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1장 가해자측이 내댄 《주패장》


2


도꾜 지요다구의 어느 한 공원이다.

이름모를 꽃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호젓한 숲속길로 밝은 감색덧옷을 걸치고 파나마모를 쓴 나이든 녀인과 한창 류행되는 잠바를 걸친 중년사나이가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고있다. 나무가지들사이로 얼핏얼핏 비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효도를 다하는 아들이 좋은 날을 잡아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나온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아사꼬와 전홍이였다. 좀전에 지척에 있는 야스구니진쟈에 가서 그곳에 보관되여있는 《령새부》(명치유신을 전후하여 그때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될 때까지 해외침략전쟁에서 죽은 근 250만명에 달하는 전범자들의 이름과 관등급, 소속부대명 등이 적혀있는 기록장)에서 태평양전쟁마감까지 먄마방면군 제56사단장을 한 마쯔야마 유조를 비롯한 몇몇 일본군 고위급장교들의 이름과 필요한 자료들을 확인하고 오다가 이곳 공원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머리를 식히는 참이였다.

아사꼬와 전홍은 그사이 히로미를 비롯한 몇몇 전 일본군복무자들의 입을 통하여 당시 먄마와 중국 전서지역에서 일본군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저질러진 녀성들에 대한 반인륜적인 인권유린행위는 그 지대에서 총통노릇을 한 마쯔야마 유조의 명령지시로 감행되였다는 적지 않은 증거자료들을 쥐게 되였다.

그런데 야스구니진쟈에 보관된 《령새부》에는 마쯔야마 유조가 민족의 《영웅》처럼 묘사되고있었으니 아사꼬로서는 머리가 아픈 일이 아닐수 없었다.

아사꼬가 발을 잘못 내짚을가봐 길바닥을 살피며 곁에 바싹 붙어 걸음을 옮기던 전홍이 입을 열었다.

《아사꼬상, 이렇게 한담할수 있는 기회가 차례지기도 쉽지 않은데 오늘은 몇마디 들려주지 않겠습니까?》

아사꼬가 걸음을 멈추었다.

《나도 오늘은 생각되는것이 많아서인지 무슨 말인가 자꾸 쏟아놓고싶구만요.》

조금 앞쪽에 찌글써하게 서있는 《사꾸라》나무를 바라보던 전홍은 그쪽으로 아사꼬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 나무밑에 색은 바랬어도 제 모양을 갖춘 길다란 의자가 놓여있었던것이다.

그들은 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언제부터 묻고싶었던것인데 아사꼬상이 은인이라고 늘 외우며 아들과 며느리까지 붙여주어 잘 모시도록 하는 오따니 히로미로인의 행적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내가 알아본데 의하면 친척계렬도 아니던데 어떻게 되여…》

전홍이 이렇게 말하며 아사꼬를 쳐다보았다.

꺾어들었던 나무가지에서 검푸르게 독이 오른 잎새들을 뚝뚝 떼버리면서 전홍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아사꼬가 자기 고향 구루메가 있는쪽의 하늘가로 머리를 돌린채 눈을 감았다.

성미급한 전홍이 재촉하였다.

《아사꼬상, 혹시 실례되는 요구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난 그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입수한 〈위안부〉사진들이 안고있는 내막을 구체적으로 파헤치기 위해서도…》

아사꼬가 마음을 눅잦히며 자기를 다잡았다.

《전홍상의 요구는 결코 실례되는건 아니예요. 그러나 우리 오빠의 행적을 밝힌다는것은 사실 태평양전쟁시기 우리 선대들이 저지르거나 당한 그런 기막히고 부끄러운 지난 일들을 다 파헤친다는 말인데… 사실 후대들은 그런것을 다 알아야 해요. 그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해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또 너무도 심각해서…》

마디마디에 힘을 주던 아사꼬는 말끝을 채 맺지 못한채 손수건으로 눈언저리를 꾹 눌렀다.

잠시후 아사꼬는 자세를 바로하며 《우리가 금방 들렸던 야스구니진쟈에서는 남의 나라를 먹어치우려는 강한 〈식성〉에 과대망상증까지 겹친 도죠 히데끼와 같은 선대들을 야마도민족의 〈영웅〉이라고 추어올리고있지만 실지는 그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을 력사의 구렁텅이에 밀어넣은 장본인들이였지.》 하고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그러면서 그는 전홍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번대머리 도죠 히데끼는 일본군 륙군대장이라는 현역군인의 몸으로 일본수상자리에 올라앉았다. 부족한 재능에 비해 《뜻》만 높고 《입》이 큰 도죠는 수상직에 륙군대신과 내무대신까지 겸했다. 《용맹》이 넘쳐나는 도죠는 수상직에 올라앉자마자 하루가 멀다하게 해군대장 야마모도 이소로꾸와 꿍꿍이를 하였다.

