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3 장


7


려송의 도움으로 무사히 예성을 벗어난 오이가 구암성에 이르렀을 때는 한낮이였다.

예성에서 천여리, 엄호수나루에서 백여리 되는 곳에 자리잡은 구암성은 구려와 부여의 지경을 경계짓는 변방성으로서 높고 험한 산봉우리들로 둘러막혀있었다.

이른아침부터 성안은 저자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있었다.

오이는 저자앞거리에서 함께 온 상단일행과 갈라졌다.

당시 부여는 변강의 일정한 지역들에 해마다 몇번 주변나라의 상대들까지 끌어들여 큰 장을 열군 하였는데 바로 이날이 장이 열리는 날이였다.

이날엔 국내각지는 물론 이웃한 겨레의 나라들뿐아니라 멀리 중원땅의 상인들과 내몽고의 소수민족의 상대들까지 물밀듯이 몰려들어 그 번잡함이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북방의 희귀한 짐승가죽을 어깨에 걸치고 싸구려를 부르는 늙은이들, 어물에 달라붙는 파리를 손으로 휘휘 쫓으며 《어서 사소. 옥저의 명물 왕새우 사소-》 하고 웨치는 아낙네들, 조선의 청동제품들과 철기품, 질그릇들과 옹배기들, 각종 은포금비단과 다색단.…

그러나 참으로 볼만 한 광경은 성안 한쪽가위에서 말과 소, 양떼를 놓고 벌어지는 흥정이였다.

기골이 장대하고 감때사납게 생긴 사나이들이 저마다 이번 장사에서 한밑천 잡아보려고 서로 다투고 욕지거리를 해가며 장사에 열을 올리고있었다.

오이는 그 모든것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말을 몰았다.

이제 구암성만 무사히 벗어나면 그다음 로정은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수 있다.

구암성에서 엄호수까지는 약 백여리정도밖에 안되는데다 인가가 없다보니 부여군사들과 부딪칠 념려가 없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오이는 가슴속 한귀퉁이에 우엉씨처럼 지꿎게 달라붙어있는 불안을 좀처럼 털어버릴수가 없었다.

꼭 누군가의 살기띤 시선이 뒤를 따르고있는것 같은 예감이였다.

오이는 성문과 멀지 않은 행길가에 자리잡은 주막집이 눈에 뜨이자 말을 멈춰세웠다.

그는 말에서 내려 주막집앞에 높이 걸린 주기에 대충 말고삐를 매고는 터벅터벅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아직 끼때가 아니여서인지 주막집은 한가했다.

오이는 구석으로 가 앉으며 주모에게 소리쳤다.

《술과 고기를 가져다주시우.》

주막은 앞길을 오가는 행인들을 살피기에 아주 안성맞춤한 자리였다.

또 뒤채로 나가는 사이문과 가까와 여차직하면 뒤마당으로 빠져나가기도 쉬운 곳이였다.

오지술병이 얹힌 소반우에 편육점을 가득 올려가지고 종종걸음쳐나온 주모는 오이의 다부진 체격을 곁눈질하며 술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손을 잽싸게 놀리는 품이 여러해째 사내들틈에 끼워 굴러먹은 술집녀자의 거동이 헨둥했다.

오이는 두말 않고 염낭에서 큼직한 은냥(은으로 주조한 돈)하나를 꺼내여 개다리소반우에 올려놓았다.

삽시에 주모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혼자서야 무슨 술맛이 있겠나. 손님도 없는데 주모도 여기 와 앉게나.》

《아, 아니… 이런 참!…》

서른대여섯쯤 나보이는 녀주인은 부끄럽다는듯 길씀한 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웃는데 이미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눈가에서는 어제날의 교태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눈치빠른 중노미가 분주히 오고가며 구운 굴비며, 버섯채 같은것을 날라왔다.

《자, 그럼 나으리. 우선 제가 쳐드리는 술이나 맛보소이다.》

주모는 어느새 오이의 위풍과 풍채에 반하여 눈주위가 불그죽죽해졌다.

