게 내겐 보약이요. 또 그래야 고마운 나라의 혜택에 조금이라도 보답할게 아니요?》

황정식은 박순정의 료양문제를 가지고 바줄당기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워낙 성격이 벽창호같은 할머니앞에서 아무리 말을 곱씹었댔자 그것은 다람쥐 채바퀴굴리기이고 가뜩이나 마음이 편안치 않은 그에게 오히려 정신적부담만 끼친다는것을 알았기때문이였다.

박순정이 돼지풀을 데쳐야 하겠다며 부엌으로 내려간 짬이였다.

호- 하고 한숨을 내쉬던 녀의사가 조심스럽게 황정식에게 말했다.

《현재 할머니의 몸상태는 겉보기와는 달리 안심할 형편이 못됩니다. 혈압도 높고 부정맥이 심한데다가 전반적인 육체가 너무도 쇠약합니다. 료양치료를 받으면 좋겠는데 본인이 굳이 마다하는 조건에서 어쨌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소? 참, 야단이구만. 료양소에 가서 할머니의 몸을 추세우기 위한 집중치료를 조직하고 료양생활을 함께 하면서 마음을 푹 안정시킨 다음 일본의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에서 보내온 그 사진을 직접 확인시키고 이번 3개국 합동조사에 동행하는 문제도 알려드리려고 했댔는데…》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와하는 황정식에게 김진희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왕 왔던김에 할머니의 건강회복에 좋을지 모르니 저기 와우도해수욕장 같은데 모시고 가서 바다바람을 쐬면서 심신을 안정시키는것이… 일본에서 보내온 사진을 보여주는것은 할머니의 건강상태를 보아가면서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인데… 하지만 그러다가 할머니가 전번처럼 또 까무라치거나 실신하면 어찌겠소?》

황정식이 머리를 약간 기웃거리자 김진희가 바투 다가앉으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난 저 할머니가 그렇게 맥없이 쓰러질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쓰러져도 안될분이구요.…》

《그건 나도 알고있소. 좋소. 그럼 그렇게 해봅시다.》

황정식이 드디여 결심을 내렸다.

동안이 흘렀으나 박순정은 부엌에서 올라올념을 안했다. 가마뚜껑을 여닫는 소리와 칼도마소리만 간간히 들려올뿐이였다.

황정식이 부엌으로 머리를 내밀고 소리쳤다.

《할머니, 뭘 하시느라고 그러십니까. 이젠 어서 방으로 올라오십시오.》

《아니, 내 집에 온 손님들을 어떻게 그냥 돌려보내겠소. 그래서 내 손으로 호박토장국에 오이김치랑 뭘 좀…》

《아, 아, 할머니. 그만두십시오. 그러지 마십시오. 이 더운 날에 그냥 집에만 박혀있겠습니까? 우리랑 함께 저 바다가에 나가 시원한 바다바람도 쐬면서 바다구경이나 좀 합시다. 우리가 차에 뭘 좀 싣고 온것도 있습니다. 정 식사대접을 하고싶거든 이따 저녁때쯤 아들, 며느리, 손녀들이랑 다같이 모인 다음에…》

진희와 녀의사도 부엌으로 내려가 박순정의 팔을 껴잡고 방으로 올라오면서 어서 바다구경을 가자고 졸랐다.

《바다구경? 그럼 늘그막에 선생들 덕분에 바다구경을 해봐?》

원래 바다라면 싫어하지 않는 순정이라 바다구경을 나가자는 황정식이네 그 말만은 순순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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