그러던 끝에 1941년 12월 8일 일본해군을 은밀히 출병시켜 미군이 틀고앉은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하게 하였다. 이렇게 되여 태평양전쟁이 터졌다.

동방의 《맹주》와 서방의 《승냥이》의 결투는 해와 달을 포연의 보자기로 감싸버렸고 맑고 푸르던 태평양을 선혈로 물들여놓았다.

태평양전쟁이 점점 확대되면서 일본의 운명이 생사판가리의 기로에 들어서게 되자 도죠는 군징집령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전쟁마당으로 파병된 일본의 청장년들은 《야마도정신》을 고창하면서 죽음이 곧 영광이라는 도죠의 말을 곧이듣고 리성의 울타리를 뛰여넘어 저승길로 힘껏 내달렸다. 사실 그들은 도죠가 쥐여준 길다란 장총을 꼬나들고 남을 학살하러 가는 동시에 자기를 살륙하러 가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 정확히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42년 가을 어느날 저녁이였다.

군수공장에서 고급기술자로 일하던 아사꼬의 아버지 도모이 시오즈와 그 공장에서 경비대 대장으로 근무하던 아사꼬의 외삼촌 니쇼꾸가 어데 가서 병나발을 불고 왔는지 잔뜩 만취되여 서로 어깨를 겯고 비칠거리며 집에 들어섰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이렇게 함께 집에 들어서기는 이때가 처음이였다. 외삼촌 니쇼꾸는 독신으로서 군수공장 경비대 대장이 된 후 중위의 견장을 달고 공장정문에서 조금 벗어진 곳에 있는 기생집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아사꼬의 아버지는 그를 색에 미친 자식이라고 한두번만 쌍욕을 퍼붓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아사꼬의 아버지와 외삼촌은 같은 공장에 근무하면서도 서로 남남이 되여 지냈던것이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혀꼬부라진 소리를 내면서 막역지우처럼 한덩어리가 되여 집에 들어선것도 놀라운 일이였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것은 늘 양복차림을 하고 다니던 아사꼬의 아버지도 외삼촌과 꼭같이 누런 일본군장교복을 입고 군복앞섶을 너풀거리며 집에 들어선것이였다.

저녁상을 준비하던 아사꼬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아니, 당신도?…》

《그…렇소, 나…도 〈무적황군〉의 장…교가 됐단 말이요. 자, 이걸 보…란 말이요. 이… 이걸…》

아버지는 어깨우의 견장을 가리키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자기가 군에 징집된 사실과 처남인 니쇼꾸와 함께 며칠후 전선으로 출동하게 된다는데 대해 말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외로 돌린채 그들 둘을 부축하여 집안으로 들어섰다.

기가 펄펄하던 젊은이들이 주먹을 내두르면서 싸움터로 떠나갔다가는 몇달을 못 넘기고 유골함에 담겨 돌아오는것을 몇번이나 목격한 아사꼬의 어머니인지라 벌써부터 물먹은 소리를 냈다.

누런 군복을 입고 비칠거리며 방에 들어서는 아버지와 외삼촌을 본 5살 난 아사꼬는 그 모습이 너무도 눈에 설고 무섬증까지 겹쳐 비죽비죽하다가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는 방안으로 달려들어가 아사꼬를 꼭 껴안았다. 어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쏟아져내렸다.

곤죽이 되여 밤새 코를 골던 아버지와 외삼촌은 다음날 아침에야 정신을 차렸다.

어머니가 아침밥상을 차릴 때 실내복을 갈아입은 아버지는 귀여운 아사꼬를 자기 무릎우에 올려앉혔다.

아사꼬는 단풍잎같은 손으로 자기 볼을 콕콕 찌르는 아버지의 푸릿한 턱수염을 살살 쓰다듬었다.

《어어, 이거 간지럽구나.》

아버지의 웃음섞인 소리에 밤새 불안과 공포감으로 얼어붙어있던 어머니의 마음이 좀 풀린듯 했다.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일손을 멈추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보, 어떻게 된거예요. 군수공장의 고급기술자들은 징병을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때 방안에 걸린 거울앞에서 코수염을 손질하던 니쇼꾸가 그 말을 나꿔챘다.