오이는 대접채로 술을 단숨에 쭈욱 들이키고는 소반우에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주모도 한잔 들라구.》

오이는 주모에게 술을 권하며 점잖게 웃었다.

어느덧 주모의 얼굴은 술기운과 수집음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바로 그때 주막집앞으로 중무장을 한 백여명의 기마군사들이 절그럭 거리며 지나갔다.

《저건 웬 군사들인가?》 오이가 흔연한 어조로 물었다.

무심결에 행길로 눈길을 주던 주모가 취기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참, 나으리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니니 잘 모를것이오이다.

지난해 가을 부여왕실에 있던 주몽이라는이가 세 벗을 데리고 구려국으로 도망을 쳤소이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대노하여 그들을 추격하였으나 주몽과 수하부하들이 모두 비범한 인물들이여서 종시 붙잡지 못하였지요.

그런데 그 부하들중 누군가가 죽기를 각오하고 지경을 넘어왔다고 하오이다.》

오이는 주모의 빈잔에 또다시 술을 채워넣으며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무렴, 사람 하나 잡자고 저렇게 숱한 군사를 풀었을텐가?》

주모는 잠시 주저하는듯 사위를 둘러보고나서 재빨리 입을 놀렸다.

《구암성의 수장 한명이 어제 저녁 여기에서 술을 마시며 한 소리인데요… 주몽의 부하를 붙잡고는 곧 그들의 거처지를 기습한다 하였나이다.》

《부여의 병력이 구려국지경에 들어가면 전쟁이 일어날수도 있지 않소. 설마하니?…》

대저 주막집이란 동서남북을 오고가는 행인들이 늘 들리는 곳이라 얻어들은 소문이 많은 곳이다.

과연 오이의 예측대로 술을 한잔 걸친 주모는 혀바닥이 돌아가는대로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글쎄 수장의 말로는 구려국의 귀족들과 약조가 되여있다고 하더이다. 이 기회에 주몽의 본거지를 소탕하고 그길로 구려국의 땅도 떼여 가지려는가봐요. 하여튼 이번 싸움을 조정에서는 매우 중시하는가보오이다.》

오이는 그제야 모든것이 석연해졌다.

주몽을 질시하는 구려국 귀족들이 부여와 손을 잡고 음모를 꾸민것이 분명했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으리라 짐작은 했으나 그것이 주몽의 목숨을 노리고 야합한 내외의 원쑤들의 비렬한 음모일줄은 꿈에도 몰랐던것이다.

더이상 지체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해서든 이 무서운 함정을 벗어나 주몽에게로 달려가야만 했다.

《참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었네. 이건 이야기값으로 여기고 받아주게.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소릴 발설하지 않는것이 좋으이.…》

오이는 염낭에서 손에 잡히는대로 은자를 꺼내 소반우에 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입이 귀밑까지 돌아간 주모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은자를 움켜쥐고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안절부절하였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주막의 마당이 부산스러워지더니 주막안으로 삿갓을 푹 눌러쓴 사나이 셋이 불쑥 들어서는것이였다.

하나같이 체격이 우람하고 눈에서는 살기가 내뻗쳤다.

깊숙이 눌러쓴 삿갓밑으로 두눈이 번쩍거리는것이 분명 오이를 목표로 이 주막집에 들어온자들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었다.

주모는 부산을 떨며 새로운 손님을 받기 위해 일어났다.

오이는 혼전을 각오했다.

이들 셋이 자기를 표적으로 이곳에 들어왔다는것은 이미 이 주변이 물샐틈없이 포위되여있음을 말해주는것이였다.

순간 오이는 삿갓밑에서 잠간 드러나보이는 얼굴중에 낯이 익은자를 알아보았다. 그자는 오이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 당황한 얼굴을 얼른 숙였으나 두로의 밑에서 식객으로 있는자가 분명했다.

그러니 이 모든 음모의 주인은 두로였단 말인가.