《누이는 아직도 까막눈이구만.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몰라서 그런말을 하오? 이 전쟁에서 우리 일본이 지면 누이나 저 아사꼬도 살아숨쉴 곳이 없단 말이요. 그러니 나는 물론 매부도… 난 매일같이 퍼붓는 미군비행기들의 폭탄세례를 받으면서 공장을 지키는것보다 전선에 나가 싸우는것이 일본남아로서 더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보오. 내 이제 싸움판에 나가면 그저…》

니쇼꾸의 말에는 앙심으로 빚어진 가시가 비쭉비쭉했다.

아사꼬의 어머니가 눈살을 찌프리며 자기 동생을 흘겨보았다.

안해와 처남간의 대화가 불협화음으로 번져질가봐 우려하던 아사꼬의 아버지는 느슨한 목소리로 팽팽해진 방안공기를 눅잦혔다.

《왜, 〈무적황군〉의 군복이 어드래서… 나도 야마도민족의 남아인데 위기국면에 처한 국가에 등을 돌려댈수 없고 또 〈천황〉페하의 아들이라면 참전을 거부할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기술자인 당신까지…》

아사꼬의 어머니는 기모노자락으로 눈굽을 훔쳤다.

아버지는 눈물을 쏟으며 파들파들 떠는 어머니의 연약한 어깨우에 커다란 손을 얹으면서 퍽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여보, 너무 근심마오. 난 제56사단 병마창 부창장으로 임명되여 저 중국대륙 아래쪽 먄마에 가게 되였소. 거긴 파편이 날아다니는 전방이 아니요. 무기와 군수품 같은것을 보관하고 공급하는 곳이요. 그리고 니쇼꾸도 그곳 사단병마창 경비대장으로 승급되여가게 되였소.》

《그래요?》

어머니의 입가에서 가느다란 웃음이 새여나왔다. 서글프기 짝이 없는 그 웃음은 남편과 동생이 아마데라스 오미가미신령님의 은총을 받았다는 자체위안에 불과한것이였다.

이때 눈치가 역빠르기로 소문난 니쇼꾸가 덧창을 쳤다.

《누이, 마음을 푹 놓소. 내가 매부의 신변을 책임적으로 지켜주겠소.… 이제 며칠후에 동남아전선으로 가는 배가 있으니 그때까지 나도 누이네 집에 있으면서 피곤이나 풀겠소.》

그런데 니쇼꾸가 말하던 피곤을 푸는 그 기간에 아사꼬의 집보짱이 무너져내리는것과 같은 일이 생길줄이야…

다음날 아사꼬의 아버지와 외삼촌은 공장에 나가 하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던 길에 또 술집에 들렸었다. 마사무네 2병에 몇개의 료리접시를 앞에 놓고 권커니 작커니 하던 그때 공습경보고동이 울렸다. 술집근방 여기저기에서 폭탄이 굉음을 울리며 건물들을 산산쪼각내기 시작하였다. 하늘을 썰며 돌아치는 여러대의 미군비행기들에서는 줄폭탄이 쏟아져내렸다.

아사꼬의 아버지와 외삼촌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된 술집대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나해서 비칠거리는 구척장신의 니쇼꾸를 뒤에 달고 방공호를 향해 내달리던 아사꼬의 아버지가 시뿌연 연기가 뒤덮인 하늘을 올려다보며 뭐라고 소리를 내지르며 주먹을 흔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였다. 아사꼬의 아버지가 흠칠하며 눈을 흡뜬채 허수아비처럼 고꾸라졌다. 하강하던 미군비행기에서 란사하는 기총탄이 그의 등허리를 맞창냈던것이다.

아사꼬의 아버지는 이렇게 《무적황군》의 군복을 입은지 며칠만에 총 한방 못 쏘아본채 저세상사람이 되고말았다.

이날 저녁 아사꼬의 집에서는 곡성이 그칠줄 몰랐다.

아직 사람이 죽는다는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아사꼬는 어머니와 외삼촌 그리고 친척들이 대성통곡을 하자 덩달아 앙- 앙- 하고 울어댔다.

아버지의 시신을 앞에 놓고 이를 부드득 갈던 외삼촌이 어푸러져 태질을 하는 어머니의 어깨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누이, 내 기어이 매부의 원쑤를 갚겠소. 아-》

그리고는 눈물범벅이 된 아사꼬를 꼭 그러안고 한동안 달래다가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창밖의 먼 하늘가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 시각부터 아사꼬의 어린 가슴속에는 외삼촌 니쇼꾸가 자기 집안의 기둥으로 자리잡게 되였다. 아버지를 잃은 아사꼬로서는 어머니 다음으로 가까운 사람이 외삼촌이였다.