부여의 대소왕자에게 자기가 몰래 월경한 사실을 선통한것만으로 부족하여 오늘은 직접 은인이라고도 할수 있는 연타발까지 배반하고 부여의 군사들을 끌어들이려는 두로가 더없이 증오스러웠다.

이때 주막집밖에서 별안간 소동이 일어났다.

가까운 그늘속에서 마초를 씹던 군마들이 무슨 영문에서인지 서로 물고 받으며 싸움을 벌렸던것이다. 숱한 군마들이 서로 갈개며 껑충껑충 뛰는 통에 삽시에 주막밖 행길은 아비규환으로 변하였다. 오가는 행인들, 장터에서 물건값을 흥정하던 사람들이 이 복새통에서도 말싸움을 구경하겠다고 일시에 와 밀려오자 소동은 한결 더 커졌다.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오이는 삿갓을 쓴 사나이들이 따라서는것을 곁눈으로 보며 우정 취기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런, 싸움이 볼만 한걸…》

주막집을 나선 오이는 여차하면 뒤에 따라붙은자들을 베려고 옆구리에 찬 장검을 왼손으로 꾹 눌러잡았다.

밖은 온통 혼잡투성이였다.

한가하게 말싸움을 구경하려고 나온 사람처럼 팔자걸음하던 오이의 단단한 몸이 별안간 한길이나 솟구쳤다.

찰나 가깝게 붙어선 사나이들이 손쓸새도 없이 에쿠, 지쿠 나가떨어졌다.

바로 그때 혼잡을 헤집고 뛰여나온 사나이가 오이의 곁을 나는듯 지나치며 속삭였다.

《형님! 나를 따르시우-》

(아니, 협보가?)

길게 생각할 경황이 없었다. 오이는 사람들속을 헤치며 두주먹을 부르쥐고 협보를 따라 내달렸다. 골목 하나를 돌아서니 군마 세필의 고삐를 감아쥔 마리가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셋은 그간의 회포를 나누듯 서로의 손을 한번 힘껏 잡았다 놓고나서 고삐를 잡아채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세필의 말이 성문을 향해 쏜살같이 질주하였다.

서너명의 파수군이 엉겁결에 창대를 내대였으나 어느사이에 장검을 빼여든 마리가 그대로 말을 몰고 나가며 번개같이 휘둘렀다.

《으악!》 파수군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땅에 나딩굴었다.

말싸움으로 인한 혼란으로 아직도 얼떠름해있던 구암성의 군사들은 성루우에서 《저놈들이다. 어서 따라가 잡아라!》하고 악을 쓰는 소리가 울려서야 펄쩍 놀라 급급히 말등에 뛰여오르기 시작했다.

성밖을 빠져나온 오이네들은 온몸에 스며드는 시원한 바람과 눈부신 해빛을 느끼며 아슬아슬한 고비를 무사히 넘긴 흥분으로 하여 가슴을 들먹이였다.

마리, 협보와 나란히 말머리를 같이하자 오이는 큰소리로 물었다.

《그러니 자네들이 혼란을 일으켰군?》

《형님이 주막에 들어갔을 때 슬쩍 군마들곁에 끼여들었소이다. 제일 사나운 놈의 약을 올려놓았더니 저들끼리 치고받고 하지 않겠소.》

협보가 벙글거리며 대답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땅속에서 불쑥 솟아나기라도 한것처럼…》

오이는 풀길없는 의문이 실린 눈길로 협보와 마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주몽형이 우릴 보냈소이다.》

그들은 질풍같이 남쪽으로 말을 몰았다. 귀전에서는 휘파람소리가 나고 옷자락이 바람에 마구 날렸다.

말발굽에 채인 흙덩이가 사방에 휘뿌려진다.

나지막한 구릉을 오르다 돌아보니 어느결엔가 추격병이 활 한바탕 거리까지 쫓아오고있었다.

추격병들이 내지르는 야생적인 고함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어느새 화살이 귀전을 스치며 날아들기 시작했다.

협보는 오이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형님, 안되겠소이다. 이대로 달리다가는 화살에 꿰인 산적꼬치가 되고말겠소.》

《그럼 한바탕 본때를 보여줄가?》

오이의 말에 그러지 않아도 몸이 근질거려 자기를 자제하기 힘들어하던 마리가 제꺽 응해나섰다.

《그게 좋겠소이다.》

그들은 무성한 떨기나무숲쪽으로 말을 몰았다.

말발굽소리가 점점 가까와졌다.

잠시후 부여의 군사들이 그들이 몸을 숨긴 곳으로 말을 몰아왔다.

숨을 죽이고 기회를 노리던 마리가 종적을 놓치고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적의 무리 한복판으로 불쑥 뛰여들었다.

불의의 역습에 질겁한 부여군사들이 서로 밀치닥거리며 혼잡을 일으켰다. 오이 역시 좌충우돌하며 사정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들이 지나치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연방 비명이 터지고 피줄기가 솟구쳤으며 살점이 튀여올랐다.

눈깜짝할사이에 여라문명이 비명을 지르며 길바닥에 나딩굴었다.

오이의 반대켠에서 뛰여나온 협보도 악악 소리를 지르며 부여군사들을 마주 베여넘겼다.

기겁한 부여군사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자 그들은 다시 남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찰나 련거퍼 날아온 두개의 화살이 오이의 잔등과 어깨에 박혔다.

그는 신음소리를 내며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개자식들!》

말에서 뛰여내린 마리가 오이에게 대들어 화살을 뽑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이는 벌써 몸에 박힌 화살대를 꺾어 땅에 내던졌다.

《아니, 어쩌자고?》

협보가 사색이 되여 저고리자락을 북 찢어 그것으로 오이의 상처를 동여매였다. 그래도 피는 멈추지 않아 순식간에 옷자락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부여군사들이 대오를 수습하고 또다시 밀려들었다.

오이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으나 눈앞이 어지러워 잠간 비칠거렸다.

협보가 부축여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말을 탈수 있겠소?》

오이는 피기가 빠져 하얗게 질린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아직은 일없네.》

《협보야, 아무래도 네가 먼저 오이형과 떠나야 할가보다.

저놈들은 내가 막을테니.》

마리의 말에 협보가 성을 벌컥 내였다.

《난 싫수다. 차라리 형님이…》

그러는 그들을 지켜보던 오이가 성한 손에 칼자루를 으스러지게 틀어잡으며 소리쳤다.

《모두 말에 오르라구. 다같이 살아서 주몽형의 곁으로 가야 해. 알겠나?》

그의 심중이 헤아려져 마리와 협보는 다같이 눈길을 떨구었다.

바로 그때 떨기나무숲에서 한떼의 군사들이 우르르 쓸어나왔다.

《형님, 앞에 매복이 있소이다.》

협보가 깜짝 놀라며 부르짖었다.

《가만, 덤비지 말아. 저들은 어딘가 부여군사들 같아보이지 않는구나.》

오이는 갑자기 나타난 군사들의 초라한 형색에 경계심어린 눈길을 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적들이로구만요.》

무리의 우두머리인듯싶은 홍포를 두른 패장의 얼굴을 바라보던 마리는 그만에야 《아-》 하고 놀란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초적두령은 다름아닌 려송이였던것이다.

《아니? 려송이가…》

협보 역시 예견치 못했던 일이라 저으기 아연한 눈길로 초적무리를 바라보았다.

《오이무사님, 뒤길은 저희들이 끊겠사오니 속히 이곳을 빠져주사이다.》

려송은 이런 말을 남기고 부여의 군사들을 향해 말을 짓쳐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초적들이 기세를 올리며 맞받아나갔다.

마리와 협보는 멀리 초적들과 부여군사들이 맞붙어싸우는 요란한 함성을 뒤에 남기고 오이를 부축하여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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