드디여 그 외삼촌이 먄마전선으로 출동하는 날이 왔다.

시모노세끼항에서 외삼촌은 아사꼬의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갈린 목소리로 당부했다.

《누이, 부디 몸조심하고 아사꼬를 잘 돌보오. 내 기어이 아사꼬아버지의 원쑤를 갚고 야마도민족의 남아답게 승전하고 돌아오겠소. 그날을 기다려주오.…》

그리고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있는 아사꼬를 덥석 그러안고 그의 볼에 피가 지도록 입을 맞춰주었다.

이때 후렁한 군복을 걸친 한 청년이 아사꼬의 외삼촌앞에 다가와 서투른 제식동작을 하며 큰소리로 보고를 하였다.

《경비대장님, 출발시간이 거의 되였습니다. 사단참모님이 배에 오를것을 지시합니다.》

니쇼꾸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아사꼬의 손목을 잡고 서있는 누이를 바라보며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얼마전에 군복을 입은 내 련락병 히로미요. 아직 야마도정신이 뭔지도 모르는 고아출신의 애숭이지만 우리 고향 구루메출신이기때문에 이렇게 데리고 다니오.》

《아니, 저렇게 애티도 못 벗은 소년들까지 전쟁판에…》

누이의 한숨섞인 목소리에 니쇼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였다.

《흐흐흐… 어쩌겠소. 지금 어느 전선에서나 제일 요구되는것이 〈황군〉병졸들인데 저런 코흘리개들이라도 많았으면 작히나 좋겠소? 흐흐흐…》

잠시후 정색해진 니쇼꾸가 두어발치 떨어진 곳에서 서성거리고있는 히로미를 향해 소리쳤다.

《야, 련락병! 우린 고향이 구루메야. 넌 그걸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알겠는가?》

갑자기 니쇼꾸가 떽떽거리자 히로미는 눈이 퀭해서 어물거리다가 애티나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하잇!-》

니쇼꾸는 계속했다.

《히로미, 똑똑히 알아두라. 내 누이의 손을 잡고 서있는 저 소녀애가 바로 하나밖에 없는 나의 조카다.》

히로미는 군화뒤축을 딱 소리가 나게 붙이면서 아사꼬를 바라보았다.

니쇼꾸는 아사꼬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그의 볼을 슬쩍 건드리며 어성을 낮추어 말했다.

《아사꼬, 너도 저 련락병에게 인사해라.》

아사꼬는 련락병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외삼촌이 시키는대로 머리를 까딱하였다. 어린 아사꼬의 망막에 비낀 히로미는 청년이라 부르기엔 아직 이른 솜털도 채 못 벗은 16살의 소년이였다.

니쇼꾸는 히로미를 달고 거무틱틱한 굴뚝으로 맥빠진 허연 연기를 꾸역꾸역 토하는 배가 정박한 부두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싸움마당으로 나가는 자식을 바래주러 나온 늙은이들과 기둥처럼 믿던 남편과 오빠, 애인을 전선으로 떠나보내는 녀성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려는듯 인산인해를 이룬 부두가에서는 시누런 군복을 입은 《황군》장병들의 악청이 섞인 《〈천황〉페하 만세!》의 함성과 《대동아행진곡》의 합창소리가 끝없이 울려퍼졌다.

이날 귀청을 멍멍하게 만들던 그 함성, 그 합창소리는 어질고 순박한 이들모녀의 가슴속에 니쇼꾸를 앞날의 《개선장군》으로 부각시켜놓았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개선장군》의 목대가 부러졌다. 그리도 의기양양하게 떠나갔던 외삼촌 니쇼꾸는 꼭 이태만인 1944년 8월에 한줌 재가 된채 자그마한 골회함속에 안치되여 위패를 앞세우고 고향 구루메로 돌아왔던것이다.

아사꼬의 어머니는 또 한번 기절하여 쓰러졌다. 어린 아사꼬도 하늘처럼 믿던 외삼촌의 신상에 불길한 일이 닥쳐들었음을 눈치채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근의 친척들이 몰켜든 아사꼬의 집은 또다시 울음판으로 변해버렸다.

그러거나말거나 상관이 없이 (당시 일본사람들의 가정들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였으니 상관이 없을수밖에 없었다.) 골회함과 위패를 안고 아사꼬네 집으로 찾아온 부대 병참장교는 《천황》이 하사하는 위로물자라고 감지덕지한 어조로 말꼭지를 떼면서 마사무네 4병과 고기통졸임, 마른명태 몇마리를 꺼내놓고 꺽꺽거리였다.

《〈천황〉페하의 고지를 받들어 〈태평양성전〉에서 영예롭게 〈옥쇄〉한 충의지사이며 결사불굴의 용사인 니쇼꾸군의 무훈은 장구할것입니다.》

생때같은 동생마저 잃은 정신적타격에 자기를 걷잡지 못하던 어머니는 그후 아사꼬를 데리고 할머니가 살고있는 요꼬하마로 이사를 하였다.

1945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빈번해지는 미군비행기들의 폭격속에서 몇번이나 죽을고비를 넘기며 별의별 고생을 다 겪던 이들모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평온의 문어귀에 들어서게 되였다.

그런데 그해 10월 어느날 밤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리운 불량배들이 아사꼬네 집으로 쓸어들어 어머니의 팔을 베고 잠든 아사꼬의 덜미를 잡아 밖으로 내동댕이치고는 연약한 어머니에게 무리로 달려들어 짐승도 낯을 붉힐 그런짓을 감행할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그 불량배들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타락할대로 타락한 패잔병출신의 깡패무리들이였다. 당시 일본도처에는 그런 불량배들이 득실득실하였다.

그날 웃방에 갇히여 누비돗자리가 검불이 되도록 쥐여뜯으면서 하늘이 내려다본다고 고함을 지르던 할머니는 우악스러운 그자들의 발길에 채워 무참히 숨졌다.

어린 아사꼬를 완전히 기절하게 만든 일은 그날 새벽에 벌어졌다. 불량배들에게 륜간당한 어머니가 침대보에 피칠갑을 해놓은채 방에서 부엌으로 가로건너간 들보에 바줄을 걸고 목을 맸던것이다.

8살에 혈혈단신의 고아가 된 아사꼬는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고향 구루메까지 갔는데 하늘이 도왔다고 할가, 그곳에서 은인을 만났다. 그 은인이 바로 외삼촌 니쇼꾸의 련락병을 하던 오따니 히로미였다. 먄마전선으로 갔던 그는 중국의 송산전역에서 련합군에 포로되여 수용소생활을 하다가 제2차대전이 끝난 이듬해에 고향 구루메로 돌아왔던것이다.

어느날 허줄한 군용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손에 지팽이를 든 히로미가 미군부대에서 하루에 한번씩 일본사람들에게 《자비》로 베푸는 꿀꿀이죽을 타먹기 위해 길다란 줄 한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때 그는 그 주변에서 바퀴무리처럼 몰켜다니는 방랑아들속에 끼운 아사꼬를 알아보고 펄쩍 놀랐다.

《아니, 너 아사꼬가 아니냐?》

아사꼬는 꼭 어디에서 본것 같기도 한 낯선 아저씨가 갑자기 자기 이름을 부르며 손짓을 하자 겁에 질려 비실비실 게걸음을 했다.

히로미가 절룩거리며 아사꼬를 쫓아갔다.

《얘야, 무서워말아. 나다. 네 외삼촌의 련락병을 하던… 히…로…미다!》

그때에야 아사꼬의 머리속에서는 못 잊을 그날 자기 볼에 입을 맞춰준 외삼촌과 함께 배에 오르던 후렁한 군복을 입은 히로미의 모습이 되새겨졌다.

《아! 아…저…씨!-》

아사꼬는 히로미의 색날은 군용외투앞섶에 얼굴을 묻었다.

아사꼬가 고아가 된 사연을 알게 된 히로미는 가슴을 두드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로부터 고아라는 공통성으로 하여 히로미는 아사꼬의 오빠가 되였고 아사꼬는 그 오빠의 그늘밑에서 자라서 가정도 이루었으며 오늘은 한다하는 녀성법률가가 되였던것이다.…

기담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주 눈가에 손수건을 가져가던 전홍은 아사꼬의 말이 다 끝났으나 먼 하늘가에 시선을 던진채 아무 응대도 하지 않았다. 기가 막힌 아사꼬의 과거사인 동시에 가슴저린 히로미로인의 과거사였던것이다.

아사꼬는 피눈물을 씹으면서 진실을 말하였다. 허나 그의 이야기에서는 많은것이 생략되였다. 그것은 일본사람으로서 《국민옹호정신》이 남다른 아사꼬가 자신과 아버지, 어머니, 외삼촌 그리고 오빠 히로미의 피맺힌 과거사를 쏟아놓으면서도 일본국민의 존엄을 심히 훼손시킬수 있는 말과 그런 대목은 입에 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기때문이였다.

아사꼬의 이야기는 길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자기 손으로 비극의 서막을 열고 그 비극의 처참한 주인공으로 된 일본의 불미스러운 과거사가 그대로 함축되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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